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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3회 – 외면하지 않기, 참견하지 않기, 온기를 지켜주기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아흔 세 번째 불을 꼅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겨울이 되니 밤이 깊어지고

깊어지는 밤만큼 잠도 길어지고

잠이 길어지는 만큼 꿈도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같이 일했던 그곳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훌훌 떠나버린 저를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 곁에서 혼자 할 일도 갈 곳도 없이 있는 제 모습이 조금 처량해보였습니다.

 

다음 날 꿈속에서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마지막으로 봤던 20대 시절의 모습으로 만나

서로 반갑게 악수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다 깨었는데

꿈자리를 되새기다보니 괜히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 꿈은

비교적 선명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랑 얘기를 하며 뭔가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거닐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이 좋기는 했지만

제 모습이 조금은 독단적이고 날카로워 보여서 살짝 불편하더군요.

 

그 다음 날 꿈에서는

제가 누군가에게 명상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자세를 바로잡는 방법에서부터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하는데

분위기가 아주 부드럽고 편안해서

꿈꾸는 저도 천천히 그 호흡을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하루하루 꿈자리를 되새김하다보니

제 마음이 노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제 마음에 대한 걱정이 줄었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에는 뒤숭숭한 꿈을 꾸기도 하겠고

또 어느 날에는 정체모를 꿈을 꾸기도 하겠지만

올 겨울에는 제 마음이 꿈속에서 어떻게 노니는지 재미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2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그 처참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월드컵의 열광이 많은 이들을 들썩이게 했고

화물연대 파업이 전국을 뜨겁게 만들면서

희생자들의 고통은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묻히지는 않겠다고

유가족이 나서서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보입니까”라며 절규했지만

언론의 반짝 조명을 받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유가족들의 고통이 제 마음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와 닿았던 여러 시민들의 온기도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서너 발자국 떨어져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제게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옵니다.

지금 이곳에서 참사 초기에 제게 했던 다짐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하지 않기

참견하지 않기

몸으로라도 바람을 막아서 온기를 지켜주기

 

 

3

 

의자가 무척 편안해 보입니다. 앉아 계시면 사랑이가 옆에와서 넙죽 업드려 함께 햇볕을 쪼일 것만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 창호문과 유리창이 있는 조그만 구석에서 추운겨울 햇볕쪼이는 걸 무척 좋아 했었습니다. 추운 겨울 바람없는 창문 구석에 올라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졸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야릇한 기쁨이 밀려왔었어요.

 

저는 어설픈 연주를 10여년 넘게 하고 있지만.. 흐르는 강물에 같은 물에 손을 2번 담글 수 없듯이 똑같은 연주를 2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묵묵히 연습중입니다. 지나놓고 보니 소리가 달라져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길가다 음주 차량에 생을 달리한다면 오늘 한 연습이 마지막 연주가 되기도 하겠지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겠지만요. ㅠ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제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결국 생계비 때문에 파업 접으실텐데... 그런거 보면 예전에 욕했던 전임자들이 화물노동자들 곁에 더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지난 방송을 보고 득명님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눠주셨습니다.

유리창으로 비치는 따뜻한 겨울햇살을 느끼며 득명님의 연주를 들어보는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득명님이 해금을 배우고 있다는데, 솔직히 해금이 제게는 조금 낯선 악기이기는 합니다만, 약간 날카로운듯하면서 살며시 주위를 감싸오는 그 질감이 겨울햇살과 어울릴 것 같네요.

그 편안함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가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도 스르르 녹지 않을까요.

 

오늘 방송은 유리창으로 비치는 따뜻한 겨울햇살 속아 녹아드는 해금연주를 감상하며 마칠까 합니다.

해금단이의 연주로 ‘섬집아기’ 들으며 스르르 녹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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