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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공공성포럼 제4차 쟁점토론

한국언론정보학회는 미디어공공성포럼의 제4차 쟁점토론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오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다 음 ▶
1) 제목: 미디어공공성포럼 제4차 쟁점토론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2) 일시: 2008년 12월 19일(금) 14:00 ~ 17:00
3) 장소: 한국언론재단 12층 중강의실
4) 취지: 최근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심각한 우려와 함께 많은 사회적 비판 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저희 미디어공공성포럼에서도 이에 대한 입장을 밝 힌 바 있습니다. 저희 포럼은 이번 사안이 우리 사회의 미디어 지형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와 관련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다음과 같이 ‘제4차 쟁점 토론’을 개최하고자 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 탁드립니다.
미디어공공성포럼
5) 순서
* 사회: 강상현 (연세대 교수/ 미디어공공성포럼 운영위원장)
* 14:10 ~ 14:50  신문 관계법의 문제점과 대안
발제: 이용성 (한서대 교수) 토론: 문종대 (동의대 교수)
* 14:50 ~ 15:30  방송 관계법의 문제점과 대안
발제: 김경환 (상지대 교수) 토론: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 15:30 ~ 15:50  중간 휴식
* 15:50 ~ 16:30  인터넷 관계법의 문제점과 대안
발제: 황용석 (건국대 교수) 토론: 임종수 (세종대 교수)
* 16:30 ~ 17:00  종합토론
참석자 전원
 
 
 
한 국 언 론 정 보 학 회 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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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메스 미디어) 살짝 ‘애드리브’한 서평 기사 저작권은 누구 것?

시사IN: 메스 미디어 -- [65호] 2008년 12월 09일 (화)

살짝 ‘애드리브’한 서평 기사 저작권은 누구 것?


이광석

책 홍보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이 저작권 침해라면 방송 프로그램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내건 수많은 맛집도 초상권이나 상표권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출판사 사장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쓸까 한다. 창피해 어디 가서 입도 뻥끗 말라 하셨던 그분에게 혹여 누가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요놈의 입이 가벼워 참을 수 없으니 꺼내어 풀 것은 풀어야겠다.

국 내 출판사 대부분이 언론사나 잡지사 등에 신간을 위한 자체 제작 홍보용 기사를 뿌린다는 것쯤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낸 맞춤형 글에 자신의 글 몇 줄을 가감해, 힘들여 읽지 않고도 희한하게 서평을 써댄다(물론 한겨레신문의 최재봉 같은 걸출한 서평 전문기자도 있음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리곤 법적으로 그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언론사가 갖는다.

내 가 아는 영세한 출판사의 사장은, 기획도 하고 책도 만들고 번역도 하고 거의 모든 일을 홀로 하는 외곬의 책쟁이다. 그이는 여느 때처럼 기자들에게 신간 소개 기사를 보냈고, 기자들은 받아서 서평을 썼다. 의당 책 선전도 할 겸, 그이는 자랑스럽게 활자화된 서평 기사를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사를 대리하여 한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소송이 들어왔다.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동의 없이 감히 글을 무단으로 올린 죄란다. 불쌍한 사장은 법적으로 붙어봐야 이길 수 없는 싸움, 그저 벌금을 물고 물러섰다 한다. 

시장 논리를 굳이 따지자면, 글의 권리가 언론사에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원저자 혹은 원창작자로 따지면 정작 출판사 사장이 그 당사자다. 언론사는 원래 글에 ‘애드리브’하고 저작권을 쉽게 가져간 꼴이다. 대부분을 직접 쓰고도, 그리고 남도 아닌 본인의 출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을 저작권 위반으로 옭아매는 행위는 촌극 수준이다. 저작권이 얼마나 비상식에 근거하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선진국 수준의 저작권법 적용은 무리


분 위기가 이 정도에 이르면 수많은 맛집 주인도 초상권이나 상표권 침해로 다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다. “어디 어디 텔레비전, 무슨 프로그램이 방영!” 하면서 대문짝만하게 앵커나 연예인이 나오는 방송국 프로그램의 일부 사진을 ‘영리 목적’으로 ‘무단 전제’했으니 불법 단속의 대상이 될 만하다. 최근 누리꾼의 개인 블로그 게시물이나 UCC에 대한 단속 수위에 견줘보자면, 조만간 맛집에 내걸린 사진의 전체 수거령도 상상해봄직하다. 

