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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86회 – 날씨 좋은 가을날 주절주절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예순 여섯 번째 방송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성민입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식물들의 적응력과 활력에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그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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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겨울 채소 모종들을 몇 가지 심었습니다.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의 아주 조그만 모종이 한 달 만에 이렇게 꺼버렸습니다.

특히 배추는 크는 모습이 매일매일 확인될 정도로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여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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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이 번식을 하는 방법은 보통 씨를 통해서 이뤄지는데

고구마는 특이하게 줄기를 통해서 번식을 합니다.

길게 뻗은 줄기를 마디에서 잘라서 그대로 땅에 꽂아주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줄기를 뻗어 고구마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번식을 하는 고구마가 정말 신기하기는 한데

초반에 줄기에서 뿌리가 나올 때까지는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이제 다 자란 고구마를 캐내어 먹을 일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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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발견한 놀라운 모습입니다.

지난 달에 늙은 호박 줄기를 다 정리했었습니다.

뿌리까지 다 뽑아서 한쪽 구석에 내팽겨 놓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늙은 호박이 자라고 있는 겁니다.

줄기의 중간부분이 살아서 꽃을 피우고 거기에서 호박이 달려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파리가 있어서 광합성이야 한다쳐도 뿌리가 뽑혔는데 영양분을 어떻게 공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줄기에 남아있는 영양분으로 살아남는 것인지 정말 모를 일이네요.

 

농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고

그 와중에 시행착오도 겪고 있지만

식물들의 이 놀라온 생존력을 보고 있노라면

농사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고 신비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가급적 뉴스를 보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증오와 혐오의 에너지를 만땅으로 충전하고 세상에 대한 편향된 시각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스를 아주 안볼 수는 없어서 포털 뉴스를 가끔 클릭 하는 수준으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sns도 하고 몇 개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기도 합니다.

물론 sns나 뉴스레터들 속에는 그냥 흘려버리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주류언론이나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을 듣게 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뉴스레터 중 하나가

외교안보 전문 뉴스레터인 ‘델타 월딩’입니다.

매일 몇 개의 뉴스를 선정에서 핵심만 깔끔하게 전해주거나

일주일 한 두 번씩 외교안보 관련한 사안에 대해 심도 있게 파헤쳐 전해주는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를 멀리하면서도 이 뉴스레터를 즐기는 이유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하지 않고

넘쳐나는 뉴스들 속에서 알아야 할 것만 요점정리 쏙쏙 해주고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뉴스들 외에 눈여겨 봐야할 것들을 골라서 보여주고

세상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갖게 도와주고

세상에 대한 뜨거운 혐오가 아니라 냉철한 온기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 관점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이 뉴스레터를 통해 전해지는 세상의 바람이 상쾌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며칠 전 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분의 고민을 듣게 됐습니다.

구독료도, 외부광고도, 후원도 없이 자발적 헌신과 대안적 실험으로 버티고 있는데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운영상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하더군요.

자본주의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뉴스레터가 어떻게 지속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런 뉴스레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얼마 되지 않는 후원금을 보내고

별 영양가 없는 이 방송에서 홍보를 해봅니다.

여려분, 세상을 냉철하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다면 이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5380

 

 

3

 

11년 동안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고마웠던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이라면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으로 만났던 은수연씨입니다.

최근에 검색을 해봤더니 은수연이라는 필명 대신 김영서라는 본명으로 개정판을 냈더군요.

제가 읽는 라디오 시즌1을 끝내고 역시나 삶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분의 책을 읽고 다시 용기를 내서 읽는 라디오를 이어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는 매우 편안한 삶을 살게 됐는데 그분은 어떻게 살고 계실지 궁금해집니다.

필명이 아닌 본명으로 개정판을 낸 것을 보면 삶의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보지만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의 편안함이 조금이라도 그분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2014년 9월 19일 읽는 라디오 시즌2인 ‘들리세요?’ 첫 방송에서 했던 얘기를 곱씹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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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하나 할게요.

얼마 전에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인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조금 유치한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200쪽 약간 넘을 정도로 부담 없는 두께의 책인데다가

그냥 편하게 자기 얘기하듯이 술술 써내려간 글이라서 쉽게 읽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요.

휴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폭행을 당한 아이의 얘기입니다.

그 아이는 초경보다 먼저 낙태를 경험하게 되고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포르노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형태의 가학적인 섹스를 경험하게 되고요,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까지 성폭행 당해야했고요,

수능시험 전날에는 신혼 분위기 내보려고 호텔 스위트룸까지 따라갔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바닥에 오줌을 싸면서까지 허벌나게 맞기도 했고요,

대학 들어가서 교수한데 어렵게 사실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교수가 집에 연락을 하는 바람에 끌려가서 기절할 정도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9년 동안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 은수연씨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 책이었습니다.

수연씨를 그렇게 몰아갔던 그 상대는 교회에서 목사로 있었던 아빠였고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아주 생생하게 적어놓았더군요.

아~ 그런 글을 읽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건 아시겠죠?

그런데 수연씨는 참 담담하게 글을 쓰셨더라고요.

초월해서 그런 게 아니라 뼈속까지 인이 박힌 아픔을 꾹 눌러 참으면서 쓰는 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힘들게 수연씨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수연씨가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같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수연씨가 아빠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 슬픔과, 그 분노와, 그 아픔과, 그 힘겨움과, 그 절절함이 다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연씨는 마지막에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용서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그 용서는 완벽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쉽게 용서하기 어렵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붙들고 있는 그 문을 넘어가야 하기에

용서라는 방식을 통해 발버둥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수연씨의 그 용서가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연씨가 경험했던 지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저도 만만치 않은 9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구렁텅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에 묶여 있는 이 끈들을 놓아버려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수연씨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방식들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 보듬어 안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보면서 다른 이들도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수연씨가 얘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방송은 그런 수연씨의 얘기를 듣고 시작하게 된 방송입니다.

수연씨가 이 방송을 보게 될 일은 없겠지만

저에게 용기를 준 수연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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