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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6-7.2 일주일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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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2006. 6. 26 인간관계라는 게...

  

점심 때 센터 내부 회의가 제주은갈치에서 있었다. 나름대로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회의에 임했다. 인수인계문제도 나오긴 했는데, 명확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만두게 해야 할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도 하였고...

 

아무래도 연구실의 분위기를 소장이 잘 모르는 듯하여 더이상 모 연구원과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제서야 사태를 심각하게 파악하는 듯했다. 후임자 물색이 쉽게 될지 모르겠다. BK21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데...

     

ㅇ 2006. 6. 27 골리앗 산별노조 ‘폭풍전야’ (서울신문 2006-06-28)

 

서울신문에서 왠 일로 산별노조에 대해 다루었나 했다.

산별노조는 동일 산업의 여러 기업노조가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사측과 공동 교섭을 벌이기 때문에 사측은 이중 교섭에 따른 비용 증가와 잦은 파업, 정치 세력화된 노조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진다.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껏 무쟁의로 노사가 잘해 왔는데 노조가 산별노조에 가입하면 상급단체의 간섭으로 갈등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산별노조의 원조인 독일도 개별기업 교섭으로 변해가는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경영자총협회 김성연 팀장은 “주요 사업장이 산별노조로 전환하게 되면 노조가 총파업을 무기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하는 얘기가 노사분규 발생 건수를 보면 산별노조(보건의료·버스·택시·금속)가 사실상 분규를 주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별노조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산별노조로 가려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문제이다. 보수언론들은 앞으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하면서 비정규직을 외면한다고 비판하고서는, 뒤로는 이렇게 비정규직과 함께 가기 위한 유력한 노력인 산별노조 건설에 재를 뿌린다. 개새끼들!

 



ㅇ 2006. 6. 27 (화) 기부는 할머니들만 하는 걸까.

  

우리나라 돈으로 37조원을 기부하면서 워렌 버핏은 "사회로부터 벌어들인 재산은 다시 사회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앤드루 카네기의 말에 동감한다."고 했다. 37조(360억달러)는 세계기부 사상 최대액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만든 재단이 아니라 빌 게이츠가 설립한 게이츠재단에 기부를 하겠다고 밝혔다. 자선에 투자하려면 이 세상에서 자선을 가장 잘 하는 게이츠 회장에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니... 진정 투자의 귀재인 걸까. 
 

우리나라에서 기부는 할머니들의 전유물이다. 김밥할머니, 떡할머니, 무슨 할머니 등 할머니들만이 평생을 걸쳐 모은 재산을 모두 기부해서 - 그것도 익명으로 - 신문에 나곤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재벌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곤궁에 처했을 때만 반강제적으로 기부를 한다.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이런 식으로 기부하려면 벌 때부터 노동자들에게도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한국의 재벌들과 비교해 볼 때 그것만 해도 어디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온갖 탈법을 저지르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래도 갑부들이 저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미국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단지 건전한 자본주의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37조 자선단체 기부” (경향신문 2006년 06월 26일 18:47:00)

  

ㅇ 2006. 6. 28(수) 박동서 교수 장지에 다녀오다

  

박동서 교수가 26일 오전 3시에 별세했단다. 향년 77세이다.

박 교수는 말그대로 행정학계의 대부이다. 한국에서 행정학의 씨앗을 뿌리고 그 시작을 이끈 사람인 것이다. 그의 죽음은 행정학의 1세대가 확실하게 끝났음을 의미한다.

말년에 그는 행정학이 지나치게 미국화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한국적 행정학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래서 채원형은 말년의 박동서 교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번 장례식장에서도 채원형은 거의 친아들들만큼 일처리를 했다.

어제쯤 문상을 가려고 하다가 우영씨가 아침에 함께 가자고 하길래 그러기로 하고 아침에 일찍 나와 강남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영결식에는 행정학계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행정대학원에서도 교수들만 14명이 왔다. 장지까지는 4명이 함께했고...

이미 은퇴한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인지 대학원생들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아침에 온 이들 중에서 박동서 교수를 직접 보고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은 나와 채원형 뿐이었다.

장지로 가는 사람들 중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함께 가기로 했다. 그 때문에 오전, 오후 시간을 다 허비했다.

특히 무덤의 둘레석이 관과 맞지 않아 바로 하관식이 끝나지 않았고, 그렇게 햇볕 아래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이 검게 타고 코가 빨갛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지 영결식과 하관식은 모두 기독교식으로 행해졌고, 같은 교회에 다녔던 듯한 할머니들이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가를 찬불가 비슷하게 부르는 것은 처음 본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버스 안에서 자버렸다. 나는 버스 안에서도 왜 이렇게 잘 자는지 모르겠다. 

  

SBS 아나운서 미인대회 참가 논란 (미디어오늘 2006년 06월 27일 (화) 17:13:23)

"개인적인 일" vs "방송 신뢰성 떨어뜨려"

   

2005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인 SBS 김주희 아나운서가 미스유니버스 대회 참가를 위해 7월 초부터 3주간 <생방송 모닝와이드>의 진행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끌시끌...

SBS의 한 아나운서는 "회사가 이미 미스코리아인지 알고 뽑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면서, "아나운서가 연예인이냐 언론인이냐라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그런데 상업방송 SBS가 비키니 심사까지 치르면서 자신의 몸을 상품화한 이를 아나운서로 뽑았고, 그가 미스유니버스 대회 참가 때문에 나간다는데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듯하다. SBS 자체가 문제가 있는 방송일 따름이지. 

