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63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2/20
    2. 호러와 과학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불운한 괴생명체들
    두더지-1
  2. 2007/02/20
    1. 핵 재앙의 불길한 미래와 거대 괴수들
    두더지-1
  3. 2007/02/20
    트랙을 돌고...
    두더지-1
  4. 2007/02/19
    설날, 날 좋다
    두더지-1
  5. 2007/02/15
    유치와 발렌타인(1)
    두더지-1
  6. 2007/02/13
    어머니 전화(1)
    두더지-1

2. 호러와 과학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불운한 괴생명체들

빛바랜 SF영화로 디지털미래 읽기 2

 

호러와 과학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불운한 괴생명체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본 격적으로 SF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호러 공포영화와 SF 공상과학 영화의 경계에 서 있는 장르와 그에 출현하는 괴물들을 어찌 다루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영어에는 괴물의 두 가지 구분법이 있다. 호러영화에 출현하는 인간을 닮은 괴물은 말 그대로 '괴물' (the monster)인 반면 SF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 괴수나 외계인같은 인간 외의 괴물은 보통 '그들' (them) 혹은 '괴생명체' (the creature)로 불린다. 영화를 보다보면 한 가지 장르에 담기 어렵고, 그래서 이게 괴물인지 생명체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호러 장르 같기도 하고 SF 장르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초창기 미 영화사에서 SF와 호러의 언저리에 서있는 특이한 괴생명체, 과연 무엇이 존재했을까?     


호러속 괴물

영화학 교수 수전 소벅Susan Sobchack은 호러와 SF 영화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호러의 괴물이 신과 자연의 질서를 깨는 혼란의 근원이라면, SF 영화의 괴물은 인간이 만든 기성 사회 질서의 혼란을 상징한다. 그럴 듯한 얘기다. 예를 들어 <프랑켄쉬타인 Frankenstein (1931)>에서 프 랑켄쉬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흉측한 괴물은 조물주가 주재하는 생명 탄생의 유일한 권한에 도전한다. 이 인간 계율을 깨는 시도는 한 작은 이름없는 유럽 마을로부터 시작된다. 프랑켄쉬타인 박사와 곱사등이 조수 프리츠는 죽은 시체들의 일부를 이곳저곳에서 훔쳐 그 시 체 조각을 꿰매고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될 기괴한 괴물에 전기를 흘려 생명을 불어넣는다. 예로부터 서구 유럽 의학에선 흐르는 전기를 생명의 에너지로 보았던 선례를 고려하면, 인간 닮은 괴물의 탄생은 그리 허황된 상황 설정만은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산한 장면들과 그 침침한 배경, 미친 과학자의 광기와 계속된 살인 현장 등 으스스한 배경 요인들은 <프랑켄쉬타인>을 SF 보단 호러의 고전으로 보게끔 한다.

   다른 특징을 보자. 프랑켄쉬타인 사건의 발단이 이름 모를 지구촌 변두리라 하였다. 괴물 탄생의 비극은 대단히 지엽적이고, 그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 바로 종료된다. 괴물은 게다가 인간을 빼닮았고, 인간이 될 수 없는 그의 비극적 현실을 보여준다. 허나 SF 영화속 괴물이 미치는 효과는 전 인류의 파국처럼 크나큰 재난의 경우가 많다. SF영화의 '그것' 혹은 '그들' 또한 호러의 괴물과는 좀 다르다. SF 영화의 괴물은 대체로 사람이 아니다. 파충류나 곤충, 혹은 인간 아닌 외계 생명체가 대부분이다. 괴물이 사람을 닮아 보이면 아무래도 영화에서 관객이 느끼는 현실 감각이 증가하나, 사람 아닌 괴물에는 관객이 감각이 무뎌진다. 핵 재앙처럼 도시를 재난으로 몰아넣고 비행접시를 몰고 레이저 빔으로 인간과 건물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도 관객은 이를 스펙터클로 볼 뿐 게서 그리 공포를 느끼질 않는다. 이것이 호러와 SF의 차이이다.


