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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나는 걸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나는 걸었다. 나는 천천히 가로등이 밝아오던 거리를 정처없이 쏘다녔다. 나는 모든 걸음이 어딘가를 향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걸음은 언어의 심연, 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뿐이었다. p.143

 

언어는 매우 자의적인 것으로 때로 그것은 함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희의 수단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에게 언어는 그러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은유와 의인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관념어에 신체성을 부여한다. '삶' '현실' '마지막 순간' 같은 것. 탁자 아래로 떨어진 '현실'을 부여잡으려 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우습게도 '실존'하는 것이다. 내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랑'으로 인해 갈비뼈가 눌리고 내장을 찌른다는 상상. 잠들기 위해 불러낸 하얀 양떼의 첫 번째 양이, 죽어도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아 그것을 몽둥이로 내려쳐 죽이고야 잠에 드는 주인공.. 아이러니하게도 상상으로 가득찬 그녀의 표현들은, 때로 섬뜩하게 우리의 삶을 묘사해 낸다.

 

그것이 페리 로시가 생각하는 단편소설의 책무이며 묘미인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인용해 둔 독일의 소설가 노발리스의 잠언, 진정한 단편소설은 예언적, 즉 이상적인 동시에 전적으로 필수적인 재현이어야 한다.

 

p.s 책날개를 보니 작가는 여성이며 좌파고 동성애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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