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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1회 – 길어지는 가을, 내 마음 속 빈자리

 

 

 

 

1

 

읽는 라디오 문을 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들풀입니다.

 

sns를 팔로우하는 분 중에 최근 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 친한 분은 아니지만 마음 아픈 소식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나름 씩씩하게 이겨내겠다며 올리시는 소식에 큰 탈 없기를 빌었습니다.

평소에 인간관계도 좋았는지 투병소식이 알려진 이후 응원하는 메시지도 많더군요.

sns로 단순히 응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을 보내주시는 분도 많았고

직접 찾아가 밥 한 끼 나누는 분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sns로 가만히 그 소식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온정에 간접적으로라도 마음이 따뜻해져야 하는데

웬걸, 제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요.

‘내가 아플 때도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내가 힘들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저분은 뭔가 건질 것이 남아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거겠지...’

‘항암치료 초반이라서 이렇게 관심들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멀어질 거야.’

 

괜한 억하심정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제 자신에 놀라서

왜 그럴까 하고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요즘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약간 예민해지기도 했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조금 움츠러들기도 했고

최근에 일이 줄어들면서 이런저런 잡념들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더군요.

한마디로 제 마음이 약간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제 마음을 달랠 방법을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밖에서 찾아봐야 하는 법이죠.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리 심각하지는 않지만 나름 외롭고 아프고 고민스럽게 보내고 있는 주변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분들도 저처럼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올 겨울에 해야 될 일이 떠올랐습니다.

 

적적하게 지내시는 부모님에게 자주 찾아가봐야겠고

외롭게 나이든 몸을 부여잡고 있는 친척 할머니도 가끔 찾아가봐야겠고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조카들을 위해 방학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고

나를 위해 이것저것 신경써주는 친구에게 조그만 연말선물이라도 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암 투병을 하고 계신 그 분에게도 마음을 담은 정성스러운 댓글이라도 남겨야겠네요.

 

 

 

2

 

날씨가 추워져 난방을 하게 되면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난방비도 걱정이지만

건조해지는 공기 때문에 심해지는 코막힘이 더 걱정입니다.

 

조금만 난방을 해도 공기가 심하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해봤습니다.

젖은 수건과 빨래를 매일 같이 널어놓기도 하고

숯을 사서 놓아보기도 하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보기도 했습니다.

큰마음 먹고 가습기 하나 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가습기는 이래저래 신경써야할 것이 많을 것 같아서

선 듯 내지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솔방울이 가습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근처 야산에 가서 솔방울을 몇 개 주워왔습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솔방울을 물에 담갔더니

금세 물을 빨아들여 웅크려들었고

그걸 방에 놓았더니 조금씩 펼쳐지는 것 같아보였는데

코막힘이 생각 외로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가습기처럼 쾌적한 효과는 아니지만

나름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효과에 만족스러웠습니다.

물을 빨아들여 웅크려들었던 솔방울이 2~3일에 걸쳐서 서서히 펼쳐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있는 식물이 잎을 오므렸다 펼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맛도 괜찮습니다.

올 겨울 이렇게 새로운 즐거움을 하나 얻었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초가을 같이 화사하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볍게 산책을 했습니다.

가을이 길어지는 것 같아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발밑에 뒹구는 낙엽을 일부러 밟으며 거닐다

고개를 들어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2주전 방송에서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떠올라 슬펐는데...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서 너무도 빨리 멀어지고 있는 그 끔찍한 기억을 말없이 바라봤습니다.

극심한 가뭄에 힘들어하는 전라도지역 사람들에게는 맑고 따스한 하늘이 끔찍하게 다가오겠죠.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낙엽을 밟고

여유롭게 걸어가며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그들을 위한 자리 하나쯤은 치우지 않고 있어야겠다고.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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