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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6회 – 세월은 흘러가고...

 

 

 

 

1

 

읽는 라디오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민이입니다.

 

요즘 이래저래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최근에 노옥희 선생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했는데

얼마 전에는 조세희 작가의 사망 소식도 들려왔고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옥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sns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신 분들의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요양원에서 일하시는 분은 유독 마음이 갔던 분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셨고

병치레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고

오랜 해고자 생활을 견뎌냈던 분의 부고소식도 접했습니다.

 

유독 연말에 부고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것은

추워진 날씨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지신 분들이 많이 돌아가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연말이라서 그 소식들이 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계신 분들에게는 각각의 죽음이 각각의 의미와 무게로 다가오겠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하나의 삶이 흘러서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한 해가 끝을 보이며 저물어가는 요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세대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흐름의 후반부로 다가서고 있는 제 발걸음이 비쳐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합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너무도 황당한 상황으로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버린 이들을

가슴에 부여잡고 울부짖고 있는 분들을 보니

제 상념이 일렁입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 일렁임도 오래 이어지겠죠.

 

 

2

 

겨울이 되면서 참으로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우스에 할 일도 거의 없어서

날씨가 추우면 집안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책도 보고, 요가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하다보면 그리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머릿속에 이런저런 잡념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문득 문득 예전에 제가 저질렀던 실수나 추한 행동들이 떠올라

마음이 따끔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 일이 어쩌다 한 두 번이면 따끔하고 말 일인데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니 조금 신경이 쓰였습니다.

예전에 좋았던 기억들도 많은데 하필 그런 기억들만 떠오르는지

가만히 제 마음이 하는 얘기를 들어봤지만

딱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더군요.

 

애써 캐묻지 않고 제 마음이 그러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8년 전 기록들을 들추다가 제 마음의 과거를 돌아봤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저는 조용히 농사를 배우면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안 좋았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틈만 나면 나타나 저를 괴롭히는 고통의 기억들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2~3년 동안 농사를 짓고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충돌들을 겪으며 지내다보니 어느 순간 저를 괴롭히던 과거의 악몽들이 서서히 흘러가 버리더군요.

악몽에서 벗어난 뒤에 행복한 기억들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으려면, 웬걸 제가 저질렀던 악행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게 상처를 줬던 이들을 보내고 나니 제가 상처를 줬던 이들이 나타난 것이었죠.

이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습니다.

제가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것의 몇 곱은 더 힘들게 보냈을 그들을 생각하면 힘들다고 얘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변명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날카로움이 무뎌지기 시작하더니 그마저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이런저런 단편적인 제 추행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히 제 마음이 걸어왔던 길을 훑어봤더니

지금 이 과정은 제 마음이 정화되고 있는 과정의 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을 흘려보내고

이어 상처를 줬던 기억들도 흘려보내고 나서

이제 자그마한 실수까지 모두 흘려보내기 위한 과정이었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흘려보내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됐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상처를 가슴 속에 품고 있을 텐데

지금도 이런저런 형태로 주위사람들에게 생체기를 내고 있는데

제 마음의 찌꺼기들을 이렇게 흘려보내버려서

저 스스로 저의 죄를 용서한다면

그건 너무 어이없는 일이잖아요.

 

제 고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뿐이죠.

 

 

3

 

2003년 1월 1일

날씨는 맑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해서

집안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산책을 나가지 못하는 사랑이도

제 옆에 같이 있습니다.

 

이제 8살이 되는 사랑이는

점점 노견 티가 나기 시작합니다.

활동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이고

밥 먹는 것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눈 밑에 눈물자국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이를 위해

산책을 좀 더 자주 하고

먹을 것도 좀 더 신경 쓰고

눈물자국도 자주 닦아 주고

스킨쉽도 좀 더 자주 나눠야겠습니다.

 

이런 날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옥천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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