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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한다 마음먹었으니 더 잊어먹기전에 국제문학포람 관람기 씀

오에 겐자부로씨가 대단한 소설가라는 건 따로 말을 안 들어도 알만하겠는데, 유종호 평론가왈, 오에 겐자부로씨가 20대때 싸르트르와 대담을 했다고. 역시 될 사람은 떡잎부터 다른건지, 세상에 그런 20대가 있어도 되는건가. 나는 서른중반이 되어도 조느라고 '구토'를 다 읽어낼 수 없는데. 그런데 그런 20대와 노벨문학상의 그 사람은 순진하고도 겸손하고도 착한 아이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문학'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씨의 책이라면, 제목때문에 읽었던 '性的인간'이 전부인 나는 정말 그이 앞에서 다 시들어빠진 시금치쪼가리처럼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씨의 발표가 있던 <인간가치와 정치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다. 10시반 시작인데, 규민이 데려다주고 집에 온 시각이 10시15분인것을 세종문화회관까지 15분만에 무슨 수로 가나. 2시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를 들으러 갔더니, 박이문교수, 오에 겐자부로씨가 앞줄에 앉아있었었다. 발제문책자를 사서 뒤늦게 오에 겐자부로씨의 발표를 읽었다. 오에 겐자부로씨와 함께 발표를 했던 사람은 김우창이란 평론가였는데, 이 사람 무지 쪽팔렸었겠다. 오에 겐자부로씨의 글은, 짧고도, 읽기 쉽고도, 노작가의 평화에의 절절한 호소가 가슴 찌릿찌릿 하였다. 반해, 김우창씨 글은 뭔 소린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주술이 하여간에 무지하게 길었다.

 

오에 겐자부로씨는 자신이 쓰고 있는 지금의 소설에서부터 글을 시작하였다. 아마 이것이 자기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일 것이라면서. 자기 생애 마지막 소설일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작가의 느낌은 어떠한 걸까. 김윤식씨였나, 다른 사람이었나 아무튼 누가 그러길, 오에 겐자부로씨가 이 짧은 일정에서도 호텔에서 원고지를 놓고 글을 수정하고 있더라고.

 

박이문교수와 오에 겐자부로선생이 앞줄에 앉고 그 뒷줄에 내가 앉아 들은 토론회는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였다. 르 클레지오, 유종호, 루이스 세풀베다, 황석영씨가 주제 발표를, 김인환(평론가라함), 이인성(소설가라함)이 토론자로 나왔다. 사회자는 김화영 교수. 김화영교수는 여전히 한국어를 불어처럼 발음한다. '뒤에' 같은 단어는 특히 그렇다. 입술을 너무 앞으로 내밀어서 그런 거 같다. 생글생글 웃으며 간간히 농담을 하는 모습이 지금 이 토론회가 무척이나 즐거운 듯. 김화영교수는 그럴 양반이다. 소설가들 사이에서 문학을 얘기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평생 소년처럼 행복해하며 문학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했을 그 양반이 순간 가슴 뻐근하게 부러웠다.

 

보편적 인간가치,라니 뭘 갖다 대도 다 그럴듯할 포괄적인 주제라, 발표문들이 다 예수님 부처님말씀처럼 지루하게 옳은 소리들 뿐이었다. <인간가치와 정치변화>도 포괄적 주제이긴 마찬가지인데, 오에 겐자부로씨는 그토록 감동적인 발표문을 쓰셨건만.

이인성씨는 생긴 것도 꼭 멸치같아 염승주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말투도 염승주랑 비슷하였다. 툭툭 시비조로 던지는 말투, 약간 옆으로 꼬나보면서. 이런 식의 형식위주의, 딱딱한 토론회는 정말 재미없다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고. (유종호 평론가 빼고) 죄다 유명한 소설가이시니 각자 글 쓰는 얘기 좀 해달라고. 옳거니.

김화영교수는 이인성씨의 이런 지적에도 싱글벙글이다. 자기가 준비모임에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딱딱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단다.

그 이후로 나온 얘기들이 실제로 재미있었다. 르 클레지오씨는 마르고 키가 크고 눈매가 깊은데다가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라 여자들로부터 인기만방일 타입이었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미래소년 코난 친구, 판초처럼 생겼다.

오늘은 여기까지, 규민을 데릴러 가야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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