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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88회 – 이 끔찍함이 내게 닿지 못해서

 

 

 

 

1

 

읽는 라디오 불을 꼅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후에는 덤덤해지더군요.

무수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수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하며 애도를 표하는 이 상황을

덤덤하게 바라보는 제 자신에 놀랐습니다.

 

 

나 : 너는 이 상황이 끔찍하지 않니?

 

내 안의 나 : 끔직하다... 음... 글쎄. 처음에 놀라기는 했는데...

 

나 : 이 상황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내 안의 나 : 아무렇지도 않을 리는 없지. 하지만 솔직히 저들의 고통이 와 닿지는 않아. 그래서 그냥 덤덤하게 바라볼 뿐이야.

 

나 : 왜 그럴까? 이런 끔찍한 일들을 너무 많이 지켜봐서 그런가? 아니면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발버둥을 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확인해서 그런가?

 

내 안의 나 : 음... 그런 면도 없지는 않은데... 그건 이성의 영역이고 감성적으로도 차분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을까?

 

나 : 그럼 왜 그럴까?

 

내 안의 나 : 눈을 감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생각해봤지만 내가 그들과 연결이 되지 않더라. 지금의 내가 편안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의 연결선이 빈약하기도 하고, 내 민감도가 떨어졌기도 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뭐 그런 이유들 때문이지 않을까?

 

나 :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

 

내 안의 나 : 그럴 리가. 그랬다면 저들의 고통에 닿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겠지.

 

나 : 그렇다면 우리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서 지금 이 끔찍한 상황을 똑똑히 지켜볼래?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외면하지 말고 그냥 보기만이라도 하자. 그러다보면 절절한 목소리들이 들려오지 않을까?

 

내 안의 나 : 그렇겠지, 예전에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처럼.

 

 

2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태원 소식과 함께 카타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나게 돈을 쏟아 부어서 화려한 경기장을 여러 군데 지었는데

그 공사과정에서 65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의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강행군을 했던 노동자들이 매일 한두 명씩 쓰러지고 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다가 임금체불과 감금 같은 것도 많았다고 하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유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피로 물든 월드컵’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본선진출국 중에 참가를 하지 않겠다는 나라가 나올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 끔찍한 현실이라도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3

 

일주일 동안 몸과 마음을 열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집중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덤덤했던 마음이 출렁이기는 했지만

지옥의 한복판에 있는 이들의 고통에 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열어 세상을 지켜보고 있더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온기를 전하고자 하는 분들이 보이더군요.

그 온기가 제 가슴에 전해졌습니다.

제 가슴에 전해진 온기를 느끼며

그 따스함을 꺼뜨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곳도 아니고

그들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는 곳도 아니고

서너 발자국 떨어져서 그냥 지켜보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하지 않기

참견하지 않기

몸으로라도 바람을 막아서 온기를 지켜주기였습니다.

 

 

 

(노래공장의 ‘나의 꿈이 네게 닿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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