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05

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5/05
    다시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이유
  2. 2005/05/04
    <송환>, 다큐멘터리의 힘(4)
    이유
  3. 2005/05/03
    마르그리트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2)
    이유
  4. 2005/05/02
    귀여운 그 사람, 하얗다.
    이유

다시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뒤라스의 두 번째 책.

처음 것은 <여름날 저녁 10시반>. 나쁘지 않았는데도 그 책을 읽으며 내내 지루했다.

내내 푹푹 찌는 여름 낮이 배경이었고, 그 뜨거운 태양때문에 모든 일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살인사건이 났는데도 아무도 더위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책만 들면 머리 위로 쨍,하고 거울 깨지는 소리를 내며 태양빛이 직사광선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 말했듯 그 책이 좋았었다.

뒤라스는 한 번도 구상을 해서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하던데, 그 여자, 사람의 심리를 직사광선처럼 꿰뚫고 있어 인물들이 읊는 대사는 귀신처럼 정확하고, 더디게 일어나는 사건도 상징과 함축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 건 지구 반바퀴를 돌아도 다 똑같은가 보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다시 숨막히는 더위의 여름날. 아침부터 공기는 밀도높은 더위로 꽉 차있다. 바캉스중의 두 쌍의 커플과 한 여자, 한 남자, 그러나 사랑은 권태로워도 위대하다,의 결말까지 엇갈리는 관계. 결말 직전 그 숨 가쁜 심리전들...으으으

뭐, 실제로 결말이 사랑은 위대하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쉴 새 없이 캄파리란 술을 마신다. 다른 거 말고 오직 캄파리만.

다음에 나도 캄파리를 마셔보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송환>, 다큐멘터리의 힘


 

이제서 본 영화를 가지고 호들갑떠는 제목이 촌스럽다.

어쨌든간에 나는 새삼 다큐멘터리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최근들어 내가 영화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던 것과 일견 맥락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위적이라고 치자면 다큐멘터리도 작위적이지 않으랴만, <송환>은, 영화 중엔 애써 눈감아두었다가 영화 끝나고부터 그 감춰두었던 꼬리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공룡몸땡이를 보이는 듯 드러나는 찝찝한 구석들이 아직까지 없는 걸로 봐서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냐 극영화냐의 경계선이 아니다. 극영화도 잘 만들어졌다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을 것이고, 찝찝한 구석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요즘들어 나는 영화보는 것마다 좀 그러그렇고, 어쩌다 보았던 다큐멘터리들에 감동받는다.

하긴 내가 영화를 많이 보았길 하나, 내가 영화를 뭘 잘 알길 하나. 이런 소릴 영화가 들으면 나한테 그럴 것이다, '니나 잘해.'

 

<송환>은 국민학생 아이가 찍은 것 같다. 스스로 잘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백지에서부터 대상을 좇는 카메라를 그래서 잘 따라갈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입장도 아니고, 반이데올로기 입장도 아니고, 어느날 만난 모르는 아저씨들을 호기심으로 그냥 주욱 따라가는 국민학생.

 

남파간첩, 체포되어 30년, 때로 40년 넘게 수감되어 전향목적의 고문에 시달림- 비전향 장기수, 대부분의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과거를 가진 그들이지만, 카메라가 좇아가는 현재의 아저씨들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너무나 똑같다.  단지 그래서 영화는 충격적이고, 새삼 이데올로기를 묻는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길래, 체재가 무엇이길래.

 

그들을 수십년 동안 잔인하고 굴욕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으로 고문하고 감금하면서 얻으려했던 전향동의서. 그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거기에 정말 이데올로기가 있는걸까. 

감독이, 이렇게 어린애마냥 순진무구한 얼굴은 이 사람에게서 처음 보았다고 하는 (포스터 오른쪽 상단에 나온 얼굴--감독은 정말 이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렸나 보다. 포스터에도 얼굴을 쓰고, 이 사람 인터뷰 중에는 얼굴을 클로즈 업 한채 몇번을 슬로우모션했다가 정지시키곤 한다.) 사람도 끝끝내 그 고문들을 이겨낸 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눈빛의 간첩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먼 이미지. 그는 거의 실신된 상태에서 손이 묶인 채 전향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는데, 그것을 두고두고 가슴에 담고 있다. (북으로 송환된 후, 전향 취소선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그렇게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때문이었다고. 오히려 모진 고문을 해댔기때문에 거기에 굴복할 수 없었다고.

 

나 같아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백이면 백, 누구나 그러하지 않았을런가. 드럽고 치사하여 거기에 머리 숙일 수 없는 것이다. 인권이란 누군가에게는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다 그걸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내가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 그 운이 없었다면 나도 딱 저 꼬라지다.

