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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프레시안 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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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 가압류] 에 관련된 글.


아래 프레시안의 기획기사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알기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잘 짚고 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국가와 자본에 의해 어떻게 활용되어 왔으며, 왜 없어져야 하는지를 다른 나라의 사례, 이 문제가 논란이 된 사례들을 들어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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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11112704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 2013-01-14 오전 7:53:57)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 돈의 힘에 짓눌리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태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 고(故)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이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은 이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의 죽음을 계기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도마에 올랐다.
노동계는 재작년에 이어, 다시금 '희망버스' 등을 조직하며,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각계각층의 2만3000여 명은 최근 부산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문제가 되는 158억 원의 손배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손배는 파업 기간에 발생한 각종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란 게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26일에는 최 씨의 자살을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노조의 교섭 요청을 거부했다.
과연 그럴까. 최 씨의 죽음을 단지 '사적인 선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그러기엔 손배·가압류 문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너무나 많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일상 경제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사실상 사회·경제적 죽음 상태로 몰아넣은 사례도 많다.
"잊을 수 없는 죽음"…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등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사측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최 씨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람이 이 문제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는 사실상 '연쇄 살인 무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지난 9일 10주기를 맞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죽음이다. 노동계가 '손배·가압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바로 배 씨, 그리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다.
고 배달호 씨는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65억 원 규모의 손배와 가압류를 청구·신청했다. 배 씨는 2003년 1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하며 사측이 제기한 손배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비슷한 일이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졌다. 김주익 당시 노조 위원장은 구조조정과 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6월부터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재작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올랐던 그 크레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17일, 김 위원장은 농성 129일 만에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3일 후,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를 사측은 취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9년 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같은 이유로 동료를 또 한 번 떠나보냈다.
생사람 잡는 손배·가압류…"내 권리 요구하다 '패가망신' 한순간"
최강서,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외에도 손배·가압류가 '(사회·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린 노동자들은 많다. 경우에 따라, 임금·노조통장이 가압류돼 생활이 불가능해짐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까지 경매에 부쳐진 사례도 있다.
6년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딱 그런 경우다. 재능교육은 지난 2008년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를 통해 사측은 노조원 8명의 급여와 통장을 가압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중앙지법에 강제 압류를 신청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 재능교육 직원 6명이 법원 집행관과 함께 오수영 전 노조 사무국장 집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오 전 사무국장의 시어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서 세탁기, 김치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등 총 127만 원어치의 가전 제품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이 일에 대해, 오수영 전 사무국장의 남편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저희 집에 법원 집행관과 자칭 채권자 교육기업 재능교육에서 와서 집안 집기들에 빨간딱지들을 붙이고 갔습니다. 육아 때문에 2년 전에 합가해 모시고 있는 어머님 혼자 계실 때, 장정 6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 제대로 설명도 없이 왜 함부로 들어오냐니까 우리는 그냥 문 따고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집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딱지를 붙였다는군요."
"집사람이 노조일 한다고 애 돌볼 여력이 안 돼서 곧 칠순인 어머니하고 합쳤습니다. 몇 년 전에 세 아들네가 주는 용돈들 모아서 사신 김치냉장고에 딱지가 붙었습니다. 당신이 드시려는 생각보다는 김치 담글 줄 모르는 며느리들 생각에 많이씩 담가서 나눠 먹이려고 당신 용돈 모아서 사신 거지요. 그 김치냉장고에 붙어 있는 딱지. 보니까 참 거시기합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측은 오 전 사무국장의 집안 집기를 압류하고 두 달 후인 2010년 12월, 유득규 재능지부 조합원의 자택을 실제로 경매에 넘겼다. 강제 경매 통보를 받은 집은 유 씨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었다. 당시 유 씨와 유 씨의 오빠 식구까지 총 다섯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노조원 재산 압류는 당시 시민사회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측이 실제 빨간 압류 딱지를 들고 자택에 들이닥치거나, 집을 경매에 부쳐버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 사건이 노조 탄압의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유 조합원 자택에 대한 강제 경매는 재작년 법원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또 오 씨에게서 압류한 재산에 대해서도 재작년 사측은 경매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그 외에 사측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벌였던 20억 원 규모의 손배와 여타 경제적 압박도 현재는 일부 해제된 상태다. 단, 강종숙 학습지 노조위원장의 급여는 재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100% 압류되고 있다.
이 같은 재능교육의 손배·압류 사례는,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들의 경제생활을 얼마든지 파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또 그에 따른 고통은 노사갈등 당사자인 노조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겪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이와 관련,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조 활동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란 인식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라며 "손배·(가)압류는 매우 반인권적인 신종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힘들게 지켜온 노조, 사측의 가압류 협박으로 '산산조각'
또 하나 눈여겨볼 사례는, 반도체 공장 KEC가 노조를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사용한 방식과 목적이다.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청구액을 노조로부터 전부 받아내려는 게 손배를 청구하는 사측의 진짜 목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KEC 등 많은 사례에서 손배·가압류는 사측이 자신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노조를 파괴하거나, 집단행동을 조기에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KEC 노조는 지난 2010년 6월 '노사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4일간 옥쇄 파업(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러다 노사 양측은 '즉시 교섭, 징계·고소·고발·손해배상 등의 최소화' 원칙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당시 야 5당도 참여해 '사회적 합의'라 불렸다. 하지만 막상 파업이 끝나자, KEC는 노조 간부 및 조합원 88명(점거 농성자)을 대상으로 무려 301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KEC 지회 김성훈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손배 안 걸고 희망퇴직금 몰아줄 테니 퇴사하라고 설득했다"며 "이런 노조 파괴 작업을 통해 당시 조합원 150여 명이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150여 명이 떠났으니 노조의 기세가 기우는 건 당연했다. 김 씨는 "한번 노조가 꺾였다는 소문, 회사가 사표 내면 손배를 안 건다는 소문이 현장에 퍼지기 시작하자 퇴직이 줄줄 이어졌다"며 "조직이 무너지니 정말 답답했다. 힘들게 공장을 점거해서 교섭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가 해고와 구속, 그리고 손배였다"고 말했다.
현재 KEC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56억 원으로 줄었다.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어려운 부분을 사측 스스로 취하하면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커다란 심리적·경제적 압박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지회장은 "손배를 빌미로 한 사측의 노조 탈퇴 작업으로 빠져나간 많은 사람의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정말 간신히, 간신히 지켜가고 있다"며 "사측은 지금도 손배 1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집행을 하겠다는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고(故) 최강서 씨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도 남다르다. 김 지회장은 "최강서 열사를 보면, '저게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입이 되곤 한다"며 "그래서인지 최근 노조 분위기가 부쩍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가진 걸 다 뜯어가도 156억 원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측도 이를 당연히 알고 있다"며 "회사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느낄 불안이나 공포, 절망감"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까지 밀어 넣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싶은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금속노조 사업장만 해도 총 709억6000만 원 손배, 20억8000만 원 가압류
2013년 1월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총 12곳에 이른다.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만 총액 약 709억6000만 원이고 가압류 금액도 20억8000만 원에 이른다. 이 밖의 다른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까지 생각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와 금속노조에는 약 430억9000만 원 규모의 손배 및 구상권 청구가 걸려 있다. 이와 함께, 일부 노조 간부들의 임금 및 퇴직금, 부동산 등(28억9000여만 원 규모)이 가압류됐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는 전주 지회 소속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22억6000만 원, 아산 지회에는 16억7000만 원대 손배가 청구됐다. 발레오만도 노조에는 26억4800만 원, 포항 DKC 노조에는 26억 원, 유성기업 노조에는 58억6400만 원의 손배가 걸려 있다.
이 같은 수십 억, 수백 억대 손배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무색해졌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더라도, 사측이 제기하는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소송)은 쉽사리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형근 쌍용자동차 지부 조직실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압박하는 것만큼 잔인한 압박 방법이 어디 있겠나"라며 "자신의 일자리, 노조, 가족 등을 지키기 위해 벌인 투쟁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손배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110231242
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2013-01-15 오전 8:09:10)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②] 이명박 정권, 노동자 대상 손배 본격화
"노동자들의 죽음을 현 정권과 연결시키려는 주장은 잘못됐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 말이다. 이 장관은 "손배나 가압류 문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유서에 언급됐으나,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고 개인에 대한 사항은 없다"면서 이와 같이 발언했다. 이 장관은 "손배는 노무현 정부 때가 건수는 훨씬 많고 금액은 이명박 정부 때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때 손배와 가압류 건수는 각각 62건, 60건이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33건, 26건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지적한 대로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처음 나타난 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손배·가압류는 존재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씨가 분신 자살했고, 같은 해 10월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던 2003년 당시 언론은 손배·가압류를 '신종 노조 탄압 수단'으로 지목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손배로 노동자가 죽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손배는 어떻게 '신종 노동 탄압' 수단이 됐나?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손배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경영계는 주요 파업 대처 방식으로 민사소송보다는 형사소송을 통한 파업 주동자 구속·수감을 택했다. 노조 간부 구속 및 수억 원대 손배 청구가 동시에 이뤄졌지만, 파업이 끝난 후 노사가 서로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경영계에서 손배 청구는 노조에 대처하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적 압박 카드'로 부상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설 연구원이 2004년 내놓은 '불법 쟁의 행위와 손해배상·가압류에 관한 연구'를 보면, 경영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최소한의 자구 조치"라고 주장했다.
손배의 양태도 달라졌다. 경영계는 '노조 조직'에만 부과하던 손배를 2000년대 이후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 가족, 신원보증인에게도 부과했다. 가압류 대상도 노조 조합비에서 노조원 개인의 임금 및 퇴직금, 노조원의 아버지나 형제의 선산까지로 확대됐다. 친척에게까지 '연좌제' 성격의 차압이 들어오니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 관계가 파탄 나는 것은 당연했다.
배달호·김주익 씨가 숨진 2003년 전후 손배는 '노조에 대처하는 협상 카드'에서 '노조 탈퇴 압박 수단'으로 차츰 진화했다. 사측은 전방위적으로 손배·가압류를 걸어 노동자를 압박한 뒤,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가압류를 취하했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손배를 갚을 수 있는 길은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한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라며 "그렇게 노조 간부들이 회사와 손잡고 해고 명단이나 손배 대상에서 빠지면, 노조는 완전히 깨진다"고 말했다.
배달호 씨의 죽음은 '손배 탄압'의 상징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 교섭위원이던 배 씨는 2002년 단체협상이 어그러지고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이 압류됐다. 배 씨는 구속된 이후 현장에 복귀했지만, 가압류로 6개월 이상 사실상 임금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반에 배달호 씨의 죽음을 외면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김주익 지회장마저 '손배'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 전 대통령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다. 2003년 11월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열고 급여에 대한 가압류 범위를 최저임금이 보장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경영계도 신원보증인과 평조합원에 대한 손배 청구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가압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주로 '징계 해고자'라는 점이다. 이미 해고돼 최저임금만큼 남겨둘 '급여'조차 없는 노조 간부들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은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차압됐다. 해고 시 가압류로 퇴직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이명박 정부 때에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 575억→1582억"
이명박 정부 들어 변한 것도 있었다. 우선 이채필 장관 스스로 밝혔듯 손배 액수가 절대적으로 늘었다. 민주노총이 2011년에 낸 정책 보고서를 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청구된 손배 총액은 2003년 10월 575억 원에서 2011년 5월 1582억7000만 원으로 3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손배 액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고용노동부 자료를 따르더라도, 손배 총액은 2010년 121억4200만 원에서 2011년 7월 700억1000만 원으로 6배에 가까운 금액이 됐다. 가압류 신청 금액도 2010년 13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160억4900만 원으로 12배가 됐다.
