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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경선을 통해 이용득 한국노총 전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에 대해 몇 언론은 '돌아온 이용득'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정책공조 파기, 노동법 재개정" 등 선거공약을 소개했다.
그런데 잊지말아야 한다.
과거에도 위원장으로 당선됐을 때는 '한국노총의 내부 개혁'과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통해 노조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러나 그는 2006년에 9.11.노사정 야합의 주역이 됐다.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며, 고용유연성을 강화"시키는 <선진노사관계로드맵>을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를 3년간 유예하는 조항과 맞바꿔치기한 것이다.
그것도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밀실야합을 통해 --- 결국 그는 노동법을 30년 후퇴시킨 주역이었다.
9.11.노사정야합의 경과와 내용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연구](2006년 제3권제2호)에 기고했던 글을 길지만 여기 다시 옮겨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잊지않기 위해서.
‘9.11. 노사정 야합’, 모습을 드러낸 노무현판 선진노사관계
[마르크스주의연구]6(2006년 제3권제2호)
박성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1라운드 : ‘9.11.합의’
마침내 노무현판 ‘선진노사관계 로드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9월 11일의 정부-경총-한국노총간 합의가 그것이다. 2003년 9월에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한지 3년만의 결실(?)이다. 노사관계의 ‘선진’적인 틀을 새롭게 짜는데, 민주노총은 들러리만 서다가 끝내 배제됐다.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던 한국노총은 ‘선진’적 노사관계 창출의 주역이 됐다.
역사적이고 선진적인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핵심 쟁점 사안인 ‘복수노조 허용’ 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조건 없이 3년간 유예됐다. 그리고 9.11.합의 직후에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노골적으로 밝힌 것처럼, ‘선진’적 노사관계를 위해 “해고의 유연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획기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선진’적 노사관계는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아직은 국회에서의 입법화 과정이 남아있다. 입법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민중운동진영, 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총 내부에서도 ‘3년 유예’를 둘러 싼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 내에서 여야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직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987년 이후 3차례나 이루어졌던 ‘사회적 합의’ 시도도 부정적인 역사적 경험으로 남아있다. 임금인상 억제를 목표로 했던 1993~94년의 노경총 사회적 합의는 결국 대중적인 어용노총 해체투쟁을 촉발시켜 민주노총을 출범시키는 계기로 됐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의 신노사관계 구상에 따른 노동법 개악 시도는 그해 말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불러일으켰고, 노동법은 부분적으로 재개정됐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면화를 위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도입하는데 민주노총을 들러리로 활용했을 뿐이다.1)
그럼에도 만약 입법화가 이루어지고 반발과 저항을 무력화시켜 낼 수 있다면, 노무현 정권은 불안정한 ‘87년 민주화 체제’를 마무리 짓고, ‘97년 신자유주의 체제’를 제도적으로 완성시킨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것도 87년의 과제는 3년을 유예시키고, 97년의 과제는 철저하게 관철시키면서. 또한 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방향에서 자본축적체제의 변화를 모색해 온 한국의 총자본진영에게는 그 전환의 한 과정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진영의 투쟁이 입법화를 저지시켜 낸다면, 그것은 단지 입법화 저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전면화해 온 97년 체제에 대한 반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2006년 ‘9.11.합의’는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전환을 둘러 싼, 한국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인가? ‘밀실 야합’인가?
9.11.합의의 성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노사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사회적 대타협이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고 노동개혁을 후퇴시킨 노사정 야합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9.11.합의를 선도한 한국노총과 경총, 그리고 노동부는 9.11.합의가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으로 ‘사회적 대타협’이었다고 강변한다. 9.11.합의 직후, 민주노총 대표자를 제외한 노사정대표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번 합의는 노사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마련된 것”이며, “법 시행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또한 9.11.합의의 주역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합의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복수노조, 전임자임금)는 맞물려 있는 부분이므로 하나만 완비하고 차후 해결하자는 것은 노사 서로 양보되지 않는 부분이므로 파국을 면하고 향후 3년은 집중적으로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 노사정이 한발씩 양보해서 대타협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취지에서 노사와 정부가 동의하게 된 것”이라 주장했다. 나아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9.11.합의가 “700만 내지 800만의 노동자가 혜택을 보는 큰 성과”라며 후퇴가 아니라고 강변하기조차 했다.
그리고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또 한 주역인 경총과 대한상의도 “노사정이 한 발씩 물러나 힘들게 대타협에 이르게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복수노조의 허용에 대해서는 기업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지만, 노동유연화와 해고유연화, 그리고 대체근로를 통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무력화에 관련해서는 크게 반기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9.11.합의가 “민주노총이 빠진 밀실 야합”이고, “1,500만 노동자를 기만하고 노동권을 유린하는 폭거”이며 “노사관계 선진화를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시켰다고 규탄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민주노총의 ‘8대 요구사항’2)에는 응답하지 않으면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소영웅주의와 삼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총이 야합”했으며, “복수노조 허용은 국제노동기구로부터 13회의 권고를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주적 노사관계로 가는 출발점이며, 비정규 노조의 교섭권 확보로서 즉각 이행되어야 한다”3)고 강력히 주장했다.
