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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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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9월부터 사회공공연구소에 반상근으로 일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공공운수노조(준)에서 내는 무료신문 '꼼꼼' 발행하는 '공공운수노동자'에 칼럼 비슷한 것을 쓰게 되었습니다. 짧은 분량이라서 할 말을 다 한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최근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문제로 논란이 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글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편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에 제가 보낸 원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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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여년 동안 시행해온 대규모 공채 위주의 공무원 채용방식을 개방형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은 8월 12일 발표된 이후 행정고시 준비생들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고, 거의 모든 신문들이 사설을 통해 그간의 적지 않은 고시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공직사회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개혁의 취지에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많은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사안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고,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실시되고 있는 개방형 임용제를 보면, 일반 전문가들 대신 오랜 공직경력의 노하우로 무장한 관료들로 채워졌고, 이들 또한 관료로 있다가 김앤장 같은 로펌에 있다가 다시 돌아오는 회전문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이를 우선 정비하기는커녕,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2015년에는 5급 신규 공무원의 절반을 외부 민간 전문가로 특채하겠다는, 그것도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으로 선발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을 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여긴 이가 있었다. 외부 전문가 특채로 인한 논란의 핵심인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가진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이 나온지 20여일이 지난 9월 초에 작품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의 상황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그렇다면 일제 때 시행된 고등문관시험의 대를 이은 행정고시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지역할당제와 유사한 지역인재 추천 채용의 확대는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에 포함되어 있으니 제쳐놓더라도, 이해관계자일 수 있는 내부면접위원의 축소, 무기명 블라인드 면접제도의 활성화 등을 통하면 공무원 채용제도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걸까.
 
행정안전부의 주장처럼 민간 전문가를 공직사회에 수혈하기 위해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개별 부처별로 음성적으로 이뤄진 특채를 통합관리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창의력 있는 인재를 선발하고 기르는데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발을 위해 행정고시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읽지 않은 책도 읽은 것처럼, 조금만 알더라도 전부를 아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해야 행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는데...
 
이런 논란 속에서 뭔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고,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사가 있다.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데없고,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래는 없지”(꽃다지의 주문).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파문이 있었기에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방안’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실상은 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지 모른다. 학벌과 학연의 견고한 기득권 구조가 이번 사건처럼 드러내놓고 비상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객관성과 공정성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 현 정부처럼, ‘정의사회구현’을 부르짖은 80년대의 어느 정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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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 주 문 (정윤경/글,가락 편곡/이찬욱)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되어야 해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히에이야― 아 히야이야이야 아― 히야이야아―야이야--아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데 없고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데 없고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되어야 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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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06:29 2010/09/1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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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1, 그리고 Vencere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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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는 9.11 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지는 않지만, 9.11에 대해서는 한 번쯤 언급할 필요가 있겠지요. 올해는 9.11을 상당히 차분하게 보낸 듯 합니다. 6년 전에 썼던 글을 업데이트하여 9.11에 대해 써봅니다.

 

많은 이들이 9.11하면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무역센터 빌딩 테러사건을 떠올립니다. 농민들 중에는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할복자살한 이경해씨를 떠올리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은 37년전 9월 11일 칠레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더 기억할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면서 합법적으로 폭력과 테러를 저지르면서도 자신들의 만행은 감춘 채 9.11만을 내세우면서 자신들만이 테러의 피해자인양 하는 위선을 폭로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31년전 미국은 칠레에 대해 9. 11에 버금가는 국가테러를 저질렀습니다.

 
올초 칠레는 20년만에 우파정권이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아옌데의 죽음을 떠올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번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은 이 나레에 온 몸을 바쳤던 한 사람.

내가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큰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 1973년 9월 11일 오전 9시, 살바도르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옌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최후는 아름다웠습니다. 1970년 9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이끄는 인민연합(United Popular)은 기독교민주당을 꺽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끊임없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 군부 및 매판자본은 미국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군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 궁을 전투기로 폭격까지 하며 공격합니다. 아옌데 대통령은 오전 9시 마지막 연설을 한 후 10시 40분 쿠테타군의 공격이 있기 전에 대통령 경호대 및 가족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후 정오가 되자 쿠데타군의 공군 전폭기에서 대통령궁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지상군도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으로 진격해 들어갑니다. 이에 아옌데 대통령은 극소수의 경호원들과 함께 모네다궁에 진입한 쿠데타군에 맞서 직접 자동소총을 들고 싸우지만, 얼마 후 몇 발의 총성이 들리고 궁을 장악한 쿠데타군은 아옌데가 자살했다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쿠데타군의 선봉돌격대를 따라 들어간 군사평의회 정보국 전직 요원은 미국의 언론인 토마스 하우저에게 "대통령의 유해는 머리가 갈라지고 뇌 속의 것들이 마루와 벽에 튀겨져 있었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아마 80년 광주항쟁 당시 도청을 사수하다가 산환 윤상원 열사와 시민군들의 심정이 그 때 아옌데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용기 - 만용일까요? - 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아옌데의 노선과 입장을 떠나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9. 11과 함께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성공한 후, 일 주일간 칠레에서는 3만명의 시민이 살해당했고, 이후 약 1달간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이 약 1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테러 뒤에 미국의 추악한 얼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1년전의 9. 11과 관련된 3개의 곡을 띄웁니다. 한 곡은 칠레판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불리는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로, 반세계화 투쟁에서 자주 외쳐지는 구호로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Inti-Illimani & Quilipayun -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Konzert Fur Chile'(1998)

  

두번째 곡은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로서 아옌데가 1970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로고송으로 사용되었던 칠레인민연합찬가입니다. 이건 아래에 다시 곡을 설명하였습니다.

  

세번째 곡은 El alma llena de banderas (영혼은 깃발들로 가득하다)이라는 곡입니다.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추모곡으로 적당하지요. 칠레의 민중가수 Victor Jara가 불렀습니다.

El alma llena de banderas (영혼은 깃발들로 가득하다)

                                                           text & music : Victor Jara


Ahí debajo de la tierra,
no estas dormido, hermano, compañero.
Tu corazón oye brotar la primavera
que como tu soplando irán los vientos.
Ahí enterrado para el sol,
la nueva tierra cubre tu semilla,
la raíz profunda se hundirá
y nacerá la flor del nuevo día.
A tus pies heridos llegaran,
las manos del humilde, llegaran
sembrando.
Tu muerte muchas vidas traerá,
y hacia donde tu ibas, marcharan
cantando.
Allí donde se oculta el criminal
tu nombre brinda al rico muchos nombres.
El que quemo tus alas al volar
no apagara el fuego de los pobres.
Allí hermano, aquí sobre la tierra,
el alma se nos llena de banderas
que avanzan.
Contra el miedo avanzan.
Venceremos.