손배 액수가 커진 이유에 대해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2003년 직전까지만 해도 돈 있는 사측이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손배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나,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마구잡이로 금액을 청구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노조에 대한 손배 청구 본격화
이전까지 손배 청구 주체가 주로 사측이었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가 노조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손배를 청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대표적이다. 2009년 당시 1년치 최루액 사용량의 90%를 사용해 파업을 진압했던 정부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상대로 경찰 치료비와 경찰 개인 위자료 및 장비 손상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의 원고 '대한민국 및 경찰'이 피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노동자 103명에게 세 차례에 걸쳐 청구한 손배 금액만 22억 원이다. 65명을 대상으로 청구한 가압류 금액도 2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사측이 공격적으로 직장 폐쇄를 한 유성기업에서도 정부가 유성기업 노동자 30여 명에게 '경찰 피해 및 장비 손상비' 1억1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2800만 원의 가압류를 신청했고, 해고자인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의 퇴직금을 압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국가가 노조와 노조원을 상대로 승소한 손배 소송 수는 8건, 압류를 마친 손배 액수는 1억6000만 원이다. 이는 정부가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화물연대(특수고용직) 파업에 대한 손배 소송, 그리고 패소한 소송과 진행 중인 소송은 제외한 수치다.
양형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직실장은 "이전에는 회사만 손배를 때렸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며 "다친 사람은 우리가 더 많은데 경찰 개인 위자료 2억 원까지 청구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공공 부문에서 정부가 '손배로 적극 대응' 독려하기도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파업 유도→고소·형사처분→파업 불법화→징계해고·손배 소송→노조 파괴'를 묵인하거나 조장한다고 분석한다. 정부와 경찰의 묵인 하에 손배는 '노조 압박' 수단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통합당 의원이 아산경찰서에서 입수한 문건을 보면, 경찰은 "유성기업 파업은 적법"하다고 자체 판단했지만 "(파업) 상황이 악화하고 여론 지지를 확보한 뒤 경찰력 투입, 노조 지도부 체포영장 조속 발부를 통한 (노조) 지속 압박, 사측에 손해배상 청구 유도를 통한 지속적 노조 압박" 등의 대응책을 내부 문건으로 공유했다.
공공 부문에서는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노동 탄압'을 주문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한국전력 자회사인 발전회사들의 노조 탄압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가 직접 주관한 회의에서 공기업의 "(민형사상) 고소, 고발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독려했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17일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로 '노사관계 회의'가 열렸다. 노동부, 행안부, 지경부, 교과부, 방통위 등 정부 부처 국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발전노조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철도공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노조 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지 실천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영준 차장은 "해당 기업이 고소, 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 당부"라며 손배를 포함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독려했다.
이영호 비서관은 "인사권, 경영권에서 양보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처"하되 "이면계약 등 노사 간의 이면 합의는 절대 용납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정부가 이미 일어난 노사 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정부가 직접 '노사 문제에 개입'해 노사 분규를 유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영호 비서관이 '노조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한 철도공사의 상황을 보자. 철도공사는 2006년 3월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철회, 인력 충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걸고 불과 나흘간 돌입한 파업을 빌미로 2009년 100억 원대의 손배 소송과 가압류를 단행했다. 2009년 파업 때도 노조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200여 명이 해고됐고 1만3000여 명이 징계됐으며,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뒤따랐다. 결과는 참혹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후 해고자가 된 허모 씨(39)는 2011년 11월 21일 화장실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가 '발전노조 대응 회의'를 한 지 두 달 뒤인 2009년 11월에는 동서발전이 발전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파업을 유도했다. 한전은 발전회사 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실적과 '노조 사무실 회수' 노력을 경영 평가에 반영했다. 같은 해 발전노조 영흥화력 남성화 지부장은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됐다. 발전회사가 노조에 걸었던 손배 소송은 결국 법원에서 기각됐다.
수십억 원대 손배액은 합당한가?
손배 가압류가 노동자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경영계는 손배·가압류가 '불법 파업을 막는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합법 파업'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은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법원은 파업권과 경영권이 충돌하면 경영권이 우선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철도노조가 KTX 민영화에 반대하거나, 한진중공업 지회가 정리해고에 반대하거나, 언론노조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거나, 두산중공업 노조가 회사 매각에 반대해 파업하면 '불법'이다. 파견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사측이 청구하는 수억, 수십억 원대의 손배액이 합당한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일례로 경주 발레오만도가 파업 참가자 32명에게 청구한 손배액 26억4800만 원에는 영업 손실액, 용역 투입비와 더불어 파업에 따른 '사장의 명예훼손 및 정신적 피해 위자료'가 포함됐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파업으로 손해가 안 생겼을지라도 사측은 노조 압박 수단으로 손배 대상이 안 되는 천문학적 액수를 일단 청구하고 본다"며 "설사 법원에서 몇 년 뒤에 기각 판결이 나더라도 당장 파업을 진행하는 노조를 무력화해야 하고, 가압류도 (되면 좋고) 법원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이 신청한 '가압류'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신속하게 재산을 차압해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사측의 자료를 넓게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 법률원장은 "노조로서는 영업 손실액이 적절한지 확인할 정보가 없고, 법원은 사측이 면밀한 손실액을 입증하지 않아도 사측 자료를 편의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111204209
"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인 한국'으로 볼 것"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김윤나영 기자, 2013-01-16 오전 8:07:44)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③] 노동계 "노조법 개정해 파업권 보장하라"
"업무방해죄, 애초에 노동운동 탄압 목적으로 탄생"
혹자는 "야만적 자본주의 시대"라 부르는 19세기, 유럽에는 '단결금지법'이란 것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계약의 자유를 해치는 '죄악'으로 간주됐다. 여러 유럽 국가는 단결을 공모죄로 엄하게 처벌하는 '단결금지법'을 만들고, 노동자 파업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다음의 법조문이다.
임금 인상이나 임금 인하를 강요할 목적으로, 혹은 산업 또는 노동의 자유로운 수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력·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노동의 조직적(공동) 정지의 결과를 발생케 하거나 그 정지를 유지·존속케 하거나 혹은 그 실행에 착수한 자는 6일 이상 3년 이하의 구금 또는 500프랑 이상 1만800프랑 이하의 벌금을 매기거나 이를 병과한다. - 1864년 프랑스 형법 제414조(업무 방해)
쉽게 상상되듯, 이 조항은 파업을 원천 봉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와 관련,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이처럼 '업무방해죄'란 애초에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탄생했다"며 "1864년 프랑스 형법은 일본 형법에서 '위력업무방해죄'로 변경된 후, 우리나라 형법에까지 반영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업무방해죄가 폐지돼, 지금은 없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위력업무방해죄가 존재하긴 하나 노동자 파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노동자의 피와 눈물의 대가로, 이들 국가가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왜?…"파업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논리 때문"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파업이 개시되면, 거의 곧바로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마련이다. 이는 '파업권'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현행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단, "노조법상 파업의 요건을 준수하면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149년 전의 프랑스 형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형법에 따르면, 업무방해가 본질인 '파업'은 기본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곧 민형사상 처벌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이호중 교수는 "(한국의 업무방해죄는) '파업은 일단 나쁜 범죄'란 전제를 깔고 있다"며 "정당화되는 파업을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풀어가는 이 논리 구조로 노동자의 권리는 제약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합법' 파업?
그렇다면 노조법이 예외적으로 '허락'하는 파업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파업, 예컨대 쌍용차 옥쇄 파업, 한진중공업 파업,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파업 등엔 모두 '불법' 딱지가 붙었다. '합법' 파업 사례를 찾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 교수가 정리한 노조법상 파업 정당성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근로조건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② 노조 찬반 투표를 거치는 등 절차가 정당해야 한다. ③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가운데 ① 요건에 따라 임금, 근로시간, 근로복지에 관한 파업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반면 정리해고, 구조조정, 민영화,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반발한 노동자 파업은 다 불법으로 여겨진다. 또 ③ 요건에 따라, 노조가 생산 시설을 멈추고 직장을 점거하면 곧바로 불법 파업이 된다. 이렇게 불법 파업이 되는 순간, 아무리 정당한 파업일지라도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고 업무방해죄 처벌도 이어진다. 쉽게 말해, 헌법(33조)이 보장한 노동3권을, 하위법이 제한하는 꼴이다.
영국·프랑스·일본 등에선 불법 파업 되기가 더 어려워
파업을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오히려 불법 파업이 되기가 더 까다롭다.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김태욱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또 정치 파업, 예컨대 정부의 환경 파괴에 반발해 노조가 벌이는 파업도 근로조건과 관련성이 있으면 합법으로 인정된다.
순천향대 조경배 법학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조 교수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불법'으로 해석하는 국가는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며 "한국 법원이 국가주의 사상에 극도로 물들어 생긴 문제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두섭 변호사도 "영국,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보면, 파업이 불법인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정리해고·구조조정 (반대 파업), 정치 파업, 노동법 개정 파업 등을 폭넓게 정당한 파업권 행사라고 보는 사례가 더 많다"고 말했다.
"파업권 폭넓게 보장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이 파업권을 현재보다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하위법(노조법)이 상위법(헌법)보다 우선하는 모순을 해결하자는 얘기다. 조경배 교수는 "전체 법체계를 노동3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노조법 개정이 필수"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노조법에 있는 '형벌' 조항을 모두 없애야 한다"며 "노조법 속에 형벌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노조법을 보면, 거의 모든 조항이 '이런 쟁의행위를 하면 이렇게 형벌한다'는 형벌 조항"이라며 "이런 형벌 조항을 모두 없애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힘겨루기를 하게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법체계 전반이 파업을 원천 허용하고, 다만 개별적 행위에 대해 죄형법정주의 원리에 따라 위법성 여부와 형벌을 따져야 한다"며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야, 노동3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된다"고 말했다.
손배 금액 산정은 누가, 어떻게?
손배 금액의 규모와 그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할 말이 많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일단 세게 걸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는 까닭에, 손배 규모가 수백억 대까지 치닫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 손배를 두고 노동계는 "말도 안 되는 산정 논리"라고 비판한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노조가 정리해고 철회를 걸고 2011년 파업했을 당시, 회사가 수주한 선박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손해가 발생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사측이 노조에 청구한 158억 원 가운데 3분의 2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합법 파업 기간에 청구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영업 손실을 측정할 수 있는 원자료(재무제표 등)를 애초에 사측만 가지고 있는 까닭에, 관련 소송이 노동자 쪽에 훨씬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태욱 변호사는 "영업 손실을 감정할 때, 사측이 가진 자료가 일단 기초가 된다"며 "그런데 이 자료가 어디까지 사실이냐를 검증하는 건 쉽지 않다. 자료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외부인(감정인)이 봐도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측은 영업 손실을 청구할 때, 생산한 만큼 다 판매된다고 전제한다"며 "하지만 피고(노동자) 측에서는 생산해도 안 팔리면 오히려 손해라는 지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사 시각 차이가 손배 소송에서 항상 쟁점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법부는 보통 "원고 편(사측)"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권두섭 변호사는 "사측이 해괴망측한 논리로 손배 규모를 키워도, 법원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으로 볼 것"
반면, 외국에서는 파업의 불법성이 인정되더라도, 손배는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사측이 노동자에게 수십 억, 수백 억 원대 손배를 청구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탄 대상이 된다"며 "오히려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이 (손배 청구로 벌어들이는 이득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설령 법적으로 손배 소송이 가능해도, 사측이 이를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경배 교수는 "영국의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배 청구의 상한선이 약 1억 원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며 "158억은 (영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손배가 야만적'이라고 볼 것"이라며 "갚을 능력도 없는 노동자와 노조에 수백 억대의 손배를 청구하는 건 누가 봐도 '보복'성 소송"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나서야"…노동계, "민주당 의지 보여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대안은 노동법 개정"이라고 말한다. 노동계 역시 손배·가압류를 지금보다 더 제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개선할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노동계의 요구를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을 보면, "사용자든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이나 파괴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손해배상에 영업 손실로 인한 손해 및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는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강제 집행을 보전할 목적으로 가압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문제는, 이 같은 개정안이 과연 이른 시일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무소속 의원들이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태욱 변호사는 "민주당이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집권 여당이던 참여정부 당시에도 손배·가압류로 많은 노동자가 희생됐던 만큼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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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7 02:48 2013/01/17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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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의 공공부문 관련 정책공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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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항은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있는 변화' 중에서 공공부문과 관련된 정책공약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이를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및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내놓을 정책과 비교하여 분석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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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당선인의 공공부문 관련 정책공약

