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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제 진단 및 대응방향 토론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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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유연근무제 진단 및 대응방향 토론회에는 고용노동부의 주무 과장도 토론자로 참석키로 했으나, 토론회 시작 직전에 불참통보를 하였다고 한다. 3곳의 국회의원실에서 주관함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정치력의 부족으로 봐야 할까. 정부 또한 유연근무제 추진 및 운영이 그만큼 자신있다면 일방적으로 유연근무제를 선전하고 강행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이들과도 당당하게 토론에 임하면서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제의 토론회에서 토론자 구성 자체가 일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서도...
 
여기에서도 소통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유연근무제를 추진하는 쪽이나 저지하려는 쪽이나 서로간에 일방적인 논의만이 진행된다. 이것은 주로 추진하는 쪽에 많은 책임이 있으리라.
 
박재범 동지의 발제문과 토론회장에서 볼 수 있었던 전국공무원노조의 연구프로젝트 보고서는 유연근무제의 현황과 문제점을 잘 분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러한 진단 및 대응 노력이 실체적인 힘으로 가시화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장의 투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공무원노조 또한 유연근무제 저지투쟁의 정당성 확산을 도모하려면 관련 설문조사자료 등 기초자료를 공개하면서 비판적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준)도 주최의 한 축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어제 토론회장에서는 토론자도 없었고, 방청객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물론 대대 준비로 인해 바쁘겠지만 유연근무제와 같은 사안은 남의 일이 아닌 만큼, 그리고 스스로가 주최자로 참여한 만큼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는 듯해서 아쉽다.
 
토론회의 끝까지 남아 토론자들의 발표까지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회의 때문에 발제만 듣고 토론회 자리에서 나온 것 또한 아쉽다.  
 
아래의 관련기사 외에 유연근무제 관련 글은 http://gimche.springnote.com/pages/6379891 참조

 

“유연근무제 때문에 애 낳기도 힘들어” (참세상, 김도연 기자 2010.10.25 19:28)
유연근무제, 일-가정 양립에 도움안되고 여성비정규직 양산
 
“공무원 유연근무제 도입, 단시간근로 확대 전초전” (매노, 조현미 기자, 2010-10-26 오전 8:15:31)
민주노총·공무원노조 등 ‘유연근무제 진단 및 대응방향 토론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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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1:38 2010/10/2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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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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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그대, 왜 침묵하는가? “데모크라시의 길은 직접민주주의 뿐” (경향, 김재중 기자, 2010-03-19-17:13:37)
ㆍ‘중간세력’이 무너진 모래시계형 전제화사회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9)이 국내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근대문학이 정치·사회·윤리적 역할을 떠맡았지만 이제 근대문학의 그런 역할은 끝났다는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은 2000년대 한국 문학계에 큰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 그를 인용한 글들이 자주 보이기에 그가 쓴 책을 처음 집어들었던 게 10년 전쯤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이었는데 한마디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일본에서 신좌익운동이 붕괴한 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마르크스 해석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에세이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나의 지적수준으로선 요령부득이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잡고 끙끙대다가 던져버린 뒤로 나에게 가라타니는 요령부득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대담집을 번역한 <정치를 말하다>는 나처럼 ‘가라타니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거나 처음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꼭 알맞은 책이다.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대학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사상적 궤적을 대화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60년대 일본을 격렬하게 달궜던 ‘안보투쟁’을 어떻게 바라봤고, 왜 경제학을 공부하다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어떻게 문학평론가가 됐다가 결국 문학을 포기했는지, 단체를 만들고 사회참여를 하다가 왜 단체를 해산해 버렸는지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썼던 책들에 대한 요약과 부연이 담겨 있어 해당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논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생산과정이 아니라 유통과정이라는 분석, 국가를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다루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등 그의 독특한 시각들 말이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가라타니가 이번 책에서 던진 주요 메시지는 정치와 민주주의, 평화다. 가라타니는 90년대에 만개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내적으로는 전제주의로 귀결됐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일본사회에서 노조가 파괴되고 대학이 민영화되면서 중간세력이 없어졌고 전제사회가 됐다고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투표를 통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개인에게 가능한 것은 대표자를 뽑는 것뿐이다.
 