애초 저작권이라 함은, 저자가 수행했던 창작에 대한 최소 법적 보상체제임과 동시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의 공공재로 자유롭게 하자는 합의의 소산이다. 한 축에 저작권자의 권리 규정과 함께, 다른 한 축에는 (저작권자의) 공익적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작권은 점점 사적 재산권 행사의 장으로 변질된다. 더구나 저작권 소멸 전에도 저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용자들의 ‘공정한 이용’ 혹은 ‘저작권 제한 조항’조차 제 기능을 잃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서 출판사 사장의 경험은 사실상 ‘공정 이용’에 의해 충분히 보호될 권리였다.

디지털 케이블, 위성, DMB, 그리고 이제 IPTV까지, 대한민국은 뉴미디어 천국이다. 허나 많은 이들은 넘쳐나는 매체에 비해 정보와 콘텐츠의 빈곤을 개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채우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팍팍한 저작권법을 적용하려 하는 것은 가당찮다.

우리의 누리꾼 문화를 보라. 제약으로부터 멀수록 창작 과잉과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된다. 미래 문화산업의 관건은 이용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융통성과 상식에 근거한 저작권 행사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숭배해 마지않는 시장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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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12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의 대안적 라이선스 모델이 뜬다

2008년 12월호

이광석 



연 초에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누누이 강조했던 것은, 한 사회의 기술은 문화와의 접점 속에서 발전하며 이를 배제하곤 어떤 기술도 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은 종종 무시된다. 개인 파일교환(P2P)의 초기 형태였던, 냅스터나 소리바다 시절에만 해도 이용자들은 불법의 악성 유저들에다 음반 매출 하락의 원인제공자로 도매금됐다. 당시 업계의 어느 누구도 새로운 유저 문화에 반응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저가의 제한없는 MP3 다운로드 서비스를 벌이고 있지만, 당시에 음반업계는 유저들을 범죄자로 모는 데 급급했다. 유저들의 변화하는 정서를 읽는데 그 반응이 늦은 사례다. 이는 구태의연한 저작권의 잣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디지털 정보 이용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앞선 통찰이 필요함을 말한다.

디지털이 물질 재화의 논리와 다르다는 점은 이젠 상식이다. 무한히 복제할 수 있고 한 번 퍼지면 제어 불가능하고 타인의 이용이 자신의 이용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은 정보재의 특성 중 기본 사항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과거 물질재의 논리로 정보재에 재산권을 행사하려 함은 이치에 닿지 않는 해괴한 일이다. 저작권에는 보호기간이 있고 보호 범위가 있고 그것의 제한 항목이 존재한다. 물질재처럼 영구적인 사적 점유와 다르게, 한시적 법의 규약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한다. 물론 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들은 공적 영역에 들어가 제2, 제3의 창작자에게 자유롭게 유통될 운명에 처한다. 인류의 지적 자원으로부터 창작자의 저작물이 혜택과 영감을 얻듯, 받은 영감을 다시 인류에 되돌려 주는 것이 저작권의 직무다.

현실은 다르다. 저작권이라는 저자의 최소 보상권리는 인류에 공헌할 지식의 저장고로써 기능함을 원칙으로 놓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사적 재산권 행사의 장이 되고 있다. 저작권을 제한한다고 마련한 ‘공정한 이용’ 혹은 ‘저작권의 제한’도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처럼 현실 제도와 법이 변화된 디지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선 대안적 라이선스 모델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CCL)를 내놓았다. 국내에도 법학자들의 소개로 이 CCL이 보급되고 있고, 국내 자체로 개발된 ‘정보공유 라이선스 2.0’도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CCL이나 국내의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정보와 미디어 콘텐츠의 무리한 사유화와 불공정의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또 다른 공정 시장 기제라 보면 된다. 이는 제3의 창작자에게 저작물의 변경과 사적 이용의 자유를 크게 신장시킨다. 요새와 같은 다양성과 창작 과잉의 시대에 걸맞는, 저작물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모델인 셈이다.

