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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5/09/10
    외무성 대변인대답
    TPR
  2. 2015/09/09
    조선대외문화련락협회 대변인담화
    TPR
  3. 2015/09/07
    외무성 대변인담화
    TPR
  4. 2015/09/07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 발표
    TPR
  5. 2015/09/03
    조평통 대변인대답
    TPR
  6. 2015/08/29
    북남공동호소문
    TPR
  7. 2015/08/20
    역사학회 비망록
    TPR
  8. 2015/08/19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담화
    TPR
  9. 2015/08/15
    외무성 대변인담화
    TPR
  10. 2015/08/15
    북남불교도공동성명
    TPR

외무성 대변인대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유엔인권무대에서 있지도 않는 우리의 《인권문제》를 걸고 또다시 반공화국소동을 벌리려 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10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오는 14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리사회 제30차 회의기간 적대세력들은 우리의 《인권문제》와 관련한 그 무슨 《전문가모임》이라는것을 조직하고 이른바 《인권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우리 공화국을 비난하는 놀음을 벌려놓으려 하고있다.

미국의 배후조종과 그 추종세력들의 발기로 진행되는 《모임》에서 《전문가》들이 주제별발언을 한다고 하는데 그 주제라는것들을 보면 이미 그 허위성이 만천하에 드러나 거덜이 난 반공화국《조사보고서》나 《인권결의》들에 렬거된 날조모략자료들이다.

《조사보고서》로 말한다면 그 중추내용이라는것은 《탈북자》와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의 허위진술을 현지확인도 없이 마구 주어모은것으로서 참다운 인권이 최상의 높이에서 보장되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터무니없이 외곡하고 비방중상한 모략투성이이다.

《조사보고서》의 핵심증언자로 내세웠던 《탈북자》 신동혁이 자기 진술이 거짓이였다는것을 전부 인정하고 다시는 날조놀음에 나서지 않겠다고 한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그따위 협잡문서 보따리를 들고다니고있는것은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적대세력들이 《진술자》로 써먹고있는 《탈북자》들은 례외없이 절도, 미성년강간, 어린이유괴, 인신매매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인간쓰레기들로서 우리는 이런 범죄도주자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추적하여 그 정체를 끝까지 파헤쳐 발가놓을것이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웃음거리가 된 《조사보고서》에 근거하여 말을 하다가 수치를 당하는것보다는 인간추물들의 허위진술과 그 목적에 대하여 까밝히고 문초하는것으로써 체면을 세우는것이 상책일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인민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률적제도가 정연하게 수립되여있다.

《전문가》들이라면 우선 우리의 우월한 법률제도에 대하여 똑바로 연구해보아야 할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제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우리의 인권보장제도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나라의 그 무슨 《인권》상황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려고 하는데는 명백히 불순한 정치적동기가 깔려있다.

지금 미국은 이란핵문제타결후 우리의 《인권문제》에 집중하며 《인권압박》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떠들면서 유엔무대를 악용하여 우리 제도전복을 노린 정치적도발책동에 비렬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있다.

여기에 EU와 일본이 합세하여 앞장서고있다. 특히 일본이 이번 《모임》에 극성을 부리면서 소란을 피우고있는데 조일쌍방간에 합의된 문제를 하늘로 날려보낼 잡도리를 하고있는것 같다.

최근 서방언론들이 《북조선인권관련 조사보고서나 결의》가 《북조선의 체제변화》를 목표로 하고있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대조선인권깜빠니야를 통하여 정권교체를 추구》하고있다고 지적한것을 보아도 적대세력들이 《전문가모임》을 통하여 무엇을 노리고있는가 하는것은 명백하다.

유엔인권리사회는 허위날조자료들을 가지고 우리 공화국을 비난하는 《전문가모임》과 같은 놀음을 당장 걷어치워야 하며 세계적인 규탄을 받고있는 미국의 특대형고문만행과 서방나라들의 이주민배척, 종교탄압과 같은 현대판 인권유린행위들부터 취급해야 한다.

우리 인민의 생명이고 행복한 삶의 터전인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어째보려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책동이 가증될수록 우리의 초강경대응의지는 더욱 거세여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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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외문화련락협회 대변인담화

일본반동들은 총련에 대한 파쑈적탄압망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을 말살하려는 일본반동들의 파쑈적탄압이 극도에 달하고있다.

 최근 일본반동들은 식당을 경영하고있는 한 재일동포의 그 무슨 《사기죄》를 구실로 수십명의 경찰들을 내몰아 장시간에 걸쳐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와 총련 혹가이도본부, 본부 회관에 있는 모든 총련기관들을 강제수색하는 란동을 부리였다.

 이날 일본경찰은 식당경영자뿐아니라 조청일군의 집도 강제수색하였으며 이전 혹가이도상공회 경리실 부실장을 부당하게 체포해가는 한편 언론을 시켜 총련이 비법적인 범죄행위를 하는 단체인듯이 여론을 환기시키는 비렬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반동들의 이러한 악랄한 탄압행위는 재일조선인들의 합법적권리를 옹호하는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의 의로운 활동을 가로막고 압살하려는 엄중한 정치적도발이다.

 일본반동들이 총련탄압을 통해 노리는것은 명백히 공화국의 합법적인 단체인 총련을 어떻게 하나 없애버리고 《북위협》설을 합리화하여 저들의 군국주의적재침책동을 다그치려는데 있다.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북남관계를 파국으로부터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우는 중대한 전환적계기로 된 북남고위급긴급접촉과 공동보도문발표에 대하여 우리 민족은 물론 온 세계가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찬사를 보내고있다.

 그런데 유독 일본만이 이 평화애호적인 분위기에 엇서나가고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총련일군들에 대한 부당한 체포와 총련관련시설들에 대한 강제수색소동이 일본의 과거침략사를 부정하고 해외침략을 합법화한 《일미방위협력지침》개정놀음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는것이다.

 일본이 우리 총련에 대하여 사사건건 걸고들며 병적인 발작증을 일으키는것도 본질에 있어서 선군조선의 위력에 대한 불안과 꿈틀거리는 재침야망을 실현할수 없게 된다는 초조감의 발현이다.

 제반 사실들은 총련에 대한 검질긴 모해와 탄압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편승하여 북남관계개선에 찬물을 끼얹고 저들의 야망을 이루어보려는 일본반동들의 계획적이며 음모적인 책동의 일환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이번 사건으로 하여 일본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도주의가 질식되고 민족배타주의가 활개치는 세계최악의 범죄국가, 가장 악랄한 전범국이라는것이 다시금 만천하에 폭로되였다.

 일본반동들이 제아무리 서푼짜리 모략극을 골백번 꾸미며 탄압의 광풍을 일으켜도 약동하는 젊음으로 비약하며 불패의 기상을 과시하는 우리 공화국을 따라 승리의 신심과 락관에 넘쳐 전진하는 일심단결의 대오, 총련의 앞길을 절대로 가로막지 못한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비렬한 정치적테로와 끈질긴 박해책동은 백년숙적 일본에 대한 우리 인민의 증오심과 무자비한 보복의지를 천백배로 굳혀줄뿐이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대일적개심을 똑바로 보고 무분별한 반공화국, 반총련행위를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주체104(2015)년 9월 9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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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성 대변인담화

미국이 우리 조국의 남반부를 강점한 때로부터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은 남조선을 강점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에 배치되게 조선의 분렬을 고착시키고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무모한 적대시책동을 끈질기게 감행하여왔다.

미군의 남조선강점 70년은 전쟁과 교전관계의 력사이다.

지나간 70년은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국토분단과 그로부터 초래된 류혈적인 전쟁, 항시적인 긴장과 대결의 위험한 환경속에서 살아온 나날들이였다.

지난 70년간 조선반도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모든 무장충돌들, 교전들의 배경에는 대규모의 미군무력을 장기주둔시키고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일삼고있는 미국이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에 조선의 북과 남사이에 교전직전까지 치달았던 위험천만한 사태도 다름아닌 3만여명의 미군이 투입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이 한창 진행되고있던 와중에 터졌다는데 주목을 돌리고있다.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은 조미사이뿐아니라 북남사이의 대결과 불신도 격화시키는 기본요인으로 되고있다.

