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연한 순간.

반 숟갈 남은 김치볶음밥 그릇을 닥닥 긁으며, 나는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라는 사진 에세이집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6년 1월 이후 벽장에서 꺼내지 않았던 필름을 이제야 꺼냈다는 부분을 눈으로 따라가는데,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온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노래하는 김광석의 음성은 여전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던 나는 이제 서른이다.

 

- 책장 정리하면서 나온 헌책들을 이음아트에 갖다드렸다. 사장 아저씨가 작가 사인이 들어간 김광석 사진 에세이집을 선물로 주셨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 종종 서너 개의 세상이 겹친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폴 오스터를 좋아하던 한 선배는, 학교 정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를 세워두고, 우리의 '우연한 순간'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었다. 그는 마흔이 넘으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고, 누이의 피아노 학원, 피아노들 사이에서 잔다고 했다.

 

- 우연한 순간, 은 에서 잭 니콜슨을 파국으로 몰고 갔고, 에서도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주요한 동력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것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곤 했다.

 

김치볶음밥과 김광석과 서른 즈음에가 함께 하는 우연한 순간.

백석이 노래한 하얀 얼굴의 시인과 하얀 쌀밥과 하얀 생선 반찬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어느 날 피아노가 있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선배를 만난다거나, 선배의 소설을 들고 피아노 학원을 지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