무엇보다 인터넷 유저에 의해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UCC,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서 생산되는 유저들의 글과 이미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대한 마땅한 권리보호 기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저들의 UCC 등에 포털업체가 그 저작 권리를 내세우는 형국이 되선 곤란하다. 사실상 CCL 등을 통해 유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이용의 공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미래의 문화 풍요와 직결된다. 기술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패턴 변화를 읽고 그 흐름을 따르는 자가 바로 시장의 고수가 됨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현행 저작권도 그 길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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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11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디지털 리더 기술

2008년 11월호


이광석


한때 종이책과 신문이 역사와 함께 사라질 것이란 예언이 있었다. 한창 디지털기술이 사회 곳곳에 영향을 주면서 그에 열광하던 시절에 나돌던 얘기다. 허나 여전히 종이로 만들어진 책은 잘 팔리고, 종이신문은 아직 그럭저럭 판매부수를 유지한다.   

미래 첨단 기술을 엿볼 수 있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우린 미래 신문의 모습을 맛볼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직장인이 읽고 있던 전자 리더형 신문은 아직도 눈앞에 삼삼하다. 직장인이 보던 전자신문이 그날 톱뉴스를 업데이트하면서, 쫓기던 톰 크루즈의 얼굴과 관련 기사가 그 신문의 화면 위로 포개지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는 미국 대선 후보들의 책들이 인쇄본 없이 전자책으로만 출판되는 경향도 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전자책을 구입해 보고 필요한 부분은 각자 알아서 인쇄해보라는 얘기다. 인쇄된 책의 옵션으로만 머물렀던 전자책이, 이젠 인쇄본 없이도 존재한다. 독자가 누리는 손끝에 감기는 종이의 질감을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대체하지 못하지만, 점점 더 인쇄본보단 전자 문서의 상태로 글을 읽는 빈도 또한 느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책을 읽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자책 리더기의 몫이다. 종이책을 대체하는 읽기전용 리더기가 주춤하다, 최근 여러 기업들에서 앞다퉈 신모델들을 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렉스 기술 (iRex Technologies)의 디지털 리더기와 플라스틱 로직(The Plastic Logic)의 e-리더기 등이 현재 전자 신문 리더기 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복사용지 크기에 휨이 강한, 아주 얇은 크기의 이 리더기들은 보통 1기가 바이트의 메모리 카드에 2만여 장의 신문 내용을 축적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형식의 미디어 확장자 모드(html, pdf, 혹은 파워포인트 형식)를 지원한다.

현재 전자 리더기 기술의 향배는 디스플레이 기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잉크사(E Ink)가 현재 그 부분에서 앞서나가고 있으며, 소니사의 ‘이리더’(eReader), 아마존닷컴의 ‘킨들’(Kindle)과 같은 전자북 리더기에 이 기술이 쓰이고 있다. 전자잉크의 기술은 흑백의 정확한 문체를 기본으로 하는 전자 식자 디자인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전자신문과 전자북을 위한 리더기들은 가격이 싸지 않다. 게다가 대체재적 성격을 지닌 일반 미니 노트북과 각종 휴대용 통신기기의 출시로, 리더기들의 기술적 특성이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신문 리더기가 살려면 지금보다 가볍고 유연하게 구겨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을 수 있는 모델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물론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것같은 실시간 뉴스 업데이트가 가능한 무선 지원도 필수 사항이다.

전 자북 리더기도 사실상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 특히 아동용 서적의 전자화는 다른 서적보다 빠르게 진척돼야 할 부분이다. 터치스크린으로 상호작용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 설명을 눌러 찾고, 컬러판의 시원한 삽화 이미지들이 움직이고, 쉽고 부담없이 보고 구입할 수 있는 아동용 전자북과 그에 발맞춘 리더기가 개발될 필요가 있다. 전자북 리더기가 살 길은 종이책이 갖고 있는 질감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진 기술적 장점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아직까지 리더기가 GPS 내비게이션과 같은 액세서리만큼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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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10