    

ㅇ 6006. 6. 29 (목) 전진 기관지위원회 회의

  

- 어제는 밤에 전진 기관지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정책위원회에 있었더니 자연스럽게 기관지위원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김형탁 동지와 통화하고 나서 갈 수 밖에 없었다.  

창간준비호 평가와 함께 창간준비2호 기획을 했다.  

지면으로 본 기관지는 글쎄... 생각한 것만큼 성이 차지는 않았다. 기관지를 받아본 회원들의 평가를 수렴해서 좀더 개선을 해야 할 모양이다. 김형탁 동지와 이슬공주 동지가 넘 수고했다.

  

어쩌다보니 창간준비2호 기획에서 당 혁신안에 대해 기획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은 지역위원회는 물론 중앙당 사정도 잘 모르는데, 게다가 후원회원으로 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어쩌다가 이런 기획까지 오는지... 아무래도 예전에 너무 많이 떠들었던 업보인 모양이다. 시간도 없는데, 제대로 할 수 있나 몰라.

  

- 회의 끝나고 술을 마시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이런 뒷풀이 자리에서 영양가 있는 얘기를 나누는 것은 운동권만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로 향했다. 집회는 마무리되었고, 널부러져 있는 노조원들. 민주노동당 당원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은 오늘 오후에 발표되는 금속산업연맹의 산별전환 투표에 가있고...

12시반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12.1%와 12.6% 사이에서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2007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구나.

아침에 뉴스를 통해 12.3%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노무현정권이 빨리 물러나야 하고, 자신이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으며, 택시운전도 빨리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왔다가 다시 삼성에 들어가야겠다고 횡설수설했던 귀가길의 택시노동자 생각이 난다.  

   

ㅇ 2006. 6. 29 (목) 상속세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

     

버핏 회장은 26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시도하고 있는 상속세 폐지 노력에 대해 “혐오스런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부의 왕조적 세습에 반대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상속세는 매우 공정한 세금이며 기회 균등의 이상을 유지하고 부유층에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경련에서 나서서 상속세는 세계적으로 폐지추세라고 하면서 상속세 폐지 또는 경감을 공론화하고 있다. 이 대비는 도대체...

   

물론 다른 미국의 갑부들은 상속에 더 나서고 있는 만큼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예외인지도 모르겠다.

     

버핏 “상속세 폐지 절대 안돼” (한겨레신문 2006-06-28)

   

버핏은 이번 기부결정이 “재산형성 과정에서 운이 좋았다는 자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항상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가족도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버핏은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점을 세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 자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것보다 많은 돈을 갖고 있다”면서 유산 상속에 대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느냐가 문제였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친구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버핏의 기부금이 보건사업과 교육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에이즈 백신 개발이 최우선 사업이 될 것이라면서 “15년이 걸리든 25년이 걸리든 우리 생애에 에이즈 백신이 개발되길 꿈꾼다”고 강조했다.

   

美갑부들 “피는 물보다 진해” (서울신문 2006-06-29)

    

미국 최대의 온라인 증권사 찰스 슈와브 계열의 투자회사 US트러스트가 상위 1%에 해당하는 150명의 부호를 설문조사한 결과, 배우자가 없을 경우 74%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답했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이들은 연간 수입이 30만달러(약 3억원)를 넘거나 재산이 600만달러(약 60억원) 이상이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이는 9%밖에 되지 않았다.

심리치료사인 스티븐 골드바트는 베이비붐 세대인 이 부호들이 “백지수표를 넘겨주려고는 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완전히 다른 세대이며 (상속에) 명분이나 의미, 가치 혹은 조건을 붙이기 위해 열심”이라고 설명했다.

  

ㅇ 2006. 6. 29 (목) 어머니 도시락이 대안이라고?

  

서울신문 어제 자에 나온 전기철 교수의 칼럼([시론] 어머니 도시락이 대안이다/전기철 , 서울신문 2006-06-28)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딴에는 급식문제의 대안으로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있는 도시락이 의미 있다고 봤을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정서와 사회의 공동체를 고양시키기 위해 도시락이 대안이라고 하는 그 속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게 왜 어머니의 몫이 되어야 할까.

  

여성들은 그냥 집에서 가사일을 돌보면서 아이들의 도시락 싸는 게 주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쓰면서 보편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얘기를 해야지, 어떻게 모든 것을 다 고려해야 하냐고? 바로 그런 사고가 급식문제가 발생한 이유가 아닐까.

    

ㅇ 철상 선배의 회사가 VK였군.

    

휘청거리는 ‘VK’ 동아줄 없나 (한겨레 2006-06-28)

중견 휴대폰업체 부도위기 일단 모면, 저가폰 공세·환율 영향 작년 적자 반전, OEM방식 막판 납품협상 돌파구 모색

  

그동안 잘나갈 때는 몰랐는데, 어려움에 처하니까 신문에도 나온다. 이철상 선배가 휴대폰업체를 운영했네. VK는 삼성전자, 엘지전자, 팬택 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자기상표로 제조하는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ㅇ 2006. 6. 30 (금) 새벽. 어제의 소개팅

   

-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모님과의 소개팅이 어제 있었다. 이 나이에 웬 소개팅? 그렇다면 선으로 하지 뭐.

