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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선, 어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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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과정 학술제에 참석하다

  

어제 오전부터 있었던 박사과정 학술제에 머리수를 채워주기 위해 참석하였다. 당연히 끝까지 있진 않았다. 처음 개회사만 듣고 가려다가 기획강연이 의외로 괜찮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제1세션으로 잡힌 기획강연만을 들었고, 나머지 논문 발표 및 기획간담회는 제꼈다. 기획강연은 김상헌 교수가 "Microeconomic Approach to Public Administration"이라는 주제로 양적 접근을, 신희영 교수가 "공공행정의 연구방법 - 비판적 실재론을 중심으로"라는 이름으로 질적 접근을 하였는데, 특히 신희영 교수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내가 양적 접근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 동안 질적접근이라고 하면 사례연구, 참여관찰, 현상학, 해석학 등만으로 좁혀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 교수는 비판적 실재론을 중심으로 구성주의적 접근 등을 포함시켜 논의를 하였다. 특히 이는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쟁점과도 맞닿아 있어 추후에 충분한 공부꺼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태석이 형이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사회이론의 구성'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든스의 구조화이론, 봅 제숍의 이론, 캘리니코스의 '역사와 행위', 그리고 정태석 교수의 '사회이론의 구성' 등은 읽어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제도주의 논의가 풍부해질 텐데... 

   



2. 영등포에서 상은이를 만나다.

  

약속이 잡혀 있었던 상은이를 영등포에서 만났다.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진다. 버스노선도 많이 변화되어서 나같은 길치에게는 참 어렵다.

상은이는 지금 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연수를 받고 있고, 다음부부터 한달간 휴가라고 한다. 상은이의 말을 들으면 나는 너무 널널하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경렬이가 상은이의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노동법학회를 이끌고 있다고 하는데, 방산에 근무한 것이 엊그제인 듯하더니 어느새 사법고시에 붙어버린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물론 그 친구는 나를 알진 못하겠지만...

  

불철에 민주노동당 당원이 없다는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좌파 활동가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잘한 것도 없고...

  

얘기를 하다가 노힘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참 공개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피해자를 옹호하지 않는 다른 식의 언급은 나오지 않고, 단지 침묵 뿐이다. 성별이 달라서 피해자의 상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여서인지 이 문제가 나오면 모두 꼬리를 내리는, 묘한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다. 특히 진보블로그에서...

  

내가 혹시나 실수로라도 2차가해를 하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많다. 이렇게 항시적으로 긴장감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과도한 것도 있지 않은가. 개인적인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언급조차 신중하게 되는 자기검열이 조장되는 상태가 바람직하진 않을 것 같은데...

    

결국은 저번에 소개팅을 했던 누나 얘기도 하였다. 하긴 이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테지. 둘다 소극적인 탓에 서로에게 다시 만나자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은이가 얘기하면서 전화라도 해보라고 한다. 나의 이런 면 때문에 더이상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상은이와의 인연도 상당히 깊은 편이다. 고등학교 후배에다가 대학의 과후배, 그리고 둘다 대학원이 떨어진 것에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이런 친구도 흔치 않다.

     

3. 전진 서울지부 총회

    

상은이와의 저녁식사 후에 총회장소인 대영빌딩까지 가다가 옷이 다 젖었다. 이럴 때는 누가 나에게 우산이라도 씌워주면 좋으련만...

상은이를 만나느라 평가부분에는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게 중요했는데...

    

지부장에 이재웅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집행위원장에 개골목 님, 중앙위원에 김준수, 정호진 동지가 나와서 2기 전진 서울지부를 이끌게 되었다. 글쎄, 잘 될까.

  

조직체계개편이 논란되었다. 지역별 지회 중심의 기존의 체계를 이념과 사상 토론이 잘 이루어지고, 집행도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지역지회 외에 금속, 공공, 사무 등의 노동지회를 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희님이 문제제기를 했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였는데, 동조발언을 하지 않고 그냥 침묵하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 나 같은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어서는 전진이 발전하지 않을텐데...

  

밤에 폭시에게 메신저로 말했지만, 이제 전진에 대한 관여를 끊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역량에 일을 너무 늘어놓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탈퇴말고 후원회원 같은 거 없나.

뒷풀이 때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를 했으면 했는데, 어머니가 와계셔서 일찍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니 12시 반. 택시를 타지 않아서 다행이다. 

   

4. 밤새 고스톱을 치다

  

젠장... 어머니가 컴퓨터에 피망 고스톱을 열어놓는 바람에 2시경부터 3시간여동안 고스톱을 쳤다. 어쩌다가... ㅡ.ㅡ;;.

어머니만 오시면 이렇게 된다.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는데...

물론 절제력이 부족한 내 탓이다. 쩝...

   

5. 민호가 설대에 온단다

  

민호가 무슨 실습 때문에 이번주 일요일부터 10여일간 설대 기숙사에 머무른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내 방에서 하루를 지내고 보내야 할 듯...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전국에서 경영학과 학생 45명을 뽑아 실습을 시키는 것인데, 그 내용이 참 궁금하다. 뭘까.

어머니가 분재에 물을 주는 것 때문에 오늘 내려갈까 아니면 민호가 오는 것을 보고 그 뒤에 갈까를 고민하시더니 나중에 가기로 하였다.

   

   

6. 정보운동포럼 연기 결정

    

며칠 전에 정보운동포럼 위키를 갔다가 이번에는 가볼까 하던 차에 정보운동포럼 연기 결정에 관한 메일을 받았다. 
FTA 본협상과 평택 투쟁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에 어려움을 호소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같은 일정에 있는 캠프, 워크샵 등의 행사도 많이 있었고... 
그래서 급히 공동주최단체들 사이의 논의 결과 현재 일정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휴가철이 끝난 8월 말 이후에 더 많은 준비를 해서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더 잘 된 일인가. 그 때는 바쁘지 않아야 할 텐데...
   

7. 멕시코 대선

  

이래저래 멕시코가 한국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하나는 NAFTA를 다룬 피디수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선 개표 결과가 업치락뒤치락하기 때문이다.

사빠띠스타의 입장은 오브라도르 후보가 가짜좌파후보이므로 속지말고 투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상 유례 없이 높은 투표율은 선거보이코트를 주도한 사빠띠스타가 오판했음을 보여준다.

  

어제밤까지만해도 2%차이로 앞서고 있었는데, 점점 격차가 줄어들더니 결국 역전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레디앙의 윤재설 기자의 속보 비슷한 글에서 잘 나타난다.

  

칼데론의 지지율이 높은 주을 마지막에 개표하면서 98%개표할 때부터 뒤집어졌다고 하고, 그 쪽에서는 재검표를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다. 22만표차인데, 여기에 오브라도르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연방선거재판소 및 국제기구에 제소한다는 것도 4100만표를 수작업으로 개표하지 않는한 부정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고...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내전까지는 가지 않겠지. 내전에서 세계혁명으로? ㅋㅋㅋ

  

멕시코 대선,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프레시안, 2006-07-07 오전 10:15:51)
우파 후보, 0.57%포인트차 1위…좌파 진영 "소송하겠다"
   

멕시코 정국 혼돈 속으로 (레디앙 2006년 07월 07일 (금) 08:45:31
집계종료, 오브라도르 0.57%P 뒤져…불복선언 
  

멕시코 대선 우파 칼데론 후보 다시 앞서 나가

멕시코 대선 피말리는 접전 좌파 0.02%P 앞서  

멕시코 대선 재집계에선 좌파후보 앞서

     

한국상황이라면?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구로구청에서는 부정선거 무효를 주장하면서 농성하다가 폭력진압된 일이 있었다. 그 때 유언비어로는 몇명이 죽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리고 천주고 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컴퓨터조작이라는 말도 나왔다. 88년 대학에 입학하던 때 면접을 치루면서 이번 대선결과를 묻는 질문에 컴퓨터조작이며 대규모의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답변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 면접교수가 한완상, 임현진, 김진균 교수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서 밝혀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던 듯하다. 어린 마음에 당돌했는데...

  

앞으로 도입된다는 전자투표를 하게 되면 정말 개표조작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그냥 효율성만을 염두에 두면서 대충 넘어간다. 엄청 샜군. 시간 잘 간다.

 

8. 젠장

  

이런 식으로 일기를 쓰면 정리는 되는데, 책 읽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생각하고 사니까 이제 더디가도 더 나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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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7 16:05 2006/07/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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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회의 투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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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7. 3 (월) 운영위원회 연기
 

아침부터 나와 한참 지식센터 운영위원회 자료를 작성하고 있는데, 운영위원들이 내일 시간이 안된단다. 8명 중에 2명만 제시간에 나올 수 있다고 하니 결국은 12일로 연기되었다.

   

일단 써놓은 자료가 아까워서 소장님께 전송을 하였다. 원장님은 예산집행 기획이 부족한 것에 대해 지적하였는데,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생각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ㅇ 7. 4 (화) 토마토, 모색모임

  

이전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학생당원 모임으로 존재하던 모색모임이 '새세상을 열어가는 토마토 친구들'로 바뀌었다. 현돌님과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만 빨간 사과가 아니라 겉과 속 모두 시뻘건 토마토가 되자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전진 기관지위원회 뒷풀이 자리에서 이를 들은 한 동지가 지금은 토마토가 빨갛기는 커녕 새파랄 때인데 라고 하여 모두 웃었다.
   
토마토 홈페이지를 가서 봐도 그렇고, 들리는 소문에도 10여명 정도 되는 소위 '황자그룹' - 황광우 선배가 운영하던 플라톤 아카데미 출신들 - 이  회원이 40여명 쯤 되는 토마토를 장악했다고 한다. 21세기 연합 학생당원들이 군대 등으로 빠져나간 이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데, 황자그룹은 어떤 특별한 색깔이 있는 것인지...

  

나도 알고 보면 황광우 선배하고 그리 먼 것도 아닌데...
   

ㅇ 7. 4 (화) 기관지 위원회 회의

     

- 기관지위원회 회의에 가긴 갔는데, 이미 회의가 진행중이고, 30여분만에 끝났다.
창간준비 2호는 현 추세대로라면 그럭저럭 문제없이 발행될 수 있을 듯하다.
  

참석한 위원들을 살펴보니 기관지위원장을 빼고는 모두 당 활동가들이다. 이슬공주 님이 오지 않으니 노동쪽의 결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갈 때쯤, 노동 정책팀으로 기관지위원으로 되어 있는 노동쪽 활동가들이 들어왔는데, 기관지위원회 회의를 하는 것을 보고는 약간 당황한 눈치이다. 이러다가 또 당 활동가와 노조활동가들의 견해차이가 이론중심과 집행중심으로 나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당활동가들과 노조활동가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융합될 수 있어야 하는데...  
        
- 뒷풀이 자리는 막회를 하는 곳에서 하였다. 역시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는 누오보를 따라 나선 곳인데, 양이 상당히 된다.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는 곳이라서 시간이 좀 걸린다. 술도 맥주는 근처 가게에서 사오는 듯하다.

   
전진 기관지위원회의 뒷풀이 자리는 얻을 것이 많다. 그냥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썰렁한 농담을 섞어 솔직한 견해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뒷풀이 문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런 모임은 책을 보는 것보다 낫다.

- 이래저래 술판은 과거 활동했던 운동판 얘기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노힘, 새흐름, 중앙파 얘기를 하더니 결국에는 과거 소속 정파얘기에서부터 사회진보연대, IS, 노동계급, 진학련, 대장정, NL까지 나온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 활동했던 단위가 참 다양하구나. 나는 그냥 언저리에서 운동물만 먹었는데...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할 때는 재미있는데, 정말 남는 게 없는 얘기들이다.
앞으로가 중요하겠지.
   
- 기관지위원회 회의, 사실은 뒷풀이 때문에 주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피디수첩 '참여정부와 한미FTA'도 못보고... 
   

- 집에 오니 어머니가 동생네 집에 간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도 동생도 전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상당히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침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와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핸드백에 전화기를 넣어 놓았더니 전화가 온 줄 모르셨다고 한다. 

     

ㅇ 7. 5 박창환 후보 보궐선거 출마
  
5일 오후부터 7시에 고려대 418기념관에서 민주노동당 성북을보궐후보 박창완 동지 출범식이 있다고 참가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무래도 전진은 문자메시지가 너무 많이 온다.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조직화가 끝난 것이 아닌데... 그리고 무슨 집회나 회의 참여 문자에 항상 필참으로 나온다. 참석하지 않으면 징계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오바다.

  

박창완 동지가 성북을 보궐선거 후보로 나오는 것에도 불만이 많다. 박창완 동지는 2달전 구청장 후보로도 출마하였다. 어떻게 구청장으로 나온 이가 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나오느냐라고 비판했더니, 당시에는 인지도를 제고하고 위해서 나왔다는 답변이 있었다. 지방정치, 지방선거를 그렇게 도구적으로 봐야 하는 건가. 차라리 후보인지도 제고가 아니라 선전,선동이 목적이었다면 이해가 될 수 있겠는데, 이런 식은 문제가 있다.

   

이래서 욕을 먹는 게 아닌지...

  

ㅇ 7. 5 (수) 레디앙에 대해

     

날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들여다 보는 사이트 중에 프레시안과 매일노동뉴스, 그리고 참세상 외에 레디앙이 추가되었다. 레디앙은 전진에서 의식적으로 회원들로 하여금 주주가입을 독려하였고, 실제 대주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다.