2008년 10월호

이광석 


얼 마 전 구글이 자신의 웹 브라우저인 크롬(Chrome) 시험판을 공식 배포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브라우저 시장 독점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브라우저의 기능이 기본적으로 정보 검색을 통해 원하는 곳에 당도하는 길잡이라 본다면, 인터넷에서 우리의 갈 길을 결정하는 검색 구글의 브라우저 시장 진출은 이미 내정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또 다른 웹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가 일부 인터넷 유저의 인기를 꾸준히 얻으며 MS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다.
전통적 산업 부문과 달리 새로운 기술 영역은 아직도 시장 경쟁의 기회가 존재한다. 현재 전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MS가 아직 7할이 조금 넘는 선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그러나 파이어폭스가 서서히 MS의 시장 지배력을 갉아먹고, 맥 유저는 꾸준히 매킨토시 전용의 프로그램 사파리를 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구글의 크롬이 웹브라우저 시장 경쟁에 합세한 것이다.

90년대 초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그래픽 인터페이스 사용자(GUI) 환경은 인터넷을 대중화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웹을 검색하는 데 모자이크라는 브라우저가 처음 상용화되고, 그 후속판으로 넷스케이프사의 네비게이터가 만들어지면서 인터넷 ‘서핑’의 개념이 생기고 그 이용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초창기만 해도 웹브라우저 시장은 넷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가 지배적이었다. 허나 MS가 윈도 시스템의 독점을 이용해 자사의 익스플로러를 자동 설치하게 만듦으로써, 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를 영영 퇴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MS에 멍들고 쓰러진 넷스케이프는 가만히 자멸하진 않았다. 자신의 소스 코드를 일반 유저에게 공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소스 코드들은 유저들 스스로 버그를 찾고 지속적으로 개발돼 파이어폭스를 낳았다. 넷스케이프의 화려한 재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의 진화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는 다른 이방의 것으로 비춰진다. 유저의 99%가 MS 브라우저, 익스플로러에 매달려 있는 대한민국은 전 세계 웹브라우저 기술의 진화와 무관하다는 얘기다. 관공서, 정부기관, 은행 등 어지간한 웹페이지는 소위 익스플로러에 ‘최적화’돼 있다. 사실상 ‘최적화’는 다양한 브라우저들이 막힘없이 가능할 때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 우리의 ‘최적화’는 하나의 다국적기업에 길들여진 불구화된 모습이다. 유저들이 다른 브라우저를 써본들 불편하고 제대로 화면을 보여주지 못해 답답하니 익스플로러로 다시 되돌리기 일쑤다.

외국에 몇 년 이상 체류한 덕으로 필자는 파이어폭스를 한동안 잘 애용했다. 미국 내 대학들의 도서관, 공공기관, 기업 사이트 모두는 앞서 언급한 모든 브라우저에서 웹페이지를 여는 데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요즘 유저는 파이어폭스를 더 선호하는 추세다. 정체불명의 MS 최적화는 외국인들이 국내 사이트를 찾을 때에도 그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필자가 국내 귀국 이후로 파이어폭스 쓰기를 포기했겠는가. 브라우저의 선택은 유저의 몫이어야 하고, 이는 앞으로 출시될 크롬과 같은 새로운 세대의 브라우저를 껴안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개선될 사항이다. 향후 어쩔 수 없이 국내의 ‘최적화’를 다시 모든 브라우저에 맞게 범용화해야 하는 때가 닥치면, 그 손실과 비용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내 정부기관들에서부터 그 ‘최적화’논리를 접고, 브라우저의 ‘범용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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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9 휴대폰 인터페이스의 진화, 키패드에서 터치스크린으로

2008년 9월호 이광석 



휴 대하며 통화하는 통신의 기능을 벗어나 휴대폰은 다양한 기술을 흡수하고 통합하는 추세다. 지난호에 휴대폰 진화의 대강을 살펴보았던 것처럼, 기술 진화의 끝을 가늠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휴대폰에 있어 컨버전스(기술 융합)라 하면, 카메라 기능, 음성 녹음, 오디오 재생, 비디오 녹화, 게임기, 텔레비전 시청, 개인 휴대용 단말기(PDA) 등 한때 따로 존재하던 기술과 기능이 기존의 통화 기능에 합해지고 첨가되는 상황을 지칭한다. 휴대폰 하나에, 흩어지고 분산됐던 기능들이 합쳐지고 작아지면서 그 기술이 향상되는 속도와 방향은 실제 짐작조차 힘들다.