○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 사회 구현을 위한 ‘직무능력평가제’ 도입

- 출신 학교나 지역에 관계없이 직무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취업이나 승진 시 차별받지 않는 능력중심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형 직무능력평가제를 도입할 필요

- 채용하는 기관마다 학벌이나 스펙이 아닌 직무능력평가를 토대로 채용하는 한국형 인프라 구축

- 공공기관 우선 도입 후 단계적으로 민간기업 등으로 확대, 평가도구 개발은 직무능력표준에 근거하여 채용기관 자체 또는 유관 연구기관에 위탁 → 직무능력평가 인프라 구축

○ 청년들을 위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 복지제도 확충, 안전한 사회 건설 등 100% 국민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교육ㆍ안전ㆍ복지 관련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필요

- 공공부문에 컴퓨터 통신보안을 위한 인력 채용 기준을 제시하여 공공부문 통신 보안 강화 및 청년층 일자리 확대

- 교육, 안전, 복지 관련 공무원 단계적 증원, 공공부문 청년층 채용을 공공부문 평가에 반영

○ 지역대학 출신 채용할당제 도입으로 취업기회 확대

- 신규채용자의 일정비율을 지역대학 출신자로 채용하는 ‘지역대학 출신 채용할당제’를 공공기관부터 확대 시행, 기관별 특성에 맞게 채용할당제·목표제 및 전형단계별 가점부여 등을 통해 지역인재 채용을 단계적으로 확대)

- 직무능력중심의 평가인증시스템 구축을 통해 지역대학 차별 해소

- 농산어촌지역 고교출신자에 대한 장학지원 확대 및 공공기관 채용 확대

○ 어르신일자리 대폭 확대

- 건강한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참여 욕구가 크게 증가(65세 이상 노인 중 약 60만명 정도가 사회참여 욕구를 가진 것으로 파악). 그러나 현재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22만개에 불과하여 수요와 공급간 격차가 큰 실정이며, 급여수준(월 40만원, 최대 7개월)도 낮아 개선이 시급

- 아동안전ㆍ돌봄, 다문화가족·장애인지원, 노-노케어, 지역사회 환경개선, 초등학생 등하교 지원, 다문화 여성 지원, 장애인 활동보조인, 초등학교 환경 미화 등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80%대로 확대

○ 고용 안정과 일자리 지키기

- 임금피크제와 연계하여 정년을 60세로 연장 법제화

-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를 도입하여 일이 많을 때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하고, 경기불황기에 임금으로 지급받는 방식으로 경기변동에 대비한 고용안정 도모

○ 국민행복기술로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 창출

- 다양한 근무형태, 고용형태의 스마트워크 추진

○ 근로시간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동반성장 전략 추진

-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일자리 나눔형 근로시간 단축 프로그램 운영

-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OECD 평균수준으로 단축하여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삶의 질 개선

○ 여성이 당당하게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미래 여성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

- 2017년까지 미래 여성인재 10만 양성 위해 공공기관 여성관리자 목표제 도입 및 평가지표 반영

- 여성 근로자의 고용 기준 미달 범위 확대(현행 여성근로자 및 관리자의 고용비율평균 60% → 70%)를 통해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강화 및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공공 및 민간기업 여성대표성 제고

- 정부, 공공 및 민간기업의 여성대표와 리더를 육성하여 2017년까지 10만의 여성인재풀 확보

○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 도입

- 여성 근로자의 임신 12주 이내와 36주 이후에는 현행법 상 8시간으로 규정된 일일근로시간을 2시간 단축하여 6시간으로 의무화, 단축한 시간에 대해서 임금 삭감 금지

- 공공부문 및 대기업에서 우선 적용 시행하고 민간부문 및 중소기업으로 단계적 시행

○ 장애인 고용의무 활성화

- 민간기업 평균 장애인 고용률은 2.2%정도이지만,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8%로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장애인 고용률이 낮음.

- 공공부문부터 장애인 의무고용비율(3%) 달성하도록 중증장애인 등 고용시 인센티브 부여

○ 상시ㆍ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의 1/3이 비정규직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가장 높은 편임. 2007년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을 시행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시 직접고용 의무 부과하고 있으나, 정규직 전환률은 낮음. 제조업에서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도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등 비정규직 근로자를 남용하는 고용관행은 개선되지 않고 있음.

-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실질적인 고용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함.

- 공공부문부터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함. →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 과학기술인의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과 복지 향상

- 지속적인 R&D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출연연 간 처우 불평등, 비정규직 증대 등으로 연구현장의 사기저하·불안정성 및 불만 증대 심화

- 정부출연연구소의 예산제도를 연구기관의 특성에 맞게 개편하고, 각종불합리한 관리제도를 개선하여 연구 자율성 제고

- 과학기술계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개선하고, 육아·출산 등으로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여성과학자에 대한 지원 확대

○ 공공 분야의 입찰제도 변경 및 수요처 역할 구현

- 정부조달ㆍ공공구매 비율을 확대하고, 동 비율을 공기업과 공무원의 평가항목으로 설정

○ 소상공인 지원정책의 통합추진체계 구축

- 현행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의 기능을 통합하여 ‘소상공인진흥공단’을 설치하고, ‘소상공인진흥기금’ 운영

○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

- 노사관계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의 공정한 조정중재자 역할 강화

-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 보호, 노동기본권 강화 등 노사관계 주요 쟁점들에 대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

-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노사 대표와 만나 노동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대책 논의
→ 노동위원회 기능 강화, 노사정위원회 역할과 기능 강화

○ 복수노조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합리적 보완

- 근로시간면제제도 및 복수노조제도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쟁점들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한 합리적인 제도보완 방안 도출

-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토대로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여 공정한 노사관계 법 제도 정착

○ 복지일자리 확충 및 처우 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 제고

- 사회서비스 영역에 종사하는 복지인력의 규모는 확대되고 있으나 낮은 급여수준, 열악한 근무조건 등 종사자에 대한 낮은 처우로 인해 서비스 질 제고에 한계

-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3교대 근무 도입, 사회복지직공무원 확충 등 복지일자리를 지속적으로 확충

- 사회복지시설, 보육시설, 요양시설 등에 종사하는 복지일자리 급여수준 체계화 및 처우 개선 지원 → 사회서비스 품질관리를 위한 인력기준 강화와 급여체계 수립 및 이를 통한 복지일자리 처우의 현실화

- 사회복무요원의 사회복지 분야 우선 배치 확대 및 부처 간 역할 조정을 통한 보건복지부의 직무교육 및 관리 기능 강화

○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

-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원칙을 준수하고 신뢰구축을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관리 체계 구축. 원전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하여 원전관리 비리 재발 방지

○ 신재생에너지 보급제도 혁신 및 에너지 수요관리 확대

- 전력, 가스 시장의 독점 구조 때문에 자원배분의 비효율 초래

- 비합리적인 전기요금으로 전기사용이 불편하고 수요관리 효과가 낮음

- 이용가능 신재생에너지 자원지도를 재작성하고, 신재생 에너지 보급 국가목표(2020년, 2030년) 및 달성 전략 수립

- 스마트그리드, 전력저장시스템의 확산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

- 실효적 수요관리를 위해 전기 등 에너지 요금체계 전면 개편

- 전력, 가스 등 독점 구조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공정경쟁 체제가 이끄는 건실한 수급시장 형성

○ 자원ㆍ에너지의 낭비를 줄여 자원순환사회 실현

- 국내 소비 자원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해외 자원ㆍ에너지 시장의 충격에 크게 영향을 받음

- 에너지ㆍ자원의 순환률 목표관리제도 도입을 통해 자원순환 사회 실현

- 재생 자원ㆍ에너지의 이용실태 조사·통계체계 구축, 목표량 할당과 실적 환류 등에 관한 법적 기반 구축

○ 동북아 에너지그리드를 구축하여 에너지공급 안정화 기반 마련

- 최근 전력부족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 등 에너지공급 안정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 시급

- 현재 추진 중인 러시아~북한~우리나라를 잇는 가스파이프라인 사업 지속 추진

○ 에너지 빈곤 없는 따뜻한 에너지 복지 실현

- 에너지 빈곤층에 대해 전기ㆍ가스 요금을 현재보다 2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
- 일정 전기사용량까지는 누진제 적용을 배제하고 기초생활용 전기 사용량은 보장
-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제도 도입
- 영세 화물업체에 대한 유가보조금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증액

- 고유가시대 화물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현행 지급되고 있는 유류세액 인상분에 추가적으로 유가보조금 확대 지급

○ 공공부문 투명경영 강화

- 공기업 부채 급증 등 공공부문 전반의 재정책임성 강화 필요
- 공공부문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기반 부족

- 국가채무 이외에 공공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부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항목별로 차별화된 관리를 하는 ‘공공부문 부채 종합관리시스템’ 구축
-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재정 투명성 및 재정 책임성 강화

→ 정부회계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감사원 회계검사기능과 국회 결산 기능의 연계 강화

→ 지방재정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지자체의 자주재원을 확대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재정운용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균형있게 강화

→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

○ 공공기관 책임경영 강화

- 공공기관 기관장 선임, 민영화 등 선진화 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이해당사자 및 국민적 공감대 형성 미흡

- 자체사업과 정부 대행사업의 구분 노력이 없어 경영 책임성 저하

- 공공기관 기관장 선임시 전문자격 요건 강화 등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 강화

-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3년 단위의 경영성과협약제로 전환하여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선 중장기적 관점에서 성과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기관장이 경영부실 책임을 지도록 함.