민주노동당도 9.11.합의안 발표 직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복수노조 3년 유예는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산별노조 결성을 막고 기업별 노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합의안 철회를 요구했다.
절차상의 문제만 볼 때, 9.11.합의는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민주노총을 배제한 명백한 ‘밀실 야합’이자 ‘반쪽 로드맵’이었다. 지난 3년간 선진적인 노사관계로의 개혁을 주장해 왔지만, 마지막 지점에서 민주노총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이 사설에서 주장한 것처럼, 9.11.합의를 통해 “경영계와 한국노총은 실리를 챙겼고, 정부는 노정관계 파국을 막는다는 핑계로 개혁을 포기했다. 노동부장관은 경제부처 장관처럼 처신했으며,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계 전체의 뜻을 바르게 대변하지 못했다.”4) ‘선진’적 노사관계로의 개혁이 93~94년 노경총 사회적 합의수준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밀실 야합이 가능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점 때문이었다. 먼저 한국노총과 경영계가 야합을 한 것은 전임자 문제에 조직의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노총과 복수노조만큼은 막아야 하는 무노조 기업 삼성, 어용노조와 유령노조를 관리하고 있는 포스코, SK, LG 등 주요 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노-경총 합의에 노동부가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동의했던 것은 내년 대선을 고려할 때 한국노총을 안고 갈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정부의 단독안으로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즉 “헌법 개정보다도 어렵다는 노동법 개정을 하려면 결국 노사정 합의를 통한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5)이다.
그러나 9.11.합의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밀실 야합’이라고 해서, 9.11.합의를 그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로만 한정시켜 바라봐서는 안된다. 그래서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한, 뭔가 다른 ‘사회적 합의’가 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지난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고, 또 그럴 필요가 없으면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시키더라도, 정권과 자본이 의도하는 내용을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으로 관철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노사정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그것이 노사정위원회든 노사정대표자회의든 관계없이, 또한 그것이 전략적인 개입인지 전술적인 개입인지 관계없이, 정권과 자본의 의도가 관철될 수밖에 없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합의의 내용이라는 것이 언제나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는 틀이다.
그러나 9.11.합의라는 노무현판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사회적 합의에 도달함과 동시에 그 생명을 다하게 됐다. 출범 이후 사회적 합의의 주체로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노무현 정권의 시도는 이로서 막을 내리게 됐다.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사회적 합의의 내용도 결국 노동자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에 다름아니라는 점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1998년 1월에 이어 다시 한 번 들러리로 전락한 민주노총은 적어도 당분간은 어떤 명분으로든 노사정간 사회적 대화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고 민주노총과 노무현 정부간에 돌이킬 수 없는 대립적 관계가 고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에게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이은 두 번째의 쓰라린 경험의 반복이었다.
9.11. 대노동 테러
민주노총을 뺀 노사정 대표자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인 <노사관계 법 제도 선진화 방안(이하 ‘로드맵’)>의 32개 합의안 내용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9.11. 대노동 테러’이다. 노동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라는 점에서 그렇고, 9.11.합의를 계기로 그 전과 그 이후의 노사관계, 노정관계, 노노관계가 전면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로드맵’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며, 고용유연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전임자 임금만 받고 나머지 다 내줬다”고 할 수 있다. ‘선진적 노사관계’란 이름으로, 핵심 쟁점 사안은 3년간 유예시키면서 “파업은 약하게, 해고는 쉽게” 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핵심 쟁점이었던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3년간(2009.12.말) 유예됐다. ‘복수노조 금지 조항’(노조법 제3조5호)은 그간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고 1500만 노동자의 단결권을 원천봉쇄해 온 악법 중 악법이었다. ILO가 13차례에 걸쳐 한국정부에 전면 허용을 권고해 올 정도로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대표적 악법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 조항은 한국노총이 1997년 이후 두 차례(1997년, 2002년)에 걸쳐 유예를 합의해 오면서 명맥만 유지해 오던 것이었다.
이 조항 덕택에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 포스코의 유령노조 정책이 가능했고, 이 조항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에 제약을 받아왔다. 자주적인 단결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이 조항을 한국노총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유예와 맞바꾸기 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노총 집행부가 밀실합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노동귀족'의 권리일 뿐이고, 한국노총은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전임자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5년 유예’를 구걸해서라도 노조 상층 기득권자의 권리만을 지키려 한다”6)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아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는 비정규직 조직화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삼성,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어용노조’, ‘유령노조’의 사업장에 민주노조가 설립될 길이 원천봉쇄함으로써 이후 산별노조의 조직화와 산별교섭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이 늦춰지면 기업별 단위노조들이 현행 체제를 바꾸어야 할 명분을 잃게 돼 산별전환의 동력이 움츠러들 가능성이 있는데다 삼성이나 포스코 등 다른 미가입 대기업 노조에 대한 조직화 사업도 어렵게 되기”7) 때문이다.
