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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홉스봄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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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썼던 저명한 사학자 토니 주트는 생전 인터뷰에서 "그가 치러야 했던 가장 거대한 비용은 그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고집 센 공산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으로 기억되는 것"이라면서, "홉스봄은 이 같은 고집 때문에 뉘우치지 않는 공산주의 사학자라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며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한 평가"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입장 때문에 한 개인의 연구와 학문이 폄하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실제 짐이 된다면 바람직하진 않다.
 
김정한 교수는 홉스봄의 역사학이 마르크스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가 정확히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에 탁월한 연구 성과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고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게 다른 학문연구 분야에서도 가능할까. 어차피 당대의 계급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자였기에 역사학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면 이건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예외적인 특성 때문일까, 홉스봄이 탁월해서일까.
 
내가 하는 연구와 공부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그게 가능할까. 쉽지 않은 미션인 듯하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도 헉헉대고 있는 판국인데...
 
그런데 홉스봄이 그렇게 우리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던가? 아니면 책을 읽어도 거기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지도 못하고, 책을 읽었던 기억만 있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가 않고, 그럴만한 능력도 모자라는 듯하다.
 
이번 기회에 홉스 봄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읽어야할 책들과 글들이 쌓여 있다. 홉스봄의 책을 읽는 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이런 고전들은 따로 세미나나 독서모임을 하지 않으면 챙겨 읽기 어렵다. 올해 내로 뭐라도 하나 읽을 수 있을까. 『혁명가』라는 책은 지금 당장 읽어도 의미 있을 것 같다만...
 

김정한 교수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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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레디앙, 남종석 / 2012년 10월 2일, 4:09 PM)
 
저명한 역사학자와 투철한 공산당원 사이에서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2012-10-03 오전 10:01:33)
타계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일대기

별나게 끔찍한 세상, 하지만 희망은 지켰다! (프레시안, 김정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2-10-05 오후 6:57:40)
[에릭 홉스봄, 1917-2012] 홉스봄을 위한 변명
홉스봄은 냉전 시대에 당 지식인들의 험난했던 여정을 분석하면서 스탈린주의적인 공산당의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실제로 당의 지향을 변화시킨 인물들은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은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을 떠난다면 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탈당한 이들의 숙명은 반공주의가 아니면 정치적 무능력과 망각이었다.
 
홉스봄의 정치적 지론은 다양한 좌파들이 분열하지 않고 함께 싸우는 '인민 전선'이었다. 그는 혁명적이지 않은 정세에서 혁명가들이 자신들만의 신념과 원칙을 앞세워 대중들과 괴리되고 극소수파로 전락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유럽 공산당들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보통이 아닌 사람들(uncommon people)>(<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열림카디널 펴냄))은 역사의 곁가지에 불과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평범하지 않은 집단적인 실천에 나서고 사회를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다. '아무 특징 없는 흔해 빠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 홉스봄이 톰슨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 내지 '풀뿌리 역사'를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혁명가>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고 공산주의 혁명에 뛰어든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이 직면했던 곤경과 문제점들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런 저술들은 홉스봄의 주요 문제의식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반란과 반역의 주체로 참여하고 변화하는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홉스봄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진화주의적 역사관을 견지했지만, 반면에 그 이행 과정은 실증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연 법칙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세울 것 없는 수많은 익명의 개인들이 집단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조건과 계기들이 필요하며, 이것을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과제라고 믿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과 한 편에 서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면 홉스봄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적 고민과 과제가 현 체제에 대한 반란, 반역, 봉기가 어떻게 일어나며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면, 홉스봄의 역사학은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 난세에서 그는 페리 앤더슨의 말처럼 결국 패배한 좌파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패배한 것과 굴복한 것은 같지 않다. 그리고 이제 홉스봄은 자신이 즐겨 인용했던 혁명가들의 농담처럼 '죽음으로써 휴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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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12:39 2012/10/0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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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노조운동 전략수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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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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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보니 위와 같은 평화대행진 공지가 떴다. "우리가 하늘이다"라는 슬로건이다. 이걸 보는 순간 박노해의 시 '하늘'과 여기에 곡을 붙인 윤민석의 '하늘'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는 국제가수가 된 싸이가 예전에 TV에 나와 박노해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하늘'을 낭송했던 것도 떠오르고...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에 있던 걸 퍼왔다. 싸이와 NEXT가 만든 곡은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해서 담아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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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 하늘 2004/09/15 10:32

 

 박 노 해 - 하 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代代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난나님이 어제 아침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라는 글을 민지네 수도권 게시판에 남겼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는 하늘색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고 몇개의 덧글이 붙어 있어 나도 가벼운 말을 남겼지만, 실제 생각났던 것은 박노해의 시 '하늘'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 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생각만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프리다님이 '하늘'이라는 노래의 소스를 찾고 있어서 나도 찾아나서게 되었다.  