지금 이 위험한 전쟁놀음은 얼마전에 공개된 《작전계획 5015》와 같은 우리에 대한 불의적인 선제공격씨나리오를 련마하고 실천적으로 추진하는 극히 무분별한 단계에 들어서고있다.

다름아닌 미군의 남조선강점이 남조선에서 어느 하루도 그칠새없이 벌어지는 북침전쟁연습들의 빌미로 되고있다.

미국은 세계지배를 위한 아시아태평양《재균형전략》에 따르는 무력증강의 구실을 필요로 하고있다.

그때문에 미국은 조선반도정세의 항시적인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도발적인 군사행동들을 주기적으로 벌리고있는것이다.

미국이 자기의 대병력을 남조선에 주둔시키고 남조선의 군통수권을 틀어쥐고있는 한 북남관계도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게 되여있다.

세계가 멀리 전진하고 랭전이 끝난지도 오래된 오늘 미국은 남조선강점이 시대착오라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국제공동체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유엔총회 결의를 통하여 남조선에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며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하여 강력히 요구하였다.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대로 남조선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는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시대적요구로 나서고있다.

더우기 이번 북남고위급긴급접촉에서의 합의를 통해 우리 민족끼리 일촉즉발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수호할 능력이 있음을 온 세상에 보여준 조건에서 《조선반도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미군《주둔》의 해묵은 구실도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여있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고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도발적인 군사행동을 계속 벌리는 한 앞으로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원인모를 사건이 터지거나 그로 인해 무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엄중히 따지게 될것이다.

주체104(2015)년 9월 7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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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 발표

미국과 서방의 인권유린행위에 관한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 발표

조선인권연구협회는 인간의 참다운 자유와 권리가 참혹하게 말살되고있는 인권범죄국들을 조사하고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하여 미국과 서방의 인권유린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7일에 발표하였다.

조선인권연구협회는 이미 2014년 9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과 공화국의 인권보호증진노력 그리고 인민들의 인권향유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벌리는 반공화국《인권》소동의 본질과 부당성을 까밝히기 위하여 우리 나라의 인권실상에 관한 보고서를 처음으로 발표한바 있다.

오늘 세계적으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참다운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들의 노력은 더욱 강화되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의 인권상황을 제멋대로 비난하고 삿대질하는 《나라별인권보고서》라는것을 매해 조작해내면서 《인권재판관》처럼 행세하고있다.

또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인권옹호자》로 자처하면서 《인권보호》의 미명하에 선택적인 나라들에 대한 정치적압력과 내정간섭을 로골화하고있다.

대표적실례가 바로 우리 공화국을 대상으로 하여 벌어지고있는 비렬한 《인권》소동이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반공화국《인권》소동을 통하여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영상에 먹칠을 하고 나아가서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허물어보려고 어리석게 책동하고있다.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유린국, 인권교살국으로서 문제시되고 덕대우에 올라앉아 처벌받아야 할 첫번째 대상은 바로 미국이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미국을 기본대상으로 하여 미국과 서방에서 인권상황이 상상을 초월하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고있는데 대하여 전면적으로 파헤치고있다.

보고서는 정치, 경제, 사상문화를 비롯하여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특정한 집단들을 대상으로 하여 감행되고있는 미국과 서방의 인권유린행위들을 구체적인 사실자료들과 국제인권법규범들을 놓고 그 범죄성과 부당성에 대하여 분석하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유린행위들이 그 어떤 개별적인물들이나 단체들의 우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 나라들의 반동적인 인권제도와 반인민적인 인권정책의 필연적산물이라는데 대하여 론증하였다.

보고서는 국내의 여러 기관들과 사회단체 및 조직들, 학술단체들과 여러 부문 인권전문가들과의 협력하에 작성되였다.

보고서는 6개의 장으로 편집되였다.

1장에서는 정치적자유와 권리와 관련하여 《자유와 민주주의의 모델》로 자처하는 미국과 서방에서 사상과 종교,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 선거 등이 차별과 구속을 당하고 란폭하게 유린되고있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분석하였다.

2장에서는 민사적권리분야에서 가혹한 고문과 폭행, 테로와 대량살륙, 인신매매와 랍치, 비법적인 체포와 구금 등이 로골적으로 감행되고있는 상황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3장과 4장에서는 사회경제적권리와 사회문화적권리분야에서 기아와 빈궁, 실업과 차별, 특권층을 위한 의료봉사와 금권에 의한 교육, 부패타락한 생활풍조 등으로 하여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고있는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5장에서는 특정한 집단의 권리에 대한 란폭한 침해현상이 어린이학대와 녀성폭행, 장애자 및 소수민족차별, 피난민학대와 외국인배척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표현되고있는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마지막 6장에서는 미국과 서방 특히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법화, 정책화되여 유색인종배척과 인종탄압행위가 야만적으로 감행되고있는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보고서에 언급되여있는바와 같이 미국과 서방나라들에서 만연되고있는 인권유린행위들은 파헤쳐 볼수록 험악하고 치를 떨게 하는 반인륜범죄로서 인권에 대한 비인간적이며 반동적인 견해와 립장, 반인민적인 사회제도가 초래한 산물이다.

미국과 서방의 인권유린행위에 관한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는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의 보편성》 등을 운운하면서 《인권보호증진》에 대하여 떠드는 미국과 서방의 위선적인 전모를 발가놓는 고발장으로 될것이며 세계최대의 인권범죄국들을 인권재판정의 피고석에 끌어내는 기소장으로 될것이다.

미국과 서방나라들은 다른 나라들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떠들기 전에 제 집안의 어지러운 오물부터 청소하는것이 좋을것이며 인류앞에 저지른 인권유린범죄에 대하여 국제사회앞에 사죄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것이다.

우리 인민은 공화국에 세워진 인간중심의 참다운 인권보장제도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목숨으로 지켜가는 우리의 사상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켜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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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대변인대답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개선과 조선반도평화를 위한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똑바로 알고

언행을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대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해외행각중인 남조선집권자가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두고 《북의 도발사태》니, 그 누구의 《건설적역할에 감사를 드린다.》느니 하는 온당치 못한 발언을 늘어놓은것과 관련하여 3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 온 겨레는 최근 북남사이에 조성되였던 일촉즉발의 무력충돌위기가 수습된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고위급긴급접촉에서 합의된 공동보도문이 성실히 리행되여 관계개선과 조선반도평화의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기를 한결같이 바라고있다.

이번 북남합의에 따라 며칠후인 7일에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진행하기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이 예정되여있으며 관계개선을 위한 향후일정들도 준비되고있다.

그런데 최근 남조선당국자들이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망발을 거듭하면서 다시 북남관계에 복잡성을 조성하고있다.

특히 지난 2일에는 해외행각에 나선 남조선집권자가 《북의 비무장지대도발사태》니, 《언제라도 긴장을 고조시킬수 있다.》느니 하면서 최근 조성된 사태의 진상을 외곡했을뿐아니라 그 누구의 《건설적역할》까지 운운하며 우리를 심히 모욕하는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지각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내외가 일치하게 평하고있는것처럼 우리는 이번에 우리 민족의 근본리익과 온 겨레의 념원을 반영하여 철저한 자주적립장에서 주동적으로 북남고위급긴급접촉을 제기하고 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여 조선반도평화와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극적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남조선집권자가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날조하면서 해외에 나가서까지 추파를 던지며 속삐뚤어진 소리를 늘어놓은것을 보면 말로는 화해와 협력을 운운하지만 진짜속심은 그 누구에게 기대여 동족대결만을 추구하고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아래급에서 이러저러한 온당치 못한 망발들이 튀여나오고있는것도 문제이지만 집권자까지 북남합의정신에 저촉되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고있는것은 당면한 북남관계일정마저 가늠할수 없게 하는 매우 심각한 사태이다.

사실 지금의 북남관계는 언제 어떻게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장과 같다고 할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남조선당국에 어렵게 화해와 완화의 길로 돌려세운 북남관계를 잘 유지하고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충고도 주고 북남관계개선을 달가와하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 각성을 가지고 특별한 주목을 돌릴것을 강조도 하였다.

남조선집권자가 초보적인 정치적안목이 있다면 이런 예민한 시기에 관계개선의 판을 깰수 있는 언동을 심사숙고해야 할것이다.

