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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무장봉기 20주년’… 전 세계서 2000명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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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가 성공한 실험인지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물론 그들의 투쟁은 전 세계에 울림을 주긴 했지만, 지금이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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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18140.html
‘달팽이 공동체’로…총 놓고 ‘자치’ 택한 사파티스타 (한겨레, 이유주현 기자, 2014.01.02 19:54)
알자지라, 출범 20돌 근황 전해
1996년 정부와 평화협정 맺은뒤 치아파스주 5개 지역 독립 자치
모든 주민 돌아가며 의회 참석
가난해도 교육·의료 걱정 덜어 “새 사회구조 만든 21세기 혁명”

사파티스타는 “민중이 질서를 만들고 정부는 이에 따른다”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5개 지역마다 있는 ‘의회’에는 모든 주민들이 2주마다 돌아가며 참여한다. 교통이 불편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데도 다른 주보다 진료소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멕시코 공식 언어인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고유 언어인 ‘초칠’로 공부한다. 강제결혼·차별·폭력에서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도 잘 정비돼 있다. <알자지라>는 사파티스타는 기존 정부의 전복과 권력 장악이라는 20세기식 혁명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정치 질서를 새로 세우는 운동이라고 평했다. 치아파스를 방문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활동가인 레베카 만스키는 <알자지라>에 “이곳에 오자마자 나는 오큐파이의 이념·조직원리·언어가 사파티스타의 철학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22155015&code=970201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무장봉기 20주년’… 전 세계서 2000명 결집 (경향, 윤승민 기자, 2014-01-02 21:55:01)
ㆍ복면 쓴 지지자들 “원주민 투쟁 세계에 큰 울림”
사파티스타의 투쟁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일 산크리스토발에서 열렸다.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까지 찾아온 지지자 2000여명이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상징과 같은 검은 복면을 쓰고 모였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우리는 바보였고, 여론조작에 넘어갔고, 통제당했고, 잊혀졌다. 우리는 무지와 빈곤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 우리는 일어섰다.” 사파티스타 사령관 호르텐시아가 연단에서 외치자 세계에서 모인 지지자들이 환호했다고 현지 언론 라호르나다 등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 BBC방송, 알자지라방송 등 세계 언론들은 사파티스타 투쟁의 역사와 의미를 조망하는 보도들을 내놨다.
▲ 원주민 권리 외치다 반세계화·반신자유주의 운동 중심으로
‘마르코스 코뮈니케’ 각국 전파… 인터넷·모바일 적극 활용

사파티스타는 게릴라전과 대규모 행진 같은 ‘고전적인’ 남미 좌파들의 투쟁방식에 더해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 등 신기술을 적극 활용, 영향력을 세계로 확산시켰다.
20년이 흘렀지만 사파티스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사파티스타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멕시코의 석유개발권을 외국 자본에 개방하려는 것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르코스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에너지개혁법안에 서명하자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라며 “그동안 벌어진 ‘개혁을 가장한 교묘한 약탈’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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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3 15:30 2014/05/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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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계급"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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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조직 운영을 위한 고민들 (날맹, 인권오름 제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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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맹 님이 인권오름에 쓴 글은 생각할 꺼리가 많다.
 
올해 3월부터 명칭이 바뀐 사회공공연구원에서 연구실장 직을 맡았다. 전임 실장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긴 했으나,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라 보아 큰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수행하려 하는데, 생각대로 될지 의문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조직에서 무슨 리더십 같은 게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냥 선임 연구위원 정도로 하고 실장을 아예 없애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는 있으나, 이런 얘기를 걍 던지기에는 확신이 강하지도 않고 해서... 
  
