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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5. 디지털 비평의 선구자들, 크로커와 더리

디지털 비평의 선구자들, 크로커와 더리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90 년대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문화 영역에 소위 ‘사이버’ 담론이 넘쳐나던 시기다. 당시에는 첨단의 문법을 구사하며 후기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경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이에 비판의 날을 치켜세웠던 많은 사이버문화 이론가들이 배출됐다.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 마크 더리(Mark Dery)와 아서 크로커(Arthur Kroker)의 공적은 되짚어 볼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 이들 글 속에서 표현되었던 첨단의 극사실주의와 그에 걸맞은 새로운 언어 문법의 파격에 사이방가르드의 실험정신과 비판 능력이 온전히 담겨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먼저, 아서 크로커는 캐나다 콩코르디아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국제적인 사이버문화 웹진 씨시어리(Ctheory)의 편집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신경제 시대의 엘리트 계급의 등장과 이들이 지닌 신화를 누구보다 먼저 간파했다. 크로커의 저서 가운데 <데이터 쓰레기: 가상계급론>(1994), <미래 해킹하기>(1996)는 그의 사고 지형을 읽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그의 <데이터 쓰레기>는 현대 사이버문화 비평서로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크로커는 우선 ‘가상경제’라는 새로운 신경제의 분석을 통해 그 본질이 ‘소멸의 경제’에 근거한다고 판단한다. 그 소멸은 노동과 생산물,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고전적인 생산관계 등의 사라짐을 지칭한다. 원격의 글로벌 가상공간 거래로 인해 (실물) 경제가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이후에나 본모습을 드러내는 신경제의 성장을 당시 한발 앞서 내다봤다. 물론 그에게 구경제의 가상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신계급의 출현과 맥을 같이한다. 그가 개념화한 ‘가상계급(virtual class)’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파워 엘리트를 지칭한다. 가상계급의 구성은 이렇다. 미래의 비전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자본가들과 위계상 한 단계 아래인 하이테크 벤처자본가들, 인공 지능 과학자, 엔지니어, 비디오 게임 개발자, 컴퓨터 과학자들과 여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 기술지향의 정부관료 등이다. 이들의 경제적 기초는 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의존한다. 이들 사이의 계급적 협력은 주로 ‘기술적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 프로젝트는 계급간 불협화음을 억제하는 화해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렇듯 견고한 지배의 구조에도 언제나 탈출구는 존재한다. <미래 해킹하기>에서 그는 지배 구조에 대응한 전지구적 대항 세력의 등장을 주목한다. 전자적 공간을 통해 새로운 기술 엘리트들인 가상계급의 논리에 도전하는 소수 저항운동들, 예컨대 원주민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해커운동 등에서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마크 더리의 경우 그는 단순히 문화평론을 한다고 말하는 대신, ‘정치’ 문화평론을 쓴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디지털 문화비평의 근저에는 늘 사회 정의와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다. 그는 사이버문화 전반에 대한 식견뿐만 아니라 이를 도마에 올려놓고 맛깔나게 손질할 줄 아는 재주도 겸비했다. 그의 사이버문화 초기 저술은 <프레임 워: 사이버문화론>(1994)이다. ‘프레임 워(flame wars)’는 온라인에서 오고가는 신랄한 이바구(입담)를 뜻하며, 이는 네트를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디지털 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편집된 책에서 독자들은 90년대 초반 한창 부상하는 사이버문화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중력장 탈피: 세기말의 사이버문화>(1997)는 사이버펑크, 사이버히피, 테크노이교도들 등 정보시대의 디지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뤘다. 더리는 주류 정치가나 신경제론자들의 논의가 아니라 문화적 극단의 사례들에서 반문화 혹은 저항문화의 단초를 발견한다. 미학적 관점에서 사회의 비정상적 변이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착증, 카니발, 음모론, 광기, 초자연론, 곤충학, 성변태, 초현실주의 등등 문화적 극단을 찾아나선다. 이들 주류와 권력에서 빗겨나고, 권력에 의해 추하게 일그러진 돌연변이들의 문화 생산에서 새로운 저항의 동력을 고민하는 것이다. 90년대 크로커와 더리가 구사했던 난해한 잡종식 글쓰기는 사실주의를 극대화하는 고유한 촉매제 구실을 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문화이론, 정신분석, 디지털기술 등의 전문 용어들을 뒤섞어 새로운 현실을 설명하려 했다. 사이버, 테크노, 사이키 등등과 연결되는 잡종의 언어들에서 독자들은 근미래의 현실을 조감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글쓰기 문법은 다가올 사이버 현실을 보기위한 도구였다. 이들의 난해한 문체와 디지털 신조어들은 실지 사실성을 떨어뜨리기보다는 현실과 근미래의 풍경을 보다 풍성하도록 돕는 미장센 효과와 같다. 마치 SF소설의 허구를 사건의 전개와 치밀한 플롯과 소재들로 뒷받침하여 극사실성의 때깔을 입히듯, 이들의 디지털 언어는 낯설고 혼돈스럽지만 변화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동시에 이들은 공히 사이버문화의 좌뇌를 자극한다. 주류 디지털 문화의 상업적 지배에서, 이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의 모습에서, 그리고 화폐로 관리되는 신체에서 우울한 디지털 미래를 감지한다. 이들 둘은 극단의 언어 게임을 통해, 누구보다 앞서 디지털 현실과 미래의 제 모습을 한꺼풀 뒤집어 보여주는 공을 세웠다. 참고 페이지 아서 크로커: http://www.ctheory.net 마크 더리: http://levity.com/markdery 2004/05/03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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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보학회 발표문] 하이테크와 일상공간의 결합에 의한 소비문화의 변형

*유학 나오기 전에 발표했던 글인데 정보언론학회 자료실에서 주웠다. 당시 지정 토론자였던 김창남 선배와 함께 언론재단 빌딩에서 담배빨던 생각이 나는군.. Page 1 1 하이테크와 일상공간의 결합에 의한 소비문화의 변형 이 광 석(서울산업대 강사, 언론학) I. 일상 공간의 소비문화적 변용 보드리야르(J. Baudrillard)가 소비사회를 “소비를 학습하는 사회, 소비에 대해 사회적 훈련 을 하는 사회”(1994: 106)라고 언명한 대목은, 소비에 적극적 의미의 매개 행위가 개입함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고도의 생산력은 적극적인 소비 행동에 입각하여 소비자들을 학습 및 훈련시키는 사회화 과정을 삽입하길 원한다. 현대의 소비는 이러한 사회화의 능동 적인 진전 과정에 서 있다. 크게 보면 소비상품의 기술적 적용과 맞물리면서, 유하게는 유행 과 스타일 등의 미학적 견지에서의 소비 자극, 그리고 제도적이고 자본 재생산적인 경제 과 정으로서의 직접적인 소비 강제 등이 소비사회의 학습 과정을 구성한다. 문제는 소비 자극 과 소비 강제가 주고받으며 벌이는 소비 유발의 고리들도 중요하지만, 그 화학작용이 벌어 지는 인프라의 조건들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소비자를 유혹하는 새로운 소비 공간 의 생성과 변형, 그리고 그 새로운 공간에 대한,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탐구 가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공간은 자본과 노동의 집중 집적에 의해 상대적으로 희소화되며, 자본주의 경제의 등장과 더불어 상품화된다. 추상적 견지에서, 공간 의 성격과 유형이 사회적인 규정을 받으면서 (재)구성된다는 의미다. 과거에 볼 수 없던 것 이 새로 구축되거나, 이미 있던 것이 재배치되는 공간 구성의 변화는 그 시대 시대마다의 특수한 사회적 과정에 특수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자본주의는 사회적 재생산 의 물질적 실천 및 과정을 계속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적 생산양식으로 자리잡음으로써, 그 에 따라 공간의 의미와 그 객관적 성질이 유동적으로 변화해 왔다(Harvey, 1990: 204). 또한 사회적 과정에서 구체화하는 권력들간의 우위에 따라 발생하는 공간의 변형 과정은 그 사회 의 본질과 실세를 드러낸다. 현대 소비공간의 역학 구조를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경험적 관 찰을 통해 보자면, 이는 소비를 조장하고 선전하는 문화산업의 힘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인들의 일상 공간은 재생산을 위한 소비활동이 중심을 이룬다. 예컨대 자본주의 도시의 문화공간들인 극장, 영화관, 커피숍, 학교, 음악실, 전시실 등은 모두 상품을 매매하는 시장 이 되어버렸다. 공간은 이러한 단위시장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시킬 수 있도록, 나아 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최병두, 1994). 유 연적 축적이 관통하는 일상공간의 모든 것이 자본이 가공하는 문화상품들을 소비하는 시장 이 되가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공간의 변동 양상에 대한 관찰은 기업 이윤원의 변화와 소비 자들의 구성과 내용 변화 등을 일단의 ‘흐름’(flow)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해진 다. 이 글의 목적은 삶의 터전 구석구석에 삼투해 들어오는 하이테크 문화상품들이 개인들의 일상 공간에 긴박하게 맞물리는 구체적인 지형을 읽고자 하는데 있다. 이미 서구에서는 70 년대부터 소비사회란 용어가 자본주의의 대용어로 취급되는 현실에서, 인간의 소비와 욕구 Page 2 2 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지점들을 찬찬히 독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은 80년대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소비공간의 유형과 내용에 상당한 변 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본의 새로운 소비 창출의 역학들을 읽어내는데 학계 내부에서 너무 정체되어 있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에 디지털 크롬(digital chrome)의 외피를 입힌 하이테크 복합 놀이공간들 이다. 이 90년대식 놀이공간들의 사례를 통해 향후 전개될 새로운 자본의 이윤 전략을 전망 해보는 것이다. 소비공간의 새로운 패턴으로 등장한 게임센터 등의 디지털 소공간, 하이테크 상품의 선전장이자 이벤트홀인 엑스포, 그리고 ‘복합 미디어공간’(Media Complex)인 테마공 원의 특징적 사례를 통해서 하이테크와 일상공간이 결합되어 펼치는 오락산업의 새로운 전 략과 이에 따른 소비공간의 변화들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II. 소비공간들의 후기자본주의적 풍경 일상 소비공간의 21세기적 변동은 하이테크 기술에 의한 일상 경험에서의 ‘시 공간 압 축’(temporal-spatial compression) 효과에서 비롯한다. 이는 다양하고 이질화된 도시적 일상 을 압축해 경험해보고자 욕구를 증대시킨다. 현대는 첨단 교통 통신 정보 상품 등의 소비 와 일상의 욕구를 해소한다는 믿음이 비례 상승적으로 가동되는 시기이다. 현대인들은 전자 영상 및 음향 전달매체의 급격한 발전과 보급으로 말미암아 지구촌의 변화와 시공간적으 로 동시화되는 일상 경험에다 스스로를 조율해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한편 물리적 이 동의 초고속과 함께 주어진 혜택은 물리적 장소를 기초로 한 디지털 복합공간들의 탄생이 다. 서울만해도 이곳저곳 거리를 거닐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놀이 공간들과 마주칠 수 있다. 거대한 백화점, 쇼핑몰, 빌딩 등의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작은 임대지들. 소비문화의 거대 프 레임이 순환하는 건축 공간들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소공간들이 자본주의적 사회화의 기본 조건들을 튼실히 받쳐주고 있다. 전자 오락실, 인터넷 게임방, 인터넷 카페, 전화방, 노래방, 비디오방, 사이버방, 스티커 체인점인 포토제닉류의 실내 놀이공간들이 늘면서 소비문화의 현대적인 변형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공간은 일정 정도 각 개인들의 여가 활 동을 흡수하기도 하면서, 개별화된 욕구 배설의 새로운 창구들로 자리잡는다. 쁘띠적 소상인들이 이같이 밀실을 임대하여 전자 오락기 투입구 안의 돈통을 수거하는 방 식이 재래적이라면, 글로벌한 오락산업의 면모는 단연 엑스포(Expo)와 테마파크에서 세련되 게 드러난다. 엑스포가 단일 이벤트적이고 비상시적이며 이동성이 강하다면, 테마파크는 상 시적이고 복합 미디어적이며 놀이 자체만을 지향한다. 그들의 공통성은 거대하고 하이테크 적이라는데 있다. 이들은 미래의 놀이와 산업 경향을 선도하고 결정짓는다. 오락산업의 향배 는 이들 산업이 펼치는 놀이기법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앞서의 디지털 소공간들은 이 거 대 공간들의 틈새로 기능하며, 이들 거대 놀이공간들의 하이테크 기술들을 본받는다. 이처럼 소비를 통한 놀이의 학습장은 규모면에서 다차원적으로 열려있으며, 소비자의 경제적 여건 에 따라 놀이 유형에 대한 선택 가능성의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화폐 경제하에서 놀이의 조건은 제한 시간에 기준한 투입 동전의 양으로 환산하거나, 화폐 지출에 대한 반대 급부로 입장 혹은 이용 티켓 등의 초단기적 유가증권을 발급함으로써 시/ 공간적으로 지정된 틀내에서만 해당 놀이를 허용한다. 결국 디지털상품 전시의 대규모 엑스 포—교외의 거대 테마파크—도시의 게릴라식 디지털방들로 이어지는 핵심 축은 실지로 디지 Page 3 3 털상품의 이벤트화 과정—집단적 소비과정—일상화된 소비의 체득과정으로 진행하는 효과일 수 있다. 소비 효과의 증폭 과정은 이 전체 순환 과정에 특정 하이테크 기술들이 유효한 놀 이물로 적시에 이용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오락산업들은 현대적인 하이테크 기술을 적절히 배합하여 소비욕을 생산방식의 전환과 맞물려 새로운 놀이 패턴을 통해 흡수하려 한다. 컴퓨터 게임 및 오락산업이 놀이의 현대적 변형을 통해 노리는 전략과 그 변형 과정에는 항상 하이테크 기술의 개발과 놀이의 성사라는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것 이다. III. 결연한 하이테크의 시연장: 테크노 엑스포 “만약 대재앙이 발생해 인류의 문화유산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해도 ...