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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 아니라 <급진주의적 조직가에게 주는 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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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을 인용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보게 된다. 진보신당의 이창우님이 레디앙에 글을 기고하면서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을 두 차례나 인용하였다. 자유로운 발언의 신봉자였던 런드 핸드(Learned Hand) 판사는 생전에 “자유로운 인간의 징표는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영원히 고뇌하는 내적 불확실성에 있다”고 했고, 알린스키는 “혁명운동의 모든 순간과 계기마다 우리는 독단적 교리를 경계하고 또 두려워해야만 한다. 인간의 정신은 과연 우리가 옳은지를 살펴보는 내적 의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서만 빛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상훈님 또한 경향신문의 ‘말과 정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책에 인용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읽으면서 참으로 재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적절한 단어와 거의 적절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
 
다 나름 좋은 말들인 듯한데, 내가 발췌정리한 것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하긴 알린스키가 책에서 주옥같은(?) 말들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워낙 정치적으로 쓰여져 있어서 누가 이를 인용하더라도 그럴싸하게 보일 듯하다.
 
딱 2년 전에 책을 읽고 정리해놓았구나. 이렇게 정리해놓지 않았으면 뭘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뻔 했다. 책에서 발췌했음에도 거의 20여 페이지가 되어서 그 중에 일부만 코멘트와 함께 여기에 옮긴다.
 
2008. 08. 07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를 읽고 발췌정리하다.
 
알린스키의 책을 예의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서술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지루한 듯해서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서문을 넘기고 나니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결국 아주 흥미롭게 읽었고, 내가 의미 있게 체크한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항상 이렇던가.)
  
알린스키의 명성은 지방정치과정론 강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책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게 번역되어 나온 것 아닌가.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는 풍부한 예시의 힘일 터이다. 혁명을 위해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 결국에는 개혁에서 그치고 만다. 알린스키의 미덕은 혁명으로 가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례들을 통해 표출되는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중간계층의 조직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뒷부분에 조금 나오는데, 강조된 것에 비해 그리 많이 다루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꽤 있다. 목적과 수단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 그러하고, 체제 내부로 들어가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물론 그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이를 통해 과연 변혁에 이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원래는 급진주의가 주는 묘한 매력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이 책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라기보다는 급진주의적인 조직가에게 주는 교본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을 조직가와 동일시하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신이 조직가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여 조금은 씁쓸하더라. 하긴 혁명가가 되기 위해 혁명가들의 자서전 등을 읽는 것은 아니니...
덧붙여, 박순성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한 것이나, 오재식 씨가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것은 의외다.

 

Alinsky, Saul David. 1971.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Random House, Inc. ; 박순성ㆍ박지우 옮김. 2008.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서울: 아르케.)
 
오재식 추천사: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알린스키.  
○ 1930∼40년대에 무산대중을 선동하던 나치조직에 맞서고 1950년대에는 ‘메카시즘의 홀로코스트’에 대항해서 살아남은 알린스키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 침묵하는 중산층을 조직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는 결코 체제 밖에서 체제를 전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체제 안에서 사회규범과 법질서 안에서 사람들이 자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회개혁이며 개혁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이 양성되어야만 혁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자각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의욕을 갖고, 사회변혁운동을 위한 끈질긴 지구력을 양성해서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이 혁명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많은 경우에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믿는 것을 실천하는 데 더 철저하고, 진보주의자들은 행동보다는 생각하고 논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 급진주의야말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또 행동이란 주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시작해야지 절대로 낭만적인 기대나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시작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체제와 조건 안에서 사회활동 조직을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산층이 깨어나지 않으면 나라와 사회는 군부와 재벌들의 놀음에 놀아날 것이다. 사람들이 현상에 대한 불만을 말하게 하고, 지금 전개되는 것이 건국이념에 위배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리고 이대로는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면 그들을 조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사회를 변혁하는 데 앞장서지는 않아도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변혁은 시작되는 것이다. 사회개혁 기반이 없는 혁명은 충돌을 자초할 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노여움은 순발력을 동원하는 자극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2-3년 밖에 가지 못한다. 이타심에 넘치는 분노도 사람을 움직이지만, 부정적 힘이기 때문에 4-5년 안에 소진된다. 학문적이고 이성적으로 다다른 결론과 거기에 근거한 결단은 긍정적인 힘이어서 사람의 끈기를 더 오래 지켜줄 것이나, 정치적 전망과 연결된 이념만은 못하다. 이념은 사람의 의지와 저력을 한 15년 정도는 지탱해줄 것이다. 그보다 오래 행동의 생기를 연장하려면 종교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종교의 선동은 그 수명이 무엇보다도 길지만 반면에 사람을 교조주의라는 사슬로 묶어버린다. 이렇게 행동양식을 분석한 알린스키는 사람을 만나라고 선동한다. 사람을 만나서 서로 부대끼는 것만이 조직가를 제도적 종교에서 해방시킨다. 그리고 무관심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던 사람이 의욕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종교적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다. “나의 유일하고 확고한 진리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자기들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올바른 결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알린스키야말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민중의 힘으로 지탱하는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었다.
 
○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행동할 수 있는 급진주의적 자세가 필요하고, 그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주어진 체제와 조건 안에서 바닥의 힘을 통해서 일상을 바꿔갈 수 있는 끈기와 교양이 필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도전이다. 종교를 전술적 도구로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교양이 있어야 한다. 또 전술적 선택을 종교로 만드는 과대망상을 견제할 수 있는 겸손이 일상의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 서문
○ 우리는 정치적 광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출발할 곳이 없으므로, 바로 현재의 체제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우리 중 일부는 혁명이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 혁명이 대중적 개혁이라는 지지 기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정치에서는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다.
혁명적 조직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정형화된 행동양식들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그들을 동요시키고, 현재의 가치들에 대한 환상을 깨고 불만을 갖도록 하며, 변화에 대한 열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수동적으로나마 수용하고 거부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혁명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실제로 시작되었다”라고 존 애덤스는 썼다. “혁명은 사람들의 가슴과 의식 속에 있었다. … 사람들의 원칙, 견해, 감정, 그리고 애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급진적 변화야말로 진정한 미국 혁명이었다.” 선행한 개혁이 없는 혁명은 좌절하거나 전체주의적 폭정이 되어버릴 것이다. (31쪽)
 
○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시카고 경찰과 주 방위군이 저지른 최루가스 분사와 폭력 행사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학생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가 현 체제 내부에서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나 자신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대답만을 해줄 수 있었다. “세 가지 중 하나를 하라. 첫째, 가서 통곡의 벽을 쌓고 너 자신을 위로하라. 둘째, 미쳐 버린 후에 폭탄 투척을 시작하라. 하지만 그 방법은 단지 사람을 우파로 돌아서게 만들 뿐이다. 셋째, 교훈을 얻어라. 고향으로 가서 조직화하고, 힘을 모아서 다음 전당대회에서는 너희 자신이 대의원이 되어라.” (33쪽)
→ 글쎄다. 과연 민주당 대의원이 되는 것이 교훈일까.
 
□ 지향(The Purpose)
○ 역사에서 주요한 변화들은 혁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진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화란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정한 일련의 혁명들이 모아져서 어떤 주요한 사회변화로 귀결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일 뿐이다. (41쪽)
 
○ 현존하는 질서가 지신의 이데올로기를 방패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창끝을 세우고 진격하였다. 삶의 모든 것은 당파적이다. 공평한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적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공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48-49쪽)
 
○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등, 정의, 자유, 평화, 인간 삶의 귀중함에 대한 깊은 관심 등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50-51쪽)
 
○ 무산자들의 힘은 그들의 수적 우세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 무산자들이 “우리에게 애정을 베풀어 봐!”라고 외친 적은 결코 없다. 그들은 항상 “우리 등에서 내려오라!”고 외쳐 왔을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60쪽)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들은 정의 평등, 기회 등의 이상을 위한 사회변화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위한 모든 실질적 행동을 삼갈 뿐만 아니라 억누르기도 한다. 그들은 “나는 너희의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자신들만의 낙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역겨운 족속이다. 이들이 바로 버크(Edmund Burke)가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신랄한 말을 내뱉을 때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들이다. (61쪽)
 
□ 수단과 목적(Of Means and Ends)
○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행동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행동 속으로 빠져들게 되며, 생각을 통해서 행동을 적절히 이끌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 현실적인 혁명가는 “양심은 관찰자들의 덕목일 뿐 행동하는 사람의 덕목은 아니다”라는 괴테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 과정에서는 개인적인 양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상황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인류의 이득을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행동은 집단의 구원을 위한 것이지 한 사람의 개인적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개인적 양심을 위하여 집단의 이득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개인적 구원’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패’될 만큼 그들을 염려하지 않는다. 수단-목적 도덕론자들이나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않고 목적에 이른다.
무산자들이 유산자들에 대항해서 사용하는 수단의 윤리에 대해 끊임없이 집착하는 수단-목적 도덕론자들은 자신의 진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하여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유산자들의 소극적이지만 지정한 우군이다. 이들 행동하지 않는 자들은 나치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통하여 나치와 싸우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대인과 정치범들이 길에서 끌려가는 참담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하여 창의 덧문을 닫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상황의 끔찍스러움을 개인적으로 한탄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저급한 부도덕이다. 그 어떤 수단보다도 가장 비윤리적인 것은 그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의 인생의 이유나 원인에,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의 세상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세상이라는 우리가 바라는 환상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 (67-68쪽)
 