아무튼 민주적 조직 운영이라는 게 쉽지 않은 주제다. 조직론을 공부도 하고, 강의까지 했는데도 현실은 이론과 다르더라. 더욱이 조직론이 모델로 하는 회사조직과는 다른, 정치조직, 연구조직, 친목집단 등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굴러가고... 그래서 보편적인 해법이라는 게 어렵고, 구체적, 상황적응적으로 다르게 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조직 운영에서 효율적인 회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그 만큼 준비를 잘하면 될 텐데, 역할 배분, 다른 일과의 균형 등의 문제로 임기응변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간은 길어지고 정작 나오는 결과물은 빈약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고민도 지금 할 때가 아니다. 다른 할 일이 쌓여 있으니... 개인적으로 일의 우선순위 정하는 것도 잘 못하는데, 무슨 회의, 조직 운영까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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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r-oreum.net/article.php?id=2654
[인권교육, 날다] 민주적 조직 운영을 위한 고민들 (인권오름 제386 호 2014년 03월 26일 19:29:34, 날맹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대표가 없는 조직은 민주적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울버스 헉슬리는 1937년에 출간한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좋은 목적은 적절한 수단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단의 정당함이 목적의 본질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목적과 수단에 관한 헉슬리의 지적은 운동 사회의 비민주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운동의 대의가 민주적이지 못한 운동 방식을 정당화해주는가 하는 질문이다.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를 함께 꿈꾸는 조직 내에서 정작 비민주적인 일들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자기 활동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우리는 다 같이 평등하다고 하면서도 의사결정에서는 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된 평등하지 않은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꺼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여전히 “우리는 모두가 1/n이다”는 공허한 말 혹은 “우리가 기존 지배체제의 권력관계에 물들어 있어서 자꾸 대표에게 힘을 넘겨주려고 해서 문제다. (그러므로 직원들이 더 평등한 인간관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는 가르침이었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조직 안에서 누군가는 재미나 활력 없이 그저 버티는 정도로 일하고 있다면 아무리 거창한 대의를 위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 단체는 그저 공허한 운동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애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큰 꿈을 품고 들어왔다가 막상 조직의 분위기나 의사결정구조에 지쳐서 활동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떨어지는데 그런 사람에게 넌 왜 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느냐고 묻는 건 선후관계가 바뀐 질문이다.
  
대표의 위상과 역량이 곧 조직의 역량과 직결되는 (결과적으로 대표 중심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조직일수록 “대표 자체가 곧 구조”일 확률이 높다. 대표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지난 시간 활동의 결과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남기보다 그런 역량들이 대표 개인의 몸에 “육화”되어버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대표가 물러난다고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표’라는 직책의 유무보다는 권한과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민주적인 조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버겁고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란 것 자체가 시끄럽고 힘든 과정이란 걸 수용한다면 자신의 가치와 실제 삶의 방식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이 일련의 시간을 좀 더 기꺼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자신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의 매력적인 현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지향과 이를 위해 일하는 곳의 운영방식이 일치하는 것. 내가 원하는 세상의 원리대로 지금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럴 때 개인과 조직 모두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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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20:50 2014/03/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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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송곳 1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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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규석의 송곳 1부가 끝났다.
이수인 과장이 노조에 가입은 했으나 아직 본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다.
예열단계라고 해야 하나.
현실에서는 어쩌면 이 시기가 중요한 듯하다.
 
http://m.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02922&no&seq
 
2. 점장이 다르게, 그러니까 좀더 유연하게 대응했다면 이수인 과장이 새롭게 깨닫고 노동조합 활동가가 될 수 있었을까.
건전한 기업이었다면, 이수인 과장이 "날 치워 봐라"라고 반발하지 않았겠지. 
그 이상을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우리의 과제다. 
1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끝났다.
  
"기분이 아주 더럽다.
하지만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난 이미 죽었고
내 발로 알아서 치워져 줄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날 치워 봐라."

 
3. 오늘은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정책자문단 워크샵에 다녀왔다. 박용석 공공운수노조연맹 공공기관사업본부장이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고, 그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정책자문단의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의 간부들에게 공공부문 노동조합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이러저러한 조언, 질문, 대안을 얘기했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공감하기도 하고, 상이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토론이 나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부설 연구소에서 일하는 나는 어느 쪽에 속할까.
 
4. 연결된 내용. 최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전 사회적인 쟁점이 되면서 이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인터뷰나 코멘트를 요청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고, 관련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최규석의 송곳을 보니 가슴 아프게 와닿는 대목이 있더라.
현실의 나에게 인상깊었던 대목은 송곳 1-13에서 나온다.
 
"지겹다. 강제된 선택지에 시시한 통찰을 덧칠해서 마치 새로운 답인양 떠들어대는 어른인 척하는 어른들의 하나마나한 조언들.
그리고 언제나 그 하나마나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

 
나는 그런 하나마나한 조언을 하는 어른의 입장에 서있는 걸까, 아님 그런 조언을 뛰어넘어 "하나마나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을 바꾸려는 입장에 있는 걸까. 이도저도 아니고, 그저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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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20:37 2014/03/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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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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