박람회에 대한 기록 만 남아있으면 우리의 문명을 되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Panati, 1997: 154) 현대 소비사회는 소비를 성사시키기 위한 배려로 이벤트, 기법, 장소 등을 다종다양하게 활용한다. 매체 광고나 판촉이 그 대표적 예이며, 이를 통해 발휘되는 소비욕의 자극은 보편 화되어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인 태도 변용을 불러온다. 이벤트나 축제는 소비상품의 판매를 구경거리로 확대시킨다. 박람회(fair) 혹은 엑스포라고 일컫는 이벤트는 특정 대중 동원을 통해, 그리고 깊이없는 구경을 통해 세심하고 의도된 주최자들의 안건(agenda)을 보급하는 장소이다. 엑스포는 달리 보면 신제품의 쇼핑 전시몰이다. 예술관련 전시장의 엄숙한 분위기 와는 달리 엑스포는 부르주아의 상술적이고 카니발식 아우라(aura)가 풍겨나온다. 개별 부스 에 자리잡은 기업들은 제품선전의 카달로그와 멘트를 끊임없이 뿌리고, 늘씬한 도우미들이 별로 유효하지 않는 관련 경품들을 나눠준다. 엑스포의 관객은 입장권을 보상키 위해 어느 덧 소비자가 되어 경품과 카달로그를 받으러 기다란 행렬에 참여한다. 혹은 유명 연예인의 이벤트로 엑스포의 테마 자체를 잊어버리는 관객도 출현한다. 구수한 구래의 장터를 연상하 던 관객들은 어느덧 산업적 가치로 환산된 차가운 은색의 엑스포와 대면하고 곧장 이 향연 에 적응되어 간다. 엑스포는 거대화, 국제화되어 가고 있다. 전세계적 참여를 기본 전제로 하는 글로벌 수준 의 엑스포들이 대거 생기거나, 기존의 범위를 확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제 문제는 크기 이다. ‘국제’,‘최대’,‘전세계적’등의 수사들이 전시 광고의 중심에 선다. 최대/국가, 인원, 면 적, 행사, 전시관 등이 엑스포의 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컴퓨터 그래픽과 인 터랙티브 기술의 국제 최첨단 전시회인 ‘씨그래프’(SIGGRAPH)만 보아도, 96년 뉴올리언스 (New Orleans)에서 열린 대회에 2만여평의 단지, 321개의 전시관, 2만 8,500명의 참가 인원 을, 그리고 97년 LA대회에서는 비슷한 규모에 359개의 전시관, 4만 8,700명의 참가 인원을 자랑한다. 올해 7월말경 올란도(Orlando)에서 씨그래프의 25주년 행사를 기념하는 박람회에 서는 앞서의 통계치들이 또 다시 갱신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1 또한 최근에 인터랙티브 오락산업의 가장 성대한 전시회인 ‘전자오락 엑스포’(E3)의 전시 광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그 들의 행사 규모에 대해 홍보한다. 98년 애틀란타(Atlanta)에서 진행된 E3 쇼는 일반 관람객 1) 씨그래프에 대한 최근 전시회 관련 자료는 [URL: http://www.siggraph.org/]에서 찾아볼 것. Page 4 4 을 제외하고 전세계 80여개국에서 모두 4만 1천명의 게임산업 관계자, 외국인 관람객만 7천 4백명, 6만평 규모의 단지에 1,600여개의 출품작을 자랑하고 있다. 2 규모의 거대화와 국제화 추세와 함께 변화하는 경향은 엑스포들이 세부 영역화 되어가고, 새로운 첨단 엑스포들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 전시회의 집합소인 한국종합전 시장(KOEX)의 행사 내역을 보면 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표 1>에서는 필자가 편의상 세 영역으로 나누고 있지만, 실지 내용으로 볼 때 하이테크 산업의 영역은 서로가 걸쳐있고 중복되거나 새로운 영역들을 위한 신종 전시회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의 이 벤트 전략도 대범위 수준에서 중소범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기획함으로써 각 전시회를 통해 참여 인구들을 시장 분할할 수 있는 조건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국제 박람회는 1851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후원으로 런던의 크리스털 궁에 서 열렸다. 이 행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1998년 포르투갈의 리스본(Risbon)에서 ‘해양-미래의 유산’이란 주제로 치러졌다. 최근 들어 글로벌 엑스포는 단순한 전시 행사가 아닌 공연에 가 까워지고 있고, 해양이라는 주제를 위해 동원된 각종 첨단 전시기법이 중요한 화제로 등장 하고 있다. 산업시대의 발상과 내용을 지닌 과거의 엑스포가 주로 시각적 효과에 소구했다 면, 새로운 테크노기술을 전시하는 엑스포들은 관객의 오감 모두에 효과를 미치고 있다. 첨 단기술에 의해 몰입을 강요하는 하이테크 시연을 감상하고, 관객 스스로 조작하여 몽환(夢 幻)에 빠질 기회도 갖는다. 이같은 기술적 연례행사는 첨단 영상, 컴퓨터 그래픽 전시장 뿐 만 아니라 일반 전시회나 박람회에서도 전반적으로 채용되는 기법이다. 토플러(Alvin Toffler)식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공장굴뚝시대’의 기업들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국제 모토쇼 들도 이제는 화려한 영상과 테크노 기법들을 도용하거나, 아톰들로 구성된 고철에다 첨단 디지털 부가물들을 첨가한 신종 자동차들을 시연하기 바쁘다. 이제는 첨단기술적 특성 중 오락과 놀이에 결합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전시장을 주도한다. 모든 엑스포들은 카니발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현대적 방식으로, 즉 하이테크 기술의 집합적 아우라로 연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엑스포의 변화하는 특성인 전시의 첨단화이다. 전체 산업 이벤트가 첨단화되는 것과 맞물려, 보다 본질적으로는 관련 첨단기업들의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예를 들 어, KOEX에서 97년부터 98년까지 진행한 전체 행사(210여건) 중 하이테크 관련 산업 전시 회가 약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표 1> 참조.) KOEX의 모든 국제/국내 행사 중 뉴미 디어와 컴퓨터 및 통신 등 하이테크 전문 이벤트만 15%를 웃돈다. 특히 김영삼 정권 초창 기에 고양되었던 ‘세계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과 이어지면서, 국가 정보화의 여론몰이가 이같은 상시적 이벤트장들의 개장을 거들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축제적 분위기 속에서 놀이를 통해 정보/통신 산업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 대민 홍보의 세련된 기법이라면 기법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국내 엑스포의 내용들이 하이테크 일색으로 돌아서는데는 정부의 정책 향방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표 1> 한국종합전시장(KOEX)의 하이테크 행사 구성(97˜8년) 3 2) E3쇼에 관한 정보는 [URL: http://www.e3expo.com/] 참고. 3) 한국종합전시장 전시회 및 행사 내용에 관한 페이지([URL: http://www.koex.co.kr/korean/ exhibition/schedule/])를 토대로 표 구성. Page 5 5 주영역 전 시 회 주 최 사 목 적 영 상 미 디 어 (97/ 98) 국제 케이블 TV 및 위성방송 전시회 KOEX 정보/기술 교류, 관련산업 활성화, 산업연관효과 제고, 세계 경쟁력 강화, 정보마인드 확산, 국민 인식 전환, 영상/놀이문화 정착 국제방송장비 음향기기전시회 한국일보사 영상미디어 엑스포 중앙일보사/KOEX 서울멀티미디어쇼 한국경제신문사 국제광학 및 영상기자재전 KOEX/한국광학기기협회 국제광고물 및 기자재전 KOEX/한국광고사업협회 서울 국제만화페스티발 KOEX/SICAF'98조직위 컴퓨터그래픽스/멀티미디어전 KOEX/소프트웨어산업협회 (98) SFX 세계공상과학영화 100년대전 중앙일보사/MBC프로덕션 컴 퓨 터 및 통 신 (97/ 98) 컴덱스 코리아 디지틀조선일보/KOEX 정보 교류, 신제품 개발의지의 고취, 수요기반 확충, 관련산업 활성화, 개발 경쟁력 제고, 대중적 인식 제고, 국민문화생활 향상 국제 컴퓨터/소프트웨어/통신기기전시회 한국경제신문사 국제 정보통신 및 이동통신전 KOEX/E.J.Klause 국제 게임기기 및 어트랙션 쇼 KOEX 윈도우월드 전시회 전자신문사 한국 컴퓨터/소프트웨어전 전자신문사 한국 전자전 전자산업진흥회 (98) 인터넷/네트워크 코리아 중앙일보사/KOEX 산 업 정 보 화 (97) 국제 자동인식산업 및 기기전 (주)경연전람 정부정책 부응, 정보/기술 교류, 우수성 홍보, 수요기반 확대, 국제 경쟁력 강화, 산업발전 도모, 대중적 인식 제고 (97/ 98) 한국 국제공장자동화 종합전 KOEX/(주)첨단 한국산업기술대전 통신산업부/KOEX CALS/EC APEC 한국 CALS-EC 협회 /중앙일보사/KOEX (97) 텔레마케팅 페어 코리아 한국통신/KOEX (98) 한국 소호 엑스포 능률협회/매일경제신문사 스마트 솔류션 페어 삼성전자 하이테크와 결합된 두드러진 특성은 전시의 카니발성이다. 테마별 이벤트와 축제가 가속 도로 급증한다. 하이테크는 전시의 이벤트를 돗보이게 하며,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촉매 역할 을 한다. 엑스포는 그것들이 지닌 다양한 전시명을 통해서도 그 이벤트성을 유감없이 발휘 한다. ‘페스티발’,‘쇼’,‘대전’(大殿) 등의 명칭으로 전시회의 이벤트 기획성 자체를 부각시킨 다. 엑스포 자체의 정기적이고 한시적인 속성은 이벤트의 특성으로 자리잡는다. <표 1>에서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97/8년에 지속된 기획전은 거의 비슷한 월별대와 기간 동안에 짜 여져 있다. KOEX 전시장의 이용 편성의 효율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기획들이 잡혀졌으리 라 추측을 할 수도 있으나, 그 효과는 비상시적 엑스포의 정기적 이벤트에 대한 막연한 기 대감을 관람객들에게 부추키는데 있다. 대체로 엑스포들은 매분기, 반년, 일년, 격년 등의 정 해진 시간 개념으로 짜여져 있어, 특히 급변하는 디지털 신제품들의 수요 창출을 고려한 상 품 생산주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데 민감하다. 엑스포의 세분화된 시분할에 입각한 적시 의 이벤트는 소비시장 형성의 촉매 역할을 자임하며, 그 카니발적 요소로 냉혈한 시장의 의 도를 가려버린다. 철저하게 관리되는 이벤트의 정기성과 함께, 거대 도시들을 따라 개최지를 변경시키는 공간적 이동/기동성은 그 축제적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세계적 엑스포들은 글로 벌 도시들의 지명 이동을 통해 이벤트를 지방성(the local)과 결합시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복합 시연장으로서의 역할도 행한다. 컨퍼런스 개최, 호텔 숙박, 도시 관광, Page 6 6 경품 추첨, 극장 상연, 쇼 공연 등 다기능적 공간 소비의 장을 마련한다. 이 모두는 현대적 엑스포의 카니발적인 특성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기능한다. 카니발적이고 이벤트적인 특성은 기본적으로 주최사의 수익과 직결한다. 엑스포들이 일종의 수익 사업으로 자리잡는 것을 지 칭한다. <표 1>에서 보면 유난히 국내 특정 언론사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데, 이는 언론사들 의 사업 다각화라는 측면에서 뉴미디어 영역인 하이테크 이벤트사업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국내 전시회의 일차적 목적은 정부 정책에 부응하여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관련 산업전반을 활성화하는데 있다. 관련 기업들을 모이게 하여 그들간에 정보와 기술을 교류하 여 산업연관 효과를 보자는 심산이다. 이러한 목적이 산업 정책과 경제적 관심사의 측면이 라면, 이벤트를 통해 신소비 영역에 대한 마인드를 확산시키자는 목적은 또 다른 중대한 측 면이다. 즉 이벤트의 공통적 특징인 ‘정보마인드 확산’,‘국민 인식 전환’,‘국민 문화생활 향 상’,‘영상/놀이문화 정착’등의 홍보용 선전문안은 엑스포를 통해 신소비 영역을 학습할 것 을 강제하는 문구이다. 대중적 인식의 제고와 학습을 거쳐 이벤트가 의도한 문화를 정착시 키는 것.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려면 딱딱한 관전 분위기 보다는 전시회의 카니발적이고 하 이테크적인 속성이 잘 어울린다. 전시회를 놀이로 다룸으로써 새로운 소비 영역에 대한 거 부감을 자연스레 달래는 파급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카니발한 하이테크 시연이 노리는 표 적은 “기술 그 자체보다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경연장” 4 을 만드는 것이다. ’98리 스본 엑스포의 일본 전시관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의 이같은 발언은 장차 전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갈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물론 본고의 방향에서 본다면 이 일 본인의 인용문 중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란 말 앞에는 ‘새로운’이라는 접사가 붙어야 할 것 이다. 보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새로운 기술의 선전을 통한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고 선전하는 경연장이 미래 엑스포의 청사진인 것이다. IV. 과잉 생산의 집중된 탈출구: 테마파크 대형 놀이공간들은 엑스포 보다는 훨씬 본격적으로 상시적인 축제, 공연, 어드벤처, 모험, 이벤트가 첨단과학과 결합하여 스펙터클로 등장하고, 관람객들에게 이를 소비(쇼핑)할 수 있 는 즐거움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을 실현하는 장소로 선전된다. 스펙터클은 특정 목 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대량생산되고 대량소비되는 이미지이다(이정재, 1994). 실제 스펙터클은 실제적 소유를 보조하기 위한 시각적 전유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면 서 동시에 전유한다는 것을 은폐하는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기술이 되며, 이를 복합적으로 구현한 공간들이 바로 자본주의의 대형 테마파크이다. 놀이공간 안에서는 최대의 수익 효과 를 위해 다종다기한 공간 지배장치가 고안되고 동원된다(임석재, 1997). 연쇄적이고 복합적 인 놀이 행위를 통해 공간을 가로질러 관객의 소비 행위를 극대화한다. 이제 이 거대한 복 합 미디어공간은 스스로 ‘스펙터클 주식회사’(Spectacular Inc.)라는 가명을 얻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1976년 삼성계열이었던 (주)중앙개발이 용인 자연농원을 개장한 이후 주 로 후진적인 국가들이 여가를 전유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 형태로 동물/식물원 등의 자 4) 한겨레21 , 1998년 8월 6일자, 52쪽. Page 7 7 연 친화적 이벤트를 살리다, 96년초에 자연농원의 국제화라는 기치하에 (주)삼성 에버랜드의 ‘에버랜드’(Everland)로 바뀌면서 첨단 어드벤처 테마공원으로 성장한다. 게다가 96년 7월에 에버랜드 내에 실내외 복합형 워터파크(water park)인 ‘캐리비안 베이’(Carribbean bay)를 개장함으로써, 이 공원은 완벽한 글로벌 복합 공간의 외형을 갖추게 된다. 에버랜드는 93년 에 520만명, 95년 730만명, 그리고 이를 96년까지 누적해 보면 약 6천만명이라는 엄청난 입 장객들을 불러들였다. 에버랜드 외에도 국내에는 서울 도심과 그 외곽에 펼쳐진 대표적인 놀이공간으로, 롯데 그룹의 잠실 롯데월드(Lotte World), 과천시의 서울랜드, 강북의 드림랜 드 등을 꼽을 수 있다. 롯데월드는 단일 실내 놀이공간으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테마파크 라고 얘기될 정도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한다. 