휴대폰 기술 가운데 유저와 기기 간의 친화력을 돕는 인터페이스의 진화에도 끝이 없다. 유선전화의 시대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돌리는 다이얼은 한 번 실수에 다시 이를 돌리는 수고를 감내하면서 살아야 했다. 동네 공중전화와 가정용 전화가 서서히 다이얼에서 키패드로 대체되면서, 이는 현재까지 가장 흔히 쓰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선 휴대폰은 유선전화의 키패드 방식을 그대로 자신의 유산으로 받아들였다. 블랙베리 휴대폰은 누르는 확장 키패드와 이메일 기능으로 그 전성기를 누렸던 사례다.

휴대폰의 키패드는 엄지 손가락의 질감을 통해 원하는 키를 잡아내는 정확성을 부여해, 단숨에 문자를 찍어 보내는 데 수월하다. 하지만 키패드는 최근 각광받는 터치스크린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키패드 확장의 가능성을 따라잡진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출시된 아이폰 2.0과 국내에서 생산된 휴대폰의 터치스크린에는 다양한 국제어 확장 기능을 유저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순간 기능 이동이 원활한 장점이 있다. 누르는 키패드에서 손끝으로 펼치는 터치스크린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를 맞는 휴대폰 인터페이스 진화로 봐야 한다. 키패드는 명령 구조가 연결돼 있어서 원하는 곳을 찾아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터치스크린은 넘나듦이 자유롭다. 예컨대, 터치스크린은 화면이동과 스크롤링을 화살표 키로 움직이기보단 단순히 손끝을 위아래로 끌어올리고 내리는 것만으로 쉽게 가능하다. 화면의 줌인과 줌아웃이 엄지와 검지를 원하는 곳에 대고 오므리고 벌리는 것만으로 자유자재로 이뤄진다. 자동차에 탑재된 위치정보시스템(GPS)이나 더블클릭 명령을 이용한 구글 지도에도 이와 같은 기능을 도입한 지 오래다. 휴대폰 스크린의 한 곳에 화면을 잡아끌고 당기고 밀어내고 하면서, 멀티 화면 검색도 가능하다. 이도 키패드 화면에서 불가능한 것들이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서 바로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터치스크린만의 장점이다. 물론 키패드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자판 에러 발생률이 30~40%에 이르는 것을 보면 터치스크린도 한계가 있긴 하다.

최근 일본에선 동공의 움직임에 따라 스크린의 화면이 반응하는 휴대폰 인터페이스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손가락이나 펜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단계에서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진화의 단계까지 온 것이다. 무엇보다 키패드에서 터치스크린의 진화는 인터넷의 하이퍼링크만큼 유저에게 작은 기기를 통해 정보를 검색하는 자유로운 넘나듦을 선사해주고 있다. 기술적으로 아날로그 폰의 시대를 훨씬 지났지만, 그 인터페이스에서 있어선 이제서야 디지털 시대의 서막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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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8 와이파이, 와이맥스, 그리고 와이브로 - 사라져가는 공유 정신

2008년 8월호 이광석


한 국에 종종 들르면 인터넷을 쓸 데가 마땅치 않아 전에 다니던 대학의 캠퍼스를 찾곤 한다. 한국이라는 인터넷 초강국에서 학생들은 10년 전 내가 미국 유학을 가기 전과 다름없이 아직도 랜선을 연결해 컴퓨터를 쓰는 모습이 더 흔하다. 무선인터넷을 쓸라치면 어김없이 KT의 네스팟 유료 서비스 화면이 뜨기 일쑤다. 한국의 초고속망을 부러워하는 미국에서도 캠퍼스 어디서든 무선인터넷에 연결된다. 물론 이 경우 학생 신분일 경우만 가능하다. 드넓은 잔디 위나 어느 후미진 벤치에 앉아서도 인터넷에 접속된다. 캠퍼스 길바닥에서 인터넷으로 피자를 주문한 적도 있다. 카페, 음식점, 커피숍, 술집, 공원에서 누구든 무료 인터넷이 가능하다. 그리고 보면 어디서든 차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술 능력이기보단 사회적 포용성의 차이인 듯하다. 

