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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2
    서브프라임 사태
    모험가
  2. 2008/02/24
    오랫만에 두 개의 집회에 참석했다.
    모험가
  3. 2007/12/20
    이명박 당선자 진짜 수준이하군요!(2)
    모험가
  4. 2007/11/26
    옛날 같으면
    모험가
  5. 2007/10/15
    백석 시 한수(5)
    모험가
  6. 2007/06/20
    40년 만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만남 후기(2)
    모험가
  7. 2007/06/07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모험가
  8. 2007/04/03
    [펌] 류근일 칼럼
    모험가
  9. 2007/03/15
    민주노총 위원장 유감
    모험가
  10. 2006/12/11
    난 추위가 좋다.(5)
    모험가

커다란 영화관에서 나 혼자

영화를 볼 뻔 했는데 영화 막 시작할 즈음에 한쌍의 연인이 들어와 총 셋이 영화를 봤다. ㅎㅎ.

마눌님에게 같이 가자했더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피곤하고 해서 영화를 보면 감기가 걸릴 것 같다고 해서 혼자 영화관엘 갔다. 아니 마눌님 차를 얻어 타고 갔다가 마눌님은 집엘 그냥 가고 나만 영화를 봤다.

 

일산 롯데백화점 영화관에서 하는

'카피잉 베토벤'이라는 영화였다.

작년 겨울에 볼까했는데 못보고 집근처에서 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오늘 간 것이다.

 

작년에 개봉을 한 것인데 다시 틀어서인지, 시간이 토요일 9시 넘어서인지 암튼 사람이 없었다.

 

암튼 부호들이 커다란 영화관에서 영화를 혼자 보던데

내가 그런 부호가 될 뻔 했다.

 

영화는 약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것 같긴 한데 정말 저랬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집중이 안되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야기 핵심을 이루는 여주인공은 실제가 아니구만...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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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

에서 비롯될 경제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가 될 것이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뉴욕대 루비니 교수(그런데 이 사람의 예상이 대체로 들어맞았다)는 말할 것도 없고, 소로즈,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 그리고 3월 21일자 뉴욕타임즈에서의 폴 크루그먼 등이 그들이다.

 

크루그먼에 의하면 지금은 유사 은행들(모기지회사,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의 모든 증권들을 팔고 수익률이 극도로 낮아진 재무성증권을 사는 행위는 대공황 시기의 뱅크런 사태(은행에서의 현금인출 러시)와 유사하단다.

 

엊그제 영국과 스위스 은행 부도 루머가 떠돌아 유럽의 주가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이 은행들이 실제로  무너질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이 노무현은 좋은 대외 조건하에 있었다고 했는데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은 자신이 처한 악조건을 별로 겁내하는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어려운 조건에서 보란듯이 경제를 살려내 전국민으로부터 '역시 이명박이야'라는 평판을 듣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미시 기업단위에서 노동자를 쥐어짜는 것밖에 해본 게 없는 이명박이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요즘 하는 모양새를 보면 1-2년을 넘길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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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두 개의 집회에 참석했다.

사회진보연대 총회에서 집회조직자의 간절한 요청이 있어서 긴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도 집회에 나갔다. 대학로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집회에. 행진 이후 국회앞에서 열린 장투 사업장 집회에도 갔다. 10시까지 진행된 촛불문화제 형식의 집회였다.

집회를 끝내요 버스가 빨리 끊기는 노선이라 짐작이 되어서 부랴부랴 왔더니, 배차간격 20분이라 적혀있는 버스가 약 40분이 지나서 왔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표지판에 적혀있는 버스회사에 물었더니 일요일엔 배차간격이 40분이란다. 정류장 표지판에 제대로 정보를 제공했다면 다른 노선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데 왜 사람을 골탕먹이느냐고 항의를 했다... 고소를 할 수도 있다고 성질을 냈더니 고소를 하란다. 나 원 참.

고생은 했어도 최근 이래저래 집회참석을 잘 못했는데 오랜 만에 빡센 집회에 참가해 마음의 짐을 좀 던 기분이다. 그리고 이명박 출범 전야 투쟁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요새 집회를 가면 진짜 어려운 사람들만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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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 진짜 수준이하군요!

 

이명박이 당선이 유력해 진 이후 몇 차례 발언을 하고 있는데, “국민이 위대하다”,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다”는 이야기 이외에 어떤 의미 있는 발언이나 당선소감도 없네요. 이명박의 발언 속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혹은 ‘정의’ 같은 단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그래도 빈말이라도 이런 단어를 가끔 쓴 것 같은데요.