  

물론 상당부분 좌파적인 기사들이 있고, 평소에 생각해내기 못했던 부분들을 긁어주고 있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럽지만, 전진에서 '좌파매체사업'이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전력을 기울인 것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나 또한 없는 형편에 주주라고 돈을 냈고, 이제 회원가입도 할 생각이다.)

  

특히 거기에 초록정치연대의 우석훈 실장이 고정적으로 글을 싣고 있고, 이재영, 김윤철 씨 등이 대문글을 쓰는 것에 이어 정택상, 주대환, 김정진 씨까지 글이 올라갔다. 넓은 의미에서 좌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정도의 시각을 얻기 위해 좌파매체 운운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고글을 보면 전진이나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이의 글보다 혁신네트워크와 같은, 지향이 불분명한 조직에 속한 이들의 발언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레디앙'이 비주사 민중운동 진영의 공동 대중지 성격을 가졌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안타까운 점이 많다. 이를 타개하려면 의식적으로 기고글도 많이 써야 할텐데, 전진의 성원들은 준백수 상태가 아니라 다 현직이 있고,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 고정적으로 글을 생산해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장석원 기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이 재미있고, 내용도 꽤 알찼던 듯한데, 왜 그만두었을까.

  

ㅇ 7. 5 (수) 서울대가 학부체제로? 될까.
    

서울대 “단과대 없애고 학부체제로” (경향신문 2006-07-05)
   
오늘자 거의 모든 신문에 서울대가 단과대를 없애고 19개의 학부체제로 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거기에 보면 행정학부도 독자적으로 있다. 될까.
우선 사범대에서 반발할 것이고, 사회학부와 정경학부로 포괄되어 독자적인 특성이 사라지는 각 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학외에서보다 학내에서 반발이 더 클 것 같다.
     

ㅇ 7. 5 (수) 한나라당에서도 색깔론이?

 

한나라당, ‘좌파 축출론’ 전대 좌지우지? (한겨레 2006-07-05)

보수단체 ‘이재오 남민전 전력’ 광고로 공격, 이규택 동조에 이명박 “골수보수 가자는거냐”

  

한나라당, 대표 선출 앞두고 ‘사상검증’ 점입가경 (한겨레 2006-07-05)

“이재오·이명박은 사상적 정체성을 밝혀라”, 이규택, ‘거부할땐 애국단체와 연대, 이명박 반대운동’

   

이명박도 잡아먹는 한나라 '색깔론' (레디앙, 2006년 07월 05일 (수) 16:11:06)

봉숭아학'당' 돼가는 야당, 이규택 "이재오 사상검증해야"

      

할 말 없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브리핑 일부로 내 의견을 대체한다.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 하는 민주노동당이 보기에 한나라당에 투신한 이재오 의원을 좌파로 보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번 사상시비는 한나라당의 변하지 않는 DNA 원형질은 반북, 수구, 색깔론 뿐이라고 하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게 어떻게 당 대표 뽑는 자리에 논란이 되고 후보자들이 광고 하나로 이익이 되는지 따져가면서 입맛을 다지겠냐.

   

ㅇ 7. 5 (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깨달은 것

   

- 학교운영위원회가 마포역 근처에 있는 홀리데이 인 서울 호텔 양식집에서 있었다. 운영위원장이 잘 아는 곳이라서 자신이 운영위원들에게 대접한다고 하여 그쪽으로 간 것이었고, 다룰 안건도 1,4학년 건강검진기관선정 안건 하나에 불과했다. 전교조 소속의 위원들은 오지 않았다. 나도 그 분들이 오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안왔을 텐데... 공짜로 뭘 먹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런데 저번 회의 때 등기물을 받지 못해서 회의일자를 파악하지 못해 빠졌기 때문에 또 빠질 수도 없었다.

   

- 건강검진기관 선정은 학생 일인당 8,000-10,000원이 소요되는 것이었었기에 소홀할 수 없었다. 학부모위원 중의 두분과 양호교사 등 교사 두분이 직접 후보 기관을 다녀와서 선정을 했기에 크게 문제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작년까지는 그냥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했다니...

  

- 식사하는 도중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있는 쪽이 한 중간이어서 나이드신 교장, 교감, 운영위원장이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역시 나이드신 분들인지 생각들이 상당히 보수적이다.

교장샘은 한부모가정을 결손가정으로 표현하면서 그 집안 아이들이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다들 이에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골프 얘기가 나오자 비용이 문제라면서 환경파괴는 염두에 두지 않는 듯 얘기한다.

금강산 관광 얘기가 나올 때는 북의 미사일 발사를 떠올리면서 퍼주기식 대북사업에 대한 불만을 교감샘이 얘기한다. 이에 대해 운영위원장은 도와줘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여기서 약간 의견 차이가 있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냥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들...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나이를 먹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그건 그게 아니라는 말은 못하겠다. 나이차이는 참 어렵게 느껴진다.

- 지하철로 오는 길에 학부모 위원들 네분과 함께 왔다. 그 중에 부위원장을 비롯한 두분은 전교조에 적대적이면서 7월말에 있는 교육위원 선거에 대해서도 전교조에서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속내를 내비치고,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다른 두분을 설득한다. 물론 내가 그 전교조 샘의 추천으로 지역위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약간 조심하는 듯 싶지만, 거침 없는 말을 한다.

전교조 샘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힘든지 알겠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보다 이렇게 비공식적이고 편한 자리에서 오히려 중요한 얘기들이 오고가는 것에 대해서도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7.6 (목) 월드컵 결승전, 아트 대 빗장

  

- 새벽에 깨다말다 하면서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4강 경기를 보았다. 전반에 앙리가 얻은 벌칙차기를 지단이 넣어 한골을 얻은 프랑스가 결국 1:0으로 이겼다.

나야 프랑스를 응원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렇고 보니 브라질과 프랑스의 8강전에서 경기전 국가부르던 것이 생각난다. 애국가와는 달리 자유, 평등의 나라를 얘기하고 있는 브라질의 국가와 엄청나게 과격한 가사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이에즈'. 정말 비교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교사노조인 일교조가 일본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하여 징계를 먹고 있는 현실을 보고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솔직히 한국은 더 심하지 않은가. 애국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집단도 거의 없고...

  

- 이제 월드컵 결승전은 아트사커 대 빗장축구의 대결로 치뤄지게 되었다. 한달간 잠을 설치게 만든 월드컵도 막을 내리는 것이다.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면 월드컵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적으로 될 필요가 있다.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 하면서 지나가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계속 반복할 것이기에...

  

변질 응원문화 확산 “삐익~퇴장감”  (미디어 오늘 2006년 06월 29일 (목) 10:11:30)
기업ㆍ방송, 홍보ㆍ시청률 위해 거리응원 상업화

    

7. 6 (목) 신중현의 마지막 무대

  

신중현 TV서 ‘마지막 콘서트’ (경향신문 2006-07-06)

7월 15일부터 은퇴기념 전국순회공연을 여는 신중현이 4일 오후 KBS 별관 공개홀에서 진행된 KBS 1TV ‘콘서트 7080-신중현 스페셜, 님은 먼곳에’ 녹화 무대에 올랐다. 그는 TV무대에 설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나의 마지막 공연 모습을 TV에서도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역시 멋있는 신중현.

현우녀석은 나중에 신중현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한다.

나도 보러갈까.

      

ㅇ 7. 6 (목) 귀영이도 학위논문심사를 통과하다

  

- 귀영이가 어제 연구실에 와서 자신이 박사학위논문 최종심사를 통과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느낌으로 보아 시영이도 최종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 같다. 그제던가 교수들하고 양복입고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렇다. 일단은 축하한다.
메신저에다가 "김귀영 박사되다 - 김 박사-어감이 좋구만"이라는 대화명을 써넣었다. 하긴 좋기도 하겠지.

   

오늘은 혜영이가 광운대 교수의 자격으로 와서 박사과정 학술제에서 한 세션의 토론을 하고, '신진 행정학자로서 성공적으로 살아가기'라는 기획간담회에서 토론을 한다. 사실 공부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것 같지는 않는데...

  

그리고 방금 학부 선배이기도 한 정모 교수가 와서 빨리 논문들을 써서 여기저기 학회지에 제출하라고 한다. 학위만으로는 안되고, 실적이 있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게으른 나를 압박하면서 재촉하는 것은 좋은데, 참 부담스럽다.

사실 일부러 쓰지 않는 것도 있는데... 퍼블리쉬를 한다면 앞으로 계속 남는다는 것인데, 나의 의견이 명확하게 들어간 글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짜집기하고, 이론이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는 논문을 쓴다면 쪽팔리지.

   

아무튼 이럴 때는 꼭 내가 조급해진다. 난 뭐하고 있었나 하고...

내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까는 갑자기 할 것이 많고, 조금은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진을 탈퇴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은 너무 벌이는 것 같다.

   

- 행문씨가 오늘 신혼여행을 갔다. 어제 오전까지 연구실에 나왔다.

축의금을 받지 않길래 아예 신혼여행지에 가서 쓰라고 엔화로 바꾸어서 건네주었다.

이렇다고 미안한 감정이 풀리는 건 아닌데...

- 최모라는 부원장실에서 교무조교 업무를 보조하던 석사과정 학생이 운동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옮겼는데, 결국 숨졌다고 한다. 어제 원장을 비롯한 몇명이 문상을 갔고, 오늘 발인이 있었다고 한다. 

운동이 다 자신을 위한 것인데, 자신의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운동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숨쉬기 운동만으로는 안되겠지. 그리고 Sports가 아니라 Movement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그런데 조급증 때문에 그렇게 맘놓고 운동을 하지 못할 듯 싶다. 차라리 그냥 방구석에 누워 퍼질러 자면 몰라도...
  

국내 첫 의사노조 탄생 (매일노동뉴스 2006-07-06 오전 9:44:33)

노동부, 4일 노조설립필증 교부

제대로된 노조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노조인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ㅇ 멕시코 대선과 브라질 대선

  

-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가 전국 13만여개 투표소 중 80%에 이르 는 10만여개 투표소에서 결과 재집계가 시작된 가운데 36.69%의 득표율을 보이며 칼데론 후보의 34.67%를 2% 정도의 지지율 차이로 앞서고 있단다. 예비개표 보고서를 다시 검토하는 등 좀 복잡하다.

  

KBS뉴스에서 이에 대해 보도하면서 칼데론과 오브라도르 후보를 각각 소속정당인 국민행동당과 민주혁명당 후보로 소개하는 대신 우파성향 후보, 좌파성향 후보로 자막에 내보냈다. 그리고 신문들을 봐도 대부분 두 후보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써놓는다.

한국 선거에서도 그렇지 하지 그랬나. 하긴 이재오를 보고 전향서를 쓰고 좌파라고 하는 판이니...

아무튼 오브라도르 후보가 승리하기를...

  

- 브라질 대선이 오는 10월 1일에 있는데 브라질노동자당의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사회민주당의 제랄도 알키민 전 상파울로 주지사 사이의 공약 내용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후보간 차별성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성장 과정과 정치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브라질의 정치 전문가들은 노동자당(PT)이나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이 당의 기본 이념과는 달리 실제 정책 면에서는 거의 편차를 보이지 않는 브라질 정당의 속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지만, 나에게는 브라질노동자당이 얼마나 맛이 갔는지 잘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PT내의 좌파들은 도대체 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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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6 17:24 2006/07/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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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집권경험(international, 200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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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이라는 이름의, 동북아 중심의 국제뉴스 전문사이트를 표명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다. 

International은 조덕원, 한호석 등의 칼럼방이 나오고 - 물론 허영구의 칼럼방도 있다 - 한국의 표기를 Corea라고 하는 점, 북한을 조선,이북이라고 하고, 남한을 이남이라고 하는 점, 그리고 주로 다룬 기사들을 보면 그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아무튼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집권경험에 대해 7회에 걸쳐 다룬 특집기사가 있길래 담아왔다.

그 내용은 그럭저럭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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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특집]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집권경험

  

브라질과 정치구조,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성장 ①

2006-04-28 오전 4:58:21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봄을 맞아 선거열기로 뜨겁다. 동유럽의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서유럽의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이러한 각국의 선거열기는 조만간 코리아반도 이남에도 불어 닥칠 전망이다. 바로 이남에서도 내달 5월 31일 지방선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미 중남미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초 볼리비아와 칠레가 선거를 치러 새로운 진보개혁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의 새로운 진보개혁정권의 등장은 과거 브라질의 브라질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 룰라대통령의 등장과 최근년 베네수엘라에서의 차베스정권의 탄생으로 세계적 범위의 선거혁명을 추동시키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 차베스정권의 반미외교정책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는 최근 신자유주의정책의 순응과 부패로 자국내에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지만 중남미에서 제일 먼저 지방정부를 접수, 운영하고 정권을 획득한 경험이 있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자치와 정책구현의 사례를 총 7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 순서로 브라질과 정치구조,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성장 배경과 과정을 알아보았다. - 편집자 주 -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로 전 세계인들에게 친숙하다. 삼바축구로 불려지는 브라질 축구는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역대 월드컵에서 5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자랑스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는 6월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국민들은 또다시 2006독일월드컵에서의 우승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스포츠에서의 희망어린 기대와는 달리 브라질의 농민, 노동자를 비롯해 절대다수의 빈곤계층에 속한 브라질 국민들은 최근 먹고 사는 문제와 룰라정권 주변의 부패스캔들로 인해 자신들이 지지했던 룰라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축구의 나라, 남미 최대국가인 브라질

브라질은 이남 면적의 약 85배에 해당하는 남미 최대의 국가이다. 지리적으로 보아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며 작게는 남미 대륙의 중동부지방에 위치해 있다. 1500년 4월22일 포르투갈의 뻬드루알바리스까브랄(Pedro Alvares Cabral)에 의해 발견된 이후 1822년 9월 7일 독립할 때까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브라질의 공식명칭은 브라질연방공화국(Republica Federativa do Brasil)이다.