롯데월드는 건조 당시 롯데그룹에서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였는데, 그 전체 공간은 이제 실내 테마파크인 어드벤처, 옥외 호수공원인 매 직아일랜드, 박제화된 전통의 민속박물관, 실내 수영장, 스포츠센터, 롯데호텔, 5백여개의 전 문 쇼핑몰, 2개의 백화점 등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롯데는 테마파크를 체인화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98년 2월에는 부산에도 롯데월드를 개장했다. ‘월드’공간을 찾는 한 해 방문객은 약 6천만명으로 추산되는데, 그래서 롯데월드의 마케터들은 롯데월드를 “도심 속에 있는 또 하 나의 도시”로 선전한다. 돈만 있으면 이 안에서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는 성역화된 왕국인 셈이다. 한편 과천의 서울랜드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 비해 그 규모면에서 뒤쳐지기는 하지만, 보다 저가로 이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서울랜드는 서울의 외곽에 위치하면서도 지하철과 (마을)버스의 운행이 여유롭다는 점에서 강북구에 위치한 ‘드림랜드’처럼 한강 이남의 하층 서민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중규모의 틈새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입지상으로 서울랜드는 서울대공원, 현대미술관, 경마장을 끼고 있어 종합 레저공간으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한편 87년 (주)일우공영이 230억을 들여 만든 드림랜드는 96년 (주)드림랜드로 상호명을 변경하면서 원주 치악산에 체 인으로 향토 동물원을 개원함으로써 현재 본격적으로 공원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아무래도 테마파크의 원조는 소비문화의 첨병인 미국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세 기초 ‘유원지’(amusement Park)라는 이름의 놀이공간들이 도시 근교에 세워지거나 대중교통 노선에 공원을 연결하여 노동자 가족들이 주말에 재생산 휴식을 취하도록 유도했으나, 60년 대 이후 들어서 새로운 거대 테마파크들이 시 외곽의 한가운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 후 미국의 호황으로 소비와 여가를 구가하게된 이들 미국인들은, 이 당시 누구나 할 것 없 이 자동차를 구입하여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 노동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이같은 상황을 소비와 연결시키는데 귀재였던 그 당시 오락자본들은, 미국 시민들의 일상적 여가 행위를 그들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기 위해 거리상으로 도시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확연히 떨어진 장소에다 소비의 터를 제공했던 것이다. 즉 외곽의 테마파크들을 이용하는데 자가용 이 없으면 험난하고 힘든 하루가 되며, 비싼 요금을 치르지 않으면 입장할 수조차 없는 상 황이 테마파크 참여의 전제가 되버렸다(Davis, 1996). 미국적 상황에 비춰볼 때, 국내의 서 울랜드나 드림랜드는 강북과 강남을 텃밭으로 하여 서민층을 끌어모으는 유원지 수준의 놀 이공간으로, 에버랜드는 미국식 모델을 따르는 대표적인 교외 테마파크로, 롯데월드는 입지 상으로 백화점, 몰과 함께 상품 소비욕구를 노골적으로 확장시킨 도시형 복합 소비공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테마파크는 종합적인 미디어 공간이자 지리적/물리적 복합 미디어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 안에서는 대중들의 놀이욕구를 다차원적인 공간에서 주어지는 시각적 소비를 통해 해소 시키며, 이를 통해 다양한 뉴미디어 기제를 개발한다. 샌디에고 대학의 노교수, 허버트 쉴러 Page 8 8 (H. I. Schiller, 1995)는 이러한 미디어 전략을 ‘토탈 혹은 원스톱 커뮤니케이션’(total or one-stop communication)이라고 명명했다. 테마파크는 전체 메시지의 통일성을 얼개로 지니 면서도 풍부하고 다양한 외관, 문화, 역사, 스타일, 텍스트, 건축, 연출을 허락한다. 즉 모든 중심적, 혹은 부차적 요소들이 조화로운 관계 안에서 함께 작동하면서 완결된 단위로 기능 한다. 이 안에서는 개념화 단계에서 최종 생산, 배달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저 미디어자본이 만든 메시지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디지털계급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즐기고 배설하는 주체들만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테마파크의 스펙터클은 산재하여 있는 “분리된 것 을 재결합하지만, 분리된 상태 그대로 재결합한다”(Debord, 1996: 23). 이른바 차이를 지닌 각각의 놀이들을 통해 자본주의적 질서와 유사한 총체화되고 통일된 공간 논리를 배양한다. 도시 사회학자인 샤론 주킨(S. Zukin, 1998: 49)은 이를 ‘차이의 미학화 과정’(aestheticizing of differences)이라 칭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는 테마파크가 현실 자본주의의 경제 장치들, 특히 오락관련 기업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단기 수익 발생의 근거지이자 생산적인 과정들의 집합이며 뉴미디어의 잠재적인 도입구라는데 있다. 현찰을 통한 회수력의 증대, 생 산-유통-소비 전국면의 빠른 회전, 특히 신기술의 풍부한 실험장으로서 중요한 결절점이 되 고 있다. <표 2> 5대 글로벌 테마파크 5 기업명 테마파크/리조트(미국) 방문객수 (93년) 해외진출 현황 디즈니 매직 킹덤 파크, Epcot, 디즈니-MGM 스튜디오, 디즈니 애니멀 킹덤 파크, 디즈니 크루즈라인 41.4 파리 디즈니랜드(29%), 토쿄 디즈니랜드(로얄티만) 타임워너 씩스 프래그즈 파크 19.2 무비 월드 (뒤셀도르프, 독일) MCA 유니버셜 스튜디오, 헐리웃, 플로리다, 올란도 12.3 *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일본 오사카) 바이어컴 킹스 도미니언, 킹스 아일랜드, 그레이트 아메리카, 캐로우윈즈, 레이징 워터스 인 산호세, 스타 트렉: 어드벤처 12.4 원더랜드(Wonderland) (캐나다) 부쉬 엔터테인 먼트사 씨 월드 체인들 18˜20 그랜 티비다보 테마파크 (스페인) 범례: 방문객수 단위는 100만명, * 95년 방문객수 미국에서는 이미 테마파크의 잠재능력을 익히 간파해 온 거대 미디어기업들이 속속 6,70년 대에 세워진 테마파크의 체인들의 대부분을 흡수하여 자사내의 주력 업종으로 통합시킨다. 소위 글로벌 테마파크의 5대 소유주들은 디즈니, 안호이저-부쉬(Anheuser-Busch), 타임워 5) The Nation, June 8, 1998, pp.21˜8., 그리고 (Davis, 1996)의 내용을 토대로 도표화. Page 9 9 너, 바이어컴(파라마운트), MCA이며, 이들 파크에서 걷어들이는 입장비만 기업 수익의 절반 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빅5’는 북미에만 24개의 파크와 1억 200만명(93년 통계치)의 관람객 들의 방문 횟수를 기록한다. 미국과 캐나다 전체로 놓고 보면, 700개 정도의 테마파크와, 93 년 한 해 동안 방문객 수가 2억 5,500만으로 추산된다. 여기에서도 독점의 논리가 우세한데, 상위 50개의 대형 테마파크의 방문객만 약 1억 4,330만명에 이르고 있다(Davis, 1996). 90년대초 5대 미디어 기업들이 테마파크 체인을 지속적으로 매입함으로써, 몇 가지 중요 한 효과가 발생한다. 우선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즉각적인 현금 회수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 유동 자본이 증대하였다. 예컨대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까지 디즈니 파크는 디즈니사 전체의 수익 중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빅5’중 거의 모든 모기업들은 파크 수익을 타 산업 부문으로 팽창하기 위한 내부 거래자금으로 활용했다. 특히 계열사 중 영화산업이 불 안정성을 보일 때, 그리고 케이블산업 등 다른 주식들이 새로운 컨텐트의 점증하는 수요에 직면할 때, 테마파크의 자금 동원력이 이러한 계열사들에 큰 영향을 발휘한다. 오락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테마파크는 즉각적으로 엄청난 돈을 낳는 보고였다. 둘째, 투자 영역의 다각 화/다양화 효과. 사업 다각화의 정식화된 목적이 연관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면, 이를 철저히 수행하는 것도 테마파크의 투자 요인이다. 즉 특정 테마파크와 이를 둘러싼 환경은 이 일대 를 ‘왕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왕국의 위성들인 호텔, 식당, 야영지, 주차장, 선물가게, 요트 장, 눈썰매장, 골프장, 카지노, 수영장 등등. 물론 테마파크 소유주가 이 모든 것을 관리하며, 이를 통해 철저히 외부로 매출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다. 일례로 (주)삼성 에버랜드의 서비 스표 등록원부의 권리란을 보면 20개 이상의 지정 서비스업종이 나열되어 있는데, 6 이는 바 로 파크에서 원스톱으로 전 업종을 임대, 관리하여 수입원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셋 째, 생동하는 오락 공간으로써 테마파크는 모기업의 계열사들에서, 혹은 흡수한 기업들로부 터 제작된 교차-촉진적 재화(cross-promote goods)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같은 상호 교차적인 판매촉진의 가능성은 거대 미디어들간 매수와 합병을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 나고 있다. 역으로 이는 소비자들의 표적 시장을 넓히고 세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다. 예컨대 당해에 계열 영화사에서 출시될 영화를 이벤트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방법이다. 또한 영화 캐릭터 상품의 시판은 영화보다 더 높은 수익을 장기적으로 보전한다. 예를 들어, 94년 디즈니가 제작한 <라이온 킹Lion King>이 첫 해에 2억 6,7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라이센스 계약을 통한 그 영화의 캐릭터 상품 매출은 거의 4배 가까운 10억불에 이르렀다. 이런 정황만 보아도 공원내에서 일상화된 상영 전야의 이벤트화-영화화-연관 소비 상품화 로 이어지는 효과들이 어떠한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테마파크는 책, 테잎, 비디오 게임, 음반, 영화, 만화 등과 비미디어적 소비재들에 이르기까지 상품 광고를 위한 물리적 장소이 자 출구로, 생산물들의 거대한 판매소로 복무한다. 또한 테마파크는 일종의 물질화된 광고, 전자 영상물과 그 홍보를 구체화하는 수행적이고 동적인 공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테마파크는 향후 놀이공간의 위상과 관련하여 디지털 상품 판매의 구매력을 실험하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초창기 테마파크들의 전략이었던 식물/동물원 등의 자연친화 적인 전략, 즉 ‘자연의 상품화’ 7 라는 것도 이제는 오락과 첨단과학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볼 거리와 체험 영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즉 뉴미디어 신제품을 선전하는 정돈된 플랫폼이 중심 논리에 끼어든다. 테마파크는 한 곳에 이 첨단적인 모든 것을 늘어놓음으로써 중산층 6) (주)에버랜드의 서비스표 등록원부는 에버랜드의 하위 페이지([URL: http://.../regist/regist.htm])에 서 받아 볼 수 있다. 7) 테마파크들의 ‘자연의 상품화’전략에 관한 내용으로는 (Light and Higgs, 1997: 116˜7) 참고. Page 10 10 의 광대한 대중들에게 다양한 신매체의 생산물들을 소개하고 시장력을 측정하는 등의 실험 을 수행한다. 그래서 최첨단 기업들, 세가, 마이크로소프트, 필립스, 크리스탈 다이나믹 등의 기업들은 테마파크에 터를 잡고 싶어 한다. (최)첨단의 수사에 따라붙는 현대 기술의 보편어 는 3차원, 입체, 시뮬레이션, 그래픽 등이며, 이는 놀이공간 안에서의 게임 형식에 각인된다. 보드리야르식으로 평가하자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소외되거나 수동적인 구경꾼들이 아니 라 ‘인터랙티브한 엑스트라들’(figurants interactifs)” 8 로 승격할 수 있다. 휴가, 방학, 생일, 졸업 등 가족내 일상의 축제는 테마파크의 이벤트와 맞물리면서 파크 나들이를 통해 이제 능동적 소비 의례의 일부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테마공간은 독점화된 미디어 기업들이 수행하는 다면적인 판촉 마케팅 과 판매책을 위한 자본주의적 공간의 변형태로 굳게 자리잡았다. 9 그들에게 있어서 테마파 크는 이윤 창출과 판촉의 통합적 장소이자 뉴미디어 상품의 실험장이다. 그들은 상시적인 축제와 이벤트, 상품 판촉으로 소비의 거대한 국면을 세련되게 위장하여 과잉생산을 해소하 기 위한 탈출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미국내 테마시장은 테마파크 자체의 공급과잉 으로 인해 과포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세부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 보험 비용의 증 가, 입장객의 한계, 테마기업간 경쟁 등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내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테마공간을 창출하여 소비의 탈출로를 마련했듯이, 그들은 새롭게 신시장의 창출 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3가지 영역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테마파크의 국제적 팽 창이다. 해외로 미국의 거대 테마파크를 수출하는 것.(<표 2>의 해외진출 현황 참고.) 특히 디즈니는 속속 세계 지도 곳곳에 미키 마우스의 문양을 찍어대고, 전세계 대중들이 서구의 문화를 평등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체인망들을 구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중들의 의식상 테마파크가 보편적인 국제 언어가 되가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스펙터클을 기억하는 방문객들은 이제는 굳이 멀리나갈 필요없이 자국내에서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둘 째, 보다 작은 형태의 틈새시장인 미니파크나 어린이들의 놀이공간 등이 활성화될 것이다 (Davis, 1996). 마지막으로 거대 테마파크들의 지속적인 개장과 함께 이들 공간들은 하이테 크산업 영역과 보다 밀접한 결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테크노기술의 자원들과 상품들을 외부 로부터 끌어들이는(outsourcing) 이벤트를 상시화하여 시장 가능성을 점치는 작업이 부단히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면 미래적 테마파크의 형태로 공간 전체를 완벽하게 뉴미디어의 복합 무대로 만드는 경향도 출현할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게임기 회사인 세가는 요코하마와 오 사카에 가장 새롭고 첨단의 기술을 구현한 인터랙티브 테마파크를 개장한 것처럼, 하이테크 기술의 완전한 구현을 통해 미래적 놀이공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들은 테 마공간내 스펙터클의 변화뿐만 아니라, 테마공간 운영 주체와 관련하여 앞으로 뉴미디어관 련 오락산업의 테마파크 진출이 본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그것이 과장 이라면, 현재 테마파크는 디지털 자본들이 새롭게 생산하는 상품의 유형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확실한 시장임이 분명하다. 8) Baudrillard, J., “Disneyworld Company”, Liberation, March 4, 1996., trans. by F. Debrix, in Ctheory, [URL: http://www.ctheory.com/e25-disneyworld_ comp.html]에서 인용. 9) 국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대체로 유원지를 포함한 국내 테마파크들은 토목/건축업자들이 진출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부동산관련 손익계산에 따라 토지개발이 이루어지는터라 이들 업자들에게 유원 지에 대한 마인드란 부재하다. 