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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72회 – 본능적인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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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귀근’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갑자기 죽자 그를 고향 가족들 곁에 묻히게 해주려고 먼 길을 떠나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시체를 직접 집어진채 버스를 타거나 걸어가거나 수레를 이용하거나 하면서 고행과 같은 길을 무작정 걸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사람들도 만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몹쓸 사람들도 만나고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그의 고향으로 찾아갑니다.

영화는 그다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조금은 작위적인 인생이야기와 극적인 인물들의 나열이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살아생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자처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이더군요.

 

우직함과 순박함이 뼛속까지 깊게 뿌리 박혀있는 주인공은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본능적인 선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극영화이다 보니 그렇게 캐릭터를 설정했다고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 ‘본능적인 선함’이 자꾸 저를 지켜보고 있더군요.

 

제가 저질렀던 오만가지 악행들을 갚아내기 위해 보시공덕을 쌓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백 가지 공덕을 쌓아도 한 가지 악행을 갚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공덕을 쌓으려 노력하는 동안 저는 또 다시 크고 작은 오물들을 주변에 남겨버리고 있으니

공덕을 쌓으려는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공덕을 쌓으려 하지 말고 본능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음...

저는 선한 인간일까요?

저는 선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선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 삶이 선함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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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처 감귤 선과장에 있는 개입니다.

지난 겨울에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 상태에서 이곳에 왔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선과장에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게 지냈는데

선과장이 운영을 마친 봄부터는 혼자서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끔 주인이 와서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것 같았지만

돌보는 이 없이 방치하다시피 묶여있는 녀석을 볼 때마다가 마음이 짠했습니다.

친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정서적으로 약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녀석은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습니다.

사랑이와 함께 산책할 때마다 마주치게 되면 간식을 하나씩 던져주는 것으로 안쓰러운 마음을 달래곤 했지요.

 

그런데 그 녀석이 그만 새끼를 낳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녀석이 조그만 새끼 여섯 마리를 낳고는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져서 근처에 개나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마구 짖어댑니다.

걱정 되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려고 하면 경계심을 보이며 다가와 발을 깨물기도 합니다.

새끼들은 찡찡거리며 항상 어미를 찾고

가냘프고 어린 어미는 예민하게 주위를 경계하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홀로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넘어 걱정이 밀려오더군요.

 

다행이 근처에 사시는 분이 고기랑 사료를 챙겨주시고 있더군요.

“가득이나 야윈 녀석이 새끼들 젖을 먹이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정성스럽게 돌봐주시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나중에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고 새끼들이 조금 자라면 주인에게 허락을 구해서 산책이라고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곳에 묶여서만 지내고 있는 녀석에게 산책이라는 호사라도 누려볼 수 있다면 그나마 삶에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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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름작물들을 정리하고는

가을과 겨울에 뷔페 식단을 기대하며

쑥갓, 얼갈이, 무, 케일, 청경채, 양상추 씨를 다양하게 뿌려놓았는데

한여름 같은 폭염 때문에

얼갈이만이 겨우 순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텃밭에도 이래저래 심을 것이 많은데

기온이 너무 높아서 파종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 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맘때면 겨울작물 파종을 다 끝내고 물주기에 바쁠 때인데

너무 높은 기온 때문에 파종을 계속 미루다가 평년보다 열흘가량 늦게 하고 있습니다.

높은 기온에 채소들이 웃자라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폭염이 끝나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늦은 파종 때문에 성장이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감귤나무에는 아직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지만

더워서 물을 많이 주다보니 평년보다 열매가 많이 큽니다.

그런데 겨울을 나고 봄에 수확을 해야 하는 이 녀석이 너무 커져버리면

수확을 앞둔 봄에 껍질이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살짝 걱정입니다.

 

상상을 넘어서는 폭염에 이런저런 걱정들이 늘어나고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는 열대야에 살짝 숨이 막혀오기도 하고

주변으로 빗겨간 슈퍼태풍들이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는 소식에 언제 달칠지 모르는 태풍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지만

걱정과 두려움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밑반찬들을 만들어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내일은 감귤나무 물주기와 가지매달기를 하고

모래는 텃밭에서 나온 것들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고

다음 주에는 미뤄뒀던 텃밭 모종심기도 해야겠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마음을 챙겨나가다 보면

가을이 올 겁니다.

 

 

 

(단편선 순간들의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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