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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part 3

1.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대뽀였던 듯 하다. 그냥 간다란 생각으로 가긴 갔는데 짧은 기간 동안 원하는 그림을 찍어야 한단 생각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면 느끼는 해방감이 있다. 그래서 은근히 외국에 나가는 것을 즐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난 그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예외가 되는 상황. 난 아마도 그런 '이방인이 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사람들의 걸음 속도와는 다른 속도로 걸어도 되고 길 가다 한쪽 층계에 앉아 물줄기 처럼 흘러 어디론가 가버리는 사람들을 쳐다 봐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그런데 방글라데시는 그게 아니다. 혼자서는 밖에 못나갈 수도 없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밖에 한번 나갈라치면 온동네 사람들이 다 쳐다 본다. 여자 혼자 잘 다니지도 않거니와 외국여자이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였나 보다. 같이 지내던 사람들도 그런 상황때문에 날 혼자 절대로 내보내지 않았다. 누군가 같이 갈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 와서 데려 가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아에 밖에 나가게 하질 않았다. 이야기로 들으면 무슨 감옥 같겠지만 그게 그 사회의 소통이니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답답한 것뿐이지. 2. 또이모르, 이주 그래도 인복은 있었던 것인지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날 기꺼이 기거하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 7년 있다 돌아 간지 3개월 된 이주노동자 또이모르. 한국에서 출발 할 때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하는 지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어 보니 '소주' 란다. 이슬람권 나라다 보니 술은 안된다. 그럼에도 이미 한국에서, 술 없이는 안되는 사회에서 십년 가까이 살고 간 이주노동자들에게 소주는 이미 금기가 아니다. 다른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네팔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불법이란다. 아니 사람으로도 생각 안하는 듯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주를 경험했던 이주노동자들이 네팔에 돌아가서도 그 맛이 생각이 나 동네에 많이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 먹다 들켜서 신문에 났단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어디서 이런 걸 배웠냐 하니 '한국에서 배웠다고' 하드란다. 웃긴 이야기지만 이주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곳에 가서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사는 것이라는 사는 것은 서로 서로를 물들이고 스며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며들다..그래서 내가 아닌 내가 되어서 당혹스러워도 여전히 그게 나인걸 확이해야 하는 것, 그러다 그 당혹스러움도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려 이젠 또 다른 내가 되는 것... 그런데 한국에서의 이주는 그게 일방적이다. 이주노동자만 그렇게 살아야 하고 우린 여전히 그들과 살지 않는다. 3. 또이모르, 옥상 여하튼 또이모르씨도 소주가 반갑지만 부인에 어머니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던 것인지 가방에서 꺼내 보여준 소주를 다시 집어 넣으면서 웃기만 한다. 또이모르씨는 내가 약속을 잡을 때도 약속 잡은 집을 갈 때도 항상 같이 했다. 그러니 그와는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다. 거기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하다. 마치 친구 마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말에 뉘앙스도 있다. 반가운 일이다. 거기다 생각도 깊고 감성도 풍부하며 예민하다. 이런..아주 좋은 주인공 감인데... 그런데 그는 카메라가 싫단다. 그래서 그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있었는데도 그를 촬영할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가 조금이라도 자기를 향할 것 같으면 돌아 앉거나 돌아서버린다. 참말로... 옥상... 40도 가까이 되는 더운 날에 유일하게 시원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건 옥상에 올라 갔을 때다 해가 뉘엇뉘엇 지는 시간에 그곳에 가면 어찌나 시원한지... 또이모르씨도 한국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그리운 곳이 옥상이었다고 한다. 그 옥상에 해가 지는 시간에 올라가 별이 총총 보일 때까지 있곤했다. 그러면 그는 참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주에 대한 그의 생각.. 뭐가 그리웠는지. 왜 이주를 하게 되었는지..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그 이야기를 담고 싶어 난 아쉽고 아쉬웠다. 그러다 한국으로 출발하는 그날..몇시간 전 그는 인터뷰에 응해줬다. 얼굴은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그는 이제 나의 친구였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나는 소중히 담았다. 그는 이주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나의 말에 얻은 것은 뭔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것이고 잃은 것은 자기 나라를 잃었다고 했다. 20대라는 시간...그 시간은 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그런데 그 시간에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왔으니 자기 나라가 자기 나라 같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어떻게 적응을 해서 살아가야 하는 지 막막하다고.. 막막했다.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멀리 방글라데시 까지 왔지만 난 이주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기 나라가 자기 나라 같지 않다니..그럼 그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불법체류자, 자기 나라에서도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이 없고. 이게 이주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도 소속감이 없는 그래서 영원히 부유해야 하는 상황...그게 이주의 경험이 아닌가...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하다. 그는 잘 적응해 가며 살고 있나. 그는 이제 방글라데시 사람이 되었나... 만나 보고 싶다. 하지만 그게 또 그를 더 더디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잘지내길 바란다. 좋은 친구, 내게 이주에 대해 이주의 본질에 대해 온존히 알게 해준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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