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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 학교에서 이런 걸 만들어왔다. 규민은 뭣도 모른채 마냥 오리고 붙이기에 반짝 재미있어하고 고 틈을 타서 선생은 축어버이날, 엄마사랑해요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규민이 엄마얼굴을 가운데에 그려넣는 것으로 내 인생 첫 어버이로서의 카네이션 화룡점정이 찍혀졌다.
나는 이걸 달고 시장을 보러 갔다.
시장에서 내 엄마아빠께 내가 드릴 꽃바구니를 하나 샀다. 천편일률의 꽃바구니는 요럴때 대목잡겠다는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있어 엄마에게 꽃을 선물한다. 마음같아선 봄에는 매일매일 엄마에게 꽃을 주고싶다. 개나리가 제일 처음 핀 날 개나리 한가지를, 살구꽃이 화사해지기 시작하면 살구꽃 한가지를, 라일락향기가 진할 땐 라일락 한무더기를, 배꽃이 솜덩이같은 날엔 배꽃 한무더기를, 엄마, 이꽃 좀 봐.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마음. 그 사람이 그 꽃을 받고 활짝 웃으면 그걸로 나도 기쁜 마음. 어버이날 행사치례로 숱하게 카네이션을 만들고 살때는 없던 마음이 그래도 몇 십년이 지나 이런 진심이 우러났으니, 자식 키우는 게 헛짓만은 아닌가보군.
꽃바구니는 딱 고만고만한 모양새인것이, 내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어도 얼마짜리라는 딱지를 붙히고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이래저래 맞추어 산 티가 뚝뚝 떨어진다.
뭐, 어쨌거나, 내 진심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당신들이 눈에 넣어도 안 아퍼할 손녀딸이 고른 것인데..
정말 엄마는 잠시라도 기분이 좋았을까.
아빠는 손녀딸만 쳐다보다가 테레비만 쳐다보다가 했다.
우리가 언제 다정한 부녀 흉내라도 내봤던가. 뭐, 새삼.
....
가까이지내던 동네양반의 아들 며느리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
어, 그래?
....
이거 얼마냐, 한 오천원 하냐?..... 문득 날 쳐다보며 아빠가 던진 말....
(물론 돈으로 선물따지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겉치례는 괜히 하지말고 꼼꼼히 절약하고 근검하며 필요할때 잘 쓰라,라는 심오한 경제철학을 담은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딸래미 아끼고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이란 것 알고 있다. 딸래미가 자신들을 사랑해서 하는 짓을 보지 못할 뿐이지.)
저녁을 먹는 도중 아빠에게 꽃바구니가 배달돼왔다. 사무실 직원들이 보낸 거라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벼라별 꽃들이 양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를 지경으로 흐드러지게 꽂혀있으면서도 교양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무지하게 비쌀 것 같았다.
아, 초라한 내 꽃바구니...
아니, 어버이날에 자기네들이 왜 꽃을 보내? 고용주의 날도 아니고....
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동네아저씨 한 분이 아들래미를 앞세워 들어왔다.
나는 거기서 순간 주눅이 들었다.
화려한 꽃바구니에 한차례 꺾여있던 기운이, 울고 싶던 차에 뺨맞았다 싶게, 본격적으로 수그러들었다.
그래, 이 장면이구나.
우리 아빠가 원하는 것은.
아들이 앞서있는 것.
그가 칠푼이 팔띡이같은 놈이라도, 그가 앞서 있고 아버지가 뒤에 서있는 것.
칠푼이 팔띡이 같은 놈이 내놓는 게 천원 딱지 붙은 보잘 것 없는 것이래도, 이것이 우리 아들놈이 어버이날이라고 사온 것이라며, 어버이날에 마음껏 어버이됨과 자식됨을 드러내놓은 것.
父子양반이 잠깐 볼일을 마치고 일어났을때, 아빠는 배웅차 뒤를 따르며, 지나가는 말로 덧붙였다. 누구네 며느리 오늘 아들낳았다더라고.
누가 나에게 뭐라했는가.
근데 나는 또다시 모든 전후맥락을 혼자 꿰었다.
그래서 나에게 뭐 낳았는지 말을 안 했었구나. 그게 부러워서, 누구네 집의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든든한 저 끈이 내심 부러워 그 말을 편히 하지 못했었구나.
새로 낳은 아이가 아들이냐,딸이냐가 나에겐 별 관심거리가 아니어서 묻지 않았던 것이 저 양반에겐 가슴에 사묻힌 상처이어서 말을 못한 것이었구나.
엄마아빠 집에서 내 자리가 아리송한 기분은 참 오랜만이다.
동생이 없어지고나서, 유일한 자식으로 우뚝했던 내 자리는 결정적 순간에 여전히 아리까리한 것이었다.
어버이날에 시댁에 가지않고 친정부모님들과 밥먹겠다 했다고 아빠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 나에게 전했다.
얼씨구, 내 부모가 누군데? 어버이날이 시부모날인가? 여자는 결혼하면 부모가 바뀐다는 것인가?
날 애써 키워준 엄마가 고맙고 그녀를 사랑한다.
어버이날에 내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을 선물하고 즐겁게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참 소박한 소망이네.
이것도 딸래미라 하기 어렵다니,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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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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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홈피들어갔더니, 욜로 이사왔다고해서..그런데, 이사온지 꽤 됐구나..추카추카해.이 글 보면서, 처음에는 빼꼽빠지게 웃다가(규민이가 만든 카네이션을 달고 시장에 갔다는 것에) 어딘가에서는 안쓰러워서 웃다가 어딘가에서는 통쾌하게 웃었어.두고 두고 쟁여서 읽기 위해서 오늘은 이 포스트만 읽고 간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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