가라타니는 전제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의제 이외의 정치적 행위를 찾는 것이라면서 ‘데모’, 다른 말로 하자면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의제란 대표자를 뽑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참여하는 데모크라시가 아닙니다. 데모크라시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비평지 ‘비평공간’을 창간했다가 닫아버리고 새로운 ‘혁명운동’으로 생각하며 ‘생산·소비협동조합운동(NAM)’을 조직했다가 일거에 해산해 버린 이유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어차피 끝날 거라면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보다 그만두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 그랬다는 것이다. 가라타니에 천착해 한국 기성문학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는 역자 조영일은 이에 대해 “실패가 아니라 엘리트의 자기우상화에 대한 강력한 거부였던 셈”이라며 “가라타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그 자신에게도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간 탐색]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은 어떻게 형성됐나 (2010 03/30ㅣ위클리경향 868호, 정원식 기자)
ㆍ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 | 고아라시 구하치로 지음 | 조영일 옮김 | 도서출판 b | 1만5000원
 
근대문학에 사망선고를 내린 <근대문학의 종언>이 지난 2004년 한국에 소개된 이후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읽히는 일본 지식인이 됐다. 그의 새 책 <정치를 말하다>는 일본 작가 고아라시 구하치로가 2008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그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지식인 인터뷰를 활자화한 책이 지니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일차적으로 ‘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옮겨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될 정도로 정교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이가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말을 글처럼 밀도 높게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인터뷰를 정리한 책은 종종 난해한 사상을 독자들에게 가독성 높은 방식으로 풀어 설명하는 구실을 한다. <정치를 말하다>에서 가라타니는 자신의 사상이 1960년대 이후 동시대 일본과 세계의 정치적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 온 결과물인지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가라타니는 1969년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평론으로 문학비평을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학생동맹’(사학동) 재건에 깊이 관여했는데, 사학동에서 손을 뗀 뒤 “계속 운동을 이어 나가기 위한 가능한 선택지”의 하나로 문학비평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비평’ 활동은 곧 기존 문학비평의 협소한 영역을 넘어 판이하게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 그의 자술에 따르면, 그는 1970년 들어 “소설을 논하는 것만이 비평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비평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론>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중심적인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는 네이션(국민)-국가-자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와 네이션을 단순히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지탱되는 일종의 환상적 표상으로서만 생각했던 데 반해 가라타니는 국가가 그 자체로 능동적인 주체라는 점을 역설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생각과 달리 계급 대립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벼리는 과정에서 그는 1960년 일·미 안보조약 개정, 1968년의 전 세계적 학생운동, 1990년대의 걸프전, 2000년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이 사유의 씨앗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자국 노동자를 내버리고 해외로 나아가는 자본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다. 그는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동맹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지역통화 등을 포함하는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이다. 그는 또한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제는 귀족정에 불과하다면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시위)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지만, 그 주장 아래에는 그러지 않고는 개인의 원자화로 활력을 잃은 일본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기 힘들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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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1 15:21 2010/10/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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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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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 정녕 출구는 없는가? (프레시안, 이관형 미학자, 2010-10-08 오후 7:23:58)
[프레시안 books]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혁명을 꿈꾸는 자가 있는가? 인간 이성을 신뢰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그 기치 하에 일어난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혁명에 침을 뱉을 자가 있는가? 인간 이성을 조소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이 조소하는 인간 이성과 혁명이 치열하게 이루려 한 것을. 그 위대한 문제의식을.
 
혁명! 러시아 혁명! 그것은 애굽(이집트)의 종살이를 걷어치우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감을 보장하는 인간 이성의 약속이었다. 미륵 세상이자 천년 왕국의 약속이었다. 장자(莊子)가 소요유로,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으로, 각종의 민란과 농민 전쟁으로 꿈꾸었던 그것이었다. 엥겔스가 독일 농민 전쟁을 분석한 후 그것이 실패한 이유를 혁명의 물적 토대의 부재에서 찾고 이제 근대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생산력)에서 비로소 인류의 오랜 꿈, 모든 사상과 모든 종교가 이루고자 한 그것, 평등 세상의 실현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신이 약속한 가나안 땅은 40년 광야 생활의 고통을 통해서야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 인간이 약속한 가나안에 다다르는 데에는, 비록 수많은 이의 피가 필요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917년 혁명 발발 후 불과 5년 만에 20세기의 가나안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20세기의 가나안'에도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광야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약속은 70년도 채우지 못하고 파기되었다.
 
