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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종말',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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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을 앞두고 전진에서는 선거강령을 만든 바 있고, 이것은 현재 전진의 진로를 모색함에 있어서도 나침반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당시 선거강령을 논의하던 도중에 달러 배제를 강령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다. 금융통제 등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타겟으로 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제기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이게 상당히 거시적인 담론인데다가 국제정치경제에 대해 당시로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논의과정 중에 나온 신중론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고, 결국 '달러 배제' 논의는 선거강령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달러의 헤게모니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글들이 제법 나오기 시작하더니 올초에 나온 '한국인을 위한 국제정치경제 교과서'라는 타이틀을 단 김성해`이동우의 <세계는 울퉁불퉁하다>(민음사, 2009)가 달러 헤게모니를 알기 쉽게 정리하였다. 그래도 이게 쉽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인디펜던트>에 아랍 등이 원유 결제에 달러 사용을 중단하는 것을 계획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에 대해서는 프레시안의 이승선 기자가 발빠르게 보도를 하고 있다.
 
달러의 종말과 함께 금본위제 회귀설 등 관련된 논의를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 원래 이런 쪽은 잘 몰라서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정도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새롭게 다가온다. 이런 논의에서 한국, 특히 한국의 좌파진영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미제국주의의 패권이 허물어진다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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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종말' 보도에 금값 폭등…온스당 1039.70달러 (프레시안, 이승선 기자, 2009-10-07 오전 10:40:01)
금본위제 회귀설 속 '한국의 금 보유량'은?…미국의 0.17%에 불과
  
현재 달러 가치는 기축통화로서의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사실상 국제교역의 독점적 결제수단의 지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만일 특정 교역에서라도 이런 지위를 상실하면 그 파급 효과는 걷잡을 수 없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가치는 순식간에 폭락한다. 그런데 원자재, 특히 원유시장에서 중동 산유국들이 달러 사용을 중단하고 현재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인 중국 등과 함께 새로운 결제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비밀회의를 여러 차례 가졌다는 보도(☞관련 기사: <인디펜던트> "아랍, 원유 결제 달러 사용 중단 계획")가 나왔다.
 
이 보도가 사실인지,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언제 현실화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너무나 남발된 달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번 보도는 일대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라는 권위지에 중동문제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려온 로버트 피스크가 "중국과 중동의 금융권 소식통에 의해 확인된 사실"이라며 터뜨린 특종 형식의 보도라는 점에서, 그 파괴적 영향력은 되돌리기 힘들 정도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국제시장에서의 거래되는 금값이 1온스(약 30g) 당 무려 20달러 넘게 치솟고, 장중가는 물론 종가로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이 보도의 충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금가격은 장중 온스당 1045.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종전 최고치인 지난 2008년 3월의 1033.90 달러 기록을 무려 11달러 이상 상회한 것이다. 또한 12월물 금값은 전날 종가보다 21.90달러(2.2%) 오른 1039.70에 거래를 마쳤다. 이 또한 종가 기준으로 최고치다.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의 가치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달러는 유로화에 대해 1.4712달러에 거래돼 전날보다 0.4% 평가 절하됐고, 6개국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인덱스 역시 76.29를 기록해 전날에 비해 0.45% 하락했다. 달러 가치 하락은 원자재로 투기자금이 이동하는 움직임을 부추긴다. 이를 보여주듯 이날 12월물 은가격도 5%가 뛰어 올라 온스당 17.35 달러를 기록했고, 산업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구리 역시 2% 오른 파운드 당 2.78달러를 기록했다.
 
백금도 23.40 달러(1.8%) 오른 온스당 1318달러를 기록했고, 팰라디움 역시 2.2% 상승해 온스당 310달러에 거래됐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도 전날 종가보다 2% 가량 오른 배럴당 71.80 달러에 거래됐다.
 
이처럼 달러 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금본위제로의 회귀, 또는 금이 새로운 결제수단이 될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외환위기에 시달려온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금 보유 현황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금위원회(WGC)가 최근 공개한 세계 103개 국가의 금 보유 현황(6월 말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14.3t을 보유해 세계 56위 수준이다. 금 보유량에서도 단연 1위인 미국(8133.5t), 2위 독일(3412.6t)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8위 일본(765.2t)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금 보유량에서 한국은 크게 밀리고 있다. 대만은 423.6t, 필리핀은 154t, 싱가포르는 127.4t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환보유액 대비 금 보유 비중에서도 한국은 0.2%(1월 말 금값 기준)로 보잘 것이 없다. 전 세계 평균(10.1%)의 50분의 1 수준이다. 금융계 일각에서 달러가 붕괴해도 미국의 통화 헤게모니는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언젠가 금본위제로 국제통화시스템을 전환하자는 국제여론이 조성돼도 최대의 금 보유국인 미국은 가장 유리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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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배제'의 정치경제학…美패권에 대한 적개심? (프레시안, 이승선 기자, 2009-10-08 오전 7:22:16)
<인디펜던트> "중동은 미국에 대한 인내심 잃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산유국들이 중국, 일본, 프랑스 등과 함께 석유시장에서 달러를 배제하기 위해 국제적인 비밀회의를 진행해 왔다는 영국 <인디펜던트>의 보도는 사실일까. 달러를 대체할 통화 바스켓에는 엔화, 위안화, 금, 중동 산유국들의 새로운 공동통화 등이 포함되며, 이런 작업이 완료되는 9년 뒤에는 '달러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앞으로 달러 가치는 폭락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일까.
 
나아가 미국의 패권이 작동하는 기존 질서에서 미국의 동의 없이 기축통화 지위를 박탈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런 움직임은 경제질서 뿐 아니라 국제정치역학에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인데, 그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인디펜던트>는 7일 후속 보도들을 통해 다각도의 분석을 시도했다. 우선 이 신문은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미국의 저명한 한 투자전략가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비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국들이 부인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시장에서 이런 반응에 대해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정리했다. 시장은 금값의 사상 최고치로의 폭등, 그리고 달러 가치 하락으로 반응해 이 보도내용에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여줬다.
 