수도는 초기 식민기간동안 사탕수수가 엄청나게 재배되던 북동부 바이아(Bahia)주의 현재 주도인 살바도르(Salvador)였으나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주에서 금과 다이아몬드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이 광물들의 운송을 위해 1736년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 옮겼다가 1960년 국가의 균형적 발전과 기타 군사정치적 이유로 주셀리누 꾸비체끼(Jucelino Kubitcheck) 대통령 시절인 1960년 브라질 중앙고원에 인공도시를 설립,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이름은 브라질리아(Brasilia)로 명명하였다. 공식사용언어는 포르투갈어이다.

  

식민지배를 겪었던 브라질 사회

1500년부터 1822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탓에 그 유산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이 남아있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그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현재 브라질 카톨릭 인구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농촌의 경우 단일 농작물 재배의 유산으로 지주와 소작인간의 이원적 사회구조가 북동부지방을 중심으로 만연해 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이 문제가 농지개혁 및 무토지농민운동(MST, Movimento dos Trabalhadores Sem-Terras)으로 확산되면서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또한 이남과 비교해볼 때 남녀에 대한 성차별은 전통적인 보수사회가 존재하는 내륙 지방에 남아 있을 뿐 일반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인종차별, 특히 흑인과 백인간의 차별은 법적으로도 처벌대상이나 경제수준의 저하, 그에 따른 교육기회의 부족 등과 같은 악순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현상 역시 흑인이 많은 북동부 지방과 유럽계 백인이 많은 남부지방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의 정치구조

행정부는 대통령중심제의 연방공화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997년 6월 헌법수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임기 4년의 대통령을 비롯, 주지사, 시장은 1회에 한해 재선 가능하다. 내각은 16개 부처로 이루어져 있다.

입법부는 상, 하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상원(81명)은 임기 8년으로 각 주와 연방특별구에서 3명씩 선출되는데 전체 의원의 1/3과 2/3가 4년마다 나눠 선출된다. 하원의 경우는 총 513명으로 임기는 4년이고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하는 관계로 지역마다 배출 의원수가 틀리다. 또한 각 주에도 의회가 있는데 주지사를 포함하여 주의원은 4년임기이며 주의원은 인구 비례제로 뽑는다. 또한 각 시들도 시의회를 구성하며 시장을 비롯한 시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브라질은 26개주(Estado)와 1개 연방특별구(Distrito Federal), 시행정구(Municipio)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브라질헌법은 개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가운데 브라질거주(영주) 외국인에 대해 브라질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대통령을 수장으로 각료위원회가 중심이 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로 3권분립화되어 있다. 브라질헌법은 1824년 독립헌법이 처음 제정된 후, 1981년 공화정헌법, 1934년 헌법, 1937년 신국가헌법, 1946년 헌법, 1967년 군사정권헌법 등의 개정 과정을 거쳤으며 1985년 민주화 이후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제정된 1988년 헌법이 현행 헌법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정당명부제방식으로 선출되는 주정부와 시정부

지방정부는 수도 브라질리아 연방특별구와 26개 주정부로 구성되며 각 주정부는 연방정부와 마찬가지로 주지사를 중심으로 주각료(secretaria)들로 구성된 주행정부와 주의회로 이루어진다. 주지사의 임기는 4년이며 1회에 한해 재선이 허용되며 절대다수제에 의해 1, 2차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주의회는 주단위의 대선거구의 정당명부제 방식으로 선출되는 임기 4년의 주의원들로 구성되며 주의회의 정원은 각 주 소속의 연방하원수의 3배수로 정한다. 브라질주정부는 독자적으로 징수, 지출할 수 있는 주세금운영권을 가지며 1988년 헌법을 통해 인구비례에 따른 연방정부 예산의 일정한 비율을 할당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또 주립은행 등의 금융기관을 통해 정부의 자체 재원을 조달할 수 있어 연방정부에 대한 재정자립권이 상대적으로 잘 보장되어 있다.

시(municipio)는 브라질의 최소 행정단위로서 시정부와 시의회로 구성된다. 시장은 4년 임기로 직선으로 선출되며 시의회의 의원수는 인구수에 따라 최소 9인에서 최대 55인까지 선출된다. 시정부의 주요 세수원은 토지 및 건물세다.

한편 브라질정당 가운데 의회에 대표를 갖고 있는 정당은 총 18개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중앙당의 정강이나 노선에 큰 구속을 느끼지 않으며 의회 안건 처리에서도 자유로운 의사표현뿐만 아니라 표결에서도 지역유권자나 로비단체의 로비에 좌우되는 성향이 강하다.

    

브라질의 주요 정당

PSDB(Partido da Social Democracia Brasileira) : 브라질사회민주당 (중도와 중도좌파)
http://www.psdb.org.br
PMDB(Partido do Movimento Democratico Brasileiro) : 브라질민주운동당(중도와 중도우파)
http://www.pmdb.org.br
PFL(Partido da Frente Liberal) : 자유전선당(우파) http://www.pfl.org.br
PPB(Partido Progressista Brasileiro) : 브라질진보당(우파)
브라질노동자당B(Partido Trabalhista Brasileiro) : 브라질노동당(중도우파) http://www.ptb.org.br
브라질노동자당(Partido dos Trabalhadores) : 브라질노동자당(좌파) http://www.pt.org.br
PSB(Partido Socialista Brasileiro) : 브라질사회당(좌파) http://www.hexanet.com.br/PSB
PDT(Partido Democratico Trabalhista) : 브라질민주노동당(중도좌파) http://www.pdt.org.br
PPS(Partido Popular Socialista) : 사회민중당(좌파)
PCdoB(Partido Comunista do Brasil) : 브라질공산당(좌파) http://www.pcb.org.br

  

까르도주전대통령이 소속된 중도우파의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은 1994년 선거에서 하원의 513석 중 63석을 확보하는데 그쳤으나 1998년 10월 선거에서는 99석을 확보해 세 확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전통적인 보수성향을 띠고 있는 자유전선당(PFL), 브라질운동당(PMDB) 등과 연정을 구성한 바 있다. 자유전선당 경우는 1994년 선거에서 89석을 차지했으나 1998년 선거에서는 105석을 확보, 최대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적이 있으며 군사정권 때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섰던 브라질운동당 경우는 1994년 107석을 확보했으나 리더십을 지닌 인물 부재로 인하여 1998년 82석으로 급감하였다.

한편 1980년대 창당되어 노동자들의 이익 대변에 앞장서고 있는 브라질노동자당은 1998년 대선까지 루이스 이나씨우 룰라 다 실바를 내세웠으나 그는 대선에서만 세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 후 지난 2002년 선거에서 대선 4번째 도전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1당으로 등장,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방의회에서 1980년 창당 이후 점진적으로 발언권을 키워온 좌파정당이 선거민주주의 하에서 브라질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브라질노동자당이 그간의 지방정부집권 경험에 비추어 신뢰할 만한 정책과 통치능력을 가진 정당이라는 광범위한 인식의 확산이 바탕이 되었다. 브라질노동자당은 좌파정당도 성공적으로 지방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도시행정서비스를 잘 관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를 기초로 선거에서 유리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브라질노동자당이 전통적인 후견주의 정치가 성행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또한 선거민주주의체제에서 어떻게 변혁적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브라질노동자당이 이끄는 지방정부의 성장

브라질노동자당은 1982년 총선거와 함께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상파울로주의 지아데마와 마라냥(Marahnão)주의 산타 끼떼리아(Santa Quitéria)에서 처음으로 시장을 배출하였다. 1985년의 시장선거에서 브라질노동자당은 1개주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주의 수도에서 후보를 내었고 지아데마에서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북동부의 중심지인 포르탈레자(Fortaleza)에서 승리하였다. 또 3개주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하였으며 상파울로시장 선거에서 20% 이상 득표하는 잠재력을 보였다. 브라질노동자당은 상파울로주 외에서 득표율을 4배나 증가시킴으로써 상파울로에 기초한 지역당의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하였다. 1982년 노동자의 정체성을 강조하던 브라질노동자당은 1985년 이후부터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브라질노동자당은 이어 1988년에 36개 도시에서 시장을 배출하였다. 여기에는 상파울로와 뽀르뚜 알레그레(Porto Alegre), 비또리아(Vitória) 같은 주도를 비롯하여, 깜피나스(Campinas), 산토 안드레(Santo André) 같은 주요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브라질노동자당이 집권한 도시의 인구만도 브라질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였다. 특히 인구 1200만이 넘는 브라질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중심지인 상파울로시장에 브라질노동자당의 루이자 에룬디나(Luiza Erundina)가 당선된 것은 브라질노동자당의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92년의 시장선거에서 브라질노동자당은 상파울로와 비토리아에서 패배하였으며 브라질노동자당 시장의 2/3가 재선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뽀르뚜 알레그레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주의 벨로리종치(Belo Horizonte), 아크레(Acre)주의 리우브랑코(Rio Branco), 고이아스(Goias)주의 고이아니아(Goiânia) 등의 주도에서 당선되어 북부와 북동부에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한다. 또한 당시까지 세력이 미약했던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13개시에서 집권하여 영향력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간다.

1996년에는 주도의 재선에 실패한 지역이 많았으나 대신 전국적으로 고르게 중소도시에서 시장 당선자가 늘어나 그 수가 1992년의 54명에서 115명으로 증가한다. 1998년의 주지사 선거에서는 리우그란데두술(Rio Grande do Sul), 아크레, 마또그로소두술(Mato Grosso do Sul)주에서 당선되었으며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는 부지사를 배출하였다.

2000년에는 상파울로, 뽀르뚜 알레그레, 벨렝(Belém), 고이아니아 등 주요 도시에서 재집권에 성공하고 최초로 뻬르남부코(Pernambuco)주의 헤시피(Recife)와 세르지페(Sersipe)주의 아라까주(Aracaju)에서도 시장에 당선된다. 주요 도시에서 브라질노동자당은 여러 정당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확보하였으며 시장 당선자는 187명으로 급신장을 보였다. 이 때 브라질노동자당 집권 도시의 인구는 브라질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하였다.
   
한편 브라질 최대노조조직(CUT)의 지도부는 2004년 선거당시 브라질노동자당의 룰라후보를 지지했으며 조직안에는 정치적 자율성과 다양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약 15%는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가 이처럼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 데는 브라질의 객관상황과 함께 브라질노동자당이 구축한 긍정적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였다. 남미는 물론 세계적으로 극심한 브라질의 경제적 불평등과 보수적 엘리트층의 부패, 1980년대 노동운동의 성장과 사회운동의 발전, 민주화로 인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은 브라질노동자당의 성장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브라질노동자당이 브라질의 다당제 하에서 경쟁력 있는 정당으로 급성장한 것은 브라질의 전통적인 후견주의정치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사회적 평등을 실천하는데 브라질의 어느 정당보다도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데 기인한다. 또한 이후 언급할 참여예산제나 취학장학금제 같은 참신한 정책대안의 개발과 성공은 브라질노동자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크게 높여 놓았다. 브라질노동자당의 실용주의적 기조와 다양한 전문 지식인 및 중산층의 참여도 브라질노동자당에 대한 급진적 이미지를 완화하여 사회적 거부감을 낮추는데 기여하였다.

  

이와 관련해 귀바(Guiba) 브라질노동자당노동위원장(CUT금속노조위원장, 국제금속노련라틴아메리카부위원장)은 지난 2004년 초 브라질을 방문한 이남의 민주노동당연수단과의 대화에서 “지자체는 부패의 온상이고 그동안 순수한 정치는 없었다”며 “지역 주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982년 지자체를 장악한 곳은 두군데였는데 포르탈레자, 그리고 에이비씨(ABC)공단지역의 디아데마였다”면서 “그러나 포르탈레자의 실패를 계기로 지자체운영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지방정부운영의 민주주의와 투명성 확보, 반부패 정책사례 연구(참여예산제도 그 일환), 이것이 성장과 변화에 도움을 주었다”면서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가. 민주주의, 주민참여를 어떻게 사회정의에 부합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브라질노동자당의 언론 및 국제관계 담당인 지안카를로 수마는 지난 2004년 브라질노동자당선거운동에 대해 “지난 13년 동안 남미, 브라질은 변화했고 룰라와 브라질노동자당도 변화했다. 브라질노동자당은 공산당도, 이데올로기정당도 아니다. 실천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출발했고 사회경제정치운동의 집합체로 출발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지자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공공정책이 필요하고 사회토대 구축, 민중이익 실현을 위해 정치권력이 필요하다”면서 “1961년 대선 후 29년 만인 1989년에 직선으로 대선이 실시됐는데 2004년 선거당시에는 8명의 상원의원, 5명의 주지사, 200여명의 지방시장이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사회임금, 복지문제 등을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어 그는 “2004년 당시의 정치동맹은 브라질노동자당+브라질공산당, 브라질사회민주당과 1998년부터 브라질민주노동당, 브라질사회당, 현재 자유당과도 동맹하고 있으며 1998년의 경험으로부터 좌파정당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사실 브라질사회의 정치역학구도는 브라질노동자당지지층 25~30%, 브라질노동자당반대층 30%, 정치적 중간층40~45%로, 정치적 중간층을 정치적으로 설득하고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는 것이 2004년 선거당시 승부처였었다. 이는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인터내셔널 기자

 

유엔 최고상을 수상한 ‘참여예산제’ ②

2006-04-28 오전 4:57:16

  

브라질노동자당의 대표적인 지방정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참여예산제’다. 참여예산제는 이남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주요한 공약으로 내걸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다보니 ‘참여예산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민주노동당과 브라질노동자당이다.

