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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항쟁, '상상력'에 '계급'을

‘상상력’에 ‘계급’을!

- ‘2008년 촛불항쟁’과 좌파의 정치 -

 

 

 

‘100일 간의 축제’ vs ‘100일 간의 악몽’

 

“이 체제에 위기의 경향이 ---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에 앞서 대중의 의식과 헤게모니 블록이 변화되어 이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면, 이런 폭발은 의심할 바 없이 엄청난 역사상의 퇴보를 야기할 ‘우파의 대규모 역공’을 촉진시킬 지도 모른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신좌파의 상상력>> 가운데서)

 

촛불항쟁이 8월 15일을 기해 100회째 집회를 맞았다. 7월 중순 이후 이명박 정권의 전방위 탄압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 타오르고 있다. 초기의 발랄하고 경쾌한 동력은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그 끈질김은 계속되고 있다. 그 출발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듯이, 그 어느 누구도 촛불이 언제 꺼질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언제 꺼지나, 꺼지지 않나”가 더 이상 쟁점이 아닐 것이다. 이미 ‘2008년 촛불’은 100일간의 타오름만으로도 자신의 역사적 몫을 충분히 다했다. 촛불항쟁의 지속 여부를 둘러싸서 ‘광우병 대책위’ 내부에서는 불매운동으로 전환, 지역에서의 생활밀착형 촛불집회, 서울에서의 집중집회 지속 등의 논란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든, 혹은 각각의 방향으로 결정이 나든, 그것은 그 자체로 촛불의 파문이자 잔영일 것이다. 새로운 촛불의 준비일 것이다.

 

‘100여 일간의 악몽’을 지워버리기 위해 이명박 정권과 수구보수언론은 총력적인 반격을 펼치고 있다. 2008년 5월에 켜진 촛불이 이명박 정권의 취임 100일간의 초기 국정주도권 장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듯이, 100여 일간의 촛불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 내 모든 변혁의 가능성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몸부림이 ‘공포의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떠한 치장도 미사여구도 없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8월 12일, “촛불시위자들도 미국에서 쇠고기 먹던 사람들로, 수입되면 먹을 것”이란 이명박의 발언은 차라리 치기稚氣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00여 명이 넘는 촛불집회 연행자들에게 벌금 폭탄이 예고되고, 촛불을 진압하기 위해 이명박식 백골단인 1,700명 규모의 ‘경찰관 기동대’를 창설했다.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고, 휴대용 분사기로 시위 참가자를 철저하게 색출하겠다는 경찰의 태세는 광장과 거리의 촛불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검찰을 동원한 MBC ‘PD수첩’ 강압 조사, 촛불집회의 진원지인 ‘아고라’가 속한 포털 Daum에 대한 세무조사는 아래로부터의 소통과 토론의 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100여 일간의 악몽’을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아니 철저하게 짓이겨 지워버리고 아직 권력의 힘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해야 할 일을 시급하고 차질 없이 하는 것, 그래서 공약대로 경제를 살리고 그 성과에 바탕하여 20% 안팎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회복하고 747의 날개를 활짝 펴는 것,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을 원상회복하는 것, 아마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의 당선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의 확인”으로 해석한 이명박 정권은 8월 들어서 ‘법과 원칙’, ‘개혁의 차질 없는 진행’을 내세우며,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거침없이 해나가고 있다.