 

내가 '하늘'을 접한 것은 윤민석의 '노래여! 나의 무기여!'라는 제목으로 1989년에 나온 테입을 통해서였다. '전대협사수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윤민석 창작 연주모음 테이프 1집'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그 테입은 실로 히트곡 모음집이었다.

 

애국의 길, 편지1,2, 전대협진군가, 반미출정가2, 사랑하는 동지에게,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오 통일이여, 어머니2, 결전가, 내가 왕이다, 백두산 등의 노래가 실려있었는데, 다 알만한 노래가 아니던가? 당시 어린 나이에 한창 '민중민주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갖춰나가려던 나에게 이들 노래는 '어째서 좌파진영에는 윤민석과 같은 작곡가가 없을까'에 대해 생각을 하게 했고, 윤민석을 질시하게 하기도 하였다. 거기 나와 있는 노래를 가사를 바꿔부르기도 하였다.    

 

 윤윤민석, <노래여! 나의 무기여!> - 하늘

 

윤민석의 연주모음집에서 그래도 많이 와닿았던 노래 중의 하나가 박노해의 시 '하늘'에 곡을 붙인 노래였다. 박노해의 시 중에서는 '하늘'이라는 시보다는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가 더 유명하다. 아마 그 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해 쓰여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할 수 있는 희망과 용기에 대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를 먼저 알게 되었지만, 윤민석의 노래를 통해 '하늘'을 알게 된 후부터는 '하늘'이라는 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암송은 못한다.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의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하늘'은 1990년대 초반 한양대 노래패 소리개벽이 만든 테입 <동지여 굳세게>에 수록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도 윤민석의 테입과 소리개벽의 테입이다. 여기에도 상당히 유명한 노래들이 많다. 이 테입에서는 북소리와 함께 약간은 경쾌하게 편곡이 되어 있지만, 이 노래를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부르면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삶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비장미라고나 할까.

 

소리개벽 - 하늘

 

그리고 프리다님이 언급했던 성남노동자 노래패 아우성에서 1990년 나온 첫번째 노래집에도 이 노래가 실려 있다. 이 테입은 이번에 포스트를 쓰려고 하면서 찾게 되었다. 그 뒤에도 몇 군데 이 노래를 수록한 앨범이 있을 듯한데, 찾지 못하겠다. 

 

아우성 - 하늘

 

윤민석의 노래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하늘'이라는 노래는 가슴에 와닿는다. 윤민석이 곡을 붙인 노래가사는 박노해의 원작과 거의 비슷하며, 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 가슴에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 하늘이다

 

두 달 째 임금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죄없는 우리를 감옥 넣는다는
경찰 나리들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과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힘없이 살아온 내가
우리아가에게는 그 사람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주는
아 우리도 하늘이 하늘이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2006. 11. 30 추가

오늘 한국방송에서 하는 '낭독의 발견'에 싸이가 출연하여 박노해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박노해 시인을 위한 헌정앨범에서 직접 노래로도 불렀다는 ‘하늘’을 낭독하였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음반에는 

1. 가리봉시장 - 언니네 이발관     2. 하늘 - 싸이(Psy) & NEXT  3. 손무덤 - Stock Crackdown

4. 바겐 세일 - 정태춘                 5. 시다의 꿈 - 전순옥            6. 사랑 - 손병휘 

7. 아름다운 고백 - YNot?            8.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with 전인삼) - 황병기 

9. 민들레처럼 - 윤선애 & 모하비 10. 이땅에 살기 위하여 - 윤도현 밴드 

11. 겨울새를 본다 - 한대수         12. 노동의 새벽 프롤로그 - 김희정, 정용진 

13. 노동의 새벽 - 장사익            14. 대결 - 노동자 노래패 억새풀, 소리여울 

15.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 김현성 등이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하늘'은 윤민석 작곡의 노래가 아니라 아마 NEXT의 신해철이 작곡한 듯하다. 싸이는 여기에서 랩 부분을 맡았는데, 싸이의 랩이 주가 되고 있다. 10-20대들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박노해 헌정앨범에 실린 곡보다 윤민석 버전이 더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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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 18:57 2012/10/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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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영연구소의 변영주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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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주 감독의 이 인터뷰, 곱씹어 들을 게 많다. 트위터와 페북에서 많은 지인들이 링크를 하거나 언급을 해서 왜 이러나 했는데, 그럴만 했다. 아래에는 쓸만한 것을 발췌한 것인데, 전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 어쩌면 글로 한 인터뷰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가 영화로 말하는 것이나, 집회나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를 감안하면 인터뷰한 내용이 실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 변영주 감독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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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과 통화하던 그날, "이런, 젠장 할…" (프레시안,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2012-10-01 오전 10:54:38)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화차> 변영주 감독 "꼰대들과 싸우는 것이 임무"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들이 아니라, 오십 년 동안 세상 사람들 앞에 자기를 철저하게 숨겼던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에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후에 할머니들의 삶이 과연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사건으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게 되는 관점을 거기서 배운 것 같다. 어떤 일이 터지면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안에 누가 있는지, 그 사람은 누구인지에 훨씬 더 궁금해지게 되었다.
 