주선자도 끝까지 남았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유쾌하고 부담 없는 만남이 되었다.

-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길치인 모양이다. 홍대 쪽에서 왜 그렇게 길을 헤매는지... 7시 반 약속이었는데, 약속장소를 찾다가 30여분을 허비했다. 게다가 갑작스레 내린 비는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나를 더욱 난감하게 하였고...

홍대 주차장골목, 서교호텔, 수노래방, 럭셔리 수노래방, 이런 것이 있었군.

- 2차의 코카인도 인상적이다. 대머리 아저씨가 맥주를 권하는 그림이 담겨 있고, 코카인이라는 상호명이 코카콜라를 본딴 메뉴판이 재미있다.

거기에서 블로그 이웃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가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 주선자와는 달리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것에 미숙하다. 

  

- 결과는? 부담없이 봤기에 그냥 부담없는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애프터는? 글쎄... 오히려 남친이 있는 주선자에게 더 끌렸다면 이상한가. 이상하지.

- 지금 엉겁결에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ㅇ 2006. 6. 30 (금) 새벽. 이명박 서울시장 인터뷰를 보고

   

“한나라 골수보수 벗어나려면 개혁성향 대표 필요” (한겨레신문 2006-06-29)  

   

이명박 시장의 인터뷰를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임을 부각시키고자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약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내부경선에서 떨어질 경우에는 여당쪽의 후보로도 출마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대선이 마지막 기회이니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ㅇ 손석춘의 고뇌

  

[손석춘칼럼] 왜 ‘모든 진보는 단결’인가 (한겨레 2006-06-29)

   

손석춘 님이 칼럼에서 "문제는 진보가 매도당함으로써 민중에게 오는 게 절망뿐이라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모든 진보가 단결할 수 있는 3원칙을 제안하였다. 과거 불문, 신자유주의 반대, 6·15 공동선언 실천이 그것이다.

아마도 손석춘 님은 새사연원장으로 있으면서 왜 주사파와 함께 하느냐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나 보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듯하고... 이 칼럼은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는 글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무조건 단결할 수는 없지 않나. 

    

ㅇ 2006. 7.1 (토) 광주에 왔다.

  

- 어제 최정규 선배도 설에 온다고 하고, 무슨 영화상영도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전진에서는 금속 산별전환 투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기념으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동생과 함께 광주에 내려왔다. 아버지 작품 낙관찍는 일 때문이다.

어제는 원천징수 처리문제로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잘잘한 일 때문에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지식센터에 계속 근무하기 어렵다.

후임으로 생각했던 오현주 씨도 그냥 조교일을 하기로 했다. 그냥 센터 일에 전념해도 되는데...

- 광주로 내려오는 길에 동생과 돌아가는 운동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잠을 자지 않고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으니 할 만큼 한 것이다. 동생과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광주로 내려온 목적은 거의 상실되었다. 부산표구에서 일이 있어서 이번에 낙관을 찍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4층 창고를 확실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충분히 시간이 되겠지.

  

ㅇ 2006. 7. 2 (일) 다시 서울로...

- 4층 창고를 정리하고 나서 그대로 서울로 올라왔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다가 그냥 토요일에 나선 것이다. 

4층에 있는 광주노동자문예운동연합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 때 공연이 있었다. 민중가요밴드 사람과 사람을 중심으로 전대 후문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시간이 되었으면 거기 가서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았을 텐데... 내가 알고 있는 이 단체의 성향 - 광전연합이다 - 과는 달리 공연 내용은 그리 치우치지 않았기에 그러했다.

밤늦게 운전하느라 동생이 너무 수고했다. 덕분에 일찍 서울에 올 수 있어서 오늘 있을 행문씨 결혼식에도 갈 수 있을 듯하다.

   

ㅇ 미제국주의의 만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 대법 "관타나모 기지는 부시 월권" (노컷뉴스 2006년 06월 30일)

미군 이라크 여성 강간, 일가족 4명 살해 (레디앙, 2006-07-01)

사건 숨기려 시신에 불질러…민간인 학살사건 중 최악

 

미 대법원이 관타나모 기지는 부시의 월권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이를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군이 이라크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후 사건을 숨기기 위해 불을 질러 이를 은폐한 것은 최악의 민간인 학살사건이고...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얼마전 미군 병사 두 명이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살해되어 사체가 훼손된 것이 발견된 이후 죄책감을 느낀 같은 부대 미군의 자백 덕분이라고 한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떠올랐다면 너무 관조적인가.

    

ㅇ 2006. 7. 2 (일) 행문씨 결혼식에 갔다와서...

   

행문씨는 결혼식 내내 경직되어 있었다.

친척들과 동문친구들만을 부르고, 거의 초대를 하지 않았으며,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는데, 많은 이들이 왔다.

주지스님이 하는 주례는 첨 들어본다. 게다가 주례사를 하는데, 하객들이 이렇게 떠드는 것도 처음이고...

센터 일 때문에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행대 사람들에게 결혼식을 알리지도 않은 행문씨. 그에게 미안하다. 좀더 신경써줄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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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3 00:57 2006/07/0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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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최저임금 결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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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새벽 2007년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시간급 3,480원(한달 주44시간 786,480원, 주40시간 727,32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현행 임금 3,100원(주44시간 700,600원, 주40시간 647,900원) 대비 12.3% 인상안이다. 노동계 위원과 재계 위원들의 줄다리기 사이에 공익위원들의 조정안이 합의안으로 채택되어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액수문제는 둘째치고 이번 최저임금 쟁취투쟁은 미흡한 점이 많은 듯하다.