내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유머나 위트도 없고, 건조하고 메마른, 뚝뚝 부러지는 몇 마디 발언뿐입니다. 소설가 이외수가 “한글도 제대로 쓸 줄도 모른다”, 즉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고 비판했는데, 수준 낮은 발언은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거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토론을 기피하고, 실제로 후보자들간에 의미 있는 토론이 거의 없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이명박의 언어는 돈과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의 언어,  다른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고민하고 일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의 언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지지자들의 발언도 건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열렬한 환호도 별로 없습니다. 이 명박에게 취직자리 부탁하러 온 사람들 같은 인상입니다.

이런 당선자와 지지자들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 이 사회와 현재의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캐묻는 것은 실례되는 짓이겠지요?

보수주의자 ‘경제대통령’이라지만 너무 한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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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이명박의 온갖 조잡스러운 비리와 삼성의 비자금에 대해

여론이 들끓고 지배세력을 타도하자는 이야기가 난무했을텐데...

그리고 한나라당 당사와 삼성사옥에선 점거농성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돌멩이 이상도 날라들었을텐데...

 

부르주아 민주주의 혹은 선거정치의 정착의 효과인지,

아니면 이런 항의의 일각을 형성했을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의 효과인지

도통 보수정치권과 독점재벌에 대해 대중적 항의를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민중운동세력도 잠잠하니, 원.

열심히 표를 좇아다녀봐야 5% 내외 지지를 받을텐데...

뭔가 방향이 잘못 잡힌 게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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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한수

어떤 말을 보태기가 그렇네요. 감상들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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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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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만남 후기

 

'40년 만에 처음 만나는데 간단한 선물을 하나 해야지.'

약간 일찍 나가 백화점에서 와이셔쓰 하나를 샀다.

아는 곳이 없어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 한 번 가본 종각 근처 한식집에서 보자고 했더랬다.

가서 메뉴를 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일년에 두어번 보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나는 돈 내는 것에서는 '열외'여서 가격을 몰랐는데 보통 비싼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랴! 비싸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할 수도 없고.

기다리니 선생님이 오셨다. 나보다 4년 선배들이 초등학교 동기동창 인터넷카페를 열고 있는데 그곳에서 선생님 최근 사진을 본 터였다.

그러나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신체가 작아 보이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식사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날아갔다.

김창주, 공정석, 공정렬, 송하빈, 신건호, 이남섭, 김용현, 김용태, 박주순, 박일수, 박근웅, 박익순 등 친구들 근황을 서로 묻고 대답했다.

이용환, 김형택, 오갑효 선생님, 그리고 이경하 당시 교장선생님 근황을 물었고, 우리 동네 출신 박상록 선생님 근황은 내가 알려드렸다. 이용환선생님과 이경하 선생님은 돌아가셨단다.

그리고 우리 동네 몇년 선배들 중에 몇사람 이야기도 했고, 우리 동네 어른들 이야기도 했다. 누가 어떤 높은 자리에 올랐고, 누구는 고대 총학생회장까지 했는데 60이 넘었고 아직 결혼을 못했고 등등.

우리 동네 사정을 너무 잘 아셔서 어찌 그리 잘 아시냐 했더니 그 때는 가정방문이 많아서 대충 안다고 하셨다. 우리 동네는 집성촌인 상봉(우리집이 있는 곳), 집성촌이 아닌 중봉 하봉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봉 하봉에 무슨 성씨 집이 대강 몇채 있는 것까지 아셨다.

그리고 내 바로 윗형은 알고 있었고 내 둘째형도 알고 계셨는데 내 형인지는 몰랐다고 하셨다. 내가 사실을 알려드렸더니 '그러냐'고 하시면서 둘째형과 자신이 군 교육청에 계실 때 에피소드도 얘기해 주셨다. 내용인즉슨 둘째형이 농협 출납계에서 일을 했는데 교육청으로 돈 보낼 일이 있었는데 돈을 너무 많이 보내 선생님이 도로 돌려보내줬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젊은 사람들 미팅하듯이 서로에 대해 캐물었다.

사실 나도 선생님이 어떻게 우리 학교에 오시게 되었으며, 가족은 어떠며, 이후 어떤 학교에서 일을 하셨으며 등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선생님 또한 나에 관한 것을 거의 모르니 그럴밖에.

