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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8/11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1/30
    겨울나무
    무화과
  2. 2008/11/20
    나는 매일 태몽을 꾸어요
    무화과
  3. 2008/11/19
    찬바람
    무화과
  4. 2008/11/06
    2008년 평화수감자의 날 (1)
    무화과
  5. 2008/11/06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무화과

겨울나무

가을이 늦어서 단풍이 예년보다 늦게 들었었는데, 어느새 그 풍성한 색깔들이 다 떨어져버렸다. 가을은 갈수록 짧아진다. 연둣빛 싱그런 봄도 좋지만, 풍성한 잎사귀들이 저마다 뽐내는 여름의 건강미도 좋지만, 가장 아름다운 색깔들로 부끄러운듯 몸을 가리고 있는 가을의 나무는 아마 나무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일것이다. 그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문득 인식도 못했던 순간들이 지나가 버리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쓸쓸한 풍경으로 남겨두었다. 차가운 방안에서 겨울 나무를 생각했었다. 지리산 골짜기를 뒤덮은 그 엉성한 육신들. 나뭇잎 모두 떠나가고, 새들도 떠나가고 부끄러워도 제 몸하나 가릴 것 없이 추위속에서 그보다 더 커다란 고독속에서 속으로 속으로 파고들던 그 작은 떨림들. 겨울나무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끝난뒤 가장 혹독한 시절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겨울나무를. 그래서 여름의 나이테는 쑥쑥 커나가지만 겨울의 나이테는 속으로 단단해지는 것을. 화려한 잎사귀 다 떠나보내고, 제 멋에 겨울만도 했을 법한 것들을 모두다 떠나보내고 몸뚱이 하나만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나무들. 그래서 또 내년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것임을. 나는 너무 많은 말들을 걸치고 있다. 나무는 나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겉으로 너무 많은 옷들을 거칠지 말라고. 가진것 다 떠나보내고 속으로 단단해지라고. 겨울엔 침묵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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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태몽을 꾸어요

나는 매일 태몽을 꾸어요 나는 매일발 꿈을 꾸어요 집을 떠난 후 한 번도 꿈을 꾸지 않은 밤은 없어요 꿈을 꾸는 밤이면 밤하늘의 별 하나가 내 꿈속으로 떨어지고 눈이 맑은 아이가 세상 어딘가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꾸는 꿈은 누군가의 태몽이예요 백 날의 밤동안 백 개의 별이 반짝이고 백 명의 아이가 태어났어요 어떤 아이는 대포소리 총소리에 울음을 섞었고 어떤 아이는 키작은 엄마와 순한 아빠의 미소를 닮았지요 그 아이들과 나는 어쩌면 한 번을 못만나겠지만 난 그 아이들의 별을 기억하고 있어요 우린 같은 심장을 빌려쓰고 있는거예요 난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모든 어머니들의 아들이랍니다 오늘 밤에도 유난히 밝은 별하나 떨어지고 나는 또 꿈을 꾸고 슬픈 눈망울의 아이가 태어날거예요 - 청주에서 썼던 시 오늘 경미가 딸을 낳았다고 한다. 아니 벌써 어제구나. 암튼 11월 19일생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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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 곳의 기억 한켠에서 아련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부르뎅과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찬 바람과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온몸에 휘감기는 찬바람의 기분이 나쁘지 않아여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맘때였으니,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니 또 문득 생각이 난건지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 모든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세상의 특별한 사람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많이 벅차보였고 또 만약 가능하더라도 부담스러울것도 같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고마울 따름이지만 나는 내가 내 친구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를 한 때 바랬었다. 한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준 관심과 애정 계절이 듬뿍 담긴 편지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시절에 나는 마치 감옥안에 있을 때를 상상하고 그 햇살 좋은날 철문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것이 그 무렵의 일이다. 한동안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독방보다 더 싸늘한 사무실에서 나는 사람냄새를 그리워했었다. 어쩌면 기억되는 것과 잊혀지는 것의 사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간격이었나보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불밑 따뜻한 방구석의 기온을 단 한 번이라도 정말 단 한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그래서 내내 추워도 좋으니 한 순간만이라도 녹녹하게 몸을 녹여보고 싶었던 그 독방에서의 계절과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내 옆에서 쓸쓸히 시들어가던 국화화분처럼 나도 쓸쓸했었다. 우표값보다 저렴한 문자조차도 마치 징역에서처럼 하루에 한 번씩 배달이왔다. 나는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내 삶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초대하기에는 너무나 겁이 많았던것같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적잖이 두렵고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일이다.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거리를 찾는 일은 익숙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특별하지 않다고해서 소중하지 않은것은 아니니까. 다만 이 계절의 바람처럼 저 깊은 속 어딘가가 휑할 따름일뿐이었다. 이제는 특별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또 아니면 어떤가 싶다. 이 차가운 바람은 예전에 불어오던 것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좋다. 얼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목도리 밑의 따뜻한 온기가 내가 이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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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평화수감자의 날

아 귀찮아... 하기 싫어서 한 일은 이렇듯 티가 난다. 오랫만에 배경 그림 하나에 글자조합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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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촌스러운 공청회 제목이 이렇게 절실히 다가오다니. 감옥에서 한 통 편지가 왔다. 그동안 독방에 있기 위해서 성소수자라고 거짓말을 했었다고 고백했다. 아... 머리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것도 내 뒤에서 우리편이 던진 돌에 맞은 그런 기분. 감옥안에서 좀 더 편하기 위해서 거짓말 할 수 도 있다. 그래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 게다가 이 친구는 같이 있는 한 성소수자 친구가 독방쓰는거 보고 이런 거짓말을 지어냈다. 이 친구의 진심을 믿었던 사람들, 특히 독방에서 있었던 친구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아야하나. 1심 재판을 받은 병역거부자 한 명이 군대가기도 싫고 대체복무도 싫고 감옥가기도 싫다고 면제받고 싶다고 했다. 뭐 그거야 당연한 마음이다. 누가 감옥가고 싶겠나. 나도 대체복무 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안든다. 근데 이 친구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넘어서 군대를 거부하면 감옥에 가야하는 현실을 못받아들이고 있다. 면제받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그랬다. 근데 우리는 면제 받는 방법은 모른다고. 이 친구가 맨 처음 우리를 찾아왔을 때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일단 말렸다. 감옥이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다른 방법을 고려해보거나 대체복무제를 기다려보면 어떻겠냐고 당시 우리에게 왜 자신을 못믿냐고 화내던 친구가 자기는 감옥가는 병역거부운동에서는 하차해야할 것 같다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1심까지 받은 마당에 병역거부 의사 철회하고 군대가거나, 감옥가거나, 아예 도바리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이 친구는 셋 다 싫단다. 니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도 안통한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게 신중히 결정하라할 때 좀 더 신중하질... 자꾸 나쁜 마음이 든다. 병역거부자인지 아닌지,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의 마음이 커질까봐 두렵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어찌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이냐고... 확실히 병역거부가 더이상 평화주의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하지? 병역거부수감자 지원활동 확 하기 싫어진다.(사실 난 하지도 않았지만) 기도라도 해야하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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