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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빈집 강제철거 저지에 함께 하지 못한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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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평택 대추리에서 진행된 빈집 강제철거 상황을 뒤늦게 살펴보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참세상의 아래 기사에 시간별 진행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프레시안에서 발췌한 글과 평택에 선 인권활동가들의 편지글을 올린다. (-->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다가 시스템 점검시간이라고 하여 날라가버렸다. 이게 뭐냐)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이나 글을 보면 알겠지만, 대추리 투쟁은 단지 반미투쟁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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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16:40] 철거 종료, 주민 및 지킴이들 저항으로 14채 지켜 (참세상, 이꽃맘 기자,)

전국에서 진행된 규탄집회, 청와대로 향한 비난 여론

하루종일 긴장감이 돌던 대추리에 여유가 찾아왔다. 평화전망대는 무너졌지만, 대추리 주민 및 평택지킴이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철거규모는 국방부가 계획한 90채에 미치지 못했다. 총 14 가옥이 지켜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올라가 있던 대추리 1반 가옥은 끝내 철거가 진행되지 않았다. 3시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점거하고 있던 가옥 앞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다. 미사를 진행한 신부는 미사가 끝난 후 대추리 주민은 물론 경찰들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미사가 끝난 후 경찰들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보호 아래 인권활동가들이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이들의 연행을 앞두고 병력이 증강되기도 했으나 별다른 연행시도는 없었다.
 

미사를 마친 후 대추리 주민들은 노인회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긴 하루 스쳐지나간 사건들을 정리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경찰과 용역들이 떠난 대추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주민들의 거주지 틈틈이 철거된 채 황량해진 집터와 그와 함께 구멍난 주민들의 가슴이다.

  

한편 용역들의 조기 철수는 빈집이 아닌 가옥 2채를 철거하면서 정부의 부담이 커진 것과 전국에서 진행된 규탄집회, 청와대로 향한 비난 여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9월, 대추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위협받고 있지만 평화는 그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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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부숴도 우리 마음은 못 부순다" (프레시안, 김하영 기자, 2006-09-13 오후 7:04:14)

대추리 '빈집 강제철거'…주민들 '담담'

 

이날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철거작업은 경찰이 철거대상 집을 둘러싸고 용역직원들이 가재도구를 끌어내면 굴착기가 지붕과 담벼락을 몇 번 툭툭 쳐서 무너뜨렸다. 한 채를 철거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거침없이 진행되던 철거작업이 멈춘 것은 지붕 위에서 '결사항전'을 벌이던 '평택 지킴이'들과 마을 주민들 때문이었다.  

가옥 철거를 막기 위해 지붕에 올라 농성 중인 '평택 지킴이'들.▲ ⓒ프레시안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하며 1~2년 전부터 아예 대추리에 살림을 차리고 '농부'가 된 평택 지킴이들은 '강제철거, 인권침해', '철거하려면 죽이고서 해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지붕과 옥상에 올라가 몸을 밧줄에 묶은 채 농성을 벌였다. 이들이 올라간 집은 총 15채.
  
  미군기지 철조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오면 대추분교 정문 앞에 있는 '빈집'의 지붕에 오른 두 명의 인권활동가는 "강제철거는 주민들에 대한 협박이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을 재검토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이에 주변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70대 할머니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야, 이놈들아. 니들이 뭘 해준게 있다고 여기서 지랄들이냐"며 주변의 경찰과 용역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일제 때부터 쫓겨나오고 미군 들어와 쫓겨나올 때도 나라는 밥 숟가락 하나 해준 거 없고, 이 땅 일구는 것도 다 우리 손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어 철조망에 갇혀 지금은 방치돼 있는 논을 가리키며 "이 옥토를 두고 나더러 어디로 가라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날 끌어내려면 죽여서 끌어내라"며 절규하고 있는 마을 주민.▲ ⓒ프레시안

  이 할머니는 "우리 착하고 성실한 이장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 잡아 가뒀냐"면서 "맨난 돈 쳐먹으면서 호가호위하는 놈들은 안 잡아가고 우리 이장 잡아가둔 것들을 내가 어떻게 믿느냐"고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날 끌어내려면 죽여서 끌어내라"고 절규했고, 할머니의 안전을 걱정하던 기자들의 권유에 의해 지붕을 내려왔다.
  