선생님은 풍양초등학교에 4년 근무를 하셨단다. 그 후 교육청 근무를 몇 년 하셨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경기도로 전근을 와서 양평 어디에선가 교장으로 퇴임을 하셨단다. 아들만 넷인데 큰 아들이 나보다 4살 아래였다.

풍양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네 번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1학년 제자, 6학년 제자 등으로 분류해서 기억을 하시고 계셨다. 내가 1학년 때 자신이 담임이셨다는 것을 금방 이야기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연유였다.

1학년 제자 중에서 선생님을 찾은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어떻게 찾을 생각을 했냐고 고마워 하셨다.

난 풍양초등학교를 졸업을 못하고 서울로 와 나이가 들어 시골을 갈 때마다 면에 있는 초등학교를 들르고 학교를 들를 때마다 언제 김병선 선생님을 찾아 뵈야지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40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제자를 무척 고마워하셨고 신기해 하셨다. 사실 자신도 앞서 이야기한 우리 몇년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 우리 동네 제자(내 조카뻘)를 보고선 내 소식을 물어봤다고 하셨다.

우리 학교는 내가 44횐가 되니 꽤 일찍 학교가 세워졌네요 했더니 일제시대 때 생겼고 다른 면에 비해 조금 늦었다고 하셨다.

내 얘기도 했다. 시민운동 하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다. 약간 걱정스러워 하셨다. 자기 조카도 대우자동차 노조에서 해고도 되고 노조운동을 했다(지금은 복직해서 회사를 '잘' 다닌다 하셨다.)고 하시면서.

시간이 좀 지나서 내가 나이든 어른들을 만나면 대개 물어보는 주제를 슬며시 꺼내 보았다. 해방공간 때 이야기.

해방공간 때 중학생이셨단다.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친척 중에 경찰이 한 명 있었고, 선생님 집은 부자는 아니었는데 인근 4개 부락 중 유일한 기와집이어서 '지방폭도'(선생님 표현 그대로)의 표적이 되었단다. 그래서 밤이면 언제나 산으로 가셨단다. 밤에 활동하는 '지방폭도'를 피해서. 그리고 기와집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단다. 암튼 나로서는 약간 실망이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조건이나 상황탓이었겠지만 그래도 '지방폭도' 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한편으로는 황석영의 '손님'에서와 같은 화해나 해원 등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 해서 우익의 극악한 폭력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후에도 우익의 폭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폭력과 동일시하는 대중들의 의식이나 이데올로기를 그냥 모른 채 한다면 그것은 운동에 보탬이 안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해원이나 화해가 어떻게 가능할지는 막막할밖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더 하고 다음에 동창들을 모아 한 번 찾아뵙겠노라고 헤어졌다.

선생님은 물론 '그러지 말라', '제자들 부담주기 싫다'고 하셨다.

40년만에 다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렇게 1막을 내렸다.

버릇없기로 치면 두번째 가려면 서운해 할 난, 이 때도 결례를 범했는데 선생님과 식사하면서 술을 몇 잔 기울였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선생님의 연령과 지위를 생각지 못하고, 술 마실 때 얼굴을 옆으로 약간 돌리는 '센스'를 발휘하지 못했으니... 선생님께서 약간 언짢아 하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다음날 메일로 안부를 물었는데 안쓰시는 메일인지 되돌아 와 전화를 다시 드리는 '센스'를 발휘하였지만, 이미 범한 결례가 커버가 되지 못할 것은 정한 이치. 다음부턴 이런 것도 좀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아 참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어찌어찌 해도 또 한 놈의 동창과 연결이 되었다. 적당한 시간에 한 번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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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40년 만에 다시 만난다, 바로 오늘!!

 

전화 준 것만도 고맙다고 극구 사양하시는데

내가 강권을 했다. 한 번이라도 만나고 전화를 드려도 드려야하지 않겠냐고.