 

여기 땅 아래에

당신은 잠자고 있지 않습니다. 형제여, 동지여.

당신은 심장은 봄이 새싹을 피우는 소르를 듣고

당신이 속삭이는 양 바람은 불면서 지나갈 것입니다.

여기 태양을 향해 묻혀 있는 당신의 얼굴

새로운 대지는 당신이라는 씨앗을 덮고,

그 깊숙한 뿌리에서 새날의 꽃이 피아날 것입니다.

상처입은 당신의 발에 비천한 자들의 손이,

씨뿌리는 손들이 도달할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은 많은 생명을 잉태할 것이며

당신이 간 곳으로 그 생명들은

노래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범죄가 가려지는 그곳에서 부유한 자에게

당신의 이름은 수많은 명성이 될 것입니다.

날아오른 당신의 날개를 태워버린 자는

가난한 자들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형제, 그리고 이곳 지상에서

영혼은 우리를 전진하는 깃발들로 가득 채웁니다.

두려움에 맞서서 그것들은 전진하며,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위의 글은 볼셰비키님의 블로그에 있는 관련글( http://blog.naver.com/bolshevik/140005737971 )과 펭귄님의 블로그에 있는 관련글( http://blog.naver.com/nuevacancion/120005809641 )을 참조하였습니다.

 
아래 추가한 것은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 - 칠레인민연합찬가에 관해 쓴 글입니다. 예전에 제 홈페이지하고 민지네에 올렸던 글을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2004/05/23 10:41
 
 

 

 

 

 

Illary - Venceremos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외국의 민중가요를 번안한 노래들이 많이 있습니다.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아예데를 대통령으로 하여 1973년 최초로 선거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칠레 인민연합의 선거전 당시 널리 불리어졌던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라는 칠레인민연합찬가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백기완 민중대통령후보진영에서 사용했던 "민중의 노래"(노래공장 버전)나 2003년 대선 내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사용하였던 "민주노동당이라면"(민주노동당이라면 믿을 수 있어~ 이런 가사의 노래)에 해당하는 칠레인민연합의 선거로고송이었던 셈이죠. 아래 영화의 설명에서도 나오지만, 인민연합 정부 전복 당시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가 쿠데타 후에 감금 상태에서 쿠데타 참여 군인들에게 구타당하면서 끝까지 부른 걸로 유명한 인민연합 찬가입니다.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칠레 민중의 염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73년 당시에는 빅토르 하라가 많이 불렀지만, 이후에는 칠레의 깐시온 폴클로레 그룹인 Quilapayun(낄라빠윤)과 Inti Illimani(인띠 이이마니)가 많이 불렀습니다. 물론 피노체트 치하 칠레에서는 부를 수 없었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조국과 민중을 노래한 것이죠. 위에 링크된 것은 Illary(이야리)가 부른 스튜디오 버전입니다.
 
(참, 이 노래를 복음송 분위기의 We Shall Overcome(우리 승리하리라)와 혼동하시지는 마시길... 이 노래는 밥 딜런이 반전집회인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른 노래가 유명하지요.)
 
저에게는 Quilapayun(낄라빠윤)과 Inti Illimani(인띠 이이마니)가 부른 두 개의 곡이 mp3로 있습니다. 예전 참세상 mp3자료실에서 다운받은 것이지요. 낄라빠윤의 곡은 유럽에서 공연할 때의 실황 버전이라고 합니다. 현장감이 넘칠 것입니다. 빅토르 하라의 버전도 있다고 하는데, 구하질 못했습니다. 유튜브에도 없더군요.
 

 

 Inti Illinami - Venceremos

 

 

Quilapayun - Venceremos(공연실황) 
 

 
파블로 네루다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칠레의 민중시인이라면(김남주 시인이 번역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라는 시집에 그의 시가 번안되어 있습니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대표적인 민중가수이지요. 이런 민중가요의 흐름을 ‘누에바 깐시온’이라고 합니다. 아래 번안가사는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배윤경 지음, 이후, 2000) 35-36쪽에 나온 것입니다.
 
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
                                    작사: 끌라우디우스 이뚜라
                                    작곡: 세르히오 오르떼가
 
1. Desde el hondo crisol de la patria
se levanta el clamor popular,
ya se anuncia la nueva alborada
todo Chile comience a cantar.
Recordando al soldado valiente
cuyo ejempla lo hiciera inmortal
enfrentemos primero la muerte,
traicionar a la patria, jamás!
 
조국의 깊은 시련으로부터
민중의 외침이 일어나네
이미 새로운 여명이 밝아와
모든 칠레가 노래 부르기 시작하네
 
불멸케 하는 모범을 보여준
한 용맹한 군인을 기억하며
우리는 죽음에 맞서
결코 조국을 저버리지 않으리
 
Venceremos, venceremos,
mil cadenas habrá que romper.
Venceremos, venceremos,
la miseria sabremos vencer.
 
<후렴>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2. Campesinos, soldatos y mineros,
la mujer de la patria también
Estudiantes, empleados, obreros,
cumpliremos con nuestro deber.
Sembraremos las tierras de gloria,
socialista será el porvenir,
todos juntos seremos la historia;
a cumplir, a cumplir, a cumplir!
 
농부들, 군인들, 광부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과
학생, 노동자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이룩할 것이다
 
영광의 땅에 씨를 뿌리자
사회주의의 미래가 열린다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후렴>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파시즘의 비극을 이겨내리라

 
이 노래를 번안한 버전이 노농동맹가라는 이름으로 예울림에 의해 음반에 실려 있습니다. 번안자가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연세대 노래패 울림터에서 번안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울림이 울림터를 모체로 하여 결성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개연성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특히나 80년대말 노동자계급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면서 노학연대에서 노학동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당시 학생운동의 흐름에서 "노학동맹가"로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하여 불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89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선거로고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요. 가사가 상당히 촌스럽습니다.
 
 

 
예울림 - 노농동맹가
 
1. 억센 팔뚝과 불끈쥔 주먹, 우리 노동자 상징이다.
벅찬 미래의 해방을 위한 굳센 투쟁의 무기이다.
서슬 시퍼런 낫과 창은 우리 농민의 상징이다.
벅찬 미래의 해방을 위한 굳센 투쟁의 무기이다.
 