'달러의 종말' 특종보도로 국제금값을 폭등시켰던 로버트 피스크 기자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장 무하마드 알-야세르의 부인성 발언에 대해 "통상적인 걸프 정치학의 일환"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중대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 금융혁명(A financial revolution with profound political implications)'이라는 분석 기사에서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사우디 국경에 배치된 상황임에도 미국이 전세계에 이라크의 침공 소식을 방송할 때까지 이 사실을 부인한 전력이 있지 않느냐"면서 "이 정도의 변화가 몇 년에 걸쳐 일어나려면 언제나 비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스크는 "석유시장에서 달러를 배제하려는 계획은 최소한 2년 이상 공공연히, 그리고 은밀하게 논의되어 왔다"면서 "석유 거래가 달러 시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계획은 정치적으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스크는 이번 움직임에는 수십년 동안 미국이 정치 및 경제적 패권을 휘둘러 온 것에 대해 중동, 유럽, 그리고 중국에서 커지고 있는 적개심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피스크에 따르면, 전세계 7.2조 달러의 외환보유액 중 아랍국가들이 2.1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은 2.3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혼자서 9000억 달러 상당의 달러 표시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등 이번 비밀회의 참여국들은 전세계 달러 표시 외환보유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단합할 경우 아무리 미국이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동국가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중동산유국들은 오랫동안 미국에 대한 경제 및 정치적 의존에 대해 점차 인내심을 잃어왔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표적인 친미정권으로 알려져있지만. 지난 2007년 이후 슬그머니 러시아와 국방, 군수, 석유 정책에 대해 공조체제를 가동시켜왔다.러시아 역시 이번 비밀회의의 참여국이며, 통화 바스켓에 루블화도 편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은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손아귀에 철저히 장악됐으며, 아랍국가들은 1973년 중동 전쟁 이후 석유 금수조치로 서방에 압력을 가할 힘을 잃었다. 이에 따라 중동국가들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경제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이 아랍 땅에서 떠나는 대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해주자는 제안을 아랍국가 전체에 제시한 바 있는데, 사우디 측은 이 제안에 '시효가 없다'고 말한다. 피스크는 "이런 제안이 무시되거나 거부된다면 그들은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중동평화를 도모할 동맹국들을 찾을 것이며, 중국은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스크는 "석유 시장에서 달러를 배제하면서 촉진되는 거대한 금융 변혁은 중동에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특히 아랍세계를 무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다툼이 본격화될 경우 그렇다"고 지적했다.
 
달러를 대체할 통화 바스켓으로의 전환에는 현재 2018년까지 9년 후의 일로 계획돼 있다. 중국과 아랍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9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한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은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해 피스크는 "사우디 당국은 이 기간 중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잘 알고 있다"는 말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토대가 흔들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 사이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7% 증가할 경우 10조 달러로 현재의 두 배가 되는 반면 미국이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과 중동의 산유국 등 달러 자산이 외환보유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들은 '달러의 덫'에 걸린 처지이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달러 가치가 서서히 하락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미국일 수 있다. <인디펜던트>의 스티븐 폴리 기자는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저명한 경제학자 사이먼 존슨 MIT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런 시각을 전했다.
 
존슨 교수는 "국제상품 결제통화이자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자산으로서 달러의 지위를 손상시켜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미국에게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달러 가치가 어느 정도 하락하는 것을 바랄 것"이라면서 "립서비스 차원에서 미국은 강한 달러 정책을 말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누군가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려 한다면 미국에게는 행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 기자도 "오바마 행정부는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해 '사실상 용인'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면서 "달러 가치 하락은 경기침체로 초래된 경제적 타격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주말 IMF 총회에서 환율 시장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요구를 미국이 거부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달러 가치 하락을 바라고 있다는 관측을 촉발시켰다. 그 근거는 이렇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부족해지고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느라 현재 미국의 정부 부채는 11.86조 달러에 달한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부채 상환 부담이 줄어든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제조업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반면 다른 정부들은 곤경에 처해 있다. 금융위기에 대비해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 나라들이 달러 가치 하락으로 금이나 다른 화폐로 바꾸기 시작하면 전세계 시장에 갑자기 달러가 넘쳐나게 되고 달러 가치는 더욱 추락하게 된다. 산유국에게 이런 사태는 특히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원유 수출대금을 달러로 받게 돼 있어 이들 국가들은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달러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목되는 것은 '금의 화려한 귀환'이다. 폴리 기자는 "미국 달러 패권에 기초한 기존 경제질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전세계 시장에서 금값이 폭등하고 있다"면서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이후 금은 국제통화로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통화 바스켓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도 달러 가치 하락이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하면서 달러와 그 이외의 미국 자산의 대안으로서 금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세계금협회(WGC)의 아람 시시마니안 회장은 "지난 18개월 동안 금융 및 경제의 혼란을 거치면서 금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졌으며, 전세계의 정책전문가, 중앙은행,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금값의 변동과 금의 위상 변화는 달러 가치 폭락을 예고하기보다는 달러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시대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는 바로미터로서 계속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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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8 22:39 2009/10/0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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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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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소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그가 아르헨티나 국적이라는 것도 함께. 나에게 그가 아르헨티나 태생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민중의 삶과 애환을 노래로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의미있었을 뿐이니까.

 
74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크게 안타까울 건 없지만, 그래도 그가 노래부르는 모습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르헨 민중가수 '대모' 소사 별세(종합)

 
그의 노래를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민지네를 통해서였다. 인터넷 음악방송 등을 통해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소개하는 이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가 왜 사랑받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갈수록 싱어송라이터가 우대받는 풍토에서 자신이 작사작곡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로 노래를 재해석해서 민중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노래를 듣는다면 노래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도 뭔가 가슴이 와닿는 게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http://www.youtube.com/watch?v=WyOJ-A5iv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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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20:22 2009/10/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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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에서 좌파당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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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동지의 글은 이번 독일 총선의 결과를 잘 분석해놓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기민기사와 자민당의 보수연정 출범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내가 관심이 있는 좌파당에 대해 잘 언급을 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당의 약진에 대해서는 한겨레신문과 국민일보에서도 주목하고 있더라. 
독일 ‘좌파당’ 깜짝 약진 (한겨레, 2009.09.28 오후 19:45)
獨 총선 극좌 약진… 중도좌파 표 몰려 12% 득표 (국민일보, 2009.09.28 오후 18:25)
 
사실 이걸 단지 독일만의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포르투갈 총선에서도 드러났듯이 좌파의 득세는 전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하는 장석준 동지의 분석에 공감이 된다. 나아가 그들에게 기회요소 및 위험요소가 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빼먹을 뻔 했는데, 이번 독일 총선 결과는 제3의 길이 더이상 올바른 처방이 아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사민당에게 제1, 제2의 길 외의 다른 대안은 불가능하다.  
 