둘째, ‘로드맵’은 필수공익사업장과 관련하여,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필수업무유지제를 도입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며,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도 현행 철도, 전기, 병원, 수도, 가스, 석유, 한국은행 등에서 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 공급업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직권중재 폐지는 ILO도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안으로 정부안에도 들어 있던 내용인데, 이 조항의 폐지로 직권중재에 회부된 이후 15일 동안 파업을 벌일 경우에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어 지도부의 고소고발과 손배 가압류가 남용됐던 전례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파업권이 온전하게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합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업의 무력화는 노조의 교섭력과 조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 필수공익사업 확대로 민주노총의 공공연맹의 경우에 12만명 가운데 80%가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됨으로서,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조합원은 2만여 명에 불과하게 됐고, 필수업무유지제의 의무화로 필수업무유지에 해당하는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할 경우에는 소송을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에게 걸 수도 있게 되어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는 심각하게 위축되게 될 것이다.
셋째, ‘로드맵’은 부당해고와 관련하여, “금전 보상도 허용”하고, “사업주에게 부과했던 벌칙 규정을 삭제”했으며,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고 했지만, “현행 60일인 사전통보기간을 기업규모에 따라 30~60일까지 차등 설정”했다. 이로서 사업주의 해고권한은 대폭 강화됐고, 부당 해고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으며, 근로기준법은 무력화됐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누려야 할 가장 최소한의 권리를 규정한 법이다. 그 가운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할 수 없도록 한 부당해고 금지조항은 핵심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당해고를 할 경우 처벌조항은 근로기준법 위반사항 중 가장 무거운 형벌(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금전 보상을 허용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은 무력화됐다. “부당해고를 하더라도 금전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언제든 조합원에게 금전보상을 신청하라고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부당해고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5년 이상이 걸린 사례에 비추어 보면, 사용자는 해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언제든 돈으로 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8)이다.
또한 경영상 이유로 해고할 때 사전협의 기간이 현행 60일이던 것을 기업과 해고 규모에 따라 30일부터 60일까지 차등 설정함으로서 노조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축소됐다. 그만큼 해고에 대한 노조의 대항권은 약화됐고 사업주의 해고권은 강화됐다.
넷째, ‘로드맵’은 위와 같은 내용 외에 “유니온숍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복수노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2010년 1월부터 다른 노조 가입과 결성을 가능”하게 했고,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관련해서는, “노조법 제11조에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의 공개, 투표용지 등의 보전 및 열람에 관한 사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 3년 이내 동일업무에 국한해 정리해고자에 대한 재고용의무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행위에 한해서만 손배가압류를 허용해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에 대해서, 논의 자체를 제외시키자는 경총의 입장이 관철됐고, 민주노총이 제안했던 8대 요구안과 관련해서는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9.11.합의의 결과로 “투쟁력은 없지만 협상타결과 결렬을 결정할 수 있었던 한국노총은 벼랑 끝 스탠스를 최대한 활용”9)하여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라는 성과와 사회적 대타협의 주역이라는 성과를 챙겼다. 게다가 이번 합의로 “700만 내지 800만의 노동자가 혜택을 보는 큰 성과”를 냈다고 자찬까지 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3년 유예하는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와, ‘대체근로를 통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무력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영계는 이번 합의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노무현 정권도 ‘미봉책’, ‘개혁의 후퇴’, ‘밀실 야합’ 등의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3년간 끌어온 ‘로드맵’을 마무리지울 수 있게 됐다. 민주노총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들러리만 서게 된 꼴이 됐다. 9.11.합의의 현상적인 결과와 대차대조표는 이렇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2001년의 9.11.사태 이후 부시정권의 대테러전쟁으로 세계가 더욱 안전해진 것이 아니듯이, 이번 ‘9.11.대노동 테러’로 노사관계가 선진화되고 안정을 찾을 거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한국노총은 노조전임자들의 임금보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맞바꾸기하고, 직권중재 폐지를 대체인력 허용과 맞바꾸기 했으며, 부당 해고에 대한 노조의 대항권을 약화시키는데 동의함으로써 1,500만 노동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국노총만의 조직이기주의와 정권과 자본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결국 전체 노동자를 버렸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노사관계를 좀 더 민주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더 이상 ‘사회적 대타협’을 입에 담을 수 없게 됐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9.11.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민주노총은 9월 19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서 ‘노무현정권 퇴진과 노사정대표자회의 용도 폐기, 그리고 한국노총과의 연대 파기’를 공식 선언했으며, 11월 15일 무기한 총파업 돌입을 결의했다. 9.11.대노동 테러에 맞선 11.15.총파업, 그 결과에 ‘87년 민주화 체제’와 ‘97년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귀결될지가 달려 있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vs “민주노총은 뭐 잘한 것 있냐”
9.11.합의의 결과가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것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조가 파기된 것이다. 9월 11일, ‘합의’를 마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사정위원회 건물을 빠져나오자 한 민주노총 조합원이 이용득 위원장을 뺨을 때렸다. 이어 조합원들은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이용득 위원장 앞에 누워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에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은 뭐 잘한 것 있냐”며 맞대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노총은 9.11. 폭력사태를 ‘집단테러’로 규정하여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법을 30년 후퇴시킨 한국노총”이라고 비판하며, “한국노총 해체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자 한국노총은 9월11일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이용득 위원장 폭행 사건에 대해 공조파기를 경고하며 사과를 요구10)했다. 민주노총은 공조가 이미 파기됐다며 사과하기를 거부11)했다. 이로서 2005년 11월에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각자의 길을 가던 양대 노총은 2006년 7월 공조 복원을 선언한지 2개월 만에 다시 공조를 파기했다.