특히 삼성이나 롯데 등 재벌들이 운영하는 테마파크는 미국과 비교 하여 시설 투자면에서는 뒤지지 않으나, 운영 주체와 관련하여 미디어 독점기업들이 운영하는 미국 의 90년대 토양과는 차이(비전문성과 천민성)를 갖고 있다. Page 11 11 V. 소공간들에 크롬 입히기: 전자 게임방 문화 게임의 성장은 십여년간 MIT대학 등의 기술적 마인드를 가진 소수집단들의 이용을 거쳐, 현재는 급격하고 폭넓게 확산되었다. 게임의 역사로 볼 때, 1971년 미국에서 ‘스페이스 워’(Space War)라는 상업용 아케이드 게임을 시초로, 76년 아타리(Atari)사가 ‘퐁’(Pong, 일 명 핑퐁게임)이라는 게임으로 최초의 사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일반 대중에게 비디오게임이 친숙해지기 시작했다(서경학, 1995). 일명 ‘벽돌깨기’는 76년 일본에서 성공했고, 일본의 타이 토(Taito)사가 개발한 ‘인베이더’는 78년 미국에서 대선풍을 일으키면서 전세계적으로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는 도화선이 되었던 중요한 게임들이다. 미국에서는 80년대초 조잡한 게임 타이틀이 시장에 범람하면서 ‘아타리 쇼크’(Atari Shock)가 발생하여, 소비자의 불만 가중과 게임기 판매 하락으로 말미암아 게임기 시장이 침체하게 된다. 일본이 게임기 시장을 제패 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해부터이다. 이제는 세계 전체의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80% 이 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일본과 피씨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77% 정도의 점유율을 지 닌 미국 시장으로 압축되고 있다. 10 <그림 1> 국내 게임시장의 성장 규모 11 현재 일본의 닌텐도나 소니, 세가의 기술력과 그들의 미니어처식 방 문화가 결합되어 새 로운 유형의 전자 게임방들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전국에 1만 5천개 이상의 실내 전자오락 실과 아케이드내 종합 오락장이 110여개 이상이나 세워졌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94년에 약 3,500억원대로 추정되며, 97년에는 5,500억원대에 이르고 있다.(<그림 1> 참고.) 97년 한 해 통계치만 보아도 게임산업은 극영화, 애니메이션, 음반, 비디오 산업 보다도 높은 시장 가치를 보여준다. 12 게임산업 중 업소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그 10) 전자신문 , 1996년 11월 15일자. 11) 기업경제 , 1995년 11월, 126쪽 내용을 토대로 구성. 12) 문화관광부, 통계로 보는 문화산업 , 1998. 범례: 96년은 자료 없음, 97년은 추정치. Page 12 12 비중이 20% 미만인 선진국에 비교해 볼 때 아직까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13 그러나 96년 들어 국내 게임시장에서 피씨게임의 시장 규모가 300억원대(30%의 시장점유율)에 이르렀으며, 비디오 게임기에 비해 피씨 게임이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의사결정권과 인터랙티브한 속성, 그리고 업소용 게임기의 지속적인 이용 가격 상 승 또한 조만간 놀이공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변수로 보인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과도하게 업소용 게임장들이 동네 여기저기에 문을 열었던 것은 아이들이 아직까지 개인적 놀이 욕구의 해소 공간이 부족했고, 피씨나 게임기를 구입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데 대해 쁘띠 상인들이 밴드웨곤식으로 단기 이윤에 몰려 창업했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14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80년대초 이래 개인용 피씨 의 광범위한 보급과 함께 아이들이 업소용 게임장들을 찾기 보다는 피씨게임을 즐겨하기 시 작했다.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사에 따르면, 미국내 온라인 게임 인구만 현재 990만 정도에서 2001년에는 16억불의 수입과 사용 인구가 1,830만명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 고 보면 15 , 앞으로의 추세는 아케이드용 보다는 컴퓨터에 기반한 네트워크 게임산업이 유망 하리라 여겨진다. <표 3> 미스트와 쥬라기 공원의 비교 수 입 액 * 수입액: 생산비용 인원수(완전고용) 개발비용 회복기 미스트 1억 3,000만 달러 260 : 1 6명 12주 쥬라기 공원 3억 5,700만 달러 6 : 1 500명 1주 범례: * 미국내에서 93년˜97년 9월까지의 수입액만을 포함. 미래형 게임산업의 한 장르를 구성하는 라이븐(Riven)과 미스트(Myst)란 피씨게임용 패 키지는 장차 게임산업이 얼마나 고부가가치 영역인가를 입증하고 있다. 최근 와이어드 (Wired)잡지는 미국, 호주 등에서 최고의 판매율을 기록한 미스트와 최대 흥행을 기록한 스 필버그 사단의 쥬라기 공원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생산비용 대비 260배의 수입액을 올린 미스트의 경이로운 기록은 눈여겨볼 만하다.(<표 3> 참고.) 이는 특히 소프트웨어의 연관효과가 거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스트는 프로그램의 구성 시나리오를 시리즈 용 책으로 출판되거나, 그 배경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어 시판하거나, 마우스패드, 티셔 츠, 가방, 찻잔, 화보 등으로 상품화하여 판매고를 증가시켰다. 16 저렴한 제작비와 소규모 인 13) 뉴스메이커 , 1996년 8월 29일자, 69쪽. 14) 게임장 확대의 또 다른 경제적 요인은 양성화된 슬롯머신 영업장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리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한 유흥업소들의 대응은 소단위의 변칙 영업 형태로 전자 오락실이라는 간 판하에 게임과 도박을 이원화하든가, 음성적으로 숨어들어 개점하는 것 등이었다. 90년대 들어 이 같은 게임방 문화의 개념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오락장’,‘오락실’등 기존의 전자 게임공간을 호칭 하던 간판 글자들의 대부분은 실내 도박장 용도로 둔갑하고, 일반 전자게임 영업소들은 ‘게임피아’, ‘게임센터’,‘게임파크’혹은 오락실 앞에 ‘컴퓨터’,‘두뇌 개발’,‘사이버’등의 수사를 붙여 스스로를 건전한 오락문화로 취급해달라고 호소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 15 ) 인터넷 전문 리서치 기관인 이마케터(eMarketer)의 통계 자료([URL: http://www.e-land.com/estats/ec_hot.html])에서 재인용. 16) Wired, Sept., 1997, pp.126,7. Page 13 13 원 동원, 그리고 전제 조건인 아이디어의 창발성이 제대로 만난다면 동일 영상업종 틀내에 서도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는 놀이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방들은 엑스포와 테마공원 등 거대 오락문화가 트리클다운(trickle-down)된 소비문화의 하위 지형을 형성한다. 그 혜택은 크게 보아 첨단 기술적인 놀이의 시범을 거쳐 대중적으로 보급된 측면과 소비 내용에 있어서 지출의 상대적 저렴성으로 이루어진다. 하지 만 최근에는 전자 게임공간 자체가 대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전자게임방이 테마공원내의 중 요한 놀이공간으로 자리잡거나, 게임방이 게임센터 등으로 체인화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앞 서 세가의 테마공원의 예를 들었듯이, 전자게임만을 위한 90년대식 하이테크 게임센터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3차원(3D) 혹은 가상현실(VR)을 응용한 게임공간 에 대한 기업들의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만도 가상의 오락세계사 (VWE Inc.)가 90년 시카고 일대에 만든 테마공원에 ‘배틀테크’(Battletech)라는 가상현실 게 임센터를 구축했는데, 센터 안에 설치된 14개의 가상현실 캡슐에만 250만불이 투자되었다. 이와 비슷한 게임센터로는 92년 캘리포니아에 개장한 군사 비행용 시뮬레이터, ‘화이터타 운’(Fightertown TM )을 들 수 있다. 그 외 아케이드용 VR 게임기로는 군 산 복합기업인 GM 휴즈 일렉트로닉스사(GM Hughes Electronics Corp.)가 만들어 영국에 1대당 7만 6천 불을 받고 판 ‘코만도’(Commander TM ), 그리고 휴즈사와 루카스 아츠 엔터테인먼트(Lucas Arts Entertainment)가 공동 제작한 ‘미라쥐’(Mirage TM ), VR 개발사인 VPL 리서치사와 MCA의 제휴를 통해 만든 가상현실 극장, W 인더스트리즈(W Industries)가 개발한 수많은 시뮬레이터들이 대표적이다(Hawkins, 1996: 170˜6). 이제 컴퓨터게임들은 빠르게 세분화한 장르나 내용들로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 상점 진 열장의 게임은 대개 장르별로 배열되고, 소비자들은 그럼으로써 시뮬레이션, 퍼즐, 어드밴처 혹은 롤플레잉 게임을 그 즉시 찾는다. 게임의 장르는 직접적으로 주제보다는 게임 유형으 로 구분되나, 게임의 주제와 유형, 이 둘은 종종 폭넓게 결합한다. 대개 시장규모를 측정할 때는 게임의 유형에 따라 분류하는데, 아케이드 게임 혹은 비디오 게임, 피씨 게임, 네트워 크 게임, 가상현실 게임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이용 공간에 따라서는 크게 소규모 오락실, 게임방 등을 포함한 아케이드 공간과 각 가정의 개인 피씨 이용 공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컴퓨터게임만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상호작용성을 들 수 있다. 이 특성하에서 사용자에게는 가상세계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력을 지닌 환경이 영화와 텔레비전의 수동성을 대체한 다. 집안에서는 스크린, 키보드, 조이스틱, 스피커 등의 기계장치가 사용자를 에워싼다. 때론 아케이드에서는 사용자가 말 그대로 기계안에 앉아, 앞뒤로 움직이며, 의자에서 흔들리고, 쏟아붓는 소음을 듣기도 한다. 보다 최근 VR 기계를 통해 사용자는 머리에 헬멧을 쓴 채, 그의 신체운동에 반응하여 시각이 따라서 변하는 3D 환경의 완벽한 환상을 체험한다. 현재 시장에 널리 보급되지 않은 데이터 장갑(data glove)과 같은 여타 장치들은 촉각적 피드백 을 제공하며, 소프트웨어의 임의적인 인터페이스 도움없이도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세계와 직접적 상호작용을 외견상 가능케 한다. 그 장비가 무엇이든지간에, 그 목적은 장면에 한정 되지 않고 행동에까지도 환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게임은 보다 많은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 해, 그리고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체험 내부로 사용자를 가둬두기 위해 애쓴다(Stallabrass, 1996: 85,6). 무엇보다도 컴퓨터게임은 반응, 영상, 음향을 연결함으로써, 사용자가 조정하는 분명하고 통일된 현실을 제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완전몰입의 변화무쌍한 체험으로 이끌고 있다. 전자 게임방 문화는 미시적인 소비 경로를 통해 가상의 오락과 놀이를 생활공간에까지 끌 Page 14 14 어들인다. 일상적인 놀이의 체득화 과정에 합류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다른 학습 기제들 과 달리 게임은 체득 과정이 빠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앞서 본 게임 기술의 자극과 몰입에 서 주어진다. 이미 게임의 설계와 관련하여 난이도 보다는 자극의 양이 재미와 중독성에 비 례한다는 결과가 나온 상태이다. 17 그래서 게임 디자이너들은 보다 강한 자극과 유사 주체성 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게임을 설계하려 한다. 한편 이들은 참여와 상호성을 기반으로 구성 된 게임의 과정이 최고의 개방형 체제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게임에 임하는 역할자가 다양 한 옵션을 통해 게임 원리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 즉 탈신비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세계 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고 주장한다(Friedman, 1995: 81,2). 하지만 역할자의 선 택이란 말 그대로 ‘제한된’옵션에 불과하다. 과정의 개방성은 통제된 개방을 의미하며, 가지 치기된 과정의 종착지는 궁극적으로 동일한 곳이다. 그리고 최초 소프트웨어 설계자들의 편 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객관적 프로그램이란 존재할 수 없다. 게임 생산의 첫 국면에서 이미 설계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을 빼닮은 일상의 ‘부호화’(encoding)가 진행되어 버린다. 게임의 설계물이 이데올로기적 구조물이라면, 게임의 실행은 이를 학습하는 주체의 학습기 제로 작용하고, 게임의 주체적 효과란 현실에 대한 신비화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가상 놀이 의 배설 행위를 통해 사회화된 학습을 스스럼없이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닌데, 예컨대 대표적 시뮬레이션 게임인 씸시티(SimCity )의 내용만 보아도 이 사실을 감 지할 수 있다. “씸시티는 당신을 시장이나 도시 계획자로 만들어, 당신의 꿈의 도시를 디자 인하고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당신의 선택과 설계 기술에 의존하면서... 시뮬레이션으로 만 들어진 시민들(Sims)은 주택, 병원, 교회, 가게, 공장 등으로 입주하여 살거나 보다 나은 생 활을 위해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ibid., 80). 최적의 도시 건설이라는 씸시티의 프로젝트 는 현실의 모방일 확률이 높다. 전략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게임의 동학 에도 적용된다. 18 실업과 연금 기금, 교육기관, 공원 등을 확충하면, 시예산이 곧 바닥날 것 이고 파산에 이른다. 파산전 선고는 게임 중 깜박거리는 위험 신호이며, 게임의 충실한 수행 결과는 디지털 화폐를 집행하고 남은 예산 보유고가 곧 점수로 환산될 것이다. 즉 자본의 질서를 그대로 모방한 게임설계를 게임 개발자들은 무의식 중에 인코딩한다. 이를 통한 수 행 과정은 자본주의적 사회화 과정이며, 그 효과는 현실의 학습효과인 셈이다. 이미 현실의 이야기나 영화, 볼거리들이 게임의 텍스트를 구성하면서, “게임의 세계는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픽션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픽션의 세계”(김창남, 1998: 176)를 구성한 다. 게임의 규칙은 현실을 모방하고 은유한다. 물론 게임상품이 노리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재미와 중독성이다. 특히 어드벤처 게임류가 부여하는 자극의 강도는 재미로 통하고, 시리즈 를 지속적으로 소비하게 만듦으로써 연쇄적인 이미지를 소비하는 중독의 효과를 얻고자 한 다. 버전업 되기 전 한계욕망점에 이르면 또 다른 시리즈의 개발을 통해 매 단계마다의 욕 망을 부단히 재생산한다. 