그 첫 번째 수순이 방송장악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감사원, 검찰,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권력기관을 총동원하여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시켰다. 이어 8월 11일에는 공기업선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41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통·폐합, 기능조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1차 공기업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기업 규제완화 관련한 법안을 입법 예고했으며, 방송통신위원회는 대기업의 방송 진출 문턱을 낮춘 방송법 시행령도 추진 중에 있다.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국공유기업을 국내외 자본에게 내다 팔며,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교육시장화 정책을 다시 전면화하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이러한 전면적인 반격 앞에서 100여 일간 끈질기게 타올랐던 촛불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일지는 모른다. 혹 그래서 촛불이 소진되기 전에 이 촛불의 동력을 시급히 국회로 가져가 촛불이 제기한 문제를 국회 내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턱없는 유혹과 환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물론 ‘거리와 광장의 촛불이 꺼지느냐 꺼지지 않느냐’, 혹은 ‘이명박 정권의 진퇴 여부’가 당장은 승패의 1차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촛불항쟁’이 100여 일간 보여준 역동성과 새로움과 풍부함을 당장의 성패 여부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 어쩌면 ‘2008년 촛불항쟁’은 지난 10여 년간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 대중적 반격의 첫 라운드일 지도 모른다. ‘조직적 방어’가 아닌 ‘대중적 공세’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2008년 촛불항쟁’은 향후 10년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헤게모니 블록의 단초’일지도 모른다. 그 한계와 약점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체들의 주도로, 또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2008년 촛불’은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만큼 그 어떤 정치사회세력도 그 어떤 계급도 이 촛불이 제기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2008년 촛불’로부터, 의식하지도 못한 채 경험한 100여 일간의 촛불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가 이후 촛불을 어떻게 진전시킬지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때로는 당혹스럽게, 때로는 놀라움으로 촛불과 조우했던 좌파는 ‘2008년 촛불항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물론 2008년 촛불의 전모를 지금 온전히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지금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2008년 촛불항쟁’으로부터 좌파적 ‘상상력’을 끄집어 내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좌파적 ‘상상력’을 ‘계급’이라는 주체와 결합시켜 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시대에, 좌파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과 좌표 설정의 계기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면, 좌파는 진정 또 하나의 촛불로, ‘제2, 제3의 촛불’로 21c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이 열렸다

 

“이러한 자발성은 해체되고 흩어져서 탈주하는 자발성이 아니라 모여서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발성이었다. 현장에서 바로 바로 토론을 통해 입장을 정리해 나가는 모습에서 대중은 직접행동을 통해 대리주의를 거부하였고, 현장에서 움직이는 대중의 ‘집합적 이성’이 오히려 이제까지의 어떠한 이론가, 운동단체, 정당 보다 우위에서 움직였다.”

(남구현, ‘촛불의 정치-몇 가지 쟁점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운데서)

 

‘광장’이 열렸다.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의 결과로 형성된, 숨 막힐 것 같던 보수 일방의 제도 정치구조의 틀을 무력화시키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초 청계광장에서 여중고생들이 켠 촛불의 당당함과 발랄함이 20대, 30대, 4~50대의 부끄러움을 일깨워 100만 촛불항쟁으로 발전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에서 불붙은 촛불이 이명박 정권의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과 항의로 이어지면서 출범 100일도 채 안된 정권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줄은.

그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거침없이 오가며 타오르던 촛불이 의제를 독점하며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해 온 조중동 언론 권력의 실체를 불과 한 달여 만에 폭로하여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릴 줄은.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촛불이 불러일으킨 촛불들이 경찰의 통제와 탄압을 오히려 비틀고 조롱하면서 무력화시키고, 수구보수세력만이 아닌 제도 정치권 전체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으며, 나아가 소위 ‘운동권’마저 하나의 촛불로만 머무르게 할 줄은.

 

5월, 촛불이 연 ‘광장’은 “바리케이트 없는 해방구”였다. 거기에서는 이명박 정권도, 제도 정치권도, 조중동의 언론권력도, 심지어 이른바 운동권도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하나의 촛불이 또 다른 촛불을 일깨웠고, 인터넷과 광장을 순식간에 오가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소통’과 ‘토론’과 ‘직접행동’의 광장이 형성됐다. 인터넷과 거리의 광장에서 이명박 정권과 경찰은 조롱거리가 됐고, 제도권 정당은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었으며, 디지털 생중계와 아고라에서의 토론은 보수언론을 무력화시켰다.

‘광장’은 그 자체가 ‘직접민주주의’의 산실이자 배움터였다. 인터넷을 통해서 혹은 거리에서 촛불들은 ‘직접 참여’해서 정보의 소통과 토론을 통해 ‘직접 결의’했고, 또 ‘직접 행동’했다. 촛불들은 정부의 폭력에 대한 공포없이 자유롭게 발언했으며, 다양함 속에서도 때론 발랄하고 명랑하고 유연하게, 때론 간명하고 단호하고 끈질지게 발언했고 행동했다. 광장에서는 어떤 권위도 인정되지 않았고, 또 누구의 참여도 가로막지 않았다.