‘한국노총 내부 개혁’과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겠다던 이용득 집행부는 이로서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 회귀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임지는 자세’,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자본과의 협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9월 14일,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민주노총이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식의 막가파식 노동운동을 그만”두라고 일갈을 한 이용득 위원장은 9월 25일에 정세균 산자부장과 함께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도쿄에서 열린 한국투자환경설명회에 참여함으로써 ‘변화’된 모습을 책임있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총연출한 드라마에서 끝까지 주인공 자리를 지켜낸 이용득 위원장의 협상력에 대한 찬사”는 중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되어 이용득 위원장에게 역풍을 가져다 줄 것이다. “재계의 패러다임에 한국노총이 말려든 꼴”이기 때문이다. “외형상으로는 한국노총이 절실하게 원하던 두 가지가 모두 실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계가 옛날부터 파 놓은 함정에 결국 노동계가 놀아나고 있는 꼴”이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10년 전부터 재계가 복수노조 허용을 막기 위해 함께 걸어놨던 것인데 이 패러다임에 한국노총이 말려든 것이고, 사활을 걸고 있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경우도 이번 합의로 3년간 유예된 것일 뿐”12)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이런 행보에 대해 “의도적으로 노-노 갈등을 확대시키며 정부와 경영계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고 있으며,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정책에 충실하게 영합하여 ‘역사적 범죄’를 저지른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민주노총은 9월 1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한국노총과의 공조 파기를 공식 선언했다. 단지 공조 파기만이 아니라, ‘로드맵’과 ‘비정규 입법’의 국회 통과를 둘러싸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이로서 전임 이수호 집행부 이래로 한국노총과의 상층연대를 추진해 오던 민주노총 내 일부 경향도 그 구도를 접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13)
그러나 ‘9.11.합의’에 대해 민주노총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비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협상 전략 실패의 원인이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지킬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다 얻기 위한 현실적 대안도 없이 주장만 앞세운”14) 점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협상전술의 부재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민주노총의 김태일 사무총장은 최근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협상전술이 비핵심 쟁점에서는 일정한 집중점과 유연성을 발휘했으나 남아 있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집중점과 전술이 없었다는 점에서, 전술의 실패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한국노총이 전임자임금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사활을 걸었던 것에 비해, 민주노총은 시종일관 8대 요구 일괄타결의 원칙 견지 때문에 전술적 집중점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집단이라는 매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15)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로부터 나오는 다른 하나의 비판은 좀 더 근원적이다.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에게 ‘5년유예 합의’라는 뒤통수를 맞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주말에 벌어진 노사정의 ‘음모’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민주노총의 ‘무기력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한국노총의 행보가 이미 예견되었는데 양대 노총의 공조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집착한 민주노총 집행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16)이 그것이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할 때 내걸었던 ‘교섭과 투쟁의 병행 전술’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노사정 교섭을 진행하면서 현장조합원들의 투쟁을 조직화한다는 방침이었으나, 현실에서는 “‘8대 요구’를 조합원에게 알리기 위한 현장 교육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로드맵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도 없었다”는 것이고,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이 경찰폭력으로 사망하고 경찰이 적반하장으로 건설노조 간부들을 잡아들일 때도”, “최은민 부위원장을 비롯해 총연맹 간부들이 잇달아 구속·수배되고 정부가 민주노총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을 때도”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탈퇴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로드맵 협상에 일조했다는 비판17)이 그것이다. 교섭과 투쟁의 병행을 내세운 민주노총의 참여 전술이 결과적으로 교섭도 투쟁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한 9.11.야합이 이루어지던 바로 그 때에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미FTA 저지를 위해 시애틀로 감으로써, 중대한 시기에 지도부의 공백사태가 일어난 것도 리더쉽의 위기라는 비판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18). 민주노총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비판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복수노조 허용에 민주노조운동은 과연 진정성을 갖고 있었나”라는 문제제기로까지 이어졌다. 민주노총 내 상당수 대기업 노조들이 복수노조 실시 유예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민주노총은 결국 총파업을 통해 9.11.합의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는 것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의지’와 ‘역량’, 그리고 ‘진정성’을 이제는 투쟁 그 자체를 통해서만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됐다.