○ 수단과 목적의 윤리에 관한 규칙
1. 수단과 목적의 윤리에 대한 사람의 관심은 이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반비례한다.
2. 수단의 윤리에 관한 판단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우된다.
나치에 저항한 사람들은 레지스탕스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애국적 이상주의자들, 매우 용감하며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위하여 스스로를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비밀군대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점령군 당국자들에게 그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무법적인 테러범, 살인자, 파괴공작원, 암살자였으며, 전쟁의 불가사의한 규칙들에 따르자면 전적으로 비윤리적이었다. 그와 같은 분쟁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그 어떤 쪽도 승리를 제외한 다른 가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69쪽)
→ 그래서 어떤 상황을 전시상태라고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승리에만 집착하게 되고, 다른 가치들의 의미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과연 극단적인 이분법적 파악이 필요한 상황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3. 전쟁에서는 목적이 거의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4. 판단은 행동이 일어난 바로 그 시점의 맥락에서 이루어져야지, 전후의 다른 유리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5. 윤리에 대한 관심은 이용 가능한 수단의 숫자에 비례해서 커지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나에게 윤리란 최대 다수에게 최선인 일을 하는 것이다. (75-76쪽)
→ 아무래도 이것은 자기 정당화 논리로 보인다. 그래도 그가 사용한 예에는 수긍하게 된다.
6.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덜 중요할수록, 사람은 수단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여할 여유를 더 많이 갖게 된다.
7. 일반적으로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이 윤리의 주요 결정요인이다.
성공과 실패가 바로 반역자와 애국적 영웅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성공적 반역자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성공한다면 그는 건국 영웅이 된다.
8. 수단의 도덕성은 그 수단이 패배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 혹은 승리가 임박한 순간에 사용된 것인지에 따라 좌우된다.
같은 수단이라고 할지라도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순간에 사용되었다면 비윤리적이라고 단정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절망적 상황에서 패배를 면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경우에는 도덕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77쪽)
→ 전쟁 말기가 아니라 진주만 공습 직후,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원자폭탄 사용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알린스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런 질문을 제기하는 이에 대해 당시의 세계정세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하고 있거나 바보, 거짓말쟁이라고 하고 있지만, 원자폭탄의 사용은 일반적인 수단의 성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9. 모든 효과적인 수단은 반대세력에 의해서는 자동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평가된다.
10. 네가 가진 것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서, 그것을 윤리적으로 포장하라. (79-80쪽)
도덕적 합리화는 목적이나 수단의 선택이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행동의 모든 과정에서 언제나 필요하다. “정치는 도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에서 드러나는, 모든 행위와 동기에는 도덕적 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그의 무지는 그의 최대 단점이었다.
모든 효과적인 행동은 도덕성이라는 통행증을 필요로 한다. (87-88쪽)
11. 목표는 ‘자유, 평등, 박애’, ‘공공선을 위하여’, ‘행복의 추구’, ‘빵과 평화’ 등과 같은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 단어들에 대해(A Word About Words)
○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권력은 삶의 진정한 본질이며, 동력원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로 솟아올라 단합된 힘(strength)을 제공하는 적극적 시민참여의 힘이다. 힘(권력)은 세상을 바꾸거나 혹은 변화에 저항하거나 간에 언제나 작동하고 있는 본질적인 생명력(life force)이다. (97-98쪽)
 
□ 조직가의 교육(The Education of an Organizer)
○ 올바른 일들은 잘못된 이유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올바른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비록 그것이 잘못된 이유로 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이유가 도덕적 합리화로서 도입될 뿐이라는 사실을 조직가는 알아야 하며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합리적인 세상으로 전진하려는 자신의 노력 과정에서 능숙하고 신중하게 부조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의사소통(Communication)
○ 당신이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소통은 양방향의 과정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사물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38쪽)
 
○ 경험의 상세한 부분에까지 파고들지 않고 개괄적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미사여구가 되고, 아주 제한된 의미만을 전달한다. 이는 25만 명의 죽음(통계)을 아는 것과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척 중의 한두 명의 죽음을 아는 것 사이의 차이이다. (153쪽)
→ 알린스키는 행동경제학의 여러 가지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조직가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 시작의 순간(In the Beginning)
○ 일반적으로 행동방침(정책)은 힘(권력)의 산물이다. 당신은 특정한 계획을 위해 힘(권력)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어떤 힘(권력)이 구축되고 나면, 계획은 변화하게 된다.
그 당시에 그들은 햄버거고기를 위해 싸웠지만, 이제 그들은 등심살을 원하였다. 일이란 이렇게 되어 간다. (170-171쪽)
→ 2008년 촛불시위에서 나온 쟁점들의 변화양상 또한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 외의 학교교육의 문제, 공공성과 민영화의 문제, 한반도 대운하의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퇴진은 당연하게 포함되었다.
 
○ 변화는 힘(권력)으로부터 오며, 힘(권력)은 조직으로부터 온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모여야만 한다.
○ 당신의 역할이 무관심을 타파하고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공동체에서 이미 조직화된 생활의 일반적 형태를 공격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조직화에서 첫 번째 단계는 공동체의 해체이다. 시민참여의 기회와 수단을 제공할 새로운 형태의 질서로 대체되려면, 현존하는 질서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 모든 변화는 낡은 질서의 파괴와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의미한다. (181-182쪽)
 
○ 변화를 만들어낼 기회와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멋대로 지껄이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행동방침도 주지 못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화나게 하는 짓은 정말 분별없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협상을 하도록 압박할 힘이 없이는 협상을 잘할 수 없다.
힘에 바탕을 두지 않고 선의에 기대어 움직이려고 하는 시도는 세상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184쪽)
 
○ 각각의 구체적 논점과 관련된 이해관계와 갈등은 관심의 영역을 급속하게 확대한다. 유능한 조직가들은 이러한 기회들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한다. 학습과정 없이 하나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단순히 한 권력집단을 다른 권력집단의 자리에 앉히는 일에 불과하다. (191쪽)
 
□ 전술(Tactics)
○ 권력 전술의 규칙 (195-199쪽)
1. 권력(힘)은 당신이 가진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적이 생각하는 것이다.
2. 당신 편인 사람들의 경험을 결코 벗어나지 말아라.
3. 가능하다면 어디에서든 적의 경험을 벗어나라. 여기에서 혼란, 공포, 후퇴를 야기하도록 하여라.
4. 적이 그들 자신의 교본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라.
5. 비웃음은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결코 용서가 안되고 또한 그가 반드시 반응하도록 만드는 한 가지 일은 그를 비웃는 것이다. 이는 이성으로 통제가 안되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207쪽)
6. 좋은 전술은 당신 편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전술이다.
7. 너무 오래 끄는 전술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8. 여러 상이한 전술과 행동으로 압력을 계속 가하라. 그리고 당신의 목적을 위해 당시의 모든 사건들을 활용하라.
9. 보통 협박은 전술 행동 자체보다 더 위협적이다. 이는 당신들이 아주 잘 조직되어 있어서 당신들이 그 전술을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존 지배층이 깨닫고 있을 때에만 그렇다. (216쪽)
10. 전술을 위한 대전제는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일정한 압력을 계속 가할 수 있는 활동의 전개이다.
11. 만일 당신이 어떤 하나의 부정을 필요한 만큼 강하게 그리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그 부정은 반대편으로까지 뚫고 들어갈 것이다.
12. 성공적 공격의 대가는 건설적인 대안이다.
13. 표적을 선별하고, 고정시키고, 개인화하고, 극단적인 것으로 만들어라.
 
○ 전술은 당신이 가진 것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이 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힘(권력)은 대체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대중들이 따르는 사람에게로 언제나 집중된다. 무산자의 자원은 ① 결코 돈이 아니며, ② 수많은 사람이다. (208쪽)
 
○ 감옥에 투옥됨으로써 활동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혁명가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혁명가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는 그가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종합하는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왜 그러한 일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이 했던 일에서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무엇을 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모든 일과 행동의 관련성들을 일반적 패턴에 잘 맞추어 바라보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개인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가장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감옥이다. (228쪽)
○ 종종 혁명가들은 사건과 활동의 압력이 그에게 현실로부터 잠시도 떨어져 있을 호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혁명가 또는 행동가는 학구적인 학자의 성격에 속하는, 오래 앉아 있으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상황을 스스로 가지게 되었을 때조차, 그는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229쪽)
→ 아무래도 나는 혁명가가 되긴 그른 모양이다.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종합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위해서 가장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감옥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대안은 없으려나.
 
○ 조직가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우연히 혹은 충동적 분노 때문에 시작된 행동에 대한 근본적 이유(rationale)를 즉각적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근본적 이유가 없는 행동은 참가자들에게 설명할 수 없게 되고 급속하게 붕괴되어 패배로 이어진다. 근본적 이유의 확보는 행동에 대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237쪽)
 
□ 위임장 전술의 기원(The Genesis of Tactic Proxy)
○ 미국인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계급은 거대한 기업경제 하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또한 어느 길로 방향을 정해야 할지 모른다. 더욱이 그들은 이제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전문가들과 정부가 결국에는 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위임장은 이 사람들이 조직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기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일단 조직화되고 나면, 정치세계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다. 위임장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나면, 그들은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대내적 또는 대외적 정책들과 관행들을 검토하고 나아가 그것들에 대해 교육을 받을 이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것들에 대해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5-256쪽)
→ 이것은 위임장 전술이 주주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미국에서 자본의 지배를 더욱 고착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간과한다. 물론 주식을 가진 중간계급을 조직화하는 나름의 전술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잃을 것을 가진 그들이 과연 급진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대한 권한이 없는가? 기업은 주주들의 것이 아니다.
 
□ 가야할 길(The Way A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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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9 18:17 2010/08/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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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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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2010.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서울: 후마니타스.
 