그 7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한낮의 어둠>(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이 70년 초반의 10여 년간 벌어진 일을 소련 공산당 최고의 이론가 부하린을 모델로 했다는 주인공 '루바쇼프'의 최후를 통해 보여준다. '젖과 꿀이 흐르게' 하고자(?) 먼저 동지들의 '피를 흐르게' 했던 일련의 사건을 그 동지들의 대표 단수 '루바쇼프'를 통해 전한다.
 
그 10여 년간 허다한 혁명의 주역들이 죽었다. 그것도 혁명 과정이 아니라 혁명을 이룬 소련에서, 적이 아닌 동지의 손에 죽어갔다. 레닌이 병석에 있던 1923년 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트로이카 체계를 형성, 반 트로츠키 노선을 편다. 1924년 트로츠키와 그 파는 힘을 잃는다. 공동의 적 트로츠키가 힘을 잃자 1925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레닌의 부인인 크루프스카야 등과 손을 잡고 스탈린과 대적한다. 스탈린은 부하린 등과 연합한다. 지노비예프 등은 세를 불리기 위해 이번엔 반대로 트로츠키 등과 이른바 '통합반대파'를 결성한다. 1926~27년이다.
 
그렇지만 1928년 이후 트로츠키는 당에서 제명되고 유배, 국외 추방의 길을 걷다가 1940년 망명지 멕시코에서 자객에게 피살된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도 부침을 거듭하다가 1936년 모스크바 재판을 통해 처형된다. 이들(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의 처형을 계기로 1937~38년 고참 볼셰비키들에 대한 처형 광풍이 몰아친다. 부하린도 이 광풍을 피하지 못한다. 그는 스탈린 진영에 가담했으나 한때 지노비예프 등을 끌어들여 스탈린과 대적하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1938년에 처형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갔다. 이중(二重)의 데자뷔(旣視感)를 경험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책 안의 상황을 이미 겪었다는 느낌. 내가 무슨 대단한 투사였다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주인공 '루바쇼프'와 같은 경험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철이 바뀌어 새로 꺼내 입은 옷에 들어 있던 꼬깃꼬깃한 지폐처럼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온갖 악다구니를 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군홧발의 아득한,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더불어 'SKRM(남한 혁명 운동)'이라는, 지금 생각하니 무모하고 모호해서 오히려 가상하고 기특하기도 한, 그를 둘러싼 소위 '사투(사상 투쟁)'의 기억까지 밀려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서로의 가슴에 남은 깊은 상처들까지···.
 
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우리가 성공했더라면? 우리 역시 수많은 생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와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와 부하린과 또 다른 박헌영과 임화를 낳지 않았을까? <한낮의 어둠>을 읽으면서 느낀 데자뷔는 우리가 겪은 1980년대의 혁명도 무엇도 아닌 상황에서조차 예상할 수 있었던 어둠, 한낮이 도래하기도 전에 느꼈던 어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였나? 나는 <한낮의 어둠>의 한 장 한 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인생의 "한낮"이던 푸르던 날의 푸르른 기상은 기억에 없고 "한낮"을 옥죄던 구속과 폭력의 두려움, 조직과 인간에 대한 실망,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과 좌절 등의 "어둠"만 되살아났다. 이제 초연할 만도 한데 그렇게 되질 않았다. 모든 평론이 그렇듯 서평도 그 대상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우리의 1980년대와 오버랩(overlap)되면서 다소간의 객관성도 유지하지 못할 지경으로 나를 끌고 갔다.
 
루바쇼프는 '우리' 볼셰비키들의 정치적 입장을 이렇게 말한다. "위태로운 전환기에는 오래된 법칙(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법칙) 외에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우린 이번 세기에 신마키아벨리즘을 도입했다. (··) 우리는 보편적 이성의 이름을 내건 신마키아벨리주의자였고 그것이 우리의 위대성이었다." (138쪽)
 
저자 아서 쾨슬러는 '그들' 볼셰비키에 대해 덧붙인다. "그들은 권력 철폐를 지향하는 권력을 꿈꾸었고, 사람들의 지배받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지배하는 일을 꿈꾸었다." (87쪽)
 