SF 영화속 '그들' 

개미, 파리, 거미, 벌, 사마귀, 바퀴벌레 등 곤충들은 언제나 거대 괴물들이나 외계인을 그리는데 있어서 그 상상력의 근원이다. <그들이닷! Them! (1954) >은 거대 곤충 괴물을 거의 최초로 다룬 SF작이다. 영화는 2차 대전이래 핵 실험지로 쓰였던 뉴멕시코 사막에서 시작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수년간 핵에 노출되어 돌연변이로 점점 몸이 거대해진 사막 개미들이 더 큰 먹이감을 찾아 급기야 주위의 인간을 습격하게 된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폐허와 인간들의 실종만 남는다. 사건의 수습은 사막 속의 개미집을 불태워버리는 일로 종결되는 듯 했다. 지하의 개미 동굴에서 아기집과 유충을 화염방사기로 태워죽였으나 (이 장면은 이후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에이리언 2 Alien 2: Aliens (1986)>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다), 상황은 이미 날개를 가진 여왕 개미와 수개미들이 이미 미 전역으로 날아가고 난 뒤다. 로스엔젤레스를 끝으로, 생존 파악이 된 거대 개미들이 군인들에 의해 전멸된다.

   < 그들이닷!>에서 나오는, 괴이한 윙윙 소리를 내며 더듬이와 집게 이빨을 휘두르며 다니는 흉측하고 기괴한 돌연변이 개미가 관객에게 그리 큰 공포감을 주진 못한다. 그저 관객에게 잘 꾸며진 흥미진진한 스펙타클을 보는 재미를 줄 뿐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이 야기한 질서의 혼돈이 어떻게 오고 확산되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는데 있다. 인간의 핵 실험으로 한 지역에서 서식하던 곤충이 돌연변이가 되고 이들이 날개짓해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그저 관객은 에이즈의 무서운 파급력만큼이나 인간 자신에 의해 초래된 괴물로부터 종말론적 메시지를 읽는다. 지난 호에서 본, 고 질라와 레도사우루스 등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고대 거대 괴수들이 인간의 핵 실험으로 깨어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얘기는 특히 5, 60년대 SF 영화들을 계속 지배해온 주제들이다. 그 점에서 <그들이닷!>의 거대 돌연변이 개미의 경우도 그 정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하나. 아써 크랩트리Arthur Crabtree 감독의 <얼굴 없는 악마 Fiend without a Face (1958)> 의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뇌덩어리도 같은 태생의 것이다. 이 괴물은 공군기지의 원자로 레이더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기괴한 생물체들이다. 곤충만큼이나 뇌를 이용한 괴물의 형상은 SF 영화의 기본 컨셉 중 하나다. 인간의 몸속을 지배하는 외계 행성의 날아다니는 뇌 괴물이나 뇌수가 밖으로 언덕처럼 툭 튀어 나있는 외계인의 두상은, 당시 SF 영화의 주 단골메뉴였다. <얼굴없는 악마>의 뇌덩어리들은 더군다나 인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얼굴없는 악마다. 그들은 인간 목 뒷덜미에 들러붙어 뇌수를 빨아먹고 휴지처럼 인간을 구겨 버린다. 잔인한 호러의 성격을 충분히 보여주나, 대체로 인간이 세운 과학의 폐해와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SF 영화의 고전적 스토리가 그 중심이다. 공군기지 원자로 실험지 주변 마을 사람들이 지녔던 불만과 공포, 예컨대 목장의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크지 않거나 알이나 우유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가 핵 원자로 때문이라는 상황 설정은 대단히 친환경적이다. 어쨌거나 그 뇌덩어리들의 최후는 원자로 가동을 멈추면서 일단락된다. 영화에선 결국 과학의 오류로 만들어진 핵 원자로를 악마로 탓한다.  `

   