그렇다면 이남의 민주노동당은 왜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를 벤치마킹했을까. 그 해답을 하나씩 풀어헤쳐보자.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의 두가지 정책방향

원래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의 공통된 정책방향은 크게 ‘참여’와 ‘재분배’라 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질노동자당에 있어 참여는 정치체제에 대한 시민적 참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직화되지 않고 발언권이 약한 빈민층을 아래서부터 조직하여 이들 집단의 동원 능력을 제고하고 정책 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재분배정책은 빈곤층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정부예산의 집행에 있어 그동안 지배층과 가진 자를 중심으로 짜인 시의 예산편성 우선순위를 역전시켜(inversion of priorities) 빈민층을 위한 복지 및 도시인프라투자설비를 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먼저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 개념이 어떻게 변화발전되어 왔는지 알아보자.

현재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개념은 지방정부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초기의 민중적 계급적 관점에서 시민적 관점으로 참여 주체와 채널이 확대되고 다양화되는 추세에 있다. 1989~1992년 시기를 포함하여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 초기에는 민중평의회(conselhos populares: popular council)에 입각한 참여를 추구해 왔다. 민중평의회는 사회운동 조직을 통한 정치사회적 권력의 장악을 위해 브라질노동자당이 정부 내에 마련한 전략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형태와 목적에 대해서는 내부에 이견이 존재했었다. 급진파는 민중평의회를 레닌의 소비에트와 같은 권력기구로 인식했고 온건파는 정책형성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민중적 조직에 기초해 평의회를 구성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다. 사회운동조직이 취약했던 지아데마시의 시장은 취임 후 민중평의회 구성을 포기하였다. 상파울로시정부 역시 브라질노동자당이 상정한 민중만이 아닌 다양한 행위자들도 다원주의사회에서 정당한 발언권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현실의 충격(choque de realidade)’을 경험하였다. 원래의 민중평의회는 계급적이며 국가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조직을 전제로 출발하였으나 일반 시민의 존재와 다양한 타부문의 이행의 정당성, 브라질노동자당 지방정부와의 충돌 가능성 등이 나타났다. 그러자 브라질노동자당 일각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중기적으로는 민주주의문화를 건설하며 장기적으로는 근원적인 민주사회의 건설을 추구해야 한다는 단계적 접근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1993~1996년 시기에 두가지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민중의 참여가 ‘참여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를 중심으로 이해되고 집중적으로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운동적 통일성을 전제로 한 민중평의회개념이 약화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참여 공간과 채널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에이비씨(ABC)지역의 지역협의회(Camara Regional)는 기업인, 노조, 시민사회단체, 정부 간의 대화공간으로 등장하였고 뽀르뚜알레그레의 ‘제헌도시(Cidade Constituinte)’는 아래에서 언급하는 참여예산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이나 단체가 도시 전체의 장기적 발전전략을 논의하는 참여통로로 만들어졌다. 산토안드레시에서는 도심재개발을 논의하기 위한 ‘생명의 도심(Centro com Vida)’이라는 포럼이 구성된 것도 그러한 예이다.

1997년부터의 ‘참여’개념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전략적 가치를 위해 계급적 성격의 ‘민중적 참여를 뛰어넘어 시민적 참여를 지향하고 있으며 (중략) 이는 이슈와 행위자의 다원성을 고려한 복합적 개념’으로 이해되어 변화하였다.(Pontual et al. 2002, 68) 이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에 대한 시각이 계급적 관점에서 시민적 혹은 다원주의적 관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정책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것은 바로 ‘참여예산제’의 성공이다.

  

참여예산제의 실체(?)

참여예산제는 도시기반시설과 복지시설의 건설에 있어 투자예산의 우선순위를 주민들이 결정케 하는 방식이다. 부족한 재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를 동원하여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참여예산제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는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주의 주도인 뽀르뚜알레그레가 꼽힌다. 1989년 올리비오두뜨라(Olívio Dutra)의 시장 취임과 함께 시도된 참여예산제는 첫 2년간은 재정의 부족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조세개혁의 성공과 연방정부의 지원 확대로 투자액이 늘어나고 공동체운동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 열기에 힘입어 1992년부터는 브라질노동자당집권의 지방정부의 표준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됐다. 현재 브라질전국에서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주단위에서는 올리비오두뜨라가 1998년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주지사가 되면서 처음으로 시행했다.

또한 참여예산제는 매년 구역별로 회의를 거쳐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심의의 대상이 되는 예산은 전체 예산이 아니라 도로포장, 하수구, 주택, 학교 건설 등의 도시하부구조투자예산에 한정된다. 뽀르뚜알레그레의 경우 시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3년 9.8%, 1999년 21%이었으며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뽀르뚜알레그레에서 참여예산 관련 공식회의참가자는 1991년 3694명에서 1993년 1만735명, 1996년 1만4267명, 1997년 1만6016명으로 점차 증가세에 있다. 회의에 한번이라도 참석한 사람을 모두 합치면 1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4년간 상파울로시정에 참가했던 비센트 트레바스 지방자치제도문제담당비서는 “1982년 포스탈레자시, 디아데마시 당선으로 시작된 브라질노동자당이 운영하는 지자체수는 187개인데, 지자체 시작 때 세가지점을 강조했다”면서 “첫째는 민중의 참여, 둘째는 투명성, 셋째는 특정소수가 아닌 다양한 주민 이익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좌파’라고 하면 주민참여가 될 것으로 판단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진정으로 주민의 이해와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시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 보건에 대해 주민의 요구가 있었는데 브라질노동자당의 시장은 재정을 조달할 수 없어서 약속은 했지만 주민과 교섭해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했다”며 “이것이 참여예산제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고 밝혔다.

현재 참여예산제는 참여에 따르는 여러 문제를 극복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그램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예산제는 1996년 유엔(UN)  인간정주회의(Habitat Conference)에서 도시정부의 최고(best practice)상을 수상하였다.

우선 참여예산제는 참여와 빈곤층에 대한 자원분배라는 브라질노동자당의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시키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다. 주민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브라질노동자당의 통치전략은 정당성을 획득하였으며 분배문제에 대한 합의를 구축하고 분배에 대한 갈등이 시정부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시행정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accountability)을 높여 시정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였다. 에버스(Abers, 2000)에 따르면, 참여예산제는 브라질노동자당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창조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브라질노동자당은 참여예산제의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에 브라질노동자당은 보다 큰 목표로 민중의 정치경제적 통제력의 확대를 제시하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생산 부문에 대한 노조의 통제력 확대나 언론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버스(Abers, 2000)에 따르면, ‘성공적인 참여는 참여적 정책의 집행, 참여의 평등성, 기존 엘리트에의 포섭 가능성이라는 3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집행과정에 따르는 문제는 기존 지배층이 참여적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이며 참여의 평등성은 특정 집단의 효과적 참여를 방해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요인을 말한다. 포섭가능성은 정보와 자원에 대한 접근에서 우위를 갖는 정부 관리에 의한 참여의 조작과 포섭을 말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시인구 1040만명에 달하는 상파울로시청의 제라르드국제담당및참여예산제담당은 “참여민주주의 실현은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정신이 중요하다”며 “예산 규모, 내용은 주민들에게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의민주주의를 참여민주주의로의 시민권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크게 모호하다, 주민들이 의회가 뭘 하는지 모른다, 큰 갭이 있다는 것으로 참여문제는 평등문제”라고 강조했다. 상파울로시는 세계에서 가장 부의 불평등이 심한 시의 하나로, 이것은 대의민주주의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울러 그는 “상파울로시에서는 첫해에 보건과 교육분야에 정책을 실현하였는데 참여예산제는 좌파민주주의 전통과 연계된 정책이다”면서 “참여예산제에는 세가지 영역이 있는데 첫째영역이 ‘분권화’로 정부는 주민에게 작년의 모든 프로그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3월)하며, 둘째로 주제별 영역으로 4~5월에 정부가 주민에게 프로그램과 세부 프로그램에 대해 알리고(주택, 위생, 경제발전, 시민권, 교통) 의견투표를 통해 주별대표자(delegate)를 선출해 이들이 주민투표를 해 약80명의 참여예산 ‘카운슬러’를 뽑는데 임기 1년인 카운슬러는 모든 문제를 다 다루며 정부와 교섭하는 최종 단위가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민총회는 20명당 1명의 대표자(delegate)를 뽑는데 1237명을 선출해 이들이 카운슬러 선출한다. 따라서 참여예산제에 참여하는 인원은 약 24740여명으로 2004년에는 55000여명이 참여했다”고 설명하였다. “셋째영역으로는 이전 단계인 정부에 의한 주민조직화 단계를 지나 마지막 단계로 주민의 결정을 정부에 전달하는 단계”라고 그는 밝혔다. 즉 주민선택-정부-의회로 전달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상파울로시 제라드르참여예산담당은 또 “참여예산제는 주민정치 참여의 중요한 수단”이라며 시예산에서 참여예산제를 통한 예산의 비중은 5억헤알(총예산의 5%)로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의 70%이며 2004년에는 6억3000만헤알이었다”고 말하며 “실제 주민요구의 규모는 추산하기 어려우나 시전체예산의 4~5배는 될 것이다”면서 “카운슬러는 서브시티홀(sub-city hall)의원과 비공식적인 협상을 진행하는데 의원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침해라서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사회적 압력이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기본적으로 주제는 시정부에서 정한다며 카운슬러에게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대표자에게 매달 교육시 식사나 숙소를 제공한다”며 “참여예산제는 다른 당(PMDB)도 하고 있으며, 브라질노동자당도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진행 중인데 여기에서 상파울로는 뽀르뚜알레그레가 그 모델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주장을 지지하는 자를 동원해서 부차적인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결정되게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비센트 트레바스 지방자치제도문제담당비서는 “정부와 스스로 조직된 주민의 교섭, ‘주민참여 조직화’가 다른 당과 차이점이라며, 13년째 참여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뽀르뚜알레그레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고 밝혔다. “주민참여는 직업소개, 교육, 보건, 국제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대중자치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게 되었다며, 교육, 보건, 주택 등 공공정책 발전의 필요성을 제기해 브라질노동자당의 모든 지자체는 우선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정부를 계속 운영할 수 없으며 ‘도시외관 유지’ 등 작은 분야에서의 삶의 질 개선이 필요하며 지역주민의 일자리 유지, 창출, 임금보장도 중요하고 기초단체에서 직접 세금 징수를 통해 재원조달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치안책임은 주정부가 지고 있는데 주민들은 시정부가 갖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으로 브라질노동자당이 운영하는 지자체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주민요구사항에 대한 정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처음에는 운동세력이 참여했으나 사회, 치안, 복지 등 다양한 주민의 이해를 알게 됐고 이 경험으로 지자체 활동의 강령과 백서를 발간했다”면서 “2004년 선거당시 룰라공약은 기초지자체의 자율성과 역동성 보장하는 것으로 제도문제국은 지방정부의 정책프로그램개발을 위해 설치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는 지역주민들의 힘과 지혜를 발동해 그들이 참여하는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고 있다.
  

인터내셔널 기자

   

‘재분배정책’의 성공은 지속 가능한가 ③

2006-04-28 오전 4:56:09

    

요즈음 전 세계는 미국발 신자유주의 광풍, 일명 세계화바람을 타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순응하는 나라들은 더욱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의 편중에 직면하고 있다. 브라질도 최근 룰라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무릎을 꿇고 타협한 것으로 인해 브라질 국민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책들은 진보개혁적인 성격으로 최근 이남의 가장 큰 화두인 사회양극화 해소와 5.31지방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유엔 최고상을 수상한 참여예산제에 이어 브라질노동당의 손꼽히는 지방정책 중 하나가 바로 각종 ‘재분배정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브라질노동자당은 왜 재분배정책에 관심을 쏟았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참여예산제가 민중들의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시켜 그들의 힘과 지혜를 동원했다면 재분배정책은 민중들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소시켜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브라질사회의 불균형과 분배문제

브라질사회는 원래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이 낙후한 국가였다. 브라질은 세계 10위권의 국민총생산 규모로 ‘중상위소득국가’로 분류된다. 일인당국민소득과 국내총생산, 수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20% 이상) 등의 지표는 브라질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준다. 또 평균수명, 영유아사망률, 의료, 상수도보급, 교육부문 등에서 점진적인 향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중남미평균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브라질사회는 심각한 소득불평등을 안고 있다. 1960년대 이래 브라질의 소득분배구조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추세에 있다. 하위 20%의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의 3.8%에서 1970년의 3.6%, 1983년의 2.4%, 1995년 2.5%로 점차 줄어든 반면, 상위 20%의 소득은 1960년의 54.0%에서 1970년의 59.7%를 지나 1983년에는 62.6%, 1995년에 64.2%로 증가. 특히 하위 40%의 국민이 차지하는 소득이 겨우 8.2%인데 반해 상위 10%의 소득은 47.9%에 이르고 있다.