더우기 북남관계개선을 추동하고 조선반도평화를 지키는 힘은 그 어떤 외부세력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자신에게 있다는것을 똑똑히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문제, 조국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데서 그 누구에게 기대를 거는것처럼 어리석고 백해무익한 일은 없을것이다.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이 지금처럼 민족내부문제를 밖에 들고다니며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언행을 일삼는다면 북남관계는 또다시 대결의 악순환을 되풀이할수밖에 없을것이다.

어렵게 마련된 북남합의가 실속있게 리행되여 관계개선의 길이 열리는가, 아니면 또다시 정세가 악화되여 극단으로 치닫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

지금 온 겨레가 남조선당국의 일거일동을  엄정한 시선으로 지켜보고있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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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공동호소문

《한일합병조약》날조 105년 북남공동호소문

 

오늘 8월 29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단군민족이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해낸 강도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던 《경술국치》 105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의 가슴에 피의 응어리로 새겨져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이날을 맞으며 온 겨레는 전대미문의 반인륜적범죄와 치떨리는 살인략탈만행을 감행한 백년숙적 일본으로부터 천백배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야말 의지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일제는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중세기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저들의 전쟁터와 고역장에 강제련행해가고 100여만명을 학살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끌어다 비참한 일본군 성노예생활을 강요하였다.

뿐만아니라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은 물론 조선사람의 말과 글, 성과 이름까지도 빼앗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으며 단군조선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수려한 산천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놓고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마저 강탈하는 동서고금에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 범죄적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그 모든 죄악에 대하여 패망한지 70년이 되는 오늘까지 옳바로 사죄하고 배상하지 않고있다.

지난 8월 14일 일본수상 아베는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라는데서 일본의 죄과를 한사코 부정하고 무작정 덮어버리며 어떻게 하나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려는 흉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우리 북과 남의 단군관련 민족운동단체들은 《한일합병조약》날조일을 맞으며 서로 굳게 련대하여 반일반외세, 반전평화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갈 결의를 다지면서 온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열렬히 호소한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민족자주의 기치,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의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며 통일의 기본장애물인 외세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가자!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있는 일본의 군국주의부활책동에 각성을 높이고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일본의 재침책동을 단호히 짓부시자!

40여년간이나 우리 나라를 불법강점하고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준 일제에 대해 천백배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자!

온 겨레가 단결하여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동족대결을 고취하면서 북남관계발전을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세력의 책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고 철저히 짓부셔버리자!

단군성왕의 후손들인 우리 겨레는 일치단결하여 민족의 머리우에 핵참화를 몰아오는 침략적인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단호히 반대배격해나서자!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조국통일의 리정표인 6. 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 4선언을 철저히 고수리행하며 하나의 민족으로서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뛰여넘어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고 단합할 때 단군민족의 창창한 미래와 평화번영의 시대가 이 땅우에 찬란히 밝아올것이다.

오늘 우리는 한장소에서 함께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지만 《한일합병조약》날조 105년 북남공동호소문 발표를 계기로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우리의 투쟁과 반일의지를 온 겨레앞에 다시한번 엄숙히 다짐하면서 온 겨레가 일본의 만고죄악을 뼈에 새기고 그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며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는 성스러운 애국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을 다시한번 열렬히 호소한다.

단군민족 만세!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 만세!

 

2015년 8월 29일

북측                                                          남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경술국치 105주년 민족공동추념대회 준비위원회

                                               (사)독립유공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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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회 비망록

을미사변을 도발한 일제의 만고대죄를 준렬히 폭로단죄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비망록

올해는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한 을미사변을 도발한 때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을미사변을 도발한 일본지배층의 야만적행위는 곧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강도적으로 침해한것으로 되며 전통적인 왕가의 존엄을 침해한것으로 되는것이다.》

19세기말 조선을 식민지로 예속시키기 위한 침략책동에 피눈이 되여 미쳐날뛰고있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저들의 야망이 뜻대로 실현되지 못하게 되자 그 주되는 원인이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국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던 명성황후의 친로배일정책에 있다고 간주하고 그에 대한 강도적인 살해음모를 꾸미였다.

1895년 10월 일본반동정부는 당시 조선주재 일본공사 미우라를 돌격대로 내세워 일본군수비대무력과 경찰무력 지어는 깡패들과 불량배들로 살인집단을 뭇고 그들을 내몰아 한밤중에 조선황궁인 경복궁을 강도적으로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도록 하였다. 미우라를 우두머리로 한 살인집단은 황궁안의 침실에서 자고있던 명성황후를 일본도로 란도질하여 무참히 살해하고는 저들의 범죄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그 시체를 불태우고 남은 유골을 경복궁안의 못속에 내던지는 천인공노할 만고대죄를 저질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감행된 명성황후살해사건(을미년에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된 사건이라고 하여 을미사변이라고 함)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를 실현하려는 흉계밑에 꾸며진 특대형의 범죄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후예들인 일본반동들은 을미사변이 도발된지 120년이 되는 오늘까지도 그에 대한 사죄를 진심으로 성근하게 하지 않고있을뿐아니라 그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거나 은페하기 위해 갖은 잔꾀를 다 쓰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지난 시기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을미사변의 도발로 저지른 만고대죄와 그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는 일본반동들의 비렬한 범죄행위를 온 세상에 낱낱이 발가놓고 준렬히 단죄규탄하기 위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1. 을미사변은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한 특대형범죄행위

일본군국주의자들이 명성황후를 야수적으로 잔인하게 학살한 을미사변은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강도적으로 침해한 특대형의 범죄행위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한 을미사변도발당시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렬강들의 날로 강화되는 침략책동과 봉건지배층의 부패무능한 통치로 하여 비록 쇠퇴몰락의 길을 걷고있었지만 여전히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주권을 행사하고있었다.

이에 대하여서는 일본군국주의자들자신이 조선을 《독립자주의 나라》로 인정하고있었던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물론 이것이 장차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저들의 독점적지배를 실현하려는 흉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기는 하였지만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청일전쟁직전인 1894년 7월 17일 《조선을 독립국으로 공인》하며 《일본제국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원히 혹은 장기간 그 독립을 보호유지》시키도록 한다는것을 정부정책으로 결정하였던것이다. (《건건록》 이와나미서점 1967년 136페지)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 속심은 어떠했든지간에 1895년 4월 17일에 체결한 시모노세끼조약(청일강화조약)에서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자주의 나라임을 확인한다.》는것을 첫 조항으로 쪼아박았던것이다.

이처럼 저들자신이 《독립국》으로, 《완전무결한 독립자주의 나라》로 공인하고 확인하였던 조선의 황궁에 총검으로 무장한 살인집단을 침입시켜 한 나라의 황후를 야수적으로 살해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그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우리 나라의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로서 특대형의 범죄행위가 아닐수 없다.

더우기 명성황후로 말하면 당시 조선의 국권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 고종을 대변하여 국정을 다스리고있던 국가권력의 대표자였다.

이러한 자주독립국가의 황궁을 날강도적으로 습격하고 국가권력의 대표자를 잔인하게 살해한것은 명실공히 우리 나라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로, 우리 인민의 존엄에 대한 참을수 없는 유린으로서 특대형의 반인륜적범죄행위로 되는것이다.

만일 조선봉건정부에서 무장집단을 동원하여 일본의 《황궁》을 습격하고 《황후》를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면 일본군국주의자들이 그때는 물론 오늘까지도 그것을 범죄시하며 책임을 따지고들것이라는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한 을미사변의 도발은 당시는 물론 오늘의 국제법에 비추어볼 때에도 도저히 용납될수 없는 특대형의 범죄행위로 된다.

유엔헌장과 《유엔헌장에 기초한 국가들간의 국제법원칙에 관한 선언》을 비롯한 국제법문건들에서는 국가자주권의 존중원칙을 국제법의 기본원칙으로 규제하고있으며 여기에서 주되는 내용을 이루는것은 국가들사이의 정치적독립을 존중하는것과 함께 주권국가의 합법적지위와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주권국가의 자주권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원칙을 지키는것이다.