루바쇼프는 이런 신념 하에 자기 자신이 훗날 똑같은 논리로 제거당할 논리를 내세워 하부 당원(리하르트)을 제거한다. "역사는 망설임과 주저를 모른다네. 완만하지만 과오 없이 자기 목표를 향해 흘러갈 뿐이지. 역사는 지나는 경로의 모든 굴곡에 그것이 실어 나르는 진흙과 익사자의 시체를 남기네. 역사는 자기 길을 알고 있고, 결코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아. 역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지 못한 자는 당원이 아니야." (67쪽)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망설임과 주저'에 봉착한다. "미래에 무엇이 진리로 판단될 것인지 현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타고난 예지적 능력도 없이 예언자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비전을 논리적 추론으로 대치시켰다." (142쪽)
 
결국 그는 자신이 패배하였음을 자인한다. "사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의 무오류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패한 이유이다." (142쪽)
 
그럼에도 루바쇼프는 '품위'를 버리고 '이성'을 택한다. 즉 역사를 위해, 당을 위해, 인민을 위해 최후의 봉사를 한다. 당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함에도 당의 지시를 이행한다. 자신이 반동이자 배신자라고 공개 재판을 통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인민의 공분이 자기에게 쏠리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도 그는 의문의 답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그 의문을 자신의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그러나 약속된 땅은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이 방황하는 인류를 위한 그런 목표가 정말로 있었는가?" (351쪽)
 
혹자는 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말이 옳았다고. 근대적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즉 '젖과 꿀'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어야 혁명이 일어난다고.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필연적·법칙적 도래를 기다리자고 하지 않았다. 결국 혁명은 오히려 '약한 고리(?)'인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까지 '의지'가 개입하지 않은 '필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혁명을 성취한 볼셰비키들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젖과 꿀'의 문제를 놓고, 그 문제를 실현할 권력의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스탈린이 승리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정확히는 69년 만에 간판을 내린다. 혹자는 스탈린이 사회주의를 말아먹었다고 한다. 혹자는 스탈린의 중공업 정책이 있었기에 그나마 소련이 69년이라도 지속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옳든 가정은 가정일 뿐이고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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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17:28 2010/10/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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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젊은 해적, 한국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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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보도자료를 퍼왔다.  약간 편집해서리... 

"젊은 해적, 한국에 오다!"

  

수신 : 각 언론사 정치부, 사회부, IT 관련 담당 기자
발신 : <우리도 해적이다> (해적당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모임)
일시 : 2010년 10월 7일(목)
제목 : 젊은 해적, 한국에 오다! - 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Amelia Andersdotter) 한국 방문
문의 : 홈페이지:http://pirateparty.kr/ 트위터: @ppkorea 담당 : 오병일(antiropy@gmail.com, 02-774-4551, 010-2213-9199)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애쓰시는 귀 언론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1. 아멜리아 초청 및 관련행사 주체 : 해적당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모임(가칭 '우리도 해적이다')

<우리도 해적이다>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해적당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국내 네트워크입니다. 해적당 운동의 의미와 국내에서 해적당 설립의 필요성 및 타당성 등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2. 전세계에 불어오는 해적당 바람!

전 세계에 해적당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스웨덴 해적당은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를 득표, 유럽의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도 독일 해적당이 그동안 가장 강력한 원외정당이던 국가민주당(NPD)를 누르고 원외정당으로 최다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생애 첫 투표에 나선 남성 유권자 13%가 해적당을 지지했습니다. 베를린 지역의 총 유권자 가운데 해적당 지지율은 3.4%를 기록했습니다.
스웨덴 해적당의 경우, 올해 총선에서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해적당은 전세계 40여개국에서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16개국에서 정당으로 모습을 갖췄으며, 32개국에서 준비 모임이 구성되었거나 논의 중입니다.  2010년 4월에는 해적당 네트워크인 ‘해적당 인터내셔널’이 출범, 젊은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해적당’, 디지털 시대의 합법 정당으로서 해적당은 어떻게 세계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해적당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3. 왜 ‘해적’인가

딸 아이가 인기가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면, 당신은 이미 현행법상 저작권을 침해한 ‘해적’입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합법 판결을 받고, 2심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인기 드라마 팬카페에서 드라마 이미지나 움짤(동영상 클립)을 공유하는 것도 저작권자가 요구하면 즉시 삭제되는 ‘해적’ 행위입니다.  기존 음악과 영상을 이용,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비영리 라디오 방송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해적’입니다.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타인의 저작권을 공공연하게 침해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시대에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누는 행위가 ‘해적질’로 불리고 있습니다.