최상위 4%의 국민은 최저임금의 50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96%가 3개 이상의 욕실이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다. 2대 이상의 개인승용차를 소유하고 70%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며 68%가 한명, 18%가 두명 이상의 가정부 또는 관리인을 고용하고 산다. 반면 가운데 1/3을 이루는 중산층의 평균적인 모습은 최저임금의 5배, 즉 가족의 기본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로 벌고 85%가 욕실이 하나 딸린 주택에 살며 77%가 개인승용차를 소유하지 못하고 43%는 단지 4~5년, 24%는 7~8년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취약한 중산층구조와 더불어 지역격차도 심각하다. 총인구의 44%가 거주하고 있는 브라질의 남동부는 국내총생산의 65%와 산업생산의 70.6%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발전된 지역이며 남동부와 남부가 브라질국내총생산의 82%, 산업생산의 87%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총인구의 거의 30%가 살고 있는 북동부는 단지 국내총생산의 11%, 산업생산의 9.7%를 담당하고 있는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남동부주민의 일인당국민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78%나 높은 반면, 북동부주민의 그것은 전국 평균의 55% 수준에 불과하다.

1990년 북동부의 영아사망률은 전국 평균보다 30%나 더 높으며 주민의 50%이상은 초등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문맹률은 60%에 달한다. 그곳에 태어난 주민은 남동부에 위치한 상파울루지역의 주민보다 평균 20년이나 빨리 사망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고도성장기인 1970년에는 경제활동인구의 65.9%가, 1980년에는 더욱 늘어난 66.9%가 빈곤층(기본욕구충족의 결핍) 이하의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중반 경제활동인구의 59.4%가 빈곤층 이하의 생활을 했으며 남동부의 경우 빈곤층은 24.4%, 극빈층(기본생계유지의 결핍)은 20.5%, 최극빈층(기본생계유지 불가능)은 9.5%를 기록했고, 북동부의 경우에 더욱 심각해 빈곤층이 23.4%, 극빈층이 29.8%, 최극빈층이 25.4%로 총 78.6%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브라질사회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지역격차 등은 이남사회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

브라질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을 가지게 된 원인은, 첫째 브라질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이었다. 브라질산업화는 다국적기업주도의 자본 기술집약적인 중화학공업화로서 고용창출이 취약하다. 따라서 이농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의 비공식부문(영세기업주에게 고용되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취업자, 소규모 자영업자, 가정부, 보모, 간병인, 정원사, 요리사 등 개인 서비스직 종사자,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는 취업자 등)에 종사하고 있다. 비공식부문은 경제활동인구의 약 50%정도를 포함하며 이 부분의 평균임금은 공식부문의 절반 수준으로 고용과 연관된 노동법상의 사회보장 혜택에서 배제된다.

둘째로는 국가의 저임금정책을 꼽을 수 있다. 1940년 도입된 최저임금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도구로서 임금상승의 상한선을 정해주는 기준으로 전락됐다. 1960년대 초이래 실질최저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75년을 100으로 했을 때 1965년에 145이던 것이 1977년에는 128로, 1985년에는 다시 78로 하락했다. 또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최저임금의 실질가치도 줄어들어 1990년에 이르면 원래 가치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1989년, 취업자의 1/3이 최저임금 이하를 받았으며 80% 이상이 최저임금의 5배 이하를 받았다. 
세째로는 부의 집중을 가져온 국가의 소득분배정책이다. 브라질발전모델은 국내시장 중심의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했으나 저임금과 빈곤으로 인한 국내시장의 협소함은 브라질발전모델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소득역분배’를 통한 부의 집중과 중.상류층의 소비 확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넷째로는 토지집중으로 인한 불평등이다. 전통적인 수출지향적 단일경작과 대토지소유제, 산업화 이후 추진된 농업근대화정책이 토지집중을 초래하면서 소농들의 생존기반을 파괴했다. 브라질의 토지분배는 1% 미만의 소유자들이 전체 경작지의 44%를, 10%의 소유자들이 거의 80%를 차지했다. 대토지소유자들이 남는 땅을 방치하고 있는 동안 3200만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은 빈곤에 직면했다. 이는 대토지소유자들이 수출농업 뿐만 아니라 산업, 무역업, 금융업, 지역주의에 기초한 의회구조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번째로는 사회보장제도의 취약한 재분배효과 때문이었다. 사회보장혜택이 정식고용계약을 맺은 소수의 공식부문 근로자에게 한정되었고 사회보장비를 부담할 능력조차 없는 계층이 다수 존재했다. 사회보장제도는 주로 공공부문 취업자, 공식부문 임노동자, 도시중산층에 한정되었으며 소득정책과 마찬가지로 역분배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는 20 대 80의 사회를 만들었다.
   
우선순위의 역전, ‘재분배정책’

브라질사회의 위와 같은 빈부격차와 불평등구조에 눈을 돌린 브라질노동자당은 참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정책분야로 재분배문제를 잡았다. 브라질노동자당은 이를 ‘우선순위의 역전(Inversion of Priorities)’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경제적 엘리트에 유리하게 짜여진 각종 정책과 조치를 빈곤층으로의 자원 이동을 통해 경제적 재분배를 실현하고 이들의 경제사회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분배시도는 지방정부의 취약한 재정상태 때문에 빈곤층전체에 대한 사회복지수준의 전반적 향상보다는 빈곤층의 경제적 부담을 덜거나 경제 능력을 강화하는 각종 사회정책을 통해 시도되어 왔다. 여기에는 교통, 도시개발 및 주거지, 교육, 보건위생, 누진적 조세정책 등이 포함된다.

브라질지방정부에 있어서 교통문제는 시정부에 전권이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분야다. 교통문제의 핵심은 요금문제인데 버스요금은 도시외곽의 빈민촌에 거주하는 빈민들에게는 경제생활과 직결된 문제이다.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는 버스요금을 낮추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1982년 선거에서 최초로 브라질노동자당의 시장을 배출한 상파울로주 지아데마시의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교통사용자위원회(Transit User's Commision)를 구성하여, 버스비 산정의 기초가 되는 1km당 수송되는 승객수를 계산해 버스회사의 요금인상 요구를 물리치고 오히려 요금이 인하되어야 한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노선 신설의 양보까지 얻어냈다. 다음 해에는 버스요금 인상의 대가로 노인과 실업자에 대한 러쉬아워 외 시간의 무임승차를 얻어냈다. 1989년 상파울로시의 에룬디나정부는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버스요금제로 정책을 시도하였다. 외곽의 빈민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도심지까지의 왕복교통비가 당시 빈곤층소득의 무려 40%에 달했기 때문에 시가 보조금을 지불해 이들 빈곤층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도였다.

     

빈민촌개선사업은 주로 상하수도, 도로포장, 가로등, 공원, 문화 체육시설, 학교 및 병원 건설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참여예산제가 목표로 하는 도시기반시설사업에 해당한다. 지난번 언급한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가 바로 이런 도시기반시설을 주민의 의사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여 건설하는 사업이다. 뽀르뚜알레그레의 경우, 도시하부구조 및 도시서비스가 부족한 지역과 빈곤층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보다 많은 투자가 행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브라질노동자당의 경제정책분야 안토니오 프라도 경제담당관은 “핵심 이슈는 새로운 경제개발모델 건설로 고용창출, 소득증가, 경제성장을 같이 추구하는 것으로 브라질 역사상 새로운 것”이라며 “1970년대 중반까지 7~8%의 고도성장이 지난 10년간 평균 2~3% 성장으로 회복된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빈곤선 이하 5300만명, 기아 2300만명 등 빈곤문제가 심각한데 ‘푸드스템프’제도로 지원하고 이를 통해 중소도시지역경제를 자극(지역생산품을 푸드스템프로)해 고용창출를 도모했다”면서 “주택프로그램과 상하수도 개선으로 고용창출효과(건설산업)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또한 “조세개혁의 필요성에도 직면했는데 실제납세자는 소수여서 세율을 내리고 세원을 확대해야 했다며 정부지출의 0.8%가 무임승차자에 돌아갔다”면서 “공공지출도 상당히 낭비되고 있는데 조세회피규모가 GDP의 10%로 추정되며 조세개혁문제는 결국 기득권층과 대결, 정치적 문제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브라질리아주지사를 지낸 크리스토방 부아르께는 취학장학금(Bolsa-Escola)이라는 정책을 개발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브라질리아에 5년 이상 거주한 저소득가구의 7세에서 14세까지 아동들이 학교에 취학하면 이들 가구에 아동노동으로 벌 수 있는 소득을 대체할 최소임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아동노동을 줄이고 인적자원 개발을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부아르께는 이 취학장학금을 저소득가구의 인적자본 생산에 대한 임금으로 표현하였다. 일단 저소득가구가 이 계획에 등록되면 장학금이 어머니의 은행카드로 매달 입금되며 등교율이 일정수준(한달에 이틀)이하로 떨어지면 입금이 중단된다.

취학장학금제는 1998년까지 2만5000가구 5만명의 아동에게 미화 2600만달러를 지원했으며 그 결과 무단결석율은 1994년의 10%에서 1997년의 0.5%로 크게 줄었다. 이 계획은 브라질노동자당과 이를 확대지원한 까르도소전정부의 대표적 치적으로 내세워졌다. 외국에도 많이 소개되어 현재 멕시코,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루시아 로디 상파울로대학교수는 “브라질교육은 이원주의에 기초해 부자들의 학교와 가난한 사람들의 학교체제로 지속되고 있다”며 “1500만이 문맹으로 학교교육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으며 평균교육기간도 4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18세~24세 중 7.7%만이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남미에서 가장 낮다”면서 “이중 2/3가 사립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며 7세~14세 기초교육으로 97%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여기서도 교육의 질이 문제다”며 “교육의 질 측면에서도 몇년 전 국제평가에서 33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건위생은 사회복지의 기본적 내용일 뿐 아니라 노동자의 재생산의 기초로서 항상 브라질노동자당정부의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보건위생에 대한 접근은 빈민지역에서의 위생상태 개선을 최우선으로 행해졌다. 지아데마시의 경우 건강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성격의 문제였으며 단순히 시의 병원 수를 늘리기보다 공동체의 일차적 보건위생시설을 중시했다. 정책집행에 공동체구성원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시보건국은 영양과 위생수준 및 환경악화로 초래되는 질병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쓰레기 수거, 쥐 박멸사업, 오염된 수로의 청소, 질병을 옮기는 곤충 제거 사업을 추진하였다.

  

재분배정책의 충돌

그러나 이러한 재분배정책의 기조가 항상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에스삐리뚜산뚜의 주지사로 당선된 비또르 봐이즈(Vitor Buaiz)는 신자유주의의 도전과 재정악화, 의회에서 다수를 점한 보수우파세력에 직면하여 민영화와 구조조정, 주공무원의 복지혜택의 감축을 시도했으며 이는 해고를 반대하고 기업가에 대한 세액공제 축소 및 조세징수 확대를 주장한 당지도부와 갈등을 유발하였다.

봐이즈는 의회에서의 소수파를 극복하기 위해 우파 및 기업가들과 제휴했으며, 브라질노동자당주의원들의 반대 속에 친기업적인 재정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정파가 다른 주당지도부 및 브라질노동자당주의원들과의 대립 끝에 봐이즈는 결국 브라질노동자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에스삐리뚜산뚜의 예가 극단적인 경우라면 루이자에룬디나의 상파울로시정부(1989-1992)는 재분배에 대한 상이한 시각 때문에 시정부와 시당지도부가 대립한 경우이다. 시당지도부는 1989년의 임금조정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한 공무원노조를 지지한 반면 에룬디나정부는 공무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시의 재정에 압박을 주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빈곤층지원자금이 축소된다는 이유로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반대했다.

1992년 5월의 상파울로시 버스운전수 및 요금징수원의 파업에 대하여도 시당지도부는 파업을 지지한 반면 시정부는 이들의 임금인상은 버스요금인상을 초래하여 시민 전체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파업을 반대했다. 법원이 파업노동자의 복귀를 명하자 시정부는 바로 파업중인 운전수와 징수원들을 해고하였다. 재분배에 대한 부문적 시각과 빈곤층에 대한 형평성을 우선시한 계급적 시각의 갈등은 시장의 역할문제와 결부되면서 에룬디나정부에서 시당지도부와 시정부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빈곤층과 부유층이라는 두개의 사회로 구성된 브라질의 조건에서 지난 2004년 룰라의 승리는 5300만 빈곤을 우선순위로 하면서 다수 국민의 이해를 대변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빈곤에 허덕이는 다수에 달하는 브라질국민들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외면당하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노동자당의 재분배정책은 아직 미완의 완성으로 남겨져 있는 듯하다.