 

통일된 중앙지도부도 수직적인 위계체계도 없었지만, 촛불들은 스스로 시민기자단이 되었고, 의료지원단이 되었으며, 자원봉사자가 됐다. 모두가 전위였고, 모두가 배후였으며, 세대와 깃발을 뛰어넘어 오직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연대만이 촛불과 촛불을 이어주었다. 87년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민주주의의 동력은 의회민주주의 혹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에 갇히거나 소진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보존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광장에서의 직접민주주의라는 방식으로 역동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2008년 촛불의 ‘광장’은 저항과 축제가 어우러진, 정치와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정치의 장이었다. 저항과 축제가 서로를 배제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항으로 형성된 공간이 곧 축제의 장소가 됐으며, 축제는 곧바로 저항의 자양분이 됐다. 정치는 문화에 의해 풍부해졌고, 놀이와 문화는 정치로 고양됐다. 비장함과 즐거움이 서로 섞였고, 분노와 해학⋅풍자가 서로 어우러지며 뒤엉켰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위대와 구경하는 시민들 사이의 경계가 뚜렷했지만, 촛불집회에서는 서로 섞여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촛불 ‘광장’이 새롭게 열어젖힌 것은 공간과 주체와 그 방식만이 아니었다. 요구와 의제 역시 확장됐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협상이 계기가 됐지만, 그래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와 ‘재협상’ 요구가 가장 주된 의제이자 동력이기는 했지만, 촛불은 자신의 요구를 ‘쇠고기’에만 가두지 않았다. 10대들에 의해 ‘미친 교육’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의해 ‘전기⋅가스⋅의료⋅물의 사유화 저지’가, 그리고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한반도 대운하 반대’와 ‘공영방송 사수’로 요구와 의제가 확장됐다.

그리고 이 모든 요구와 의제의 확장은 ‘이명박 OUT’으로 모아졌다. 집권 초기에 그 어떤 제도적 정치적 견제도 없이 거침없이 강행될 것 같았던 이명박 정권의 ‘프랜들리 비즈니스’ 정책은 불과 집권 100여일 만에 강력한 대중적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그 결과 이후 어떠한 사안에 대한 대중적 저항도 ‘이명박 OUT’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와 의제의 확대에 두려움을 느낀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수구보수언론들은 6월 10일 이후에 “‘촛불집회’의 성격이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비폭력적인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서 이명박 정권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 즉 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국면을 전환시키면서 대대적인 탄압을 예고했고, 또 그렇게 했다. 그들이 의제의 확장을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받는 대중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화되는 것”이고, 몽매한 무지렁이 대중들이 의제의 확장 속에서 “특정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하게 만들기 때문”(이광일, ‘촛불정치와 민주주의, 공화국의 미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운데서)인 것이다. 의제의 확장에 대한 ‘탄압’은 곧 민주주의의 확대⋅심화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의 표현인 것이다.

 

2008년 8월, 우리는 촛불항쟁이 열어젖힌 새로운 ‘열린 광장’을 가지게 됐다. 그것도 세계사적인 유례가 없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직접민주주의의 광장을. 저항과 축제가 서로 어우러지고, 주체들의 직접 참여와 소통과 행동에 의해서 무한히 의제가 확장되는 광장을. 그리고 그 어떤 직접행동도 이제 이명박 정권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직접 겨냥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광장을 가지게 됐다.

이 광장은 10대 촛불소녀가 발랄하게 열어젖힌 공간이지만, 어느 주체에게도 닫혀 있지 않다. 누구도 이 광장에 참여하고 소통하면서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광장에서 촛불들이 비록 ‘분노의 밧줄’로 이명박 정권을 간신히 지탱하던 ‘와이어’를 끊어 ‘명박산성’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해학과 풍자’로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폭로하고 비틀어서 정치적으로 고립시켰고 수구보수세력의 헤게모니를 폭로하고 무력화시켰다.

 

당장 촛불의 ‘광장’이 제도화된 의회주의 정치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광장은 21c 한국사회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긴밀하고 신속한 연결을 통해, 저항과 축제의 융합을 통해, ‘제도의 정치’, ‘공간의 정치’를 뛰어넘는 ‘기동전의 정치’, ‘시간의 정치’의 가능성을, 그래서 의제를 선도하고 확장하면서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화시켰다.