- 공기업 부채에 대해서는 사업별 구분회계를 통해 부채증가의 책임소재를 보다 명확히 하고, 공공기관의 대형사업에 대한 사전 타당성 심사 및 사후적인 심층평가 제도를 도입ㆍ강화

- 국민행복 나라살림을 위해 공공부문 소유 자산과 부채 관리를 효율화하고, 책임경영을 확대하는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할 것임. → 공공부문 부채 종합관리시스템 구축, 사업별 구분회계 도입, 사전 및 사후평가 강화, 책임경영 개선 등 공공부문 전반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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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16:52 2013/01/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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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의 『민중의 집』서평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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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진보적 지역정치의 대안 - 민중의 집] 에 관련된 글.

 

이 글은 레디앙 편집자의 말처럼 서평이라기 보다는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 진보정치, 지역운동에 대한 강상구 동지의 고민과 생각을 [민중의 집] 책 비평을 빌려서 하고 있다. 정경섭 동지의 이 책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고민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책도 이 글도 모두 강추한다.

 
현우가 쓴 <민중의 집> 서평이 내가 민중의 집을 보는 시각에 가깝다. "민중의 집이 유럽 사대주의 또는 마포의 모델을 넘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수많은 민중의 집 혹은 그 유사품으로 퍼져나가려면 더 리얼한 진단과 더 많은 과감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현우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나도 내가 살아가는 곳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꾼다. 솔규가 페이스북에 쓴 평 또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장석준 동지의 글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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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좌파, 이것에 미쳐야 산다! (프레시안,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2-09-07 오후 6:27:57)
[장석준의 '적록 서재'] 정경섭의 <민중의 집>
영화 <1900년>에서 파시스트들이 가장 증오 혹은 질시했던 곳, 그람시 같은 혁명가에게 가정이나 다름없었던 곳, 페포네 읍장과 그의 동지들이 짓고자 했고 그래서 돈 카밀로 신부가 그 복제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옛날 책에는 '인민회관'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민중의 집'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노동 운동,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운동의 초기에 중요한 거점이자 토대였다. 벨기에에서 그랬고, 스웨덴에서 그랬으며, 스페인에서도 그러했다. 그리고 노르웨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울리의 그림 속 '민중의 집'은 그 한 사례였다. 즉, 그림 속에서 노동자들이 건설하는 '민중의 집'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분명한 실물이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 'people's houses(민중의 집)'를 검색해보면, "노동 계급이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가 및 문화 센터"라는 설명이 나온다. 맞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좀 일면적이기도 하다.
민중의 집은 일종의 문화 센터다. 우리가 아는 문화 센터들처럼 그 기본 설비는 집회실, 오락실, 식당, 정원 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청이나 기업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민중이 직접 만든 시설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몰라도 한 세기 전 유럽의 민중의 집들은 분명 그랬다.
일단 스스로 이런 시설을 만든 사람들은 이 건물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던 공동체적 삶을 꾸며나갔다. 노동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일할 때나 간혹 파업 투쟁을 벌일 때만 서로 만난 게 아니라 민중의 집의 식당이나 오락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들도 이 장소에 모여 같이 공부하거나 여가 활동을 벌였다. 많은 경우,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진료소 등이 입주해 그야말로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정치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의 집을 처음 만들 때부터 당연한 전제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민중의 집을 만든 이들은 좌파 정당의 당원 혹은 지지자들이거나 노동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공공연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
민중의 집은 좌파 정당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분명 중대한 역할을 했다. 민중의 집을 짓고 거기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간 체험은 노동자들이 노동 '계급'으로 결집하는 데 단단한 이음매 역할을 했다. 또한 노동 운동의 주장이 좁은 의미의 노동자 집단을 넘어 지역 사회의 다양한 대중들로 확산되는 데도 사통팔달의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소개된 유럽 좌파 정당이나 노동 운동의 역사에서는 민중의 집 같은 시도와 경험들이 별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론 논쟁이나 당의 득표율 혹은 노동조합 조직률 추이만을 소개하는 자료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일상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였던 게 빠진 셈이었다. 이에 따라 좌파 정치는 계속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상상력 역시 제약받게 되었다.
이번에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의 민중의 집 사례에 대한 탐방기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을 낸 정경섭은 이런 '빠진 고리'를 감지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항상 지역 조직의 일선을 맡아온 정경섭은 유럽 민중의 집에 대한 단편적 소개들을 조합해 이 '빠진 고리'를 우리 운동에 채워 넣는 일에 나섰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지극히 실천적이었다. 그는 책을 내기 전에 먼저 마포에 대한민국 민중의 집 제1호부터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정경섭은 민중의 집 역사에 대한 조각 정보를 뛰어넘는 일에 나섰다. 유럽 민중의 집 현장들을 심층 탐방할 계획을 잡은 것이다. 마포 민중의 집을 만들 때에도 그는 좀 돈키호테 같았다. 아니, 성령이 임한 열혈 전도사 같았다. 완전히 민중의 집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미치도록' 만들었다. 그랬기에 배낭여행 값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 세 나라를 향해 떠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중의 집>이라는 알찬 경험과 정보의 집약체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진보 정당의 지역 활동가 이전에 오랫동안 기자이기도 했던 정경섭은 독자가 마치 저자의 여행에 동행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유럽 민중의 집 견학 체험을 전달한다.
최근 전 세계 협동조합 사례들을 직접 눈으로 보듯 전달해주는 <협동조합, 참 좋다>(푸른지식 펴냄)라는 책에 감탄한 바 있는데, <민중의 집>도 그에 못지않다. 이 책 읽기는 그야말로 독서 '여행' 그것이다.
<민중의 집>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저자가 결코 선진 문물 견학단의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정경섭은 이탈리아나 스웨덴의 민중의 집을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교과서로 접근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사례는 우리에게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지만, 결코 한계나 도전 과제가 없지는 않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도 냉정하고 깊이 있게 짚는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반베를루스코니 연합' 문제로 인한 좌파 정당의 분열이 각지의 민중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민중의 집 중 많은 수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노화와 함께 예전의 운동적 성격을 잃어버린 상태다. 마침 총선 시기에 스웨덴에 방문하게 된 저자는 좌파의 총선 패배와 민중의 집의 동맥 경화 상태를 오버랩시켜 스웨덴 복지 국가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거운 고민거리를 던진다.
특히 이탈리아의 산업 도시 토리노 남동쪽에 있다는 작은 도시 아스티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도시에서는 1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새롭게 민중의 집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100년 전 그들의 조상의 노력의 반복이기도 하고, 이제 막 민중의 집을 시도하기 시작한 우리와 동시대의 분투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1970년대에는 민중의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근처에 50년 된 민중의 집이 있는데 지금은 그냥 식당이다. 우리는 과거의 민중의 집을 복원하고 싶다. 우리는 새로운 지역 정치 활동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다시 정치 그 자체, 그리고 좌파정당을 신뢰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역 운동 네트워크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 상황이 이런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의 집>, 151쪽)
이렇게 보면, 민중의 집은 단순히 우리 운동의 빈 구석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한때 민중의 집 등을 통해 민중의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 내렸던 유럽의 노동 운동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에게도 어느덧 채워 넣어야 빈 구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각국의 좌파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계속 밀려왔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구화, 금융화 바람이 생활 세계를 장악해갈 때, 좌파는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대중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운동을 풀뿌리 대중의 생활 세계와 (재)접속해야 한다. 한 세기 전 그 접속의 시도는 민중의 집으로 나타났고, 이 경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참고가 되어준다. 생태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는 이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한 바 있다.
"노동조합은 사람들이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개방 센터'를 만들어서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민중 대학'이나 영국의 '지역 사회 센터' 혹은 덴마크의 '생산 학교' 등을 본떠서 노동자들과 실업자들―그리고 그 가족들―그리고 퇴직자들, 연금 수혜자들, 사춘기 연령의 젊은 부모들을 위해서 교육 과정과 주제 토론회, 영화 클럽, 수리점 등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보수를 받는 노동 이외에는 오직 소극성과 지루함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반박해야 할 것이다.
또 노동조합은 상업적 소비문화와 오락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애초에 자신들이 발생하게 되었던 협동조합과 결사의 전통과 노동자 계급 문화 서클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자발적인 조직 활동과 협동적 서비스,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수행할 공통적인 이해가 걸린 작업 계획에 대해서 시민들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 사회에서 '문화 사회'로의 이행", <후기 자본주의와 사회 운동의 전망>(의암출판 펴냄), 385~386쪽)
수십 년 묵은 좌파 정당과 노동 운동의 관성을 타파하자면, 우리 모두 얼마간 '미쳐야' 한다. 운동의 토대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허황된 의석 수 따위에 '미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미쳐야' 한다. 민중의 집에 '미친' 정경섭의 그 열정이 <민중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염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일부러 <민중의 집>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지는 않았다. 독자들이 직접 이 책의 흥미로운 대목들과 만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이 책을 읽은 누구나 새로운 실천의 의욕을 다졌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도 읽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읽고, 아나키스트도 읽었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복지 국가의 참된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노동 계급의 혁명적 문화를 꽃피울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아나키스트라면 지금 여기에 공동체적 삶을 구현할 의지를 다지게 될 것이다. 모두들 <민중의 집>을 읽고, 민중의 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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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규의 페북 글

 

김현우가 <민중의집>(정경섭,레디앙) 서평을 썼다. 
짧지만, '민중의집'과 한국의 민중운동의 인연부터, 현재적 의미까지 짚고 있다. 
 
그런데 왜 '정경섭'에 의해서, '당활동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민중의집'이 이야기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김현우가 "조로한 당"이라 일컫는 '당'이 왜 민중의집에 관심을 갖는가?
 