타인의 재산을 훔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창작물을 매개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위조차 ‘해적’이 되버리는 세상. 기존 저작권법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소비와 생산, 유통을 상당수 ‘불법’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작권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호’에 관심갖는 동안 공정한 이용 방안은 외면되어 왔습니다.


<우리도 해적이다>는 이 같은 저작권 문제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저작물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를 비틀고 조립하고 재해석하여 또다른 창작물로 만드는 창의적 시도가 더 이상 ‘해적’으로 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평범한 이용자 다수를 ‘범법자’로 만들어버리는 법 제도라면, 법 자체를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해적당은 저작권 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보안, 프라이버시 등의 이슈에 대해 이용자를 보호하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향성을 고민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해적당에 대한 논의와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지적재산권 문제와 더불어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계 시민사회의 우려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들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저작권 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고민과 대안 모색에 나설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도 해적이다>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4. 아멜리아 초청 행사 개요

<우리도 해적이다>는 2010년 10월 17일,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Amelia Andersdotter. 23)를 한국에 초청하였습니다. 아멜리아의 방한 기간 동안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 시즌2 – 저작권은 창조의 무덤’, '스웨덴 해적당 아멜리아 초청 토크', 여야 국회의원 및 전문가 간담회, 국내 청년 해적들과의 만남,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아멜리아의 이번 방한은 해적당 운동의 현황과 의미를 이해하고, 저작권, 특허, 보안과 프라이버시 등 관련 국내 정책들을 돌아보며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 초청자 : ㅤ젊은/좌파/여성/해적/의원 - 아멜리아 엔더스도터(Amelia Andersdotter)

아멜리아 사진

1987년 스웨덴 엔셰핑(Enköping)에서 태어난 아멜리아는 룬드(Lund) 대학에서 경제학과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해적당 청년 조직인 '청년 해적(Ung Pirat)'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 신분으로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원(MEP, Member of the European Parliament)으로 당선됐으며 현재 대학을 중퇴하고 해적당 운동가로서 정치 활동에 본격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저작권법의 전면적인 개혁, 특허 시스템의 완전한 철폐,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도 프라이버시권 등 시민적 권리의 강력한 보호를 위해 활동 중입니다.

 ○ 주요 일정

- 10월 17일 (일) 2시 :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 시즌 2 “저작권, 창작의 무덤”
- 10월 18일 (월) 2시 :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
                         4시: 스웨덴 해적당, 아멜리아 초청 토크 - "해적당, 그것을 알려주마!"
- 10월 19일 (화) 2시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오픈 세미나
                         7시 : CC Salon
- 10월 20일 (수) 오전 10시 : 국내 국회의원과의 토크쇼
                         2시 : 국회 문광위, 외통위 의원과의 라운드테이블
                         5시 : 고려대학교, 아멜리아 초청 강연 “누구를 위한 저작권인가”

보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하는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많은 관심과 보도 바랍니다.
 

<참고 자료>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Amelia Andersdotter) 한국 방문


0. 행사 개요 및 주요 일정


<10월 17일 (일요일)>

1.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 시즌2 “저작권, 창작의 무덤”

- 일시 : 10월 17일(일) 오후 2시 - 6시
- 장소 : 연세대 교육대학원 (101호)
- 주최 : 인터넷 주인찾기 (http://ournet.kr)
- <인터넷 주인찾기>는 인터넷의 주인인 네티즌이 인터넷 관련 정책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자 만들어진 네트워크입니다. 지난 5월 15일 ‘인터넷 실명제’를 주제로 한 1차 컨퍼런스에 이어,  “저작권, 창작의 무덤”이라는 주제로 2차 컨퍼런스를 진행합니다. 저작권법 때문에 자유로운 2차 저작물 창작 의지가 위축받는 현실을 누리꾼들 사례를 들어 예시하고, 공정하게 저작물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저작권자로부터 '묻지마' 고소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실례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또한 대형 콘텐츠 제작 및 유통업체들이 누리꾼들에게는 저작권 준수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에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재사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실제 있었던 예시를 들어 꼬집어 볼 예정입니다.  홀말이 되어 '창작의 무덤'으로 향하는 저작권제도는 짝말로 다시 서야 합니다.