2라운드 : ‘입법화’와 ‘총파업’
9월 14일 노동부는 ‘9.11.합의안’ 그대로 입법 예고를 했다. ‘노사정 합의안’이라는 화려한 포장을 하고. 노무현 정부는 2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입법안을 확정짓고 11월 초에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정부의 입법안대로 국회에서 통과가 된다면,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3년간 유예되고, 직권중재 폐지 및 대체근로 허용은 2008년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07년부터 각각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911.합의안’이 국회에서 무난하게 통과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노무현 정권의 강행 ‘의지’는 분명하다.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노-경총합의안을 전격 수용한 것도 이번 정기국회가 ‘선진 노사관계 로드맵’을 처리할 마지막 시점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안’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민주노총을 배제한 그 자체가, 그리고 그 합의의 내용이 국회에서 논란19)이 되고 있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민중진영과 시민단체20)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정세의 변화도 이런 논란과 반발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기에는 만만치 않다. 북의 핵실험을 둘러 싼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정국의 모든 현안을 뒤덮고 있다. 한미FTA를 둘러 싼 노무현 정권과 노동자민중진영간의 대립도 고조되고 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 논의도 앞당겨지고 있다. 특히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0월 25일 재보궐 선거에서의 참패로 재창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제자유노련과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국제산별연맹 조사단이 9월 21일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9.11합의’가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고 있음을 지적21)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입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이에 맞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현실화시킨다면, 96~97년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과 같은 정세의 역동적인 변화가 다시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내에서 여야는 ‘9.11.합의’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면서 당론을 확정하려고 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최종 결론은 내리고 있지 못하다.
열린우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노사관계로드맵은 첨예한 이해관계를 다투는 사안인 만큼, 노사정 합의안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3년이라는 유예기간은 나름대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9.11.합의안’의 핵심인 ‘3년 유예안’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9월 15일에 개최한 ‘노사관계 법 제도 선진화 입법 관련 토론회’에서는 쟁점과 이전과는 다른 복잡한 대결구도22)만 확인됐을 뿐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민주노총이 빠져있지만 노사정 당사자들의 합의를 무시할 수 없는 조건”(우원식 의원)이라는 점을 내세워, 한나라당의 입장, 민주노총의 총파업의 강도와 여론의 동향 등에 대한 사전 판단 아래, 부분적인 보완을 거쳐 국회 통과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도 “9.11.합의의 정신을 토대로 당론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제5정조위원회(위원장 이주호)와 노동선진화특별위원회(위원장 배일도)는 9월 13일에 ‘노사관계 로드맵 쟁점 3년 유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는데, 열린우리당의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이견만이 확인됐을 뿐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제3노총 추진 세력이 복수노조 3년 유예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23)했다는 점이다. 의원들 내부에서의 입장 차이도 많아 최종적인 당론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로드맵 자체에 대해 당장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학법 재개정’ 등의 사안과 연동하여 열린우리당과 거래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동당은 ‘9.11.합의’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9월 12일 열린 최고의원단 연석회의에서 ‘9.11.합의’를 “복수노조를 유예시키는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후퇴시킨 반노동자적인 폭거”이고, “노사정대표자회의 개최 사실을 민주노총에 통보하지 않는 등 한국노총과 정부의 자기 이익의 관철의 장”이라 규탄하고,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산별교섭 제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대체입법’안을 제출하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 법안24)과 함께 보수정당과 싸워나간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계획과 맞물려, 10월 12일에 열린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는 정부의 노사관계로드맵 입법예고안을 대체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할 법안을 확정했다. 민주노총의 대체입법안은 민주노동당과 조율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데, 기존의 민주적 노사관계구축을 위한 민주노총의 8대 요구안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현재 국회의 역학상 대체입법안 통과보다는 ‘9.11.합의안’의 저지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지 여부는 ‘로드맵’이 비정규법안 보다 국민들의 관심도 덜하고 ‘노사정합의’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국회 밖에서 대중투쟁을 통한 사회적 정치적 쟁점화에 달려있다.