"조로한 당" 이면에는 "미성숙의 노동조합"이 있다. 이 "미성숙"의 이유가 재단에 뿌려진 '피'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심을 바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다만, 눈물과 피의 점철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한국 노동세계를 짓누르는 무게를 뒤엎을만한 임계점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미성숙의 노동조합"은 자신의 돌파구를 '노동자정치세력화'에서 찾은 것은, 뒤늦은 선택일지언정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문제는 '노동자정치세력화'에서'만' 찾은 게 문제이다. 기업의 장벽에 갖힌 노동세계와, 지역의 토호에 점령당한 정치세계, 이 양자를 이을 '진지'는 없었다. 미디어와 '정치구도'에만 의존한 진보정치는 사실 '도박'에 가까웠다. 그리고 '운'은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제대로 첫 단추를 풀고자 한다면, 당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민중의집>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정치"의 복원과 함께, "지역사회"로의 진출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단지 외국 사회운동사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점들, 우리와 다른 경로들, 우리의 공백지점들, 우리의 강점들을 짚으면서, 민주노조운동도 새로운 순환의 길에 첫발을 디딜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90년대 초반 "몬드라곤"을 흘려보냈던 우리가 지금, <민중의집>을 또다시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창근 동지의 페북에 "울산 북구 양정동 현자비지회 XX 주소로 지원물품"을 보내달란다. 바로 이 장소가 <민중의집>의 다른 이름 아니겠는가...
 
'서평'보다는 '책'을, '책'보다는 '탐방'을, '탐방'보다는 '실험'을, 
아니, 그보다는 먼저 '신뢰'와 '자신감'부터 회복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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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진보'는 죽었다! '골목길 진보'여 부활하라! (프레시안, 김현우 진보신당 녹색위원장, 2012-08-24 오후 6:30:27)
[정치 몰입] 정경섭의 <민중의 집>
우리에게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그리고 <돈 까밀로와 뻬뽀네>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 조반니오 과레스키의 연작 소설은 공산당 시장 뻬뽀네와 천주교 신부 돈 까밀로의 좌충우돌 힘겨루기 이야기였다. 1980년대 말 한국에서는 다분히 해방 신학적 분위기로 읽혔지만, 원 소설이 넌지시 암시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싸워도 모두들 예수님의 사랑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거슬러 생각해보니, 내가 '민중의 집'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소설에서였던 듯하다.
여기서 '민중의 집(Casa del Popolo)'은 '인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뻬뽀네 시장의 가부장적 온정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그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돈 까밀로의 교회와 인민의 집은 공산당의 전능과 예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자 틈만 나면 경쟁을 벌이고 두 무대 위에서 갖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인민의 집이 이 조그만 시골 소읍 사람들의 생활과 정치에서도 얼마나 중심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겠다.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도시로 모여들고, 이들이 만나서 놀고 토론하고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생겼으니 이를 대략 '민중의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게 초기 사회주의 대중운동과 민중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했었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듯 뒷심 있는 생활 진보 정치를 담보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 중심 가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처음 만들어졌던 곳에서 지금은 어떻게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진보 정치가 처한 답보 상황 혹은 기초 체력의 부족을 해결하는 시사점으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보조 가설쯤 되겠다. 이를 검증하러 정경섭 부부는 45일간의 유럽 탐험을 떠났고 이 책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은 그 결과물이다.
'마포 민중의 집'의 활동가가 돌아본 유럽 민중의 집은 한마디로 다양했다. 아마도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퍼져간 상황을 염두에 두면 초기의 형태는 유사했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와 노동조합 조직이 함께 사람과 돈과 벽돌을 모으고 감동적인 창립 행사를 갖고, 여기서 글을 가르치고 영화와 연극을 상영하며, 노동일을 마치고 온 이들이 맥주로 목을 축이며 정치 토론을 함께 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형과 이후의 분화와 변화를 필자는 세 나라의 역사와 정치를 가로지르며 추적한다.
스페인에는 민중의 집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건물에 상징적으로 민중의 집(Casa del Pueblo)이라 이름을 붙여놓았을 뿐, 프랑코 독재는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거점이던 민중의 집을 철저히 파괴했다. 하긴 1922년에 로마로 진군하여 권력을 탈취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가장 먼저 했던 일도 각 지역의 노동 운동 결집소였던 노동회관(Camera del Lavoro)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활발히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공산당과 노동총동맹이 이끌었던 과거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경섭은 민주당과 재건공산당, 좌파생태자유 등으로 분열한 좌파 정치의 전반적인 위축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실험들과 열정적인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도시에 붉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콘텐츠와 아이디어, 열망을 담는 공간"이라는, 아스티 민중의 집을 소개하는 문구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되찾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 정치와 복지 국가의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집이 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교육협회(ABF)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잘 밑받침하고 있다. 민중공원, 공동체 극장, 미디어 교육, 이주민 활동까지 모든 연대의 망이 민중의 집과 얽혀 있음을 확인했다.
정경섭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애초의 가설들은 충분히 검증된 듯싶다. 의회 정치를 중심으로 한 단기간의 선거 공학에 매달리면서 한국의 진보 정치는 조로했고,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조합원과 지역 주민, 정치 활동가들이 교류하고 만날 근거지도 만들지 못했다. 강박화된 장시간 노동과 다른 선택지가 불가능한 문화 재생산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다른 삶을 도모하는데 갈수록 주저하게 되었다. 앙드레 고르가 이야기한 '아뜰리에'가 의미가 있다면 그 가장 가까운 현실태가 지금의 민중의 집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이 자연스러운 지역 사회 좌파 거점 공간이 유독 한국에는 왜 부재했을까? 한국 전쟁 이후 너무도 급격히 변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 안정적인 것을 만드는 시도 자체가 심지어 노동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 속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게다. 눈앞의 독재 정권과 맞서야 했던 재야 운동, 식칼 테러에 맞서야 했던 노동 운동, 2년 또는 4년 뒤의 선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진보 정당 운동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긴 호흡의 무엇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게다. 그리하여 이 풍파와 자기 성숙 혹은 소진을 겪고 난 운동은 다시 거울 앞에 서서, 다시 십수 년을 일구어갈 거점과 콘텐츠를 고민할 여유 혹은 새로운 강제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큰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책에 포함된 사례와 여정의 제한성보다는, 정경섭만의 몫은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돌아봄과 내다봄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정말 한국에는 민중의 집 같은 게 없었던 것일까?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위시한 지역 노동 운동의 사랑방들이 있었다. 불온한 서적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게 했던 공단과 대학가의 서점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글과 컴퓨터 교실을 열며 지역 주민 사이에 뿌리내리려 했던 민중 정당 운동 조직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러한 것들이 규모나 지속성 부족으로 무시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왜 확산되지 못했고, 사회적 의미를 인정받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가, 이런 질문이 아닐까? 또한 이는 지금 민중의 집을 운동의 대안 모색 중 일부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스웨덴의 민중의 집이 변화해왔고 지금 다른 사정들에 처해 있는 이유와 맥락이 다양함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을 만들었던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단일화된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좌파 정당이 하나의 깃발을 갖기 어려워진 조건임이 분명하다면 민중의 집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존재해나가야 하는가?
민중의 집이 반드시 홍세화와 정경섭의 맨파워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단위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신당 당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영등포 정다방'과 '종점 수다방'이 보다 일반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닐까?
각 정치 활동가에게는 각자의 경험과 지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던져주는 읽을거리와 토론거리는 충분히 값지다. 민중의 집이 유럽 사대주의 또는 마포의 모델을 넘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수많은 민중의 집 혹은 그 유사품으로 퍼져나가려면 더 리얼한 진단과 더 많은 과감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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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발로 뛰어 쓴 책『민중의 집』 (레디앙,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 구로 민중의 집 운영위원 / 2012년 8월 21일, 2:33 PM)
[서평아닌 서평]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 길을 모색하다
또 ‘노동자 중심성’ 타령
‘노동자 중심성’이 무슨 사골인가. 10년 넘게 우려먹으면서 다 말아먹은 주제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또 ‘노동자 중심성’ 타령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노동자 중심성’은 너무 많이 우려먹어서 이제 먹을 게 별로 없다. 약아 빠진 정치인들은 아마도 그때를 아주 잘 알 거라서, 쓸모없어질 딱 그 순간에 ‘노동자 중심성’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그 순간이 와도 그럴 테지만 남들이 자꾸 ‘중심’이라고 얘기하는 노동자들은 한숨만 나온다. 진보정치가 힘을 얻기 시작하자마자 돈이나 내는 존재로 전락했던 노동자들은 그런 식이라면 애초부터 중심이 될 수가 없었다. 박근혜가 필요할 때만 시장에 가서 서민을 찾듯이 진보정치 역시 필요할 때만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을 찾는 꼴이었으니까.
그래도 진보정치는 노동자 투쟁에 열심히 연대했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파끼리의 연대는 조끼 입고 머리띠만 안 맸다 뿐이지 좌파 보다 훨씬 강고하고 전투적이며 어떤 땐 인간적이기 까지 하다.
‘노동자 중심성’은 진보정당이 아쉬울 때 조직노동자에게 하는 구애의 표현이 아니라 현실에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동자 중심성’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자산이 아니라 몰락을 증명하는 과거의 유산이 될 것이다. ‘노동자 중심성’을 한낱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시킨 건 물론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한 직후인 2005년부터 ‘진보정당의 위기’가 거론됐었다. 이 때 있었던 몇 번의 토론회에서 지적됐었던 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의식화, 투쟁 사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빈민서민의 이익대변보다는 안정적인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끌려간다는 인식의 문제’ 같은 것이었다. 당시 한 토론회에서는 “더 늦기 전에 <제 2 창당>의 결의로 <당 혁신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놀랍다. 그 후로도 7년이 흘렀으니.
 
10년의 고민을 담은 책
한 편에서는 운동의 위기가 이야기 되고 또 한 편에서는 2012년 집권론이 힘을 얻어가던 이즈음 당 교육국장으로 마포에 갔던 나는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다가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잠깐 따로 보자던 당시 마포지역위원회 정경섭 위원장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맥주집 2층의 커피숍으로 나를 끌고 간 정경섭 위원장은 앞뒤 없이 딱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의 지역개입을 어떻게 끌어내야 할까요?”
뜬금없고 싱겁고 그리고 너무 거대한 주제. 정말 아는 게 없어서 “저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고 한 5분 만에 커피숍을 나왔었다. 책이나 읽고 남들 앞에서 말이나 하는 걸로 운동을 때우던 자의 종말이었다.
그때 이후로 마포에는 민중의 집이 만들어졌고, 그 동안 노동조합이나 정당 지역조직에서 볼 수 없었던 각종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노동조합이 민중의 집과 함께 지역활동을 벌이는 사례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민중의 집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정경섭은 그때부터 혹은 2000년대 초반에 ‘노동조합의 지역 개입’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부터 치자면 10년 넘게, 누구나 얘기했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았던 그 주제에 천착해 왔다.
‘민중의 집’은 그 오랜 동안의 고민과 실천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을 돌며 45일 동안 민중의 집을 방문 조사했으며, 유럽 방문 후 한국에 돌아와 2년 동안 각종의 자료를 찾고 분석해서 이 책을 썼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민중의 집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수식어 없이 자기 책 제목을 그냥 ‘민중의 집’이라고 지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정경섭 뿐이다.
 