그것은 단지 ‘고통의 호소’와 ‘비장함’만으로는 열리지 않는, 더욱 공세적이고 발랄하고 유연하고 다양하고 즐겁게 소통하고 직접 행동할 수 있을 때에야 열리는, 그런 광장이다. 비록 이명박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탄압으로 광장이 다시 움츠러들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지난 100여 일간의 광장의 경험과 기억까지 다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21c 한국사회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아니 모두 거쳐 가야 할 ‘광장의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로두스다. 바로 여기서 뛰어라!

 

 

‘밥상’위의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정치의 확장과 새로운 정치 주체의 등장

 

“촛불의 외침은 우리 사회의 부자유나 음습함, 권위주의를 조롱하고 일거에 날려버린 유쾌한 반란이며 문화혁명입니다. 정치사회적 투쟁의 선도자는 성인 남성이라는 통념은 5월 2일 청계광장에 모인 촛불소녀들로 당혹스러울 만큼 깨졌습니다”

(박원석, ‘촛불은 혁명을 닮았습니다’, <<촛불은 민주주의다>> 가운데서)

 

먹거리의 정치화! 아마 이명박 정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복원의 대가로 ‘쇠고기’를 내주고 돌아온 이명박 정권이 “이제 우리 국민은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협상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을 요구할 줄은.

그리고 ‘쇠고기 수입 반대’로부터 시작된 촛불이 한반도 대운하 계획, 영어 몰입교육, 4⋅15교육자율화 조치, 의료⋅물⋅전기⋅가스의 사유화, 공기업과 은행의 사유화, 강부자⋅고소영 내각, 물가인상을 불러일으킨 고환율 정책 등 이명박 정권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확대될 줄을. 더욱이 그 가장 앞줄에, 그 가장 중심에 10대의 여학생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여성들이 설 줄은.

 

2008년, ‘쇠고기’라는 일상의 먹거리가 한국 정치의 최대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먹거리가 정치화된 것이다. 쇠고기라는 일상의 먹거리가 정치화됐다는 것은 일상의 삶의 문제가 건강과 생명의 문제가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일상의 삶의 문제, 먹거리의 문제가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곧바로 정치화하지는 않는다. ‘일상의 정치’, ‘생명의 정치’를 무매개적으로 혹은 초역사적으로 절대화시킬 필요는 없다.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 직후, 쇠고기라는 먹거리 문제가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한 데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에 보여주었던 모습과 정책에 대한 대중적인 분노와 실망과 절망이다. 경제살리기에 대한 기대는 출범하기도 전에 꺾였다. 말로는 ‘경제 살리기’와 ‘서민 경제’, ‘머슴’ 등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독점 재벌과 부자들만을 위한 불도저 정권이라는 것이 취임 초기부터 투명하게 드러났다. ‘어륀지’ 영어 몰입교육은 물론, 강부자⋅고소영 내각, 한반도 대운하의 강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4⋅15교육자율화 조치, 전기⋅가스⋅물의 사유화, 규제 완화, 방송장악 시도 등, 최소한의 공공 안정망과 노동자 민중들 자신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급격한 시장화의 추진에 대중들은 절망했고 분노했다. 더욱이 국회의 2/3는 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대중들의 이해를 제도 정치권 내에서 대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대중들의 절망과 분노에 기름을 끼얹힌 것이 바로 4월 ‘쇠고기 협상 타결’이었다.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건강은 안위에도 없고, 검역주권마저 포기하면서 쇠고기를 내준 이명박 정권에 대해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5년을 견뎌내야 하는데. 그래서 촛불을 들었고, 쇠고기라는 먹거리는 정치화됐다. 일상의 먹거리와 건강⋅생명의 문제는 현실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그것도 그 중심에. 정치는 쇠고기라는 일상의 문제로 확장됐고,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됐다.