호러와 과학의 잡종, 아가미인간의 비극

앞 서 몇몇 영화들을 가지고 호러와 SF 장르를 달리 나눠보았으나, 이를 항시 구분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5, 60년대 미국 영화를 호러와 SF의 혼종의 역사로 보기도 하고, 다른 이는 호러의 아류로 SF 영화를 보는 이도 있다. 그만큼 당시 호러와 과학의 경계가 희미했다. 무엇보다 그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작품으로 필자는 '아가미 인간the Gill Man' 3부작 (<검은 산호초의 아가미인간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 (1954)>, <아가미인간의 복수 Revenge of the Creature (1955)>, 그리고 <인간 속의 아가미인간 The Creature walks among us (1956)>)을 꼽고 싶다. 3부작에선 아가미 인간이 물밑에서 벌이는 대인간 테러(호러의 요건), 그리고 과학자 집단이 벌이는 비윤리적 면모(SF의 요건)를 함께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수억 만년전 사라진 인간과 물고기의 혼종인 아가미인간이 아마존에 다시 나타나 인간들을 습격한다. 그러나, 다 이유가 있는 습격이다. 1탄에선 아가미인간이 자신의 생존 영역을 지키기 위해, 2탄에선 수족관 관상용으로 플로리다로 잡혀온 데 대한 복수극으로, 마지막 3탄에선 아가미와 비늘을 잃고 불완전한 육지 괴물이 된 그를 실험하는데 대한 분노로써 이뤄진다. 그래서, 아가미인간의 폭력은 꽤 정당해 보이고, <프랑켄쉬타인>에서 보였던 관객의 괴물에 대한 '측은지심'이 예서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스릴은 아가미인간이 여주인공들에 대해 보이는 에로틱한 반응이다. 여주인공들의 수중 다이빙에 맞춰  그 아래서 함께 따라 물속을 헤엄치거나 (이 장면이 후에 <죠스 Jaws (1975)>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한다), 혹은 욕실 안에 들어간 여성을 베란다문을 통해 들여다보고 서있는 아가미인간의 모습에서, SF보다 호러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반면 물고기 수면제, 다이나마이트, 작살을 이용해 공격하거나 아마존에 서식하는 아가미인간의 생존 영역을 침범해 선창 밑에 가두고 (1탄), 아마존에서 플로리다까지 끌고와 인간들의 볼거리로 수족관에 넣어두고 (2탄), 실험용으로 그를 감금하는 (3탄), 탐사대원들과 과학자들에게서 SF의 기본 특징들인 반윤리/ 반환경의 인간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천연의 아마존 자연에 서식하던 아가미인간 (환경)과 이를 해하려는 인공적 질서간의 적대에서 승리는 후자에게 돌아간다. 그 불운의 괴물은, 1편에선 인간의 총과 작살에 맞아 아마존 물속으로 사라진다. 다시 2편에서 부활한 그는 비슷하게 군인들의 총에 맞아 깊은 심연 속으로 재차 사라진다. 마지막 3편에서는 아가미와 비늘을 잃어 심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서 죽음에 이른다. 이렇듯 아가미인간 3부작은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 이야기같다는 기분이다. 인간의 과학과 현실에 위협받고 배반당한 아가미인간의 불행한 모습에서 그에 대한 반감보단 관객은 동정을 느낀다. 이 비극적 괴물에게서 겁없는 인간들에게 다칠대로 다쳐 소생불가능한 자연을 본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그래서일까, 삼세번이나 벌어지는 물고기인간의 죽임이 더 잔인해 보인다. (따뜻한 디지털세상 2007. 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 핵 재앙의 불길한 미래와 거대 괴수들

빛바랜 SF영화로 디지털미래 읽기 1

 

핵 재앙의 불길한 미래와 거대 괴수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영 화 󰡔괴물 (2006)󰡕에서 봉준호 감독은 흉측한 물고기 ‘괴물’의 탄생 배경을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강으로 방류되어 흘러들어온 독극물의 일종, ‘포름알데히드’로 놓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괴물 탄생의 일차 책임 소재지를 미국으로 놓고 보면, 화염병을 피해 도망치고 쇠파이프에 찍혀죽던 괴물 장면은 예사롭지 않은 정치적 상징성을 가미한다.