노동자들을 주체로 만드는 민중의 집
이탈리아에서 민중의 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임금노동자, 소작농, 주변부 노동자, 주부 등 곳곳에 피폐하게 흩어져 있던 ‘일하는 자’들이 물질적·상징적으로 결집하는 공간(18p)”이었다. 민중의 집은 사회주의의 풀뿌리 현장이었던 셈인데,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최소 1천 5백 개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좌파정당 지지도가 높은 피렌체, 볼로냐, 밀라노 등에 민중의 집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1890년대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스웨덴 사민당과 노총의 성장 기반이었고, 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긴밀한 결합의 상징이었다(27P)”고 저자는 전한다. 스웨덴에는 현재 전국에 530여개의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으며, 민중의 집 연합회가 전국 민중의 집의 상급단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은 한 때 전국에 900여개의 민중의 집이 있었다는데, 가장 대표적인 민중의 집인 마드리드 민중의 집은 “1908년 새로 문을 연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1930년대 초반에는 회원이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31P)”고 한다.
확실히 민중의 집은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의 풀뿌리 전략이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중요한 것은 민중의 집이 하는 일이다. 마가렛 콘 교수는 당시 민중의 집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오로지 도구적 가치에 의해 생산과정에 투입된 말 그대로 ‘객체’였지만, 민중의 집이나 협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은 ‘주체’, 대안적 세계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45p)” 뼈아픈 지적이다. 무슨 운동을 하든 활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변할 때의 기쁨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놀고먹는 게 답
그런데 노동자들은 민중의 집에서 어떻게 주체가 됐을까. 스웨덴 민중의 집의 핵심은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차별을 받지 않고 문화를 향유하는 연대의 정신(28p)”에 있다고 한다. 멋진 말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건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사소통 능력과 상호 이해를 강화’하는 것이란다.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고 상호 이해를 강화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우선 만나야 한다. 만나서 함께 먹고, 마시고, 놀아야 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을 편견, 만나기 전에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동류의식은 죄다 만나야 알게 되고, 만나야 사라지고, 만나야 생겨난다.
저자는 공동체의 시작은 “놀이와 밥(375p)”이어야 한다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따지고 보면 성장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자기계발로 사람 피곤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놀고 먹자!’는 주장은 얼마나 선동적인가. 만나서 함께 나누는 ‘놀이와 밥’ 속에서 구성원들의 상호 이해는 높아지고 의사소통 능력은 강화된다. 그게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혹은 그 누구든.
“마포 민중의 집은 먹고 마실 수 있는 시설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유용하게 이용된다. 지역 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체들은 대형 주방과 식탁, 모임 장소 등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단체들이 공동으로 민중의 집을 이용하고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 것은 마포 민중의 집이 가지는 주요한 전략 중에 하나다.”(359p)
확실히 그렇다. 필자가 구로에서 민중의 집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깨달음 가운데 하나도 ‘부엌의 힘’이었다. 함께 모여 먹을 수 있는 시설은 생협의 마을 모임도 노동자들의 송년회도 고등학생들과 선생님의 동아리 모임도 모두 민중의 집으로 오게 한다.
유럽 민중의 집 활동가들은 지역에서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 일단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연구하는데,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집이나 사무실보다 더 쾌적하고 우아한 공간을 창출(357p)”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주민이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쾌적한 공간의 사례를 그래도 찾아본다면, 에어콘 빵빵한 큰 사업장 노조 사무실에 조합원들이 밥 먹고 들러서 잠깐 커피 한 잔 하는 것 정도가 있을까.
회사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이 집 말고 잠시 들를 곳이라고는 술집 밖에 없고, 도시의 젊은 노동자들이나 실업노동자들이 늘 거쳐 가는 곳은 스타벅스나 까페베네 같은 곳이다. ‘집이나 사무실보다 더 쾌적하고 우아한 공간’은 돈을 내야 머무를 수 있는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공간’이고 그 나마 상당수는 거대자본에게 장악되어 있다.
어쨌든 만남의 기본은 놀고먹기에 있고, 민중의 집은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놀고먹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게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시작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몇몇 역사학자들은 작업장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 정체성이 이웃 간에 연대로 재강화할 때만 노동자로서의 의식이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376p)”고 한다. 이웃 간 연대와 인간관계의 형성은 노동자의 집단적 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사실이라면 민중의 집의 역할은 보다 분명해진다. 예컨대 산별노조가 천의 세로방향 실(날줄)이라면 민중의 집은 가로로 놓인 실(씨줄)이 되는 셈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때 그때부터 바로 그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10년 전부터 얘기해왔던 노동조합의 지역개입전략은 이 말대로라면 결국 노동조합의 대국민지지획득전략이 아니라 노동자계급형성전략이 된다.
유럽사회주의 세력은 민중의 집을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을 조직해 나가는 대중적 토대로 삼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20p)”하려고 했다고 한다. 언제나 단결해 있는 자본가 계급에 비해 단결하여 ‘계급’이 되는 것 자체가 목표인 노동자에게 민중의 집은 주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웨덴의 노동자 교육협회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자 교육협회는 민중의 집과 함께 스웨덴 풀뿌리 민주주의의 쌍두마차다. 노동자교육협회는 “전국-광역-지역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면서 회원 조직인 사민당과 노총, 여러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 교육프로그램을 제공(30p)”한다고 한다.
1912년 사민당과 노총, 협동조합 조직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노동자교육협회는 “당시에는 노동자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모든 종류의 시민교육을 지원(228p)”한다. 현재 “연간 75만 명의 스웨덴 사람들이 협회가 운영하는 약 3만 5천개의 스터디 서클과 교육과정에 참여하며, 연간 200만 명 이상이 협회가 주최하는 강연회나 음악회, 영화 상영 프로그램 등(229p)”에 참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
더 대단한 건 노동자교육협회의 10대 과제다. “1. 계급사회 폐지, 2. 민주주의의 발전, 3.모든 사람들의 차이에 기반 한 평등, 4.대중운동 강화, 5.비영리 부문의 발전, 6.모두를 위한 문화, 7.페다고지 차원의 과제, 8.평생교육, 9.건강과 만족스러운 일터, 10.전 지구적 과제: 시장 주도의 지구화 반대 등”
더 바랄게 별로 없다. 지역에서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강화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그 정체성을 더욱 뿌리 깊게 만드는 노동자시민교육 전담기관의 존재는 확실히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민중의 집은 가장 정치적인 공간
이탈리아 토리노 남동쪽 작은 도시 아스티의 산타 리베라 민중의 집.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정당만의 힘으로 지역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꾸로 정당 없이 지역운동만 가지고 지역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지역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를 조직하는 활동을 모색하려는 것이다.(150p)”
민중의 집은 이런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조직하는 정치활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의 본령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이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만으로 이해돼서는 곤란하다. 이럴 경우 노동자대중은 정당이 집권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노동자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주체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일, 그리고 이들이 사회적으로 주도권(헤게모니)을 잡아 궁극적으로 사회권력과 정치권력을 대체하는 일로 새로 정의되어야 한다.
물론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선거 때는 표를 얻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정치세력화 운동의 핵심 원리가 되면 안 된다. 선거 참여는 사회권력과 정치권력 가운데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정치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우리가 정치권력을 대체했다고 볼 수 없으며, 사회적 주도권 확보 없이 세워진 정치권력이 무너지는 건 한 방이다. 사실 사회적 주도권 확보 없는 정치권력 획득은 불가능하다.
 
노동자 정체성을 가진 주체 만들기
산타 리베라 민중의 집 활동가가 말하듯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이 곧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의미여야 한다면, 노동자 정체성을 가진 주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아마도 아래 다섯 가지 정도의 과정을 거치는 일일 것이다.
① 시민으로서 노동권 환경권 등 자기 권리 인식하기 ② 함께 협동하고 연대하면서 생활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③ 대안적 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실천하기 ④ 권력에 맞서 다양한 형태로 대응하고 문제제기하며 저항하고 싸우기 ⑤ 이와 연결돼 현실정치에 대해 관심 갖고 참여하기.
4번과 5번이 없는 운동은 ‘착한 시민운동’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예전의 노동운동은 1번부터 5번까지를 다 했거나 하려고 했었는데 3번은 사라진지 오래 됐고, 4번과 5번은 돈 대고 몸 대다 지치는 걸로 결론 났다. 1번과 2번은? 그건 자기 회사 월급 올리는 ‘실리주의’로 귀결됐다.
‘민원해결사’ 노릇에, 노동자를 ‘위해서’ 그들을 ‘대변’이나 하는 정당운동이나 노조운동은 발전할 가망이 없다. 과거 노동운동이 성장하던 시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새로운 정치의 주체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사회권력과 정치권력을 대체할 수 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자는 정치적으로 세력화되는 것이다.
우파의 권력이 전국에 걸쳐 지역적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노동자 정체성이 이웃과의 연대로 재강화되어야 한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특히 지역에서의 정치세력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의 ‘지역정치세력화’이다. 노동자 중심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 민중의 집은 이에 복무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자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새로운 노선이다.
 
사회운동이 모이는 중심으로서의 민중의 집
이탈리아 민중의 집은 “생디칼리스트, 개혁적 카톨릭 세력, 사회주의 세력 내 여러 분파들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연대하는 대중정치의 공간(25p)”이었으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탈리아에 비해 스웨덴 민중의 집은 “준공공기관에 가까울 정도로 안정된 곳이 많았다. 민중의 집의 가장 기초적인 골격은 지역사회단체들의 네트워크이자 허브(29p)”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아무리 작은 민중의 집이라 해도 “최소 20개에서 많게는 60개가 넘는 조직이 회원조직(29p)”으로서 민중의 집을 같이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운동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열심히 움직여야 할 곳은 현재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진보정당이어야 할테지만.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볼로냐 지부 위원장인 로셀라 위원장의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민중의 집에서 노총-정당-협동조합이 함께 회의를 했는데 지금은 연결선이 약해졌다.” “민중의 집의 정부 비판 기능은 예전에 비해 약해졌다. 당이 분당되지 않고 민중의 집과 노총 등이 함께 했을 때 민중의 집은 항상 노동운동 편이었고 자본가를 상대로 했지만, 지금은 당이 나뉘고 우리는 국회의원도 없다.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124p)
정당과 노조, 민중의 집의 연결선이 약해짐으로써 민중의 집의 정치적 색채도 옅어졌다는 얘기다. 결국 민중의 집이 정치적이기 위해서는 정당-노조-민중의 집의 연결선이 강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민중의 집을 반드시 정당이 운영한다거나 민중의 집의 의결구조를 정당이 장악한다고 해서 민중이 집이 잘 된다거나 정치적 성격을 가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당과 노조가 민중의 집과 잘 연결되는 것이다.
이 연결은 곧 민중의 집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끊임없이 왕래하고 소통하는 구조로 이어질 것이며, 그 구조는 곧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의 집을 ‘정치적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이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늘 말하는 ‘조직화’의 의미도 바뀔 것이다. 우리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매개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해주는 일로 말이다.
 