작년 에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는 방문객 자격으로 그럭저럭 인터넷을 쓸 수 있었지만, 호텔에선 비싼 요금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커피숍 어디라도 가면 무료로 인터넷을 쓰겠다싶어 돌아다녔지만 어디나 유료 서비스만 즐비했다. 한국보다 상황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국내 몇몇 커피숍에서는 자체 와이파이(Wi-Fi)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미 국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체크인 로비 공간에선 무료로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도 일종의 서비스 차원에서 이뤄진다. 필자가 사는 집에도 와이파이 라우터가 있다. 일반 케이블회사로부터 인터넷 서비스를 받으면서 자체 무선 라우터를 사서 장착해 무선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가정들은 이런 식으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옆집과 자신의 와이파이 대역을 함께 나눠 쓰기도 한다.

와이파이는 철저히 공유의 철학에 기반한다. 무선랜 카드와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차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주파수만 잡히면 서로들 나눠쓴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 틈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좀더 고품질로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고, 최근에는 와이맥스(WiMAX)라는 기술이 와이파이를 보완해 나옴으로써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와이파이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 와이파이의 전파가 고작해야 50m에서 200m 정도 미치는 데 반해 와이맥스는 도심에서 1, 2km, 장애물이 없는 경우에는 45km까지 미친다 한다. 게다가 한 번 전송량도 와이맥스가 두 배 정도 빠르다. 국내에선 모바일 와이맥스, 즉 노트북, 휴대폰, PDA 등 이동형 단말기를 통해 달리는 중에도 인터넷에 접속하는 ‘와이브로’ 기술까지 개발했다.    

미국에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오스틴 등이 와이파이의 천국으로 꼽힌다. 이 도시들이 천국인 이유는 시민단체들과 시당국이 무료로 시민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스팟(와이파이 안테나 반경이 미치는 구역)을 계속해서 구축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좀더 확대된 반경과 품질로 무선인터넷 시장이 언제든 통신기업들에 의해 평정될 날이 올 것이다. 와이맥스나 와이브로가 그리 반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와이브로가 한국의 정보통신업계에 새로운 ‘먹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시민들을 위한 와이파이의 자유정신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세련되고 쉽게 연결되고 쾌속의 상업서비스에 몰표를 던질 것인가, 아니면 느리지만 누구나 무임승차할 수 있는 무선 서비스를 살리면서 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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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7 휴대폰의 끝없는 진화, 어디로?

2008년 7월호

 

이광석




언젠가 필자의 지도교수의 방에서 무전기만한 휴대폰을 본 적이 있다.
거의 골동품 수준의 이것이 1983년 최초 상용화된 모토롤라의 다이나택(DynaTAC) 8000X 모델임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보니 그건 통신정책 전공자인 지도교수만의 유물이었던 셈이다.
거 의 동시에 나온 휴대폰 모델인 노키아 모비라는 라디오 크기에 무게의 압박으로 휴대가 거의 불가능해 자동차 전용으로 출시된 모델이다. 휴대폰을 휴대하기 버거운 시절이었다. 80년대 말 대학 시절에 속칭 삐삐(페이저)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것까지 생각하면, 오늘날의 휴대폰 변화는 거의 혁명에 가깝다.