이처럼 국가들간의 관계에 관한 국제법의 기본원칙으로 규제된 국가자주권의 존중원칙에 비추어볼 때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을미사변의 도발로 저지른 범죄행위는 그 어느 조항에나 다 저촉되는것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이렇듯 국제법의 기본원칙과는 심히 어긋나게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강도적으로 침해유린하는 을미사변을 도발한 흉악한 목적은 우리 나라에 대한 독점적식민지예속화를 실현하려는데 있었다.

이미 《명치유신》이후부터 조선침략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선 일본군국주의자들에게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저들의 주되는 경쟁자였던 청나라세력이 제거된 반면에 짜리로씨야의 남하정책으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게 되였다.

청일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이 중국의 료동반도를 강탈하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책동을 적극 벌리게 되자 이것이 태평양에로의 진출을 기도한 저들의 남하정책에 큰 저해로 될것이라는 위구를 느낀 짜리로씨야는 당시 중국에 대한 세력권확장에 열을 올리고있던 프랑스와 도이췰란드를 추동하여 일본이 료동반도강점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3국간섭에 나섰다.

짜리로씨야는 일본정부에 보낸 항의각서에서 《료동반도를 일본이 강점하는것은 청나라의 수도를 위태롭게 할뿐아니라 동시에 조선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한다.》고 경고하면서 일본이 료동반도강점을 포기할것을 요구하였다. (《일본외교문서》 제28권 2책 일본국제련합회 1953년 17~18페지)

짜리로씨야가 3국간섭의 앞장에 선데는 일본의 료동반도강점과 조선에 대한 지배권확립이 저들의 남하정책에 주되는 장애로 된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당시 짜리로씨야는 태평양에로의 진출을 기도하면서 남만주철도부설과 함께 조선에서의 부동항(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획득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었다.

로씨야황제 니꼴라이2세가 청일강화조약체결직전인 1895년 3월 자국외무상에게 《로씨야는 부동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항구는 조선의 동남부지방에 위치하여야 하며 우리 령토와 련결되여야 한다.》고 강조한것은 로씨야에 있어서 조선에서의 부동항의 획득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하였는가를 실증해주고있다. (《조선단대사》 조선봉건왕조사 9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주체99(2010)년 172페지)

청일강화조약의 체결로 일본이 료동반도를 강점하게 되자 짜리로씨야는 프랑스, 도이췰란드와 함께 3국간섭을 하여 1895년 5월 5일 끝내 일본으로 하여금 료동반도강점을 포기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복통이 터질노릇이였지만 그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한것은 짜리로씨야의 간섭으로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책동을 제 마음대로 벌릴수 없게 된것이였다.

게다가 명성황후의 친로배일정책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부아통을 더욱 터뜨리게 하였다.

1895년 1월 7일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강요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홍범14조》의 발표를 계기로 명성황후의 배일감정은 더욱 강화되였다.

명성황후의 배일감정의 강화는 결국 그로 하여금 당시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던 짜리로씨야와 접근하는 길로 나가게 하였다.

명성황후는 각국 공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외교관들의 회합장소였던 정동구락부에 척신들을 보내여 외국공사들과 친교관계를 두터이하도록 하였다. 이것을 기화로 하여 주조 로씨야공사 웨베르 역시 로씨야의 영향력을 조선황실에 부식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명성황후에게 접근하였다.

당시 조선주재 일본공사 이노우에가 일본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명성황후를 비롯한 친로파가 《일본의 간섭을 배제하고 왕실의 권세를 강화하기 위하여…일본당(친일파-인용자)을 제압》하고 《일본인을 타인시》하면서 로씨야공사관에 빈번히 출입하고있다고 비명을 지른것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조선황실에 대한 짜리로씨야의 침투와 친로파들의 활동에 대해서 얼마나 큰 불안을 느끼고있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일본외교문서》 제28권 1책 일본국제련합회 1953년 420~422페지)

이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있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순조롭게 실시하기 위해 조선봉건정부의 황실안에서 친로파세력을 약화시키고 친일파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온갖 비렬한 책동을 다하였다.

일본정부가 1895년 여름 이노우에를 도꾜에 불러들여 짜리로씨야의 조선침투를 막기 위한 흉계를 꾸미는 한편 이해 6월 조선주재 일본대리공사 스기무라로 하여금 조선봉건정부에 기여든 일본《고문》들의 비상회의를 소집하여 친로파의 활동을 견제하고 친일세력을 튼튼히 장악하며 친로파와 웨베르사이의 련계를 방해하도록 한것은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이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갖은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친로파의 활동은 더욱 강화되여갔으며 그 결과 조선에 짜리로씨야세력이 더욱 대대적으로 뻗치게 되였다.

짜리로씨야공사관 성원들은 조선황궁에 빈번히 드나들면서 반일선동을 벌리며 정치경제적리권들을 탈취하는 방법으로 조선에서 침략적지반을 다져나갔다.

결국 청일전쟁이후 적극 추진시켜오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책동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게 되였으며 이로부터 그 어떤 결정적인 대책을 필요로 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결정적대책으로서 꾸며진것이 다름아닌 명성황후에 대한 살해사건이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당시 친로파의 우두머리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함으로써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을 친일정책으로 돌려세우려고 꾀하였던것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처럼 제놈들의 흉악한 침략야욕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한 나라의 황후, 국가권력의 대표자도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살인귀들의 무리였다.

 

2. 을미사변은 직접 일본정부에 의해 도발된 국가테로범죄행위

을미사변은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강도적으로 침해유린한 특대형의 범죄행위인 동시에 직접 일본정부에 의해 도발된 국가테로범죄행위였다.

을미사변이 직접 일본정부에 의해 도발된 국가테로범죄행위였다는것은 이 사건의 도발목적과 도발과정, 뒤처리 등 모든 사실이 립증해주고있다.

을미사변의 도발목적은 조선에 대한 짜리로씨야의 세력팽창을 가로막고 저들의 독점적지배야망을 실현하려는데 있었다.

일본은 이를 위하여 당시 친로파의 우두머리인 명성황후를 제거함으로써 저들의 침략야망을 손쉽게 실현하려고 하였다.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을 친일정책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최상의 방도를 명성황후살해에서 찾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처음에는 주조일본공사 이노우에를 내세워 조선봉건정부 내부대신인 친일분자 박영효를 리용하여 명성황후를 암살하기로 꾸미였다.

일본외상 무쯔 무네미쯔가 1895년 5월 22일에 작성한 비밀계획에 의하면 이노우에가 일본으로 귀환하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박영효를 통해 명성황후를 암살하도록 되여있었다. (《일본외교문서》 제28권 1책 일본국제련합회 1953년 423~424페지) 이노우에는 일본정부의 지시로 1895년 여름 귀국하기 며칠전 조선봉건정부 궁내부 《고문》으로 있던 오까모또 류노스께를 만나 박영효를 리용하여 명성황후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모의를 하였다. 비밀모의에서 이노우에가 박영효를 리용하여 명성황후를 암살하도록 할데 대한 의견을 제기하자 오까모또는 《박영효는 정부의 신임을 잃고있으며 군대를 움직일 신망도 없으니 잘못하면 갑신정변때와 같은 일을 저지를수 있다.》고 하면서 이노우에의 제기에 선뜻 응해나서지 않았다.

당시 박영효는 조선봉건정부안에서 친일세력들의 정치적지반을 닦기 위한 권력쟁탈소동을 벌린것으로 하여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미움을 받고있던 인물이였다.

이러한 박영효에게 명성황후암살임무를 주는데 대하여 오까모또가 선뜻 동의해나서지 않자 이노우에는 당시 조선봉건정부안의 《고문》자리를 차지하고있던 호시, 사이또 등이 있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박영효는 능히 황후암살임무를 해낼것이라고 하면서 오까모또를 설득시켰다.

오까모또와 합의를 본 이노우에가 박영효에게 황후암살임무를 주자 그는 《절대로 일본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제군들의 호의도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경찰과 군대도 자기가 틀어쥘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였다.