실지 게임의 난이도는 자극과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한도내에 서만 상승 가능하다. 이제 전자게임은 더 이상 신세대나 남성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전자게임의 태동이 있었던 70년대 중반 이후의 모든 세대들이 그 강력한 소구대상들이다. 이미 전자게임은 여 가 향유의 보편화된 한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 디지털 소공간들을 통한 놀이문화는 그 저변을 확대하여 일상의 재생산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현실의 모사 환경 17) 김동현, 게임산업의 현황과 과제 , 한국멀티미디어협회 주최 ’97 멀티미디어 산업기술 동향 세미 나, 1997년 10월 29일, [URL: http://www.multimedia.or.kr/tech/9710/semi5-4.htm]. 18) 씸시티를 일그러진 현실의 모사로서 상세하게 관찰한 논문으로는 (Bleecker, 1995: 200˜9) 참고. Page 15 15 을 창출하고 놀이를 통한 상품 소비와 사회적 학습기제를 작동시키는 게임공간들의 항구적 (재)생산 과정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VI. 하이테크 소비공간의 사적 변형 앞서 본 몇 가지 사례들은 일상공간의 사유화(privatization) 과정에 대한 90년대식 고찰이 다. 소비공간의 현대적 실례들을 통해 오락기업들이 소비문화를 어떻게, 왜 하이테크 변형시 키는가를 살펴보았다. 다양한 소비공간의 창출과 재생산 속에서 유독 이 세 가지 영역을 주 목한 것은, 우선은 이 물리적 영역들이 첨단적 소비의 첨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역들 이 하이테크 소비 과정의 각 주요 인입 지점이자 연결 고리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적한대 로 엑스포는 하이테크 기술의 실험장의 역할, 테마공원은 집단적 대중화의 역할, 전자 게임 방들은 디지털소비의 체득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각각은 놀이라는 촉매를 통해 (전 시)-실험-운용-정착이라는 고리로 연결되는 과정을 취한다. 이 고리는 실지 각각 소비의 한 국면들이며, 새로운 놀이 기술의 발명과 함께 재순환하는 경로를 따른다. 각 공간 구성의 합 혹은 각 고리의 순환 정도는 그 시대의 소비문화적 농도를 짐작케 한다. 보다 정확히 얘기 한다면 하이테크 소비공간들의 합과 각 고리를 통해 흐르는 상품 연쇄의 회전율이 현대적인 하이테크 소비문화의 농도에 해당한다. 한편 순수하게 하이테크 상품이 각 고리에서 이동하 는 시간의 정도는 오락기업의 창구/연관 효과의 증대와 반비례한다. 또한 소비의 과포화 상 태를 고려하여 각 영역 혹은 고리들은 스스로를 복제하여 확장하거나 이합집산하며, 새로운 하이테크 공간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로써 오락, 게임, 놀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행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훨씬 기술이 소비문화와 결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과 피씨통신을 얘기하면 의례껏 문화를 떠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문화는 소비를 전제해왔고, 소비는 문화를 규정해왔다. 특히 급격한 소비 패턴의 변화는 문화와 일 상공간의 형질전환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들어 가장 큰 소비 패턴의 변화는 소비 의 하이테크화였다. 엑스포, 테마공원, 전자 게임방은 이같은 형질전환의 출발이자 그 심층 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 놀이 또는 문화의 방식이 점차 전화하는가인데, 일차적으로는 거대 오락산업들이 짜는 새로운 이윤 확장로의 모색과 관계한다. 현대적 놀이의 표층을 하이테크 기술로 세심하게 (재)포장함으로써 식상한 놀이의 양식을 가상화하여 새로운 이윤원을 창출 하고자 한다. 둘째로는 이미 거대 자본에 의해 물질적 일상공간들이 축소 및 포위되는 지경 에 이르렀을 때, 그 탈출구는 비물질의 사이버공간과 함께 물질의 하이테크 놀이공간을 통 한 가상적 해방감의 일시적 유포일 수 있다. 즉 억압에 대응한 두 욕구 배설로의 첨단기술 로 익명의 소비자들을 호객하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물리적 공간 이동없는 놀이의 발 굴과 유관하다. ‘보다 빠르고 쉽게’라는 디지털시대의 구호에 어울리게 놀이도 변형되어간다. 붙박힌 자리에서의 놀이, 즉 그 자리에 타고 앉아 돌고, 달리고,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운동 성이다. 프랑스의 도시연구가인 뽈 비릴리오(P. Virilio, 1997: 11)도 동의하듯, 지난 시기가 ‘동적인’(dynamic) 수송 장치들(기차,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 등)의 대중화가 중심이었다 면, 현대의 기술혁명은 ‘행동적이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behavioral inertia)의 도래로 특 징지을 수 있는 시청각 장치의 개발이 주도한다. 망막을 흐려 시각의 착란을 일으킴으로써 속도감을 부여하는 것이 주목표가 되며, 이에 걸맞는 소비자의 유형은 터미널에 고정된 인 Page 16 16 간이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공적 의사표현’(public expression)과 창의력이 표 출되는 공간만은 자본의 침해를 받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이들 공간은 모든 공중이 자유롭 게 참가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이며, 그 공간은 마치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천연자원과 같은 것이었다. 또한 일상공간은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자 기업이 쉽게 침투 하지 못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이러한 일상공간은 자본의 이윤추구라는 원칙과 맞물리면서 사적 공간으로 점유되어 가고 있다. 일상공간에서의 자본형성과 관련한 몇 가지 사례는, 현재의 자본운동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의 무제한성을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거대 기업에 의한 공공 정보자원의 상업화, 기업전시관으로서의 박물관, 새로운 도심가인 교외의 대규모 쇼핑몰에 의해 사유화된 공공 공간, 도시내부에서의 사적인 건조물에 의한 공적 공 간의 축소, 거리의 통제(축제 시위 시가행진 등의 상업화), 상업방송망에 의한 일상공간의 소비주의적 침투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Schiller, 1989: 91˜110). 여기에 자본주 의 사회내 억압적 국가기구들(법 제도 행정 경찰 등)의 일상공간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 을 감안한다면 공공 영역의 축소와 사유화 과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대중의 일상 적 유희 자체도 거대 자본에 의해 수축되고 포위화되는 형국에 이른다. 근원적으로 일상의 이벤트, 게임, 놀이 형식들이 외연을 값비싼 첨단장비로 감싸고 안으로 는 소비문화와 단단히 결합되었을 때 봉착하는 문제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상실이다. 일상 공간을 소비하며 즐기는 대가는 깊이없는 사유와 구체적 현실에 대해 무력해지는 것이다. 즐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 고통을 목격할 때조차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즐김의 근저에 있는 것은 무력감이다. 즐김은 사실 도피다. 그러나 그 도피는 일반적으로 얘기되듯 잘못된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마지막 남아있는 저항의식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오락이 약속해주고 있는 해방이란 ‘부정성’을 의미하는 사유로부터의 해방이다(Horkheimer and Adorno, 1996: 200). 그러나 일면 저항의 복귀를 희망할 수 있는 여지는 하이테크 영상세대들의 문화정치적 활 동에서 움튼다(이광석, 1998). 거대 자본에 의한 하이테크 소비문화의 양성화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비 주체들은 하이테크 문화를 즐기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재구성하려는 습성을 지 닌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문화산업의 철권적 압도에 숨막혀했던 그 당시 예측과는 달리, 이제는 첨단기술의 자본화 과정에 파산 선고라도 내려는 반대 이용세력들, 즉 디지털 저항 의식체의 결집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문제는 문화 영역에 있어 힘의 역학관계인데, 자 본의 지배적인 소비 창출을 빗겨가는 식이라면 새로운 이들은 그저 주변부로 내몰릴 수 밖 에 없을 것이다. 더욱 비관적으로 보자면 이벤트, 놀이, 게임의 양식이 굳건하게 거대 기업 의 의도와 밀착되고, 첨단기술로 외피를 감쌀 때, 그 이상 다른 어떤 것을 사유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하이테크 영상세대가 자본이 사유화하는 영토들을 자신의 자유로운 저항의 기폭 지점으로 활용하기에는 여러모로 힘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오 히려 그들의 개성과 자유가 디지털기업들이 이끄는 스타일 정치문화의 미끼로 이용될 수도 있다. 소비 주체의 욕망을 자극한 하이테크상품의 미끼라는 유혹이 도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자본의 사유화된 영역들에 대한 공개적 점유의 노력들이 중요하며, 깊게 사 유할 수 있는 현대적 놀이공간의 개발이 더욱 필요하다. 이제까지 오락기업들이 추구한 첨 단기술이 소비문화적 변형이었고, 그 이면에서도 공적이고 인간적인 놀이의 요구와 필요에 Page 17 17 도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 매 순간 저항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창남, 1998. 대중문화의 이해 , 한울. 이광석, 1998. 사이버 문화정치 , 게릴라총서 8, 문화과학사. 이정재, 1994. 도시 문화경관 , 문화과학 , 제 5호(봄). 임석재, 1997. 소비사회와 놀이공간 , 리뷰 , 제 12호(가을). 최병두, 1994. 자본주의 도시공간의 정치경제학 , 문화과학 , 제 5호(봄호) Baudrillard, J.(이상률 옮김) 1994. 소비의 사회-그 신화와 구조 , 문예출판사. Bleecker, J., “Urban Crisis: Past, Present, and Virtual", Socialist Review, Vol.24, No.1+2, 1995. Davis, S. G. “The theme park: global industry and cultural form”, Media, Culture & Society, Vol.18, No.3. Debord, G.(이경숙옮김) 1996. 스펙타클의 사회 , 현실문화연구. Friedman, T. 1995. “Making Sense of Software: Computer Games and Interactive Textuality”, in S. G. Jones (ed.), Cybersociety: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and Community, London: Sage. Harvey, D. 1990.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 Oxford: Blackwell. Hawkins, D. G. 1996. “Virtual Reality and Passive Simulators: The Future of Fun”, in F. Biocca & M. R. Levy (eds.), Communication in the Age of Virtual Reality, NJ:LEA. Horkheimer, M. & Th. W. Adorno(김유동外 옮김) 1996. 계몽의 변증법 , 문예출판사. Light, A. & E. Higgs. 1997. “The Politics of Corporate Ecological Restorations: Comparing Global and Local North American Contexts”, Articulating the Global and the Local, in A. Gvetkovich and D. Kellner, Boulder: Westview Press. Panati, C.(이용웅 옮김) 1997.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1 , 자작나무. Schiller, H. I. 1989. Culture, Inc.: The Corporate Takeover of Public Expression, NY: Oxford University Press. Schiller, H., I. 1995. “The Global Information Highway: Project for an Ungovernable World,”in J. Brooks & I. A. Boal, (eds.), Resisting the Virtual Life: The Culture and Politics of Information, San Francisco: City Lights. Stallabrass, J. 1996. Gargantua: manufactured mass culture, London: Verso. Virilio, P. 1997. La vitesse de lib ration, Paris: Editions Galil e, 1995. /trans. by J. Rose, Open Sky, London: Verso. Zukin, S. 1998. The Culture of Cities, London: 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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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속 자본주의 (Fast Capitalism)

