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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학포럼 관람기 2

둘째날은 운이 좋았다.

규민이 어린이집 일정상 아침 9시까지 어린이집에 등원해야해서 곧 세종문화회관으로 뛰어갈 수 있었다. 아침 10시 시작하는 토론회가 두 개, 무얼 고를까, 갈등.

하나는 내 청춘의 히로인, 오정희가 발제자로 나오신다. 그러나, 주제가 또 그만그만한 것, <힘의 질서와 인간 가치:독재, 전쟁 그리고 평화>.

같은 시각 다른 것은 <영구평화의 이상>.

독재, 전쟁, 힘의 시대를 거쳤으니, 이젠 평화도 영구평화를 얘기해야 시원하지, 하고 <영구평화의 이상>을 보기로 했다. 주제 발표는 로버트 하스(시인이라함)와 최장집교수.

그런데 늦었다. 로버트 하스의 발표 앞대가리를 빼먹는 바람에 집중하고 앉아있지 못하고 화장실도 왔다갔다 (그러느라 회의장 밖에 나갔더니, 누가 다가와, 저기 혹시 xxx씨 아니세요? 했다. 순간 나한테 떠오른 생각은 주책맞게, 엇! 난 소설가도 아닌데 어떻게 알지?였다. 내가 전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결과는 시시껍절하게 그냥 대학 1년 후배였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안도감, 그래, 졸업하고 그렇게 팍 변한 건 아닌가보다..) 해서 로버트 하스의 발표는 뭐가 뭔소린지 잘 모르겠다. 내가 깜짝 놀라며 감동을 받은 것은 최장집 교수때문이었다.

 

최장집 교수는 '한반도 평화조건'이란 글을 준비했는데, 그 글 안 몇가지 표현, 예를 들면, 북한을 언급할때 북한/북핵이라고 표시한다든지, 민주주의나 자유, 인권이란 가치 개입없이 평화공존 자체를 목표로한 남북한 관계라든지, 하는 표현들이 주위 토론자와 거기에 있던 몇 원로들(박이문 교수를 포함)의 의심을 샀다. 질문이 이어졌다. '북한 슬래쉬 북핵'이란 표현은 북핵을 인정하는 것이냐, (북한과의 관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놔둘 수 있느냐 등.

 

최장집 교수의 답변은 너무도, 너무나도 평범, 평이한 것들이었는데도, 그토록 평범하고 평이해서 단박에 이해되는 말을 붙들고 똑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던져졌다. 말하자면, 북핵은 북한의 존립문제와 링크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등을 상대하는 대외적 의미에서) 북한과 북핵을 연결하여 표현한 것이다...(최장집 교수의 대답, 이러면 다시 질문) 그렇다면 당신은 북핵을 인정하고 있는가. 북핵이 있다/없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핵은, 북한의 존립을 인정하면 피할 수 있는 문제다. (라고 최장집 교수 다시 대답. 그럼 또 빙딱같은 질문) 북핵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인가. (이런 찐따 질문에도 다시 최장집 답변) 물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너무도 간단하게 피할 방법(북한의 존립 인정)이 있다. 그런데 이 간단한 방법을 미국은 시도하지 않는다. 나는 북한 측보다는 미국이 오히려 북핵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메디 쇼같은 일련의 이런 우문현답 씨리즈를 보면서, 나는 그 뒤 이어질, 북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그대로 놔둘 것이냐,란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북의 인권 문제라면, 나도 '빨리 바뀌어야하는데'편 중 하나였다. 그의 대답은, 역시, 너무도, 너무나도 평범, 평이한 것, 그것은 초음속으로 날아가 나의 의식의 허영,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의 의식의 허영을 꿰부수고 진리에 꽂혔다; 정치는 매우 다이나믹한 것이다. 인권문제가 있다는 판단(우월의식) 하에 어떠한 개입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그 체재 안에서는 어쨌든 인위적이며, 어떠하든 위험하다.

 

하하하,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다시 한 번 세상의 진리는 아른아른 머리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쪼그리고 잘 보면 알 수 있는 땅바닥에 있음을...

북한이 인권문제 심각하다고 말하는 집단 치고 인권문제 없는 집단 있는가. 뭐 묻은 것들이 뭐 묻은 거 나무란다고. 하물며 북한의 인권문제는 복합적이다. 바로 손가락질하는 그 놈들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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