듣는 것이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고, 결국 나로부터 그 대답을 들으려고 애써보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쌍한 할머니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맞서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용감해져야 하는 거지'라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언제나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정치적인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코미디영화를 만들더라도 새누리당 지지자와 진보신당 지지자의 영화는 다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는지,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인 것이다.
 
생산을 한다는 것은 우아를 떨며 살롱 같은 곳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가 어느 순간 시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떻게 살기로 결심했고, 그 세상을 향해 이렇게 전진할 거야'라고 결심하며 사는 어느 순간, 내 시선에 의해서 잡힌 어떤 세상이 영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삶이 불안정한 것이 무섭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고 돈을 버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과 삶의 안정성이 같으면 정말 거지같은 나라 아닌가? 나는 내가 삶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걸 하고 있다면 삶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현실적 상황이 자기연민의 도구가 되면 망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생활이 안정적인 것은 우리 세대들도 못해본 일이고 전 세계도 못하는 일이다.
 
영화를 안 만든다고 내가 죽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고 싶다고 느껴지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을 관객들이 사랑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포기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안 한다. 내가 만약 어느 날 영화감독을 더 이상 못하게 되면 불행해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다. 내가 만약 꿈꾸는 어떤 삶이 있고 내가 세상을 손을 잡고 걸어가려는 어떤 길이 있다면 책 대여점을 하면서 꼬맹이들한테 "야 판타지 재밌는데, 이 책 죽여~"라며 책을 권하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NL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내가 NL이 될 수 없었던 유일한 이유는 처음 보는 사람과 친숙하게 지내야 하는 일종의 집단주의적 공동체 놀이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념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다.
 
<화차>를 막 찍기 시작했는데 '희망버스'가 시작되었다. 이 녀석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전화해서 오라고 하지, 나는 촬영을 해야 하지,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은 굉장히 쾌적한 숙소에 독방까지 주는데 침대에서 못 자겠는 거다. 사람들은 끌려간다고 그러지 김진숙 씨는 크레인 위에서 저러고 있지. 심지어는 침대에서 누워서 잔다는 것이 토가 나올 정도여서 맨날 바닥에서 잤다.
 
진보신당은 계속 작고 후지더라도 이 사회에 의미 있는 발언들을 계속하면서 존재하면 안 되나? 우리가 집권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않나. 진보신당이 집권하면 난 이민 갈 거다. 무서워서 어떻게 사나. 그런 수권능력이 없는 애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진보신당을 여전히 지지한다는 것은 이 당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지지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그 당의 기동성에 대한 지지일 것이고 그 당의 과감함에 대한 지지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X같다고 생각한다.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 내용과 상관없이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걸 팔아먹나? 아픈 애들이라며?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야,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압박은 견디라고 있는 것이고 스트레스는 받으라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려면 열심히 덕을 쌓아서 다음 생애에 친환경 농장에서 병아리나 소나 돼지로 태어나서 안전하게 스트레스 하나도 안 받고 무항생제로 살다가 맛있는 음식이 되면 된다.
 
<밀애>나 <발레교습소>를 생각해보면 매번 중간에 멈췄던 것이 흥행에 실패했던 것 같다. 바꿔 말하면 <화차>가 그나마 좀 잘된 것은 내가 상업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중간에 멈춰 서지 않고 끝까지 가 보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흐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대한 벽을 허무는 일'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벽을 한꺼번에 뽀개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끌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긁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자유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디테일하게 행동하는 거다. 꿈이라는 말보다 욕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다. 근원에 있는 욕망을 알아내려고 할 때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그건 아니지, 그건 잘못된 거지라고 해서 제어하지 않는 것이 자유인 것 같다. 가장 더러운 상상에서부터 가장 고귀한 상상까지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을 아주 디테일하게 행동하면서 내 삶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은 이렇게 할 거고, 이건 이렇게 할 거야. 그게 싫다면 당당하게 나한테 아니라고 얘기해. 뒤에서 뒤통수치지 말고"까지를 토해내는 게 자유인 것 같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너와 내가 어디가 비슷한 것인가'이다. '너와 내가 어디가 다른가'가 아니라 '너와 내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더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그것이 연동되어져서 나의 문제도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자기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서워서 그러는 거다. 스스로 무리 안에 있으면서 그 무리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으니까 자기는 독특하다고 하는 거다. 핵심은 승리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애들을 가짜로 독특하다고 인정해 주는 게 아니다.
 