(후렴) 단결하자 단결하자 노농동맹의 깃발들고
전진하자 전진하자 민중의 원수를 쫓으러
투쟁하자 투쟁하자 새롭게 떠오를 태양위에
노래하자 해방노래 새로운 역사의 주인아
 
2. 짙은 어둠의 절망 속에 우리 모든 것 빼앗겨도
끝내 그치지 않는 것은 가슴 속 흐르는 붉은 피
소중한 우리의 사랑은 깊은 동굴 속 한 줄기 빛
흐르는 빗줄기 위에 앉은 푸른 꿈 우리의 희망아
 
(후렴)

  
항상 그렇듯이 자신이 아는 노래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면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듭니다. 제가 [산티에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를 접하면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지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후에 이 노래가 칠레인민연합의 로고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가깝게 와닿았습니다.
 
[산티에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는 처음에는 제3세계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강의(발전사회학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에서, 그리고 또 한번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옌데 정권의 집권과 그 전복과정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칠레전투]를 들 수 있지만, 당시엔 그런 것이 없었고, 영화가 오히려 더 실감났다고나 할까요? 암튼 [산티에고에 비가 내린다]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일을 중심으로 선거과정에서 부터 칠레의 변화과정, 그리고 쿠데타에 대항한 칠레민중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마지막까지 대통령궁에서 기관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저항하는 대통령 아옌데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칠레 국립경기장인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칠레민중가수 빅토르 하라가 체포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끌려 나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바로 네가 신봉하던 민중들이다. 자, 민중들 앞에서 노래를 하라”고 강요를 받지요. 아마 이런 위압적인 분위기에서는 그도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따라 부르지 못할 것이며, 이를 통해 칠레 진보세력의 허약성과 비겁함을 폭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민중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인가를 보이려구요.
 
이에 빅토르 하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곧이어 그 안의 사람들도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됩니다. 아주 힘찬 노래를... 그리고 군인들은 당황하면서 그들을 해산시키게 됩니다. 전 이 대목에서 울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장면이었거든요. 이 때 흘러나왔던 노래가 바로 Venceremos(벤세레모스)였습니다.
 
최소한 흘러나온 노래 중에서 후반부 후렴 부분이 같아서 기억을 했지요. 지금도 영화 속의 그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언제 다시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학교에서, 공장에서, 들판에서 혁명 정부를 사수하기 위해 떨쳐 일어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는 전복당하고 맙니다.
 
진보세력의 집권은커녕 지금의 진지마저 사수하기가 힘든 한국의 현실에서 보면 말그대로 영화같은 얘기입니다만, 선거로 집권했다가 결국은 미국과 매판자본의 압력을 등에 업은 군부쿠데타에 의해 무너진 아옌데 정권의 교훈을 참고하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말고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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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2 00:55 2010/09/1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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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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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교육감 선거비용에 대해 다루었다. 김세연 의원이 공개한 `시.도 교육감 후보 정치자금 지출 현황'을 자세하게 분석한 것이다. 이를 이어받듯 이군현 의원이 교육감 선거를 전면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정당공천제를 하거나 광역자치단체장과 런닝메이트로 출마시켜야 할까, 아니면 선거공영제를 해야 할까. 교육감 선거비용이 지나치게 많은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 해결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올초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김상곤 교육감은 교육에는 정치논리가 개입되어선 안된다고 얘기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중심에 학생을 놓고 판단하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말이다. 논쟁 자체를 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과 교육이 아닌 정치논리를 중심에 둔 논쟁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보면 많이 틀린 말도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정치에 파악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조정해야 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교육 또한 넓은 의미의 정치의 장이다. 정치논리라는 말은 가려서 써야 한다. 
 
교육에도 정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한 좀더 섬세하면서도 생생한 정치가 살아숨쉬게 하는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선거공영제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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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비 법정액의 80%선..일부는 '자린고비' (전국종합=연합뉴스, 2010/06/08 17:03)
유세차 비용 가장 많아.."후원금은 선거비의 10%미만"
6.2 지방선거에 출마한 교육감 후보 대부분이 법정선거비용의 70~80%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법정선거비용의 10%대를 쓰는 등 '허리띠'를 졸라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교육감 출마후보는 법정선거비용의 50%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지만, 후원회가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에 대부분 전체 선거비용의 10% 미만의 후원금을 거둬 선거비용 마련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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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교육감 `선거빚' 평균 4억6천만원"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2010-09-09 08:00)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시.도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1인당 평균 4억6천만원씩 선거자금보다 더 많은 선거비용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세연(한나라당) 의원이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시.도 교육감 후보 정치자금 지출 현황'에 따르면 선거에 출마했던 74명의 후보들이 쓴 선거비용은 모두 916억원으로, 한 사람당 평균 12억4천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확보한 선거자금은 후원금과 선거가 끝난 뒤 득표율에 따라 받는 선거비용 보전금을 합쳐 576억원에 불과해 총 340억원의 초과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후보 1인당 평균 4억6천만원씩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차관급으로 규정된 시.도 교육감 연봉은 9천300만원으로 임기 4년 동안 월급을 다 모아도 9천만원의 빚이 남게된다.
후보별로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이원희 후보는 45억원을 썼지만 후원금과 선거보전금을 합해 33억원을 모아 12억원, 곽노현 현 교육감은 42억원을 쓰고 37억원을 받아 5억원의 적자를 봤다. 경기도에 출마했던 강원춘 후보는 36억원의 선거비용을 쓰고 15억원을 받아 21억원의 초과비용이 발생했다. 특히 15명의 후보자는 후원금을 한 푼도 모으지 못했고, 1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받을 수 있는 선거 보전금을 못 받은 후보도 1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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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 그 후… 승자도 패자도… 평균 5억 빚더미 (조선, 조의준 기자, 2010.09.09 03:01)
곽노현 5억, 강원춘 21억…
4년 월급 합해도 못갚을 돈
당선 후 부패로 이어질 위험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이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는 시·도지사처럼 정당공천이 없는 상황에서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이 난립하다 보니 대규모 홍보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역시·도를 지역구로 하고 있어 각 시·군·구마다 사무실을 마련하다 보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은 "수십억대 재산을 가진 후보가 아니라면 4억원이 넘는 초과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당선된 교육감은 부패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선거비용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도 불법을 유도하고 있다. 서울시 곽 교육감은 최근 재산공개에서 선거를 위해 237명으로부터 16억3800여만원을 빌렸고,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은행에서 5억6000여만원을 대출했다고 밝혔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은 김 후보자가 경남은행에서 10억원의 선거자금을 대출받은 것과 관련, "은행법 38조는 직·간접을 불문하고 정치자금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후보자가 직위를 이용해 불법을 저질렀다"고 공격했는데 같은 비판이 곽 교육감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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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쏟아붓는 교육감 선거… 후회하는 후보들] "이렇게 돈 많이 들 줄은 몰랐다"… 일부 후보, 연락 끊고 잠적 (조선, 안석배 오윤희 대구=최수호 기자, 2010.09.10 03:03)
집 팔고 땅 팔아 빚 갚고 교원연금으로 이자 상환
서울 지역 후보 인쇄물… 우표요금만 1억원 들어 "패가망신 하려면 교육감 선거 나가라"

