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83회 – 가을은 독서의 계절

 

 

 

1

 

읽는 라디오, 오늘도 펼쳐봅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코로나가 무섭게 번지기 시작하던 초기에 콜센터 노동자들이 집단감염 돼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콜센터 노동자들의 닭장 같은 노동환경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놀라고 화도 내고 그랬었습니다.

그 이후 코로나는 점점 더 기세를 올리며 퍼져나갔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던 사람들은 콜센터로 전화 거는 일이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죠.

 

얼마 전에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을 얘기한 책 ‘사람입니다, 고객님’을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참혹한 노동환경 얘기를 듣고 또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

닭장과 같은 작업장은 변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수없이 밀려드는 콜을 처리하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고

그나마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손을 들어서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경주마처럼 서로를 경쟁시키는 구조 속에서 마음도 상할대로 상해가고 있었지만

식당일 아니면 그곳 밖에는 일할 곳이 없는 그들은

각종 약을 달고 사면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각종 업무로 콜센터에 문의할 일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해당 업체 소속이 아니라 콜센터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코로나 관련 예방접종을 비롯해서 각종 업무가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지만 국민들이 실제 접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K방역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자랑만 늘어놓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생색만 내고 있었던 것이었으니까요.

 

이런저런 일로 콜센터에 전화를 하게 되면

제가 진상고객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합니다.

저의 작은 짜증 하나가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진상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다친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세상을 좀 더 조심해서 살아가고, 낮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점 더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마음을 전해보는 것 밖에는 아직 없지만...

 

 

2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100세까지 살다가 돌아가신 분의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이었습니다.

그의 행복이 그곳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인지, 100세까지 살았기 때문인지, 지옥을 경험한 후의 삶이 너무 대비돼서 그런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 끔찍한 경험을 풀어놓으며 100세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것인데도

비교적 덤덤하게 얘기를 하고 있어서 그의 증언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얘기는 그 끔찍함을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끔찍함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결로 인해 그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것’이었습니다.

 

독일군에 쫓기다 살아남기 위해 죽은 영국군 병사의 옷을 벗기려다가 그 죽은 병사를 알몸으로 놔둘 수 없어서 포기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지옥을 경험하면서도 힘든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하기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친한 동료를 만나 서로를 위해줄 수 있음에 감사하기

이기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도움을 줬던 이들을 기억하기

전쟁이 끝난 후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더 심한 고통에 처해있는 생존자들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기

이런 것들이 그가 지키려고 했던 ‘인간의 존엄성’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이 분만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가지 않으려면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는 성민씨도 했던 얘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이 알려준 삶의 비결을 가슴 속에 되새겨 봅니다.

‘나의 존엄성만큼 남의 존엄성도 지켜져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말자.’

‘진정으로 아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을 잊지 말자.’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을이라고 해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묵어뒀던 청소들도 했습니다.

먼지가 누렇게 낀 창틀도 청소하고

음식물 자국이 곳곳에 눌러있는 냉장고 청소했습니다.

청소를 한다고 낡은 냉장고의 성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눌러있던 묵은 때를 벗겨내면서

제 마음 속 찌꺼기들도 벗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전 내내 이곳저곳 청소를 하고 났더니

맑은 가을하늘만큼 깨끗해진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상쾌한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득명님의 메시지가 지난 방송에 달려있더군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러? 거꾸로읽는세계사, 철학에세이 라는 책들이 한때는 필독 독서였던때가 있었던거 같은데.. 두어번을 읽었지만 지금 별로 기억나는 얘기는 없네요. ㅋ 신경림의 민요기행이나 군생활 중 읽은 삶의지혜라는 책이 저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었구요. ㅎ 세월은 흘러흘러 TV에서 듣게 된 서기 란 20대 무명 가수의 노래에 저도 위안을 많이 받았었어요.

방송 감사합니다. ^^

 

 

참으로 상쾌한 가을날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 상쾌해져서

델리스파이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항상 엔진을 켜둘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