아주 괜찮은 인터넷 저널을 소개할까 합니다. 일전에 마크 포스터가 알려준 사이트입니다. 포스터 본인이 최근 자본주의 디지털화를 관찰하고 쓴 글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이같은 저널은 이른바 "신좌파"들의 아주 흔치않은 시도로 보입니다. 글의 체계나 편집진의 면면에서 매우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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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요며칠 도서관에 가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모처럼만에 내 구닥다리 랩탑을 끼고 앉아 유선 랜을 쓸 수 있는 인입선들이 모여있는 한쪽 구석에서 인터넷 서핑을 했었다. 흘낏 한번 주의를 둘러보니 당시 내 주위에 앉아있던 예닐곱명의 학생들은 거의 대다수가 컴퓨터 모양새도 훨씬 내 것에 비해 3, 4년 신형에다 무선 인터넷카드가 다들 장착된 랩탑들을 쓰고 있었다. 필자는 당연 무선 인터넷카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유선랜 케이블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얻은 허무한 답은 컴퓨터 전원 공급처가 그 곳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전기 컨센트를 찾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무선 랩탑들이 헤쳐모여한 것이다. 거의 날아다니는 속도에 무선카드를 장착해 어디든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랩탑들이 전원을 찾아 모여드는 꼴을 상상해보라. 기가 막히기도 하거니와 뭔가 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얼마전 미국 동부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정전에 휩싸였던 당시, 휴대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교통대란이 벌어지면서 결국 인간의 두 다리로 맨하턴 다리를 빠져나가는 인파들의 모습과 비슷한 무기력의 정서가 감지된다. 인간이 쌓아온 기술의 '첨단'이란 수사가 단지 전기 정전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내린다. 그 어떤 외부의 도전에도 끄떡없다는 컴퓨터 서버들이 어느날 버그에 파죽지세로 무너지고 한 국가의 기간망을 속수무책으로 마비시킨다. 올해초 우리 대한민국의 얘기다. 정보입국의 호언장담이 몇 줄의 전자 버그에 꼴사납게 망신당한다. 정보기술에 대한 인간의 열광과 과신을 반대로 통제 불능 위기로 되갚는다. 기술 과신이 불러오는 해악과 부정적 결과는 주위에 부지기수다. 예컨대, 범죄 예방을 위해 CCTV는 사회를 수호하는 안전핀으로 격상된다. 올 한해 한참 공적 논쟁을 이끌었던 강남 주택지구의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이제 전국 설치를 목표로 진군한다. 기술적 수단이 범죄를 줄일 수 있으리라는 통제욕에 눈멀어 광장에서 자행되는 시민들의 인권 침해는 아랑곳없다. 개인의 사생활은 무엇보다 정보기술이 지킬 것이라 맹신하는 부류는 프라이버시 향상 기술들(Privacy Enhancing Technologies: PETs)에 목숨건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필터링 소프트웨어와 차단 프로그램은 막아야 할 것은 못막고 쓸데없이 건강한 정보들만 수없이 다치게 한다. 외설을 지칭하는 키워드들로 무식하게 체로 걸러내 이에 맞지않는 멀쩡한 사이트들까지 황천에 보낸다. 9-11 동시다발테러 이후 테러분자를 잡겠다고 부쩍 수요가 늘어난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도 대표적인 기술 남용의 사례다. 위성으로 사람의 동작 패턴을 연구하고 각 인간이 지닌 고유의 동작에 의거 사람들을 분별하겠다는 논리나, 마구 수집된 개인 정보를 통계값으로 환산해 이례적인 수치가 발생하면 '테러분자'로 몰겠다는 구상 자체에는 인간 감정이라곤 전혀 없다. 혹 오류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는 기계 오류에 불과하다. 이에 테러 혐의를 받고 영장없이 구금되고 다치는 사람의 권리엔 별 관심이 없다. CCTV, 프라이버시 기술, 데이터마이닝 같은 통제형 기술들이 오늘날 각광받는데는 자율의 조절 능력도 깊이도 없는 소비형 기술에 익숙한 현대인의 속성이 크게 가세한다. 기술 원리를 배우려 힘을 뺄 필요도 없다. 그저 편하게 이용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낡으면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기술을 이렇듯 소비 대상으로 보도록 현대인들을 길들여왔다. 그러다보니 간단한 오류나 고장에도 대개는 속수무책이다. 만들어진 기술의 원리는 항상 봉합되어 감춰져 일반인들이 알기가 더욱 어렵다. 첨단 정보기술 장비들이 전원 문제에 속수무책이고, 버그에 인프라 서버가 불통이 되고, 통제형 기술이 낳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비 못하는 현실은 기술에 대한 맹목, 본질적으론 시민과 분리된 기술의 엘리트화로 생긴다. 해가 거듭할수록 인간이 느끼는 기술에 대한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이 부품을 사서 쉽게 바꿔 끼우거나 손볼 수 있던 제품들도 이젠 개인이 접근하기에 불능에다 손쓰기도 힘들다. 소프트웨어 코드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개인적 용도로 쉽게 소스 코드를 바꿔 쓰던 시대는 갔다.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는 워낙 복잡해 개인이 어쩌기에 역부족에다 들여다보려해도 온갖 보안 코드에 각종 지적 재산권의 방벽이 버틴다. 보기만하고 만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술은 맹신의 대상으로 등극한다. 막연히 좋고 추종해야 할 첨단의 어떤 것으로만 다가온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기술도 오케이다. 동작 원리와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니 기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크게 터지면 일반인은 고사하고 전문가도 허둥댄다. 운좋게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새 풍속도가 관찰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협업으로 일대일 파일 교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공개 소스를 이용해 자유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기술 원리에 개입하고, 효과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새로운 정보기술 이용자들이 슬슬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기업들이 조장했던 기술 과신과 맹신을 일소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기술 통제력 상실을 메꿀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과연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가 나가도 당황하지 않고, 버그에 허둥대지 않고, 통제 기술들에 열광하지 않는 미래는 일반 이용자들 곁으로 여러 기술 내용을 공개하고 그 기술을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통제 불능의 기술들이 언제 발광할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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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교육 현장에 디지털같은 자유의 바람을

교육 현장에 디지털같은 자유의 바람을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자유, 상상, 실험. 인터넷의 덕목들이다. 이는 종교적 삼위일체마냥 뗄래야 뗄 수 없는 상 호 긴밀한 가치들이다. 이 셋 중 어느 하나가 절뚝거려도 그 사회의 정보 성숙도 수준은 한 참 밑돌 수 있다. 손발과 머리가 자유롭지 못하면 상상은 고사하고 연명하기 바쁘다. 상상력 이 억눌리면 당연 실험도 기능적이고 조잡하다. 자유가 억압받아 상상이 늘 가뭄인데 무슨 기발한 실험과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가만 우리 현실을 보자. 한창 텔레비전에서 수험생들의 '아침밥 먹이기'와 폭주족 학생들 을 선도하는 안전 '헬멧 씌우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는 교육 시장의 억압과 피말리는 경쟁 상황을 복구할 어떤 제도적 장치에 대한 눈꼽만큼의 기대치도 사라졌기에 나오는 슬픈 고백담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아이들의 채워진 족쇄를 내칠 힘이 부족해 소시민들이 그저 멍든 상처만 어루만지는 꼴이었다. 그래서, 자유의 바람은 교실에 입성한 밥차의 향긋한 밥 냄새나 헬멧을 쓰고 퇴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기대해선 곤란하다. 한창 바람의 공부하는 학생들에 신선한 자유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다. 날 아다니는 구둣발에 채이면서 자란 세대는 정신적으로 공황에다 불구가 된다. 불구가 된 상 상력으로 어디 피부 속에 실리콘칩을 심어 인터넷으로 감정 상황을 확인하는 장치를 만들 고, 의식의 확장 실험을 하기 위해 인조 로봇 팔을 만들고, 몸에 차는 컴퓨터를 개발해 늘상 입고 다니는 등의 기발한 상상과 실험이 나오겠는가. 제도권 교육은 학생들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유를 체험한 그들이 성장해 다시 토해내 는 가치가 바로 그 사회의 부가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자유의 흡수력은 나이에 따라 틀리다. 자유, 상상, 실험, 뭐든 빠를수록 좋다. 인터넷의 덕목은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 서 발휘돼야 한다. 의무 교육기관에서 당장 어려우면 보다 환경 조정이 유리한 대학 강의실 에서 먼저 자유의 덕목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대학생들은 학원 특강에 길들여져 그저 교수의 어록들을 줄줄이 받아적기에 사투 한다. 교수들도 여전히 불사초를 먹었는지 가는 세월을 막고 강의가 한결같다. 미술교사의 예술이 '빤스' 벗었다는 이유로 외설이 되고, 대학 강사의 특이한 예술 강의가 찬반 격론의 화두가 되는 우리의 현실에선 자유의 바람은 아직 낯설다. 줄쳐진 길에 따라 안가고 금밟고 넘어가 권위에 도전하면 온갖 시련을 감수해야 한다. 움치고 뛰는 것도 사방 제재니 상상력 이 제대로 발동될 리가 없다. 가뭄에 콩나듯, 제대로 된 상상력의 소유자가 나타나도 어느새 억압과 권위의 칼날에 싹둑 잘려나가기 일쑤다. 다 지난 친일을 들췄다 해서, 재단의 권위를 업신여겨서, 교수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 해서, 미국을 알게 했다 해서 쫓겨나는 자유의 정 신을 가진 학생들과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판을 깨기에 현실이 가하는 힘이 너무 담대해 보 인다. 정장을 갖춰 입지 않았다 해서, 야외 학습 한번 했다해서 선생과 대학 강사가 경고먹는 비정상적 분위기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면 미래는 없다. 학교에서 구둣발과 매로 숱하게 얻어맞고 짓눌려 자라온 나같은 불쌍한 이들은 평생 창의력 과 무관하게 산다. 외국 교수들을 처음 보고 순간적으로 머리부터 숙이고 움츠러드는 반사 능력을 보고 있자면, 이것이 우리 교육이 내게 남긴 유일한 자랑거리같아 씁쓸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는 동방 예의지국 어쩌구하는 것과 다른, 억압적 현실이 남긴 원초적 본능 의 허접 쓰레기에 불과하다. 외국 명문 교육 기관, 산업 현장 시찰입네 하고 나이 지긋한 행정관료나 교육자들을 내 보내 겉만 핥고 오는 관행도 그만둬야 한다. 시찰을 하더라도 교육 철학, 커리큘럼, 교수법 등이 미시적으로 관찰돼야 뭔가 소득이 있다. 그 곳에서 학생들이 누리는 자유의 정서, 상상 력의 만개, 그리고 늘 새로운 실험 정신이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말짱 시간 낭비에 혈세 축내는 여행길이다. 더불어 우리 교육 현장의 근본을 못보고 남의 성과에 입만 벌려봐야 상처받는 것은 또 다시 우리 아이들이다. 아직 희망의 거처는 존재한다. 딱 두 곳이다. 학생과 선생님, 특히 대학에서는 대학 강사. 학생은 뭐가 됐든 자유의 바람을 만끽하려는 주체이기에 항상 열려 있다. 이들의 자유는 기 성의 억압에 버튕기는 선생님들과 강사들의 자유와 상상력에 좌우된다. 서로 전자우편과 인 터넷 피드백도 주고받고, 웹 페이지도 만들고, 온라인 게임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차적 정서 공감대가 시작이다. 교실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외부 인적 자원의 네트워크가 활용될 수 있다. 입시에 맞춰진 중·고등 교과과정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다방면의 이색 전문가들, 디지 털 예술가, 벤처 사업가, 지역 활동가, 환경 운동가 등을 수업 내용에 맞춰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 내용의 파격도 필요하다. 학생들의 상상력이 잘 발동하고 다양한 실험 정신 을 부추기는 방법이라면 모험적으로 시도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호 칼럼(하이퍼링크 사 회 만들기)에서 얘기됐던 교수 선발의 다층화, 학제간 프로그램 공유와 협동 과정도 함께 적극 모색돼야 한다. 공교육을 더 이상 신뢰못해 기러기 아빠가 수없이 생기고, 형편 불구하고 해외로 자식을 내보내는 우리 현실은 보기에도 참담할 지경이다. 공교육의 장에 그리고 대학에 디지털같이 자유롭고 탈권위의 자유로운 교육 철학의 새 바람이 불어, 우리 교육의 미래가 한결 밝았으 면 하는 바램뿐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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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초고속 인터넷을 쓰며 시·공간의 벽을 넘어 마음대로 움치고,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세상 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전자공간에 비해 현실의 장벽은 부동에다 견고하기까지 하다. 그 러니 살면서 막히고 부딪히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좁은 울타리를 둘러 쳐놓고 이방인을 꺼리며 분과 학문 속에 꼭꼭 움츠리는 학계 현실을 보자. 학문의 본성상 갈갈이 찢겨선 얘기될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경계넘기'는 주제넘은 월담이요 월권으로 취급된다. 교수 임용에도 끼리끼리와 가족주의에 멍들어 암만 능력있는 학자도 룰을 벗어나거나 외도를 하면 '따' 당할 판이다. 기득권은 움켜쥐고 책임은 떠넘겨라. 이런 악습은 조직 사회에 더욱 지배적이다. 지하철 사고가 터지고 물난리가 나고 태풍이 강타해 사람이 깔리고 죽고 하면 여전히 부처간 책임 미루기에 목숨건다. 철마다 뭔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고위 공직자는 많은데, 정작 부처간 협 의로 위기를 넘기고 대책을 부심하는 노력은 드물다. 부처간 정책이 중복되거나 말거나 예 산 낭비를 하더라도 이권이 달리면 목숨걸고 혼자 독식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함께 일을 매달려 처리해야 할 때는 흩어져 서로가 적이다. 이렇듯 사회 현실을 보면 기득권과 이권에 의해 마구잡이로 금이 그어져 있고 외부의 근접을 철저하게 막는 높은 옹벽이 솟아 있다. 대학이 분과 학문들로 분리된 지는 오래다. 그 대부분의 책임은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헤쳐 모여"였다. 기업이 원하는 인간형에 맞춰 각 분과 학문들은 공장 분업 마냥 철저히 나눠졌다. 그러나,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분과 지식의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젠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학문간 경계를 넘는 '학제간' 연구가 흔하다. 서너 개의 분과 전공을 아우르는 학제간 학위 과정도 여기저기 생긴다. 교수들도 그룹 토 의에서 다양한 인종의,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한다. 사회과학 분야에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임용되는 일은 벌써부터 흔하다. 이들에게 학문적 월경은 불 경이 아니라 자연스런 학문 지평의 확장 방식이다. 오히려 분과를 넘지 못하는 학자야말로 인식의 협소함으로 한참 뒤쳐지기 마련이다. 60여년전 옛날 얘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전후 1945년에 미국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인 배 니버 부시(Vannaevar Bush)는 '미멕스'(memex)란 이상한 기계 장치를 논한 유명한 글을 썼 다. 그는 소통하지 못하는 분과 학문들의 한계,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 의식과 과학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해소하는 장치를 구상했다. 그의 꿈은 인간 의식과 지식을 서로 연결할 수 있 는 기계 장치, 미멕스의 개발이었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지만 분과 학문과 의식의 한계치를 가상의 연결을 통해 확장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제와 보면 '하이퍼링크' 기능을 지닌 거대 슈 퍼컴퓨터의 기획에 해당한다. 부시의 미멕스는 오늘날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기능의 원조이자 기술적 수단을 빌어 인간 의식의 경계넘기를 시도한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물론 인간 지식을 거대 미멕스에 집적 하려는 시도는 '빅브라더'의 혐의를 충분히 받겠지만, 분과 학문간 지식을 링크로 연결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희망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벽을 두고 있지만 서로 부분적으로 교집합이 그려지는 곳들이 태반이 다. 