지난 6·2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1인당 평균 4억6000만원씩 '선거 빚'을 진 것으로 집계된 데 대해 선거에 나섰던 후보나 캠프 관계자들은 "재산 손실과 충격이 너무 컸다" "집을 처분해야 할 처지"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교육감 선거에 나왔던 강원춘 후보(전 경기교총 회장)는 21억원의 '선거 빚'으로 전국 교육감 후보자 중 규모가 가장 컸다. 강 후보는 선거 후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득표율이 낮아 보전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 후보들은 충격이 더 크다. 현행법상 득표율 10%가 넘어야 투표율에 따라 국가로부터 선거비용 보전금을 받을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교육감 선거는 웬만한 재력이 없으면 치를 수 없는 선거"라며 "교육자들 사이에는 '패가망신하려면 교육감 선거 나가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큰돈을 썼는데도 유권자 관심도와 참여도는 떨어지고, 투표용지 상위에 기입되는 게 득표에 유리하다고 해서 교육감 선거는 '로또 선거'라는 별명마저 붙었다. 이원희 후보측 인사는 "정치인과 달리 후보들의 인지도가 낮아 교육감 선거에서는 홍보물을 제작해 돌리는 게 중요한데 서울의 경우 인쇄물을 돌리는 데 우표요금만도 1억원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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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도지사 선거보다 돈 많이 쓰는 교육감 선거 (조선, 2010.09.09 22:49)
시·도 교육감 선거에 30억원, 40억원씩을 써야 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현 지방교육자치법은 정당이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거나 선거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들은 교육감 후보의 출마 회견 자리에 자기 당(黨) 국회의원들을 도열시켜 정당 공천이나 별반 다름없는 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럴 바에야 교육감 선거 출마자들이 정당 후보로 입후보해서 유권자 선택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도록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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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현 "사학법.교육감선거 전면 재검토"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2010/09/10 09:42)
한나라당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10일 "사학 건학의 이념과 정신을 살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이번에 반드시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부대표는 이어 "원래 교육감 선거도 교육위원 간선제였다가 교육위원 매수 현상이 생겨 17대 때 직선제로 바꿨는데 교육감 선거에 30∼40억원이 든다"면서 "교과위에서 교육감 선거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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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23:38 2010/09/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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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발전전략'에 대한 주석…"비정규직당 노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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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래 장석준 동지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진보신당 자체에 그리 신뢰가 가질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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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후속 주체의 판을 여는 당이 되자 (레디앙, 2010년 09월 08일 (수) 08:35:52 장석준 / 진보신당 서울 당원)
독자 vs 통합, 사이비 노선논쟁에 불과 
[기고] 진보신당 '발전전략'에 대한 주석…"비정규직당 노선으로"
 
 
9월 5일 진보신당 대의원대회에서 당발전특별위원회가 제출한 <당 발전 전략(안)>이 일부 수정된 채로 채택되었다. 이제 <당 발전 전략>은 진보신당 내의 가장 최근의 합의를 담은 공식 문서가 되었다. 하지만 순회 토론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이 문서에는 여전히 많은 쟁점이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당 발전 전략>의 합의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공백을 채워 나가는 게 향후 진보신당의 중요한 과제다.
 
필자는 당발전특별위원회 지원팀의 일원으로 <당 발전 전략(안)> 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하지만 특위 위원이 아닌 실무 지원팀이었기 때문에 필자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거나 공표하는 것은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제 <당 발전 전략>을 보완하고 실천해나갈 후속 작업이 시작되었으므로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고자 한다.

 

1. <당 발전 전략>에 빠진 핵심 사안 - 진보운동의 위기에 대한 진단
<당 발전 전략>은 2000년대 중반부터 회자되어온 ‘진보정치 위기’론을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생략돼 있다. 이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진단이 계속 누락된 상태로 남는다면, 우리의 처방은 얄팍한 대증 요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진보정치, 더 나아가 진보운동의 위기는 곧 주체의 위기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북반구(자본주의 중심부) 어디에서든 (이제는 한국도 그 일부다) 신자유주의가 배제와 억압만으로 지배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포섭의 운동이 있었으며, 그래서 북반구의 신자유주의는 파시즘의 변종이 아니라 헤게모니적 지배의 한 유형으로 봐야 한다. 그 핵심은 중간층의 다수를 금융화 운동에 연루시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노동계급 상층을 금융 투기(가령 주식 시장)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중간층의 아파트 투기 및 사교육 열풍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 계층이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에(1980년대 말에) 민주화 및 민주노조운동을 시작한 바로 그 주역들이다. 이제 486이 된 이른바 386세대, 그리고 현재 대공장 및 공공부문의 기업별 노조로 남은 민주노조운동 1세대들. 진보운동의 토대였던 이들이 신자유주의 포섭의 핵심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선거 때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치 세력에게 계속 표를 던지는 것은 여전히 이들 계층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 세력들에게 신자유주의 구조 자체의 개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부의 한계는 노무현 정치 세력의 한계일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시야와 요구의 한계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포섭의 반대면에서 배제와 억압이 자행됐다. 비정규직, 여성, 20대가 그 핵심 피해 대중이다. 여기에서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은 은유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포섭 대상에서 빠진 노동자들, 즉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 중소 사업장 노동자, 불안정 노동 계층, 실업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경향적으로 여성, 20대의 다수와 겹친다. 현재 한국의 진보운동은 언술 차원에서는 ‘비정규직’을 강조하지만 민주화 및 민주노조운동 1세대를 넘어서 그 지지 기반을 동심원적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포섭의 대상과 배제의 대상 사이에는, 즉 기존 진보운동의 토대와 그 당위적인 후속 기반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패여 있다.
 
