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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zco / 야마 뿐차를 만나다.

꾸스꼬에는 좁고 길다란 늙어빠진 길들이 많다.
그런 길들을 따라 이리저리 흘러다니다 보면 때로 지린내 나는 자그만 광장도 만나고, 때로 눈이 휘둥그레질 아름다운 풍광도 만난다.
어제는 그런 길 중 하나를 따라 iglesia de san cristobal까지 쭉 올라갔었다.

 

거기, 아기 야마 뿐차가 있었다.



한 3미터쯤 내 앞에 있던 그 야마가 꼬마인지 어른인지, 암컷인지 수컷인지 무척 궁금했다. 야마의 주인인 듯한 여인들은 즐겁게 이야기하며 웃으며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줄에 묶인 야마는 거기 서 있는 게 지루해 죽겠다는 듯 몸을 배배 꼬다 못해 엎드렸다 일어났다 뒷발로 목을 긁었다,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외면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모양이 너무 재미났다.

 

야마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진 나는 여인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다.

 

이 야마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스페인어로 암컷 수컷이 뭔지 모른다), 아이인가요 어른인가요? 이름은 뭔가요? 왜 계속 우나요? 어디 아파요?

 

세뇨리따, 이 야마는 뿐차라고 해요. 암컷이지만, 아직은 7개월 된 아기구요, 어디 아픈 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우는 거랍니다.

 

여인들은 걸어서 두 시간 거리의 산마을에서 내려왔고, 차가 없어서 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뿐차를 한 번 먹이는데 2솔이나 들어서 많이 먹일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내게 사진을 청했다.

 

사실, 꾸스꼬에 온 후, 나는 인디헤나 여인들이나 야마, 꼬마들을 함부로 찍을 수가 없었다. 뒷모습 혹은 멀리서 찍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미지를 그렇게 소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여인들이 내게 사진을 청해 오자, 그것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100% 삶을 내맡기고 있는,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꾸스꼬 사람들, 혹은 멀리 산에서 걸어내려온 이 여인들과 나는, 순간의 스쳐지남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관계맺는 게 옳은 것일까?

 

결국은 허둥지둥 카메라를 찾아들었다. 구도를 잡고 자시고 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그냥 버튼을 눌렀다.

 

 

여인은 색실로 땋은 팔찌를 내 앞에 늘어놓았다. 한 개에 2솔. 뿐차의 한 끼 풀값이다. 이 팔찌를 하나 완성하는데 대략 3시간이 든다고 했다.

 

오늘도 뿐차는 배가 고파 울고 있을까?
언제라도 뿐차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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