결국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관건이 됐다. ‘9.11.합의’의 국회 통과 여부도, 민주노총의 명운도 여기에 달렸다. 물론 여타 정세의 변화라는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과 민주노총간의 한 판 대결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노사정과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어버린 민주노총은 총파업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게 됐다. 그래서 9월 1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퇴진과 한국노총과 연대파기’, 그리고 ‘노사정대표자회의 용도폐기’를 공식 선언했고, 11월1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결의했다. “노무현 정권의 하중근 조합원 살인행위와 9.11 로드맵 야합, 한미FTA협상 강행 등 총체적인 노동자 탄압이 전개되는 형국”에서, “하반기 투쟁은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강력히 제기하며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전면전을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의결기구를 통해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건 것은 지난 2000년 5월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리해고 저지투쟁 이후 6년만이다. “지난 1998년에도 노사정 위원회에 참여했다가 결국 정리해고제도, 파견제 도입에 들러리를 섰고 그 이후 집행부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법은 관철”됐던 경험을 되풀이된다면, 2000년 5월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이 7월 4일 현자노조의 파업철회25)로 꺾였던 악몽을 되풀이된다면, 그래서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지 못하고 결의는 결의대로, 투쟁은 투쟁대로, 교섭은 교섭대로 간다면 민주노총은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될 것”26)이라는 절박한 결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결사항전밖에 없다. 민주노총에게 가해지는 위기는 좌고우면할 수도 없고, 돌아서 숨쉴 수 있는 땅 한 한 조각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업종, 현장의 조건을 떠나 진정 목숨을 걸고 결사항전의 심정으로 투쟁해야”27) 할 상황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과거의 총파업이 ‘상투적인 총파업, 즉 금속 노동자들만의 파업이었던 점을 극복하기 위해 산하 모든 조직이 총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했으며, 철도와 항공도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전교조는 대의원대회에서 11월 20일 연가투쟁을 하기로 했으며, 공무원노조도 탄압에 맞서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도 11월 12일 파업 돌입을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11월 15일 총파업 조직화에 올인하면서, 11월 22일 한미FTA저지범국본과 전국민중연대의 민중총궐기투쟁에 결합해 나간다는 투쟁계획을 잡고 있다.
물론 총파업이 위력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난관과 우려가 있다. 금속, 공공, 전교조 등 주요 산별연맹은 물론 총연맹도 12월과 1월에 걸쳐 지도부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핵심적인 대오인 금속의 대공장 노조들이 파업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9.11 합의로 산별노조에 대한 긴장도가 떨어지고, ‘보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북핵 위기가 정세를 앞도하면서 노동현장을 위축시키거나 투쟁을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그 자체로 ‘정치’총파업이다. ‘정치총파업’인만큼 그 성립과 역동적인 발전 가능성은 전체 계급정세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총파업의 1차적인 요구와 목표는 ‘4대 요구’28)이지만, 그 정치적 방향은 ‘노무현 정권 퇴진’이다. ‘87년 민주화체제’를 후퇴시키고, ‘97년 신자유주의 체제’를 제도화하려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마지막 심판인 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민주노총 정체성
10년 전,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안된 1996년 4월에 김영삼 정권이 ‘신노사관계 구상’이라는 그럴듯한 제안을 내놓았을 때,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관계위원회에 참여 여부와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총파업의 시기를 둘러싸고 격렬한 내홍을 겪었다. 결국 이러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준 것은 김영삼 정권의 12.26. 노동법 날치기 통과였다.
10년이 지난 2006년 9월, 노무현 정권의 ‘선진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에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인지를 둘러싸서 벌어진 민주노총 내부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준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 자신이다. 한국노총과 공조를 해야 하는지를 둘러 싼 민주노총 내부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준 것도 바로 한국노총이다. 민주노총으로서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서야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노무현 정권과 투쟁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9.11.합의’는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을 냉혹하게 가르쳐주었다. 한국노총처럼 ‘신자유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책임 있게” 임하지 않을 때, ‘사회적 대타협’ 운운하던 정권이 정략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민주노총을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내부 개혁’과 ‘민주노총과의 공조’를 외치던 한국노총도 자신의 조직 보존을 위해서는 공조의 파기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대의와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겨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재계 역시 표정관리를 하며 ‘야합’의 성과를 챙기려고 하고 있다. 결국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로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적 교두보로서 자신이 서있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아래로부터의 대중의 동력과 힘에 기초하지 않을 때 상층으로부터의 교섭과 협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확인했다.
그래서 ‘9.11.합의’에 맞선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제도화에 맞선 노무현 정권과의 투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합의주의’와 ‘한국노총과의 허울 좋은 공조’를 뛰어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 투쟁의 성패에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제 도입에 잠정합의했던 그 역사적인 죄과를 극복할 수 있는지,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낼 수 있는지가 달려 있다.