그 일상의 문제, 건강⋅생명의 문제는 10%도 채 안되는 가진자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고 그래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자들의 일상의 문제이자 건강⋅생명의 문제였다. 영세 자영업자들과 농민들과 청년실업자들과 비정규 노동자들과 도시빈민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촛불을 끈질기게 사수했고, 자유발언대에서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남김없이 드러냈고, 이명박 정권과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2008년 촛불은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으로 호명된, 조직화되지 않고 자각되지 않은 계급투쟁의 맹아였다. 오히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강남의 부유층들만이 자신들의 계급적 자각과 결집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먹거리의 정치화’라는 정치의 확장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10대 여학생들과 여성들의 전면적인 등장이라는 정치 주체의 확장과 맞물려 있다. ‘탈정치화’가 아니라 ‘정치 주체의 확장’이다. 10대 여학생들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가장 먼저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여성들 역시 먹거리 문제에 가장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기감이, 혹은 예민함이 모두를 곧바로 직접 행동에 나서게 하지는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 너나 먹어’라는 당찬 말에서 드러나듯, 국가 권력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고 권력의 폭력에 의한 공포의 경험이 없는, 그래서 자유롭고 발랄하고 당당한 10대였기에 가능했다. 여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망을 형성해서 일상적으로 부담없이 소통하면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토론을 해왔기에 가능했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런 정치가 미국산 쇠고기와 함께 생활 속에 잘게 쪼개지면서 시민들 속에 들어왔다. 20이 80을 지배하거나 말거나, ‘정치에는 문외한이에요, 호호호’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아주머니들이 배운녀자의 살아있는 눈빛을 체득하면서 섹시한 여전사들로 변모했다. 성원의 변화는 시위의 본질과 양태를 변화를 필연적으로 가져왔다. 그러므로 2008년 촛불이 갖는 여성중심의 특징과 문화적 다양성의 특징은 불가분의 유기적 결합을 하고 있다.”(목수정, ‘촛불소녀와 배운녀자, 문화적 상상력을 운동에 풀어놓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운데서)

 

2008년 쇠고기라는 ‘먹거리의 정치화’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가 드디어 우리의 일상의 ‘밥상’ 위에 올라왔음을 뜻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의 실체가 일상과 삶의 정치적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2008년 촛불항쟁에서 그것은 국제통상에서 ‘검역 주권’의 문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다. 좀 더 나아가 한미FTA 협상에 대한 미국 국회의 비준과 맞물려 있다는 점만이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아직 촛불 속의 대중이 쇠고기라는 먹거리와 한미FTA와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간의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가 한미FTA 반대나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반대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이제 일상에서의 삶과 건강⋅생명의 문제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라는 자본의 운동과 일상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새로운 현실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과거에도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에 맞선 저항이 있었다. 구조조정과 민영화, 그리고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와 구조조정에 맞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투쟁을 힘겹게 전개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정규직의 구조적 양산과 고용불안의 제도화, 그리고 자본의 분할 통제에의 포섭이다. 그래서 노동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 역시 지속되고 있다.

이제 반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투쟁의 맹아가 일상의 영역, 소비의 영역, 건강과 생명의 영역에서 그 모습을 잠깐 드러냈다. 그것도 전혀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그러나 아직 그 맹아는 ‘검역 주권’과 ‘주권재민’이라는 강보에 싸여 있고,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촛불에 당혹스러워 하거나 낯설어 하거나 서운해 하고만 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는 인간의 삶을 생산의 영역만이 아니라 생활과 소비의 영역, 나아가 생명 그 자체도 파괴하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생산의 영역과 소비⋅생활의 영역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고, 또 각각 자본의 논리와 법칙에 포섭되어 있다. 그래서 자본에게는 통일된 두 영역이 노동자 민중들에게는 충돌되거나 별개의 문제로 된다. 조합주의적 인식과 대응, 소비자주의적 인식과 대응만으로 이 두 영역을 결합시킬 수는 없다.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만이 이 둘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좌파는, 노동자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가 밥상위의 정치가 되는 현실, 권위와 폭력에 주눅 들지 않고 광장에서 해방감을 맞보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촛불의 주체들과 어떻게 대면하고 소통할 것인가? ‘광장’을 활용만 할 것인가? 새로운 주체들에 서운함만을 표현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겠습니까?”

-MBC100분토론,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아니, 그럼 국민을 바꿔요?”