조돈문 교수의 이 책을 보고 정말로 뭔가 진보의 길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레디앙에 책의 머리말과 제4부 평가와 함의가 실린 것을 보고 제1부에서 제3부 사이에 참여예산제와 같은 지방정부의 경험이나 PSol과 같은 노동자당 외의 좌파정당의 흐름 등의 내용을 기대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것은 조돈문 교수가 이전에 브라질 노동자당 또는 노동운동과 관련하여 쓴 논문들을 보완하여 쓴 것이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 대한 계급분석 및 전투성게임/제도성게임 등을 통한 노동운동의 대응 등은 의미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
 
레디앙에 실린 4부를 보면 조돈문 교수의 논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토론거리가 된다. 그 논지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고...

 
룰라 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완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진전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억제된 반면, 좌파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제어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가 크게 진전된 것이다. 이런 역설적 현상은 계급 형성 혹은 주체의 형성 시각에서 설명될 수 있다. 계급의식이 발달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의미의 물질적 기초가 전제되어야 하고, 계급 형성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이런 여건이 좌파 정권인 룰라 정부에 의해 제공되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IMF 협약을 준수할 의무, 막대한 외채 및 공공 부채 규모, 연립정부 및 과반수 의석 확보 문제 등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으로 인해, 정부의 의지 여부에 관계없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역량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좌파들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의 핵심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으며, 실천 의지만 있다면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당이 성장함에 따라 당의 성격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정책을 관철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요구되었고, 공직자들의 비중과 당에 대한 기여도가 증가하면서 당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되었으며, 그와 함께 실용주의는 당 내에서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각종 선거에 참가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념정당‧계급정당에서 점차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었다. 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당원 구성에 있어 노동계급의 비율이 감소하고 중간계급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당의 지지 기반이 커지면서 지지 기반도 당원 구성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비율 감소와 계급적 이질성의 증대 현상을 겪게 되었다.
 
집권 시점까지 변혁적 프로그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대안 계획 “Plan B”가 존재했다가 결국 파기되었다는 것은 변혁적 실천 의지가 총체적으로 부재했다고 보기보다는 변혁적 실천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결여되고 소극적 의지에 머물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 자본제 국가의 모순과 함께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대한 집권 프로젝트의 제약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다수파와 좌파 소수파들의 대립‧갈등은 계급 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 계급 이익들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다수파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좌파 소수파들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한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노동계급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딜레마가 CUT 내 이념적 흐름들 사이의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다.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다양한 정책들의 실천을 통해 노동계급의 이념적 결집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 있어 조직적 형성보다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더 큰 기여를 했으며,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개혁적 양식의 정체성이 주도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서로 대립‧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계급의 이익 유형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시기라고 해도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의 수렴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성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계급정당이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한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개입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수렴은 기대할 수 없다.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하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헌신성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 변혁의 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산관계의 변혁적 실천에 대한 참여를 통해 주관적 의미 부여 기준과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변혁과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변혁적 요구를 동원ㆍ조직하여 제도성 게임과 전투성 게임을 병행하며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성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로 하여금 변혁 정책을 확대‧집행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당면 계급 이익에 무게 중심을 두며 담론과 정책들을 생산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체성 형성‧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보다는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이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주도했다. 도를 더해 가는 반대파의 비판과 반발에 맞서 CUT 지도부는 룰라 정부와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은 이행을 위한 도구적ㆍ과도기적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존재 양식은 더욱더 보강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에 기초한 개혁은 변혁적 사회주의 정권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개혁적 실천은 개혁주의(reformism)에 매몰될 수도 있고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행을 지향한 실천이 될 수도 있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개혁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보고, 개혁을 체제 이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며,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허물며 체제 이행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접근법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부의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변혁 시나리오 자체의 타당성은 검증된 바 없다. 룰라 정부가 Plan B를 파기한 것은 단순히 룰라 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라 룰라와 노동자당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정치경제적 안정의 중요성 및 재정적ㆍ경제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결과라는 점을 변혁 시나리오는 간과하고 있다.
 
변혁 시나리오가 경험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변혁적 계급 형성의 전제 위에서 ‘동원과 결과의 정치’(politics of mobilization and outcome)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하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크게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변혁적ㆍ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다. 개혁적 계급 형성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과 일반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동원을 통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력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과 함께 ‘설득과 영향의 정치’(politics of persuasion and influence)를 통해 변혁적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설득의 정치와 함께 동원의 정치를 병행하고, 영향의 정치와 함께 결과의 정치를 병행하여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적 합리성이 요구된다.
 
브라질에서도 계급 투표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좌파 정부 집권의 성과로써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 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이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것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의 정치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 예산제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통치 모델을 만들어 통치 능력을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노동계급 정당 혹은 좌파 정당을 선택할 때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 대안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 조건이 악화된 뒤다. 즉, 악화된 구조적 조건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만큼 집권 후 수립ㆍ집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의 범위도 상당 정도 제한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제약을 만나게 된다. 사유재산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경제적 질서와 안정성의 기초를 이루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대적 원칙들이다.
 
룰라 정부의 경험이 확인해 준 것은 좌파 정권이 변혁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이 진전되어야 하며, 계급 존재 양식을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단순한 집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ㆍ통치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집권 전략을 규정하고, 집권 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변혁적 정부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고 의회정치는 의석의 게임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유화된 기업들을 재사유화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연대 세력들의 동원만으로 재사유화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여론을 향한 설득과 영향의 정치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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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성공…룰라의 실패 (한겨레, 김순배 기자, 2010-01-22 오후 08:18:16)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중도 실용 좌파’의 성공적 모델로 추앙받는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그는 임기 8년째에 퇴임을 앞두고 80% 가까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룰라 정부는 정치적 안정 속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룰라는 진정 성공했는가? 브라질 노동자당의 2003년 1월 집권은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의 실험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좌파는 룰라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틀에 갇힌 자본제 국가의 한 유형에 불과했을 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펼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저자는 “노동계급의 계급형성이 진전되고 계급 존재양식을 개혁적·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에도 시민들의 불만과 반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조직화하면서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논의를 위해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과 계급적 성격에 대한 분석은 물론, 노동운동의 역사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및 노동운동의 전략 등도 짚었다. 조돈문 지음/후마니타스·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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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명박, 신자유주의 대동맹 (레디앙, 2010년 01월 23일 (토) 09:27:49 이재영 / 기획위원)
[인터뷰-조돈문] "진보 사회과학 날카로운 발톱 되찾겠다"
 
사회적 후퇴 현상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이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두 정부가 들어서면서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정권 운영에 많이 참여했다. 공식 직책을 맡은 사람도 있었고, 직책이 없더라도 정권의 자문 네트워크에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간여했다.
 
아직도 이 두 정권에 미련을 두고 있는 세력이 일부 있고, 두 정권에 실망한 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은 더 진보적인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보적 사회과학계에 내부 균열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사회과학이 제 목소리를 못낸 것이다. 진보적 사회과학의 날카로운 발톱이 무디어졌고, 비판적 이성을 잃은 것이다. 자유주의 정권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권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기대, 그들이 개혁적이지 않음이 드러났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련이 진보적 사회과학 위기의 원인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렇게 쉽게 역주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자유주의 정권들이 역주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와 주체 형성을 못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초선될 때는 그 지지가 여러 계층에게서 나와 계급적 특징이 없었다. 그런데 재선에서는 계급적 차별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은 1기 집권 때 계급적 정책을 폈고, 그를 통해 지지세력을 만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신자유주의 시절을 거쳤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 주체가 누구냐 하는 데서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이를 이끌었다. 한국의 전통적 보수세력은 친시장적, 친신자유주의적이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 성향의 중도개혁세력은 북한이나 미국 문제에서 조금 더 개혁적이다. 두 번째 세력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전통적 보수세력이 신자유주의를 펼쳤다면, 중도개혁세력이 반대했을 텐데, 중도개혁세력이 신자유주의를 주도하고 전통 보수세력이 수용하는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군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화한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부, 페루의 후지모리 정부가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추진했다.
 
양 세력의 대동맹은 시민들에게 신자유주의가 대세고, 이런 보편적 국가노선에 저항하면 집단이기주의라는 식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합의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의식이 보수화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도 자신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시장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 대동맹의 시민 교육이다. 게다가 개혁적 시민단체와 언론들도 비판적 기능을 포기하고 자유주의 정부들에게 암묵적 동의를 해줬다.
 
정치 참여는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다. 자기 연구의 결과를 관철하고 영향을 주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스럽고, 지식인의 의무다. 그러나 모든 정치 참여가 동일하지는 않다. 지배세력은 이미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굳이 대변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약자의 힘은 워낙 취약하므로 지식인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 동기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필요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학문적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사회적 활동을 펼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 판별할 수 있다.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그 연장선상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룰라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인데, 시민들이 긍정적 평가 70%라는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데 비해 좌파들은 룰라 정책에 비판적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권이 사유재산제, 부르주아민주주의 등 제도적 제약에 발목 잡혀 진보적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구권 붕괴 이후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에 성공한 것은 브라질이 처음이라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그 기대만큼 제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복지정책과 사회정책은 상당히 폈지만, 시장질서를 변화시키는 정책은 없었다.
 