독일의 보수연정 출범은 사민당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연정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가진 고유한 색깔도 잃고 또한 전쟁 참여 등에 대한 책임도 함께 졌기 때문이다. 이번 보수연정은 어쩌면 독일 보수세력의 무능을 제대로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방정부 차원에서 좌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 지금 상황에서 독일 경제가 잘 굴러가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말그대로 자본가 친화적인 정책을 노골적으로 시행해서 확실하게 그 모순을 폭로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다고 그 전리품을 어느 쪽이 회수할지는 불확실하지만...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도 내가 국제주의자가 아니라서 독일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우리나라인데, 한국에서 과연 좌파당 정도의 내용을 가진 진보정당이 나설 수 있을까. 사노준이나 사노련을 보면 역시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좌선회하기를 기다리기엔 난망하고... 뭔가 계기가 필요한데, 오히려 정치지형은 계속 오른쪽으로 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참, 이상의 논의와 별개로 장석준 동지는 해적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해적당은 전체 유효투표의 2.0%인 약 84만6천표를 획득해 하원 의석을 배정받은 6개 정당에 이어 7위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더욱이 젊은 층에서 13%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극우정당인 NPD를 제낀 것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적당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해봤으면 좋으련만...
독일 해적당 급부상 (연합뉴스, 2009.09.29 오전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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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경향신문 칼럼은 이번 독일 총선의 결과를 제3의 길 노선의 몰락으로 해석한다. 역시 경향이라 이런 칼럼도 나올 수 있었으리라. 타당한 분석이기도 하고... 
 
[세상 속으로] ‘제3의 길’은 없다 (경향, 김민아 국제부 부장대우, 2009-10-06 21:02:55)
 
해외 언론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유럽 유권자의 ‘우향우’ 대신 ‘제3의 길’의 실패에 주목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이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극좌·극우를 넘어서는 혁신을 주창했지만 정체성만 잃고 말았다는 해석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의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좌파에 대한 총체적 지지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3의 길’을 택한 유럽 중도좌파 정당은 새로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려다 기존 지지기반을 잃어버렸다. 블레어는 금융시장 규제 완화를 밀어붙였고, 슈뢰더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복지 축소를 시도했다. 전통적 지지자들에게는 배신이자 신자유주의에의 투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 정당은 유권자들의 가치와 정서에도 무관심,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유럽 내에서 이민, 범죄, 이슬람 테러리즘 등에 대한 우려가 증가했지만 귀를 틀어막은 채 세계화나 다문화주의의 장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인 노동자들의 불안이 커졌는데도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우파는 영리하게 행동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유럽 중도우파가 좌파의 많은 아이디어를 채용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제 금융위기가 터진 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난하고,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지지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실업자의 재취업 장려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인 ‘능동적 연대소득’을 도입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자본소득세를 인상했다. 부자 증세는 전형적인 좌파 정책이다. 메르켈은 은행 국유화도 꺼리지 않았다. 그의 총선 공약에서도 감세를 제외하고는 우파적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 역시 신자유주의적 ‘대처리즘’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온정적 보수주의’를 강조한다.
 
‘제3의 길’의 실패는 제자리를 지킨 좌파 정당의 성공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변심한 것은 유럽 유권자가 아니며, 패배한 것은 중도좌파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다. 유럽의 선거 결과는 자신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잊고 신자유주의의 아류로 전락한 ‘제3의 길’의 몰락을 말하고 있다. 유럽 중도우파가 위기상황에서 진보적 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것은, 중도좌파가 선거에선 졌으되 이념과 정책에선 아직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에서 핵심 가치와 지지기반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만 한다면, 중도좌파에도 희망은 남아 있다. 정당에는 유연성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근본적 정체성을 가려서는 안 된다. 분명한 노선을 견지하고, 유권자가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 이런 기본에 충실할 때, 좌파든 우파든 집권을 꿈꿀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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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 우로…독일 정치의 양극화 (레디앙, 2009년 09월 29일 (화) 14:05:41 장석준)
사민당, 역사상 최악 득표…자민, 녹색, 좌파당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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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9:25 2009/09/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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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생산성 > 인건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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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실업급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라는 기획기사에서 다섯번째로 비정규직 확대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 동안 잠잠하던 무기계약직, 직군분리제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이 기업 성과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전문성 부족, 기업에 대한 충성도 저조 등으로 인해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바다. 단지 단기적인 인건비 절감 때문에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에 대한 분석결과를 다시 한번 제시하여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데, 이 정도로 말해서 될까. 공공부문만 하더라도 이미 미약하나마 경영평가에서 정부이행실적평가의 한 항목으로 있던 비정규직 감소가 빠진 대신 청년인턴제가 들어갔고, 노무현 정부 때 그나마 공공부문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만들었던 비정규직 대책 또한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회책임경영, 사회책임투자를 말하지만 이건 어쩌면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닐까. 여기에 노동 지표가 들어가면 과연 얼마나 달라질런지... 이젠 직군분리제나 무기계약직마저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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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군분리제 통해 ‘정규직 전환’…생산성 > 인건비 (한겨레, 황예랑 기자, 2009-09-22 오후 07:42:05)
[실업급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⑤ 새로운 ‘관행’ 만든 은행들
국민은행 ‘무기계약직 전환제’ ‘동일 복리후생’
우리·부산은행도 고용불안 해소…“사기 진작”
“숙련 직원 계속 쓰는게 이익” 유통
 
국민은행은 2005년부터 시험을 거쳐 매년 평균 15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정규직이 아니라도 국민은행 계약직원 7700여명에게 고용불안은 없다. 노·사는 2007년 합의를 통해 3년 이상 일한 계약직 5000명을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올해부터는 2년 이상 근무자도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이 되고 있다. 해마다 계약서를 갱신하던 ‘불안’으로부터 2년여새 6700명이 벗어났다. 복리후생도 정규직과 동일하다. 비정규직 때 1년이던 육아휴직 기간은 정규직과 똑같이 2년으로 늘어났고, 학자금과 의료비 보조혜택 등도 정규직과 공평하다. 정규직 노조는 무기계약직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였다. 아직 계약직으로 남아있는 1000여명도 기간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뀐다.
 
