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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참관을 갔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위원회라는 데에서 결정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의 무수히 많은 위원회 가운데 하나인데, 노동자위원 9명(한국노총 5명, 민주노총 4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3년(?).

 

몇년 전부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문제제기가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작년에는 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1박 2일 노숙농성을 하며 '최저임금 현실화'를 외쳤다.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대상 노동자들은 120만~15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실제로는 더 많을거다. 그러니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은 민주노총 여성연맹과 같은 조직된 최저임금사업장만이 아니라 조직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의 문제이다.

 

작년에 결정된 최저임금은 64만원 정도. 올해 노동계는 815,000원을 요구했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이다. 그런데 실은 총액으로 따지면 평균임금의 반의 반 수준이라고 한다. 아무리 못받아도 그정도는 최저선으로 달라는 얘기다. 그런데 최저임금위원회는 그 요구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나도 얘기로만 듣다가 지난 6월 17일에 우연히 최저임금위원회를 참관하고 그 실상을 더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속해있는 단체가 '최저임금연대'에 속해있는 관계로 돌아가면서 최저임금위원회를 참가하는데 그날이 우리가 갈 차례여서 참관해서 지켜보았다.

 

일단 노동자측 요구는 815,000원(37%). 사용자측은 3% 인상안을 그 전에 내놓았었다. 우선 노동자측은 기업의 총 매출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한국은행 통계를 들며, 최저임금을 더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측 위원들은 그 통계는 사실 우리나라 산업이 구조조정 단계여서 자본집약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로 이 내용에 대한 공방이 지리하게 오갔다. 노동자측에서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사는지 강조했고, 사용자측은 중소 제조업체들의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호소했다. 급기야는 이대로 최저임금을 마구 올리면 중국이나 동남아로 가야 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해댔다.



한창 지루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한국노총에서 온 실무자 한명이 소곤거린다. "해마다 이런 공방을 벌이고 내용도 대동소이해요. 임기가 3년인데, 최저임금위원 3번하면 9년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음. 그렇군.

 

근데 특이한 것은 공익위원이라는 작자들의 태도다. 그들은 회의에 엄청 늦게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자리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몸사리기, 기회주의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명색이 위원이라는 인간들이 어찌 그리 자기 주장도 없이 노 사의 공방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서 멍하니 앉아 있을까.

 

쉬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사회자 하는 말, 공위위원들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단다. 어수봉이라는 사람이 대표로 얘기했다. "생계비, 경제성장률, 소득분배율 등을 반영해서 인상률을 정한다. 생계비는 117만원(?? 아마 단신가구 생계비인듯)을 맞춰줘야 하는데, 임금 이외의 수입에 대한 통계가 없다. 그래서 이는 제외한다. 두번째로 경제성장률을 보면 6%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최저임금인상률을 정하므로 4개월치를 더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최저선은 7.5%(경제성장률6%+추가4개월치성장률1.5%)다. 소득분배율을 1% 올리려면 임금은 2%올라야 하는데 지금 소득분배율을 3%정도 끌어올려야 하므로 임금은 6%올려야 한다. 따라서 이를 반영해서 최고선은 13.5%(7.5+6)가 된다. 노사는 이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타협해주면 좋겠다."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공익위원이라는 작자들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 내에서 노사가 타협하라니!! 그들은 그저 눈치를 살살 보다가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였던 것이다! 그것도 턱없이 모자란 범위를 제시해놓고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마자 앞다투어 우는 소리를 하는 사용자위원들이다. 어떤 사용자위원은 "정말 공익위원들 너무하신다. 내가 줄 잘못서서 기업하는 죄밖에 없는데 최저임금을 그렇게 높게 올려주라고 하면 어떡하냐. 이 일은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그 쥐꼬리만한 인상범위를 가지고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니. 그 사용자위원은 차라리 연기자로 나서는게 나을뻔 했다. 어찌나 리얼하게 우는 소리를 하는지, 웃음이 나오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다시 정회. 정회하는 사이 밖에서 여성연맹 조합원들과 학생들이 건물로 진입해서 복도로 올라왔다.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어느 여성 사용자위원은 잘 됐다는 듯이, "이런 상황에서 무슨 회의를 하라는 거냐. 다들 갑시다"라면서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는 다른 회의가 있어서 연좌농성에는 함께하지 못하고 건물을 나왔는데, 주차장에서 또 화딱지나는 일을 목격했다.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면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최저임금 많이 올리면 안된다고 절절히 얘기했던 우리의 사용자위원들, 하나같이 에쿠우스, 재규어, 그랜져 등등을 끌고 나갔다. 기사월급에, 기름값에 다 합치면 최저임금은 그런 고급차 한대 유지비도 안될텐데 저들은 그거조차 올려주기 싫어서 그 난리를 친다.

 

결국 최저임금은 사용자측의 수정안인 9.2%로 결정되었다. 주5일제 적용된 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은 연월차, 생리휴가 수당을 삭감당하니 실제로는 임금이 더 깎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저임금을 올리라고 만들어놓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오히려 최저임금을 삭감해서 '최저임금삭감위원회'가 된 현실. 바깥에서 집회하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울면서 파업결의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해체하고,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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