룰라 정부는 어떻게 출범할 수 있었을까? 왜 좌파적 변혁을 할 수 없었을까? 인민들이 좌파에게 표를 주는 것은 다른 모든 대안이 효과 없음이 입증된 뒤다. 즉 사회경제적 최악의 조건에서다. 그래서 좌파 정권은 최악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정책 구사를 제한당하는 것이다. 룰라가 집권했을 때 국가부채가 엄청났고,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사회정책을 펼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브라질 정부에게는 돈이 없었다. 기업 국유화할 돈도 없었다. 외채를 갚으려 긴축재정을 쓸 수밖에 없어 정책대안이 적어졌다. 좌파 집권의 조건이 정책 수행의 유리한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도 집권한다고 모든 것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브라질만큼 노동자 정치세력화 하기도 어려운 조건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집권 이전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브라질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의 경험에서 교훈 얻고 배워야 하는데, ‘개량’이라 매도하며 학습하지도 않는 것이 안타깝다. 브라질을,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돈문 교수 "한국 진보진영, 룰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한국, 이왕구기자, 2010/01/25 21:50:05)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 책 낸 조돈문 교수
2003년부터 브라질 6차례 방문… 룰라 정권의 경제·복지 정책 분석
"작은 변혁부터 실천… 지지 얻어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분석한 책은 국내에서도 여러 권 나왔지만 이 저서는 국내 학자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룰라 정권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유학 중 한국과 멕시코 노동계급 비교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는 등 일찍부터 중남미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 교수는 "1994년께부터 룰라를 주목해왔다"고 했다. 브라질 노동운동사를 정리한 이 책의 1장은 당시 쓴 논문이다. 그는 2002년 봄 브라질 대선 레이스에서 룰라가 선두를 놓치지 않자 그해 여름부터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룰라가 취임한 2003년 이후 브라질을 6차례 다녀오며 글을 썼다. 조 교수는 "룰라 정권은 경제정책에서는 전임 우파 정권과 연속성을 지니되 상당 정도 차별성을 보여주었고, 사회정책에서는 두드러지게 차별적이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긴축재정 운용, 고금리 유지 등이 전자의 예이고 저소득층 생계 지원,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 등은 후자의 예다.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룰라 정권의 성공은 좌파와 중도우파를 포괄하는 국내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같은 시기 출범한 한국의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공공부채는 5배 이상이었고, 한국은 외채가 수출규모보다 작았지만 브라질은 외채가 수출규모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과감한 사회복지 예산을 쓰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지요. 룰라 정권이 자본주의 게임 규칙을 바꾸는 실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빈곤층의 규모를 줄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 교수의 말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룰라의 노동자당도 순수계급정당을 포기하고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에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반면 우리 '진보' 정권은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대동맹을 결성했지요.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요. 환란 이후 삶의 질이 악화됐는데도 시민들의 사회ㆍ정치의식이 보수화된 책임은 두 정권에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이 바로 진보 진영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롤라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빈곤층 자녀 대상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우니' 같은 성과를 보여주었기에 재집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당다운 트레이드마크를 보여준 것이지요." 조 교수는 또 롤라가 집권 전부터 지역에서 공공투자부문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예산제'등 차별화된 통치모델과 통치능력을 보여준 점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진보 진영이 '새 세상이 올 것이다'는 말만 해서는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집권 전에 작은 변혁들을 실천해서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유도해야 합니다."
 
비판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등을 지낸 조 교수는 최근 진보적 학술단체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우리 진보 진영이 브라질의 경험을 배우지 못하면 집권도 실패할 것이며, 집권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진보 지식인과 진보 정당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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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석부리 사내가 나타났다. 룰라였다" (레디앙, 2010년 01월 26일 (화) 09:30:29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①] "그는 왜 변혁적 실험을 하지 않았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룰라 정부의 경험이 보여준 것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해관계 중심의 당면 계급 이익과 생산체제 변혁을 지향하는 근본 계급 이익이 서로 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집권 전략의 덫'이라고 말한다. <레디앙>은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이 책의 머리말과 4부 '평가와 함의'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숨 막히는 순간들이 지나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한 노동자당과 룰라가 향후 4년 동안 어떤 일을 할지를 내가 본 드라마가 모두 투사해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들을 가슴에 품고 룰라 정부를 지켜보며 오늘까지 브라질을 연구해 왔다.
 
동구권 붕괴 이후 국가사회주의의 파산은 사회주의 모델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좌파들에게는 억울한 누명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의 우데발라와 임노동자 기금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실험은 없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은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의 실험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고, 전 세계 좌파들이 대거 브라질로 모인 것은 그러한 기대감 속에서 룰라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고자 한 것이었다. 거리는 환희의 구호들로 가득 찼고, 나 또한 여느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무리들 속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룰라야, 어디 있니? 나는 너를 보러 여기 왔다!”
 
그렇게 룰라 정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변혁의 실험은 없었다. 룰라가 배신자라고 규탄을 받는 가운데서도 나는 실험의 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에서 검증된 대안, 그것을 찾을 곳은 다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에 거는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덧 나의 물음은 ‘룰라 정부가 어떤 변혁적 실험을 실시했고,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는가?’에서 ‘왜 룰라 정부가 변혁적 실험을 하지 않았는가?’로 바뀌게 되었다. 연구 결과는 노동자당과 룰라를 위한 ‘과학적(?) 변명’의 모습을 띠기도 했다. 변혁적 실험 자체를 현실화할 수 없게 하는 제약들에 대한 연구는 결코 유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값진 실천적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노동계급에 관한 한 브라질은 한국과 공통점이 많았다. 군사독재 시기 어용 노조 패권하에서 민주 노조 운동이 시작되어 대안적 조직체를 형성하면서 노동운동은 이중 구조(dual structure)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노동계급은 민주 노조 운동을 구심점으로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었다. 경제 위기 이후 민주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공세가 전개되면서 민주 노조 운동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정체 혹은 후퇴하는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기를 마감하며 브라질 노동계급은 집권에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온건 신자유주의 세력이 강경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되었을 뿐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는 참담한 수준이다. 첫발을 제대로 내딛기도 전에 분당 사태를 맞았고, 아직도 패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실천보다 파워 게임에 익숙하고, 변혁적 전망보다 정치 방정식에 목숨을 거는 행태는 보수정당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동지도, 당원도, 시민도 모두 수단으로 삼는 천박한 도구주의적 행태다. 파벌 중심주의와 결합해 유능한 인재들조차 완장 부대로 만들거나 조직에서 몰아내는 폐해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변화의 시도들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4부 평가와 함의

"신자유주의와 변혁정권 사이" (레디앙, 2010년 01월 27일 (수) 09:05:15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②] 노동자당 집권과 룰라 정부 성격 
 
1. 브라질 노동계급과 노동자당의 집권
1979년과 1980년에도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서 시작하여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확산되는 파업 투쟁의 물결은 반복되었고, ABC 지역 금속노동조합은 공식적 노동조합 조직체의 지원 없이도 전국적 수준의 파업 투쟁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ABC 지역 금속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신노동조합운동이 형성되면서 전국적 수준의 지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뻴레고라 불리는 전통적 어용 노동조합 세력과 어용 노조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에 맞서 전국적 수준의 대안적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을 조직했으며, 이를 통해 CUT가 결성되었다. CG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유지를 지지하며 국가‧자본에 대한 호응성(accountability)을 바탕으로 제도성 게임을 추구한 반면, CUT는 코포라티즘 체계의 폐기를 주장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호응성에 기초해 전투성 게임을 추구했다. 이렇게 양극화되며 형성된 브라질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신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들의 전국적 결집체로 CUT를 결성하여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노동자당은 각종 공직 선거들에 참여했으며, 지방의회와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공간에서 노동계급과 하층 서민들을 대변하고, 부패 정치인들 속에서 청렴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차별화하며 지방의회에서부터 지분을 확대해 나갔다. 지방의회에 이어 지자체들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노동자당은 새로운 행정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참여 예산제와 같은 정책 대안들을 중심으로 행정‧통치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 룰라는 1989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한 이래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모두 차점자로 브라질사회민주당의 까르도주 후보에 패배했으나,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사회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노동자당 룰라의 대선 승리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 성과인 동시에 계급 형성을 더욱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룰라 정부의 성격 : 성과와 한계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연속성을 지적하는 주장들의 준거는 경제정책이며, 비판의 핵심은 룰라 정부도 까르도주 정부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룰라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교하면 <표 10-2>에서와 같이 일정 정도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까르도주 정부와의 연속성은 통화주의 정책에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긴축재정 운영, 고금리 유지, 브라질 통화의 고평가였다. 하지만 이러한 통화주의 정책들은 외견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외환 보유고의 다섯 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외채, GDP의 57%에 달하는 정부 부채와 그로 인해 누적되는 재정 적자, 좌파 정부에 의한 인플레이션 유발 우려와 선거 국면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1,000%의 인플레이션을 10년 정도 경험한 브라질인들의 공포심 등 브라질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려하면 룰라 정부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구조적 조건들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하고, 시장 개방을 조절하며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 중심의 중남미 경제통합을 거부하고 메르꼬수르 중심의 지역 경제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등 개입주의 경제‧통상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를 조직하여 사회보장제도와 재정 및 세제 개혁 등 정부의 주요 경제‧사회정책의 수립 방향을 협의하도록 하는 한편, 경제사회개발은행과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산업 발전과 수출 촉진을 위한 적극적 시장 개입과 인프라 구축을 추진했다.
 
룰라 정부의 차별성은 경제정책보다 사회정책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항목들의 예산을 직접 지출 부문을 중심으로 대폭 증액했고,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기초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 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역점을 두었다. 또한 노동 빈곤층의 임금 인상을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주로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부조 정책을 추진했다. 한편, 농촌 지역 무토지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해 토지 수령 가족 수를 확대하되 경작 가능 토지 제공, 농업용수 공급, 기술 및 신용 지원 등 효율적 경작을 위한 지원도 병행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실질적 효과를 수반했다. 사회정책의 성과는 빈곤층의 대거 감축과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통한 실질적 불평등 완화였다.
 