<10월 18일 (월요일)>

2.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

- 일시 : 10월 18일(월) 오후 2시 - 4시
- 장소 : 성미산마을극장 (http://cafe.naver.com/sungmisantheater)
- 주최 : 우리도해적이다, 인권영화제
- 지적재산권 체제에 비판적인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저작권에 비판적인 영화답게, 이 영화들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자유롭게 복제, 배포, 수정할 수 있는 '오픈소스 영화'입니다. 오프라인 상영과 함께 온라인에서도 <우리도 해적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할 수 있습니다.


3. 스웨덴 해적당, 아멜리아 초청 토크 - "해적당, 그것을 알려주마!"

- 일시 : 10월 18일(월) 오후 4시 - 6시
- 장소 : 성미산마을극장 (http://cafe.naver.com/sungmisantheater)
- 주최 : 우리도 해적이다,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 사회 :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진보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
- 패널 : 아멜리아,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전 대표)
- 해적당의 모든 것을 파헤쳐 봅니다. 초청자인 아멜리아(Amelia)는 누구이며, 어떤 계기로 해적당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해적당은 어떠한 준비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해적당은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정책으로 관철시킬 전략은 무엇인지, 해적당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등. 사회자의 진행 하에 아멜리아와의 토크쇼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청중들도 자유롭게 질문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동시통역 제공)


<10월 19일 (화요일)>

4.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오픈 세미나

- 일시 : 10월 19일(화) 오후 2시 - 4시
- 장소 : 한신대학교 (추후 공지 예정)
- 주최 :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5. CC Salon

- 일시 : 10월 19일(화) 저녁 7시 - 10시
- 장소 : 영등포 하자센터, 신관 허브홀(http://2010.haja.net/cakephp/app/about/way)
- 주최 : CC Korea

 

<10월 20일 (수요일)>

6. 국내 국회의원들과의 토크쇼

- 일시 : 10월 20일(수) 오전 10시-12시
- 장소 :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
- 주최 : 우리도 해적이다, (민주당, 한나라당 의원실 예정)
- 사회 : 정상조 교수(서울대 법학)
- 패널 : 아멜리아, 민주당/한나라당 의원, 김기창 교수(고려대 법학)
-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와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만나, 아멜리아와 같은 젊은 정치인들이 가능한 사회 시스템과, 그 젊은 정치인들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좀더 구체적으로는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스웨덴 해적당의 저작권, 특허 제도 등에 대한 정책들을 함께 이야기해 봄으로써, 우리의 젊은 정치의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려합니다.
 

7. 외통위/문광위 위원과의 라운드테이블

- 일시 : 10월 20일(수) 오후 2시 – 3시
- 장소 : 국회 외통위 위원장실
-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및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한EU FTA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8. 고려대학교, 스웨덴 해적당 유럽의회 의원 아멜리아 초청 강연 “누구를 위한 저작권인가?”

- 일시 : 10월 20일(수) 오후 5시 - 7시
- 장소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401호
- 주최 : 고려대학교 법대
 

1. 배경

- 우리의 문화는 자유롭습니까?

딸 아이가 인기가수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도 저작권 침해로 차단됩니다. 인기 드라마의 팬카페에서 드라마 이미지나 움짤(동영상 클립)을 공유하는 것도 저작권 위반입니다. 기존의 음악과 영상을 이용하여 비영리 라디오 방송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저작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고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없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해적'이라면, 대부분의 우리는 해적입니다. 그러나 해적인 우리는 타인의 재산을 훔치는데 관심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창작물을 매개로 자신을 표현하고 창작자를 비롯한 타인과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권법.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단지 문화상품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창작물에 살을 붙이거나 비틀어, 혹은 분해하거나 조립하여 또 다른 창작물의 (수용자이자) 창작자가 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있습니까? 