회사도 이런 선택을 성공적으로 평가한다. 김필수 국민은행 인사팀장은 “인건비나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후생 제공으로 영업비용이 증가하긴 했지만, 고용안정으로 계약직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되고 회사 전체적으로도 상생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고용-해고를 반복하는 단순한 ‘수량적’ 고용 유연성 대신, 무기계약직의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기능적’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선택을 한 결과 “지속 가능한 회사 발전의 토대를 닦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이 거셀 때도,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만만했다.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 미리 대책을 마련해둔 덕분이다. 우리은행은 정규직과 승진·임금체계가 구별되는 별도 직군을 두는 직군분리제를, 부산은행은 기존 정규직 최하위 직급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에 비정규직을 편입하는 하위직군제를, 국민은행·신한은행 등은 무기계약직 전환제도를 도입했다.
 
» 시중은행 비정규직 전환 추이·은행 비정규직 연도별 전환 인원 
 
하지만 처음부터 은행권이 비정규직 문제의 ‘무풍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계에서 비정규직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집계를 보면, 2000~2006년 정규직이 6만2372명에서 6만323명으로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1만8306명에서 2만8132명으로 1만명가량 급증했다. 금융노조 집계로, 26개 일반은행에서 1997년 말 11.7%(1만5043명)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2007년 말 20.92%(3만1024명)까지 치솟았다. 국민은행만 해도 2006년 비정규직 규모가 전체인원의 39%나 됐다. 텔러, 콜센터 상담원 등에서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를 고용전략으로 삼았다. 은행 뿐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 사이에선 비핵심 업무에 계약직이나 사내하청·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경향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은행 쪽에선 이런 인사관리 전략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년 이상 계약직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비정규직법 제정이 실마리가 되긴 했지만, 법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고객들을 직접 대하는 ‘은행의 꽃’이라는 창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수천명을 내보내는 것은 은행으로서도 손해였다. 이승민 전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숙련된 계약직들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은행한테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등 산별노조가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은행들에겐 부담이었다.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비정규직 해결에 앞장서게 된 유통업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신세계는 2년 동안 비정규직 6000여명을 분리 직군 형태로 정규직 전환했고, 패밀리레스토랑 ‘빕스’ 등을 운영하는 씨제이푸드빌도 지난 7월 써빙일 등을 해온 계약직 28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다.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이라는 단기적인 가치보다는, 업무 숙련도와 고객 서비스 향상이란 장기적인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기업들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지는 않다. 국민은행 무기계약직의 임금 수준은 같은 연차 정규직의 60%가 채 안된다. 금융노조 케이비(KB)국민은행지부 류현숙 대외본부장은 “처우개선이 되긴 했지만 무기계약직을 아직 완전한 정규직이라고 볼 순 없다”며 “하위직군제 도입 등 정규직과 보수체계를 합치고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노조는 정규직 임금 5% 반납과 연차 사용 후 남는 인건비를 사내 복지연금으로 쌓아 내년까지 비정규직과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7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그래도 2년마다 비정규직을 갈아치우거나 외주화로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기업들에 견줘, 은행들이 ‘모범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기업들이 유행처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을 과도하게 늘려온 것이 관행처럼 자리잡혀 있다”며 “이제라도 조직의 효율성을 따져 비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중간 단계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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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확대 → 전문성 부족, 기업 매출·당기순이익서 손해” (한겨레, 황예랑 기자, 2009-09-22 오후 07:39:01)
노동연구원 2000곳 분석
 
  
“도급업체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길 잘했죠. 앞으로도 비정규직은 가능한 안 쓸 겁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인쇄회로기판을 생산하는 ㄷ중소업체 관리팀 김아무개 차장은 2년 전 도급업체 소속으로 제품 포장일을 하던 비정규직 19명을 정규직화하고나서 인사관리전략에 큰 교훈을 얻었다. 이직률이 높던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니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흔히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적극 활용해야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사용이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이다. 실제로 비정규직 활용이 기업 성과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까.
 
이시균 인하대 경제학 박사는 지난달 24일 창조한국당이 연 토론회에서 이런 믿음을 실증적으로 뒤집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기업 2000여곳을 상대로 조사하는 ‘사업체 패널 자료’ 2005년치를 분석해봤더니, 비정규직 고용이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이 고용한 비정규직은 전체 인원의 17.34%였다. 비정규직을 늘리면 직접적인 인건비(노동비용)가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기업의 노동생산성을 뜻하는 1인당 매출액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것은 되레 당기순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건비는 줄였으되, 당기순이익에선 손해였다는 뜻이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특성상 전문성을 갖기 어려워, 매출이나 순이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탓이다. 여기에 잦은 이직과 채용, 직업훈련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따지면 득보다 실이 크다. 이시균 박사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면 단기적인 고용유연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노동생산성이나 이윤 극대화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주제로 국내외 다른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왜 비정규직 사용을 계속 고집할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당장 눈앞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나, 다른 기업이 쓰니까 덩달아 쓰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났다”며 “비정규직 남용으로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 기업들은 이제라도 냉정하게 판단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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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비율 공개 의무화 하자” (한겨레, 황예랑 기자, 2009-09-22 오후 07:37:55)
시민단체 ‘차별금지’ 지표 고민 “소비자 운동으로 당근·채찍을”
 
‘기업들의 비정규직 고용 비율 공개를 의무화하자.’ 최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사회책임경영’(CSR)에서 비정규직 차별금지 등 노동지표를 개발하고 기업들에게 이를 강제하는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것처럼, 비정규직 고용 비율 등 노동지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노동자들이 요구하면 기업이 노동지표 등을 담은 ‘블랑소샬’을 매년 5월 근로감독관에게 제출하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이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강력한 법적 규제 못지않게 시장이나 사회적 압력으로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의 질’을 개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회책임경영이나 사회책임투자(SRI)를 위해 노력하도록 시민사회단체와 소비자들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주자는 것이다. ‘채찍’은 적극적인 소비자운동이나 범국민적인 캠페인 등이다. 유엔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나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포괄적 국제표준인 ‘ISO26000가이드라인’ 같은 국제 기준도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환경, 인권, 사회공헌활동 등에 견줘, 노동지표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식 수준은 낮은 편이다. 지난 15일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가 발표한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51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 임금 차별 철폐(4.04)나 비정규직 복지혜택(3.90) 등의 지표에 대한 기업들의 실행 수준은 여성 비율 확대(4.22)나 고용안정 프로그램 마련(4.25)보다 낮았다. 권 교수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책임경영 차원보다는 고용전략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최소한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37개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담당자 설문 결과를 봐도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문서로 돼있다’고 답한 기업은 35.1%에 불과했다.
 