이노우에는 조선봉건정부안의 각 부에 들어박혀있던 일본인《고문》들을 불러놓고 《왕비와 박영효는 어느때든지 충돌한다. 그때에는 박영효를 도와서》 황후를 《제거하라.》는 과업을 주고 조선을 떠났다. (《조선교섭자료》 중권 비서류찬간행회 1936년 462~463페지)

그러나 박영효를 리용한 명성황후암살음모는 사전에 발각되여 파탄되게 되였고 박영효는 고종황제가 내린 체포령으로 일본공사관에 잠시 피신해있다가 일본군의 호위밑에 인천항에서 배편을 통해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명성황후암살미수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은 일본정부는 전면적파탄의 위기에 직면한 저들의 대조선침략정책을 역전시키기 위해 직접 명성황후살해음모에 나서게 되였다.

1895년 7월 일본정부는 이노우에를 참가시킨 내각회의에서 조선에서의 친일세력의 지반보존대책을 토의한 다음 이노우에를 다시 한성에 들여보내여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에게 각각 6 000원과 3 000원에 해당하는 보물과 300만원의 가짜행표를 뢰물로 주어 조선황실을 안심시키도록 하였다.

일본반동정부는 명성황후살해작전의 적임자로 극악한 군사깡패인 륙군중장 미우라 고로를 내정하고 그를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임명하였다.

명성황후살해음모의 실행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1895년 9월 1일 한성에 기여든 미우라는 황후살해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비밀리에 추진시켰다.

한성에 기여든 직후 미우라는 고종황제에게 《앞으로 부르지 않는 한 왕궁에 들어가지 않겠다.》느니, 《신의 거처에서 한양의 풍월을 즐기려고 한다.》느니, 《외신(미우라-인용자)은 불경을 외우면서 세상이 무사태평하기를 비는자이니 신의 손으로 관음경을 필사하여 왕후페하에게 올리고저 한다.》느니 하고 너스레를 피우며 자신을 《정치문외한》, 《풍류공사》, 《독경공사》 등으로 묘사하면서 당시 독실한 불교도였던 명성황후의 환심을 사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사》 1권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5년 264페지)

미우라의 간특한 술책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미우라를 《평화공사》, 《부처님공사》로 부르면서 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었다.

이렇게 명성황후의 경계심을 눅잦힌 미우라는 1895년 10월초부터 이미 일본에서 작성한 황후살해계획을 더욱 구체화하고 그 실천대책을 세우는 등 살해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1895년 10월 3일 일본공사관비밀회의실에서 공사 미우라, 서기관 스기무라, 공사관 무관 구스노세, 조선봉건정부 궁내부 《고문》 오까모또 등의 참가밑에 꾸며진 최종계획에 의하면 일본의 군사경찰무력과 민간인폭도들을 주력으로 하여 무어진 살인집단으로 황궁을 습격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하도록 되여있었다.

미우라일당은 지어 저들의 살인범죄행위가 문제시되는 경우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원군을 황궁에 끌어들여 그와 명성황후사이의 권력쟁탈전에 끼여든 조선인훈련대가 정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살해한것처럼 사태를 날조하여 모든 후과를 대원군에게 넘겨씌우려는 흉계까지 꾸미였다.

명성황후살해거사날자는 10월 10일로 정해졌으며 총지휘는 미우라자신이 직접 맡고 참모장격은 오까모또가, 군대지휘는 구스노세가, 경찰에 대한 지휘는 령사관 경부 하기하라가, 민간인폭도들에 대한 지휘는 《한성신보》사장 아다찌가 각각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미우라일당은 명성황후살해에 일본군수비대 450명과 일제침략군에 의해 훈련받은 조선인훈련대 200여명, 일본공사관 경찰 및 일본민간인폭도 50여명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봉건정부에서 조선인훈련대에 대한 해산명령을 10월 7일에 내리고 8일부터 무장해제시킬것이라는 뜻밖의 정보가 미우라일당에게 들어왔다.

그리하여 명성황후살해거사를 10월 8일로 앞당기기로 결심한 미우라는 10월 6일 급기야 오까모또를 대원군에게 보내여 이번 거사에 가담할것을 강박하고 감언리설로 업어넘겨 다짐을 받아내도록 하는 한편 일본군수비대 대장 마야하라에게 명성황후살해음모에 수비대를 동원시킬데 대한 긴급명령을 내리였다. 이에 따라 마야하라는 10월 7일 각 중대장들에게 출동명령을 하달하였다. 같은 날 미우라는 친일매국역적들인 훈련대 대대장 우범선, 리두황 등에게도 출동명령을 떨구었다.

일제야수들에 의하여 무서운 흉계가 꾸며지고 바야흐로 피비린내나는 참사가 벌어질 시각에조차 조선봉건정부통치배들의 각성이 극도로 해이된 상태에 있던 10월 7일 밤 10시경 오까모또는 30여명의 일본깡패무리들을 앞세우고 대원군을 끌어내기 위해 떠났고 일본군수비대 독립 제18대대의 병력 450명은 마야하라의 지휘밑에 조선인훈련대를 앞세우고 경복궁을 향해 출발하였다.

10월 8일 새벽 일본침략군 살인집단이 경복궁앞에 도착하자 오까모또는 살인무리들에게 《입성한 다음 여우(명성황후-인용자)를 림기처분하라.》는 비밀지령을 주었다.

오까모또의 지휘밑에 일본살인집단은 훈련대를 내몰아 황궁수비 시위대와 총격전을 벌리게 하고 저들은 사다리를 타고 궁성벽을 넘어 황궁에 침입하였다.

일본살인강도단은 시위대 련대장을 살해하고 황제의 거처지인 건청궁에 침입하여 황제(고종)와 황태자를 감금한 다음 황후의 침전인 곤녕전에 뛰여들어 명성황후를 색출하기 위해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돌아쳤다. 살인악당들은 이미 사진을 통해 명성황후의 얼굴모색을 눈에 익혔지만 숱한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황후를 쉽게 찾을수 없었으므로 맞다드는 궁녀들을 모조리 칼로 치고 찔러죽였다. 살인악당들은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면 그가운데 명성황후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일본살인악당들의 이러한 궁녀살해만행으로 황궁은 삽시에 일대 살륙장으로, 피바다로 전변되였다.

궁녀들에 대한 야수적인 살해과정에 일본살인악당들중의 한놈이 곤녕전의 한 으슥한 방에 숨으려고 하는 복장이 수상한 《궁녀》를 발견하고 다짜고짜로 그의 머리칼을 거머쥐여 넘어뜨린 다음 일본도로 내리쳐 절명시켰다. 그가 바로 명성황후였다. 일본살인악당들은 저들이 이미전에 명성황후의 양딸로 황궁안에 잠입시켰던 년을 통해 방금 칼에 맞아 쓰러진 녀인이 명성황후라는것을 확인하였다. 일제살인마들은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은채 피를 흘리고있는 명성황후를 홑이불에 둘둘 말아 밖에 내다놓고 살아남은 궁녀들을 통해 최종확인한 다음 곤녕전부근의 록산 소나무숲에서 이미 준비해놓았던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죽이였으며 타다남은 몇개의 뼈쪼각마저 저들의 범죄흔적을 없애기 위해 부근의 못속에 집어던졌다.

바로 이것이 력사에 을미사변으로 전해지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명성황후에 대한 야만적학살만행의 진상이다.

미우라를 괴수로 한 일본살인악당들의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전과정은 을미사변이 전적으로 일본정부에 의해 꾸며지고 감행되였다는것을 론박할 여지없이 실증해주고있다.

을미사변이 직접 일본정부에 의해 도발되였다는것은 이 사건에 대한 뒤처리과정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을미사변에 대한 내외의 항의와 비난의 목소리가 날을 따라 높아지는 조건에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형식상이나마 명성황후살해사건관련자들에 대한 문책놀음을 벌리지 않을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한성주재 일본령사 우찌다는 일본외무성에 보낸 《사건선후책》에 관한 보고서에서 사건이 발생한지 며칠이 지나갔고 일본인들이 사건에 관여하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더는 숨길수 없게 된 조건에서 일본공사관이 그에 대한 《취조》를 하지 않는다면 외국인들로부터 비난과 항의를 받을수 있으므로 10월 12일 《취조》놀음을 벌리겠다는것과 함께 관계자(경찰과 민간인)들을 모여놓고 《취조》시 답변할 말까지 짜놓았다는데 대하여 통보하였다.