-아고라 네티즌

(아고라 폐인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가운데서)

 

2008년, 두 개의 대한민국이 충돌했다. 두 개의 민주주의가 충돌했다. 두 개의 민주공화국이 충돌했다. 이명박 정권과 수구보수세력들의 대한민국⋅민주주의⋅민주공화국과 촛불항쟁에서의 대한민국⋅민주주의⋅민주공화국 간의 충돌이 그것이다. 이명박의 대한민국은 8⋅15를 건국절로 하여 대대적인 기념식을 했고, 촛불의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거리에서 촛불로 타올랐다. 이명박의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항변했고, 촛불의 민주주의는 “그럼 국민을 바꾸냐”라고 맞받아쳤다. 이명박의 민주공화국은 제도정치권 내 엘리뜨들만이 ‘공적’인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촛불의 민주공화국은 국민들이야말로 권력의 주체라는 것이었다.

이명박의 대한민국은 “촛불대중의 문제제기를 단지 수입쇠고기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로 축소”시키고자 했고, 이에 촛불은 “쇠고기 수입 결정이 주권을 지닌 국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관료적 방식으로 도출”(이광일, 앞의 책)된 데 대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드리대며 비판했다. 정치는 오로지 선택된 엘리뜨만의 몫이라는, 그래서 광장으로 나온 촛불에 대해 ‘촛불배후론’을 드리대며 탄압하는 이명박의 정치관에 대해, 촛불은 ‘내가 배후고, 우리 모두가 배후’며, ‘정당한 시민들과 싸움에서 정권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정치관으로 대응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08년 촛불항쟁 기간 동안에 가장 많이 가장 자연스럽게 불려진 노래이자 구호인 <헌법 1조>다. 2008년 촛불항쟁의 주 슬로건이자, 이념이다. 왜 2008년에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구호가 외쳐지고, 노래가 불려졌는가? 왜 <헌법 제1조>가 60여 년간 활자 속에 묻혀 있다가, 촛불들에 의해 거리로 광장으로 불려나왔는가?

물론 쇠고기 협상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권의 “1인 중심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일방적 결정과 집행”, “국민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민주적 절차 부족”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과 분노의 표현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과 행태가 지난 20여 연간 쌓아 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파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임을 “국민은 종업원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정치적 주체”임을, 그래서 “대통령을 바꿀 수는 있지만, 민주공화국은 바꿀 수 없다”는 자각과 결의의 표현이다.

 

2008년 촛불이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거듭남을 알리는 신호”만인가? 2008년 촛불이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 20여 년간 쌓아 온 민주주의만인가? 2008년 촛불이 ‘과거’만을 향하고 있었는가? 촛불 대중은 이명박 정권 들어 대한민국이, 국가가 ‘공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자본의 이해의 증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으며, 제도 정치권은 단지 자본간 이익의 분할을 위한 거래소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최고집행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짧은 기간 내에 간파했다.

그래서 촛불대중은 나섰다. 권력을 더 이상 제도정치권에 위임할 수 없다고. “내가 곧 정치의 주체”라고. 부와 권력을 가진자들에게는 관대하고 가난한 대중들에게는 고통일 뿐인 현실의 민주공화국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겠다고.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주권자인 인민대중이 공적인 것을 처리하는 정체인 민주공화국을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고. ‘주권을 지닌 인민대중의 자기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스스로 실천하고 구현하겠다고. <헌법 제1조>는 2004년 탄핵과정에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세력이 보여주었던 학습효과일 뿐이었다. 그들이 기대고자 했던 <헌법>을 거꾸로 드리밀며, 그 헌법의 수호자는 그들이 아닌 바로 촛불이라고 되받아쳤다.

 

이러한 촛불대중의 등장으로 이명박 정권과 수구보수세력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무기력해졌다. 그들이 내밀 수 있는 것은 ‘벌거벗은 탄압과 폭력’, ‘촛불 배후론’, ‘폭력 시위’ 운운 정도였다. 촛불대중의 등장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것은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의민주주의이고, 직접 민주주의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빨리 촛불을 접고 여의도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어느 저명한 자유주의 정치학자의 훈수도 동원됐다. ‘제도화’된 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바라보는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대중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담겨져 있었다.