 

그들이 송환될 시점, 주변에 남한친구들이 많았다. 남한친구들은 그들의 송환을 두고 기뻐서도 울었고, 드라마틱한 그들의 인생때문에도 울었고, 지금 가면 다시 만나기가 막막하다는 현실에도 울었다. 꼭 일년 후에 다시 만나자며 손을 흔드는 그 말만으로도 눈물이 나온다.

이상한 경험이다, 이것은. 몇년 전 북으로 노래를 하러 간 가수들을 티뷔로 보고 있을 때도 그랬다. 태진아, 핑클, 등등이 북에 가서 쇼를 하고 이제는 남으로 돌아간다며 버스를 타고 있는데, 그들이 일제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태진아 같은 사람들은 실상 전쟁과 분단을 경험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핑클 같은 애들도 눈이 벌겋게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던 나도 즉각 눈물이 주르르 흘러 이상했었다. 민족주의자는 커녕 민족이란 말에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나인데, 우리 땅, 우리 겨레는 이제 좀 다르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편인데, 이 대목에서 왜 눈물이 자동으로 나오는 걸까.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이들이 모여 그랬을 것이다. 이 빨갱이 간첩놈들, 대한민국이 어떤 데라고, 체재우위를 보여주려면, 이 놈들 고문을 시켜서라도 전향시키라고 회의에서 통과되었을 것이다. 양복에 넥타이 맨 이들이 모여 회의를 하시며 그랬을 것이다.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자고, 독재정권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하니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회의탁자에 앉아 에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이들이 또 얼마나 엄한 인생들을 지옥으로 만들까, 무섭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르그리트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을 읽다가...

 

 

-그렇게 느껴져. 네가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다는 것 말이야. 날 좀 이해해 줘.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믿어. 더는 진실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고 느끼게 되는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해. 그 이전이나 그 이후가 아니고 바로 그 경계 지점에서 말이야. 그러나 나는 이 경계선을 확장시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해. 침묵해 버리고 마는 사람들보다는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라는 벽에 가서 부딪히며 가능한 한 표현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래, 난 그런 사람들이 더 좋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귀여운 그 사람, 하얗다.

그의 한국 이름은 정대충(뭐든 대충대충 한다해서), 호는 성문학.

성(性, sex)과 문학(文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해맑게 웃는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면 문학 쪽으로는 수긍이 간다, 싶지만, 성도? 고개가 갸웃하나, 갸웃은 잠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성에 대한 수다는 산을 넘고 강을 이뤘다가 바다로 넘쳐 흐른다.

나는 그 사람의 성문학을 들으며 2000년도를 맞았다. 다 끝내고 시계를 보니 대망의 2000년 1월 1일 새벽 6시 반이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환타지, 환타지에서 자신의 소설 속 세계로 무궁무진 이어지는 섹스의 세계. 그의 소설들 속 인물들과 이야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그의 경험담은 별로였지만). 중학생과 사십대 술집마담(이태원 킹클럽의 한 아가씨가 모델이었던)의 섹스 여행, 노출을 즐기는 치어리더를 지팡이로 혼내는 종로 할아버지. 지금 기억하려니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나는 눈도 반짝반짝하며, 고개도 연신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또 그 양반, 얼마나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지...

 

전수찬과는 문학 이야기를 많이 하였나보지만, 그러고보니 나하고는 주로 성 이야기를 하였다. 이건 왜일까. 내가 문학을 잘 몰라서 였을까. 아니면, 내가 문학보다는 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그가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애자인 그가 성 이야기를 할때에는 아무래도 동성보다는 이성애자의 여자에게가 나았기 때문일까. 하여간에 그래서 전수찬이 등단했을때, 이 양반은 남다른 감회를 보이며 몹시 기뻐하고 흥분하여 주었다. 소설쓰기를 희망하는 동료로서 축하의 의미를 담아.

 

그러면서 이 양반은 예의 그 허풍,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아무튼 말로 전체 돌아가는 사정의 십분의 구를 해먹는 습관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는데, 자기가 그것을 일어로 번역하여 일본에서 출판하겠다는 것이었다. 뭐, 나쁠 건 없지. 전수찬은 기쁘게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러고나서 몇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반년하고도 몇 달이 또 지났으나, 이 양반, 번역은 커녕 아직 책도 못 읽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늘 낮, 전수찬에게 갑작 전화를 하더니만, 드디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꼬박 일년만이시네). 이번 주중에 서울로 한 번 오시겠다고(현재 대구에서 거주). 왠고하니, 소설의 배경이었던 덕수궁 부근도 거닐고 싶고, 거기서 차도 한 잔 마시며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 정말 귀엽기 그지없는 그 양반, 하얗다.

그 양반 보고싶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