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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나 어릴 적, 그러니까 엄마가 끔찍스런 시집살이에 자주 울면서도 버티어 나가던 그 시절, 엄만 아빠와 그의 혈족을 싸잡아 비난하기 위해 '이씨 집안 사람들'이란 말을 애용했다. (물론 그 말엔 특별히 할머니가 포함된다.) 그 때 난, 그 경멸의 함의 속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냥 싫은 것도 아니고, 몸서리치게 싫었다.

 



언니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오빠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1동에서는 언니가 차려주는 밥 먹고 꼼짝도 않고, 6동에서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고 꼼짝도 않는다. 첫 며칠 동안은 눈꼴이 시어서 잔소리를 좀 했다. 계속 그러기도 민망해서 입을 닫은 후로는, (언니한테는 남편이요, 엄마한테는 아들이다 보니, 내가 계속 뭐라 하는 것도 못 할 짓이었던 거다 --;;;) 오빠한테 시켰으면 싶은 일을 내가 하게 되었다. 반찬을 나른다거나 간단한 설거지를 한다거나, 오빠가 했다면 난 다른 일을 분담했을텐데. 으휴.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깨지 못 하고 나도 그 안에 들어간 셈이다. (안타까운 건 언니의 태도다. 굳이 나를 '아가씨'라 부르며 오빠에게 하듯 내 뒤치다꺼리까지 하려는 언니를 난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 이름을 부른다고 언니에게 뭐라할 사람도 없는데 말이지. 엄만 시집 와서 처음에 고모 이름을 불렀다가 할머니한테 혼났다고 한다.)

 

엄마랑 아빠는 하루에도 최소한 두 번은 통화를 한다. 집안일을 혼자서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아빠는, 콩나물국을 끓일 때도 방청소를 할 때도 쓰레기를 버릴 때도 엄마한테 물어본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 충격이 크다. --;;;; (물론 외로움도 한몫 할 거다.) 오빠도 아빠 나이면 아빠나 똑같아지겠지. 엄마는 너도 똑같으니 할 말 없다고 하지만, 몰라서 못 하는 거랑 알지만 귀찮아서 안 하는 건 다르다! 새삼 알게된 사실은, 엄마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나 뿐이라는 거.

 

대학 들어간 후부터 우리집은 형편이 나아졌고, 같이 안 살면서 가족들끼리 애틋함 때문에 정이 더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운좋게도 가족 안에서 나는 별로 피곤할 일이 없었다. 엄마는 엄마였고 아빠는 아빠였고 오빠는 오빠였으니까. 관계에서 오는 피로는 학교에 가서나 생기는 것이었고, 집에서는 아니었다. 물론 가족관계도 얼마나 피곤할 수 있는지, 얼마나 냄새나는 정치가 작용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내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빠가 결혼하면서부터, 그러니까 내게 언니가 생기면서부터 관계의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니는 좋은 사람이다. 엄마 역시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된 타인들 아닌가. 가치중립적인 언사 하나도, 그 사람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될 지 모른다는 걸, 요즘 새삼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해도 '얄미운 시누이'가 된 것이다. 예상치 못 했던 역할에 조금 당황스럽다. 아무리 엄마라지만, 혹시 언니가 책잡힐 수 있는 말은 옮기지 말아야 하고, 언니한테도 오빠한테도 그냥 생각나는대로 얘기하면 안 되는 입장이다.

 

오늘도 할머니의 전화는 엄마의 화를 돋구었다. 그냥 모른 척했다. 어차피 뻔한 거고, 엄마의 반응만 봐도 알 만하고, 난 그들을 나와는 상관없는 족속으로 생각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도 최소한이길 바라고, 최소한의 가족 안에서도 최소한의 역할만 하기를 바란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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