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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그 사람, 하얗다.

그의 한국 이름은 정대충(뭐든 대충대충 한다해서), 호는 성문학.

성(性, sex)과 문학(文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해맑게 웃는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면 문학 쪽으로는 수긍이 간다, 싶지만, 성도? 고개가 갸웃하나, 갸웃은 잠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성에 대한 수다는 산을 넘고 강을 이뤘다가 바다로 넘쳐 흐른다.

나는 그 사람의 성문학을 들으며 2000년도를 맞았다. 다 끝내고 시계를 보니 대망의 2000년 1월 1일 새벽 6시 반이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환타지, 환타지에서 자신의 소설 속 세계로 무궁무진 이어지는 섹스의 세계. 그의 소설들 속 인물들과 이야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그의 경험담은 별로였지만). 중학생과 사십대 술집마담(이태원 킹클럽의 한 아가씨가 모델이었던)의 섹스 여행, 노출을 즐기는 치어리더를 지팡이로 혼내는 종로 할아버지. 지금 기억하려니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나는 눈도 반짝반짝하며, 고개도 연신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또 그 양반, 얼마나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지...

 

전수찬과는 문학 이야기를 많이 하였나보지만, 그러고보니 나하고는 주로 성 이야기를 하였다. 이건 왜일까. 내가 문학을 잘 몰라서 였을까. 아니면, 내가 문학보다는 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그가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애자인 그가 성 이야기를 할때에는 아무래도 동성보다는 이성애자의 여자에게가 나았기 때문일까. 하여간에 그래서 전수찬이 등단했을때, 이 양반은 남다른 감회를 보이며 몹시 기뻐하고 흥분하여 주었다. 소설쓰기를 희망하는 동료로서 축하의 의미를 담아.

 

그러면서 이 양반은 예의 그 허풍,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아무튼 말로 전체 돌아가는 사정의 십분의 구를 해먹는 습관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는데, 자기가 그것을 일어로 번역하여 일본에서 출판하겠다는 것이었다. 뭐, 나쁠 건 없지. 전수찬은 기쁘게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러고나서 몇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반년하고도 몇 달이 또 지났으나, 이 양반, 번역은 커녕 아직 책도 못 읽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늘 낮, 전수찬에게 갑작 전화를 하더니만, 드디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꼬박 일년만이시네). 이번 주중에 서울로 한 번 오시겠다고(현재 대구에서 거주). 왠고하니, 소설의 배경이었던 덕수궁 부근도 거닐고 싶고, 거기서 차도 한 잔 마시며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 정말 귀엽기 그지없는 그 양반, 하얗다.

그 양반 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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