 

암튼 나오시기로 했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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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류근일 칼럼

이런 자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였지요, 아마! 이철 철도공사 사장도 그렇지만요. 암튼 백낙청 교수가 좌파 건달로 칭해지고 있네요. '중도적 변혁주의'를 주장했지요. '중도적 변혁주의'에 찬성하든 안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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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칼럼] 한나라당식 "나도 중도" ‘중도’ 내세워 변신 꾀하는 낡은 좌파에 아첨하려 해 개방, 자유화, 경쟁 논리로 이들의 허상과 싸워야

  

한 신문과 여론조사 기관이 최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나는 보수”라고 답한 사람이 “나는 진보”라고 답한 27.7%보다 많은 36.8%로 나타났다. 반면 “나는 중도”라고 답한 사람은 2004년의 46.2%보다 17.8%나 줄어든 28.4%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갔고, 중도와 진보가 대세”라고 하던 그간의 세평과는 한결 다른 것이라 시선을 끈다. 이 조사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범람하던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너무나 잘못 사용돼 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정일을 ‘진보’ 쪽에 놓고서 그에게 호의적이면 ‘진보’, 비판적이면 ‘보수’라고 몰아붙였던 것부터가 심히 병적(病的)인 ‘사회적 스캔들’이었다. 한동안은 ‘용공(容共)’으로 몰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살던 이 나라에서 이제는 ‘보수’로 몰릴까봐 심지어는 한나라당 사람들까지 막차를 놓칠세라 “우리는 보수 아닌 중도, 우리도 김정일 환영”이라고 말하게끔 된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진풍경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 같은 시류를 상대로 “당신 보수냐, 진보냐, 중도냐?” 하고 묻는 것 자체가 헛발질 같은 우문(愚問)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보수’가 늘어나고, ‘진보’ ‘중도’가 줄어들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패션이 또 한 번 바뀌고 있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이른바 ‘진보’가 이제는 제대로 먹고 사는 일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는 뜻일까? 하기야 ‘진보 10년’을 거치는 동안 왕년의 ‘진보 투사’가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된 마당에 더 이상 “김정일을 포함하는 모든 좌파는 무조건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철 지난 유행가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보수’ ‘진보’에 관한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은 전면적으로 폐기돼야 한다. 오늘의 시점에서 참다운 ‘진보’는 무엇인가. 한 가지 대표적 척도는 20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진보’다. 20대 실업률을 대폭 늘려놓은 남한의 얼치기 수구 좌파를 ‘진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수구’는 무엇인가? 국가 통제, 전체주의, 보호주의, 신판 척화(斥和)사상에 묶여 자유시장, 대외 개방, 글로벌 경제를 반(反)민중, 종속, 반(反)민족이라고 몰아세우며 김정일처럼 쇄국주의와 폐쇄경제(autarchy)로 나가는 것이 마치 진보인 양 우기는 시대 착오적, 교조적 좌파 건달들이 바로 오늘의 진짜 수구 반동인 것이다. 신판 수구 반동, 좌파 건달들은 사이비 민족주의와 계급투쟁을 내세워 젊은이들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가거나 그게 잘 안 되면 ‘중도’에라도 붙잡아 두려는 꾀를 부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파는 수구, 좌파는 진보”라는 터무니없는 ‘유사종교’에 현혹당해 왼쪽으로 기우뚱했었다. 그러다가 좌파 건달들의 마각이 드러나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중도’로 옮겨 앉았다. 그러자 요즘 와서 좌파 건달들은 ‘진보’ 소리를 입 밖에 잘 내지 않으면서 그저 적당히 ‘중도적 변혁주의’ 운운하며 얼버무리는 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중도’조차 2년 사이에 대폭 쪼그라졌다는 것이 이번의 여론조사 결과였던 것이다. 2007 대선(大選)에서 비좌파가 승리할 수 있는 관건은 따라서 이 ‘우경(右傾)하는 중도’를 더욱 더 ‘탈(脫)좌파’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식으로 ‘나도 중도’라는 따위로 시세에 아부하는 것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좌파 국가 통제’를 타파할 더 과감한 자유화, 자율화, 개방, 경쟁력 강화만이 더 많은 일자리와 복지와 국부(國富)를 보장한다는 당당한 논리로써 ‘추상만 있지 실체는 없는 중도’를 먹어 들어가는 것이 첩경이다. 승리는 싸우는 자의 몫이지, 주눅 든 자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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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위원장 유감

이석행 민주노총위원장은 왜 그리 정부 인사들을 자주 만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웃어가면서...

 

국가와 자본에 대적하는 장수의 이미지가 전혀 없다. 하기야 예전 위원장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석행위원장의 선거유세에서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아님 워낙 됨됨이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지, 원.

 

내가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딱 한가지다.

우리의 이해는 국가와 자본의 이해와 다르다는 태도만이라도 보여달라는 것!!!

 

그런데 이번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들은 이런 태도를 제대로 견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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