노동자당은 창당 이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을 꾸준히 주창해 왔으며,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이 그 핵심이었다. 룰라 정부가 노동자당의 국민들과의 오랜 약속들 가운데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한 것은 토지개혁밖에 없으며, 그것은 전임 까르도주 정부에 비해 다소 진전되었으나 급진적이라 부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한편, 외채의 경우 지불 중지를 선언하지 않고 재정 압박을 감수하면서도 모범적으로 변제해 나갔고, 국유화의 경우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전개되던 사유화를 중단했을 뿐 국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처럼 룰라 정부하에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은 거의 추진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변혁적 정책 실천의 부재 현상은 룰라 정부 2기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2기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을 구성하는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PAC)의 내용을 보아도 석유화학 부문과 수력 에너지 부문의 정부 지분을 증대하고, 정유 공장 건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바이오 디젤 공장 및 에탄올 공장 신설 등 에너지산업에 대한 적극적 투자 정책을 추진하지만 소유권 구조의 급진적 전환은 결여되어 있다. 국영 브라질 은행이 파산 직전의 지역 은행 몇 개를 인수한 사례는 있지만 주요 은행의 소유권 구조를 변혁한 사례는 없다.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 정책은 거의 추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룰라 정부의 성격은 까르도주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차별화되고, 노동자당이 지속적으로 주창하던 사회주의 변혁 정권과도 차별화된다. 결국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적 소유권 체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기반 위에서 빈곤 및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소하는 자본제 국가의 한 유형에 불과한 것이다. 즉 룰라 정부는 자본주의 복지국가 혹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브라질은 여타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사독재의 개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를 풍미한 포드주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었는데, 룰라 정부는 군사독재와 포드주의 실종으로 후퇴되었던 사회경제적 민주화 과정을 복원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간지식층에서 비정규직으로 (레디앙, 2010년 02월 01일 (월) 09:19:14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③] 3. 룰라, 지지 기반 변화와 권력 재창출 
 
룰라는 2002년 대선과 2006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002년 대선 승리는 까르도주 정부에 대한 평가였고, 2006년 대선 승리는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까르도주 임기 말 시민들은 브라질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을 실업, 빈곤, 치안 순서로 꼽았다. 시민들이 룰라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까르도주 정부의 실패에 대한 응징이었으며, 까르도주와 같은 브라질사민당 후보인 세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브라질사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 제공자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시민들은 룰라에 대해 빈곤 해소 등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고, 2002년 대선 투표 행태는 경제 투표에서 사회 투표로 전환되었으며 기존의 정책 패러다임과 지배 질서에 대한 거부의 표현으로 룰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2002년에 이어 2006년에도 브라질사민당 후보를 거부하고 노동자당의 룰라를 선택했으며, 이는 룰라 정부 1기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룰라 정부 첫 해인 2003년 -0.2%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이래 연평균 4.5% 수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성장률의 부침도 적어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구가해 왔다. 적극적인 사회정책의 성과로 빈곤층도 대거 감축되었고 경제적 불평등도 크게 완화되었다. 시민들의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는 임기 내내 50~70% 수준의 긍정적 평가를 유지했고, 결국 2006년 대선에서도 룰라를 선택하게 되었다.
 
2002년과 2006년 대선에서 룰라는 60~61%의 득표율을 유지하여 득표율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투표 행태와 지지 기반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표 10-4> 참조).

2002년 대선에서 룰라 지지율에 있어 계급 범주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있었지만 계급 위치와 투표 행위 사이의 상응성은 부족했다. 계급 위치가 투표 후보의 이념적 성향과 불일치하는 경향성을 보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문직 프티부르주아로서 이들의 계급적 위치는 특전적 계급 블록에 속하지만 진보적 후보인 룰라를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선택했다. 반면 비등록 임금노동자와 비취업자 같은 비특전적 계급 블록 범주들은 상대적으로 평균 이하 수준의 낮은 룰라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
 
반면, 2006년 대선에서는 계급 위치와 계급 입장 사이의 명확한 상응성이 표현되었다. 전문직 프티부르주아 같은 특전적 범주의 룰라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여 룰라 지지율이 절반에 못 미친 반면, 비등록 임금노동자와 비취업자의 룰라 지지율이 상승하여 평균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높은 룰라 지지율을 보여 주었다. 결국 2006년 대선에서는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을 중심으로 친룰라 블록이 형성되었고 특전적 계급 범주들을 중심으로 반룰라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계급 범주별 계급 위치와 계급 입장 사이의 상응성이 크게 강화되며 2006년 대선에서 진정한 의미의 계급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의 계급적 성격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까르도주 정부 시기 특전적 계급 범주들과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진전되지 않았던 데 반해, 룰라 정부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완화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크게 진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진전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억제된 반면, 좌파 정권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제어되었으나 이데올로기적 양극화가 크게 진전된 것이다.
 
이런 역설적 현상은 계급 형성 혹은 주체의 형성 시각에서 설명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폐해로 인해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불만이 증폭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계급의식이 발달하며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의식이 발달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의미의 물질적 기초가 전제되어야 하고, 계급 형성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이런 여건이 좌파 정권인 룰라 정부에 의해 제공되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 가족 지원금 제도 및 적극적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을 통해 비특전적 계급 범주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물질적 혜택을 제공했으며, 그러한 국가권력은 지켜야 할 대상이 되어 비특전적 계급 범주 구성원들 스스로 국가권력과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며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구심점으로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4. 룰라 정부와 사회주의 변혁성 실천의 부재
룰라 정부는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와 높은 지지율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CUT와 노동자당 내 좌파들의 실망과 불만도 그만큼 높았고 상당 부분이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민들의 긍정적 평가와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높은 지지율은 룰라 정부가 정치적 안정 속에서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소한 데 대한 긍정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반면, 좌파들의 불만은 룰라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틀에 갇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펼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는 룰라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국내외 자본계급을 포함한 지배 블록의 공포심과 전 세계 좌파들의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왜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변혁적 실천을 추진하지 않았을까? 룰라와 권력 핵심의 실천 의지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외적 여건과 실천 역량의 제약 때문인가? 후자는 룰라 정부와 권력 핵심의 설명이고, 전자는 좌파들의 비판이다.
 
룰라 정부를 둘러싼 외적‧구조적 여건이 변혁적 실천을 어렵게 했다는 주장은 경험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1998년 말 외채 위기 속에서 까르도주 정부가 IMF와 체결한 협약에 대해 2002년 말 룰라를 포함한 유력 대선 후보들은 모두 협약에 준수할 것을 서명했고, 룰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기존에 작성된 체크리스트에 따라 정기적인 평가가 실시되었다. 브라질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물가와 화폐가치를 안정화할 것, 공공 부채 감축을 위해 공공 부문의 기초 재정 흑자를 GDP 대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유지할 것 등이 체크리스트의 핵심을 이루었다. 실제 룰라 정부는 체크리스트와 정확히 일치하는 통화주의 정책을 집행했다.
 
그러나 IMF와의 협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통화주의 정책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여건 또한 존재했다. 룰라가 취임할 당시 외채 규모는 외환 보유고의 다섯 배를 넘어섰고 연간 수출 총액의 세 배가 넘었다. IMF의 지급 보증 없이는 국가 파산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IMF와의 협약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룰라 정부는 통화주의 정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협약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으로 IMF와 서약을 체결했고, 막대한 외채 규모로 인해 IMF 지급보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룰라 정부는 외채 지불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또한, 정부의 공공 부채 역시 GDP의 57% 수준으로서,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공공 부채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정 적자와 공공 부채 속에서 룰라 정부가 은행 및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룰라 정부는 외채 지불 중단도 기간산업 국유화도 실시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선 승리를 위한 선거 연합 전략과 그에 따른 연립정부 구성으로 인해 변혁적 정책들을 입안하기 어렵게 하는 내부 검열의 암묵적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내부 검열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의회 내 의석 과반수 미달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룰라 정부 출범 당시 노동자당은 상원 내 제3당, 하원 내 제1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제1당을 차지하고 있던 하원 내에서조차 노동자당의 의석 점유율은 18%에 불과했다.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은 의회 내 과반수 확보를 위해 군소 좌파 정당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모의 우파 정당들을 포괄하는 정당들과 연대하게 되었다. 변혁적 법안은 연대 정당들의 동의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IMF 협약을 준수할 의무, 막대한 외채 및 공공 부채 규모, 연립정부 및 과반수 의석 확보 문제 등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으로 인해, 정부의 의지 여부에 관계없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역량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 핵심의 변명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반면, 좌파들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의 핵심이 변혁 정책을 실천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으며, 실천 의지만 있다면 구조적 조건들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노동자당이 룰라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변혁성을 상실했고, 노동자당의 온건화는 창당 이래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정적 분기점은 1994년 대선 패배 이후라고 지적한다.
 
창당 시점에서 노동자당의 주요 조직적 기반은 신노동조합운동의 노동조합들과 도시 주민운동 조직체들이었으며, 여기에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과 진보적 지식인 집단들이 결합하는 양상을 띠었다. 노동자당의 성격은 신노조합운동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그 정체성의 핵심은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이념적 목표를 지닌 노동계급 계급정당이었다.
 
노동자당이 성장함에 따라 당의 성격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표 10-5> 참조). 특히 지자체에 진출하면서 정책을 관철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요구되었고, 공직자들의 비중과 당에 대한 기여도가 증가하면서 당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되었으며, 그와 함께 실용주의는 당 내에서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각종 선거에 참가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념정당‧계급정당에서 점차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었다. 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당원 구성에 있어 노동계급의 비율이 감소하고 중간계급의 비율이 증가했으며, 당의 지지 기반이 커지면서 지지 기반도 당원 구성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비율 감소와 계급적 이질성의 증대 현상을 겪게 되었다.
 