  이날 주민들은 "○○이네 집은 어떻게 됐대? ○○이네 집에 가봐야겠네"라며 삼삼오오 마을을 둘러보는 등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2시 20분경 용역 직원들이 지붕이 점거된 15채의 가옥에 대한 철거를 중단한 채 철수하자 어떤 주민은 "우리가 이긴 거네"라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한 주민은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은 지난 2년 동안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봐서 이제 더 볼 험한 꼴도 없다"며 "여기서 손 들고 나갈 거였으면 벌써 나갔지"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철거 용역 400여 명과 굴착기 10대 등 중장비를 투입해 대추리·도두리 일대의 빈집 철거 작업을 실시했고, 경찰은 용역의 철거작업을 돕기 위해 1만7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경비작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의 집 한 채와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평택 지킴이'의 집 한 채에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경찰이 먼저 집을 살펴본 뒤 "여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용역 직원들에게 알렸으나, 용역들이 이를 무시하고 가재도구를 들어낸 뒤 가옥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또한 집주인이 뒤늦게 달려와 말리며 항의하자 용역 직원들이 "내가 알게 뭐냐. 국방부에 가서 물어보세요"라고 이죽거리며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철거 과정에서 전깃줄 등이 끊어지는 등 마을 기반시설이 파괴돼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주민들은 "일부러 전기를 끊으려는 것이냐. 철거공사의 안전수칙이나 알고 공사하는 것이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완전 파괴된 가옥. "이 땅을 끝까지 지킨다."▲ ⓒ프레시안

  

문인들이 대추리의 담벼락마다 시를 적었지만, 이날 철거로 파괴됐다.▲ ⓒ프레시안

  

철거한 가옥 부지에 세워진 푯말. 뒷편에 지붕 농성을 벌이고 있는 '평택 지킴이'들이 보인다.▲ ⓒ프레시안

  

한 마을 주민이 지붕 농성을 볼이고 있는 마을 주민과 평택 지킴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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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평화전망대에 제 몸을 묶습니다" (참세상, 서울평택지킴이, )

변연식, 정아, 배여진, 김명수, 박진의 메시지

  

대추리 인권지킴이집 옥상에 지난 여름나기 캠프 때,
그동안 서울대책회의를 후원해 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300만 원을 들여 평화전망대를 지었습니다.
오늘 낮 기자회견 때부터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폭풍전야 지금까지,
평화전망대를 지키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이 심경을 담은 짧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몹시 두렵다...
그러나 햇볕 좋은 마당에 빨래를 널고 참깨를 너는
어머니, 아버님의 일상을 끝까지 지켜드리고 싶다.
        

정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여기는 대추리 황새울이 한 눈에 보이는 평화전망대입니다.
노을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곳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전쟁 같은 일을 치루고 있습니다.
또다시 대규모 병력이 황새울 들판을 새까맣게 메우고 아무런 무기도,
든든한 동지들도 없는 우리들은 전쟁포로처럼 끌려갈 것입니다.
이렇게 수십 번이라도 잡혀가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런 저항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우리 인권활동가들은 그 길을 마다않고 가야할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은 미사일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전쟁음모가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저는 지금 평화전망대에 제 몸을 묶습니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지난 3월, 포크레인 밑에서 울부짖던 한 할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떻게 평화전망대에 올라서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 할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답할 것입니다.
철거가 들어오기까지 불과 몇 시간 전입니다. 많이 긴장이 되고 떨립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다치지는 않을 런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2주 사이에 훌쩍 커버린 배추의 모종들을 보면서,
그리고 논에 약을 치고, 밭에 물을 주고 있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보면서,
그 평화로운 일상들을 꼭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모기소리처럼 왱왱 거리는 저 헬리콥터가
더 이상 이 위를 날지 않는 그 날을 위해서 잘 버티겠습니다^-^
       