우선 작년보다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만큼 이에 대한 노동계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던 6월 30일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렸던 집회 참가 인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산별전환 투표가 동시에 있었기에 그러했겠지만, 금속노조를 제외한 다른 금속연맹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별로 없었고, 전국에서의 결집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와서 연설을 하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의 결합도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당 깃발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당 활동가로 보이는 사람들은 새벽 12시 넘어서 다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당원들에게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의미 공유 및 홍보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결정이 매년 진행되는 시기별 투쟁의 하나로 단순하게 자리매김한 것이 안타깝다.

 

30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탔던 택시노동자는 나에게 "도대체 저 앞에서 이 새벽까지 지랄하는 넘들은 뭐하는 놈들이냐"고 묻는다. 택시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적용 등이 노동계의 요구안 안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 또한 이 투쟁과 무관할 수 없는데도, 단지 남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과 개별적 노동자는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조건 노무현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택시노동자 앞에서 그렇게 정권이 바뀌면 우리에게 뭐가 달라지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무조건 바뀌어야 한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에게 묻지마 투표를 한 것으로 보이는 그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씁쓸했다.    

매일노동뉴스, 레디앙의 기사,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성명을 담아온다.




2007년 최저임금 시급 3,480원…12.3% 인상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조정안 놓고 찬반투표 결과 채택

  

2007년 법정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12.3% 인상된 시급 3,480원으로 결정됐다. 이 금액은 일급으로 환산할 경우 2만7,840원이고 월액으로 환산하면 주44시간 기준으로 78만6,480원이고  주40시간 기준으로 72만7,320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28일 오후 2시부터 제 5차 전원회의를 열어 장시간 회의 끝에 29일 새벽 3시10분에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총 4차례의 수정안을 낸 끝에 공익위원이 낸 3,480원(12.3%)인상안을 놓고 최저임금위원들이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투표 참가자 25명 가운데 찬성 16명, 반대 9명으로 공익위원안이 채택됐다.
  
이날 회의에서 노동계는 지난 26일 4차 전원회의에 제출했던 3,700원(19.4%)에서 3,670원(18.4%)-3,590원(15.8%)-3,505원(13.1%)-3,490원(12.6%)으로 하향된 수정안을 냈다. 경영계 역시 4차 전원회의에서 제출했던 3,285원(6.2%) 인상안에서 3,305원(6.6%)-3,385원(9.2%)-3,440원(11%)-3,470원(11.9%)으로 이어지는 상향된 수정안을 냈다.
  
교섭과정에서 10.6%-13.1%의 조정안을 냈던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와 경영계에 합의타결을 요청했지만 결국 이견조율에 실패하자, 공익위원들이 최종적으로 낸 조정안을 놓고 찬반을 물었다.

김학태 기자  tae@labortoday.co.kr

2006-06-29 오전 8:58:24  입력  / 2006-06-29 오전 9:32:39 수정(1차)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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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0원 차이 때문에…교섭 막전막후

  

10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합의타결에 이르지 못하고 노동계 9명 전원이 공익위원 조정안에 손을 들어주며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최저임금 결정시한인 6월 29일 02시를 넘겨 노동계가 낸 최종안은 시급 3,490원(한달 주44시간 788,740원, 주40시간 729,410원)으로 현행 최저임금 대비 12.6% 인상안이고 재계가 낸 최종안은 11.9% 인상안인 시급 3,470원(한달 주44시간 784,220원, 주40시간 725,230원)이었다.
  
공익위원 별도 조정안 최초로 제출

노사가 낸 최종안이 시급으로 20원 차이에 불과하자 공익위원들이 “35.5%와 2.4% 인상안에서 이렇게 좁혔는데 좀 더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며 조정안으로 양쪽의 중간인 3,480원(한달 주44시간 786,480원, 주40시간 727,320원)을 제출했다. 2000년 들어 공익위원들이 별도의 조정안을 낸 사례가 한 번도 없었으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익위원이 조정안을 내도 되나?” “그럼 표결은 어떻게 하나? 세 안을 놓고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공익위원 안을 먼저 표결에 붙여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할 경우 노사단체 안으로 표결하기로 했다.
 
노사가 각각 이 조정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논의한 결과 노동계는 공익위원 안을 수용했으나 재계는 “합의할 수 있는 안이 아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 결과 총 25명 중에 노동계 위원 9명과 공익위원 7명이 찬성해 16명 찬성, 재계 9명이 반대해 회의 시작 뒤 13시간 만에 최종 결정된 것이다.
 
6월 28일 오후2시 법정 시한을 하루 앞두고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는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다 밤 9시 공익위원들이 조정안을 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자정 넘기면서 합의도출 시도

이 때까지 노동계가 낸 수정안은 3,590원(15.8%)이었고 재계는 3,385원(9.2%)이었다. 노동계의 안은 주40시간 기준으로 평균임금 50%를 4년에 걸쳐 달성하는 방안이었고 재계는 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낸 것이다.

이에 공익위원이 낸 최저임금 인상 범위는 하한선 3,430원(10.6%)와 상한선 3,505원(13.1%)로 그 근거는 주40시간 사업장 기준으로 중위임금 50%를 5년에 걸쳐 달성하는 방안과 3년에 걸쳐 달성하는 방안이었다.
      