한국 진보정치의 근본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외국 교과서(사회민주주의든 혁명적 사회주의든)에 따르면 사회 변혁의 주체여야 할 집단(노동계급) 내부에 이러한 깊은 골이 파여 있기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개혁이든 혁명이든 그 어느 것도 작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자는 민주당 주변을 기웃거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며, 이 나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정규직 노조의 고립된 경제 투쟁을 혁명의 준비로 착각하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진보정당의 문제들도 결국 이 근본 위기에서 파생된 병리 증상들이라 봐야 한다. 종북주의와 같은 낡은 사상이 대중정당에서 쉽게 수적 다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대중운동을 통해 진보정당의 활력 있는 대중적 토대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패권주의가 작동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환원론의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감히 말한다면, 진보정치의 근본 위기의 해결 없이는 종북주의, 패권주의의 극복도 없다. 진보운동의 주체 형성이 막혀 있는 근본 난국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진보운동 안에서 그 누구도 ‘새롭다’는 말은 더 이상 감히 입 밖에 내놓지 말아야 한다.
 
2. ‘독자/통합’ 논란이 과연 ‘노선’ 논쟁인가?
여기에서 잠깐 이야기를 돌려 보자. 당발전특위의 활동 배경이 된, 그리고 지금까지 <당 발전전략>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쟁점은 이른바 ‘독자/통합’ 논란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진보신당의 중차대한 노선 논쟁이니 당직 선거로 결판을 보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독자/통합’ 논란은 결코 ‘노선’ 논쟁이 될 수 없다. ‘독자’든 ‘통합’이든 어느 것도 도무지 ‘노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외부 세력과 통합을 모색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게 진보신당의 ‘노선’을 실현하는 데 적절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할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노회찬 대표의 말대로 이것은 전략이 아닌 전술 차원의 선택일 뿐이다. 그렇다면 ‘독자’냐 ‘통합’이냐는 논란 이전에 ‘노선’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지 ‘독자’ 혹은 ‘통합’ 어느 한 쪽이 자신을 ‘노선’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통합’론이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노선’의 위상으로 스스로를 내세우면서 이 잘못된 논쟁이 시작되었다.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실은 ‘독자파’라는 그 대립쌍도 문제의 본질에서 비껴나고 있다. ‘독자파’에 어떤 합리적인 핵심이 있다면 ‘통합’론이 ‘노선’의 위상을 자임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독자파’든 ‘통합파’든 본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이비 ‘노선’ 논란을 벌이기 전에 제대로 된 당 ‘노선’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당 발전전략>은 여전히 당 노선을 제시하는 데 수줍어하고 자신 없어 한다. 하지만 언급은 하고 있다. ‘비정규직, 여성, 생태’의 정당이라는 표명이 그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결코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진보신당의 중대한 과제를 지시하고 있다.
 
3. 노선 - ‘진보 후속 주체들의 판을 여는 당’이 되자
필자는 진보신당의 노선은 ‘비정규직당’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종북주의당’도 아니고, 두루뭉수리 한 ‘민생정당’도 아니다. ‘비정규직당’이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에서 ‘비정규직’이란 하나의 은유다. 신자유주의 구조로부터 배제의 대상이 된 좁은 의미의 비정규직, 중소사업장 노동자, 여성, 20대-30대가 수렴되는 어떤 사회적 존재들을 표상하려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노선이 이것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진보신당이 ‘진보의 재구성’을 창당 정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에서 현재 한국 진보운동의 근본 위기가 민주화 및 민주노조운동 1세대의 주역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에 포섭된 반면 그 배제 대상들은 아직 진보운동의 주역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진보의 재구성’의 수단이 되겠다는 진보신당이 해야 할 일도 분명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변혁 주체의 형성을 가로막는 깊은 골에 가교를 놓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일이다. 생물학적 세대로만 이해될 것을 염려한다면,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일. 즉, 진보신당의 과제는 지금까지의 진보운동의 경험들을 최대한 재구성, 재편성하여 진보운동의 후속 주체들이 스스로 성장해갈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진보 후속 주체들의 판을 여는 일이다.
 
좀 뜬금없는 유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1950년대 말에 등장한 서구 신좌파의 역할과 비슷하다 하겠다. 1956년 소련의 스탈린 격하 운동과 폴란드, 헝가리의 봉기를 계기로, 한때 세계 혁명의 본부로 여겨지던 현실사회주의권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자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기존 공산당원이나 그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이탈하여 ‘신좌파’(New Left)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현실 정치의 시각에서만 보면 ‘신좌파’의 존재는 무시해도 좋을만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덴마크의 사회주의인민당처럼 신좌파가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나라도 있지만, 이것은 정말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좌파 정치 지형을 지배한 것은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거나 친소 공산당이었다. 하지만 현대 세계사의 그 어떤 서술도 ‘신좌파’의 존재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들이 1968년에 등장한 새로운 대중적인 좌파 세대의 선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좌파’는 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가 지배하는 기존 좌파 정치 지형을 비판하여 그 경직된 구조를 허물었고, 이들이 열어놓은 그 틈새에서 68세대가 치고 올라왔다. ‘신좌파’는 기존 좌파 정치와 68세대를 잇는 ‘사라지는 매개자’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진보신당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러한 역할이다. 진보신당은 진보 후속 주체들의 싹이 움트기에는 너무 굳어 있는 기존 진보운동 지형을 이완시키고 균열시켜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궐기로, 대변혁으로 이어질 다양한 실험들의 배양지가 되어야 한다.
 
4. ‘비정규직당’ 노선에 복무할 때에 ‘진보신당 강화’도, ‘새 진보정당 건설’도 가능하다
진보신당이 이러한 노선을 걸을 때에만 ‘진보신당 독자 역량 강화’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도 가능하다. <당 발전전략>은 이 두 과제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천명하기는 했지만, 정작 이 둘을 서로 결합시키는 근거를 분명히 짚지는 않는다. 필자는 ‘비정규직당’ 노선이 바로 그 근거라고 본다.
 