몇 년 전 네덜란드에서 학생들이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두 손을 핸들에 의지한 채, 작은 키패드를 두드려대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요, 문화의 차이다. 휴대폰은 통화방식을 바꾸고 문화까지도 바꿨다. 휴대폰으로 대통령을 뽑고, 노동자를 위치추적하고, 은행결제를 하고, 문자메시지, 이메일, 동영상을 보내고, 뉴스를 받아보고, 집회에 사람을 모으고, 텔레비전, 음악, 사진, 게임을 즐기는 세상에 이르렀다. 통신수단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창출하는 도구로도 어필한다. 명품의 브랜드를 걸치면서 과시용으로 팔리기도 한다. 휴대폰이 단지 통신수단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기능들이 덧붙여지고 콘텐츠가 개발되면서 기업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가고 있다. 이미 휴대폰은 붙박이 전화통의 숫자를 추월한 지 오래다. 동네사람들이 이장댁의 전화를 빌려쓰던 시대를 불과 사,오십 년 지났을 뿐이다. 이젠 거의 수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모델들이 쏟아져나오고, 그 디자인과 기능도 세련되고 전체 크기와 무게도 점차 경박단소화한다. 휴대폰의 역사에서 큰 획은 1996년에 모토롤라 스타택(StarTAC)일 것이다. 플립형으로 개발된 이 전화기는 이전까지 디자인을 소홀히 했던 업계의 관심을 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2002년 블랙베리폰은 이메일 기술과 엄지 키보드로 휴대폰의 기능을 크게 확대했다. 그리고 2007년 애플사의 아이폰은 터치스크린을 기본 입력방식으로 선택하고, 매킨토시 운영시스템을 차용해 그 기능성을 늘리고 있다. 게다가 애플이 막아 놓은 애플리케이션 제한을 불법 ‘탈옥(jailbreaking)’해 쓰면, 그 기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조만간 아이폰2.0이 3세대 모바일 기술을 탑재하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진출한다 하니 그도 볼만하다. 이것이 오늘날 휴대폰의 진화 상황이다.

휴대폰 기술이 어디로 갈 것인지, 그 기능이 다른 기술들과 어떻게 상호 소통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가속이 더욱 붙을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속에 채워질 콘텐츠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하고 생활의 중심이 돼 가는 휴대폰은 현대인에게 텔레비전 이상의 위력을 지닌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인의 통신비 사용 지출액이 몇 배를 초과하고 있다고 한다. 기기 구입비가 주는 부담이 크다 하나, 향후 콘텐츠 이용에 따르는 부담 또한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휴대폰의 콘텐츠 논리가 상업적 방식으로만 굴러간다면, 공익 개념은 앞으로 아예 실종된다. 인터넷처럼 시민이 개입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응용해 무료로 교환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휴대폰 기술의 미래는 밝다. 그 응용 가능성도 무한하다. 허나 내용이 부실하고 이를 이용하는 이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못할 때, 그 기술은 반쪽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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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6 지도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생활상

<2008년 6월호>       이광석


 



필 자는 몇 년 간 지리정보시스템(GIS)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일반 통계 분석 소프트웨어가 이미 많이  개발돼 쓰이고 있지만, 평소 지도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였다.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보단, 정확한 지리정보를 그래픽을 통해 보여준다면 그 이상 설득력이 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획은, 텍사스 오스틴 도시에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던 공공 ‘무선인터넷’ (Wi-Fi)의 위치와 도시 내 인구통계학적 변수 간의 관계를 지도 위에 포개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그때 사용했던 것이 ‘아크뷰’(ArcView)라는 프로그램이다. 디지털사회에서 지리정보는 각종 정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지도검색, 도로상황 실시간 시스템, 휴대폰의 친구찾기 서비스, 지리위치정보시스템(GPS) 등 현대인이 살면서 원하는 곳을 살피는 데 그 유용성이 탁월하다.

단순한 물리적 지형도를 넘어서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이 맺는 정보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던 최초 시도는 19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9년 프랑스의 삐에르 듀팽은 문맹률의 지리적 분포와 집중을 보여주기 위해 그 지역 격차를 흑백 농도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시한 적이 있다. 일종의 ‘카르토그램’(Cartogram)을 도입한 셈이다. 1855년 존 스노우가, 영국 내 콜레라 위치와 그 확산 경로를 지도 위에 점으로 표기해 그 돌림병의 근원지를 막는 데 공헌했다. 

이후 지리정보의 컴퓨터화는 1960년대 중반까지 하버드 컴퓨터 그래픽 시험실 등 지리정보 연구의 산실인 교육기관이나 공공기관의 몫이었다. 허나 1969년을 기점으로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다. 잭과 로라 덴저몬트가 단돈 천백 달러로 환경과학연구소(ESRI)를 세워 지리정보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이름 없던 회사가 이젠 전 세계 지리정보 프로그램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독점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필자가 썼던 아크뷰도 바로 ESRI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ESRI는 1992년에 그래픽 사용환경의 아크뷰 1.0 데스크톱 버전을 출시하면서 국내와 전 세계 지리정보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한다. 아크뷰는 현재 9.X버전까지 출시됐는데, 각종 지리 분석도구들까지 연동되는 그래픽 토털 지리정보 시스템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그 지배력은 물론이고, 지리학도들이 공간지리 분석 프로그램을 쓴다하면 대부분 이 ESRI 제품군의 아크뷰를 익힌다고 보면 된다. 

