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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복과 국가안보

달군님의 [] 에 관련된 글.

촛불집회 처음 나가봤다. 촛불집회뿐만아니라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차도에서 하는 집회가 나에게는

꽤나 오랫만의 일이었다.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들이 새삼 재미있기도 했지만

달군처럼, 그리고 내 친구들처럼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다.

 

어제는 분위기를 보고 "아 오늘은 연행을 안하려나보다"하고

진작에 눈치는 챘지만 그래도 전경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나는 무서웠다.

사실 나는 예전에도, 돌던지고 막 전경하고 욕하고 싸울때도 항상 무서웠다.

전경들에게 맞을까봐 무서웠고 연행될까봐 무서웠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나는 이미 연행도 되어봤고

전경들에게 많이 맞아봐서, 그것들이 생각만큼 두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연행될 때나 유치장 구치소 등등에서의 요령도 나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서웠다.

 

촛불집회에서 여성들은 뒤로 빠지고 남성들이 앞으로 나가서

스크럼을 짜고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올때마다

나는 뒤로 한 발짝씩 물렀다.  속질히 말해서 나는 누군가를 보호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겁도 무지무지 많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라면 자신있다.

 

예비군복 입은 사람들의 진심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이 나는 무섭다.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선량한 마음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했겠지만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예비군복이 상징하는 바는

국가안보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이건 미국산쇠고기수입의 문제이기도 하고 군대와 평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가(혹은 군대가) 국민들의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쇠고기 수입에서도 드러나듯이 국가는 특정한 사람들의 이익과 안보를

신경쓸 뿐이다. 군대또한 마찬가지다. 국가와 군대가 안보를 독점하고 있는 사회보다는

개인들과 소규모 공동체들이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사회가 훨씬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회다.

 

예비군복은 입고 나와서 사람들을 보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군대가 국민들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안보가 국가대 국가의 차원이든, 집회에서 공권력과 시위대의 충돌에서의 안보이든

누군가가 안보를 독점하거나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비민주적이다.

주로 그런 독점이나 관리는 물리적인 폭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권력은 그런 집단에게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촛불집회에서 아무리 비폭력을 외친다고 해도 예비군복이 나서서

물리적인 대응의 방식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진정한 비폭력직접행동의

방식에 어긋난다. 촛불집회가 좀더 비폭력직벙행동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비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군복을 벗어던지고 사람들과 함께 나란히 경찰들의

시꺼먼 방패앞에 섰으면 좋겠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처럼 겁많고 힘없는 사람이든

함께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각 각이 가지는 자발성과 주체성을 격려해주면 좋겠다.

 

진정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남성들이 전경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길바닥에서 전경들이 쳐들어올 때

기타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힘 센 성인 남성들만이 할 수 있는 집회의 방식은

아마도 지금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지도부에게 관리받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집회에 어울릴 것이다.

촛불집회는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싸울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좋겠다.

내가 아무리 목이 약하다고 해도

힘으로 경찰들과 겨루기를 하는 집회보다는

노래부르며 싸우는 집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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