진보신당이 하나의 정당으로서 독자적으로 생존-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진보신당 외의 다른 어느 정당도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시해야만 한다. ‘비정규직당’으로 역할하는 진보정당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치 지향이자 흐름이다. 당장의 선거 결과나 현실 정치 지분에 상관없이 그 존재와 활동만으로도 정치적으로 유효한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위상이 현실 정치의 성과와 결코 무관한 것도 아니다. 물론 진보신당이 ‘비정규직당’ 노선을 추진한다고 해서 곧바로 비정규직, 여성, 20대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이들은 기존 진보 지지층에 비해 덜 조직화되어 있고, 따라서 진보정당이 접근하기 가장 어려운 계층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당’이 비정규직의 지지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당분간은 현실 정치의 성과에 대해서는 단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당’의 존재 덕분에 선거 정치에서 기존 진보 지지층과 진보 후속 주체들 사이의 연대가 작동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민주화 및 민주노조운동 1세대 유권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협소한 이해가 아니라 도덕적 대의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비정규직당’은 이런 성향의 유권자들이 진보 후속 주체들에게 연대를 표명할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진보신당은 이러한 가능성을 초기 자원으로 삼아 현실 정치에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즉, ‘비정규직당’ 노선은 정당 투표 득표의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한편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해가는 과정에서도 ‘비정규직당’의 지향은 핵심 기준이자 중심축이 된다. 한 마디로 새로운 진보정당은 좀 더 광범한 기반 위에서 ‘비정규직당’의 지향을 추구하는 진보정당이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
 
조만간 진보신당은 진보 후속 주체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진보운동의 지향과 구조를 혁신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 <당 발전전략>이 향후 과제로 명시한 ‘종합실천계획’ 수립의 주된 내용이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이 내용은 진보신당의 독자적 실천의 나침반이 될 뿐만 아니라 새 진보정당 건설의 공동 실천-공동 논의 과정에서도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당 발전전략> 당대회 채택본이 밝히고 있는 ‘진보신당 독자 역량 강화’를 위한 ‘종합실천계획’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은 별개일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진보 후속 주체들의 새 판을 열 하나의 ‘종합실천계획’이 필요할 뿐이다.
 
진보신당이 제시하는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동의 정도에 따라 새 진보정당의 건설이 앞당겨질 수도 있고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신당의 지향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세력이나 흐름들과 먼저 힘을 합치고 이후 단계적으로 새 진보정당의 외연을 확대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5. 진보신당 독자 역량 강화에 대하여
사실 지금까지 필자가 주장한 당 발전 방향은 지방선거 직후 <레디앙> 등의 지면에서 많은 논자들이 이미 제시한 바이기도 하다. 이때에 ‘비정규직, 여성, 20대’의 당으로 나아갈 구체적인 방안들도 많이 나왔다. 진보신당의 2010년 하반기 사업계획도 그러한 지향에 따라 나름대로 충실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래서, 어떤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제안들을 진지하게 실천하기 시작하는 일이다.
 
이런 제안들 중 가령 지역조직들이 비정규직, 중소사업장 노동자, 청년 실업자의 상담 센터 역할을 하자는 것은 중장기적인 사업 방향이면서 동시에 지금 당장에 각 지역조직들이 시작해야 할 과제다. 지역에서 비정규직 상담 활동을 통해 꾸준히 저변을 넓혀가는 일본 공산당의 사례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전 당적인 실천도 필요하다. 이것도 무슨 허황된 계획을 잡을 게 아니라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서부터 스스로를 훈련시켜 가면 된다. 진보신당은 이미 동희오토 투쟁에 결합하면서 이 훈련에 착수했다. 이러한 투쟁에 끈질기게 결합하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당의 체질을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이런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내년에는 가령 최저임금제 투쟁을 전 당력을 기울여 계획적으로 벌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비정규직당’으로서 신뢰를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당이기 때문에 또한 비전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 발전전략>이 과제로 정한 ‘종합실천계획’ 안에 진보 후속 주체들의 관점에서 진보운동의 정책 내용과 대중조직 구조를 혁신하자는 프로그램을 담아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프로그램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은 한국적인 형태의 연대임금제를 구축할 방안이다. 그러기 위해 노동조합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교섭 체계를 요구하며 정당원과 노조원들이 어떤 실천에 나설지 제안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대중운동의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연대임금제를 실현하는 게 난망하다면 진보 세력은 ‘기본소득제’와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히 채택하여 전면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반 실천 방향은 필연적으로 거대 자본과의 대결로 이어지게 된다. 이미 동희오토 투쟁이나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원흉이 재벌, 금융 투기 세력 등 거대 자본임을 폭로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력한다면, 반드시 거대 자본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즉, ‘비정규직당’은 곧 ‘거대 자본과 싸우는 당’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진보정당은 ‘재벌과 맞서 싸우는 당’이어야만 한다는 김상봉 교수의 제안을 실현할 유력한 방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6.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및 2012년 총선, 대선 대응에 대하여
<당 발전전략>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할 새로운 비전 마련”과 “신자유주의 극복과 노동, 생태, 평화의 가치를 구현하는 복지국가 건설” 그리고 “진보정당운동 과정에서 누적되어온 여러 정치적 오류 및 편향, 낡은 정치 활동과 조직 활동의 관행을 혁파”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데 여기에 하나 덧붙여야 할 게 있다. 그것은 2012년의 양대 선거에 대한 방침이다. 당면 선거 방침이 서로 다른 세력들이 선거를 앞두고 한 정당으로 결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 방침에 대해 높은 수준의 합의가 있어야만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함께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총선보다는 대선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선과 총선은 격이 다르다. 권력과 직결된 선거는 대선이며, 따라서 정치 세력들이 서로 다른 비전을 내걸고 심판 받아야 할 핵심 무대는 대선이다. 진보 좌파가 아무리 현실적인 힘이 미약하다 하더라도 독자적인 선택지로서 나서야만 하는 게 바로 대선이다. 반면 입법부 선거인 총선은 권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현실 정치의 행위자로서 입장권을 확보하고 영향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장이다. 따라서 각 정당들의 좀 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며 그게 또한 바람직하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가령 소선거구제 아래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선거연합 전술을 추진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이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와도 연관된다. 지방선거는 행정부 선거와 입법부 선거를 동시에 치른다. 어찌 보면 이것이 진보신당의 지방선거 방침이 미궁에 빠진 객관적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체장 선거에서는 보다 원칙적인 대응이 필요했던 반면 의회 선거에서는 유연한 전술이 요구되었다. 진보신당은 이 서로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총선에서는 진보정당들 간의 선거연합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연합의 범위를, 경우에 따라, 중도우파 정당들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19대 국회의 비정규직 입법 목표나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의 정치 개혁 과제 같은 핵심 정책 합의를 바탕으로 선거구별로 연합 전술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대선 방침은 단호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독자 후보가 노동자, 민중 권력의 비전, 사회 변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적 대중을 결집 혹은 재결집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87년 이후 5년마다 반복된 전통적 진보 세력의 도전 그 이상의 의미를 확보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 20대 등 진보 후속 주체들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더욱 진보정당의 독자 후보 방침이 중요하다.
 