우찌다의 보고내용은 한마디로 명성황후살해사건은 심상치 않은 사건이므로 기만적이며 형식적인 《취조》놀음이라도 벌려야 하며 《취조》받는자들로 하여금 제각기 허튼소리를 하지 않도록 이미 짜준대로 같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우찌다가 짜놓은 대답이란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원군을 호위하기 위해 황궁으로 들어갔으며 황궁에서 칼부림질을 한것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조선사람들뿐이며 일본인들은 전혀 그에 관계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명성황후살해사건의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넘겨씌우기 위하여 얼마나 교활하게 책동하였는가 하는것은 조선봉건정부안의 친일분자들을 강박하여 당시 군부협판 리주회, 친위대 부위 윤석우, 일본공사관 로무자 박선을 명성황후살해범인으로 체포심문하고 교수형에 처하게 한 이른바 《리주회사건》의 조작만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성은 우리 인민과 조선주재 외교단의 강한 항의와 규탄에 못이겨 마지 못해 벌려놓은 《취조》놀음에서도 낱낱이 드러났다.

조선주재 일본공사관에서 벌려놓은 《취조》에서 범인들에 대한 《취조》를 담당한 공사관 경부놈자신이 명성황후살해만행의 공범자였다. 따라서 살해사건에 관한 《취조》는 혐의자가 혐의자를 취조하는 괴이한 형식으로, 그것도 미리 짜놓은 약속대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방법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일본공사관이 《취조》를 통하여 꾸며낸 《조서》의 내용은 미리 짜놓은 그대로였다.

그러므로 이 《조서》로써는 누가 명성황후살해범인인지 알수 없었다. 이것은 놈들이 벌린 《취조》놀음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진행되였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이 기만극의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취조》를 받은자들을 다시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보내여 《심문》을 받게 하는 새로운 기만극을 꾸미였다.

《히로시마옥》이라고 불리워진 새로운 연극의 기만성은 《심문》을 받게 된자들이 히로시마근처의 우지나항에 도착하였을 때 일본의 여러곳에서 모여온 반동정객들이 피고자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동정》하였는데 이 광경을 목격한 일본인자신이 실토한바와 같이 마치 《개선장군을 환영하는것과 같은 열광적인 환영》을 하였다고 말한데서도 낱낱이 드러났다. (《일제의 조선침략사》 1권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5년 271페지)

히로시마지방재판소는 미리 짠 계획에 따라 《예심종결서》에서 《피고자들에게는 왕후를 살해한 죄를 범하였다고 인정할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미우라를 비롯한 피고자 48명을 재판에 기소조차 하지 않고 모두 무죄로 석방하였다. (우와 같은 책 271페지)

더우기 스쳐보낼수 없는것은 명성황후살해의 주범인 미우라가 히로시마감옥에 잠시 감금되였다가 무죄석방되여 도꾜에 도착하였을 때 일본《천황》이 측근을 보내여 을미사변의 《공로》를 치하하고 위로까지 해준 사실이였다.

이상의 모든 사실은 을미사변의 도발, 명성황후살해사건이 전적으로 직접 일본정부에 의해 감행되였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립증해주고있다.

 

3. 을미사변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야수성과 파렴치성을 만천하에 보여준 날강도적범죄행위

을미사변은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침해유린한 특대형의 범죄행위, 일본정부에 의해 직접 감행된 국가적인 테로범죄행위인 동시에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야수성과 잔인성, 파렴치성을 만천하에 낱낱이 보여준 날강도적범죄행위였다.

일본살인악당들이 감행한 명성황후살해는 동서고금에 그 류례가 없는 가장 야수적이고 잔인한 살인만행이였다.

명성황후살해만행의 야수성과 잔인성에 대하여서는 당시 일본살인악당들의 만행사건을 직접 목격하였거나 후날에 조사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잘 알수 있다.

일본살인악당들의 명성황후살해만행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로씨야사람인 샤바찐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나는 왕비의 거처에서 2개 방의 보초를 서고있던 일본인과 1명의 일본장교를 보았다. 그리고 … 일본옷과 양복을 입은 20~25명의 일본인들을 보았다. 일본보초병들도 일본장교들과 똑같이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한 일본인은 오른손에 단도(유럽식단도, 칼날길이 8~10in)를 빼들고있었는데 보건대 그의 지시와 지휘밑에 일본인들이 소리치면서 조선녀인들의 머리채를 잡아 창문밖으로 내던지였다. 왕후거처의 마당에 내가 서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10~12명의 녀인들을 창밖으로 내던지였다. … 왕후거처의 뜨락에서 내가 본 모든 조선녀인들이 살해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조선부르죠아민족운동사》(개정판) 사회과학출판사 주체99(2010)년 270페지)

당시 조선주재 로씨야공사였던 웨베르는 일본살인악당들이 황궁에서 감행한 명성황후살해만행에 대하여 증언하면서 《일본인들은 왕후와 궁녀들이 있는 방에 침입하였다. 궁내부대신은 일본인들을 맞받아 달려나가 … 용서를 빌며 두손을 들었다. 바로 이 순간 칼을 내리쳐 그의 두팔을 잘랐다.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일본인들은 〈어디에 왕후가 있는가?〉라고 웨치며 녀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왕후가 복도로 달아나고 그뒤를 한 일본인이 달려가 그를 붙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의 가슴우에 뛰여올라 세번 발로 내리눌러 죽였다. (칼로 찔렀을수도 있다.)》라고 폭로하였다. (웨베르가 1895년 10월 9일 본국에 보낸 전보문 부록 2)

역시 명성황후살해사건의 목격자인 미국인 맥캔지는 《일본인들은 방 한구석에 숨은 몸집이 작은 녀인을 발견하자 머리채를 휘여잡은채 왕후가 아닌가고 따져물었다. 그 녀인은 이를 부인하면서 몸을 빼여 마루로 탈출하려고 하였다. 그 순간에 불의의 칼질을 받은 녀인은 비명을 질렀다.

그옆에 있던 왕세자는 세번씩이나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듣기는 하였으나 더이상 소리를 내기 전에 일본인들은 그 녀인을 덮쳐 살해하고말았다. 그리고 아마도 채 절명되지 않았을 왕후를 홑이불로 싸서 얼마 멀지 않은 록산의 소나무수림속으로 운반하고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고 증언하였다. (맥캔지 《조선의 비극》 63~64페지)

또한 당시 명성황후살해사건을 조사한 로씨야검사는 《왕후의 유해가운데서 땅속에 약간 묻힌 머리앞면뼈와 한쪽 손목이 발견되였는데 이것은 왕후가 칼에 맞아 부상당하였지만 목숨이 붙어있는것을 그대로 불에 태워죽였다는것, 불에 타죽으면서 머리와 한쪽 손을 땅속에 묻어 불을 피하면서 필사적으로 모지름을 썼다는 예측을 확증해주고있다.》고 증언하였다. (《조선문제에 관한 로씨야자료》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보관자료 132페지)

이상과 같은 당시 목격자들과 사건조사자들의 몇가지 단편적인 증언자료들만 보더라도 명성황후에 대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살해가 야만성과 잔인성의 극치를 이루는 살인만행, 범죄행위였다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명성황후살해만행의 야만성과 잔인성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군국주의자들자신도 자인하였다.

명성황후살해사건과 관련하여 령사 우찌다는 일본외상대리 사이온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후궁(건청궁)에 침입한 한 무리의 일본인들은 방문을 밖에서 파괴하고 방안에 여러명의 궁녀들이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일본도를 꺼내들고 그 방에 침입하였다.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는 궁녀들을 잡아놓고 용모와 복장이 우아한 녀자부터 먼저 베여죽이였다. (이때까지 일본인들은 명성황후의 얼굴을 모르고있었다.) 그러나 그 방에 있던 녀자들은 나이로 보나 용모로 보나 왕후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들은 왕후를 놓쳤다고 속단하였다. 그러나 끝내 한명의 궁녀로부터 왕후의 얼굴 웃부분에 작은 반점의 곰보자욱이 있다는것을 알고 피살자들의 시체를 점검한 후 한명의 해당한 녀자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여러명의 궁녀들이 왕후가 틀림없다는것을 확인하였다. 왕후의 시체는 미우라공사가 궁중에 들어온 후 하기하라경찰관의 지휘에 따라 록산의 소나무숲에 날라다 장작에 석유를 치고 불태웠다.》고 실토하였다.

