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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개교후

 

 

 

  새학기가 되었으나 1년 계약직 기간제 선생님은 뭔가 연속성 있게 일을 꾸려가지 못합니다.  내가 만약 계약직 선생님이라면 나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면 뭘해도 내 행위가 내년에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책을 사는 일도,  툭수교육을 위하여 취사도구를 구입하는 일도, 무슨 일을 맡기도 모두 계약직 교직원일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계약이 만료되고 재계약이 되지 않아 올해는 볼 수 없습니다. 

 

  학교를 위해서 이 분들이 희생?해야하는건가요?  열심해 해달라고 말하면 계약직 교원들이 열심히 할 수 있을까요? 미래가 불안하고 아무런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온갖 차별에 시달려야하는데요? 그러면 큰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게 바람직한건가요?   아저씨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관찰한 바로는 조직을 강요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더러 개개인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떨어집니다.  반대로 어떤 조직이건 개인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배려를 할때에만 그 개인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집니다.  한마디로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 경우 개인을 위한 선택을 하면 조직은 살고, 조직을 위한 선택을 하면 개인과 조직 모두 죽습니다.  거꾸로, 조직을 살리기 위해선 개인을 위한 조직적 선택과 배려를 해야합니다.  계약기간이 정해져있는 비정규직은 우리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고군분투하시며 2주만에 선생님들이 개교를 하셨습니다.  교실마다 쩌렁쩌렁 수업하시는 목소리에 숙연해집니다.  그러나 학생중 부모님이 코로나 확진을 받은 학생이 있어 곧바로 전교생 모두 등교는 중단되었어요.  다행히 학생은 감염되지 않고 격리되었고 다시 전교생이 등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담배피다 걸린 친구들이 있었지요.

 

  조그만 학교이지만 개교를 하였는데 화장실이 모잘라서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모두 용변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오줌을 누러 줄을 서다 급하면 다른 층으로 뛰어내려가야 하죠. 학교 설계시 가장 중요한 건 실배치입니다.  어디를 교실과 특별실로 쓰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몇명이되는지.  그러나 건축사무소에서는 이러한 교무업무와는 무관하게 학교 설계를 합니다. 이미 설계이전에 학생 규모와 각학년 반배치와 교육에 필요한 공간을 '선생님'들이 설계사무소에 요청을 해야하는데 이런 과정이 빠져버립니다. 검토를 한다하지만 도면을 못보는 까막눈 장학사 몇명이 대충 디다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 조차도 개교지로 부임한 2주전에 각학년은 몇반까지 학생들이 배정될거란 소식을 교육청으로부터 겨우 듣습니다.  물론 설계되어 지어진 건물과는 무관하게 교실들을 뜯어고치고 학년을 다시 배치하고, 평가관리실 등 필요한 공간들로 먼저 지정하고 채워나갑니다.

  그러니 많은 부분이 실정과는 맞지 않게 되고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개판으로 설계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면 ㅇㅇㅇ 선정위원회에서 해당 도면을 '선정'해서 세금쳐들여 쳐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육계에서 사용하는  ㅇㅇ위원회는 바꿔말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책임회피 선포' 행위입니다.  내가 잘못했으니 고쳐놓겠소 하는 이가 단 한명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그져 실수를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화장실을 개떡같이 지어놓은 책임을 외면합니다.

 

  학교는 작아도 하는 일은 큰학교나 작은 학교나 같습니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수업하셨던 선생님들은 다시 온갖 잡무에 큰학교의 3배는 시달려야합니다.  순회교사니 어쩌니 하며 실제 학교에 계신 몇몇 선생님들께서 학교 전반 업무를 짊어지셔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스텝들은 온전할까요?  노조한다고 당직선생님은 아예 뽑을 생각조차 안합니다.   그외 나머지 인원은 딱 3분의 1로 줄여놨지요. 3명이 하는 일을 1명이 하게하는데 선생님들에게나 학생들에게나 뭐 제대로 된 뒷받침을 하게될까요?

 

  그리고는 교육감선생은 와보고는 사진 한장 찍고 돌아갔습니다.  시범학교니 문제점을 얘기해달라는 말과 함께요.  우리는 사람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진 않습니다.  학생과 교직원, 학교를 상대로 실험을 하겠다는 발상에 기가 찹니다.  혁신이란 말은 제조업 공장에서나 물질에 대해 사용하는 말인데 언제부터인가 교육혁신이란 말을 교육계 높으신 양반들, 전교죠선생님들까지 입버릇처럼 쓰고 있습니다.  시범이니 혁신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에게 교육하는 곳에 사용한다는 것은 친구들과 우리 모두를 소모품, 물건 취급하겠다는 말이예요.  우리들은 시험당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누구나 한 번뿐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친구들이 배우는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예요.  정신 배싹 차려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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