민중의 집에서 당의 역할
로셀라는 과거 민중의 집의 간판은 ‘민중의 집’이었지만 “여기는 좌파정당의 집”이라고 쓰여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마포나 구로 민중의 집이 ‘진보신당이 하는 곳’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고, 진보신당 서울시당 김일웅 위원장의 말처럼 강북의 작은 도서관이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진보신당이 하는 도서관’으로 동네에 소문났으며, 대구 서구의 도서관 ‘햇빛 따라’에서 상근하시는 김은자 동지가 진보신당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은 우파가 지배하고 있는 풀뿌리 지역사회를 좌파적으로 바꾸기 위한 종합적인 계획, 이를 테면 ‘지역운동발전전략’이 있는가 하는 점일 텐데 돌이켜보면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이 이런 식의 전략을 가졌던 적은 일부 정파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전략이 있는 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당원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노조가 지역과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자기 사업장에서 노력하게끔 하는 일을 당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의 간부가 아니라 보통의 노동자들이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과 접하고 진보적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녹색, 여성, 장애 같은 부문운동이 지역에서 주민노동자들과 용광로처럼 섞이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주제넘은 말이지만 노동운동의 혁신에 진보정당이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전략이 없는 당은 민중의 집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하거나 혹은 민중의 집을 표류하게 한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돈’ 문제가 민중의 집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 ‘좌파의 집’이 볼로냐에만 15~16개 정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단 3곳뿐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좌파민주당과 재건공산당으로 나뉜 1990년대 초부터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좌파정당의 당세가 기울면서 더 이상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123p)
이탈리아에서는 “보수정권의 우세, 중도정당의 우경화, 좌파정당의 거듭된 분열로 고전하면서, 민중의 집=좌파의 집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25p)”되었고,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 독재정권이 수립되면서 파괴된 민중의 집이 주로 스페인 노총의 주도하에 복원되려 하고 있으나 이미 80년대 초반 중도노선으로 우경화한 사회노동당은 민중의 집을 완전히 잊었으며, 스웨덴 사민당이 운영하는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 민중의 집과는 기능이 전혀 다른 대규모 컨벤션센터라고 한다.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
로셀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민중의 집 활동이 왕성했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곧 닥쳐올 것이다. 그때 민중의 집이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쉴 수 있게 해주고, 자본에 대항하는 기지 역할을 할 수 있길 기원하고 있다.(125p)”
민중이 집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유럽의 민중의 집은 그곳의 노동운동과 정당운동이 그랬듯이 옛날 같지 않다. 결국 유럽이나 한국이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 같은 마음이다. 모두가 잘 해야 한다.
덕분에 민중의 집을 하면서 드는 고민이 더 커진다. 대체 지역에서 사업장과 업종이 다른 노동자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는 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의 활동가들은 그 과정을 충분히 이겨낼 만큼 단련되어 있는가. 여전히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는 활동가들이 ‘소통의 매개자’로 변화하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잘 안 하는 진보정당의 당원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가 먼저 아닐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잘 못하면 민중의 집은 하나의 단순한 공간이자 잠깐 동안의 해프닝으로 끝날 테지만, 잘 할 수만 있다면 사회운동 전반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기획이라는 점이다.
내 말로는 믿음이 안 갈 테니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심광현 교수는 이 책 속에 인용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아래로부터’ 대중의 능동적 참여에 의한 진보운동의 재구성이 적극적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과 회원, 당원 등 기존 사회운동의 구성원들이 ‘민중의 집’을 통해 지역대중들을 만나고 또 스스로에게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사회운동자체가 다시 활력을 얻게 되는 ‘프로세스’. 민중의 집 건립운동은 사회운동 전반을 혁신하고 개조하는 공동의 프로젝트다.(363p)”
 
발로 뛰어서 쓴 책이 진짜 책
만남을 조직한다는 것. 이 말을 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사소한 일이라도 전화를 하고, 뭔가를 쓰고, 찾아가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다시 찾아가는 등의 일을 반복함으로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안다.
낯선 사람에게 내미는 악수가 수도 없는 어색함 끝에 소통의 기본임을 깨달은 길 위의 활동가와 단지 정치인의 뻔뻔한 위선으로 이해하고 있는 책상머리의 원칙론자와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이 올바르다고 믿는 ‘투사’와 투쟁조차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때론 광대라도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사이의 현실적 간극 역시 작지 않다.
“민중의 집은 공간 그자체이기 이전에 개인과 개인,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에 가까웠다.(19p)” 이런 류의 문장들이 이 책에는 곳곳에 적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말들, 단어를 연결시키는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런 문장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말들.
하지만 저자가 오랜 기간 몸을 움직여가며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모아 만들었을 이 말들의 무게는, 온갖 현란한 단어들을 열거하면서 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운동가인 척 하는 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본인만이 원칙적인 체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서평을 쓰기 위해 두 번째로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온통 이런 말들에만 밑줄을 그어 놨다는 점을 알게 됐다. 나는 이 말들 속에서 현실에서 발을 옮겨야 하는 우리 걸음에 놓인 그 무거움들과 자꾸 다시 만나게 된다. 때로는 감탄하며, 때로는 한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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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03:08 2013/01/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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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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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7월 1일 세종시 출범] 에 관련된 글.

 

세종시가 예상대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다룬 기사들이 대부분 그 난맥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이를 단시일 내에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자칫 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되었기에 노무현 정권의 책임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논란이 생기면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기본시설이 구비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이전된 데 주요한 원인이 있다. 솔직히 공무원들이 샘통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고생해봐야 시민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조금 신경 썼으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행안부 개혁이 왜 필요한지, 하위직 공무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왜 필요한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행정기관공무원노조에선 뒤늦게  목소리를 높이곤 있지만, 정작 목소리를 냈어야 할 시점에선 침묵했다. 뒷북인 셈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주목받고 있진 않지만, 행정부처 이전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역시 이런 사안들에선 실제 이전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어야 하는데... 세종시 문제는 좀더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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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세종시 행정마비’ 대책 있나 (동아, 이상훈 김철중 기자, 2012-10-17 03:00:00)
세종시 행정부 시대 12월 본격 개막…
장관-간부들 국회 불려다니느라 업무공백 불보듯
올 12월 세종시 행정부 시대가 본격 개막하면서 당장에 불거질 국정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정부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회에서 회의가 열릴 때마다 관계부처 장관과 간부들을 참석시키는 관행을 시급히 손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행정 비효율은 개별 공무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 자원낭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국회의 대(對)정부 업무관행, 공무원의 근무환경 등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나온다. 특히 차기 정부를 책임질 유력 대선후보들과 각 정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국회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 행정부를 일단 부르고 보는 식으로 일하다 보니 공무원들의 소모적인 국회 출석이 너무 많은 것”이라며 “국회의 업무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세종시 시대’가 초래할 수 있는 비효율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차관의 국회 출석을 요하는 회의를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 △일부 국회 상임위원회나 간단한 법령 심사는 화상회의를 통한 처리를 의무화하는 방안 △세종시에 국회 분원이나 ‘소별관’을 세워 국정감사나 법령심의를 할 때 의원들의 현지 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 등을 거론한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행정학)는 “화상회의는 ‘정보기술(IT)강국’인 한국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회로 현재 기업들에서 진행하는 사례만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화상회의나 ‘스마트워크 센터(원격 사무실)’의 수준과 품질을 최대한 높이자는 것이다. 

 

세종시 특별법, 이번엔 자치권 논란 (내일, 세종 윤여운 기자, 2012-11-23 오후 3:21:21)
세종시 "지방분권 상징에 맞게 자치권 확대해야"
행안부 "제주도와 달라 … 충분한 논의 거쳐야"
세종특별자치시 특별법 개정이 보통교부세에 이어 자치권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수준의 자치권 요구가 행정안전부의 공개적인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행안부는 충분한 논의 후 개정안 처리를 주장하고 있어 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 세종시 특별법 개정안은 보통교부세 특례로 논란을 빚었다. 특별법 개정안에 담긴 '세종시에 교부하는 보통교부세는 2030년까지는 '지방교부세법'에 의한 보통교부세 총액의 3/100 까지 되도록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한다'는 문구가 문제가 됐다.
개정안 내용이 알려지자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공식적으로 개정안 반대입장을 발표했다. 나머지 지방자치단체에게 돌아갈 교부세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교부세 논란은 세종시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해찬 의원 등이 "교부세 문제는 탄력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후퇴하면서 돌파구를 여는 듯 했다. 교부세를 제외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종시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해결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자치권이 문제가 됐다. 지난 2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행안부가 공개적으로 법안 내용 중 자치권 확대를 문제삼은 것이다.
특별법 개정안은 제1조에서 목적을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함으로써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촉진하고'라고 밝히고 있다. 내용을 보면 감사위원회 설치, 자치입법권 확대, 기구·정원·인사의 독립, 주민투표 등 기존 지방자치법 등을 뛰어넘는 자치권 확대를 담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이해찬 의원실 관계자는 "세종시는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이라며 "당연히 특별자치시에 걸맞는 제주특별자치도 수준의 자치권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행안부에서 교부세를 빌미로 자치권 확대를 막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행안부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시특별자치시는 목적 자체가 다른 만큼 충분한 논의를 전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섬인 제주특별자치도와 달리 세종시는 내륙에 있는 만큼 다른 시·도에서 형평성을 들어 자치권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 몫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제주특별자치도는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세종특별자치시는 국토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목적 자체가 다른 만큼 자치권 수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도 2년 6개월이 걸렸다"며 "세종시 특별법도 충분한 논의 후에 개정해도 늦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음하는 세종시 정부청사 공무원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2012.12.15 08:00)
지난 9월 국무총리실 일부 부서를 시작으로 진행된 중앙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이 이달 중 6개 부처 이전완료로 첫 단계를 마무리한다. 부족한 편의시설과 급박한 이전 일정 탓에 먼저 내려가 있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새어 나온다.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청사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업무환경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지은 지 채 한달이 안 된 건물에 들어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이른바 '새집증후군'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주 중 이전을 마무리하는 국토해양부나 지난주 끝낸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청사 가까운 곳에 변변한 식당 하나 없는 탓에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 때는 구내식당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결국 사람이 몰리는 걸 막기 위해 2부제를 실시했지만 사람은 많고 공간은 적은 탓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밥 먹는 데 30, 4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나 당장 선거 후 꾸려질 차기 정부를 위한 업무보고와 같이 굵직한 일은 앞으로도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기에 상당수 공무원들은 여전히 서울에 안테나를 세워둘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고속열차를 타도 3시간 이상, 차로 이동하면 4~5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서울에서 회의가 많은 까닭에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달라질 부분이 있다면, 먼저 내려간 공무원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편의시설이 현재보다는 많아질 것이라는 점, 정도일 것 같다. 한 공무원은 "행정안전부는 만명이 넘는 공무원의 이사를 책임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내려오지 않는 탓에 현지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며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데도 '계획은 이미 확정됐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듯한 모습에 같은 공무원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고 전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26/2012122602396.html
[뉴스 TALK] 식당도, 계산해줄 과장님도 없어 저녁 회식 문화 사라진 세종시 (조선, 세종시=나지홍 기자, 2012.12.27 03:05)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7/2013010702301.html
세종청사 한달 난맥상…피곤에 지친 공무원 (조선, 양이랑 남민우 기자, 2013.01.07 18:01)
장관들, 세종시에 거처 있어도 출퇴근
주요 업무 여전히 서울… 이동 잦아 피로도↑ㆍ효율성 ↓