나아가 ‘9.11.합의’에 맞선 투쟁은 한미FTA저지투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반신자유주의저지투쟁의 중요한 한 축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을 촉진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노조운동의 무력화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 측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법규제에서 민법규제로 전환,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 파업 찬반투표 절차 강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요구해 왔는데 이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여 초국적 자본의 투자환경을 개선시키고 개방에 대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참여정부가 그토록 고대하던 ‘선진적 노사관계’는 ‘사회적 합의’라는 분칠을 했지만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선진적 노사관계’는 그 첫 장부터 노사평화체제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87년 민주화 체제’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고,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총파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의해 한국의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억압되고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제도화에 맞선 총파업을 ‘국제적인 기준’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는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만약 총파업이 노무현 정권의 예상 뛰어 넘어 위력적으로 현실화된다면 말이다.
<주>
1) 박성인, ‘한국에서의 사회적 합의주의, 역사와 그 교훈’, <진보평론>제20호, 2004년 여름호
2) 민주노총의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8대 요구 : △공무원, 교수, 교사의 노동3권 보장 △비정규 노동자 노동3권 보장 △산별 교섭 보장과 산별협약의 제도화 △복수노조하 자율교섭 보장 △직권중재 조항 폐지와 긴급조정제도 요건 강화 △손배가압류 및 업무방해죄 적용 금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폐지 △고용안정 보장
3) 민주노총, <기자회견문>, 2006.09.08.
4) ‘사설 ; 노사정 대표자 야합’, <한겨레>, 2006.09.13.
5) 연윤정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6.09.12.
6) 기자의 눈, <참세상>, 2006.09.11.
7) 민주노총은 2006.7월 현재, 65.4%인 산별노조 가입 비율을 연말까지 80%이상으로 끌어올려 2007년부터 대부분 산별교섭 체제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8)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기획국장
9) 문형구, <민중의 소리>, 2006.09.14.
10) 한국노총은 이용득 위원장 폭행사건 이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야합’으로 규정하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민주노총의 작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공개사과를 촉구했으며, 민주노총이 공개적인 사과나 상응한 조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민주노총과의 단절은 물론 민주노총을 노동자단체로 인정치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맞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11) 한국노총의 비판에 대해 민주노총은 “복수노조를 유예시키면서 전체 노동자와 미래 세대의 노동자들에게까지도 죄를 지은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협상방식을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비겁한 태도”라 비판했다.
12) ‘노사관계 로드맵 드라마 총연출한 이용득 위원장의 득과 실’, <프레시안>, 2006.09.13.
13) “민주노총에서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한국노총과의 연대가 강조됐죠. 그 필요성과 의의가 크죠. 하지만 연대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연대를 통해 실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적었던 것 같아요. 민주노총은 모르겠지만, 한국노총은 대단히 정략적으로 양 노총 연대에 임했어요. 비정규법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민주노총을 동원해서 딸 것을 딴 후에는 한국노총이 번번이 독자행동을 했죠. 민주노총은 몸만 대주고, 한국노총은 입장을 관철시킨 거죠. 줄 것 다 주고, 뒤통수 맞은 거죠. 서로의 진정성과 명확한 목적 없는 양 노총 연대는 재고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연대는 부정적입니다.”(‘단병호 의원 인터뷰 ; 삼성이 현대-대우 이긴 것’, <레디앙>, 2006.09.13.)
14) ‘노사관계 로드맵 후폭풍, 노-노 갈등 2탄 개막?’ 가운데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의 발언, <프레시안>, 2006.09.14.
15)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 ‘‘야합’을 막지 못한 책임이, ‘야합’보다 클 수 있나? ‘9·11 야합’의 전말을 공개한다’, <매일노동뉴스>, 2006.10.25.
16) “한국노총의 행보는 예견되어 있던 바이기도 하다. 노사정대표자회의의 결과도 전혀 뜻밖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양노총 공조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집착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민주노총의 ‘민주적 노사관계구축’을 쟁점화시켜 냈는가? 투쟁을 조직하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9.11 노사정야합 순간까지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왕따당한 채 한국노총과 노동부의 거취를 지켜만 보아야 하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다. 노무현 정권은 노사관계 로드맵의 개악 핵심들을 ‘노사정합의’라는 형태로 손에 쥐었다. 민주노총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양노총 공조론과 노사정협상 활용론 실패를 인정하고 전면적 투쟁체제로 돌입하라!”(전국활동가조직 준비위원회 <성명>, 2006.09.12.) “노사정위에 들어가지 말라고, 사회적 교섭 안 된다고, 현장 조합원들이 대의원대회 단상점거까지 하면서 그토록 외치고 온몸으로 막아섰건만 끝내 민주노총 지도부는 직권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가 오늘의 파국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노사정 합의와 사회적 교섭을 위한 ‘양대노총 공조’에 매달려 투쟁을 조직하기를 포기하고 조합원들 사이에 긴장을 이완시킬 대로 시켜놓고 마침내 노사정 야합의 들러리가 된 민주노총 지도부!”(당건설투쟁위원회, ‘9.11 야합, 투쟁으로 정면돌파 하자!’, 2006.09.18.)