<당 발전전략>은 이것을 ‘진보정당의 발전에 복무한다는 커다란 방향’이라는 에두른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당 내 토론을 통해 좀 더 명확한 해석을 내려야만 한다. 민주당 중심의 민주연립정부 방침 등 진보정당의 독자적 발전을 훼손하는 흐름과는 선을 긋는다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선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외연을 결정하는 중대한 기준이다.
 
진보정당에게 2012년 총선, 대선은 ‘기회’보다는 ‘시험대’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필자는 진보신당이든 그 계승자인 새로운 진보정당이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에 부응하기만 한다면 현실 정치에서 유의미한 거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2012년을 넘긴다면, 진보정당운동의 진정한 도약 기회는 2014년이 될 것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진보 후속 주체들에 걸맞는 진보 후속 지도자군을 배출해야 한다. 지역 정치에서부터 착실히 성장하는 새로운 지도력 유형을 창출해야 한다.
 
진보신당의 다른 당원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는 이러한 과제를 완수할 때까지 진보정당운동의 중핵이 해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세대가 자신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인내할 수 있는 비극이지만 다음 세대로 횃불을 이어가는 것조차 실패한다면 이것은 너무 처참한 비극이 아닌가?
 
7. 끝맺으며
이탈리아는 한때 서유럽에서도 좌파 정치가 가장 번성했던 나라다. 공산당과 사회당이 서로 경쟁하면서 수백만 당원을 자랑했고, 60~70년대에 걸쳐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탈리아는 전혀 딴판이다. 공산당과 사회당의 맥을 잇는 정치 세력들은 재벌 정치인 베를루스코니에 맞서야 한다는 명분으로 중도우파와 통합해 민주당을 창당했다. 선거에서 베를루스코니를 이겨야 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이념적 정체성이 없는 거대 정당이 등장한 것이다. 대신, 한때 정치 스펙트럼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던 좌파는 그 실체가 사라진 꼴이 되었다.
 
구 공산당의 명맥을 잇는 공산주의재건당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당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 당은 과거 공산당 전성기의 향수 안에 틀어박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재건당의 일부가 탈당하여 사회당, 녹색당 등 다른 좌파 정당들의 뜻 맞는 이들과 ‘좌파/생태/자유’라는 새 정당을 만들었다. ‘좌파/생태/자유’는 좌파 정치 문화 자체를 혁신하여 새 세대의 길을 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당의 지지율은 한국의 진보신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당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좌파 부활의 모색이 약동하는 유일한 정치 공간이다.
 
동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흔들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조짐은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어디서나 비슷하다. 그람시의 나라 이탈리아까지도 저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 나라에는, 한 세대에서 다른 한 세대로 횃불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둠이 더욱 짙어지기만 하는 이때에 묵묵히 다시 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땅에도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에서처럼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한다. 필자는 이것이 진보신당이 떠안아야 할 소명이라고 믿는다. <당 발전전략>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이 소명, 즉 ‘진보 후속 주체들의 길을 여는 정당’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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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02:36 2010/09/0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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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8가, 그리고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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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을 하다가 강풀님(@kangfull74)이 "노래 (청계천8가)의 한 대목.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가슴을 공명시키는 민중노래."라고 쓴 걸 보고 "청계천8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아마 이 노래를 아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 않을런지..."라는 리플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 저의 진보블로그엔 이 노래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펌해서 올립니다. 그 글을 쓴 것도 2004년이니 6년이 넘었네요. 이에 덧붙여 '성탄, 그리고 청계천 8가'라는 글도 함께 올립니다. 유튜브에 동영상파일이 올라왔으면 좋았을 텐데, 없더군요. 대신 오디오파일을 함께 올리면 저작권 위반이 될까요? 공식음반으로 나오기 이전 버전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바로 지우럽니다(비굴하지만 예전에 한번 곤혹을 치룬 적이 있어서리...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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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8가   2004/06/16 00:46

 

저에게 민중가요는 단지 노래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그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내가 흐트러질 때 나를 바로잡아주는 등대였습니다. 특히 '청계천 8가'라는 노래는 언제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살아야 함을 알려주었지요. 

 

천지인 1집 - 청계천 8가

 

청계천 8가를 처음 접한 것은 <노자세소>라는 공연에서였습니다. 노자세소는 아마 '노래가 있는 자리, 세상을 여는 소리'의 줄임말로 기억되는데, 9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학내에서 민중가요가 점차 불리워지지 않는 것에 제동을 걸고 학생들이 민중가요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며, 노래패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서울대에서 94년경부터 매주 점심무렵마다 하던 정기공연이었습니다. 각 단대 노래패와 중앙노래패인 메아리 등이 공연을 해서 많은 관심을 모았지요.
  
이제는 그 명칭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공연을 했던 노래패 중에 락그룹을 표방하면서 전자악기로 무장하고 자작곡과 그 때 유행하던 민중가요를 락풍으로 편곡하여 부르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과후배인 김진욱 님이 드럼을 쳤고, 리드보컬로 박지현 님이 나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지현 님은 나우누리의 노래모임과 설대 사범대 노래패 '길'에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타는 목마름으로', '함성 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이 노래는 서기상 님이 리바이벌해서 유명해졌습니다) 등을 작사. 작곡했고, 나중에 음반도 내었습니다. 불법음반...-.-;;

 

그 때 이들을 통해 처음 천지인의 '밤바다'와 '청계천 8가' 등을 접했습니다. 뭔가 애절하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가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물론 저는 그 때 노래공장 2집을 통해 민중가요계에서는 새롭게 시도된 약간 락풍의 리듬에도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발라드가 더 좋았던 듯 합니다.
 
청계천 8가가 이렇게 맘에 들었지만, 처음에는 누구의 노래인지,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죠. 그 때 저는 고시공부를 한다고 매일 학교 도서관에 나와서 앉아있었지만, 매주 수요일에 하는 '노자세소' 공연을 할 때면 도서관에 있다가도 나가서 공연을 보곤 했습니다. 귓가에 민가가 들리는 데 어찌 공부가 되겠습니까? 이런 정신으로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 때 파악하고 일찍 접었어야 했는데... ㅡ.ㅡ;; 아무튼 가끔씩 듣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공연할 때 가끔 불리워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물어물어 이게 천지인(http://www.chunjyin.co.kr/)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고, 천지인의 음반을 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는 길에 사회과학서점인 '그날이 오면'에서 '천지인 1집'을 사서 그 자리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녹음기에 헌법강의 테입 대신 천지인 1집을 끼워넣었지요. 그렇게 '청계천 8가'는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매일 등하교길에 근 한두달 동안 천지인의 테입만 들었던 듯 합니다. '청계천 8가'와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땐', '밤바다', 그리고 '우리들의 외식' 등의 노래를 외웠지요. 
 