    언제나 그렇듯 SF영화도 시대의 상상물이다. 인간이 처한 한 시대에 대한 위험을 알리고 경종을 울리는 방식에 괴물만한 것이 있을까? 인간이 만든 ‘나쁜’ 과학이 인간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인류의 절멸까지도 심각하게 흔들 때, 상상의 괴물과 괴수의 출현만큼 효과적인 경고 장치는 없을 것이다. 물고기 아귀에다, 메뚜기를 닮은 입모양에, 기형 지느러미와 손처럼 자유자재의 긴 꼬리에 두 발로 움직이는 괴물이 사람까지 덥석 잡아먹는다고 상상해보라. 어류도 아닌, 양서류도 아닌, 정말 기분 더럽게 생긴 괴물이 한 시간 반 정도 스크린을 뒤덮으면, 괴물 탄생을 짓누르는 현실 ‘구조’에 대한 관객의 학습 효과가 상당히 증폭한다. 또 다른 예. 한 제약회사 의약품 폐기물에 기형화되고 너무 커버린 파충류 악어에 힘없이 잡혀먹는 인간들을 그린 󰡔엘리게이터 Alligator (1980)󰡕를 보자. 이 영화는 탐욕에 멍든 과학의 그늘진 모습이 어찌하여 음습한 하수구에 서식하며 인간을 습격하는 괴물 악어를 탄생시켰는지를 관객에게 낱낱이 고한다. 이렇듯 사람 삼키는 기형 물고기와 비정상의 파충류가 인간의 비윤리적 환경 파괴와 오염의 징벌로 등장했다면, 무엇보다 2차 대전 후 핵과 냉전의 위협이 한창이던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취향의 괴물과 괴수들의 출현이 줄을 잇는다. 


냉전과 핵의 시대, 괴수의 시대  

  

1945 년 7월 미국 뉴멕시코에서의 첫 원폭 실험의 성공, 곧이어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로 인류는 핵으로 망할 수 있는 지구를 내다봤다. 또 다시 1952년에 이뤄진 미국의 수소폭탄 핵실험은 남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했던 ‘비키니’라 불리는 작은 섬을 단칼에 날려버렸다. 원주민들을 섬으로부터 강제 이주시키면서 미군은 그들에게 핵에 의한 인류 행복 보장과 구원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결국 비키니섬이 악마같은 핵폭탄의 버섯구름에 사라지자 인간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전율했고 두려움의 눈길을 보냈다. 이후에도 미국, 구소련, 그리고 여타 핵보유국들에 의해 진행된 핵실험 경쟁이 70년대 초반까지 수천 회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전세계 시민들은 인류 절멸의 공포에 집단 노이로제 현상까지 동반하게 된다.

   당시 영화계는 이러한 핵에 대한 집단 노이로제를 SF 괴수영화들로 대중화하며 반응했다. 그 한가운데서 만들어진 최초 괴수 영화 중 하나가 󰡔심해에서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 (1953)󰡕이다. 󰡔심해에서 온 괴물󰡕은 캐나다 북부의 북극해에서 미국의 과학자와 군인들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다 그 영향으로 중생대 해저 괴수, ‘레도사우루스’ Rhedosaurus를 깨워 그 재앙을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안긴다는 이야기다. 특수 효과의 대가 레이 해리하우젠Ray Harryhausen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이 괴물은, 머리 생김새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닮았으나 도마뱀처럼 앞발이 발달해 고대 공룡을 연상케 한다. 이 상상의 괴수는 뉴욕까지 내려와 맨하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인간에 의해 비참하게 제거된다. 당시 어느 곳보다 핵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팽배하던 피폭국 일본에선, 이 영화를 본 따 미국판 󰡔고질라: 괴수들의 왕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1956)󰡕을 만들었다. 일본판 󰡔고지라 Gojira (1954)󰡕의 성공에 힘입어 만든 미국 버전인데, ‘고지라’란 괴수의 제목은 그 거대한 크기와 위력을 지칭하여 고릴라와 구지라(고래)의 합성어로 지었다 한다. 일본의 전설의 괴수 ‘고지라’는, 태평양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가 미국의 비키니 수소폭탄 실험 때 흘러나온 방사능을 쏘여 다시 살아나 도쿄를 엉망으로 만든다. 최근까지 제작된 󰡔고질라󰡕의 속편들에선 점차 이 괴수가 다른 외부의 괴물들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정의의 수호신으로 엉뚱하게 변했지만, 당시 고질라의 첫 등장은 2차 대전 이후 핵기술의 또 다른 재앙의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한마디로 레도사우루스나 고질라와 같은 거대 괴수들의 출현에는 근본적으로 당시 인간의 핵실험과 인류 절멸에 대한 두려운 미래가 가로놓여 있었다. 