김명수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나는 오늘 대추리의 집 지붕에 올라갈 것이다.
거기서 경찰을 앞세우고 집을 부수는 중장비에 맞설 것이다.
나는 평화와 인권을 옹호한다.
집은 평화롭고 인권적인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런 나의 신념 하에서 집을 부수는 공권력에 맞설 수밖에 없다.
공권력은 아마 나를 법의 이름으로 연행할 것이다.
인권과 정의에 어긋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을 지킬 수는 없다.
그 법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으로 인권과 평화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기를...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요즘처럼 평화라는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적도 없어요.
대추리·도두리 할머니들 눈물을 보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가져올 재앙을 알면서 일상이 평화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저는 어느 가족이 따뜻한 저녁을 해 먹으며 도란 거렸을 집의 지붕위로 올라갑니다.
그 곳에서 마을을 부수러 오는 국가폭력을 만나게 되겠죠.
그들에게 이곳을 지키는 것이 평화임을 알리겠습니다.
미안하고, 답답합니다.
곁으로 가고 싶어도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미안해하고, 답답해하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닙니다.
대추리, 도두리에 들어가 있는 모든 지킴이 친구들에게는
나중에 경찰서 유치장에 면회가서 미안했다고, 멋있다고 말하기로 합시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들의 위치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방부 게시판에 항의 글을 남기고,
다음과 싸이월드 등 포털 싸이트의 토론방을 찾아 추천과 댓글을 달고
직접 글을 올려 토론에 동참합시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들에 가서 글을 남깁시다.
거기에 있는 기사들을 추천하고 댓글을 답시다.
오후 2시부터 밤까지 계속 될, 국방부 앞 규탄집회에 함께 합시다.
2만 명의 경찰과 400여명의 용역깡패들, 그리고 수백 톤의 중장비들....
그 앞에 우리들은 너무나도 힘없는 존재들일지 모릅니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들을 닭장차까지 들고 가는데 십분도 안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린 보여줄 것입니다.
노무현과 이 나라 정부, 부시와 미국에 보여 줄 것입니다.
민중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들이 대추리, 도두리를 빼앗아가면,
우리는 한반도 남쪽 절반 땅을 모두 대추리 ? 도두리로 만들 것입니다.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우린 똑똑히 보여 줄 것입니다.
종일 기사들을 읽으며, 메일을 쓰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받습니다.
순간순간 목이 탁 막혀버리고, 뜨겁다 못해 따가운 눈물이 흐르더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처철하게 살아야하나 생각이 듭니다.
눈감고, 귀 막고 대추리, 도두리를 잊고 살아가기에는,
우리들 모두는 이미 너무나 깊은 대추리, 도두리 병 환자들입니다.
이 불치병을 우리는 행복하게 앓고 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에서는 차가운 바람에 맞서며, 밤을 밝히며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정삼거리 주변에는 대추리로 들어가지 못한 지킴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그들의 숫자는 3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전국행진을 떠난 행진단은 열린우리당 광주시당 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 한시간만이라도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늘 참 많은 글을 쓰고, 메일을 보냅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어제 오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제 몇 시간 후, 올 한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름....
대추리, 도두리가 무참히 짓밟힐 터인데,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쓰고, 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역할분담”이라는 핑계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밤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답답하고, 무엇인가 해야겠는데 몸은 뺄 수가 없는 상황...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분명 전해 졌을 것입니다.
용역깡패들은 폭력을 휘두르겠지만, 우린 평화란 방패로 막을 겁니다.
경찰들은 인권을 짓밟겠지만, 우린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집을 부수겠지만, 우린 집을 지을 겁니다.
우린 내일 패배하겠지만, 우린 결국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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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4 02:24 2006/09/1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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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의 배신과 민주노총의 오류에 대한 <전진>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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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우선 입장을 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사실 한국노총이 무슨 배신인가. 한국노총이 어떤 넘들인지 몰랐단 말인가. 

이용득이 말했다시피 밀실야합이 아닌 자신들의 본질을 드러낸 것 뿐이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투쟁전선을 복원하자

[한국노총의 배신과 민주노총의 오류에 대한 <전진>의 입장] - 전진 

 

1. 또 한국노총이 배신했다.

  
한국노총은 복수노조를 3년간 유예하고, 해고를 쉽게 만들며, 대체근로를 확대하는 것 따위에 합의했다. 더러운 야합이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배신이 어디 오늘만의 일이던가. 한국노총은 해방 후 이승만의 명령으로 자주적 노동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탄생했다. 70년대에는 박정희의 명령으로 민주노조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고, 87년에는 전두환의 4.13호헌조치를 가장 먼저 찬성한 하수인이었다. 한국노총은 탄생과 이름과 역사, 그 자체가 모두 배신을 상징한다.

2. 민주노총의 두 가지 (전략)전술적 오류


이 시점에서 우리는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민주노총의 두 가지 오류를 비판해야 한다. 그 이유는 민주노총이 앞으로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고, 지금부터라도 투쟁전열을 제대로 정비하기 위함이다.