 

2008년 촛불이 ‘대의민주주의’적 환상을 완전히 벗어던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직접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의 보완물로 여기고 있다. 또 촛불이 지배세력의 ‘폭력 시위’ 운운 공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폭력/비폭력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비폭력주의가 ‘저항’ 그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되면서 촛불의 역동적인 진전 그 자체를 가로막기”(남구현, 앞의 책)도 했다.

“애초 대중 자체가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무리, 폭도mob라는 그들의 오랜 대중혐오증을 확산”시키려는 ‘폭력시위’ 딱지, “대중은 자기결단을 할 수 없고, 그 어떤 엘리트나 리더들의 지도 혹은 대의를 매개로 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광일, 앞의 책)라는 ‘촛불시위 배후론’ 등 지배세력의 공세는 여전히 2008년 촛불대중들의 머리 위를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다.

 

2008년 촛불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현실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주권선언이자 직접행동이다. 그 속에는 “기존의 국가와 법이 자본주의적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개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그 공공성에 대한 저항이 잠재”되어 있다. “자본의 시녀가 되어버린, 시장과 경제 권력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는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이 촛불의 잠재적 역동성”(박영균, ‘촛불의 이념, 민주공화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운데서)이다.

2008년 촛불은 그 진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집단 이성’의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명박산성 앞에서의 폭력/비폭력 논쟁이 그랬고, 아고라에서의 소통과 토론이 그랬다. 물론 이 촛불의 광장에, 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에 노동자계급이 계급적 주체로 등장하고 있지는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 장애인들, 여성노동자들, 여성농민들이 하나의 계급적 주체로 이 광장에 서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2008년 촛불의 광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작게 느껴지고, 여전히 소외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광장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 광장을 지배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직접 참여하고 직접 소통하고 직접 발언하고 직접 실천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 자신의 전망을 직접 행동을 통해 ‘공적’인 것으로 정치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 속에서, 계급은 촛불을 계급의 정치로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며 역동적으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한편으로는 “국가주의라는 틀을 뛰어넘어 전지구적 수준에서 해석되고 실천될 필요”(이광일, 앞의 책)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계급적으로 더 급진적으로 해석되고 실천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촛불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 더 급진화되어야 한다.

 

 

‘상상력’에 ‘계급’을! 그리고 ‘조직’을!

 

“역사적 과정을 구체화하고 강화할 수 있는 혁명지도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이론은 공리공론에만 그 초점을 맞출 수 있을 뿐이다.

이론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기초작업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론적 분석이 제공해 준 통찰력을 역사적 실제로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단적 지식인’이 없다면, 이론은 실천에서 유리된 채로, 이성은 감성에서 분리된 채로, 그리고 에로스와 로고스의 통일은 깨어진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 변증법적인 긴장이 존재할 때에야, 조직화의 문제가 생기 넘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신좌파의 상상력>> 가운데서)

 

2008년 촛불항쟁은 어쩌면 급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동자계급은 지난 10여 년간 힘겹게 진행해왔던 반신자유주의투쟁의 성과인 촛불 앞에서 당혹해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08년 촛불항쟁이 과연 지난 10여 년간 노동자계급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직접적인 성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촛불이 여중고생들이 앞장서서 쇠고기 재협상 요구라는 생존과 검역주권 요구로부터 출발했지만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대중적 반격’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촛불이 만들어 낸 새로운 정세는 잠깐 불이 붙었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국면과 맞물려 재점화됐을 때, 그래서 제도 정치 전반의 위기와 경제적 위기가 결합됐을 때, 그것은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국면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 국면에서 대중들이 항상 직접 저항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의 삶에 대한 이기적 욕망 혹은 경제적 공포는 ‘강력한 권력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구체적 전망’, 그리고 그 전망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헤게모니 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때론 파시즘적 권력이 강력한 유혹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2008년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환상을 일찍 접게 만듦으로서, 대중 자신이 급진화되고 새로운 역사적 헤게모니 블록을 구축해 나갈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갑작스럽게 다가 온 촛불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아니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파업은 없었다. 촛불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지 못했다. 10여 년간 반신자유주의 구조조정투쟁에서 누적된 패배의식 때문인가? 그래서 정세의 역동적인 변화에 둔감해졌는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틀에 갇혀 수동화되어 있기 때문인가? 이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고 패배의 대가는 노동자들에게 더욱 가혹할 거라는 판단 때문인가? 촛불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지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 촛불광장이 노동자들의 판이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인가? 정치적으로 너무 수동화되거나 탈정치화되어 있기 때문인가?

