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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내란음모 수사와 타오르는 촛불 민심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해야 할 국정원 수사가 미궁에 빠졌다. 내란죄에 외환죄까지 덮어씌우려했으나 수사는 녹취록 재탕 삼탕 외에는 오리무중이다. 금지옥엽 같은 녹취록마저 매수된 프락치를 통하여 입수한 것이라 증거능력의 효력 다툼이 일고 있는데다 이번에는 한국일보에 건네지기 전에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편집됐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다.

이석기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을 밀어붙이며 정국을 급속히 얼어붙게 만든 내란음모사건은 이 의원이 북과 연계하여 자신이 총책으로 있는 아르오라는 혁명조직을 소집해서 내란을 모의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거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녹취록이 증거능력을 의심받고 그것 외에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다면 이 사건은 그야말로 희대의 코미디가 되고 마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 의원에 대해 수사권을 행사하는 시간은 열흘이다. 이제 13일에는 검찰에 칼자루를 넘겨줘야 한다. 검찰이 최대 20일간의 수사 이후 어떤 혐의로 기소할지 알 수 없으나, 적용할 죄목을 무엇으로 할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국정원은 불법적인 대선개입이 탄로 난 데 이어서 새로운 의혹과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이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를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의미심장하다. “혐의사실 보도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함은 물론 여적죄 적용 검토 보도에 대해서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구속영장에는 이적동조와 내란음모혐의라고 했다”고 국정원 수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미희 의원이 아르오 공동총책이라는 보도에 대해서는 “국정원 대변인에게 물어봤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아직 파악한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에 보도된 사실들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향후 검찰 수사는 국정원의 수사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혐의를 입증할 증거라는 게 고작해야 증거능력을 의심받는 짜깁기 녹취록밖에 없다고 한다면 결국 수사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뿐 아니다. 국정원의 피의자 조사에 입회한 변호인들에 따르면 그간 언론에 대서특필된 보도 내용들이 실제 조사과정에서는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적죄’와 ‘폭탄제조법연구’, ‘제보자가 이모씨 외에 2~3명 더 있다’는 언론보도도 수사관의 신문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플레이 따로, 체포구속영장 따로, 수사 따로인 셈이다. 국정원의 수사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같은 상황은 애초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아르오라는 실체가 없고 내란을 모의한 바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불순한 목적 하에 객관적 증거와 법리적 판단을 무시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입맛대로 꿰어 맞추려다보니 곳곳에서 허점이 탄로 나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정원의 수사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차에 국제 앰네스티의 로제 라이프 동아시아지역 국장은 11일 “이석기 의원에 대한 조사가 점점 정치화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인 수사만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날 최병모 전 민변회장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등 시민사회의 원로와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매카시즘 초입에 있는 사건”이며 “온 국민이 함께 연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다 보니 답답하고 당황한 쪽은 국정원이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동요와 혼란에 빠져야 할 진보당은 한 치의 흔들림과 위축됨 없이 오히려 사건 발생 이전보다 더 강한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당원들의 자발적인 특별당비가 쏟아지고 신입당원의 입당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내란음모 조작 국정원 규탄 통합진보당 민주수호 중앙실천단'을 발족하여 본격적인 대중투쟁에 돌입했다.

지난 3개월간 쉬지 않고 타오른 촛불은 내란음모사건이 전국의 이슈를 모두 빨아들이고 민주당이 불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무려 2만의 군중을 집결시키는 위용을 과시했다. 시국회의는 오는 13일 서울광장의 12차 범국민촛불대회에 최대 규모의 촛불이 모일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고, 대통령의 정상회담대화록을 까발리며, 3년 묵혔던 내란음모사건을 들고 나와 언론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 옛날 중앙정보부의 공작정치 부활이다. 국정원은 국면전환을 위하여 이석기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였으며, 이것을 빌미로 국회를 무력화하고 검찰과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유신독재의 부활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그 어떤 압제로도 억누를 수 없는 법이다. 국정원의 이석기내란음모사건 조작은 촛불을 위축 약화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국정원 전면개혁의 절박성을 한층 일깨워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필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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