인터내셔널 기자

  

최초 시장을 배출한 ‘지아데마’ ④
2006-04-28 오전 4:54:56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의 집권 경험은 최초시장을 배출한 지아데마지역에서부터 출발했다. 지아데마지역은 이남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으로 노동자밀집지역인 울산, 창원과 유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노동자당의 지아데마지역에서의 집권경험은 민주노동당은 물론 진보개혁세력들의 오는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의 집권 경험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나 아직까지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아데마는 브라질노동자당이 최초로 시장을 배출한 지역으로 브라질노동자당의 핵심지지기반인 금속노조노동자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며 초창기 브라질노동자당집권정부의 내부상황을 살펴보기에 적합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또한 상파울로는 브라질최대도시로서 정치적 중요성이 크며 시기적으로도 지아데마와 6년의 차이가 있어 경험 축적측면에서 유의미한 평가가 가능하다. 에스삐리뚜산뚜는 주지사가 정책집행과정에서 브라질노동자당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 사정을, 브라질리아는 주지사가 당과의 관계나 정책수행의 측면에서 모범적이었음에도 재선에 실패한 배경을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여기에서는 먼저 브라질노동자당지방정부의 집권 경험의 첫번째 사례로 지아데마지역을 살펴보도록 하자.

   

‘빈민가의 도시’에서 ‘주민들을 위한 도시’로 변해간 지아데마

지아데마는 브라질노동자당의 기원이 된 상파울로시 외곽에 위치한 공업도시 중 하나로 1982년 기우손 메네제스(Gilson Correia de Menezes)를 최초의 브라질노동자당시장으로 배출했다. 메네제스정부의 초기의 방향은 도시서비스 개선과 정책 집행에 있어 시민의 참여를 촉진시키는 데 집중됐다. 메네제스시장은 당선 후 민중평의회를 조직하여 통치의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으나 조직기반의 결여로 사실상 민중평의회 구성이 불가능해지자 시정부의 특정 정책과 연관하여 주민의 조직화를 추진하려 했다.
 
원래 지아데마는 인구의 1/3이 빈민가(favela)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1982년 집권 당시 도로포장율은 낮고 대중교통서비스는 열악하였다. 하수시설 부족과 쓰레기수거의 불규칙성은 심각한 위생문제를 야기했다.

따라서 집권 초기에 정책의 중심지는 상파울로에서 영입된 아미르 카이르(Amir Antonio Khair)가 이끄는 기획국이었다. 기획국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빈민가에 전기, 수도, 하수시설 등 기본적인 도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카이르는 이 사업과정에서 주민의 참여와 조직이 병행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는 빈민촌주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도로와 구획의 크기, 도로개설을 위해 필요한 변화 등 구체적 사안들을 하나하나 주민들과 논의하였다.

시정부는 또한 주간탁아소 운영, 청과물도매시장의 건설, 영양실조 예방을 위한 공동체 채소밭프로그램, 건축물인허가신청 간소화, 손수 건축사업의 기술적 지원, 쓰레기 수거, 쥐 박멸사업, 오염된 수로의 청소 등의 사업을 실시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시의 각 구역별로 주민들로 구성된 보건위원회가 설치됐다.

이에 대해 비센트 트레바스 제도문제담당비서는 “현재 브라질노동자당이 운영하는 지자체 수는 2004년 당시 187개로, 1982년 포스탈레자시, 지아데마시의 당선으로 시작됐다”면서 “교육, 보건, 주택 등 공공정책 발전의 필요성을 제기해 모든 지자체는 우선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정부를 계속 운영할 수 없어서 ‘도시외관 유지’ 등 작은 분야에서 삶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지역주민의 일자리 유지, 창출, 임금보장도 중요하고 기초단체에서 직접 세금 징수를 통해 재원조달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며 “치안책임은 주정부가 지고 있는데 주민들은 시정부가 갖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브라질노동자당이 운영하는 지자체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주민 요구사항에 대한 정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아데마시의 당정간의 갈등

정책적 측면에서의 이러한 성과와 주민 참여의 조직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정간의 갈등은 지아데마시정부의 통치능력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시장과 시당지도부의 정파적 대립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는 결국 참여적 정책 집행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당정간의 갈등은 먼저 시의 고위직임명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다. 당지도부는 시청고위직은 브라질노동자당활동가여야 하며 임명과정에 당의 의견을 존중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시장이 고위직임명에 전권을 행사하자 브라질노동자당지도부는 시장과 지지세력을 개량주의라고 비난하였다. 당과의 갈등 외에 시장은 시의회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17명의 시의원 중 브라질노동자당 소속은 6명에 불과하였으며 야당은 비협조적이었다. 더구나 당지도부에 가까운 대부분의 브라질노동자당의 시의원들은 시장에 비판적이었다. 사회적 지지기반도 미약했다. 지아데마에서의 사회운동의 취약성으로 시정부는 자신을 지지해줄 풀뿌리조직 기반 역시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1983년 5월 시장과 당지도부의 갈등이 악화되어 브라질노동자당의 전국지도부까지 개입했으나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장은 자신이 브라질노동자당에 의해 전체 인구를 통치하도록 선출되었다고 주장했으나 당지도부는 시장이 브라질노동자당에 의해 당선된 사실을 강조했다. 지도부와 지지세력은 최상층부고위직뿐만 아니라 행정적 결정도 먼저 의회의 브라질노동자당의원단과 지도부, 15개 누클레오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당내에 정치적 대표성의 성격과 선출된 대표가 당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지느냐에 대해 당내에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큰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시장은 당과 시의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으며 시장의 고립이 심화되자 시장은 가시적 행동과 공공사업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정당성을 강화시키려 했다. 기획국이 주도한 빈민촌의 주민 참여 과정은 즉각적인 정치적 지지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보수적 언론은 오히려 브라질노동자당의 당정 갈등을 집중보도하였다. 언론과 당의 비판, 협소한 사회적 지지기반으로 위기를 느낀 메네제스는 시행정의 효율성을 입증하고자 기획국 주도의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참여과정의 조직화보다 가시성이 높은 건설프로젝트를 선호하였다. 이는 결국 시장과 기획국장 카이르의 갈등으로 이어져 빈민촌개선사업은 인적서비스국으로 이전되었으며 주민들의 점진적 참여를 통한 주민조직 건설사업은 정파투쟁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포기됐다.

  

이와 관련해 귀바(Guiba)브라질노동자당노동위원장(씨유티(CUT)금속노조위원장, 국제금속노련라틴아메리카부위원장)은 “1982년 브라질노동자당은 지자체 중 두군데를 장악했는데 바로 포르탈레자, 그리고 에이비씨(ABC)공단지역의 지아데마이다”며 “그러나 포르탈레자의 실패를 계기로 지자체운영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밝혔다.

지아데마의 위기는 1985년에는 상당히 완화되었다. 이는 1985년 메네제스에 가까운 후보가 당지도부에 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시당지도부는 시장을 지지했으나 당과 시정부, 민중 조직간의 관계가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시는 지역별예산공개청문회를 열었으며 여기에서 예산안 마련을 위해 재정국과 함께 일할 대표자도 선출하였다. 보건교통분야에서 지역별위원회도 수립되었다. 이는 시정부의 투명성과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하였으나 이러한 주민조직은 특정정파의 권력기반으로 인식되었으며 대중참여의 주도권은 여전히 시정부에 있었다.

브라질노동자당의 전국지도부는 지아데마의 당정간 갈등을 국지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5년 포르탈레자에서의 또 다른 당정 갈등으로 이 문제가 일반적인 성격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1988년 브라질노동자당정부의 수가 늘어나자 당지도부는 시정부를 단순히 당의 정책도구로만 인식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지아데마의 문제는 1980년대말과 1990년대 초 상파울로시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당정간 갈등과 당내노선논쟁, 그리고 당의 운명

켈트 야콥슨 씨유티국제담당위원장은 “지도부선출에서 전국지도부는 주정부파견대의원이 선출하고 주지도부는 하위파견대의원이 선출한다”며 “시지도부는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며 상급단체(주, 전국)지도부가 늙고 보수적이고 타락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씨유티, 에프에스(FS), 씨지티(CGT)는 법에 따르면 존재할 수 없는 법외조직인 셈인 그러나 정부는 사실상 씨유티를 인정하고 있다(씨유티에 국제노동기구(ILO)대표 파견 요청)”고 설명했다.

한편 조아큄 소리아노 브라질노동자당정치교육비서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사회주의는 룰라도 브라질노동자당 초기사회주의정당임을 선언했는데 1980년대 동안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하는지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면서 “그 당시 국제정치의 영향도 있어 니카라과산디니스타를 돕기 위해 분견대도 파견했고 폴란드자유노조운동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지를 보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다원성이 실현되는 과정이며 브라질노동자당의 사회주의는 여성운동, 반인종주의 운동(흑인문제), 환경운동 등 다른 사회운동의 성과를 반영한 것으로 정리됐다”며 “브라질노동자당의 사회주의는 주정부, 기초정부 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실천문제로서 참여예산제 도입도 그러한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브라질노동자당의 내부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당역사는 다양한 사회운동세력들의 연합으로 창당됐다”면서 “따라서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기본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다양한 정파비례에 따라 그것을 반영한 지도부 구성을 해야 했으며, 30% 여성할당제도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각 정파는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따라, 그리고 브라질노동자당강령, 룰라의 선거강령에 대한 입장에 따라 구분되는데 즉, 구체적인 쟁점에 따라서 그룹이 형성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지역정파, 참여예산제비판정파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브라질노동자당의 룰라정권이 신자유주의세계화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패스캔들에 휘둘리며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은 초기 브라질노동자당이 내걸었던 사회주의정당에서 다원화된 사회민주주의로의 노선변화를 거치는 과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편 브라질노동자당의 내부 갈등과 당의 노선변화 또한 최근 이남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겪고 있는 내부문제와 상당부분 흡사한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인 듯싶다. 여기서 이남의 민주노동당이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등 각종 정책 등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남과 브라질의 사회구조와 기반, 성격이 다른 조건하에서 민주노동당이 브라질노동자당의 정파비례등록제 등 당 내부 민주주의조차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인터내셔널 기자

   

상파울로시의 ‘당중심성’과 ‘행정주의’간의 갈등 ⑤

2006-04-28 오전 4:54:06

   

브라질 최대도시로 알려진 상파울로시에서 브라질노동자당의 집권은 1982년 지아데마시집권 이후 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상파울로빈민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루이자 에둔디나(Luiza Erundina)가 상파울로시청을 접수했다. 그러나 역시 상파울로에룬디나(Erundina)정부도 지아데마와 마찬가지로 취임 초부터 상파울로시당지도부와 심한 갈등에 시달렸다.

문제의 발단은 상파울로의 20개 구역의 구역행정관(administrador regional)의 임명이었다. 구역행정관은 주민참여와 분권화의 측면에서 중요한 고위직이었으며 시정부의 각료와 동급의 위상을 차지하는 고위직이었다. 문제는 에룬디나가 시당지도부의 요구를 거의 무시한 데서 출발했다. 시당지도부는 20명의 구역행정관의 대부분을 자파인 아르치꿀라상(Articulação) 소속 인물들로 채울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에룬디나는 7명만을 받아들였으며 이 때문에 시당지도부와 시장사이에 적대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브라질노동자당시장후보경선 당시의 갈등의 연속선상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당시 상파울로시브라질노동자당지도부에는 9개의 정파가 존재했는데 주류는 온건 실용주의 정파인 아르치꿀라상이었으며 나머지 정파는 보다 좌파적인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정파와 이념적 성격이 강한 극좌트로츠키정파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당시 시장후보경선에서 아르치꿀라상과 룰라(Lula)의 브라질노동자당전국지도부 등은 온건파인 쁠리니오 상빠요(Plinio Sampaio)를 지지했으며 나머지 정파는 대부분 급진적인 에룬디나를 지지했다. 당시 시당지도부를 구성한 온건성향의 아르치꿀라상정파는 급진좌파세력의 지지를 받은 에룬디나가 시장후보로 선출되자 선거운동에 별다른 참여를 하지 않았으며 에룬디나는 자신을 지지한 좌파정파의 도움만으로 선거운동을 꾸려나갔다.
  
에룬디나가 물려받은 상파울로는 예산적자, 공공시설의 부실화, 민간계약자에 대한 지불연체, 인플레로 인한 버스임금 및 요금조절 필요성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태였다. 당시 3000대의 시영버스회사에서 재고타이어가 단 하나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한다. 에룬디나는 곧바로 ‘집안정리’(arrumar a casa)에 우선순위를 뒀는데 이는 기술합리적 혹은 행정적 관점에서 정부기구의 기능 회복을 우선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당은 에룬디나의 시현안문제에 대한 이 같은 기술합리적 접근방식을 ‘행정주의’라고 비난했다. 브라질노동자당문건에 의하면 “행정주의는 사회기득권층의 정치경제권력과 관료기구를 둘러싸고 있는 사적 이익의 추구에 영합하는 정책이다. 행정주의는 공공정책의 기술적 법률적 측면을 과대평가하고 브라질노동자당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할 정치적 측면을 경시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브라질노동자당지도부는 당의 강령과 정치노선, 지지 기반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으며 시정부에 참가한 브라질노동자당인사들은 기술합리적 관점에서 정부의 행정적 책임을 중시하였다. 에룬디나는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당의 결정과 충돌되면 유감스럽지만 당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당정간의 관점 차이는 버스요금 인상문제, 공무원 파업문제, 고위직의 임명과 사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당정간의 마찰을 유발했다. 이 같이 각지역의 당지도부와 지방정부간의 갈등은 고질적인 문제였으며 이는 다른 도시에서도 되풀이됐다. 그러나 대부분 시장들은 사회제부문의 요구에 대응할 필요성 때문에 정파를 초월하여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당지도부와 갈등 끝에 브라질노동자당을 탈당한 깜삐나스(Campinas)의 시장인 자코 비타르(Jaco Bittar) 역시 노조위원장 출신이었으며 에룬디나 역시 상파울로시장경선에서 온건파를 물리친 급진파후보였다.