노동계 쪽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올라도 주40시간제가 시작되는 1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내년에 3만2천원 밖에 안 오른다. 현실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고 재계 쪽은 “주40시간 기준으로 임금격차를 해소하자는 건가. 10.6%가 하한선이라니 납득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공익위원들은 “그 근거는 충분히 설명했다. 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최종안에 손을 들어줄 것이다. 노사가 심사숙고해 최종안을 내면 합의도출을 시도할 것이다. 합의에 실패할 경우 최종안을 표결에 부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계 10원 차이지만 합의해줄 수 없다

정회 뒤 다시 열린 회의에서 재계는 10.6% 범위 안에 0.5% 더 들어온 11% 인상안인 3,440원(한달 주44시간 777,440원, 주40시간 718,960원)을 냈고 노동계는 공익위원이 낸 범위의 상한선 13.1% 인상안인 3,505원(한달 주44시간 792,130원, 주40시간 732,545원)을 냈다. 65원 차이였고 인상률 차이는 2.1%였다. 노사공익위원은 자정을 넘기며 합의도출을 시도를 했다.
   
이때 재계는 합의가 안 될 게 불보듯 뻔하니 표결에 들어가면 공익위원들이 재계 안에 손을 들어줄 것으로 전망한 것 같다. 사실 재계가 낸 인상안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반면 노동계는 합의도출에 실패할 경우 한 번 더 수정안을 낼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봤다.
  
물론 민주노총으로서도 13%안에서 12%안으로 또 내려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액수로 따지면 불과 얼마 안 되는데 우리 최종안에서 더 물러날 수 없다”는 고민과 “한달 생계를 이어나가려면 1만원, 2만원이 아쉽다”는 현실론 속에서 해마다 고민과 갈등을 겪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 결정에 참가하면서 세운 원칙이 ‘조직적 결정’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이에 자정 너머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 이 두 고민을 전달했고 결론은 “최대한 합의 도출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합의도출은 실패했다. 재계가 “11%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더 올리라는 것이냐”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3,490원(12.6%)으로 최종안을 다시 한번 내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재계 쪽은 “아까 최종안이라고 해놓고 또 안을 내는 법이 어디 있느냐”면서 정회를 요청해 자체 회의에서 수정안을 다시 제출할지 격론을 벌여 3,470원(11.9%)을 들고 나왔다. 65원 차이가 20원 차이로 줄었고 공익위원 안이 제출되며 10원까지 줄었다. 그러나 10원 차이라도 최저임금이 더 올라서는 안 된다는 게 재계의 최종 입장으로 확인돼 합의타결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2006년 06월 29일 (목) 13:58:42                   정경은 / 민주노총 정책부장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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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최고 수준 인상

[최저임금 결정 의미와 과제]소득양극화 해소 유력한 대책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진통 끝에 결정된 최저임금 3,480원은 그간 중소기업 대리교섭 형태를 중단하고,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근거로 논의하고, 주40시간 기준으로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중위임금의 5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최저임금 수준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 보자.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노동 내 소득분배 구조개선에 취지가 있는 만큼 전체 노동자 임금 대비 일정한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2000년 처음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할 때부터 평균임금 대비 30% 수준에 불과한 최저임금을 5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달성할 것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공익위원 잘못된 관행 탈피한 것 큰 의미

현행 임금 3,100원(주44시간 700,600원, 주40시간 647,900원) 대비 12.3% 인상안인 3,480원은 한달에 주44시간 기준으로 했을 때 786,480원, 주40시간 기준으로는 727,320원이다. 이는 현행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정액급여 1,756,329원의 39.9% 수준인데 비해 올해 평균 정액급여 전망치 1,865,221원(6.2% 인상 가정)의 42.2%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제도 도입 이후 18년 만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은 그간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결정기준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근거 없이 노사교섭 속에 공익위원이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들던 관행에서 일정 탈피했다는 의미가 크다.
 
2003년 최저임금 교섭 과정에서 노동계는 “도대체 최저임금의 적정한 수준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하나. 우리도 평균임금의 50%를 반드시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는 요구에 대해 당시 공익위원들은 “그건 가치관이 개입된 문제라서 절대로 얘기할 수 없다”고 일관했던 데 비하면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공익위원들은 생계비, 유사노동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과 관련 나름대로 최저임금 결정지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생계비 인상률 3.7%, 생산성을 감안한 유사노동자의 임금 6.2%, 소득분배 구조 개선을 위해 주40시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50%를 5년에 달성할 경우 3.7%, 4년에 달성할 경우 4.6%, 3년에 달성할 경우 6.2%가 추가 인상돼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감시 기능 강화

주44시간이 아니라 주40시간 기준으로 임금격차를 완화하기로 했기 때문에 현행 최저임금은 700,600원이 아니라 647,900원이라고 인정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노동연구원의 추계에 따르면 주40시간 기준으로 중위임금 대비 50%를 4년에 달성하고 물가를 제외한 추가 생계비인상률까지 일부 감안할 경우 11.5%, 3년에 달성할 경우 13.1%까지 최저임금이 인상돼야 한다.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 12.3%는 4년 달성과 3년 달성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저임금 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상대임금으로 노동계가 평균임금을, 공익위원이 중위임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임금격차가 날로 확산될 경우 평균임금에 비해 중위임금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우려돼 이는 향후 노동계 차원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또한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택시노동자와 청소용역 노동자의 실질적인 최저임금 적용, 최저임금 인상을 탈법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휴게시간 연장, 노동시간 단축 등에 제동을 걸고 중소기업 지원,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감시감독 및 대국민 홍보를 확대하도록 제도개선 건의안을 작성한데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만 되고 지켜지지 않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민주노총은 택시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등 제도개선 투쟁과 하반기 최저임금 적용투쟁에 총력을 경주할 방침이다.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들 소리 없이 늘어나

민주노총으로서는 법정 최저임금 인상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정 최저임금 인상 뒤 7월 초중순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최저임금협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은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 산별 최저임금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산업 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체결돼야 한다.