여러 부처가 참석하는 주요 회의는 계속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국무회의, 차관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물가관계장관회의 등은 여전히 서울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개최된다. 장관들은 세종시 첫마을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있지만 이곳에서 숙박하는 경우가 드문 건 그 때문이다.
장관뿐 아니라 국ㆍ과장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빚어진다. 세종시로 이주하지 않은 타 부처나 민간 기업들과 소통해야 하는 부처는 서울 왕래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재정부의 한 과장은 "세종시로 다른 부처나 기업 관계자들을 오라 가라 하기가 난감해 우리 쪽에서 올라가는 편"이라며 "행정적인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각 부처가 영상회의를 할 수 있도록 총리실의 국무회의실과 기재부의 영상회의실에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언제부터 가동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영상자료 전송 중 정보가 해킹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행정안전부가 화상회의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한 공무원은 “아침 8시에 서울에서 회의 일정이 잡히면 새벽 5시에 세종시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회의를 마치고 세종시로 돌아오면 하루가 다 지나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이주 공무원에게 정착지원금이 매달 20만원 지원되고 있지만 이주로 발생하는 월세와 각종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부족하다고 공무원들은 토로한다.또 세종시에는 아직 종합병원과 같은 필수 부대시설이 구비되지 않은데다, 버스와 택시 등 대중 교통수단도 미비하다.
 
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696658&sid=E&tid=5
“행안부도 세종시로” (내일, 박준규 기자, 2013-01-11 오후 1:57:15)
세종특별시로 내려가 있는 공무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급기야 중앙 행정기관공무원노조에서 성명서까지 냈다. 모두 6가지 애로다. △하루 3시간이 넘는 출퇴근 △청사어린이집 보육교사 부족 △병원 식당 마트 등 편의시설 부족 △대중교통 부재와 주차공간 부족 △구내식당 부족 등을 들면서 주택가격과 전세가격 폭등에 집 구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화살은 청사 이전을 주도하는 '행정안전부'로 쏠렸다. '행안부가 세종시로 내려왔다면 이처럼 수용소같이 운영하겠느냐'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들조차도 뻔히 예상되는 것조차 선제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행안부를 '공무원같이' 행동한다고 비판하고 잇다. 행안부는 '공무원 중에 공무원'으로 찍힌 셈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112135595&code=950301
“식사는 했어?”… 세종시에선 인사말이 아닌 실제 상황 (경향, 오창민 기자, 2013-01-11 21:35:59)
ㆍ세종시서 한 달… 오창민 기자 분투기
▲ 고립된 섬
출퇴근 버스 자리경쟁 치열하고 통근버스 부족해 지각 다반사로
음식점 없어 구내식당은 늘 만원, 휴대폰·내비게이션도 자주 끊겨

세종시 중심에는 정부청사가 있다. 하지만 4주간 경험한 세종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도시’이다. 새로 건립된 정부청사는 휴대폰 통화연결도 잘 안되고,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고립된 섬’이다.
기사 전송 중에 인터넷이 중간에 뚝 끊기고, 화장실에서 양치 후 입을 헹구는데 갑자기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전날 밤까지 아무 문제 없이 사용했던 출입증이 예고도 없이 다음날 아침엔 ‘무용지물’이 된다. 이유를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허허벌판에 자리를 잡아 청사 부지는 엄청나게 넓은데 이상하게 주차장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직원 600명이 넘는 농식품부가 배정받은 승용차 주차 공간은 50대 남짓에 불과하다. 승용차 없이 자전거와 대중교통만으로 충분하게 친환경 설계를 했기 때문이라고 청사 담당자는 설명했다. 하지만 청사 주차장에 대지 못한 차들로 인근 도로는 서울의 아파트 주차장을 연상케 한다. 도로마다 양쪽에 차량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고, 심지어 중앙차로에도 자동차가 줄지어 있다.
▲ 혼돈의 땅
청사선 동서남북 분간 어렵고 곡선으로 배열 공간활용도 저하
부지는 넓은데 주차장은 태부족, “행안부 XXX” 곳곳서 육두문자

구내식당이 늘 초만원이다. 공무원 정원 40%를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됐지만 구내식당을 제외하면 청사 반경 3㎞ 안에 있는 식당은 공사장 ‘함바’(건설현장 식당) 2~3곳이 전부여서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6시50분. 양재역에서 세종청사로 출발하는 버스 2대는 이미 만원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공무원들은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후 6시25분에 세종청사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퇴근버스는 채 6시도 되기 전에 공무원들로 가득 찼다. 상당수는 청사 인근 조치원역과 오송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근 버스 외에는 사실상 출퇴근 방법이 없다.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종청사 앞에는 세종시가 자랑하는 간선급행버스(BRT)가 다니지만 운행시간이 엿장수 맘대로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공무원들은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버스 배차권한을 가진 행정안전부의 탁상행정과 무성의에 분통을 터뜨리는 정도이다. 세종청사에서는 사무실이든 식당이든 통근버스 안이든 어디서나 동물 이름이 들어간 “행안부 XXX들”이라는 육두문자를 하루에도 수차례 들을 수 있다. 위안이라면 이번 일로 많은 공무원들이 민원인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기회를 체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재정부의 한 직원은 “버스 타고 가면서 지난 공직생활 동안 민원인을 무성의하게 만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청사 환경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현 정부 탓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행정수도 건설을 목표로 시작된 세종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변모돼 추진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원안과 수정안 갈등을 겪으면서 공사가 지연됐다. 주택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구비가 되지 않았지만 충청권 표를 의식해 대선 직전 졸속으로 부처 이전이 이뤄졌고, 극도의 비효율과 대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공정위의 한 국장은 “정부에서 세종청사를 짓는다고 해도 공무원들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재정부의 한 과장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장 이상 고위 간부들은 세종청사가 지어질 즈음엔 은퇴 시점이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과장 이하는 사실상 발언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잖아도 정권 말기인데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실제로 이곳저곳에서 ‘나사 풀린’ 공무원들을 볼 수 있다. 지각은 다반사고 오후 5시가 넘으면 퇴근 준비에 일손을 놓고 있다. 특히 눈이라도 온 날은 더하다.
국토부의 한 과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먹을 걱정, 점심 먹고 나면 퇴근할 걱정, 퇴근해서 집에 가면 다음날 출근할 걱정이 된다”며 “이런 상황이니 일이 손에 잡힐 까닭이 없다”고 말했다. 재정부의 한 국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일을 열심히 하라고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수첩]세종시에 MB 오신 날 (머니투데이 세종=우경희 기자, 2013.01.16 08:01)
2013년 1월 15일. 세종시 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겐 특별한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처음으로 세종시를 방문한 날이어서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주재를 위해 이날 세종시 국무총리실을 찾았다. 
실제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단 한차례도 찾지 않았다. 세종시와 질긴 악연이 있다지만 정부 공무원이 일하는 공간을 국가 지도자가 애써 외면한 파장은 간단치 않다. 
세종시가 미비한 환경과 준비 부족으로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 이 대통령의 무관심과 맞닿아 있다. 현장에서 보면 청사 내 유해물질 검출 문제는 이미 예견된 거다. 수도관 동파사고도 심심찮다. 제설장비가 없어 눈이 내리면 도로는 시베리아 설원이다. 
생활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보육시설은 물론 집도 태부족이다. 주택 공급이 늦어 부동산 값만 뛰고 있다.
업무, 기능의 비효율은 심각한 문제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장관들은 시간을 길에서 버리고 있다. 부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윗선'이 세종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데 총대를 메고 세종시에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겠다고 나서는 부처가 있을 리 없다. 
준비부족이 불러온 파열음을 현장에서 들으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세종시를 절름발이로 출발하게 만든 이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지난 2004년 관습헌법을 인용한 행정수도 위헌 판결, 2011년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수정안에 대한 위헌 소송, 2010년 이 대통령과 정운찬 전 총리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 결국 부결됐지만 사업은 주춤했고 세종시는 늦어졌다. 
이 대통령이 임기말 세종시를 찾아 '격려'했지만 좀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축하'의 날, '축하'의 자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 시간여 국무회의를 마친 뒤 일부 세종시 주재 기자들은 총리실 기자실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세종시 첫 국무회의 브리핑은 서울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 대통령과 세종시는 이런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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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2 23:21 2013/01/1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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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Niemöller의 “First they came…”(그들이 처음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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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Niemöller의 “First they came…”(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글도 다양한 버전이 있었구나.  
 
그들이 처음 왔을 때
 
처음 그들이 공산당을 숙청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 그들이 유대인을 숙청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숙청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 다음 그들이 가톨릭교도를 숙청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결국 그들이 내게 왔을 때에는, 
나를 위해 나서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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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http://en.wikipedia.org/wiki/First_they_came...에서 
 
ㅇMartin-Niemöller-Foundation 텍스트:
 
First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communist.
 
Then they came for the social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socialist.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trade unionist.
 
Then they came for me,
and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for me.
 
ㅇ 다른 긴 버전:
  
First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communist.
 
Then they came for the social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socialist.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trade unionist.
 
Then they came for the jew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Jew.
 
Then they came for the catholic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catholic.
 
Then they came for me,
and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for me.
 
ㅇ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인용구:
  
First they came for the social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socialist.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trade unionist.
 
Then they came for the Jew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Jew.
 
Then they came for me,
and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for me.
 
ㅇ 또다른 버전:
 
When the Nazis came for the communis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communist.
 
When they locked up the social democrats,
I remained silent;
I was not a social democrat.
 
W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I did not speak out;
I was not a trade unionist.
 
When they came for the Jews,
I remained silent;
I wasn't a Jew.
  
When they came for me,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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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2 18:11 2013/01/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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