고용과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앞장서야할 공기업들이 되레 소극적인 것도 문제다.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집계한 자료를 보면, 한국전력공사 등 20개 주요 공공기관들은 올 하반기 비정규직의 1.91%만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지원이 뒤따랐던 지난 2007년 38.77%에 이르렀던 전환율이, 정부의 무관심과 함께 뚝 떨어진 것이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기업들이 사회책임경영을 사회공헌활동이나 윤리경영으로만 의미를 축소한 채 노동 지표를 애써 외면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사회책임경영 노동 지표를 산별협약으로 요구하고 있다. 강 대변인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한 사회책임경영 지표에 어긋나는 파견·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법 대신 사회책임경영 차원에서 접근하면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앞으로 사회책임경영이나 ISO26000과 같은 국제적인 사회적 책임기준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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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02:19 2009/09/23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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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가 정세균의 <정치 에너지>를 읽고 묻는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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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의 <정치 에너지>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서평글을 잘 읽었다. 어쩌면 정세균 대표의 책 자체보다 이 서평을 읽어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최장집 교수의 여전한 내공을 느끼게 할 만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세균 대표의 책이 가진 약점을 지적하는 대목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특히 이는 정세균 대표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울타리 안에 있는 정치인들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것이기에 김대중, 노무현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이 글에 반발하는 듯 싶다.
 
물론 최장집 교수의 시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특히 현실성과 실현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듯한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실정치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진보파 정치인이라면) 옳을 뿐 아니라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세균 대표의 언급이 유의미하게 다가왔을 터이다. 실현가능한 진보, 실질적인 해결 방안, 좀 더 책임성 있고, 좀 더 현명한 태도, 노력과 보상과 같은 인간적 가치의 존중, 상식을 가진 이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논리와 언어...
 
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그와 비슷한 틀을 가지고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기본소득제가 그러하고, 민주 생태 사회주의가 그러하다. 또한 실현 가능성도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전히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좌파가 지금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보다 그리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이 '맡겨만 달라'라고 할 만큼 역량이 충분하지 않음도 인정한다. 
 
헤겔의 말마따나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저들에게 현실적인 것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성적인 것은 없다. 아니 이성적이지 않은 한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횡설수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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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당신과 민주당을 '왜' 지지해야 하는가?" (프레시안,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2009-09-21 오전 7:43:27)
[기고] 정세균의 <정치 에너지>를 읽고 묻는다
 
민주주의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만큼 불신 받고 인기 없는 직종은 없을 것이다. 간혹 신문에서 가장 신뢰받는 직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곤 하는데, 법관, 기업인, 대학교수처럼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직종일수록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치인은 곧 시민이 선출한 민주적 대표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선출해준 주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시민을 위한 대리인이다. 현실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토록 불신 받는다면, 왜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던가. 그러한 자가당착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정치와 관련된 언어와 담론의 피폐화를 주도했던 언론 공론장의 역할이 그 중심에 있다. 언론인 나름대로의 가치관, 언론(사) 자체의 사익과 목적 의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편견 등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론은 그들이 공론을 말하기 때문에 공론의 대변자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사익적 목표가 공론의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물론 모든 책임을 언론에만 떠넘길 수는 없다. 정치인들은 시민의 대표로서 자신의 철학, 비전, 원칙을 말하기보다 그동안 사실상 정치를 지배해온 언론이 만들어놓은 담론의 틀, 언론이 제시한 정치적 어젠다, 언론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평가 기준에 부응하기에 급급한 몰주체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율적 판단과 그에 따른 말과 행위의 주체로서 정치인을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언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한다면, 정치인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20여 년의 민주주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이 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와 절차들, 시민이 참여하는 대표와 정부의 선출 과정, 국가 기구들의 구조와 체계 등,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시민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익히고, 정책 의제와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실제로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시민 스스로가 정부, 국회, 정당, 정치인을 포함하는 그들이 선출한 대표를 대표답게 만들 수 있는 지식 능력, 즉 민주주의의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좋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주의 이론의 주요 관심사의 하나 역시, 민주주의의 실천이 시민 대중의 지식을 확대하는 효과를 갖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종의 시민 지식을 어떻게 창출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는 정치 참여의 방법은 어떤 것이고, 그에 합당한 제도화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지식창출 민주주의(epistemic democracy)'라고 개념화한다. 이러한 이론적 관심이 갖는 함의는, 민주주의의 운용과 정책 결정 과정이 선출된 대표나 엘리트 전문가 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인 동시에 시민대중이 지식,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을 주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천과 그 효과가 시민대중의 지식 습득과 창출을 가져온다면, 시민이 대표를 선출하고 그에 책임을 지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대표성-책임성'의 관계 또한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후마니타스는 '정치가에게 묻는다'라는 기획 시리즈의 첫 책으로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책 <정치 에너지>를 출간했다. 정치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 비전, 철학,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도록 하는 것은 선출된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것이다. 이는 대표와 시민 사이의 대화의 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대화 과정에서 인식이 공유되는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 나아가 시민대중의 지식 창출 및 확대 과정과 대표-책임의 연계가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탐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이 책의 서평 요청을 기꺼이 수용했고, 서평도 서평이지만 그 이전에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떻게 쓸까를 생각할 즈음, 언론에서 이 책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적잖이 실망했다. 사실상 그것은 정치인의 말을 야유나 상투적 논란의 소재로만 다룰 뿐, 이성적으로 다뤄본 적이 없는 언론의 습성을 재확인해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된 기사대로라면 이 책은 읽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정치적 공해에 불과하다. 나아가 그것은 정치 혹은 정치가의 말을 소재로 지식창출 민주주의의 심화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적어도 공론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나는 출판사의 시도는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출판사 스스로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기획을 이어가는 긴 노력이 필요함을 먼저 충고하고 싶다.
 