특히, 금속노조의 경우 지난 해 법정 최저임금 인상률 9.2%가 그대로 적용됐는데 성급한 얘기지만 올해도 12.3%가 오를 경우 금속노동자 산별 최저임금은 9만4천 원 이상 인상돼 한달 86만 원선으로 최저생계 보장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법정 최저임금과 산별 최저임금의 꾸준한 인상으로 민주노총에도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간 최저임금 투쟁은 청소용역 노동자 등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만 외롭게 싸운다는 비판과 호소가 뒤따랐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최저임금 도입 뒤 조직 노동자의 참여가 늘고 있으나 아직은 부족한 게 분명하다. 날로 확산되는 소득양극화 해소를 위해 구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최저임금제도다. 노조 조직률이 불과 10.6%에 불과하고 산별교섭이 미미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다른 제도는 없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대표로 자리매김하는 길은 가까워진다.

2006년 06월 29일 (목) 17:40:00                    정경은 / 민주노총 정책부장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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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성명] 최저임금은 저소득노동자의 희망이다.
   
민주노동당은 최저임금이 전체노동자 임금평균 50%가 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어제(6월 29일) 새벽 2007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공익위원의 조정안으로 표결한 결과 시간급 3,480원(한달 주44시간 786,480원, 주40시간 727,320원)으로 결정되었다.
  
그간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차가 크고, 공익위원의 조정안이 재계의 입장과 가까워 최저임금 책정은 항상 노동계가 퇴장하는 파행을 겪어 왔으나, 올해 최저임금액 결정과정에서는 노동계와 재계가 모두 조금씩 양보해 가며 수정안을 수차례 제출한 끝에 노동계의 최종안과 재계의 최종안이 좁혀졌고, 공익위원의 조정안을 표결로 결론 냄으로써 파행없이 교섭을 통해 결정된 것은 진전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주장했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최저임금 격차 보전을 위한 월정액고시 도입요구와 택시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적용 등의 요구안이 수용되지는 않아 이후 최저임금 개선을 위한 남겨진 활동과제로 남았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자본주의 경제 주체인 노사간의 자율 임금 결정 방식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인 약자인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임금수준에서 생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여 모든 산업에서 공통으로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여 저임금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비정규노동자 급격한 확산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세사업장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용역노동자와 대기업 사내하청, 단시간 노동자 등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액의 인상은 저소득노동자들의 희망인 것이다. 따라서 전체노동자 정액급여 평균의 50% 수준인 한달 877,800원 요구는 정당한 것이며, 전체노동자 임금평균 50%는 선진사회인 EU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저소득노동자의 희망인 최저임금 인상과 제도개선에 대한 남겨진 과제에 대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2006. 6. 30.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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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13:03 2006/07/0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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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모씨를 북의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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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6.15 때 '충성다짐'을 시도한 범민련 간부를 구속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돌아버린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고, 조금은 정상참작할 것도 있는 듯 하였다. 그는 전향한 남파공작원이었고, 북에는 남겨놓은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77세의 고령에 달한 그의 입장에서 보면 '충성다짐'을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 대해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견결하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반북적인 글을 써대는 찔레꽃님이 의외의 글을 썼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 우모씨를 북의 가족의 품으로, 그가 가기를 원하는 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찔레꽃님의 인권론에 대해 그리 공감하지 않으며, 지나친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지만, 이번에 한 주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지... 

 

앞에서 했던 내 판단이 약간은 섣부른 것이었으며, 과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모씨도 분단의 희생자임에 틀림없는 만큼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남측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북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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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범민련 서울시 부의장 우모씨(77)의 경우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6.15행사에서 범민련 서울시 부의장 우모씨(77)가 북측대표단 성원에게 '충성서약문'을 전달하려다 발각된 사건이 일어났다. 남한 정부는 즉각 국가보안법을 걸어 우씨를 구속했다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언론은 갑첩이라도 잡은 양 호들갑을 떨고 지레 겁먹은 남한 좌파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나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우모씨의 행위를 이해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남한 정부는 우모씨의 자주적, 주체적 립장을 존중해서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우모씨 일당은 60년대 특수교육을 받은 후 남한으로 침투하다가 동료들은 한국의 무력에 의하여 사살되고 우모씨는 체포된 후 전향하였다. 그럼으로 그의 남한에서의 사법적 절차는 끝이난 것이다. 비록 전향했다고 하지만 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그가 원한다면 그의 조국의 품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를 주장한다.
  
남자 나이 77세이면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추측하건데 우모씨는 남한으로 전향한 후 북에 두고온 가족들 생각으로부터 하루도 자유롭지 못하였을 것이다. '충성서약' 어쩌고 하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사람이 한을 품고 죽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다. 한국정부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처리하기를 기대한다.
    