지리정보가 인구통계 수치와 연동이 되면, 지리적 불평등의 문제, 지역 간 상호 연관 관계의 관찰, 질병과 물류, 교통, 네트워크 정보의 흐름 등을 파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지리정보의 세밀화와 보다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허나 ESRI가 독점력을 이용해 보급판 아크뷰의 가격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려놓아 일반인의 접근성을 막고 있는 현실이라, 당장 질 좋은 공개소스용 프로그램들의 개발이 아쉬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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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5 구글, 인간 의식의 독점꾼 혹은 무한한 정보의 친절한 길잡이?

2008년 5월호

이광석 


필자는 5년 전에 한국의 모 일간신문에 구글의 정보검색 독점을 경고한 적이 있다. ‘구글레오폴리’(Google-opoly)란 신조어를 인용해 당시 구글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을 썼다. 구글과 모노폴리(독점)를 합쳐 만든 이 개념은, 구글의 시장독점 논리를 경계하는데 적절한 표현이었다.

재작년 여름에 옥스퍼드 대학의 인터넷연구소(OII)에서 런던 정경대(LSE)에 다니는 엘리자벳 쿠버링이란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박사논문으로 구글의 검색 독점화에 대한 정치경제 분석을 한다고 했다. 구글은 필자나 엘리자벳과 같은 이들에겐 장차 신경제를 지배할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겐 성장의 상징으로 읽힌다.

익사이트,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인포시크, 마젤란, 웹크롤러. 이젠 사라진 검색엔진들의 이름이다. 인터넷 초창기엔 이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구글은 이 모든 서치엔진을 빠른 시간 내에 평정했다.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두 학생이 만든 검색 사이트가 불과 몇 년 만에 검색 시장을 석권했고, 이젠 그 사업 반경을 끝없이 넓히고 있다. 구글이란 이름이 ‘구골’(googol)이란 일종의 무한대의 숫자 개념에서 생겨났듯, 구글은 인간이 참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길을 안내하는 미래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구글이 지배하는 신경제에선 구글 검색 순위의 꼭대기에 올라야 생존할 수 있다. 세뇌라도 해서 항상 기억에 남길 원하는 수많은 기업들에겐 구글의 검색 로봇은 사활을 책임진 신의 존재가 된다. 구글은 기본 검색기능에서 출발해, 이용자의 특정 물건의 이미지와 가격 정보를 서로 다른 자원으로부터 비교해 찾는 ‘프루글’ 서비스, 위성사진을 통해 특정 장소를 찾아들어가는 ‘구글 지구’ 서비스, 유튜브의 인수 등 지금까지 승승장구의 길을 걷고 있다.  

무 엇보다 구글 지구 서비스를 처음 봤을 때, 이는 유저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매 클릭 순간에, 어디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위성사진이 줌인되면서 내가 사는 거리며 주차장에 주차한 자동차, 그리고 집 지붕 위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가고자 하는 곳을 찾아주고, 찾고자 하는 정보의 길라잡이로 나서고, 어지간한 관련 이미지 정보의 링크를 보여주고, 미국 정부 문서와 연동해 각종 보고서의 위치를 찾아주는 구글의 서비스는, 인간이 몸과 두뇌로 할 것들을 단순 키워드로 그 길에 이르게 한다. 생각의 시발점과 찾아야 할 정보의 첫 관문에 구글이 점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구글은 인터넷 검색뿐만 아니라 이동 중에도 어디서나 함께할 수 있는 휴대폰 콘텐츠 시장으로의 진출을 겨냥한다. 이미 애플 아이폰 등 몇몇 휴대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구글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이 뿐만 아니라 휴대폰을 통해 폭넓게 검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할 채비중이다. 애플마냥 단독으로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콘텐츠로 무장한 구글폰이 나올 법도 하다. 그들의 능력이 경이롭긴 하나, 우리의 인식지도를 장악해가는 구글의 힘이 내심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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