후배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을 하든 지지해 주고 안전망을 마련해주고 손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구경하고 있거나 '너희들을 구원해주겠다'거나 '너희들,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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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23:08 2012/10/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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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은 해방구,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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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를 맞아 고향에 갔다 오면서 MP3를 통해 '녹슬은 해방구',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를 듣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었는데도 가사가 생각나는 게 노래의 힘이 어떠한지를 실감케 했다. 지금 시기와는 완전히 괴리되는 이 노래가 듣고 부르면서 전율에 젖었을 이들도 떠오르더라. 다른 이들이 보기엔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일지 몰라도 조국해방과 애국의 신심을 더욱 굳게 다젔을 터이다.
 
근데 '녹슬은'이 아니라 '녹슨'이 맞는 말 아닌가?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조국과 청춘 1집 - 녹슬은 해방구
 
조국 해방을 위해 온 겨울 산을 헤매이던 나의 동지
그대들의 죽어가던 그  밤, 그 해 겨울
 
그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동지들 흘린 피로(피었지)
앞서간 죽은 저편에 해방의 산마루로 피었지
그해 우린 춥지 않았어 동지들 체온으로
산천이 추위에 떨면 투쟁의 함성 더욱 뜨겁게
산 넘어 가지 위로 초승달 뜨면
멀~리 고향생각 밤을 지새고
수많은 동지들 죽어가던 밤
분노를 삼기며 울기도 했던
나의 청춘을 동지들이여
그대의 투쟁으로 다시 피워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국 해방의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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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을 꼭 살아야 하나. 2007/04/29 06:19

2007.03.06 05:29 

새벽에 불현듯 이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 만큼 인상적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이 노래는 전대협 노래단에서 만든 [전대협 우리의 자랑이여]라는 테입에 실려 있다. 89년경 제작된 이 테입은 <전대협 진군가>, <애국의 길>, <투쟁의 한길로>, <동지여 굳세게>, <투사의 유언>, <결전의 날> <바쳐야 한다>, <청년진군가> 등이 실려 있는데, 당대의 날리던 작곡가였던 윤민석, 박종화 등의 작품 중에서 뽑은 '발췌곡집'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노래들로 서로의 동지애를 확인하면서 NL 학생운동은 전대협의 깃발아래 학생운동을 풍미할 수 있었다.

 

이 노래들 중 약간 이질적인 노래가 바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였다. 노래가사가 항일무장투쟁(항무투)을 하던 민족해방군을 떠올리게 하는 게 80년대 풍이 아니라는 느낌을 들도록 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노래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심증만 있을 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중앙일보에서 운영하는 조인스 블로그에 보니 만주를 여행하던 이가 북한 사람들을 만나 이 노래를 부르니 함께 따라 불렀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북한 노래가 확실한 모양이다.

 

이 노래는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이었던 김준배 씨가 즐겨불렀다는 노래이다. 사실 이런 감성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걸 보면 '이런 것이 노래의 마력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식의 참된 삶은 별로 살고 싶지 않더라. ㅡ.ㅡ;; 걍 대충대충 살면 좋을텐데...) 현악 합주곡으로 나온 버전은 민예총 자료실에서 담아온 것인데, 그 원출처는 불명으로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풍의 노래가 <녹슬은 해방구>인데, 이는 [조국과 청춘] 1집에 실려 있다. 하지만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와는 달리 '조국과 청춘'에서 직접 작사,작곡했을 것이다. 원래 '녹슬은 해방구'는 지금은 타계한 권운상 씨가 쓴 9권짜리 장편 소설의 제목이다. 이것도 읽어보면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또 다른 맛이 난다.

 

 

 

 

 

전대협 노래단 1집 -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 생의 먼길을 쉼없이 걸어갈 때
인간에게서 한없이 소중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국에 바친 청춘이던가 나를 위한 안락이던가
동지들이여 생각해보라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항일의 그날 사령부 지켜 청춘과 생명 다 바친
그들의 한 생을 평범한 내 삶에 어찌 비길수 있으랴
그 날로 어찌 고귀한 생명 아낌없이 바치었던가
동지들이여 대답해보라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국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결전에 나선 투사
준엄한 날에 청춘을 바쳐 민중의 뜻을 따른 전사
세월은 가고 우리의 가슴에 영원토록 변치 않으리
동지들이여 참된 삶은 혁명의 길에 있어라
    

http://www.kpaf.org/attach/tbpdsd010/kpaf_20060210174051.mp3

현악 협주곡 -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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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20:04 2012/10/0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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