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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부터인가 아는 분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 것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생로병사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노년이라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들려오는 그 소식들은 씁쓸함을 안겨줍니다.
얼마 전에 그런 소식을 또 들었습니다.
돌아가신지 4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전에 얼핏 아프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했었는데...
올해만 이런 식의 부고 소식을 네 번째 접합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상념에 사로잡혀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는데
어떤 문구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늙는 것에 한탄하지 말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특권조차 누리지 못한다.”
헬렌 니어링의 명상집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늙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늙기도 전에 제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한 삶’이라는 특권이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더 도드라져 보인다면
제 삶은 오늘도 그들에게 갚아야할 빚을 지고 있는 것이겠죠.
2
이른 나이에 황망히 떠나간 이들의 소식을 접하면
씁쓸한 기분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해마다 기일을 맞아 추모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 가족과 이곳에 있는 가까운 분들을 제외하면 제가 죽었다는 사실도 모를 겁니다.
sns상에서 상투적으로 올려지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조차 없이 조용히 사라지겠죠.
입으로는 “바보처럼 순박하게 살다가 특별한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삶을 살아가자”고 얘기하지만
정작 속마음은 “사람들 속에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하고 바라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곳을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서서히 잊혀졌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그곳에서 손님이 찾아와서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직도 그곳에 제 자취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의 부정적인 모습은 가려진채 긍정적인 모습만 남아있는지 저에 대한 평가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 떠오른 인물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 저랑 친했으며 지금도 그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입니다.
그곳을 떠난 후 어느 날부터 그분이 자꾸 저를 ‘사부’라고 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평적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저는 그런 수직적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을 싫어할 뿐 아니라 그분을 그냥 편한 동지적 관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그분은 저를 계속 ‘사부’라 칭했고, 계속 따지는 것도 귀찮아서 저는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분이 왜 저를 ‘사부’라고 칭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됐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는 그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제가 그곳을 떠나고 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니까 그분은 저를 ‘사부’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우상의 권위를 만들어내서 그 권위에 자신을 빗대고 있었던 것이었죠.
저를 ‘사부’라고 칭하고 있는 그분은 제가 삶의 구렁텅이에서 10년 동안 발버둥치고 있을 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행위는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감추고 긍정적인 것을 도드라지게 하며 그를 추앙하든
부정적인 것들을 수없이 곱씹으면서 그를 저주하든
그냥 스쳐가 버린 사람들 중 하나로 서서히 잊혀지든
떠나간 사람의 의지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제가 떠난 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집니다.
어차피 가족이나 자식도 없어서 저를 기릴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저를 기억하며 저주를 품을 분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잊혀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고
만에 하나 저를 추모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제가 이용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하우스 공사가 끝났습니다.
봄부터 예정돼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다가
한여름 뜨거운 열기 속에 조금씩 진행되기 시작해서
가을이 다가오는 시점에 마무리가 됐습니다.
올해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큰 일을 마치고 나니 속이 시원합니다.
큰 공사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만
예상보다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비용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기 일쑤입니다.
이번 공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으로 계약을 했는데
일을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비용도 생각보다 많아서
공사를 마치고 결제한 금액은 애초 예상의 두 배가 되어버렸습니다.
올해 감귤시세가 좋아서 수입이 짭짤하게 들어왔지만
예정에 없던 지출과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공사비로 다 나가버려서
앞으로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돼 버렸습니다.
제 자신이나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식사 한 번 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비단 올해만 이런 건 아닙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특별히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통장에 쌓인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 극빈층의 삶에 비하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샘이고
경제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기에
통장 잔고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아무 걸로나 적당히 때우면서 배고픔을 달래지 않아도 되고
일에 치이거나 할 일이 없음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고
뼛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고
감각적인 것들에 의지해 자해하듯이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삶은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특권층의 삶 속에서 제가 부끄러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윤선애의 ‘부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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