1) 실패한 한국노총과의 공조


먼저 한국노총과의 공조에 대한 평가다. 로드맵에 대한 한국노총의 배신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것은 작년 말, 한국노총이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 따위의 비정규개악안에 손을 들어 줄 때부터 확인되고 있었다. 한국노총의 목표는 복수노조 유예를 포함한 로드맵에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그런 한국노총과의 공조복원을 주장했고, 그것은 결론적으로 한국노총이 커다란 저항없이 야합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이수호 전위원장은 한국노총과의 통합까지 주장하면서 내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토록 공조하고자 했던 한국노총이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민주노총 타도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고 있음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2) 실패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다음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전술에 대한 평가다. 조준호 집행부는 투쟁동력의 취약함을 이유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에 반대하는 중앙집행위원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했다. 교섭을 해야 투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나름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반대였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들어간 것이 투쟁력을 높이는데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강한 의지로 들어갔으면, 마지막 야합 순간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서 저지하려 노력하거나, 그것이 어려웠다면 밖에서라도 힘 있는 항의투쟁을 조직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또한 결론적으로는 한국노총이 보다 편안하게 배신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효과밖에 없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3.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투쟁전선을 복원하자.


한번의 실수는 보약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벌써 두 번, 세 번에 걸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오류는 보약의 수준을 넘어, 민주노총에게 독약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의 관계나 노사정위원회(노사정대표자회의 포함) 참여문제로 격렬하고 피곤한 논란을 벌여 왔다. 이제 그만하자.

1) 한국노총은 해체의 대상이다.  

  
우리는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친 한국노총의 배신을 통해 오래된 진실 하나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현재의 한국노총은 통합이나 공조의 대상이 아니라, 그 내부의 건강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을 민주노총으로 조직하고, 그 힘에 의해 아래로부터 와해시키고 해체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노총과의 공조니 통합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2) 지금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로 얻을 것은 없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 충분하게 확인되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통한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어려워지자, 위원장 직권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했다가, 결국 노동위원회를 포함한 모든 정부기관에서 철수했던 이수호 집행부가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 조준호 집행부가 또 한번 증명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력이 담보되지 않거나,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거나,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진보정당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무의미함을,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노사정 교섭을 적극 추진했던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와 조준호 집행부를 통해 똑똑히 확인했다. 더 이상 노사정위원회 때문에 민주노총이 혼란스러워서는 안된다.


3) 투쟁전선을 복원하자.

   
지금부터라도 민주노총은 혼신의 힘을 다해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로드맵 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내년 1월부터 전임자임금 금지’라는 현재의 노동법을 고치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되고, 그래서 현장의 혼란이 초래되더라도 야합법안을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그 혼란은 투쟁을 통해 돌파할 수 있는 잠시 동안의 혼란일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주노총의 투쟁방향에 대해 한 가지 덧붙여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노총에 대한 규탄과 관련해서 민주노총은 주적을 혼동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에 대해 규탄하고 분노해야 하지만, 그것은 아래로부터 와해시키고 해체하는 중장기 조직과제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투쟁방향과 관련해서 그 칼날은 명확하게 노무현 정권과 자본가계급에게 향해야 한다. 특히 노무현 정권을 향해야 한다. 그것은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는 투쟁전선과 민중의 분노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최소한 구호수준에서라도 ‘노무현 퇴진, 열린우리당 해체’를 전면에 걸어야 한다. 하중근 동지를 살해하고, 한미FTA를 추진하고, 비정규개악안을 국회 법사위까지 올려놓고, 노사관계 로드맵마저 누더기로 만든 노무현 정권에 더 이상 어떤 미련도 가져서는 안 된다. 아직도 대중의 분노가 충분히 조직되지 않았다고 핑계되어서도 안 된다. 반한나라당 전선이라는 낡은 레코드판을 이유로 주저해서도 안 된다. 노무현의 탄압을 두려워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민중운동의 다른 단위를 핑계대지 말고 민주노총만이라도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비정규 개악법안과 로드맵 법안 및 한미FTA를 실제 저지하고, 뒤엉킨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앞장서고, 모두가 단결하여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자. (끝)

  

2006년 9월 12일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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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19:30 2006/09/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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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충고를 들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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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봐야겠다.

내가 섣부르게 글을 쓰는 건가.

아니면 마인드의 차이일까.

