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밋밋한 일상얘기에 귀기울이다보면 걸려 들어버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젊은 콜걸이 늙은 남자 교수를 만난다.

여자는 너무 피곤하고 시골에서 할머니도 올라왔는데도 마지못해 노교수를 만나러갔다.

노교수는 젊은 여자와의 로맨틱한 밤을 기대했지만 여자가 피곤하다는 바람에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다음 날 노교수는 여자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테이트를 이어가려는데 그곳에서 여자의 남자친구와 마주친다.

노교수는 여자의 할아버지인척 하며 남자친구와 대화를 이어가고 잠시 후 여자가 다시 합류하며 셋의 묘한 분위기와 대화가 이어진다.

 

영화의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지만 자극적인 소재와 달리 영화는 실제 상황인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필요 이상으로 한 장소에서의 대화를 길게 보여주면서도 대화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금세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특별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살짝 살짝 겉도는 대화가 밋밋하게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 대화가 은근히 감칠맛이 있어서 대화에 빠져들다 보면 그 상황이 주는 쫄깃함과 대화 속에 오가는 날카로움에 걸려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막판에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배우와 함께 내 자신도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마지막에 와장창하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내 마음도 와장창하고 깨져버린다.

 

내 마음 속에 널려있는 유리 파편을 정리하려고 보니 그 속에 오만 것들이 널려있었다.

허위의식, 연민, 질투, 소유욕 등등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게 그들의 일상 얘기만을 풀어놓았는데 그 속에 이런 것들이 풀어져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꽤 유명한 감독이었고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10년쯤 전에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영화를 보고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노장의 내공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보는 사람을 어느 순간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버리는 그런 영화를 10년 만에 만난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할 얘기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