- 특허 의약품은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까?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은 보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판 허가를 받고도 4년 동안이나 공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은 제조원가가 1000원도 되지 않지만, 이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제약회사는 말합니다. 혁신적인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특허로 인한 독점이 불가피하다고. 그러나 특허 제도는 과연 혁신적 의약품 개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습니까? 혹은 제약회사의 횡포와 의약품 구입에 드는 돈에 구속되지 않고, 마음놓고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 시민의 안전을 위해 프라이버시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테러범 색출을 위해 공항에 알몸 투시기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CCTV,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로그기록 보관 의무화 등 '누구나 잠재적 범죄자'임을 전제로 한 기술과 정책의 도입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문화되고 있습니다. '누가 위험사회를 초래했나?'라는 질문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프라이버시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에 압도되고 있습니다. 과연 빅브라더의 품 안에서 시민은 안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안전하게 보호받는 시민은 행복할까요? 

- 저작권, 특허, 보안과 프라이버시

이들은 해적당의 주요 관심 이슈들입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해적당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지적재산권 및 국가 통제의 강화로 인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우려가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우려가 왜 해적당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는지, 그리고 해적당이 기존의 정치 체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똑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오는 2010년 10월 17일, '우리도 해적이다'는 스웨덴 해적당 소속인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Amelia Andersdotter)를 한국에 초청합니다. 아멜리아의 방한 기간 동안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 시즌2 - 해적이 온다!', '스웨덴 해적당 아멜리아 초청 토크', 국내 국회의원들과의 토크쇼, 국내 청년 해적들과의 만남, '다운로드 해적들'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아멜리아의 이번 방한은 해적당 운동의 현황과 의미를 이해하고, 저작권, 특허, 보안과 프라이버시 등 관련 국내 정책들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남희섭(정보공유연대 전 대표) 인터뷰, "우리도 해적이다." / 민노씨.네 블로그
 

2. 해적당 소개

(1) 스웨덴 해적당

스웨덴 해적당 로고 해적당은 불과 4년 반 전인 2006년 1월 1일, 리카르드 폭빈지(Rickard Falkvinge)가 스웨덴에서 해적당 홈페이지를 오픈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적재산권을 제한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위한 서명운동을 제안했는데, 이틀동안 3백만 건의 접속이 있었고 하루만에 2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냈다. (스웨덴에서는 정당 등록을 위해 15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그 해 9월 17일 치뤄지는 총선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6년 5월 31일, P2P 방식의 파일 공유를 위한 비트토런드(Bit-Torrent) 검색 사이트인 해적만(The Pirate Bay, TPB)이 저작권 침해죄로 스웨덴 경찰에 의해 서버가 압수되고 3일간 접속이 차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웨덴 해적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더욱 폭발하였다. 그 해 9월 총선에서 스웨덴 해적당은 0.63%를 득표함으로써 세번째로 큰 원외정당이 되었다. 이어 2009년 6월 7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해적당은 스웨덴 투표의 7.13%를 득표하며, 유럽의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하였다. (처음에는 의석이 하나였으나, 리스본 조약 체결로 2009년 12월 1일부터 의석이 두 자리가 되었다.) 크리스티앙(Christian Engström)이 해적당의 유럽의회 첫 의원이 되었고, 아멜리아(Amelia Andersdotter)가 두 번째 의석을 차지하였다. 

(2) 스웨덴 해적당의 정책

스웨덴 해적당의 정책은 크게 3가지이다. 1) 자유 문화 - 균형잡힌 저작권을 위한 제도개혁 2) 자유 지식 - 특허제도의 폐지 3) 개인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

1) 자유 문화 - 균형잡힌 저작권을 위한 제도개혁 : 스웨덴 해적당은 현재의 저작권 체제가 문화적 창작과 창작물의 확산을 장려한다는 애초의 목적을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균형의 회복을 위해 해적당은 파일 공유와 P2P 네트워킹을 포함하여 문화적 창작물의 비영리적 복제와 이용의 완전한 허용, 저작권 보호기간을 출판 후 5년으로 단축 등 저작권 체제의 완전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디지털권리관리(DRM) 기술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자유 지식 - 특허제도의 폐지 : 해적당은 의약품 특허 제도가 이윤을 위해 제3세계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소프트웨어 특허나 영업방법 특허와 같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야기하거나, 성숙한 제조업 분야의 특허와 같이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특허 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면서, 의약품 특허에 대한 대안으로 의약품에 대한 공공지출을 절반으로 삭감하면서도 제약 연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3) 개인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 : 미국의 911 사건 이후 유럽 역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왔다고 비판한다. 해적당은 시민 감시에 반대하고,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할 것을 주장한다. 이에 유럽연합(EU)의 데이터 보호지침 (Data Retention 지침, 인터넷 로그 기록 보관을 의무화하는 지침) 및 인터넷 트래픽을 모니터링하는 FRA법에 반대하며,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위조 및 불법복제방지 무역협정(ACTA)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스웨덴 해적당은 위와 같은 정책에 초점을 맞추며, 그 외의 좌/우파 정당의 정책 영역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3. 해적당 인터네셔널