인터넷은 요 합치는 부분을 검색으로 모아주고, 하이퍼링크로 넘나들게 해준다. 링크들 이곳저곳을 넘다보면 의도치않게 해결점을 찾거나 중요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실의 법칙은 다르다. 분명 하이퍼링크로 연결만 되면 지식 효과가 제곱 이 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처 이기주의'와 '제 밥그릇 챙기기'가 그 연결을 가로막는다. 한가지 정책 입안 사례가 떠오르면 대개 문화관광부, 정통부,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가 함께 머리를 모아 지혜를 발휘해야 해결되는 일이 다반사다. 분명 최소한 서너개의 정부 부처가 연루되고 합심해야 일이 풀린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모든 업무나 안건이 더욱 뒤 엉켜 그만큼 사회에 인터넷의 링크같은 기능이 절대적으로 아쉬어진다. 그래서, 학교, 관공서, 기업 조직, 정부 부처 등 모든 곳에 하이퍼링크의 태그들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형식적인 업무 협조로는 부족하다. 어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구색으로 의례 껏 마련한 관련 단체나 그룹 홈페이지들을 늘어놓는 형식적 링크 방식으론 곤란하다. 단위 분과, 부처, 학과 등을 링크로 연결해 상호소통의 길을 터놓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링크 는 마치 하이퍼텍스트의 구조처럼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에서 이해를 구하는 보다 긴밀한 연 결 구조라야 한다. 예컨대, 부처간 사안을 아우르는 링크 형식이 전문 위원회(task force)든 특별대책 팀이든 아니면 보다 유연하고 작은 조직 단위로라도 수시로 빠르게 구성되어 함께 지혜를 짜내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물론 사회의 장벽을 넘어 링크를 만드는 작업은 인터넷에서 링크의 태그를 만드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 어렵더라도 사회적 링크들을 하나둘 만들다보면 조직의 유연성과 개방성은 물론이고 이는 결국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된다.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단 처한 곳 너머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협업하는 사회 각 부문의 하이퍼링크가 그래서 절실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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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올 여름은 정말 바빴다. 무슨 연구활동을 많이 해서나 원고 청탁에 볶여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순전히 여섯 살 먹은 내 아이가 다닐 여름 캠프들을 발에 땀나도록 쫓아다녔기 때 문이다. 이곳 텍사스에서 보통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3개월 가까이 되는 무덥고 길고 긴 여 름방학을 지혜롭게 날 수 있는 방법으로 여름 캠프를 선택한다. 이도 없으면 펄펄 나는 아 이들에겐 여름은 지옥과 다름없다. 대개 부모들은 방학 시작하기 전 한두달 정도 앞서 여름 캠프 문의에 분주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직접 가서 답사하고 전화로 문의하는 등 열성을 보인다. 그 정도 서둘러야 빨리 마 감되는 인기 캠프에 그나마 자녀를 집어넣을 기회를 얻는다. 여섯 살박이는 거의 오전 혹은 오후를 소요하는 반나절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부모는 아이를 집에서 캠프장까지 데려가고 데려와야 한다. 어떤 곳은 도시락이나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은 보통 1, 2주 단위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이나 낯섦은 그리 걱정거리가 못된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매달리다가도 쉽게 익숙해지고 나중엔 부모가 오가는지 별로 관 심도 없어진다. 물론 이곳에도 컴퓨터, 미술을 배우고 놀이와 운동을 배우는 곳이 캠프의 주종목 중 하나 다. 하지만, 여름 캠프의 인기 종목은 따로 있다. 한국에서 어린이들의 방과후 일상을 지배 하는 사설 학원들의 비슷한 종목들보다는 야외 학습 프로그램이 단연 인기다. 여름 캠프라 하면, 이곳 아이들은 동물원, 식물원, 조경원, 농장, 민속촌, 목장 등에서 소나 염소 젖짜는 법, 버터 만드는 법, 먹이 주는 법, 동물 닦이는 법, 청소하는 법, 식물 가꾸는 법 등에 더욱 친숙하다. 상가건물 내에 운집한 숱한 학원들에 아이들을 강제로라도 몰아넣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얄밉도록 이곳 아이들은 야외에서 즐겁게 자연을 배우고 풀밭에서 뒹군다. 말과 소에 여물을 주고, 돼지 구정물을 비우고, 곤충과 파충류를 만지고 관찰하는 등 아이들 의 동심에 대한 자극소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이 누리는 전원식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질적 우월에 찬사를 보낼 필요는 없 다. 배울 것은 운용의 묘다. 내 아이를 여러 캠프에 보내면서 캠프 운영의 면모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이미 있는 기존의 도시 자산을 가지고 아이들의 프 로그램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운영이 잘 되는 여름 캠프는 도시에 등록된 공원이 나 자연 보호 지구에 적을 둔 비영리 단체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의 공공 예산 지원 을 받고, 자체적으로 이미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로 기능하고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비영리 기관들은 여름 캠프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활동을 알리고, 아이들은 덕분에 이를 배우고 체험하는 장으로 삼는다. 우리에겐 이들 장소들은 쉽게 '관람/열람 시간외 출입금지' 의 명패를 굳게 걸어 잠그는 곳으로 익숙하다. 입장권이나 사야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것 들을 침묵으로 지켜봐야 하는 장소들이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식물원 등 우리의 도시 문화 자산들은 와글거리다 한번에 빠져나가는 어린이 단체관람 명목 외엔 그 쓸모가 없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현장 학습의 장으로 프로그램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곳에 비영리 단체들의 웹사이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여름 학습 프로그램이 저렴한 비용으 로 세부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아이들의 학습장을 위한 첫발은 도시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문화자산들을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생긴다. 자산 규모는 별 문제가 아니 다. 대형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등만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것 은 아니다. 아이들은 처마밑에 매달린 거미줄처럼 하찮다고 여기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낀 다. 처한 규모의 영세성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뭐든 재배열되면 아이들에게 학 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이는 사회적 자원을 함께 나누는 공유 모델이다. 페카 하이마넨(Pekka Himanen)의 <해커윤리>란 책을 보면, 그는 소프트웨어의 공유와 나눔의 철학을 배워 전 사회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의 '오픈소스' 철학을 모든 가치있는 자원을 서로 함께 나누는 사회의 공유 모델로 키우자는 얘기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곳 여 름캠프는 하이마넨의 사회적 공유 모델과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권위나 관성 논리로 꼭꼭 가두려는 무지보단 비록 크기가 작고 내용은 적지만 이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사 회의 넉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에겐 아직 한 사회가 아이들의 현실과 미래 를 고민하며, 밑천없고 부끄러운 호주머니라도 다 털어 아이들에게 내보이려는 어른들의 용 기가 보여 부럽기 그지없다. 반대로 우리의 사회, 문화적 자산에 대한 공적 접근로는 거의 폐쇄적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를 내보이는데 인색했다. 내보이는 것도 격식을 갖추고 규모를 따지고 장구한 뭐가 있어야 그 폼이 산다고 봤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처럼 방탄유리 저 너머 존 재하는 범접 불가능한 권위의 상징이다. 우선은 이런 수많은 국고 지원의 문화기관들이 폐 쇄성을 딛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면 밑천 없다 생각하는 단체들 도 용기 백배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일례로, 대학이나 비영리 시민 단체들이 나서 파고다 공원 등의 도시 공원들의 환경과 역사를 배우거나, 도시내 박쥐 서식 처를 탐사하거나, 가까운 한강과 바다 갯벌의 생태를 학습하거나, 민속촌이나 충무로 영화 현실 등을 배우는 게릴라식 여름캠프도 가능하리라 본다. 궁극적으로 이는 사회적 공유를 통해 어린이 세상을 가꾸는 현명한 길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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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품행제로' 쾌륜주행(快輪走行)의 두발 바퀴 찬가

'품행제로' 쾌륜주행(快輪走行)의 두발 바퀴 찬가 : 스잔의 롤러에서 아마존 세그웨이까지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CyberMarx.Org) 난 요즘 킥보드를 탄다. 소유자는 물론 내 아들이다. 하지만, 타는 시간이나 횟수로 따지 면 내꺼나 매한가지다. 쉽게 높이 조절이 되고 어지간한 무게는 견디게 만들어져 가능한 일 이다. 한발로 세게 차고 다른 발로 균형잡는 그 맛이 남다르고, 경사진 내리막을 달리는 속 도감이 좋아서 탄다. 어느새 이 두발 쾌륜이 없으면 생활이 무료할 정도가 됐다. 자전거를 처음 접했던 때처럼 처음엔 넘어질까 겁나고 균형잡는 것도 힘들지만 누구나 곧 이 물건에 쉽게 적응한다. 킥보드에 익숙해지면 다음엔 길의 생리를 배운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길이 가진 다양한 결을 느끼게 된다. 길의 굴곡, 턱, 웅덩이, 장애물, 경사, 재질 등 순조로운 주행을 위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주의력은 필수다. 당연히 자주 달릴수록 사사로운 길의 질감까지 눈에 들어오고 그 각각이 주행코스에 포함된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이 두발 쾌륜은 길에 대한 감각 변화는 물론이고 개인 습성도 변화시킨다. 매일 수백여 미터 앞에 놓인 우편함을 뒤지러 가거나 동전 세탁을 하러 언덕진 곳을 내려가거나 이웃집 에 놀러 가거나 할 때마다 이미 내 손은 킥보드의 핸들을 잡는다. 기분이 꿀꿀해질 때도 이걸 끌고 동네 한바퀴면 그 순간 자유롭다. 무공해 두발의 운송장치와는 인연이 많다. 몇 백원에 빌린 자전거로 온종일 발 굴리던 여 의도 앞 광장, 그리고 영화 <품행제로>에서 80년대 중반 가수 김승진의 '스잔'이 울려퍼지 던 탈선의 주무대 '롤러장'은 순진했던 중딩과 날날이 고딩 시절에 또래들과 줄곧 찾던 마음 의 고향이기도 했다. 이제와 보면 당시 제도 이탈과 탈선에 희희낙락했던 시절이라 두발 물 건의 묘미를 제대로 느껴보진 못했던 것 같다. 30대 중반을 넘기며 이제사 아들의 킥보드에 서 쾌륜의 맛을 찾은 것이다. 국내에선 '바퀴신발'같은 기발한 물건도 나왔지만, 내겐 남다른 충격 경험이 직접적으로 두발 장난감에 크게 매료된 동기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첫화면에 가보면 큰 두발 바퀴를 가진 이상한 장난감이 판매된다. 6백여만원을 호가하는 이 비싼 장난감의 이름은 '세그웨이 인간 운송기'(Segway Human Transporter)다. 이전까지 무심하다 한번은 우연히 대학 캠퍼 스에서 두 젊은 남녀가 이 이상스런 기계를 몰고가는 것을 실제 목격하곤 그 경이로움에 입 이 얼어붙던 적이 있었다. 자가충전식 배터리를 가진 이 장난감은 꼭 미래 어느 도시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은색의 차가운 디자인에 잔잔한 기계음을 토해내며 내 옆을 스르르 지나쳤 다. 세그웨이에 비하면 킥보드는 턱없이 원시적이었지만 이 일로 어느새 두발 가진 장난감 들에 마음이 쏙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타다보니 킥보드는 영락없이 초창기 인터넷 접속의 짜릿한 기분을 상기시킨다. 스케이팅 보드를 잘 타 미국 아이들의 우상이 된 토니 호크(Tony Hawk)나 '스타' 게임을 잘 해 영웅 이 된 프로 게이머에게서 드는 정서상의 차이란 크게 없어 보인다. 내 스스로도 요샌 킥보 드 타고 우편함을 들려 편지를 확인하고 오면 마치 회선을 이용해 전자우편을 받는 기분이 든다. 익숙해지며 느끼는 재미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지나며 느끼는 아기자기한 속도감 이나 그 까닭에 드는 자유스러운 기분 등이 서로 엇비슷하게 일치한다. 이런 기분이 부자간 30년 세월의 간극을 쉽게 타넘듯, 인터넷을 사용하며 세대간 차이와 장벽을 쉽게 무너뜨렸 던 요인인 듯 하다. 근데 하나 문제가 생겼다. 아들과의 30년 세월 간극은 우습게 무너졌는데 오히려 주위 어 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내가 사는 동네의 미국인들이야 내 노는 꼴이 전혀 문제될 것 없 지만, 역시 걸리는 것은 동류 한인들이었다. 아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거 어른도 탈 수 있는 거요?"나 "살 빼러 운동하시나 보죠?"나 "그래서 살이 빠지나"다. 내 나이에 놀고 있는 것으 로 봐주질 않는다. 이 정도면 과분한 평가다. 모르는 이들의 시선은 더욱 혹독하다. 뭐 씹은 듯 쳐다보거나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듯 혀까지 찬다. 상식의 권위로 보면 내 행위는 'X팔린' 짓이다. 구태의 불편한 응시를 대하면 자연히 내 자유는 움츠러든다. 거침없이 다니던 대로와 대 낮을 피해 밤에 타거나 집 주위만 돌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세대간 장벽은 극복해도 동류 세대의 편견을 극복 못한 현실의 아이러니다.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과 문화 도입기에 이런 일은 흔하다. 분명 사고와 행동에서 더 큰 자유로움이 수용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처음 부터 구태의 잣대로 새로운 것에 모멸감을 안겨주려는 태도가 존재한다. 낯선 것들에 대한 지나친 경계와 선입견은 정작 이로운 것들을 주눅들게 한다. 예컨대, 인 터넷상의 음악 파일공유나 게시판 문화 등은 새로운 자유의 문화와 기술이다. 이에 대한 적 대의 시선은 열심히 킥보드를 끄는 내 모습에 처음부터 혀를 차는 태도랑 하등 다를 것 없 다. 있는 그대로 봐주려 않는다. 소수, 주변, 개인, 자유, 공유 등의 낱말은 아직도 사회 체제 의 부작용이다. 뭐든 옛 틀에 사지를 꼭꼭 집어넣으려 든다. 현실의 권위에 눌려 킥보드를 타기 위해 박쥐가 된 내 꼴처럼 언제 어디서 나랑 비슷한 처지의 주눅든 인터넷 기술과 문화가 현실 무대 뒤로 쓸쓸히 퇴장 당할 지 모르는 일이다. 덜컥 그런 생각에 이르니 낮이고 밤이고 대로변에서 'X팔림'을 무릅쓰고 자빠져도 꿋꿋이 킥보드를 발로 밀고 다닐 배짱이 절로 난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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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배려의 미덕에서 정보 소외 퇴치를

