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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밤

어느 겨울 밤

 

 

 

연탄 화로 위
고기안주가 지글대면
오랜 벗과 술한잔 건네고
지난날 무용담을 농삼아 질겅이며
커져가는 목청따라 흔쾌히 취해간다

 

북쪽에서 시작된 삭풍도
대폿집 창문 한켠 쉬어가고
연탄불에 발그레 익어가는 추억
파르한 새벽녘의 한기도 녹고
몇겹으로 감쌌던 맘들이 열렸다

 

황태덕장에 가보면
뾰족나온 주둥이 꿰여
비명마저 얼어붙은 명태떼들이
잿빛도시 속 벌거숭이로 대롱 매달려
한겨울 지나온 가난한 이들과 닮아있다

 

몇번 남은 추위마저
길게 늘어선 밤이 짧아지 듯
처마 끝 고드름이 물방울로 맺히듯
고요한 침묵으로 변할 것을 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말로 다 표현못하듯
거친 숨결을 토해내던 이 겨울도 정겹다

 

터벅 터벅 걸음 딛을 때마다
발끝에 걸리는 앉은뱅이 꽃처럼
주검처럼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겸손한 미소를 배우며 살기를
봄날 햇살을 기억해내고
그 날의 풋사랑이 봉인된 시간에 감사하며
어김없이 시작될 내일을 준비해야지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위아래 갈기를 게을리 않고
벗과의 인연이 동치미 익듯 맑은 빛
탐스럽고 뽀얗게 우러나는 시간


 

오늘 밤

어둠도 마냥 솜이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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