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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얼마전에 회사에서 헤이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긴 했지만 워낙 안좋은 자전거였고 주행거리도 짧아서 제대로 자전거를 탄 느낌은 아니었다.

오늘 오랫만에 자전거를 제대로 탔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합정역까지... 일산을 거쳐 오면 길을 찾기는 쉬웠겠지만 자동차들과 함께 다니기 싫어서 자유로 옆을 따라가는 농로를 타고 오다가 행주대교 남단의 자전거도로로 가는 길을 택했다.

 

걱정은 제법 당겨진 일몰시간이었다. 처음가보는 길, 게다가 농로에 제대로 된 가로등이있을리 만무했다. 해가지기 전에 적어도 행주대교에 다다르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논길에서 헤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한다고 하긴 했는데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니 속도가 생각만큼 안나왔다. 결국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은 무렵에야 행주대교 북단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사, 헷갈릴거 같은 부분의 지도를 다 뽑아왔는데 행주대교 북단 인도로 진입하는 지도만 안챙겨왔다. 결국 인도로 진입하는 통로를 찾는다고 어두워져버린 논길을 이리저리 다녔지만, 오히려 왔던 길조차 헤깔리뿐이었다. 결국 위험을 무릎쓰고 찻길로 행주대교에 진입했다. 행주대교 건너서부터는 뭐 자전거 도로니 맘편하게 합정까지 올 수 있었다.

 

역시 자전거를 타는 일은 몸과 마음과 머리에 쌓여있는 온갖 것들을 비워내는 시간이다. 땀이 피질피질나고, 아무도 없는 길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노래에 마음의 찌거기가 분출된다. 노래도 지겨울때면 잠시 입다물고 초저녁부터 빛나는 달을 바라본다. 보름달이다. 머리가 환하게 비워지는 느낌이다. 이래서 자전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랫만에 만나는 한강의 밤은 여전히 고요하고 음습하며 아름다웠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마지막으로 한강을 달렸던 것이 5월일텐데... 작년에는 성산대교 북단 한강시민공원에서 새벽까지 맥주마시다 자전거 타고 오기도 많이 했었는데... 나는 많이 반가워서 한강에게 아는척을 하는데 한강은 내 인사를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그냥 유유히 흘러간다. 이럴때는 무심하게 짝이 없는 친구같다.

 

 합정에서 자전거를 주인에게 건네주고 배를 채운후 지하철을 탔다. 2시간 30분 정도 쉬지 않고 탔으니 몸도 마음도 나른하면서도 개운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하철이 한강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굉장한 허무와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과의 짧은 면회 후 불어닥치는 후폭풍과 비슷하다. 난 여전히 이런 느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아... 탈 때는 좋았는데... 역시나 허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몹쓸 생각들이 자라난다.

  

점점 더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맺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자신이 없어질수록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벽을 쌓아가고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이렇게 나이 먹어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언제는 그랬냐만은 계획이나 희망같은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그지같은 인간 되는데... 자전거 괜히 탔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전거한테 괜한 화풀이라는 걸 나도 자전거도 안다.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자전거로 강화도 다녀오기로 했는데, 강화도가 무슨 구원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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