  

당정간의 마찰이 컸던 세가지 사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먼저 버스요금 인상문제는 에룬디나가 선거공약으로 버스요금을 재검토할 것을 약속했다가 취임 직후 요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버스운영체제의 적자는 물론 나아가 시전체에 재정위기를 초래할 것이 분명해지자 공약을 포기하고 버스 요금을 인상한 것을 말한다. 이 문제는 당시 대선에 나선 룰라의 선거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어 브라질노동자당전국지도부는 타도시의 브라질노동자당시장까지 참여하는 토론을 조직했다. 회의는 정파와 무관하게 인플레율 이상의 요금인상을 반대하는 룰라 및 당 지도부가 요금정책이 최소한의 수지균형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장들과 대립하는 구도로 전개됐다.

또한 공무원파업은 1989년 8월 임금조정을 둘러싸고 시공무원들이 파업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공공부문노조는 시정부가 임금법을 수정하여 어떤 경우에도 임금이 인플레보다 낮아지지 않도록 할 것을 요구하였다. 시정부는 이 요구를 들어줄 경우 시의 재정에 압박을 주어 빈곤층지원 자원이 더욱 부족해질 것을 우려하여 요구를 거부했다. 브라질노동자당은 공무원파업을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고위직 임명 및 사임 관련 갈등은 에룬디나가 구역행정관과 시가 운영을 책임진 기구의 책임자, 그리고 부시장 해임 등의 문제를 당과의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여 빚어진 사건을 말한다.

이러한 시장의 권능과 기능, 역할을 둘러싼 갈등은 1991년 중반 브라질노동자당 전국지도부와 룰라가 참여하는 당-정-의회의 3자포럼(Forum das Tres Instancias)이 구성되면서 완화되기 시작했다. 시정부의 기능이 시민사회의 부문적 혹은 계급적 이익과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는 인식은 후에 점차 확대되었으며 브라질노동자당전국지도부제도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비센치 트레바스(Vicente Trevas)는 이를 “당의 강령이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측면과 이념적 지도에만 의존할 경우의 정치적 단순화의 오류가 존재한다. 브라질노동자당정부와 당과 노조 및 운동과의 갈등 자체가 이러한 정치적 단순화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브라질노동자당의 상파울로시에서의 당정간의 갈등은 이남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울산 동, 북구청에서 최근 경험하고 있는 사례와 관련해 적잖은 교훈을 던져준다.

  

한편 시의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브라질노동자당은 보수야당과의 타협이나 대화보다는 시민사회의 풀뿌리조직의 동원을 통한 압력을 중시했다. 의회에서의 거래를 브라질노동자당의 원칙에 대한 타협으로 간주하고 최대의 압력으로 최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최대전략 (maximalist strategy)을 중시했다. 당시 시의회의 집권당이 된 브라질노동자당은 소수파였다. 총 의석 53석 중 브라질노동자당은 16석으로 30%에 불과했으며 다른 좌파정당의원을 합쳐도 19명에 불과했다. 이럼에도 초기 에룬디나정부는 의회내의 제휴를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브라질노동자당은 시민사회의 동원과 압력만으로도 시의원들에게 충분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브라질노동자당 1987년 5차 당대회결의안에는 선거에서의 제휴와 연합, 공동전선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는 이념적 유사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위한 아무 전략 없는 실용주의적 제휴는 경계되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동원과 압력을 통한 방법은 시의원들에게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1990년 9월, 시는 버스요금제로정책(Tarifa-zero)을 시행하기로 하고 의회에 법안을 보내기도 전에 대규모 홍보전을 진행했다. 시에서 발행한 팜플렛은 시민들에게 출신지역시의원을 찾아 법안의 중요성을 알리고 찬성을 유도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야당은 아예 요금제로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나왔다. 결국 시정부는 다음 해의 예산안 심의를 위해 요금제로 법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요금제로정책은 비용을 공공기금으로 지원하며 재원은 도시건축토지세(IPTU, Impostos Predial e Territorial Urbano) 증세로 부담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시외곽의 빈민가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이 일자리가 많은 도심으로 이동하는 교통비 부담을 줄임으로써 이들의 소득활동을 돕고 간접적 복지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입안되었다.

  

에룬디나정부의 말기에는 대의회전략이 ‘원칙’의 논리에서 ‘실용성’의 논리로 전환되었다. 그에 따라 1991년 내내 시정부의 의회 내 제휴세력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브라질노동자당지도부도 운동적 원칙을 강조하는 ‘확신의 윤리’에서 시장의 시민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책임을 인정하는 ‘책임성의 윤리’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브라질노동자당내에는 제휴를 중시하고 지방정부의 경험을 유용하게 활용하며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하며 좌파정당만이 아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같은 중도파나 브라질사회민주당(PSDS) 같은 중도좌파정당과의 제휴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한편 2000년, 에룬디나 이후 8년 만에 상파울로시장에 당선된 브라질노동자당의 마르타 수플리시(Marta Suplicy)는 에룬디나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마르타는 시정부고위직 임명에 있어 주류정파를 적절히 안배하고 의회에서도 다수파인 우파의 여러 정당과의 폭넓은 정책적 제휴를 모색하여 안정적인 시정운영능력을 과시했다.

       

이처럼 브라질노동자당의 상파울로시에서의 지방정부집권경험은 진보적 정당이 지방정부를 장악한 후 행정주의, 의회개량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원칙과 독자성을 지키면서 연립(연합)정부가 아닌 폭넓은 정책공조(제휴)를 통해 지방정부를 안정적으로 관리, 운영해야 성공가능하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브라질노동자당의 경험은 진보적 정당내부의 정파문제를 대립적으로 풀지 않고 통합과 단결의 원칙하에 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시사해 주고 있다.

인터내셔널 기자

  

에스삐리뚜산뚜 주지사가 브라질노동자당(PT)에 등 돌린 사정? ⑥

2006-04-28 오전 4:52:58

   

브라질노동자당 집권경험의 세번째 사례는 바로 에스삐리뚜산뚜(Espirito Santo)주다. 에스삐리뚜산뚜는 브라질의 남동부해안가에 위치한 주로 그 면적이 상파울로보다 1/6정도로 작으며, 대서양 열대우림지대로 상파울로와 함께 커피생산지로 유명하다. 에스삐리뚜산뚜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지방정부 경험 중에서 내분과 갈등이 가장 격렬했던 지역이다.

에스삐리뚜산뚜 내의 비또리아시장을 역임했던 비또르 봐이즈(Vitor Buaiz)는 1994년 총선에서 55.5%의 지지율로 주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주의회 구성은 봐이즈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총 30명의 주의회의원 중 브라질노동자당출신은 4명이었으며 우호적 좌파를 포함해도 총 7명에 불과했다. 그는 우파와의 정치적 제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자유전선당(PFL, Liberal Front Party) 및 진보개혁당(PPR, Progressive Renewal Party)과 제휴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봐이즈는 자신이 소속당과는 대립하게 되고, 우파의 지지에 의존하게 되면서 결국 우파의 볼모가 되고 말았다.

          

봐이즈가 우파의 볼모가 된 사연?

앞서 말했듯 에스삐리뚜산뚜주의회는 브라질노동자당이 압도적으로 열세다. 더구나 재정적으로 아주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구 300만의 주에 공무원수가 무려 4만2000명에 달했으며, 매달 적자가 미화 2500만달러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봐이즈가 선택한 것은 타협과 개량이었다.

지아데마가 시민의 참여를 촉진하며 도시서비스 개선과 보건위원회 설치 등 브라질노동자당의 정책을 적극 수용했다면 에스삐리뚜 산뚜의 봐이즈는 초기부터 당정책을 구현하기보다 우파와의 정치적 제휴에 더 관심을 두었다. 재정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세액공제 축소, 금융기구 전문화, 조세징수능력 강화, 주립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등 소속정당주의원들의 주장과 달리 공공부문 노동자의 자발적 명퇴, 주 공무원의 복지혜택 감축, 주영기업의 비용감축, 주립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 친기업적 개혁안은 우파의 지원 하에 1996년 10월 23:4로 통과되었으며 이로 인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봐이즈정부의 실패는 타협과 개량정책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분파성은 브라질노동자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미 그는 1992년 비또리아시장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소속정당의 후보가 경쟁정파라는 이유로 타당후보를 지지, 당선시킨 경력이 있다. 주지사시절에도 그는 주정부 구성에서 주로 자신이 속한 온건정파(Unidade na Luta) 인물들을 중용하면서 다른 정파와 마찰을 빚었다. 그 결과 같은 노동자당 의원 중 자파 1명을 제외한 3명과 대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봐이즈는 1997년 8월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브라질노동자당전국대회가 열리기 직전 탈당을 하고 만다. 그의 탈당은 주정부내의 지지파 50명의 연쇄탈당, 당원의 40% 탈당의 초유사태를 불러왔다. 막대한 타격을 받은 노동자당은 결국 1998년의 주지사선거에서 자체 후보를 내지 못했으며 노동자당의 전통적 지지자들도 내분에 지쳐 등을 돌린 경우마저 생겼다.

     

도망간 브라질노동자당의 정체성 회복하기

봐이즈의 타협과 개량정책으로 브라질노동자당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17년째 참여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뽀르뚜알레그레와 달리 노동자당의 기본 전략인 대중참여의 원칙이 포기되었고, 그로 인해 노동자당의 지지기반인 공공부문노동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지아데마의 경우 역시 원내외의 갈등이 있었으나 이는 정책 구현과정에서의 부분적 갈등이었다면 에스삐리뚜산뚜의 경우는 보다 본질적인 정책 포기로 인한 갈등, 분파적 집행으로 인한 갈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브라질노동자당은 창당시절부터 사회주의를 목표로 걸었으나 진보를 지향한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용해왔으며 이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발휘되어 탄탄하고 넓은 조직기반과 대중동원력을 갖게 하였다.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용하는 차원에서 지도부 선출도 정파별로 후보를 내어 득표순위에 따라 배정하고 그 선출과정을 6개월동안 진행하면서 각 정파별주장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영이 소수정파를 배려하는 내부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당운영을 당중심, 당원중심으로 가져가기보다 정파중심구도로 치우치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이남의 진보정당이자 통일전선적 지향을 갖고 있는 민주노동당도 원내외의 갈등, 정파간의 갈등으로 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오히려 브라질노동자당은 누클레오(Nucleos)와 예비회의 등 대중의 의사수렴과 참여를 보장하는 운영을 더욱 강화하면서 당 중심성을 회복하고 민주노동당 역시 당의 기본체계인 지역위원회, 분회를 중심으로 당 중심성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브라질노동자당이 씨유티(CUT)노조의 기반으로 창당한 전통을 이어 의회중심이 아닌 대중중심의 관점도 올바로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이며, 민주노총, 전농의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 역시 예외의 과제가 아니다.

인터내셔널 기자

  

브라질노동자당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준 브라질리아 ⑦

2006-04-28 오전 4:51:59

  

전국의 1/4이 평원지대인 브라질에서도 가장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브라질리아. 1960년 당시 주셀리노 쿠비체크 대통령에 의해 창시되어 1천일의 공사기간이 소요된 비행기모양의 인공계획도시 브라질리아는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 각계각층의 인적구성과 여러 유형의 건축물로 다양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브라질리아의 시민들은 현재 전국 제일의 소득계층이며 최고수준의 환경친화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고 있기도 하다.

작은 도시지만 최고수준의 소득계층이 살고 있는 이 수도를 집권한 이는 다름 아닌 브라질노동자당의 크리스토방 부아르께(Cristovam Buarque)다. 부아르께는 1995년 에스삐리뚜산뚜의 봐이즈와 같은 시기에 수도 브라질리아의 주지사로 취임했다. 에스삐리뚜산뚜가 재정적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반면 브라질리아는 수도라는 조건에서 연방정부가 예산의 60%를 지원하고 있어 재정의 어려움이 덜했으며 치안도 안정될 수 있었다.