(아래는 언론의 보도 내용 요약)
범민련 서울시연합 부의장 우모(77) 씨를 23일 구속했다.
  
디스켓 위에는 자신의 범민련 직책이 적힌 명함이 붙어 있었으며 수신자는 ‘북한 노동당 중앙당 연락부’로 되어 있었다. 우 씨는 북측 요원 옆을 스치듯 지나치면서 북측 요원에게 “중앙당에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행사장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하지만 우 씨는 자신을 ‘관찰’해 온 국정원 요원에 의해 현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검거됐다. 국정원 요원은 북측 요원에게서 디스켓을 넘겨받았다.
  
▽‘충성선언’의 내용=디스켓에 담긴 A4용지 109쪽 분량의 문건에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좌익활동을 했으며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월북한 뒤 인민군으로 복무했다는 얘기가 자서전 형식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당에 가입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한 내용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 전언이다.
 
우 씨는 “나는 전향한 게 아니라 장군님의 전사로 살아왔다. 장군님에게 헌신할 무장이 돼 있는 만큼 활동할 기회를 달라”면서 “사상적으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디스켓에는 북한에 있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씨는 누구=우 씨는 6·25전쟁 와중에 북한 의용군에 입대한 뒤 월북했다. 인민군 복무 후 남파 간첩 교육을 받은 우 씨는 1961년 전북 부안 부근으로 침투했다.
그는 고향으로 가서 친척들을 포섭하려 했으나 침투 과정에서 호송원 2명이 사살당했고, 우 씨는 친척들의 신고로 검거됐다. 그는 검거 직후 전향서를 쓰고 이듬해 공소보류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그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북에 남은 가족이 나 때문에 힘들게 살까봐 그런 것”이라며 “체육계, 경제계 인사들도 (북한에) 가는데 내가 이런 편지를 전달한 게 무슨 국보법 위반이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국정원은 우 씨가 지난해 국방부 앞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1인 시위를 했으며, 평택 미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 등 반미 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전망=국정원과 검찰은 우 씨가 문건에서 “기회가 되면 만나서 해명도 하고 이야기도 하겠다”며 북측에서 접촉해 오기를 원하는 뉘앙스를 풍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우 씨는 2000년 12월 서울 롯데호텔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서도 같은 고향 출신 북측 상봉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상봉 대상자의 명찰로 바꿔 달고 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우 씨는 이번 문건과 비슷한 내용이 담긴 테이프 3개를 보낸 적이 있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 설명이다. 사정당국은 당시 테이프를 확보하지 못해 우 씨를 구속하지 못했으나 이후 우 씨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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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03:07 2006/07/0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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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na - I'll never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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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님의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에 관련된 글.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RAWA Poster for Meena

<출처: http://www.rawa.org/meena-p.htm>

 

작년 MBC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누가 나의 삶을 결정하는가 - 아프칸 여성인권]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나서 좀더 암울한 느낌이 든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초점을 두면서 희망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의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라와(RAWA, 아프간여성혁명연합)와 그 초기 지도자인 Meena가 쓴 시가 떠올랐다. 



I’ll never return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arisen and become a tempest through the ashes of my burnt children
I’ve arisen from the rivulets of my brother’s blood
My nation’s wrath has empowered me
My ruined and burnt villages fill me with hatred against the enemy,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found my path and will never return.
I’ve opened closed doors of ignorance
I’ve said farewell to all golden bracelets
Oh compatriot, I’m not what I was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found my path and will never return.
I’ve seen barefoot, wandering and homeless children
I’ve seen henna-handed brides with mourning clothes
I’ve seen giant walls of the prisons swallow freedom in their ravenous stomach
I’ve been reborn amidst epics of resistance and courage
I’ve learned the song of freedom in the last breaths, in the waves of blood and in victory
Oh compatriot, Oh brother, no longer regard me as weak and incapable
With all my strength I’m with you on the path of my land’s liberation.
My voice has mingled with thousands of arisen women
My fists are clenched with the fists of thousands compatriots
Along with you I’ve stepped up to the path of my nation,
To break all these sufferings all these fetters of slavery,
Oh compatriot, Oh brother, I’m not what I was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found my path and will never return.

( 출처: http://www.rawa.org/ill.htm )

  

Meena - 나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깨어나, 불타는 아이들의 재 속에서 폭퐁우가 되었다
  
나는 형제들의 피가 흐르는 개울에서 깨어났다
내 나라의 분노가 내게 힘이 되고,
파괴되고 불탄 마을이 나를 적을 향한 증오로 채웠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무지의 닫힌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금빛 팔찌와 작별하였다
오 동포여,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니,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맨발로 방랑하는 집없는 아이들을 보았고,
나는 상복을 입은 적갈색 손의 신부들을 보았고,
나는 감옥의 거대한 벽들이
그 탐욕스러운 위장에 자유를 삼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저항과 용기의 시 안에서 다시 태어났고,
나는 마지막 호흡과 피의 물결, 그리고 승리 안에서
자유의 노래를 배웠다
  
오 동포여, 오 형제여, 나를 더 이상 약하고 무력하다 부르지 말라
나, 온 힘을 다해,
내 땅의 자유를 향한 이 길을 당신과 함께 걷고 있으니.
나의 목소리는 수천의 깨어난 여성과 함께 울리고,
내 주먹은 수천 동포들의 주먹과 함께 쥐어져 있다
  
이 고통과 노예의 족쇄를 부수기 위해,
나는 당신과 함께 내 나라의 길을 내딛었다
오 동포여, 오 형제여,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니,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 Meena(1956-1987)는 아프간 여성 혁명 연합(The Revolutionary Association of the Women of Afghanistan, RAWA)의 초기 지도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됨. RAWA는 일상의 폭력에 저항하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억압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1977년에 조직되었다.
(전체 인용 : '석순' 스물다섯번째, 고려대학교 석순 편집위원회)

한국 WAW(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가 주최한 아프간 여성영화제에서 <여성영상집단 할미꽃>이 제작한 영상물 다큐 RAWA(나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에서 이 시를 소개하였다고 한다.
   
