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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운동이 시작되는 방법/운동은 어떻게 정지하는가

데렉 시버스: 운동이 시작되는 방법

 

* 데렉 시버스는 어떤 놀라운 동영상을 통해 실제로 운동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힌트: 혼자서는 할 수 없다.)

   

">http://www.ted.com/talks/lang/kor/derek_sivers_how_to_start_a_movement.html

 

 

운동은 어떻게 정지하는가

 

 

by 서미현 (문어)

2011년 5월 6일 금요일 오후 4:07

 

테드(TED)의 수많은 자료들 가운데 친구들에게 손쉽게 권하고 싶은 것은 데렉 시버스라는 음악가이자 활동가가 출연하는 3분짜리 동영상입니다. 짧고 쾌활하고 영감으로 가득차 있는 볼거리이지요. 시버스는 '운동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 평범한 홈비디오물을 청중들에게 보여주며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화면 속에서는 평범하고 깡마른 한 아이가 야외에서 웃통을 벗은 채 정신없이 막춤을 추고 있어요. 아이가 왜 그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관심을 기울일 가치는 그닥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명의 아이, 웃도리를 입은 조금 통통한 아이가 다가와 옆에 서서 몸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시버스는 첫번째 아이를 리더, 두번째 아이를 제1추종자(팔로워)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으면 그 전시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제1추종자의 역사적인 업적은 '또라이처럼 보이던 보잘것없는 녀석을 리더로 만들어준 것'이지요.

 

이어 제2추종자가 될 몇몇 아이들이 달려와 두 아이를 따라 춤추기 시작하고, (아마도 처음 만났을) 아이들은 정말로 유쾌하게 집단으로 즐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듭니다. 제3, 제4, 제5의 추종자들이 달려오면서 리더는 군중에 파묻혀 더 이상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후발주자들은 선발 추종자들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시버스는 "이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동영상에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지점, 일종의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버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운동을 일으키고 싶다면, 누군가를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세요.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외로운 미치광이를 만나면 맨 먼저 일어서서 따를 수 있는 배짱을 가지십시오!" 운동의 단초, 근본적인 주체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요?  

 

이 동영상은 제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 몇 차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과천에서 마실 독서클럽을 진행하는 한 친구는 세미나 시간에 이 동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어보았죠. "우리 모임에서 리더는 누구죠?" 뜬금없는 질문에 얼마간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 친구를 먼저 머릿속에 떠올렸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도 참말이지 초등학생 같지 않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친구는 세미나를 하고 있던 책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책이 리더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여러분에게 권하고 새롭게 읽어보자고 한 제가 제1추종자입니다."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넷상에서도 이 영상이 몇 군데 공유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회를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헌신성과 희생이 요구되는 활동을 하는 어떤 사람들이 - 이 영상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고 말하면서 - 스스로를, 그리고 자기가 속한 그룹을 '리더'와 동일시하고 '외로운 미치광이'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버스가 내내 그토록 제1추종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도 말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가고 있다, 또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리더라고, 앞장서서 남을 이끌어 가는 선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요?

 

운동의 본질은 '어떤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의 극점, 운동의 원점으로서의 '리더'는 - 앞서 예로 들었듯이 - 굳이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상적인 몸짓이나 강력한 사상, 종교적 계시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위대한 리더는 - 시버스의 동영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무언가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는 제1추종자는 가장 보잘것없는 대상을 눈여겨보고 용기 있게 따라나서는 사람, 그 대상의 매혹을 전파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이 위대한 여정은 대단히 우스꽝스런 광대의 길이기도 합니다. 북한 주민들을 끝까지 품에 보듬겠다고 공공연히 나서는 종교적 열정의 길일 수도 있고 지지율 0.2%의 대중정당을 10년째 고수하고 있는 '사회주의 동호회'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바보 노무현을 사랑했던 초기 노사모 사람들일 수도 있지요. 이런 이들을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히 정의로울 것도 없는 우리는 왠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광대와 군주, 가장 속물적인 것과 가장 고결한 것, 가장 비굴한 감정과 가장 위대한 감정이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면 더더욱 - 알고 있으니까요. 

 

어쨌건 어떤 운동이건 영원히 애초의 동력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추던 춤을 계속 추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쳐서 이탈해 나가는 추종자들을 붙들어 두고 내부에 활력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악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운동이 시작된 계기, '가장 보잘것없는 대상'에 대한 매혹과 그것을 전파하려는 의지를 상실한 채, 자기  추종자들이나 추종자로 끌어들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성향(대중의 이해와 니즈!)을 운동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력을 상실한 운동은 철저하게 '내부 관리 모드'에 들어가고 운동의 지도부는 관료가 됩니다. 새롭게 나타나는 '외로운 미치광이'는 무시되거나 '우리 영역을  갉아먹는 분열자'로 배척됩니다. 아무런 구심력도 매혹도 가지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단초의 가능성을 억압하고 관리하려 하며, '너는 왜 우리와 같이 하지 않느냐, 왜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느냐'고 순진하게 심문합니다. 

 

아마도 관료는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고 티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자기 내부에서 매혹의 계기를 상실한 사람, 외부로 뛰쳐나가려는 복잡한 감정과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누르며 자신을 '대중의 니즈'를 받아들이는 투명한 담지자로만 내세우는 사람을 우리는 관료라고 부를 것입니다. 관료는 리더를 상실한 제1추종자입니다. 자, 이제 스스로 리더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숙명이라고 우울하게 자인하는 사람, 스스로 부과한 책무에 스스로 짓눌려 비스듬히 고개 숙인 찌푸린 얼굴, 화도 내지 않고 웃지도 않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카프카의 성채, 결코 도달할 수 없도록 설정된 보스몹입니다. 

 

대학교에 강연을 나온 고위 관료에게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 회전문 인사가 문제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료는 아무런 부정도 않고 수치심이나 불쾌감도 없이 천진하게 한 마디로 문제를 무화시켰습니다. "허참, 그런 것이 있나요?"  한 줄의 경력이 아쉬운 젊은이들을 사회단체에서 무급 인턴으로 착취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비판에 관료적인 책임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본인들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 걸요." 

 

이러한 관료-몹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운동은 정지하고, 운동이 정지한 곳에 남는 것은 - 그때까지 운동에 기생해 왔던 - 앙상한 정치공학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료들과 싸우면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시나브로 길을 잃어버리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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