부아르께는 봐이즈와 달리 노동자당의 상징인 참여예산제를 당선직후 바로 실시하여 2년 후에는 3만4000명이 브라질리아의 예산 결정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가족보건서비스를 개선하고 새로운 교통법을 제정하여 사고와 사상자를 크게 줄였다. 그러나 부아르께의 가장 유명한 치적은 바로 취학장학금제도(Bolsa-Escola)였다. 인센티브와 제약을 적절히 활용한 취학장학금제도는 국가의 부담이 가중되는 전반적 복지제도와 달리 주예산의 2% 미만의 액수로 장기적 관점의 교육 재분배를 지향한 제도로써 지역운동가는 물론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국제적 평판을 얻어 여러 나라에 수출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추진의 결과 부아르께는 브라질리아 역시 총 24명의 주의원 중 노동자당 출신은 6명에 불과했으나 주의회와의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었으며 당의 확고한 지지 또한 담보받았다. 봐이즈가 노동자당의 소수전략을 타협과 개량의 방법으로 해결하려했다면 부아르께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대중참여의 원칙하에 노동자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려했다. 또한 그는 분파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밤늦게까지 당 활동가들과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당과 상호존중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또한 주의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당의 유능하고 안정적인 통치력을 입증하는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아르께는 3%의 득표율 차이로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이는 현재 브라질노동자당이 처한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재선에 실패한 이유는 두가지로 분석된다. 브라질리아는 인구 12명당 1명이 공공부문종사자로 전국에서 그 비중이 가장 높은 주이며 유동자산의 80%를 공공부문의 임금과 복지혜택에 지출하고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재정압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부아르께는 자발적 명예퇴직이 아닌 임금상한선을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공무원 정원을 감축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공공부문종사자들은 이러한 부아르께 주정부의 능력과 치적을 인정하면서도 재선에서 공공부문종사자에게 임금 20% 인상을 약속한 PMDB의 조아낑 호리즈(Joaquim Roriz)를 지지하고 말았다. 또한 노동자당 소속 의회보좌관이었던 게르손 고메즈(Gerson Gomez)의 경우 호리즈가 민선지사로 있던 시절(1990-94), 북동부 출신의 빈곤층에 많은 토지를 공여하여 주택보급에 기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호리즈를 지지했다며 패배의 이유를 들고 있다.

   

결국 부아르께가 재선에 패배한 원인은 하나로 모아진다.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가 시행되고, 진보정치가 구현되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식수준도 높아야 가능하다. 의식수준이 높지 못하면 노동조합도 자기본위주의가 생기고 지역주민도 일회성의 시혜적 정책에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지역차원의 사례는 아니지만 소련이 붕괴된 이유 또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제도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결국 국민의 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교양사업을 간과한 점을 들고 있다.

이남의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해방이후에도 과거청산이 올바로 실현되지 못한 현실에서 부패가 만연해온 정치구조는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반감과 비뚤어진 정치의식을 심어주었다. 지금 진보정치가 새롭게 피고 있으나 당원을 비롯한 대중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지 않고서는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현재 브라질의 교육수준은 문맹이 1500만, 평균교육기간이 4년에 불과하며, 교육불평등도 높은 편이다. 브라질리아가 재선에 패한 한계는 브라질리아 주정부에 국한되지 않은 브라질노동자당의 한계이자 앞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몫이다. 

인터내셔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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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14:14 2006/07/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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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전선체 건설 추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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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궤도에 오르려고 하는 단일전선체 논의에 대해 평등사회로전진하는활동가연대(준)(이하 전진)에서는 "전진은 단일전선체에 반대하고 당이 투쟁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입장이 중앙위원회에 제출되어 이를 통과시켰고, 현재 토론용 자료에 대해 회원 내부의 토론을 거치고 있다.

 

오늘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보니 판갈이뉴스에 '단일연대조직 논의, 어디까지 왔나?'라는 제목으로 기획기사가 나오고, 이는 주간 진보정치에도 실린다고 한다. 확실하게 세몰이를 하려는 모양이다. 이것이 당 혁신안으로도 나오는 판이니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오는 7월 8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의 단일 연대 조직에 대한 입장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될대로 되라 식인지 거의 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그 동안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내외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미동도 보이지 않고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수인가?

 

전진 내부의 토론문을 올리면서 나름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단일전선체 건설 추진에 대한 전진의 입장(토론용)

  

전국연합에서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한 단일연합전선체 건설을 목표로 내세운 이후 다각적인 방도로 이의 실현을 추진하고 있다. 민중연대의 발전적 재편이라는 형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실은 오랫동안 전국연합에서 준비해 온 기획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현재 논의와 진척은 대단히 미진한 상태이다. 이는 민중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조직들 속에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과 대중조직이 자체 투쟁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중연대가 이를 추진할 만한 자체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단일전선체를 만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일전선체를 추진하고 있는 쪽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현재 예상되는 방식은 대중조직의 의결을 통해 힘의 논리로 정리하는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에서는 진보진영의 총단결체의 건설이라는 표현으로 주요 사업으로 설정해 놓고도, 전혀 논의를 하고 있지 있다. 오히려 논쟁을 회피하고 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단일전선체에 대해 전진은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는 없다. 지난 6월 24일 중앙위원회에서 전진은 단일전선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입장 표명도 시급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지부별로도 단일전선체에 대한 토론을 시급히 조직하고, 대응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한다.

   
1. 단일전선체 논의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나?

  
전국민중연대는 2005년 9월 대표자회의를 통해 정책위원장을 책임자로 하는 ‘전국민중연대조직발전기획단’을 구성키로 하고, 기획단에서 조직발전시안을 발표하였다. 시안은 민중연대전선의 발전적 재편을 통해 진보진영의 총단결체로서 단일연대조직을 건설해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올해 4월 19일 기획단은 ‘민중연대 조직발전을 위한 1차 토론회’를 개최하고 올해 안에 단일연대조직을 반드시 건설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1차 토론회 이후 뚜렷한 진전 없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사실 단일연대조직이란 표현으로 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논의는 단일전선체, 연합전선체, 상설연대체 등의 이름으로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전국연합은 6.15 공동선언 이후의 정세를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로 규정하고, 2001년 9월방침과 2002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10년의 전망 3년의 계획을 세우고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3년의 계획으로 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정당의 건설 방침을 정한 바 있다.

2005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9월 방침 이후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3년안에 대규모연합전선체를 결성한다는 목표가 아직 온전히 달성되지 못하였으며, 결정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2006년에는 반드시 대규모 연합전선체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현재 민중연대 주류의 입장은 이러한 방침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 좌파 제조직들은 단일전선체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연합전선체의 건설이 아니라 현재의 민중연대가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의 구심이자 다양한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적 흐름들을 활성화시키는 정치적 조직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자기혁신이라는 주장이다. 노동자의힘,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전진이 3월 25일 주최한 토론회 ‘단일연대연합체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이들 조직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단일전선체 논의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한편 민주노총은 3월 28일 3차 중앙위원회에서 노동자-농민 등 기층대중조직이 책임있게 참여하는 진보진영의 상설연대체를 연내에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으며, 4차 중앙위원회를 통해서도 표현은 바뀌었으나 ‘진보진영의 총단결체 건설사업을 하반기 투쟁과 결합하여 전개하여 연내에 완료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이 결정은 토론 한번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계속 문서상의 결정으로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총이 최종 결정을 내릴 시기에 반드시 근거로 제시할 것이다.

  
2. 단일전선체 논의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현재 단일전선체 논의는 전략적 요구와 실용적 요구가 뒤섞여 제기되고 있다. 즉 한편에서는 전략적 전선체로서의 성격을 부여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연대단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필요성의 수준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 민주노총에서는 전략적 논의보다는 실용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논의의 연원을 살펴보면 실용적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단결은 어느 운동 수준에서나 항상 요구받는 과제다. 하지만 단결해야 한다는 단순 명제로 모든 운동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낸다는 것은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질식시킬 수 있다. 특히 대의체계라는 형식을 빌어 다수결로 결정하고 집행을 강요할 경우 운동질서의 패권적 재편으로 귀결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중연대의 재편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운동이 단일전선체를 구성할 것에 대한 요구가 강력한 상태가 아님에도 주요 대중조직의 결정 방식으로 이를 진행시키려 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상급단체를 만들게 되는 것이고, 현재 우리 운동이 가지고 있는 질곡 중의 하나인 관료적 사업 작풍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운동에서 진정 시급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검증없이 이루어지는 단일전선체 건설은 심각한 문제륽 낳을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주요 핵심 쟁점들을 살펴본다.

  
1) 조직의 성격과 관련하여 : 대의체게를 통한 전선강화는 조직형식주의적 발상

   
조직발전 시안은 단일연대조직을 ‘진보진영의 상설적 공동정치투쟁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정치투쟁체는 우리의 모든 요구가 정치적 투쟁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의 정치투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선체에 대한 반발을 예상해서 개념을 무뎌서 표현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논의의 흐름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남한운동의 최고의 전략적 지위를 가지는 전선조직을 의미하거나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조직은 그 토대이며 민주노동당은 그 전선조직을 추동할 매개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 지점은 전국연합이 그간 운동과정에서 몰계급적 태도를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혁성을 이야기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는 남한 변혁운동의 경로에 대한 상의 차이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전국연합은 남한에서 전선을 최고의 조직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그 전선은 계급연합에 의거한 것이기에 계급적으로 끊임없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전략적 통일전선 조직은 대중조직들과 정치사회단체들의 조직적 결의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선 조직은 단선적 성장전화의 발전경로를 밟는 것이 아니다. 전선조직은 정세적 긴박성과 정치적 목표에 의해 규정받는다. 전선조직은 당면한 정세의 필요성과 정치적 목표를 명확히 할수록 그 실천적 규정력과 결합력이 강화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상적이고 상설적인 공동투쟁의 과제를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 단체의 조직적 결의에 의해 전략적 전선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지주의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관념은 조직형식주의적인 사업작풍과도 연관된다. 지금 민중연대에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다종다기한 투쟁적 흐름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내고 조정하는 지휘력과 정치사업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의 부재가 현재 민중연대로 조직과 투쟁이 집중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무시하고 형식적으로 대의체계를 가진 상급단체가 된다고 해서 조직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안일한 발상이다. 그리고 형식적 결의에 의해서 집행을 강요하는 조직이라면 운동의 다양성만 가로 막을 뿐 우리 운동에 일체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조직건설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 운동진영의 패권적 재편으로 귀결

   
조직발전시안은 단일연대조직 건설의 필요성으로 제기하고 있는 정세의 요구는 사실 민중연대를 만들었던 필요성이기도 하다. 결국 단일연대조직 결성의 특별한 필요성으로 남는 것은 연대체의 난립으로 운동의 소모성, 분산성이 극심하다는 이유 밖에 없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연대전선에서 민중연대가 제대로 역할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고백이다.

 

그러나 실제의 필요성은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합이다. 통일연대는 2006년 총회에서 통일운동 조직과 기구들을 단일 연대전선체로 결집시키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리고 단일연대전선체 건설과 함께 615 민족공동위 강화를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그나마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힘을 모았던 민중연대와 달리 통일운동이 조직의 가장 주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민중연대의 강령에 통일의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통일연대가 있음으로해서 역할분담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운동의 소모성, 분산성으로 이해되고 양 조직이 따로 갈 필요가 없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615민족 공동위로 인해 통일연대의 존립의 근거가 사실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필요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양 조직의 통합을 대중조직의 힘으로 담보받아 명실공히 진보진영의 최상위 조직으로 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운동조직의 패권적 재편에 다름아니며, 엄청난 반발이 야기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민중연대의 통일성은 조직의 통폐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지도력과 조정력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3) 정치적 목표와 관련하여 - 통일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강화가 우선

  
민중연대가 상설공투체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민중연대가 연대조직의 대표성을 표방할 수 있었던 근거이며, 민중연대의 실천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상설공투체로 함께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민중연대는 조직내부적 완결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확산시켜내고 이를 하나의 전선으로 추동해내는 역할이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민중연대는 반신자유주의 투쟁뿐만 아니라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민중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통일운동조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를 무시하고 기존 조직을 하나의 대의체계내로 통합시키겠다는 사고로 임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조직의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3.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투쟁전선이다.

    
1) 민주노총에게 필요한 것은 상급단체로서의 전선이 아니라 투쟁전선이다.

  
지금 현재 노동운동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상위 기구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산별조직 건설과 아울러 노동운동의 전망을 새롭게 찾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노동조합 간부들은 단일전선체 건설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연대사업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많은 연대사업에 대해 창구단일화를 추진하는 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단일전선체를 추진하는 쪽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결정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버리고 나면 그 뒤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전체 운동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총자본의 공격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세를 돌파할 근본적 변화를 민주노총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지지부진한 혁신의 과제를 철저히 해내는 것이 전체 운동전선을 복구시키는 지름길이다.

  
2) 민주노동당은 전체 운동의 중심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된다.

  
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에 요구되는 연대의 전선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단일전선체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그 자체로 대중조직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전체 운동의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당이 전략적 전선체가 없어서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당은 현재에도 전체운동에서 중심성을 갖기를 요구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 역시 단지 선거전략의 오류 때문만이 아니라 전체 운동에서 당이 중심으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은 전체 운동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활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노총이 굳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정세와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전선체가 만들어 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선체를 추인한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자기역할 포기선언에 다름아니다.

  
3) 민중연대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더욱 강화할 지도력과 조정력을 갖추는게 우선이다.

  
우리는 민중연대의 강화에 동의한다. 그러나 민중연대의 강화는 대의체계를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연대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투쟁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민중연대가 그러한 연대를 이끌어낼 지도력과 조정력을 갖지 못하였다면, 왜 그러했는지 철저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 운동단체들이 많거나 대의체계가 없어서 지도력이 발휘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운동체들이 나타나는 것은 전혀 우려할 일이 아니며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정말 전선조직을 갈망한다면 그 투쟁 속에서 전선조직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전선조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중연대의 조직적 전화로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에서 민중연대가 두터운 신뢰를 쌓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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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17:41 2006/07/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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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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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는 언제 봐도 감칠맛이 난다.

아침에 책상위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소식지 "건강세상" 2006년 5월호에 여는 글로 나와 있는 게 눈에 띄어서 옮겨온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강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 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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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3 09:33 2006/07/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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