2008년 촛불은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둘러 싼,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를 둘러 싼 ‘정치’투쟁이다. 그것이 비록 10대와 여성이라는 새로운 주체들에 의해 촉발되고 확장되었지만, 그것이 비록 먹거리 문제라는 소비와 생활의 영역을 중심으로 촉발되었지만, 자본의 신자유주의 지구화/세계화 공세에 맞선 정치투쟁이다.

 

노동자계급은 이 촛불 정세에서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자신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촛불과 함께 하며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촛불에 직접 참여하면서 촛불을 현장으로 지역으로 일상의 삶으로 실어날아야 한다. 현장과 지역과 일상의 삶의 문제를 촛불의 광장으로 실어날아야 한다. 이 촛불의 정치에서 기권해서는 안된다. 촛불은 다가오는 거대한 격돌을 예비하는 전초전일 수 있다. 이 촛불의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이 최소한 역사적인 헤게모니 블록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새로운 주체들과의 연대 속에서 또 새로운 영역에서 의제를 확장하고 촛불을 계급적으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촛불의 상상력 속에, 그 정치적 문화적 상상력에 계급이 접속해야 한다.

“현재 촛불은 특정한 지도부가 이끄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자발적이고 즉각적인 거리토론과 인터넷을 통해서 의제를 형성하고 해결하고 일정을 결정한다. 모든 조직과 단체는 촛불에 일원으로 참여할 뿐이다. 현재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 현재 환경운동단체가 대운하로 촛불과 접속하고, 공공부문 노동자가 사유화로 접속하고, 언론단체가 공영방송 사수로 촛불과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 일단 촛불 분위기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촛불에 참여해서 조합간부나 조합원들이 촛불 분위기를 몸소 파악하고 촛불들과 함께 싸우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국민적 의제인 쇠고기, 대운하, 교육, 의료, 공영방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김동성, ‘촛불과 함께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과 사회화투쟁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가운데서)

 

당혹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다. 좌파 역시 촛불의 광장에서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욱 정확히는 이 새로운 광장에 개입할 준비와 역량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새로운 의제를 계급적 관점에서 신속하게 분석하고 전망을 제출할 정치 역량과 좌파적 전문성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실시간으로 이어주는 소통 공간도, 광장에서 직접 소통하고 연대하고 행동할 역량도, 노동자계급을 조직적으로 이끌어 내어 촛불의 역동적 진전을 가로막는 지점을 뚫고 나갈 물리력과 조직력과 정치력도, 공세적인 당당함과 발랄함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좌파의 무능을 자족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한가한 짓이다. 2008년 촛불로부터 좌파는 배워야 한다. 2008년 촛불 정세는 좌파의 정치가 가능해 지는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정세에서 좌파는 한편으로는 촛불을 급진화시키면서 좌파적 대중과 소통하고 연대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 자신이 집단지성의 형성을 통한 역사적 헤게모니 블록의 한 축으로 서나가야 한다.

 

광장의 정치에서 정치적 전망에 대해 발언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과 ‘정치활동가’가 필요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매순간 이론과 실천의 긴장을 창출하면서 집단 지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쌍방향의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생산의 영역만이 아닌 생활과 소비 영역까지 포함해 의제를 생산하고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좌파적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좌파의 문화와 상징과 이미지를 2008년 촛불에서 보여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광장으로 나온 10대와 대학생, 여성 등 새로운 급진적 주체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모든 시도를 반자본 사회화와 직접민주주의⋅노동자민중통제를 결합시켜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해야 한다.

이 속에서 좌파는 정치적 활력을 새롭게 복원하고 능력있고 준비된 정치적 주체로 서 나가야 한다. 2008년 촛불을 절대화할 필요는 없지만, 좌파 정치운동의 자성과 혁신의 계기로 삼아 나가야 한다. 그 혁신의 결과가 ‘계급정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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