이 책이 갖는 인상적인 대목들
출판사는 정치가에게 당신은 왜 정치를 하려 했고, 한다면 어떤 정치를 하려 하는가, 당신이 이루고자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그것을 위한 철학과 비전은 무엇인가, 당신은 정치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 이 목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했다.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은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시민과 자기 당의 지지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려고 노력하게 된다. 출판사에서 그 첫 번째 작품을 제1야당 대표로 선정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야당이 있는 체제"이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존재만이 아니라 선거 승리를 통해 정부여당을 대체할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여야 한다. 현 정부가 어떻게 하든, 야당이 부실하고 국정을 운영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정부여당의 독주 또한 견제될 수 없다. 야당이 우연한 기회로 집권한다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한국 사회와 정치가 발전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점에서 제1야당 대표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나 하는 문제는 한국의 정치 변화와 발전을 가늠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정치인이 쓴 책이란 홍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독자들이 그것을 찾아 읽는 것은 드문 일이다. 명색이 정치학을 공부하는 나도, 이런 종류의 책을 받아보고 뒤적여 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논문이나 글을 쓰는데 참고할 만한 자료적 가치도 별로 없다. 이유는, 그 내용에 저자의 진실성이 담겨져 있지 않고 고민하고 성찰한 흔적이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의 과거 경험, 생애를 말하든, 자신의 생각을 말하든,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서 '무언가 하기로 되어있는 상투적인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내용의 대부분이다. 정세균의 책, <정치 에너지>를 읽다가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것은 자세를 바로잡고, 끝까지 정독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진지한 내용이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했나?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하는 것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어떤 글이 진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서술의 전개가 저자의 생각의 논리적 구조뿐만 아니라 저자 인품과 인격성이 감성적 교감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을 때 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남달랐고,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한국 정치와 정치인에 관한 하나의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책은, 유년시절의 성장 과정으로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개인사적 내용을 담은 1, 2장과 자신의 정치관을 담은 3장부터 9장까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바마를 대통령이 되게 한 두 권의 유명한 책이 있다. 하나는 정치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아버지로부터의 꿈>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정치적 비전과 프로그램을 담은 <담대한 희망>이다. 이에 비유한다면, 정세균의 이 책은 한 권에 두 주제를 모두 담고 있다. 앞의 주제는 두 개의 장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가난했던 농촌에서의 성장과 정치인이 되기까지 과정을 통해 그의 따뜻한 성품과 지적 자세의 형성 배경이 짧고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면 평범하다는 평을 벗어나긴 어려운 책에 그쳤을 것이다.
 
그의 정치적 비전과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한 관점을 다룬 3장부터 9장까지는 경제 발전과 노동문제, 현대사에 대한 이해, 민주주의와 그 제도적 틀로서의 헌법에 대한 관점, 운동과 정당의 문제, 박정희·김대중·노무현·이명박을 포함하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민주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경제와 노동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 영역을 다룬 부분에 비해, 추상성의 수준이 더 높은 현대사에 대한 이해,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주제, 그리고 운동과 정당의 문제를 다룬 정치적인 실천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룬 부분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정치관과 인격성이 훨씬 분명하게 드러나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내용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마지막 9장 '민주당의 길'은 특히 뛰어나다. 이 부분은 매우 감동적이어서, 민주주의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했던 외국의 유명한 명연설들에서 받게 되는 감동을 떠올릴 정도이다. 이 책의 결론, '새로운 연합을 향하여'에서 저자의 말은 청중들을 앞에 두고 하는 연설처럼 들린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일성으로 밝혔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생각났을 정도로,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인들이 했던 말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설로 들린다.
 
글의 결론에 가까워가면서 정세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 (…) 정부의 전횡을 견제하는 (…) 가장 강력한 방법은 남은 선거에서 권력을 하나씩 찾아오는 것이다 (…) 그들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250~251)"
 
이 문구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까지 현 정부 비판을 위해 언표화되었던 무척이나 전투적이고 상투적이며 공격적인 언어보다 더 잘 민주주의의 본질적 측면을 포착하고 이를 집약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진보적 비판자들이나 야당은, 현 정부가 한국 사회의 최상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노동자와 서민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이고 비정한 보수정부라고 공격한다. 나아가 시민운동, 노동운동을 탄압할 뿐 아니라, 언론·집회·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구태를 드러내는 반민주적인 정부라고 비판한다. 민주주의의 실질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의 역진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 출신 미국 정치학자 쉐보르스키의 간결한 정의를 빌리면, 민주주의는 "여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는 체제"이다. 풀어 말하면,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의 훼손이 여론과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면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실질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심판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의 최종적 본질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시민을 두려워하고 야당을 두려워함으로써 견제되고, 권력의 오만과 권위주의의 회귀에 대한 충동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게 하는 것은, 대규모의 전투적인 시위나 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야당이 집권할 전망을 증대시키는 정치 행위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힘과 권력을 갖는 집권여당이 그렇지 못한 야당을 두려워하는 원천이다. 선출된 대표에게 권력과 통치를 위임했지만, 시민이 대표에게 책임성을 부과하는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인용한 문구가 강력한 이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본질을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자 정세균이 우리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합리적 판단의 범위 안에서 사고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의 관점은 자주 한국 사회가 허용하는 이념적 경계에 근접한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노동문제에 대한 관점은, 한국 사회의 보수 편향적 지형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계선에 근접한다. 운동권의 급진적 지식인이 아닌,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 가운데서 이보다 더 진보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평소 온건한 그의 이미지와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정부여당과 이명박에 대한 평가 역시 무척 균형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헌법에 대한 이해, 헌법 개정과 제도 개혁에 대한 관점 또한 날카롭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주요 인물들, 즉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논평은 흥미롭고 진솔하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저자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판단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산업화에 대한 박정희의 기여는 평가될 수 있다하더라도, 결코 과대평가될 수는 없다. 산업화는 기업가, 노동자, 농민과 같은 모든 생산자 집단의 땀과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도 평가될 수도 없다. 확실히 박정희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평가에서 저자의 균형감각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에 비해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파편적이고 의외로 빈약하다.
 
이 책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평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면모를 이렇게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갖는 여러 좋은 점들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것보다 사적인 관계에 관한 부분을 통해 표현되는 데 그친 점은 아쉽다. 어쨌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무현에 대한 연민의 정과 아울러 그를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부분은 동시에 정세균 자신의 인품과 정치적 자세,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뛰어난 지도자는 아닐지 몰라도, 또 그가 여러 한계와 오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과 서민적 성정을 가진 비운의 정치가로 기억하게 한다.
 