 

다른 곳도 아니고, 폐쇄적인 전진 회원게시판에 올린 것인데, 그걸 가지고 말이 많다.

내가 오바를 한 것이 없진 않은데,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한 이만이 그에 대한 해명을 듣고 사실확인을 하면 끝나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조직 내에서 소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같은 의견그룹의 회원일지라도 정보를 접하는 양과 질의 정도에 따라, 판단하는 게 다를 수 있다. 그냥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듣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좀더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가 조직내에 유통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내부의 통일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수준에서 무슨 활동가냐.

그냥 공부라도 열심히 하지.

 

그냥 대충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살면 안되나.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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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02:01 2006/09/1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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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돌잔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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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고달이님이 그려주신 것입니다.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는데,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더군요.

    

예전에 조카 민서 돌잔치할 때에도 삽과 망치 같은 것을 놓을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하긴 돌잡이 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들로는 볼펜, 노트, 돈, 책 같은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문화에서마저 기존 지배권력 편향의 문화가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요. 물론 삽과 망치가 노동자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 또한 노동을 육체노동으로 협소하게 상징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중에 제가 결혼해서 애를 낳게 된다면 돌잡이를 할 때 무엇을 놓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까 합니다. 너무 먼 상상인가요.



[싱싱 고고] 어느 돌잔치의 풍경

인권오름 제 20 호 [입력] 2006년09월06일 2: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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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1 00:10 2006/09/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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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어택 2탄!! 수원 청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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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고등학생 운동 연구로 성공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새슬이가 알려줘서 알게 된 사이트가 있다.

바로 고등학교 운동에 관한 사이트(http://paper.cyworld.nate.com/komovement/)이다. (싸이에 이런 것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직은 한 가지 사례밖에 올라와 있지 않은데, 이게 나름대로 흥미롭다.

  

바로 청소년인권단체들이 9월 6일 청명고에서 ‘청소년인권 사진전’을 열어 수원 청명고의 두발규제와 체벌에 강력하게 항의 - 이를 ‘스쿨어택(school attack)’이라고 한다 -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동영상과 사진에 담은 것이다. 그 중에 인권운동사랑방의 배경내 님(별명이 개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청명고 교사간의 설전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잘 보여준다.

  

그 기사들 중에 나오는 글 중에 어처구니 없는 부분만 모았다. 교감에서 교사, 학부모까지 거참... 대단한 학교이다. 그 속에서 나온 학생들, 정말 대견하고...



이모 교사는 “교직생활 5, 6년 이상 한 사람을 데리고 와라. 현장의 어려움을 아느냐. 인권적으로 해서는 교육이 안 된다”고 말하며 청소년 인권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학부모 한 명은 “우리 애도 맞아서 다리에 멍이 들어 왔지만 애들은 역시 맞아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고 또 다른 학부모는 “그렇게 인간답게 살고 싶으면 이북으로 가라”는 등의 폭언을 하기도 했다.

  

“기자들 불러다가 목적 다 달성했네요. 인권운동 순수하게 하세요.”

     

2학년부장을 맡고 있는 이모 교사는 “17년 교사생활에 폭죽을 나눠주고 학생보고 시위하라고 것은 처음”이라며 “학생들을 선동하지 말아달라”고 항의했다. 그는 “당신들이 학교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학교에 오래 있으면서 느낀 건데 인권적으로 하면 교육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모 교사는 “예전엔 두발규제가 엄했는데 새로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생들을 믿어보자고 해 완화시켰지만 무스를 바르고 애들이 건방져져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이 집회를 선동하면 자퇴사유가 된다”며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퇴하고 전학을 가는 것도 전향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인권단체들은 아이들 인권을 억압한다고 하는데 10년 후 이대로 내버려 두면 학교에서 칼부림 난다”고 말했다.

  

청명고 2학년부장 교사는 “청명고의 규제는 수원시내 열 개 인문계 고교 중 일곱 번째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완화되어 있다”며 “머리와 교복이 단정한 학교는 대개 성적도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감도 “성인 남성이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와 정장을 입었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듯이 학생들도 단정해야 마음가짐이 똑바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학교운영위원은 네트워크 활동가들에게 “인권운동 하기 전에 인격 형성부터 하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교감, 학부모, 학교운영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무슨 시위냐”며 “앞으로 아이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네트워크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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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0 23:57 2006/09/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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