2006년 스웨덴 해적당이 출범한 이후,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각 국에서 연이어 해적당이 창당되고 있다. 스웨덴에 이어 독일 해적당 역시 2009년 9월 30일 있었던 지방의회 선거에서 두 개의 시의회 의석을 얻는데 성공했다. 현재 호주, 벨기에, 체코,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 캐나다 등 15개 국에서 해적당이 공식 정당으로 등록되어 활동 중이며,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 20여개 국에서 해적당 설립이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2010년 4월 16일-18일, 브뤼셀에서 개최된 회의를 통해 전 세계 해적당의 네트워크인 해적당 인터내셔널(Pirate Parties International)이 설립되었다.
* 전 세계 해적당에 대한 현황은 위키피디아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Pirate_Parties_International
 

4. 초청자 소개

ㅤ젊은/좌파/여성/해적/의원 - 아멜리아 엔더스도터(Amelia Andersdotter)

아멜리아는 1987년 Enköping에서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24살) 룬트(Lund) 대학에서 경제학과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중, 졸업을 앞두고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의회 의원(MEP)으로 당선되었다. 그녀는 해적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 해적(Ung Pirat)'의 국제 코디네이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는데, 당내 투표에서 또 다른 유럽의회 의원인 크리스티앙(Christian Engström)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저작권법의 전면적인 개혁, 특허 시스템의 완전한 철폐,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도 프라이버시권 등 시민적 권리의 강력한 보호를 주장한다. 그녀는 해적당 외에도 학생 라디오 운동이나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 등 다양한 단체들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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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7 12:07 2010/10/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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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위원회, 대통령이 위원장인 독립행정위원회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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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거버넌스를 개편한다고 하더니 결국 사실상의 과기부 부활로 결론이 났다. 출연연 거버넌스는 국과위 산하로 통합하면서도 현재의 구조를 유지토록 한다고 하니 완전히 개악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최종결정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총리직을 만들지 않고, 과학기술, R&D 분야에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통령이 직접 국과위장을 맡는 것으로 하였다. 하긴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면서 부총리직을 없앴는데, 새롭게 부활시키는 게 부담스러웠겠지. 사실상 과학기술부를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 없으면서 정부조직개편이 실패했다는 말을 듣기 싫었기에 비교가 되지 않도록 국과위 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지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걸 보면 말로는 경제적 효율성, 생산성, 원칙 운운하는데, 왜 이리 정치적으로, 단기적인 시야만을 보면서 조직개편을 하는지 모르겠다. 원래 그런 것인가.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상설국과위의 역할과 교과부의 제2차관 산하 조직을 묶어 제대로 된 부서를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한국일보의 사설에서 주장된 것처럼 상설 국과위가 출범할 경우 필요한 전문가들 대부분은 교과부 제2차관 산하 조직에서 충원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현재의 교과부에서 과학기술 관련 부서는 더욱 부실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국과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예산권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에 종속될 수 있을 것이기에 아예 대통령이 위원장인 행정위원회로 하여 독자적인 예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독특한 발상이다. 위원회 조직이라는 게 합의제를 통해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신중한 결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인데, 장관급 위원장 이상의 위상을 부여하여 대통령이 위원장이 되도록 한 것은 한국적 특색인 독임제적 위원회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위원장이 된다면 어떻게 위원회 고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위원회의 결정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강력한 위원회 조직으로서(과거의 기획예산위원회가 좀더 권한이 강했으려나?) 그 도입이나 운영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정권을 잡게 될 경우 설치할 수 있는 국가기획기구인 국가기획위원회나 사회공공성위원회 등의 전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자료 링크: http://gimche.springnote.com/pages/650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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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08:28 2010/10/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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