노동자당의 실용주의가 강화되고 노동계급의 계급성이 약화되는 추세를 더욱 돌이킬 수 없게 하면서 당의 성격 변화를 주도하게 된 계기는 대통령 선거였다. 1989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룰라는 2위로 득표해 결선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고, 결선투표에서 47%를 득표함으로써 비록 패배했지만 룰라의 향후 당선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 1994년 대선 패배 이후 룰라와 노동자당은 대선 승리를 선거 전략‧전술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 결국 노동자당이 지키고 축적해 온 모든 가치에 대해 대선 승리를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게 되면서 노동자당은 선거 정당으로 전환되었고 이념적‧계급적 정체성은 주변화되었다.
 
이러한 실용주의 강화, 노동계급의 계급성 약화, 대중정당화, 선거 정당화의 결과는 노동자당의 온건화였다. 1994년 대선 시기까지 노동자당은 은행 및 광물자원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을 강조하며 사회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했으나, 1994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자당식 사회주의를 민주적 혁명으로 재정의하면서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에 대한 거부에서 민주주의의 급진화로 중심을 옮겨갔다. 1998년 대선 공약에서는 사회주의와 이행의 프로그램들이 빠졌고, 2002년 6월 22일에는 국내외 자본과 보수 진영의 이념 공세에 직면하여 발표한 “브라질인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브라질이 체결한 기존의 국제조약들과 협약들을 존중하며 물가 안정과 재정 흑자 등 경제 안정을 보장했다. 노동자당이 변혁성을 포기했다는 것이 공개서한을 통해 재확인되었을 뿐이며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은 이제 공개적으로 포기된 것이었다.
 
노동자당이 온건화되고 대통령 후보 룰라가 공개서한에서 국제 협약의 존중과 경제 안정을 약속했다고 해서 변혁적 실천 의지가 실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권 시점까지 변혁적 프로그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대안 계획 “Plan B”가 존재했다가 결국 파기되었다는 것은 변혁적 실천 의지가 총체적으로 부재했다고 보기보다는 변혁적 실천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결여되고 소극적 의지에 머물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평가로 판단된다. 이런 소극적 의지에 더해 변혁적 실천을 어렵게 하는 외부의 구조적 여건이 상호작용하면서 룰라 정부는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룰라는 배반자인가? (레디앙, 2010년 02월 04일 (목) 10:28:16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④] 당면 이익 성과, 근본 변혁 기피 
 
5. 룰라 정부와 노동계급: 계급 이익과 호응성
노동계급의 시각에서 룰라 정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이익의 내적 이질성을 고려하여 두 유형, 즉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으로 나누어 고찰해야 한다. 물론 룰라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 기대를 모았던 것은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가 실현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였으나,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한계를 보여 주었다.
 
룰라 정부가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사적 소유권 체계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넘어서는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은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룰라 정부 2기의 경제정책은 1기에 비해 시장 질서에 대한 개입의 수준을 다소 높이기는 했지만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의 기초 위에서 추진되었다. 2기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PAC의 경우 항구‧공항‧철로 등 인프라를 강화하는 한편, 4개 정유 공장, 46개 바이오 디젤 공장, 77개 에탄올 공장을 신설하는 등 에너지산업에 대한 정부 투자를 대폭 증대하여 에너지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부문과 수력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 지분을 대폭 증대하고, 파산 위험에 직면한 3개 지역 은행을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은행들은 여전히 사적 자본의 수중에 놓여 있었고,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국유 기업 사유화 정책을 중단했을 뿐 까르도주 정부 시기 사유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한편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저임금층의 임금을 끌어올려 임금격차를 줄이는 한편, 전반적인 실질임금 수준의 상승을 가져왔고,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괄목할 만한 신규 고용 창출을 이루었다. 또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 등 각종 이전소득 지원 제도들을 통해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며 부의 재분배를 실시했고, 폭스바겐 등 사측의 구조 조정 기도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전개하는 사업장들에 대해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정부 대출금 조기 상환 위협을 가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룰라 정부는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 향상과 고용 안정 보장을 위해 노력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룰라 정부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했다는 점에서 친노동계급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의 노동계급적 성격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역학 관계에서도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으로 나타났다. 까르도주 정부는 노사정 협의 기구들을 무력화하거나 폐기했으나, 룰라 정부는 경제‧사회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경제사회발전위원회를 설치하여 노동계급 대표들을 참여토록 했고, 노사정 협의 기구인 노동법 포럼을 설립하여 노동법 개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도록 했으며, 산업부문별 노사정 협의체인 경쟁력 포럼을 구성하여 산업 발전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도록 했다. 이처럼 노사정 협의 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압박하며 노동계급을 주요한 한 축으로 설정한 것은,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자본계급이 시장 권력에 의거하여 일방적으로 지배하던 관행을 중단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적 발언력을 보장하기 위한 친노동계급적 개입이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 운동 과정에서 룰라는 CUT 측이 제시한 ‘일곱 가지 목표’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으며, 룰라 정부 출범 후 CUT는 국책은행의 융자 대출을 노동기본권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기업들로 제한하도록 요청하고, 각종 경제‧산업 정책들의 수립 과정에 개입하며 노동 측 입장을 반영토록 했다.
 
룰라 정부의 노동계급적 성격과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은 자본계급에 비해 노동계급에 대해 호응적이며, 자본계급 이해관계보다는 노동계급 이해관계에 복무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노동계급 계급 이익 복무는 당면 계급 이익에 한정되었을 뿐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은 기피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 시각에서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상반된 평가가 가능하며,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상이한 이념적 입장들을 표현하며 룰라 정부 재임 기간 동안 줄곧 노동계급의 내적 갈등 요인으로 작동했다. 이는 2009년 8월 4~7일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제10차 CUT 총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표 10-6> 참조).
 
CUT 내 이념적 흐름들은 노동자당 내에도 상응하는 이념적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CUT의 집권파 역시 노동자당 내에서도 다수파를 구성하고 있고 신노조 운동에서부터 룰라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룰라와 함께해 온 핵심 세력들이다. CUT 집권파는 아치꿀라상오로 불리며 CUT 총회 대의원의 80%를 점하고 있고, 제2정파 CSD는 10% 정도를 점하고 있으며 AS와 이념적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노동자파(OT, O Trabalho), 좌파통합(AE, Articulação de Esquerda), 마르크스주의 좌파(EM, Esquerda Marxista) 등 좌파 소수파들은 나머지 10% 정도를 구성하며 주로 트로츠키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다수파는 사회주의적 수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점차 사회주의 대신 노동자 중심주의를 표방하며 이념적 경직성 대신 노동자 이해관계 신장을 위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옮겨갔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언급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현 단계의 대안 사회 모델로 설정하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핵심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다수파는 룰라 정부를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자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주체로 설정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좌파 소수파는 명시적으로 사회주의를 대안 사회 모델로 삼고 이념적 원칙에 충실한 흐름들이다. 이들은 당면 계급 이익보다 근본 계급 이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며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대 세력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들은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위에서 노동계급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려는 룰라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처럼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좌파 흐름들의 시각에서 보면 룰라 정부의 변혁적 실천 결여는 대단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룰라 정부 출범 이후 좌파 흐름들의 CUT 탈퇴는 계속되었으며 이들은 CUT로부터 이탈한 다음 각각 별도의 노동조합 총연맹체들을 결성했다. PSTU 측 급진 트로츠키주의자들은 CUT를 탈퇴하여 꼰루따(Con Luta)를 결성했고, PSol 측 온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연대(Intersindical)를 결성했고, 공산당 계열 PCdoB 측은 노동자총연맹(CTB, Central dos Trabalhadores e Trabalhadoras do Brasil)을 결성했다.
 
좌파 소수파들의 핵심적인 요구는 까르도주 시기 사유화된 국유 기업들의 재국유화다. 재국유화 등 변혁적 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룰라가 연립정부를 파기하고 대통령령으로 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회주의를 버리고 CUT와 MST 등 대중운동 조직체들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실패의 결과이므로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파와 좌파 소수파들의 대립‧갈등은 계급 간 갈등이 아니라 계급 내 계급 이익들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다수파는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좌파 소수파들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가지 계급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고, 노동계급 관점에서 투사된 두 가지 전망이 충돌하는 것이며,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지니는 두 개의 계급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모두 노동계급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노동계급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딜레마가 CUT 내 이념적 흐름들 사이의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가 CUT와 노동자당을 주도해 옴으로써 노동계급 내 당면 계급 이익 중심성을 재생산하게 되었으며, 계급 형성 과정에 있는 브라질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mode of existence)에서 변혁적‧혁명적 계급 양식이 아닌 개혁적 계급 양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브라질 노동계급은 CUT의 주도하에 계급 형성에 있어 큰 진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혁명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던 것이다.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다양한 정책들의 실천을 통해 노동계급의 이념적 결집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 있어 조직적 형성보다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더 큰 기여를 했으며,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개혁적 양식의 정체성이 주도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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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정당 집권전략의 덫 (레디앙, 2010년 02월 09일 (화) 09:52:27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⑤] 재정위기와 노조의 경제주의 
 
1) 대중정당 집권 전략의 덫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는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 전략을 채택하고 1994년 대선 패배 이후부터는 집권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당이 지켜 온 정체성과 가치들이 주변화될 수 있게 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는 IMF와의 협약 준수 서약서에 서명했고, 국내외 자본들의 공세와 주식시장 및 통화의 극심한 불안정 상황을 맞이하여 브라질이 체결한 국제 협약들을 존중하고, 물가와 통화의 안정, 외채와 공공 부채 문제 해결에 대한 약속을 천명하기도 했다.
 