배려의 미덕에서 정보 소외 퇴치를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미국에 몇 년 지내면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은 것이 있다. 화폐경제의 법칙에 모든 것 을 철저히 가두면서도 무일푼의 거지도 움칠 구멍을 항상 만들어둔다는 사실이다. '빵'하고 터질 계급간 적대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항상 '쉬익-'하고 김빠지게 만드는 화해의 묘한 배출 구를 마련한다. 삶과 문화의 밑바닥까지 속속 배어있는 융통성과 배려의 숨구멍들이 사회적 약자의 분노와 소외를 막는 좋은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보자. 강연, 공연, 학술대회 등은 여러 가격 등급이 존재한다. 대개 학생과 저임 금 생활자는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기본이요, 입장료를 지불할 수 없다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든 마련돼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각종 문화 행사 프로그램들도 마 찬가지다. 저임금 생활자를 위한 장학금들이 적지만 항상 존재한다. 잘사는 가정의 교육자본 에 비교할 순 없어도 원한다면 최소한의 과외활동이 무료로 제공된다. 형식이건 진심이건 배제보다 기회의 균등을 돕는 규칙이 있다. 뉴스 정보도 마찬가지다. 보통 전국 신문이나 지역 독점 신문보다 차라리 지역 생활 정보 지가 지역소식에 더 자상하고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공짜 공연·파티·모 임·영화 등 수없이 많은 정보와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결국 1300원씩 주고 <뉴욕타임스> 나 등 전국지를 사서 보지않더라도 매주 나오는 생활 정보지와 지역 어디 에나 배포되는 학교의 일간지, 시민·문화 단체 소식지 등을 집어보면 어지간한 지역 사정 은 빤해진다. 신문을 구독해 볼 수 없는 여유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대안매체들이 여럿 존 재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도서관들은 물론이고 대학 도서관에는 지역주민들 누구나 출입하고 자유롭게 이용한 다. 이들을 위해 마련된 컴퓨터들에서 인터넷과 정보 검색은 기본이다. 신원확인만 되면 대 출도 자유롭다. 지역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의 시청각 자료를 무료로 대출하는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비디오 대여가 힘든 가정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한편 일반 가정은 미취학 아 동들을 주로 유료 놀이방에 보내지만, 최저 생계비 기준에나 미치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아 이들을 위해 일년간 유치원 이전 과정(Pre-K)을 마련해 각종 교육 활동과 무료 급식을 제 공한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문화적 혜택의 숨구멍들이 여기저기 마련돼 있다. 예서 미국이란 나라의 사회적 복지 수준을 재거나 비교해 부러워하자는 의도는 전혀 없 다. 필자가 느끼기엔 오히려 미국은 상품화되고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사회이지 유럽식 복 지국가들처럼 절대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을 구조적이고 정책을 통해 적극 배려하는 나 라는 아니다. 이곳에서 상품 시장의 논리는 혹독하고 잔인하다. 이 안에선 한푼의 에누리도 없을 뿐더러 약자의 배려도 없다. 없으면 박탈되고 차별받고 숨죽이고 배제되고 흐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영리하게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핀을 가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분노 가 표출될 수 있는 분위기가 적어도 무마되는 데는 미국 지역 사회 나름의 문화 소외와 정 보 소외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존재한다. 이를 보살펴주는 최후의 보루는 지역 사회의 비영 리 단체들과 기관들이다. 이제까지 살펴봤던 배려의 미덕은 오직 이곳들에서만 살아있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 필자가 미국 대학의 도서관에서 놀란 사실은 부랑자같은 허름한 차림 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컴퓨터 앞에 잔뜩 꾸부려 앉아 인터넷 검색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을 봤을 때다. 누군가 그들을 구리거나 지저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규칙이 조금이라도 잡혀있다면 그런 불평은 서서히 잦아들기 마련이 다. 정보 소외의 문제도 정부나 자치단체의 통큰 투자로 만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를 푸는 첫걸음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형식 적 장치들을 조금씩이라도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마치 이는 언제부터인가 노약자를 위해 버스와 지하철에 자그만 좌석을 마련하는 배려의 사회적 룰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회 곳곳에 약자에 대한 배려의 미덕이 스며있다면 사 회가 그리 삭막하지 않다. 예를 들어, 원칙을 가지고 소수의 장학금을 마련하거나 공짜로 입 장을 시켜도 사실 학원, 극장, 공연장은 그리 크게 손해보지 않는다. 예닐곱 등급으로 좌석 을 구분해 입장권을 팔아먹어도 최소한 배려의 장치가 존재한다면 현실이 그리 서글프진 않 을 것이다. 박물관, 놀이동산, 학교 도서관, 서점 등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의 자산인 학교 도서관 등을 지역주민들이 공유하면 당연 자원관리의 효율성을 높아진다. 소자본의 동네 서 점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지역 서점들도 단지 주민들에게 책을 파는 곳이란 이미지를 벗어 나 어린이들의 책읽기 공간이자 지역 주민들간에 소통을 돕고 지역의 능력있는 작가를 발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박물관, 놀이동산, 동물원 등도 특별한 날엔 어린이들의 무료 입장에 인색하지 않고 이들을 위한 저렴한 학습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깊숙이 연계할 필요가 있다. 배려의 미덕은 말 그대로 강제가 아닌 자발의 영역이다. 그리고 설사 이를 행하더라도 몽 땅 경제적 비용과 손해로 처리되지 않는다. 거대 기업들의 기부나 문화 사업마냥 결국은 베 푼 쪽에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가져다준다. 정부 각급 단체, 교육 기관, 문화 공간 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의 숨구멍들을 지금부터라도 틔우기 시작한다면 문화와 정보 소외 해결의 단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베푼 자신들을 역선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배려의 장치들은 현실적으로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약할 때 사회적 약자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의 활력이기에 그 가치가 크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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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정보 접근의 건강 비법: 각자의 링크들을 다양화하기

정보 접근의 건강 비법: 각자의 링크들을 다양화하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지난 해 요맘 때일까? 농구로 살을 털어내던 기억이 난다. 그도 무리해선지 허리가 짱하 며 갑자기 쓰러져 얼마간 일절 운동을 삼갔다. 그리곤 어렵사리 내쫓은 군살들이 얼씨구나 하고 내 몸, 특히 배에 집중해 다시 자리를 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몸 의 위기가 다시 찾아오며 시작한 것이 조깅이다. 그런데, 이 운동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랑 상관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네모' 가슴 등 기하학적 몸을 만드는 뿌듯함도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맴맴 돌기만 한 다. 투자 시간에 비해 살이 확 빠져나가는 느낌도 적다. 그럼에도 잃는 것만큼 득도 크다. 나같이 15여년을 넘게 니코틴을 갈아 마셔 호흡 계통이 엉망인 골초들에겐 조깅은 회생의 광천수와 같다. 게다가 무슨 큰 기량이 없어도 주위 눈치볼 일없다. 갈 수 있는 길만 있다면 어디든 간다.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비싼 도구를 동반할 필요도 없다. 배 나온 조깅 초보가 독자들에게 '건강비법'입네하고 어설픈 구라를 풀려고 이리 조깅의 장광설을 띄운 게 아니다. 뛰며 걷는 조깅을 하다보니 직업상 깨친 게 하나 있어서다. 몸을 다스리려는 조깅 습관과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 능력을 키우려는 현대인의 정서 구조가 꼭 닮았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정보 취사 방식은 온과 오프(on/off) 모두에서 원하는 정보원에 연결하는 링크 (links)의 과정이다. 링크 선택과 방식에 따라 정보 효율은 달라진다. 이에 대해 조깅 환경은 비유적으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느 길을 자신의 조깅 코스로 삼느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는 심폐 등 신체 기능, 정서상의 치유, 예상치 않은 지인들과의 만남 등 효과가 틀리다. 강 변, 캠퍼스, 산길, 아파트 등 동네 주위, 시내 거리 등 달릴 장소 선택의 경우수는 무수히 많 다. 선택한 코스에 따라 벌어지는 조깅의 스타일도 많은 것을 얘기한다. 천천히 그리고 빨리 걷는 사람, 천천히 그리고 빨리 뛰는 사람, 애들을 싣고 밀며 뛰는 사람, 개를 끌고 뛰고 걷 는 사람, 연신 옆사람과 잡담하는 사람, 홀로 혹은 같이 뛰며 걷는 사람, 헤드폰을 끼고 연 신 라디오를 듣는 사람, 윗통을 벗고 뛰는 사람, 살 태우려 뛰는 사람, 살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나온 사람, 조깅 코스의 경치에 반해 나온 사람, 등등. 어떤 코스를 끼고 각자 목적을 갖고 걷고 달리는 고유의 개성은 정보와 지식을 취사 선택하여 흡수하는 각각의 링크 방식 과 비슷하다. 문제는 현대인의 정보 링크가 한번 구축되면 바꾸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미 개인 정 서에 따라 그 링크가 선호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정보 습득의 링크 가짓수는 늘지만 원하 는 것만을 집중해 선호하는 경향을 지닌다. 한번 조깅 코스가 정해지고 습관이 들면 익숙해 져 조깅 방식을 바꾸기가 힘들긴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정보 편식마냥 동일 거리 동일 코스 의 시간 단축에 대한 집착만 생긴다. 필자 개인의 온/오프 정보 링크를 살펴보자. 우선 인터넷에서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찾는 사이트는 <한겨레신문>, 영국 진보지 <가디언>, 주간지 <빌리지보이스>, 월간지 <먼쓸리 리뷰>, 인터넷 시사지 <살롱> 등이다. 현실에선 일간지 <뉴욕타임스>, <파이넌셜타임스>, 주간지 <네이션>, <오스틴크로니클>, <비지니스위크>, 월간지 <비지니스 2.0>, <와이어드 >, 격월간지 <뉴레프트리뷰>를 구독하고 있다. 가만보면 편향성이 두드러진다. 직업상 읽는 인터넷 관련 정보지를 빼면 정치 시사지가 전부다. 따져보니 과거 10여년간 내 정보 링크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오직 비슷한 취향의 정보 링크만 온/오프 모두에서 늘었다. 동일 코스에선 거의 변화가 없는 조깅의 특성은 이와 비슷하다. 같은 배경의 코스를 맴돌 며 얻는 자극은 극히 미미하다. 의도치않게 조깅 상대의 노출에 맞닥뜨리는 등 음란 정보의 유혹에 시달리거나, 개에게 물리고 개똥을 밟는 등 스팸의 덫에 치이거나, 말동무를 만나 의 외의 정보를 얻거나, 반대쪽에서 뛰는 이성과 감정적 교감을 갖는 것 등을 빼면 큰 변화와 자극은 없다. 오직 익숙한 환경의 반복과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날씨의 변화뿐이다. '데일리 미(daily me)', '협송(narrow-casting)', '원클릭(one-click)' 기술 등은 인터넷 이용 자들이 보길 원하는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디지털 기법이다. 취향과 기호에 부합한다 는 명목으로 이러한 맞춤형 정보기술들은 개인의 조깅 코스를 한 곳에 붙잡아두려 한다. {리퍼블릭닷컴(republic.com)}이란 책의 저자인 카스 선스타인(Cass Sunstein)같은 이는 맞 춤기술에 지배될수록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제 공하는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정보 서비스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점점 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두루 살필 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개인용 맞춤기술이 주는 사고의 협소화가 사회적 관심 사의 보편적 공유를 막는다는 논리다. 10여년이 넘게 내 정보 링크들에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진단이 지나친 비약이 아 님을 일깨운다. 저마다의 코스가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힘들고, 한 곳에서 뛰고 걷다보면 새로운 우발적 경험을 얻기가 힘들어진다. 시쳇말로 환경이 자신을 좀먹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보 습득의 방식도 문제다. 과체중 비만형이 오직 살빼려는 욕심에 무작정 급하게 뛰다간 탈이 난다. 준비 운동 없이 뛰어도 문제다. 이는 과욕이 지나쳐 정보에 체하고 허우 적대는 꼴이다. 그래서, 정보 습득의 유연성을 위해 각자가 지닌 온/오프 정보 링크망의 질적 점검이 필 요하다. 혹 편식이 심해 너무 한가지 '맞춤' 정보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 달려 도 꼭 한곳만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를 봐야 한다. 조깅처럼 마음먹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현대의 정보 링크다. 질적으로 고급의 링크에 머리를 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링크를 발굴하고 다변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링크의 편식으로 정신의 비만까지 불러 야 쓰겠는가. (아름다운 e세상, 200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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