정세균의 책에서 노무현에 대해 말하면서 유시민을 도입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저자는 노무현의 정치관과 행적에 대해 비판적 태도와 입지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그와 썩 잘 어울리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노무현을 직접 비판하기보다, 유시민의 정치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말한다. 반대로 그는 노무현을 변호하기 위해 유시민을 등장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부정적인 것은 유시민에게 떠넘기고, 노무현의 정치적 책임과 실패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 나타나는 노무현 그림자로서의 유시민의 이중적 위상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내가 실망하는 문제들 
물론 이 책은 장점만큼이나 약점도 많다. 어쩌면 지금부터 말하려는 비판적 지적이 정치가와의 민주적 대화와 관련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출판사가 제기한 가장 중심적인 물음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나"에 있다. 이 문제는 "정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나"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궁극적 목적 윤리"와 "책임 윤리"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었는지가 모호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질문을 제기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가 "나는 왜 정치를 하나"라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는 정치권에서 일정한 입지를 갖게 된 정치 지도자들과 미래의 정치 지망생들에게 이 질문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효과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가가 목적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역사와 미래, 정치와 사회에 대해 어떤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비전을 갖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책의 내용으로만 볼 때, 이 문제에 대해 저자가 어떤 전체적 관점을 갖는지가 애매하다. 목적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이를 성취하고자하는 방법론 또한 분명치 않다. 자신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어떤 안정적인 이론 틀, 통일적인 비전을 갖지 않고 문제를 대면할 때, 그의 태도, 그의 관점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흔들리고 변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예상 밖으로 지배적 인식의 경계를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정작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의 인식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별로 말하는 것이 없다.
 
노동문제나 소외 세력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강남 논현동 고시원 참사, 용산 참사와 같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대해 동정심과 슬픔을 말한다. 그는 노동문제, 도시 재개발 사업에 대해 말하고, 코리언드림을 안고 입국한 이주 노동자를 포함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농민에 대해 애정을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 농촌 정책, 외국인 정책을 포괄하는 체계적인 정책 비전을 말하지 않는다. 미래 한국 사회가 지향할 수 있는 상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의 생각, 또는 비전을 포착할 수 없다. 그는 개별적 사건과 사안에 대응해 말할 뿐이다.
 
책 전체를 통하여 저자는 자신이 확고한 민주주의자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민주주의는 무척 소박하고 안이하다. 사회경제적인 개별적 사안에 대해 개인적 수준에서 포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체제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정치와 연결되지 않는 한 그것은 개인적 미덕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하게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기초로 시민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사회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체제이자 이념이기 때문이다. 자애롭고 따뜻한 지도자 상은 시민을 소극적 주체 내지 신민으로 보는 관점과 더 잘 어울린다.
 
나는 그가 경제 중심 부서의 하나인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 사회 정책, 산업 정책, 고용 정책, 노동문제 등 주요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아무런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했다. 그것은 이 책의 중대한 결함이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진보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온정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의 온정주의가 자혜심이 없는 비정함, 나아가서는 잔인함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온정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대립하고, 보수주의와 접맥되는 태도라는 사실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정주의는 사회의 권위와 권력관계를 암묵적으로 수직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강자가 약자에 대한 배려나 온정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이해하고 또 이를 통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경향을 부추긴다. 민주주의의 제도와 정치 과정을 통해 접근되고 해결되어야할 문제를 사사화(私事化)하여 인간적·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온정주의를 통해서는 저자가 깊은 인간적 애정과 동정심을 가지고 말하는 문제들에 대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보수주의의 비인간성, 무도덕성,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정세균은 확고한 민주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온정주의와 닿아있고, 그것은 중도 좌의 영역이 마치 온정주의의 영역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체계성 내지는 통일성의 중요성과 닿아있는 것으로, 좌-중도-우의 이념적 분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정치적 비전과 정향은, 사회 전체의 구조, 시장 구조, 권력 배분, 경제적 분배, 문화적 가치의 헤게모니 등을 포함하는 사회 전체를 말할 때 비로소 그 내용과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철학적·정치적 비전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어렵고, 그의 정치적 좌표를 설정하기 어렵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말할 때, 이 책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해는, 공간적(spatial)·시간적(temporal) 측면에서 범위가 좁고,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또 다른 약점은, 모든 좋은 요소들이 작용하여 야당이 집권했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앞서 체계성과 통일성에 대해 말했듯이, 정치 지도자가 주요 이슈들에 대해 개별적 사안으로 접근하고 대안/대책을 제시하는 수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즉, 왜 정세균과 그의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하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최근 일본의 정권교체를 통해 부상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의 경우를 한 사례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총선 3일 전에 외국 신문에 실린 그의 기고문은 '일본의 새로운 경로'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탈냉전 시기에 있어 일본은, 일반적으로 세계화라고 불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운동과 시장근본주의의 바람에 지속적으로 허우적거리는 상황에 내몰렸다. 자본주의를 근본주의적으로 추구하면서 인간은 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고, 수단으로 다루어졌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09년 8월 27일)
 
이 기고문에서 하토야마는 단순히 새로운 정부의 총리로서 취할 정책 방향을 천명하고 있다기보다, 일본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의 전반적 조건을 탈냉전 시기 미국의 절대적 우위의 쇠퇴에 따른 다원적 세계체제의 등장이라는 전체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서 일본의 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고 그 역사적·시대적 비전을 선언하는 지도자로서 나타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적·공동체적 "유대"(fraternity)라는 포괄적 개념을 통해 대안을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중심의 근본주의적 자유시장 경제는, 고이즈미 전 총리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동된 바 있었지만, 인간을 단지 생산의 비용으로 인식하게 된 결과, 인간적 유대와 직장 및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해체함으로써 일본 사회에 위기를 가져왔다. 그것은 실업, 고용불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전통적인 공동체의 해체, 부의 재분배 악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그가 이끌 신정부는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적,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하고, 복지 체제와 의료보험의 재건, 환경보호, 교육과 육아에 대한 지원 확대, 분배 구조 개선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정치 및 동아시아 지역의 대외 관계에 있어, 일본은 미국 경제력의 쇠퇴, 그와 병행하는 다원적 세계 질서의 부상, 중국의 경제 대국화라는 변화에 대응하면서, 미일 관계에 있어 일본의 자주권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경제 번영을 가져올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민족주의의 흥기를 경계하고,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동아시아공동체와 약화되는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동아시아 공동통화 체제 건설을 지향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을 것도 다짐하고 있다.
 