노동자당과 룰라의 집권 전략에 따른 일련의 조치들과 약속들은 룰라의 대통령 취임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들을 제약하는 덫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러한 ‘집권 전략의 덫’ 효과는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좌파 정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대중정당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것은 집권을 위한 공약들을 집권 후 파기할 경우 대중정당으로서 신뢰도를 상실하게 되어 국민적 지지를 유지‧동원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당과 룰라는 집권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경작 가능 토지의 적극적 배분, 빈곤층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통한 생활수준 보장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해로 유발된 사회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채와 공공 부채를 삭감하고 물가 인상을 억제하고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중주의적 사회정책과 긴축재정 통화주의 정책은 상호 모순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전자를 포기할 경우 까르도주 정부와 다를 것 없는 신자유주의 정부가 되는 것이고 후자를 포기할 경우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수반하는 1930~40년대의 대중주의 정부를 재현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딜레마는 ‘재정적 위기’의 딜레마로서 선진 자본주의 복지국가들에 일반화된 현상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복지 증대 요구에 부응하여 사회적 지출을 증대하면 재정 적자가 커지게 되고, 국가 재원 확대를 위해 조세수입을 증대하고자 하면 시민들의 불만이나 자본축적에 대한 제약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복지국가들은 만성적 재정 적자에 빠지거나 복지 지출을 삭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딜레마는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이라는 자본제 국가에 내재된 보편적 딜레마의 한 표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는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여 권력을 창출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요구들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집행해야 하는 정당성의 과제를 지니는 한편, 공공 재원을 확보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윤 창출과 자본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축적 과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본제 국가에 일반화된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이 복지국가의 경우 사회적 지출과 재정 안정의 딜레마로 표현된 것이며, 룰라 정부의 경우 그러한 자본제 국가 일반의 모순과 복지국가의 딜레마가 중첩적으로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룰라 정부의 경우 대중정당화와 그에 기초한 집권 전략으로 인해 그러한 모순과 딜레마들이 선거 공약 형태로 확정되면서 집권 이후 정책적 제약의 덫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좌파 정권의 경우 자본제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모순과 딜레마들의 제약이 더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은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에서 확인될 수 있다. 좌파 정당의 집권 기회는 우파 정부에 의해 사회구조적 문제점들이 크게 악화되고 우파적 대안들이 모두 고갈된 뒤에 주어지는 것이다. 시민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의 유지를 희망하고 있으며, 시스템의 안정적 조정이 불가능할 때 비로소 변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좌파적 대안들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룰라 정부가 출범할 때의 경제사회적 여건은 외환 보유고 대비 외채의 규모, 공공 부채와 재정 적자 누적, 무역수지 악화와 산업 기반 훼손과 같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으며, 열악한 구조적 조건은 시민들로 하여금 노동자당과 룰라를 선택하게 한 원인이 된 동시에 룰라 정부의 정책적 대안들을 크게 제약했다.
 
결국, 룰라 정부는 집권 전략에 기초한 시민들과의 약속 및 열악한 구조적 조건으로 인해 정책적 대안을 선택함에 있어 극히 제한된 수준의 자율성밖에 지니지 못했으며, 그 과정에서 변혁적 정책들이 이중적으로 배제 압박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자당과 룰라에게 집권 프로젝트만 있었고 사회 프로젝트 즉 통치 프로젝트는 없었다는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를 평가함에 있어, 자본제 국가의 모순과 함께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대한 집권 프로젝트의 제약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자본제 국가 일반의 정당성 과제와 축적 과제의 모순 및 복지국가의 딜레마는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천적 여지도 있음을 브라질의 경험은 보여 주고 있다. 즉, 수단은 목적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타당하듯이 집권 프로젝트는 사회‧통치 프로젝트에 기초하여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계급 이익 갈등과 변혁의 실종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정당을 건설하여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이익 실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이익의 두 축을 구성하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서로 대립‧갈등하는 모순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노동계급의 이익 유형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가 당면 계급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면, 집권하더라도 근본 계급 이익의 실천이 실종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당과 룰라의 대선 승리와 높은 지지율은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당면 계급 이익과 시민들의 물질적 이해관계 및 사회적 요구들 사이의 수렴을 나타낸다. 그것은 노동자당의 집권 전략과 룰라의 선거공약으로 구체화되었다. 룰라 정부는 빈곤 퇴치와 소득 재분배를 위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집행했지만 은행 및 사유화 기업들에 대한 국유화는 추진하지 않았다. 이러한 당면 계급 이익의 적극적 추진과 근본 계급 이익의 포기 행위는 대중적 요구와 선거공약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는 것인 동시에 노동계급과 그 대행 조직들의 선택 또한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이익들 사이의 모순 관계 속에서 CUT와 노동자당의 다수파는 모두 당면 계급 이익을 선택했다. 이러한 선택은 브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의 노동계급 대행 조직들에서 발견된다.
 
노동계급 정당은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화하며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집권 전략을 수립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여타 계급들을 포괄하는 계급 연합 전략을 추구하게 되고,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들을 중심으로 선거공약을 조직하게 된다. 그렇게 집권한 다음 선거공약들을 중심으로 정책들을 수립하여 집행하게 되는데, 룰라 정부의 경우 고용‧빈곤‧치안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핵심을 구성했으며 은행과 사유화 기업 국유화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노동조합 또한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호응하게 되며 근본 계급 이익 대신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경제주의(union economism)이며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자들에 의해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노동조합이 경제주의에 매몰되는 것을 벗어나서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가능성으로는 두 가지가 지적되고 있다.
 
첫째, 노동자들의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은 자연발생적 현상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 호응해야 하는 노동조합들은 경제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노동조합 경제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정당의 인위적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 레닌과 루카치 같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이다.
 
둘째, 네오마르크스주의 현금 고리 이론(cash nexus theory)에 따르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은 수렴할 수 있다. 그러한 수렴 현상은 예외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근본 계급 이익의 실현 없이는 당면 계급 이익을 증진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근본 계급 이익을 수용하여 변혁적 실천에 헌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 이런 두 가지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자당은 이념적 전위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서 CUT의 이념적 흐름들의 분포와 유사한 구성을 지니고 있어 CUT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근본 계급 이익을 확산시킬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한, 경제 위기 시기라고 해도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의 수렴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성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 시민들은 노동자당과 룰라를 선택했으나, 이는 근본 계급 이익을 통한 당면 계급 이익의 실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근본 계급 이익의 개입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면 계급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의 대안이었다. 노동계급 정당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경제 위기 담론을 발전시켜 변혁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기보다 위기의 심화를 부정하며 경제 사회적 안정과 현상 유지를 보장한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계급정당이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개입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수렴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계급정당이 대중정당 집권 전략을 기획하여 집권을 성사시킨 점을 고려하면 대중정당 집권 전략의 덫에 걸린 좌파 정권을 구출하여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운동이며, 브라질의 경우 CUT였다. 근본 계급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해 CUT에게 요구되었던 역할은 룰라 정부에 대해서는 변혁 정책의 집행을 압박하고 노동계급 구성원들에게는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CUT는 두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CUT는 룰라 정부에 대해 변혁 정책의 수립‧집행을 압박할 역량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CUT는 노동자당을 통해 정권 창출에 기여했지만, 힘의 역학 관계는 이미 ‘룰라 정부>노동자당>CUT’로 역전되어 있었다. 변혁적 정책은 고사하고 연금제도 개혁과 같은 당면 계급 이익 관련 정책들의 수립 과정에서도 CUT의 입장은 관철되지 못하는 정도였다.
 
둘째, CUT는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노조원들의 헌신과 단위 노조의 경제주의에 개입하여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CUT가 룰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그러한 실천은 노조원들과 룰라 정부를 괴리시킬 뿐이기 때문이었다.
 
당면 계급 이익 중심의 주체 형성에 비해 근본 계급 이익 중심의 주체 형성이 어렵다는 것은 브라질의 사례에서 잘 확인할 수 있었다. 당면 계급 이익은 구체적인 물적 자원의 문제로서 수혜자 중심의 방어동맹 형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빈곤 퇴치 프로그램과 가족 지원 제도를 중심으로 하층 시민들의 지지가 조직화되어 노동자당과 룰라의 정권 재창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공세에 맞선 복지 동맹의 형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반면, 근본 계급 이익은 권력 자원의 문제로서 수혜자가 불분명하며,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요구에 노동조합이 호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실천에 노동자 대중이 호응하는 것으로서 노동자 대중의 수동성과 소극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체 형성의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근본 계급 이익에 헌신하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헌신성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 변혁의 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은행들과 기간산업의 전면적 국유화 조치를 취할 수 없더라도 정부는 개별적 실험 공간들을 제공할 수 있으며, 룰라 정부가 농지개혁을 위해 추진했던 정책들을 원용할 수 있다. 소유주가 재정적 위기 상황에서 경영을 포기하거나, 기업과 생산 설비가 유휴 상태로 방치되어 있거나, 소유주가 노동기본권을 유린하거나 부정부패 등 심각한 수준의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정부는 해당 기업과 생산 설비의 사적 소유권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산관계의 변혁적 실천에 대한 참여를 통해 주관적 의미 부여 기준과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변혁과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변혁적 요구를 동원ㆍ조직하여 제도성 게임과 전투성 게임을 병행하며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성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로 하여금 변혁 정책을 확대‧집행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득실 (레디앙, 2010년 02월 11일 (목) 10:23:52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⑤] 비개혁주의적 개혁의 가능성 남아 
 