 

거대 괴수들의 최후

소 위 ‘괴수 재난영화’들에서, 인간 핵실험의 촉매제로 잠에서 깨어난 괴수들은 핵폭탄의 위력과 같은 그 거대한 힘으로 거대 도시를 무엇엔가 이끌리듯 찾아가 인간 문명을 거의 말살 직전까지 몰고간다. 아니면 인간들이 돈벌이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 이 고생대 공룡들과 괴수들을 문명의 도시로 끌어들이려다 도리어 그것이 인간의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수효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윌리스 오브라이언Willis O'Brien이 만들어내고 아서 코난 도일경Sir Arthur Conan Doyle의 소설을 각색한 무성영화 󰡔잃어버린 세계 The Lost World (1925)󰡕에 등장하는 공룡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 그리고 󰡔킹콩 King Kong (1933)󰡕의 킹콩, 두 괴수 다 인간의 욕심에 이끌려 문명 세계로 잡혀갔다 되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다른 예로, 영국에선 제작된 󰡔고르고 Gorgo (1961)󰡕도 이와 아주 흡사한 내용을 갖는다. 아일랜드 외딴 해변의 ‘나라’섬에서 화산 폭발로 고생대 생물인 공룡 ‘고르고’가 깨어나고, 인간들에 의해 문명의 도시 런던의 서커스 관상용으로 잡혀오는 애처로운 처지에 놓인다. 인간들에 잡혀간 새끼를 찾고자 런던 시내에 출몰한 어미 괴수 고르고의 분노가 런던 다리와 빅벤Big Ben을 한번에 무너뜨릴 정도로 극에 달한다. 또 하나. 󰡔지구까지 2천만 마일 20 Million Miles to Earth (1957)󰡕에서 해리하우젠에 의해 창조되었던 금성에서 날아온 괴수 ‘이미르’Ymir도 자신을 가둔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박살내고 로마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핵폭발의 위력마냥 이 거대 괴수들은 인간을 씹어 삼키고 짓밟아 뭉개고 건물들을 무너뜨린다. 영화 속에서 괴수로부터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은 핵폭탄 대피용으로 만들어 놓은 지하철 역사다. 건물이 무너지고 괴수의 발에 밟히지만, 그나마 런던과 뉴욕의 시민들은 땅 밑에서 목숨들을 건사한다. 냉전 시대 핵공격 대비 덕이다. 괴수들은 총, 로켓, 탱크, 비행기 등 군인들의 재래식 무기들에 맞아도 꿈적도 않는데다, 고질라의 경우엔 120미터의 덩치에 입에서 불까지 뿜어대며 도시와 군인들을 공격하니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마치 큰 전쟁 후의 후폭풍마냥 도심은 불바다에다 난장이다. 영화의 결말을 맺기 위한 이 감당못할 괴수들의 최후도 가지각색이다. 의외로 재래식 무기에 쉽게 쓰러지는 괴수들도 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장렬히 추락사하는 킹콩과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미국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괴수 이미르의 최후는 가장 불행하게 끝난 괴수들의 경우다. 손바닥만한 알에서 깨어나 한번에 쑥쑥 자라서 어지간한 빌딩보다 커지는 속성 성장의 금성 괴물이었던 이미르는,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1985)󰡕의 괴수 성장기와 많이 닮아 있다. 무엇보다 농민혁명의 주역이던 불가사리가, 도저히 그 먹는 철의 양을 감당못해 오히려 인민의 짐이 돼 최후를 맞는 슬픈 운명은 금성 괴수 이미르의 죽음과 느낌상 유사하다. 

    대개 SF영화 괴수들의 운명 도식은 보통 이러하다: 고질라는 일본의 애꾸눈 과학자의 고안물인, 괴수 혈액 속의 산소를 전기 분해해 녹여 죽이는 산소 파괴제,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라는 화학병기에 의해 사라진다. 괴수 탄생의 원인만큼이나 인류의 문명이 일반인들과는 동떨어진 첨단 과학자들에 의해 결정난다. 미국의 심해에서 온 괴수, 레도사우루스는 휴양지 코니아일랜드를 엉망으로 만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응용 핵물리학에 의해 만들어진 병기의 생체 투입으로 결국 쓰러진다. 핵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괴수들은 인간들의 또 다른 고도 과학, 핵물리학에 의해 처단되는 불운을 감내해야 했다. 한편 괴수로부터 상처받고 다친 인간들은 또 한번 군과 소수 핵물리 과학자들에 의해 구제된다.