또한 당시 조선봉건정부안에 《고문》의 탈을 쓰고 기여들었던 이시즈까 에이죠도 일본살인강도들의 명성황후살해만행광경에 대하여 일본법제국장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일본인들이 《참살당한 왕후를 끌어내여 발가벗긴 후 국부검사를 하고 히히닥거리였으며 마지막에는 기름을 들씌우고 불태웠다.》고 실토하였다.

참으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감행한 명성황후살해만행은 동서고금의 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살인만행이였다.

을미사변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야만성과 잔인성뿐아니라 놈들의 파렴치성을 남김없이 보여준 대범죄행위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성은 을미사변의 진상을 가리우며 그 책임을 조선사람들에게 넘겨씌우려고 교활하게 책동한 사실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을미사변은 사건의 조작동기와 목적, 전개과정 등 모든것을 통해볼 때 전적으로 일본정부에 의해 감행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저들이 저지른 엄중한 죄행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어리석은 타산밑에 을미사변과 저들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듯이 사태를 외곡하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을미사변은 훈련대해산에 불만을 품은 병사들이 대원군을 업고 황궁에 들어오는 행정에서 조선사람들에 의해 야기된것이며 일본군대와 일본인들이 출동한것은 조선황제 고종의 요구에 의한 피동적인 행위로서 명성황후의 살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것처럼 여론을 기만하기 위하여 파렴치하게 획책하였다.

미우라놈은 명성황후살해후에 조작된 친일내각으로 하여금 을미사변은 《무기를 회수하고 훈련대를 해산하자는 〈론의〉에 〈격동〉된 훈련대원들이 〈왕궁안에 란입하여 분통함을 호소〉하던 행정에서 발생하였으나 〈즉시로 진압되고 왕궁은 무사하니 백성들은 각자 그 업에 안착〉》하라는 《고시문》을 내게 하는 한편 《일본인은 살해를 하는 등 란폭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것과 《왕궁안에서 폭행을 하고 사람을 죽인것은 모두다 조선사람이 한것》이라는 인증서를 저들에게 보내도록 하는 파렴치하기 이를데 없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본외교문서》 제28권 1책 1957년 498, 514페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교활한 기만극을 통하여 명성황후살해사건이 조선사람들사이의 충돌에 의해 일어났으며 저들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여론을 퍼뜨림으로써 제놈들의 죄행을 은페하려고 획책하였다.

미우라는 사건발생직후 그 진상을 밝힐데 대한 로씨야공사의 요구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은 훈련대를 반대하는 당파가 훈련대와 순검사이에 분쟁이 일어난것을 구실로 훈련대를 해산시키려 하였으므로 훈련대 병사들이 대원군을 받들고 일으킨것》이였다느니, 《일본군대가 출동한것은 국왕의 의뢰에 따라 그 사건을 진압하기 위한것이였다.》느니 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뒤집어 대답하였다. (우와 같은 책 494~495페지)

이러한 기만극으로도 부족하여 미우라는 1895년 10월 9일 《한성신보》사장 아다찌로 하여금 《한성신보》에 제놈이 로씨야공사 웨베르에게 준 대답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어 을미사변의 진상을 외곡보도하도록 하였다.

이상의 모든 사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교활하고 파렴치한 족속들이라는것을 남김없이 보여주고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성은 그후 조선봉건정부의 모든 력사자료들을 독점하고 명성황후살해사건과 관련한 기록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도록 함으로써 을미사변의 책임이 저들에게 있다는 론의가 다시는 벌어지지 못하도록 책동한 사실에서도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나 력사의 진실은 그 어떤 기만행위로도 가리울수 없다.

우리 인민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을미사변의 도발로 저지른 만고대죄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그에 대한 사죄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주체104(2015)년 8월 19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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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위 정책국 대변인담화

군국주의부활에 광분하는 아베일당에게 경종을 울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담화

지난 14일 일본수상 아베가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수상관저에서 진행된 각료회의에서는 아베의 이 《담화》를 정부의 공식립장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일제의 패전 70년과 관련한 아베의 《담화》는 마땅히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에게 영원히 가셔지지 않을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끼친 피비린 죄악의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석고대죄로 일관됐어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담화》는 발표되자마자 내외의 증오와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그것은 《담화》내용이 일본의 죄과를 한사코 회피하고 무작정 덮어버리며 어떻게 하나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려는 흉심으로 가득차있었기때문이다.

아베는 우선 《담화》에서 19세기에 서양나라들의 식민지지배의 여파가 아시아에도 들이닥치고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발생하여 커다란 타격을 받은 속에서 일본은 대세를 따라 《힘의 행사》로 이를 극복할 목적으로 《전쟁에로의 길에 나섰다.》는 식으로 일본의 해외침략이 불가피한 선택인듯이 합리화해나섰다.

더구나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되는가에 대하여서는 력사가들의 론의에 맡겨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2년전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있지 않다.》고 떠벌인 망언이 불변의 립장임을 꺼리낌없이 공개하였다.

이것은 과거죄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로골적인 선언이나 다름없다.

아베는 후안무치하게도 《일본인구의 80%가 전후세대로서 그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떠벌이면서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더는 없다는것을 공공연히 줴쳐대기도 하였다.

그것으로 력사외곡을 국책으로 정하고 과거죄행을 미화분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있는 진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드러내보였다.

인류에게 피해를 입힌 전범죄에는 시효가 있을수 없다.

죄악에 찬 과거의 반성은 결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장난거리가 아니다.

오만방자한 아베는 과거를 어물쩍해버리고 마치 일본이 패망후에는 《평화국가》로서 《부전의 맹세》를 견지해오고 어떠한 분쟁도 반대하였으며 《법의 지배를 존중》해오는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해왔다고 력설해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그 무슨 《적극적평화주의》와 《국제협조주의》의 기치를 들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요설을 늘어놓았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하게 저지른 죄악을 은페, 축소, 회피한 아베의 《담화》는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국제적정의와 인류의 량심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지금 세계는 일본을 대변하는 아베의 몰골을 통해 어제날의 파쑈일제나 오늘의 일본반동들이나 파렴치하고 간특하고 악착스럽기 이를데 없는 사무라이악종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경악과 분노에 치를 떨고있다.

일본국내에서도 《사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기만적인 내용》, 《인용의 형태로 언급하여 총리의 생각을 묻어둔 담화》, 《력사인식을 바꾸려는 의도》라는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나왔으며 제3국에서도 《일본의 죄과를 인정한 무라야마담화에서 완전히 후퇴한 언어적말장난》으로 혹평하였다.

오죽했으면 미국에서조차 《불충분한 사과》라는 평이 쏟아지고 괴뢰들마저 과거침략과 식민지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대신 《외교적수사로 책임회피에만 골몰한 담화》라고 비난하였겠는가.

《담화》를 발표한 아베는 패전국의 수장으로서 짓수그린 몰골이 아니라 마치 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독을 내뿜는 일본산독사 그대로였다.

지난날 일제에 의해 형언할수 없는 참혹한 인적, 물적, 정신적피해를 당한 우리 인민의 분노는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치솟고있다.

왜나라 오랑캐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비법적인 강점과 40여년간의 중세기적인 식민지통치기간 저지른 만고대죄는 그 언제 가도 지울수도 가리울수도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산천이 변한다고 해도 이 땅에 사는 어느 누가 100여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도륙내고 840만여명을 강제련행하여 살인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고 20만명의 애젊은 녀성들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든 특대형반인류범죄를 잊을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반만년력사와 전통은 물론 조선의 말과 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도 말살하려는 악독한 조선민족말살정책도, 단군조선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수려한 산천의 곳곳을 싸다니며 쇠말뚝을 박아놓은 상상밖의 죄악도,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마저 강탈하여 흐르는 세월마저 일본의것으로 만들려 한 간악한 책동도 동서고금에 류례가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것이였다.