95년도쯤에 2년 아래 후배 한명의 생일모임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습니다. 그리고 96년경엔가 학교에서 천지인이 대동제에서 공연을 할 때 이 노래를 라이브로 처음 들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남성 리드보컬이 군대를 간 후여서인지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들었구요. 아마 손현숙 씨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다음부터 청계천 8가는 저의 18번이 되었습니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에도 어김없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게 되는 가사,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그러면서 가슴에서 뭔가 뭉클하고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천지인 2집 - 청계천 8가(Acoustic 버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민중가요도 단지 생경하고 선동적인 구호성의 가사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군가풍의 획일적인 리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삶의 끈질김과 치열함을 노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래에서 정감어린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요?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지요. 더구나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이제는 청계천 8가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지금, 어쩌면 추억의 고전으로 남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2월경엔가 반전집회를 하는 도중 천지인이 문화공연을 하면서 '청계천 8가'를 부르는데, 다들 따라부르더군요. 이젠 거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이렇게 민중가요와 락을 결합시킨 민중락밴드로서 1993년에 결성된 천지인은 메이데이, 이스크라와 함께 한국민중가요의 흐름에서 락음악이 그 중의 주요 장르로 수용되도록 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다른 밴드들은 다 사라졌지만 천지인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직도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 중에서도 특히 '청계천 8가'는 노래패에서 기타코드를 배우는 데 최선의 악보가 되고 있지요. 또한 대학 노래패들이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할 때 항상 나오는 곡이기도 하고요. 천지인 1집은 이에 힘입어 노래공장 1집과 함께 민중가요계의 비공식음반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천지인 1집에 수록된 노래가 가장 많이 불리워지지만, 천지인 2집의 어쿠스틱 버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현숙님의 버전도 새로운 느낌이 들겁니다.

 

참, 원래 청계천 8가는 김성민 씨가 천지인 1집을 만들면서 마지막에 음반을 채우기 위해 급조한 노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을 터뜨린 거죠. 아무래도 노래에도 무엇인가 영감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손현숙 - 청계천 8가(김원빈, 정은주 편곡)

 

                   청계천 8가

                                                     김성민 작사. 작곡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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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그리고 청계천 8가  2005/02/15 20:06

 

새벽에 구름배님의 블로그에 들렸다가 청계천8가의 노랫말이 김정환 시인의 '성탄'이라는 시를 옮긴 것임을 알았습니다. '성탄'은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김정환 님의 1982년 첫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에 실려있는 시였습니다. 그래서 웹서핑을 통해 '성탄'을 그렇게 찾으려고 했건만 없더군요. 이걸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도 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후에 '그날이 오면'에 들려서 [한국의 빈곤과 불평등: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관련하여](도서출판 오름, 2004 - 이 책은 윤도현, 김성희, 김정훈 님이 공저한 것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나온 것인데, 최근에 빈곤·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뭔가 구체적인 것을 알아야겠다고 하던 차에 발견한 것입니다)이라는 책을 사면서 <지울 수 없는 노래>가 있는지를 살펴봤지요. 딱 한권 있더군요. 가격은 4000원. 싼 맛에 샀습니다.  
 
1982년이면 김정환 님이 1954년생이니 서른도 채 되기 전에 쓴 시집이지요. 그 때는 인텔리 냄새가 나도록 하면서 현실주의에 충실한 그런 시들을 쓰려고 노력했나 봅니다. '성탄'이라는 시도 마찬가지이구요. 물론 형식에 있어서 뭔가 변화를 주려 한 흔적은 있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고. 
 
살펴보니 정말 청계천8가에 나오는 노랫말들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저는 김성민님이 곡과 글을 쓴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 이런 시에서 그런 노랫말을 빼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둘 다를 알고 나니 10년뒤에 나온 노랫말이 더 좋게 느껴진다는... ㅡ.ㅡ;; 그리고 시에서는 청계천8가가 아니고 6가네요.  

 

                 성   탄
                                                                    김 정환 시
 
그해 겨울, 그날의 부근 동안을
난 내내 청게천 6가에서 살았다
칠흑 같은 밤이 술렁거렸고, 땀에 찌든 막벌이꾼들의 치미는 근육덩어리들이
반짝였다, 어물전에 산더미처럼 쌓인 생선의 비늘들이
진압치 못해 축축한 성욕처럼 온 세상 위를 꿈틀대며 기어갔다
그리고 밀어닥친 홍수처럼, 아님 밀려난 흥남부두처럼
사람들이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마구 건너갔다
 
   보따리가건너갔다비틀거리는어깨들이건너갔다물샐틈없는크
리스마스캐롤들이건너갔다생계유지걱정무겁게매달린자식새끼
들이덕지덕지건너갔다큼지막한헤드라이트불빛들이사방에서마
구덮쳐얼굴을갈겼다도대체숨쉴틈을주지않는이땅은누구땅이냐
핏발불끈솟아오른리어카꾼의험상궂은욕질이그틈을비집고건너
갔다김이모락나는순대가건너갔다홍어찜이건너갔다이조시대민
중의수탈을절인오줌냄새가건너갔다그북새통을쫓겨나못비킨다
못비켜이자리는죽어도못비킨다아낙네가보따리를움켜쥐고길을
건너갔다차량의홍수가흐르는밤거리희미한백열등밑에서맹인여
가수의마이크목소리가축축히젖어들었다오늘도걷는다마는청계
천 6가내가쫒겨나는것이아니다좀더끈끈한삶그대로우리들의희
망은희미한가로등과비린내내일의가난을어쩔수없을지라도성시
반짝이는것은살아있는것들일뿐산다는것은얼마나위대한가물샐
틈도없이사람들이횡단보도를넘쳐흘러갔다.
 
그해 겨울, 그날의 부근 동안을
난 내내 청계천 6가에서 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가난의 뱃 속에서 희망의 씨앗이 잉태됐고
나는 온통 시끄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비참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것을
목숨은 어떤 비참보다도 끈질기다는 것을
현실은 어떤 꿈보다도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성스러움의 끈적끈적함을, 끈적함의 견고성을
 
                                                    <우리 세대의 문학 ·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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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8 23:06 2010/09/0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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