            

'고르고’의 교훈

이 미르, 킹콩, 고질라, 레도사우루스, 불가사리 등의 괴수들이 출현하는 SF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 최후의 상황 정리와 달리, 고르고 어미와 새끼 괴수는 살아서 런던을 떠나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고르고󰡕엔 괴수들을 죽이기 위해 군인들이 동원돼 폭탄과 총탄을 쏟아붓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이 눈 벌겋고 귀 큰 흉한 괴수는 자신의 새끼를 인간에게 빼앗긴 데 대한 분노만 있을 뿐, 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다. 파괴는 상심으로 벌어졌고, 어미 고르고는 자식을 찾자마자 원래 자리를 찾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물속으로 사라진다. 이 어미 괴수로 인해 마치 핵 재앙처럼 런던이 쑥대밭이 되었으나, 어미의 모정을 강제로 끊으려 하고 새끼 괴수를 돈벌이로 쓰려했던 인간의 욕심을 감안하면 그것은 인간이 자처한 인재였다. 반면 몇몇 군인들과 과학자들이 모여 핵실험을 행하여 잠자던 괴수들을 불러오고, 다시 이들이 고안한 살상 무기로 괴수들을 또 무참히 살해하는 ‘고질라’류의 괴수 SF영화들에선 시원한 끝맺음이나 마감이 어디에도 없다. 이들 영화에선 소수의 과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핵 기술에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이르고 또 다른 위기상황의 관리 또한 엘리트들에 맡겨지는 상황만을 보여주기에, 어딘지 모르게 영화 밖의 세계 또한 불안하다. 그래서 󰡔고르고󰡕의 마지막이 좋다. 원래 거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는 괴수 모자의 행복한 뒷모습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과학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근대 과학의 거대 괴수를 어찌 다뤄야하는 지 그리고 어찌 접근해야 하는지 감을 잡는데 특별한 힌트를 준다.  (따뜻한 디지털세상 2007. 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트랙을 돌고...

경래랑 학교 기숙사 근처 트랙을 점심식사 후 걸었다. 매주 한번 정도 걷는 길이다. 낮에 학생들이 가끔씩 운동하러 나오기도 한다. 올라가려는데, 지를 반갑게 만났다. 미주리에 잡 인터뷰있다고 좋아라한다. 잘되면 한턱 쏘라고 얘기했다. 삭신이 아프다. 스트래칭을 하면서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외계인 원고와 씨름하느라 딴세상에 하루 다녀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설날, 날 좋다

설 기분이 이곳에서야 날리 만무하겠으나, 어ㅤㅉㅒㅆ든 기분내려고 어제 만두를 빚었다. 하나 해서 쪄먹고, 오늘 아침에는 떡만두 국을 끓여 먹었다. 

날이 오랜만에 화창해 , 학교를 나서려하다 말고 경래야 동네를 걸었다.  이것저것 우리의 희미한 장래와 희망섞인 얘기들을 나누면 동네 한바뀌를 돌았다.  정말 화창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치와 발렌타인

승준이가 학교에서 마지막 남은 유치를 빼갔고 왔나보다. 엊그제도 이를 스스로 ㅤㅃㅒㅤ더니, 오늘도 아침에 학교에서 샌드위치먹다 이가 빠진 모양이다. 이가 썩고 앞니 옆에 양쪽에 자리잡던 작은 이들이라 어찌 ㅤㅃㅒㅤ줄까 고민을 많이했는데 다행이다. 대견스럽기도 하다. 혼자서 어찌 이를 ㅤㅃㅒㅆ는지... 얕트막이 박힌 것이 오래돼 그저 빠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에 쵸코렛 1 통이 놓여져있고, 메모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아내가 남긴 글이다. 발렌타인이라고 후배집에서 만든 쵸코렛을 사서 모셔두다 포장하여 아침에 놓은 모양이다. 고맙고도 사랑스럽다. 작년 요맘쯤에 독일들러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집안 식구들을 위해 그곳에서 쵸콜렛 선물을 샀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내가 받기만 하는구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머니 전화

도서관 공부방에서 국제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로부터 왔다.
논문 쓰는 아들에게 독려겸 전화를 하신 눈치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논문 마칠까 목이 빠지시는 것 같다. 
참 부모에게 못할 짓이다.

놀고먹던 세월이 포화 지점에 이르렀다.
하고 있어도 모든게 불안하고, 답답하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수 밖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