일본이 저지른 반인류적인 범죄는 비단 우리 나라에서뿐아니라 동북일대와 관내를 포함한 광활한 중국대륙을 비롯한 아시아의 곳곳에서 감행되였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천추의 한을 남긴 전대미문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사죄하기는커녕 오히려 력사의 락엽속에 덮어버리려고 온갖 권모술수에 매달린 아베는 간교성과 호전성이 혈통으로 유전되고 극우익반동사상을 정치신조로 체질화한 현대판사무라이의 전형이다.

돌이켜보면 아베가 재침주로로 질주하는 군국주의마차의 마부자리를 차지하자마자 달라붙은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그 어떤 무력적인 위협이나 사용도 할수 없으며 군대를 절대로 가질수 없게 된 전범국, 패전국으로서 법적지위권을 전면부정하는 헌법개정이였다.

동시에 《주변유사시법》, 《유사시관련법》, 《테로대책특별조치법》 등을 비롯하여 해외파병을 위한 법률적토대를 닦아놓고 그 실현을 위해 항공모함타격단에 의한 대양진출, 최신예전략항공수단에 의한 작전령역확대, 《국제평화지원》의 명분에 의한 세계적진출 등 국제적판도에서 군국주의재침책동을 부단히 확대해왔다.

지난 세기 전 조선반도와 유라시아의 광활한 대륙을 집어삼키고 《동방의 맹주》로 군림하겠다고 으르렁대던 군국주의일본은 오늘날 전쟁국가부활에 환장이 되여 형식상의 《비핵3원칙》마저 다 줴버리고 핵무장화를 시도할 정도로 분별을 잃고있다.

특히 일본의 재침책동은 우리 공화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기어이 타고앉을 야심에서 보다 적라라하게 드러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예측할수 없는 핵으로 무장한 북조선의 위협》을 떠들며 지난 4월 새로운 《일미방위협력지침》을 조작해내고 《<집단적자위권>발동》을 통한 조선반도유사시개입의 명분과 군사적조건도 이미 완비하여놓았다.

죄악에 찬 과거의 연장인 반인류적이고 반평화적인 70년 력사를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로 미화분식한 아베의 《담화》야말로 군국주의일본의 극악무도한 흉체를 드러낸 독기어린 악담이다.

군국주의일본은 크게 오산하고있다.

패전의 부인은 패전의 답습을 가져오기마련이다.

아베가 죄악으로 가득찬 과거의 일본침략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찾기는커녕 《대동아공영권》의 옛 망상에 사로잡혀있을수록 차례질것은 력사의 무덤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백년숙적 일본반동들에게 천백배의 피값을 대를 이어가며 반드시 무조건 받아낼것이다.

천추만대를 두고서라도 일본으로부터 기어이 사죄와 배상은 물론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어떻게 받아내는가는 시간이 증명해보일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비쳐주고 앞날을 밝혀주는 등불이라고 하였다.

잘못된 과거에서 현재의 오유를 시정하고 새 출발을 할줄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전패국, 전범국으로서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범죄에 대하여 사죄와 배상을 하여야 할 국가적의무를 리행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나라로 남아있을수록, 일본특유의 간교성 그대로 회피와 모면으로 력사에서 과거를 지워버리려고 요술을 부릴수록 70년전에 당한 참패보다 몇갑절 더 처절한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교활하게도 미국에는 과거죄악에 대해 속죄의 흉내를 내는것으로 어물쩍해버리고 우리 민족과 아시아인민들앞에서는 책임을 회피할 오그랑수따위는 애당초 버려야 한다.

아무리 미국에 매달려도 일본은 정치적으로는 난쟁이의 나라이며 경제적으로는 부풀었던 비누거품이 사그라지기 시작한 몰락의 나라이다.

인류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지는해의 처지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 행성에서 영원히 꺼져내리는 악몽같은 비운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아베는 우리 인민과 인류앞에 무릎꿇고 저지른 만고대죄에 대해 무조건 사죄하고 성근히 배상하는것으로 죄악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실천적의지를 보여야 한다.

세계를 향한 재침의 독을 내뿜는 군국주의독사 아베와 일본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이 파멸에로 질주하는 일본을 구원할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군국주의독사인 아베와 일본은 이 엄숙한 경고앞에 심사숙고해야 할것이다.

 

주체104(2015)년 8월 19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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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성 대변인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

일제패망 70년을 계기로 죄악에 찬 과거를 가리워보려는 일본우익보수세력의 시도가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일본내각 각료회의 결정을 거쳐 발표된 수상 아베의 《전후 70돐담화》에는 일본의 침략력사에 대한 성근한 인정과 사죄가 담겨져있지 않다.

지난날 전대미문의 침략과 식민지파쑈통치로 조선인민에게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들씌운 일본은 아직까지 그에 대한 과거청산을 하지 않고있다.

일본의 조선침략과 40여년간의 식민지통치는 동서고금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포악하고 야만적인것이였다.

조선강점기간 일제는 100여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고 840만여명을 강제련행하여 살인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드는 반인륜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악독한 조선민족말살정책을 일삼으면서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까지 강탈하였으며 조선의 말과 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으려고 미쳐날뛰였다.

이러한 일본이 우리 인민에게 끼친 천인공노할 죄행과 헤아릴수 없는 피해를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않고있는데 대하여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이 그 무슨 미래와 국제사회속에서의 책임, 공헌을 운운하는것은 조선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며 국제사회에 대한 기만이다.

일본은 패망후에도 미국의 대조선침략정책에 추종하여 조선전쟁에 가담하고 재일조선인들을 탄압하면서 우리 나라의 통일을 각방으로 방해하였으며 반공화국적대시책동에 광분하여왔다.

조선민족앞에 죄악에 죄악을 덧쌓아온 일본은 지금에 와서 자기의 과거범죄를 덮어버리고 《평화에 대한 공헌자》로 둔갑해보려고 교활하게 놀아대고있다.

우리는 일본의 이러한 행위를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 국제적정의와 인류의 량심에 도전하는 철면피한 시도로 단호히 규탄배격한다.

지난 세기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에 사로잡혀 침략전쟁에 미쳐날뛰면서 아시아와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에게 커다란 참화를 들씌우다가 종당에는 패망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오늘 일본은 패전의 비참한 교훈을 망각하고 또다시 위험천만한 군국주의길로 줄달음치고있다.

일본은 《적극적평화주의》의 간판밑에 전쟁국가부활, 해외침략을 선택하는 파멸의 길이 아니라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특대형반인륜범죄를 비롯한 모든 과거범죄의 청산을 통하여 우리 나라를 비롯한 주변나라들의 신뢰부터 얻어야 할것이다.

일본의 백년죄악을 기어이 결산하고 피맺힌 원한을 풀고야말 우리 군대와 인민의 의지는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백배해지고있다.

주체104(2015)년 8월 14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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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불교도공동성명

일본의 략탈문화재반환을 촉구하는

북남불교도공동성명

올해는 조국해방 70돐, 일제가 패망한지 70돐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지난세기 40여년동안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민족에게 천추에 용서못할 죄악을 저질렀으며 헤아릴수 없는 인적, 물적피해를 주었다.

일제가 저지른 죄악가운데는 불교문화재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물질적재부를 파괴략탈한 범죄도 포함되여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식민지과거죄악에 대하여 사죄하지 않고 과거청산을 하지 않고있다.

략탈문화재반환은 전범국 일본이 해결하여야 할 주요과제중의 하나이다.

지금 일본에 소장되여있는 평양 률리사 석탑은 일제강점시기인 1910년대에 오꾸라호텔의 창립자 오꾸라 기하찌로가 평양 률리사터에서 략탈해간 귀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재이다.

조국해방 70돐이 되는 력사적인 시기에 일본은 과거범죄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회피할것이 아니라 조선민족에게 저지른 온갖 범죄를 청산할 용단을 내려야 하며 이미 일정에 올라 조정재판에 회부된 평양 률리사 석탑을 당장 반환해야 한다.

일본이 패망한지 70년이 되도록 평양 률리사 석탑과 《조선대원수투루》를 비롯한 수많은 략탈문화재들을 반환하지 않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다.

북남불교도들은 앞으로 세계불교계와 련대하여 일제가 략탈해간 모든 문화재들을 찾아오기 위한 활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성근하게 반성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씻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태도를 지켜볼것이다.

 

북측: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남측: 문화재제자리찾기

201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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