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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가을이 늦어서 단풍이 예년보다 늦게 들었었는데, 어느새 그 풍성한 색깔들이 다 떨어져버렸다. 가을은 갈수록 짧아진다. 연둣빛 싱그런 봄도 좋지만, 풍성한 잎사귀들이 저마다 뽐내는 여름의 건강미도 좋지만, 가장 아름다운 색깔들로 부끄러운듯 몸을 가리고 있는 가을의 나무는 아마 나무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일것이다. 그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문득 인식도 못했던 순간들이 지나가 버리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쓸쓸한 풍경으로 남겨두었다. 차가운 방안에서 겨울 나무를 생각했었다. 지리산 골짜기를 뒤덮은 그 엉성한 육신들. 나뭇잎 모두 떠나가고, 새들도 떠나가고 부끄러워도 제 몸하나 가릴 것 없이 추위속에서 그보다 더 커다란 고독속에서 속으로 속으로 파고들던 그 작은 떨림들. 겨울나무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끝난뒤 가장 혹독한 시절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겨울나무를. 그래서 여름의 나이테는 쑥쑥 커나가지만 겨울의 나이테는 속으로 단단해지는 것을. 화려한 잎사귀 다 떠나보내고, 제 멋에 겨울만도 했을 법한 것들을 모두다 떠나보내고 몸뚱이 하나만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나무들. 그래서 또 내년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것임을. 나는 너무 많은 말들을 걸치고 있다. 나무는 나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겉으로 너무 많은 옷들을 거칠지 말라고. 가진것 다 떠나보내고 속으로 단단해지라고. 겨울엔 침묵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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