17) “문제는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로드맵 분쇄를 위한 전술이었던 사회적 교섭 전술, 즉 노사정위에 복귀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결과 로드맵 분쇄 ‘투쟁’은 없었고 노사정대표자회의 교섭만 있었다. 노사정대표자 회의가 열렸던 지난 6월말부터 9월초 사이에 민주노총은 대정부, 대자본 투쟁을 방기했다. 특히 고 하중근 열사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해야 할 총력 투쟁은 노사정대표자 회의에 맞춰져 논의 시한 이후인 9월 5일 이후로 모두 미뤄졌다”(‘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와 중앙집행위원들은 조합원 앞에 공개 사죄하라!’,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16호, 2006.09.20.)
18) 신기섭 논설위원, ‘칼럼 : 1996년과 2006년의 민주노총’, <한겨레>, 2006.09.18. 이러한 비판에 대해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9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엄중한 시기에 미국에 간 것은 잘못한 일이며 반성한다”고 밝혔다.
19) 10월 16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뜨거운 쟁점이 됐다. 로드맵 합의 과정의 절차상 문제,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등 내용상 문제, 또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력 등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의 안홍준 의원은 “절차상 ‘노사정 대타협’은 말이 되지 않는다”, “노사정 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표자회의는 9월 2일의 제10차가 마지막이고 운영위원회는 9월 5일이 마지막”이라며 “결국 9.11 합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 결과물도 아니고 운영위 결과물도 아니지 않냐”고 문제제기했다.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도 민주노총이 배제된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9.11 합의안은 개별 단체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에 불과하며 법적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20) 대표적인 시민단체의 하나인 참여연대는 9월 12일 <논평>을 통해 ‘9.11.합의’가 “노동기본권을 무시한 상층부의 담합”이며, “한국노총이 노동자 연대 원칙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도 “노·사·정 합의와 정부 입법안의 처리 사이를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상실해 급기야는 한국노총과 경총 간의 담합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공이 국회로 넘어갔는데, “국회는 이번 합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배제된 점에 유의해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하며, 무책임한 3년 유예의 ‘반쪽’ 노·사·정 합의를 따르기보다는 국제 노동기준에 부합되고 취약노동자들의 기본권 신장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 국제자유노련과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국제산별연맹 조사단은 지난 8월 24일부터 사흘간 한국의 노조탄압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9월 21일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9.11.합의’와 관련하여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결정이 협상 과정에서 도출된 것이라 하더라도, ILO가 규정한 결사의 자유로부터 심각한 후퇴를 의미하는 조치”라고 판단하여 복수노조 허용이 즉각 실시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조전임자의 임금은 노사 자율로 정하며, 필수공익서비스의 목록을 개정하여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서비스에만 파업권이 제한”될 수 있도록 주문했다.
22) 9월 15일의 토론회에서는 이전과 다른 양상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노사관계와 관련하여 과거에는 양대노총과 재계, 정부의 ‘3자 구도’였다. 그러나 ‘9.11.합의’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현대차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 한 목소리로 비판했고, 노경총과 노동부는 이구동성으로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의 합의’였음을 강조했다.
23) 간담회에 참여한 김준용 새노총 준비위원회 대변인은 “10년을 유예한 법안을 또 다시 유예한 것은 사실상 법을 사문화시킨 정부의 직무유기”이며, “현 정부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만을 해결하면 될 것을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 운운하며 범위를 넓히고는 결국 책임을 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24) 그간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입법 투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다. “민주노동당을 본다면 지난 겨울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사용에 대한 사유 제한 축소’ 수정안을 맨 처음 들고 나왔으나 별 논의 없이 2005년 정기국회가 마감된 이후 이번에는 권영길 의원이 ‘노동계 단일안’을 얘기하며 수정안을 제안하였다. 지난 단병호 의원 수정안 때와 마찬가지로 당내에서 별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나, 이것이 당과 민주노총 정례협의를 통해 어느 순간 우리의 기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당과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나 한국노총과 공조를 통한 ‘노동계 단일안’에 매달리다가 교섭틀 안에서도, 대중투쟁 공간에서도 적절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로드맵 분쇄! 비정규직법안 폐기! 전면전에 나서자!!’,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16호, 2006.09.20.)
25) 이에 대해서는 ‘현자노조의 7.5.파업철회에 대해’(노동자의힘(준), 2001.09.17.)를 참조.
26) 9월 1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어느 대의원의 발언.
27) 9월 17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사정 밀실야합 무효화·노사관계 로드맵 분쇄·하중근 열사 책임자 처벌·공무원 노조 탄압 분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회사
28) 민주노총의 총파업 4대 요구안은 ‘로드맵 입법안 저지 및 노사관계 민주화 입법 쟁취’, ‘한미 FTA 협상 저지’,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산업재해 보상 보험법 전면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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