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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여름에서 가을로 널뛰기를 해버렸습니다.
끝날 줄 모르던 폭염과 열대야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니
조금 얼떨떨하기는 하지만 한결 살 것 같습니다.
선선해진 날씨에 밀린 일들을 하려고 둘러봤지만
대부분은 폭염 속에 마무리를 해뒀기 때문에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제 여유롭게 가을을 즐기면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왠지 불안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역대급 폭염에 의한 트라우마일까요? 하하하
여유롭게 감귤들을 살펴봤습니다.
올해는 열매가 많이 달리지 않았지만 그 대신에 크기가 큽니다.
무성한 가지들도 정리를 해놔서 시원하게 뻗어있고
이파리도 병충해 피해가 많지 않아 풍성하고 건강한 편입니다.
몇 가지 부족한 점들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여름 동안 땀 흘리며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잠시 지난 여름을 돌아봤습니다.
뜨겁고 긴 여름이었지만 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조급하거나 늘어지는 것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일 할 수 있었고
계획보다 수확량이 줄기는 했지만 텃밭에서 나오는 것들을 주위에 나누면서 행복하게 보냈고
이런저런 돌발 상황도 있었지만 무난하게 처리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여름에 가장 큰 걱정이었던 태풍도 이곳으로는 오지 않아서 무난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세상 소식을 들어보면
이곳을 비껴간 슈퍼태풍에 일본과 필리핀과 중국에서는 난리가 나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 대한 소식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자영업자들은 여기저기서 끝 모를 한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저의 편안함이 한끗 차이의 행운일 뿐이어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뭔가 하기에는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서 민망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여름은 더 뜨겁고 길어질텐데
그 여름들도 무난하게 보내려면
감귤나무와의 땀나는 교감을 더 열심히 해야겠고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눔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겠고
밖으로 향하는 눈과 귀를 더 활짝 열어야겠고
편안함에 안주하기보다는 부족함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네요.
그렇게 반발씩이라도 더위 속을 뚫고 걸어가야겠습니다.
2
나카무라 쓰네의 ‘두개골을 든 자화상’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림이 좀 묘하죠?
핼쑥한 몰골로 의자에 앉아 무덤덤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에는 해골이 들려있으니...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1887년에 일본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부모님과 형제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나면서 참으로 힘들게 자랐다고 합니다.
자신도 어릴 때부터 결핵을 앓아왔기에 질병과 죽음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왔던 셈이죠.
그런 힘겨운 삶을 견디게 해준 것이 그림이었나 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그림을 그리며 삶의 고단함과 질병의 고통을 견뎌왔던 것입니다.
이 그림은 죽기 바로 전해에 그렸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서른여섯 살이었다네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질병과 죽음을 분신처럼 달고 살다보면
이렇게 초연한 표정이 나오는 것일까요?
너무 힘들어서 체념한 것도 아니고
깨달음을 얻어 달관한 것도 아니고
끝까지 싸워서 이겨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것도 아닌
이 묘한 표정 속에는
역설적으로 체념과 달관과 결의가 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일본인인 자신의 자화상인데
그림만 놓고 보면 서구의 평범한 청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의상도 자세도 구도와 배경까지 모든 것에 일본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봉제질서가 무너지고 서구화된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그 시대에
새로운 힘은 서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래서 모든 것이 서구적으로 변해있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해골은 지난 세대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가 이 그림을 그렸던 1923년은 일본이 서구적 개혁을 넘어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던 시기입니다.
힘을 길러 그 힘으로 남을 짓밟던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화된 개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
초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길이 세상을 향하지는 못했던 것일까요?
그렇게 보면 이 자화상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젊은 화가의 씁쓸한 뒷모습이기도 합니다.
3
선과장에서 지내는 녀석입니다.
어린 녀석이 제대로 된 돌봄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새끼들까지 낳는 바람에
이래저래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가끔 간식이랑 사료를 챙겨주는 것 말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산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평소에 묶여 있기만 했을 때는
지나가는 저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거나
사랑이와 같이 있을 때는 사랑이를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하고
다가가 쓰다듬어주려면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바람에 친해지기 어려웠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산책을 하자며 다가갔더니
격하게 꼬리를 흔들고 제 얼굴까지 핥으면서 너무 좋아하는 겁니다.
아직 근처 지형에 익숙지 않아서 마구 뛰어다니려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오줌을 싸고 하는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제 기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길지 않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어떤 분이 이 녀석과 새끼들을 위해 먹을 것을 갖고 오셨더군요.
이 녀석은 안면이 있는지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반갑게 달려들었습니다.
즐거운 산책 후에 맛있는 특식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어린 새끼 한 마리가 다가와서 밥그릇에 살며시 입을 대려는 순간
이 녀석은 으르렁거리며 새끼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 이 나쁜 자식아. 지 새끼가 좀 먹겠다는 데 그걸 못 먹게 하냐!”며 한마디 쏘아붙이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녀석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 녀석이 안쓰러워 챙겨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아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인연이 닿는 동안은 조금 더 즐겁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서리의 ‘Dive with you’ feat. e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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