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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8회 – 중늙은이로 살지 않으려고

 

 

 

 

1

 

읽는 라디오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민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날 옆 동네에 사시는 사장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이 근처에 왔다가 들렸다면서 박카스 한 통을 내밀더군요.

농사를 지으면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업무적으로 연락하는 관계인데

뜬금없이 찾아와서 박카스까지 내미니 조금 당황했습니다.

 

용건은 간단했습니다.

얼마 있으면 농협조합장 선거를 하는데

자기 친구가 나오니까 관심 가져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에 더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정색을 하고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몇 천 원 하는 박카스 한 통에 까칠하게 굴기도 좀 그랬고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을 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일로 서먹해지기도 그랬습니다.

 

알았다고 하며 웃으며 그 분을 보내고 나서

선거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관계를 교묘하게 파고든다는 사실과

이런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지역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현실에

마음은 더없이 찝찝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지역 권력은 완고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제가 지내는 마을에서 관리하는 농업용수가 단수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때마다 마을 이장에게 연락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마을 이장이 연락을 받으면 오히려 제게 짜증을 낸다는 겁니다.

너무도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이미 지역에서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 그분은

나이와 권력을 무기 삼아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하며 따지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그렇게 따져 들어가는 것도 피곤하고

그렇게 관계들이 틀어지면 일을 해나가는데 곤란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결국 부당하고 불합리해도 적당히 넘어가고 하다 보니

지역사회의 완고한 가부장적 질서는 여전히 굳건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tv에서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막무가내인 정부를 상대로 열변을 토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고 그 죽음들이 반복되어도 현실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일상 속을 파고드는 이런 작은 부당함에 적당히 눈감아 버리기 때문은 아닌지...

불편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2

 

20~30대 시절에는 세상을 뿌리부터 바꿔내고 싶었습니다.

추악한 세력과 처절하게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세상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이들과 함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싸웠습니다.

그 싸움이 이념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제 자신의 영혼까지 갈아 넣으면서 진심을 다했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세상이 변하고 그런 속에서 저도 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중년의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저는 좀처럼 싸우려들지 않습니다.

투쟁을 통해 세상이 변하기도 하지만 성찰 없는 투쟁은 세상을 견고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투쟁 속에 강인해지며 내공이 쌓여가는 만큼 모난 외톨이가 되어 버림받게 된다는 것도 알아버렸습니다.

싸우기보다는 성찰하고, 주장하기보다는 듣기에 집중하게 되면 좀 더 많은 것을 듣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 ‘젊어서는 나이든 척 하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젊은 척 하지 말라’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젊은 폐기와 열정을 잃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좀 더 깊고 넓게 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척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달려왔던 청춘의 시기를 지나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고 있는 저는 ‘젊은이일까 늙은이일까’ 고민이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리 깊지도 넓지도 않은 것 같은데 폐기와 열정은 이미 사그라져 버린 중늙은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점점 저는 젊은 척 하는 것이 싫어지겠죠.

세상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물러서고 바라보기만 하면서

작지만 소중한 저만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하겠죠.

세상을 향해 한 마디씩 툭툭 던져놓기나 하면서...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제가 덜 늙었나 봅니다.

그런 제 모습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겁 없이 여기저기 뛰어들 자신은 없습니다.

늙어가는 저를 채찍질 하는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렵겠지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저를 몰아붙일 힘은 남아있기 때문이죠.

 

 

 

(자우림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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