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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노예에서 시간의 주인으로

파주로 이사온 가장 큰이유는 출퇴근이 너무 짜증나서, 그리고 독립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조금 멋있게 말하자면, 시간에 통제당하는 삶이 아닌 시간을 활용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집에 들어오면 잠들기 빠쁘고 일어나면 씻고 밥먹고 새벽같이 집을 나서고 하루에 3시간 넘게 출퇴근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이들었다. 시간의 노예로 살아간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주로 오게 되었다.

 

물론 나는 자연의 시간을 거스를 생각은 없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거야 노예가 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들은 모두 자연의 일부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다른 생명들과 공존하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다르다. 바쁘게 바쁘게 챗바퀴 돌고,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 잊고 살게 된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내 주인이 되어 나를 조정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자연의 시간은 좀스럽지 않다. 그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인간이 구획지어놓은 시간이 좀스러울 뿐이다.  그러고보니 자연의 시간의 '세월'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고, 인간이 구획지어놓은 시간은 '시각'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암튼 각설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내 힘으로 밥벌어 먹고, 내가 내 힘으로 살림살이하는 것처럼 내가 내 의지로 무엇을 할 지 결정하고 싶었다. 시간에 쫓겨 시간을 빼앗겨 급하게 다긋치듯 몰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사온 지 보름정도 되었나? 회사일이 바빠져서 아직도 집과 친해지지 못하고 정리도 다 못하고 살림살이도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시간의 노예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듯 싶다. 부천에서는 집을 나서야할 시각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노래도 듣고 책도 몇 자 읽고 아침밥 먹고 출근해도 시간이 남는다. 회사에 와서는 기타연습을 한다. 이제야 조금 내가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시간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부러 컴퓨터와 티비도 안놓았다. 긴 긴 밤을 내가 지배하고 싶었다. 그래본 경험이 있다. 감옥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처음에는 허둥댔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고나서 나는 내 시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물론 그 안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만(책을 보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그래도 내가 결정해서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퍽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파주로 들어올 때 일부러 나를 유혹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몸서리치게 심심하고 외롭고 지루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살던 용산' 마감이 걸리면서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하게 되었다.

밤이 심심할 여유도 없이 잠도 충분히 자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제, 오랫만에 6시에 퇴근을 했다. 배달된 냉장고를 받고 저녁을 먹고, 씻고, 냉장고 정리와 청소를 하고 시계를 보니 8시 30분. 아직도 밤은 길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잠들어버렸다ㅠㅠ 9시도 안돼서 잠들어버린것 같다. 다행히도 불끄고 이불 제대로 펴고 잤다.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 잠의 노예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책읽었다!!! 뿌듯하다! 기분 좋다. 이문구 '우리동네' 읽었다. 회사친구들과 함께 책 읽는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이다.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와 입말에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퍽 재미있더라. 책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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