라와(RAWA)의 초기 지도자 Meena의 시는 최정배님이 곡을 쓰고 남진우님이 편곡을 했으며, 여성, 환경에 관한 노래를 주로 부르는 안혜경 님의 목소리로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혜경 3집에 영어와 한국어로 부른 곡이 실려 있다. 영어로 부른 곡은 라와의 홈페이지에 있고( http://www.rawa.tv/korean.mp3 ), 한글 번안곡은 안혜경님의 홈페이지 중 3집 음반을 소개한 페이지( http://femimusic.co.kr/album/vol_3.html )에 있다. 한글 번안곡을 완전하게 들으려면 음반을 사야 할 것이다. 시도 좋고, 노래도 좋다. 
    

안혜경 - I'll never return

  

I'm the woman who has awoken
I've open doors of ignorance
I have said eternally
farewell to all golden bracelets

  

I'm the woman who has awoken
my nations wrath has empowered me
burnt and ruined village fill me with hatred against the enemy

  

no longer regard me as weak and incapable
with all my strength I'm on the path of my land's liberation

  

my voice has mingled with you
thousand of arisen women
my fists are clenched you
the fists thousand compatriots my nation

  

oh! compatriot
no more I'm not what I was before
oh! compatriot
I've found my path and will never,
never return never return before(? to past)

  

안혜경 -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나는 무지의 문을 열었고
나는 황금빛 팔찌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였다
나는 깨어난 여성이다
분노가 나에게 힘을 주었고
불타버린 마을이 적을 향한 증오로 나를 채웠다
나를 더 이상 약하다 힘없다 말아라
나 온 힘 다해 이 땅의 자유의 길 걸으니
나의 목소리는 여기 그대들과 하나요
나의 이 주먹도 그대들과 함께 쥐어져 있네
오- 형제여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
오- 형제여 나는 내 길을 찾았고 결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Copyrightⓒ 2004-femimusic.'라고 되어 있는데, 퍼왔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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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01:48 2006/07/0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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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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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고교평준화가 된지 30년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서울신문에서 이에 관한 기획기사가 나오고 있다. 첫번째에는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고와 평준화 시기의 명문고를 비교하더니 이번에는 학력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명문고를 다룬 기사는 아직도 인터넷 서울신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기사로 나와 있다. 그런데 사실 명문고의 기준이라는 게 기획예산처, 교육부, 외통부의 5급이상 공무원 수, 검사 수 등을 집계한 것이다. 아마도 이 숫자는 해당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일정한 시험을 거치기 때문에 공정성이 있다고 보아 그렇게 한 것일 터이다.

  

그런데 그런 집계가 명문고의 기준이 되나? 아마 속으로는 서울대 합격자 수 같은 것으로 집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서울대 입학이 명문고 기준이다 보니 몇몇 사립고의 경우 고려대나 연세대의 인기학과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서울대의 비인기학과에 무더기로 집어넣고 서울대 합격자가 많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홍보의 대상이 된 학생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재수를 반복하게 되었고...

  

이러한 명문고 집계를 보면 평준화의 목적이 어디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곳에 있지 않으며, 검사가 몇명, 경제부처 공무원이 몇명에 속하는 것은 소수 몇몇의 엘리트들 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 학교가 이래서 명문이야"라고 우쭐대는 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 또한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거기에서도 일부 영어, 수학과목에 한해 수준별 학습을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공립고교였기에 보충학습시간에 행해지긴 했지만, 성적순으로 짤라서 소위 우열반 편성을 한 것은 아이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당시만 해도 공부잘하는 학생들은 여러 수준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교수대상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여 효율적인 학습이 되지 않으며,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서 질적 수준을 하락시킨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수준별 학습에 찬성하였다. 하지만 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 우등생들에게는 우월의식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뭔가 차별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지진아들 때문에 제대로 못했던 공부를 하고, 열등생과는 다른 '레벨'에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지진아'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동안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결코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공부잘하는 모범생들과 학교측에게 약간은 거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그 억압적인 교육환경에서 이러한 불만은 전혀 표출될 수 없었다.

 

여전히 평준화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온다. 곧 퇴임하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얼마 전 한겨레신문과의 평준화 폐지가 자신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할당제를 옹호하면서 자신이 대도시 명문고 출신의 동기들보다 시골학교 출신 동기들에게서 더 많이 배웠다고 얘기를 했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이 단지 대학입학에만 있지 않다면, 평준화라는 게 폭넓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장으로 파악하고 이를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  

    

[고교평준화 30년 그후] (2) 평준화 이후의 학력 변화

평준화 국책기관도 “학력 ↓” “성적 ↑” 이견 (서울신문 200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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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9 11:48 2006/06/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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