일본 신정부의 매우 창의적이면서 논쟁적인 이러한 정책 천명은 자민당 지배 반세기 동안의 정책으로부터 뚜렷한 방향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 파장은 세계 정치로 확대되고 있다. 예상대로 그것은 미국 정가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EU 의장인 마뉴엘 바로소는, 일본의 새로운 정책 천명을 유럽의 복지자본주의의 모델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며 적극적으로 환영했다(<파이낸셜타임스>, 2009년 9월 16일).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정세균의 노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노선의 연장선상에서 단지 이를 보완하겠다는 것인가, 또는 유럽형 복지자본주의 모델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엇인가.
 
하토야마의 노선은 창의적 정치 리더십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의성이란 커다란 위험과 대담함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일본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당보다 더 다양하고 혼합적이고 폭넓다. 자민당의 이탈자들을 중심 세력으로 하고 중도보수적인 신당 사키가케를 포괄하는 것인 만큼 보수적인가하면, 구 사회민주당 역시 포괄하기 때문에 또한 진보적이다. 이 넓은 스펙트럼에서 하토야마는 일본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노선을 신정부가 나갈 방향으로 정의했다. 이것은 리더십의 비전과 대담함이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실제로 그 정책 노선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차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과 목적의식이 없다면 정책의 성패 여부라는 문제는 제기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자신의 정당이 대안 정부가 되고, 선거에 승리하여 실제로 정부가 되어야하는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속한 정치 세력, 정당에 대한 객관적 자기 분석이 필요하다. 우리가 앞선 민주정부들에 대해 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되돌아보고, 다시 기회가 왔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과거에 대한 성찰로부터 배우는 기회는 가질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왜 보수파만 이롭게 하냐"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오로지 내 편과 네 편이 있는 진영 간 대결 구도에서는 권력을 취하고 공직을 잡겠다는 제어하기 어려운 욕구만이 있을 뿐, 합리적 대안의 창출과 이성적 공론, 공공선의 추구 같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내용의 실질적 변화 없이, 권력을 갖는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이 엮어내는 권력의 순환 논리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힘 있는 대안정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 이른바 "민주정부 10년"과 그 시기 당과 지도자, 정치인들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이 금기시되거나 억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세균의 책은 이 점에 대해 별로 말이 없다. 자기성찰 없는, 정치적 경쟁자나 적대자에 대한 평가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저자가 이명박 정부를 향하여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를 강조하고 민주주의 후퇴의 위기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커지기 어려운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스스로의 로드맵을 만드는 과정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IMF 위기 이후 시장근본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의 방향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주요 긍정적이고 또 부정적인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평가 없이 새로운 경제 정책의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임시 이들 대통령들이 아무리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후 정치 전통과 세력의 계승은 무척 초라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정치인들이 하나의 자율적 행위 주체와 판단의 준거로서가 아니라, 특정의 지도자와 가까운 거리로 측정된 무슨무슨 "계"니 어느 파의 "가신" 내지 "직계"니 아니니 "친노"니 "반노"니 "친DJ", "반DJ"니 같은 비하적 말만 있을 뿐이다. 정당 내부에서 민주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한 이러한 권력은 지도자의 임기가 끝남과 더불어 지속되기 어렵다. 선거 때만 되면 직업 정치가가 아닌 정치 밖으로부터 참신한 인물을 "수혈"하자는 주장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한국 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민주당의 지도자가 넘어서야할 문제는, 앞선 두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의 정치적 비전과 "희망의 담대함"을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며
약점과 한계를 비판했다고 해서 이 책의 의미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그리고 문화적 토양과 지적 환경에서 이 정도의 책이 나왔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선진 민주주의국가들에 있어 주요 정치인들의 자전이나 정치적 비전을 담은 책들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읽은 바로는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환경에서 한 인간의 자기성장과 정치 경험을 결합해 성찰하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진실되게 말하고자 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내용은 풍부하고, 결코 그 수준은 낮지 않다. 이 책은 이런 성격의 영역, 장르에서 앞으로 나올 모든 책들에 대해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또한 당장 후마니타스의 다음 정치가 책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음 저자들이 좀 더 진보적인 입지에서 책을 쓴다고 할 때 그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과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중도 좌 이상의 정치적 공간을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 과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중도 좌, 또는 진보의 미래는 다만 진보파의 급진적 활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의 관념 속에서나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 부분(101~104쪽)에서 저자는 다분히 다음에 책을 쓸 진보파 정치인을 염두에 둔 듯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보의 가치가 소중한 만큼 일부 진보 진영에서 보여 온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들은 주장이 선명하고 확실한 대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진보를 일궈 갈 방도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가져올 작은 변화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확 바뀌지 않으면 그게 그거라는 식일 때가 많다. 이의를 제기하는 데 능숙한 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데에는 소홀하다.
 
(…) 민주화의 성과를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도 있다. (…) 입장의 선명성에 의존하다 보니 일에 대한 헌신을 중시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과 인내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말은 거친데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 정치적 역학 관계 등의 현실적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면 보수로 몰아붙이고 개혁 의지를 의심한다. 그런 토론에서 언제나 그들은 승자다. (…) 스스로 선구자인 양 하지만, 대개의 경우 현실이 자신들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섭섭해 한다. 복잡한 문제를 '신자유주의' '보수 기득 세력' '냉전 수구 세력' '분단 체제' '성장 지상주의' 등 몇 개의 추상적 개념으로 손쉽게 재단한다.
 
(…)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것은 싫어하면서, 남의 말은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말은 많지만 책임지고 일해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 우리 현실은 보수 헤게모니가 워낙 강하다. 진보에게 주어진 작고 드문 변화의 기회를 살리려면 좀 더 책임성 있고,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 정직과 신뢰, 노력과 보상과 같은 인간적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논리와 언어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 옳을 뿐 아니라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정세균의 문제제기에 대해 이제 진보파 정치가가 답해야 할 차례이다. 그 응답이 흥미롭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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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1 23:41 2009/09/2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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