3) 노동계급 형성과 계급정당 집권의 득실
노동계급 계급 형성의 성과로서 계급정당의 집권이 이루어지지만, 계급정당의 집권은 다시 계급 형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룰라 정부가 노동계급 형성의 수준에 미친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동조합 가입 및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최소화되었고, 룰라 정부의 노동자 호응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물적 조건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노사정 협의 기구 및 정부 기구들을 통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정서적 보상도 받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조직률 하락이 멈추고 CUT의 조직력이 증대됨으로써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이 진전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또한 룰라 정부는 노동계급의 조직적ㆍ정서적 구심점을 구성하며 CUT를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내적 결속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노동계급 정권이 출범하게 되면 노동계급의 조직적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기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계급 형성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계급 형성의 구심점으로서 노동계급 정권이 노동계급의 계급 존재 양식과 계급 형성의 유형을 결정함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동계급 정당은 노동계급에 대한 호응성을 잃지 않더라도 집권을 위해 대중정당화하며 집권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된다.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계급정당은 양자 사이의 균형과 조합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대중정당 집권 전략과 친화성이 높은 당면 계급 이익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게 되며 근본 계급 이익은 주변화된다. 그렇게 집권한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에 충실한 정책들을 수립ㆍ집행했다. 노동자당과 룰라 정부는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당면 계급 이익에 무게 중심을 두며 담론과 정책들을 생산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체성 형성‧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보다는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이 노동계급의 존재 양식을 주도했다.
 
노동계급 이익이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의 양면을 지니고 있듯이 노동계급과 CUT도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CUT가 당면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다수파와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 소수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겪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내부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될수록 좌파 소수파들은 룰라 정부와 CUT 지도부의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극렬하게 비판하고 CUT 탈퇴도 마다하지 않게 되며, 실제 좌파들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이탈했다. 도를 더해 가는 반대파의 비판과 반발에 맞서 CUT 지도부는 룰라 정부와 당면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은 이행을 위한 도구적ㆍ과도기적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존재 양식은 더욱더 보강된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당면 계급 이익에 기초한 개혁은 변혁적 사회주의 정권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개혁적 실천은 개혁주의(reformism)에 매몰될 수도 있고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행을 지향한 실천이 될 수도 있다. 개혁주의는 개혁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개혁을 절대시하며, 개혁에 배타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반면,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개혁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보고, 개혁을 체제 이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며, 개혁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허물며 체제 이행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접근법이다.
 
룰라 정부와 계급 이익의 실천을 둘러싼 CUT 내 갈등 과정에서 다수파가 제시한 집합적 프레임웍(collective framework)은 개혁주의의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 2010년 대선을 결정적 국면으로 파악하여 신자유주의 세력과 노동자당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대중정당 집권 전략을 재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모델들 사이의 각축은 사유재산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제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노동자당이 승리하더라도 당면 계급 이익을 넘어서는 근본 계급 이익을 위한 변혁적 실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룰라 정부의 정체성은 반(反)신자유주의로 규정되어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거부가 변혁적 실천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은 룰라 정부 1기뿐만 아니라 2기에도 확인된 바 있다.
 
룰라 정부의 방어와 2010년 대선 승리를 위해 CUT가 룰라 정부의 집합적 프레임웍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당면 계급 이익과 개혁적 실천에 배타적으로 헌신하고 체제 이행을 위한 변혁적 실천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CUT는 룰라 정부나 노동자당과는 다른 집합적 프레임웍을 견지하며 룰라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변혁적 실천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러한 실천의 출발점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CUT 내 좌파 소수파들이 근본 계급 이익을 대변하면서도 CUT에 남아 있는 주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2006년 총회에서 선출되어 2009년 총회에서 재선된 CUT 지도부가 이전 집행부들에 비해 룰라 정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CUT가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것은 CUT 내 동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4) 변혁 시나리오와 전략적 선택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CUT와 노동자당 안팎의 좌파들이 룰라 정부에 요구하는 변혁적 정책의 핵심은 은행과 기간산업의 국유화로서, 그 출발점은 까르도주 정부하에서 사유화된 기업들이다. 좌파들의 변혁 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이용하여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에 따라 임시 조치(medida provisória)로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 정책들을 집행한 다음 CUT와 MST 등 진보적 대중조직체들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함으로써 의회가 3개월 이내에 임시 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좌파들은 룰라 정부의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변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지만, 변혁 시나리오 자체의 타당성은 검증된 바 없다. 룰라 정부가 Plan B를 파기한 것은 단순히 룰라 정부 핵심 세력의 이념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라 룰라와 노동자당의 대국민 약속의 이행, 정치경제적 안정의 중요성 및 재정적‧경제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종합적 고려의 결과라는 점을 변혁 시나리오는 간과하고 있다. 여기에 변혁 시나리오의 반사실적 실험(counterfactual experiment)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첫째, 변혁 시나리오는 룰라 정부의 공약과 재정적ㆍ경제적 제약 조건들을 간과하고 있다. 룰라 정부의 정책적 선택지들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핵심적 요인들은 막대한 외채와 공공 부채의 규모였다.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는 복지국가의 재정 위기 문제가 룰라 정부가 출범할 당시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주어진 재정적ㆍ경제적 조건 속에서 룰라 정부가 재국유화 등 변혁 정책들을 집행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 대안은 재정 적자를 무릅쓰면서 변혁 정책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재정 적자 누적에 따른 공공 부채 증대, 브라질 통화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물가 폭등이 즉각적으로 수반되며 극심한 경제적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은 공공 부채의 증대를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복지 서비스 등 사회적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공공 부채의 증대는 억제할 수 있으나 대중적 요구를 외면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출은 모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공약화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가지 대안 모두 시민들의 반발과 불만을 야기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사회적 지출 삭감은 복지 서비스 수혜자들에게 상당한 박탈감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에 대국민 약속 위반에 대한 분노와 결합되어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적인 수준까지 비등할 수 있다.
 
둘째, 변혁 시나리오는 시민들의 반정부 저항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국내외 언론, 초국적 자본들, IMF와 세계은행 등 초국적 기구들이 적극적 공세를 펼치며 정치ㆍ경제적 불안정을 조장하면, 사회적 지출 삭감과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증폭시켜 브라질 경제에 2002년 6월 검은 목요일보다 훨씬 더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또한 국유화 등의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내외 자본가들이 자본 유출과 자본 파업을 통한 대응 수준을 넘어 자본계급의 집합적 동원도 추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임노동자 기금 제도의 법제화 추진에 반발한 1983년 스웨덴 자본계급의 시위 행위나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법제화와 차베스 정부의 변혁 정책에 맞선 2001~03년 베네수엘라 자본계급의 직장폐쇄와 총파업 행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세력을 동원하여 의회를 압박하는 행위는 의회주의를 거부하는 행위로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헌신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시민들은 정치적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하며, 정치적 안정은 의회주의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셋째, 변혁 시나리오는 변혁 주체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대한 헌신과 동원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룰라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은 룰라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룰라의 빈곤‧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 사회정책에 대한 지지의 성격이 강하다. 룰라 정부하에서 복지 정책의 수혜자들을 중심으로 계급 투표 성향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룰라의 지지 기반 확대가 당면 계급 이익 실천의 결과이며, 따라서 복지 서비스의 철회는 룰라에 대한 지지 철회를 수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룰라 정부가 사회정책의 희생 위에서 국유화 등 변혁 정책을 추진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기보다 룰라 정부로부터 이탈하여 반룰라 진영에 합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근본 계급 이익과 변혁 정책에 대한 지지 또한 보장된 것이 아니다. 근본 계급 이익은 당면 계급 이익과 함께 노동계급 이익의 한 축을 구성할 뿐이며, 양자는 갈등ㆍ모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도 물질적 생존을 위한 당면 계급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런 자연발생적 경향성은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와 룰라 정부의 소득재분배적 사회정책에 의해 재생산되어 왔고, 룰라 정부와 CUT의 집합적 프레임웍에 의해 상당 정도 내면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대다수는 당면 계급 이익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에서 당면 계급 이익의 희생 위에서 추진되는 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시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룰라 정부의 변혁 정책을 방어하고 체제 이행을 추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변혁 시나리오의 전제는 경험적 근거가 취약하다.
 
변혁 시나리오가 경험적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변혁적 계급 형성의 전제 위에서 ‘동원과 결과의 정치’(politics of mobilization and outcome)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하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크게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변혁적ㆍ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이 아니라 개혁적ㆍ사민주의적 계급 형성이었다. 개혁적 계급 존재 양식에서 변혁적 계급 존재 양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계급 형성의 구심점을 이루는 룰라 정부의 정책적 실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핵심은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통해 변혁의 제도적 기초를 이루는 동시에 변혁적 계급 형성을 통한 이행 주체의 형성을 진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개혁적 계급 형성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노동계급과 일반 시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동원을 통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력 향상을 우선시해야 한다. 비개혁주의적 개혁과 함께 ‘설득과 영향의 정치’(politics of persuasion and influence)를 통해 변혁적 계급 형성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설득의 정치와 함께 동원의 정치를 병행하고, 영향의 정치와 함께 결과의 정치를 병행하여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적 합리성이 요구된다.
 
끝없는 설득과 여론의 정치 필요 (레디앙, 2010년 02월 18일 (목)  조돈문 / 가톨릭대 교수)
[브라질에서 길을 묻다⑥] 5)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함의 
 
브라질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 과정은 한국 노동계급과 공통점이 많다. 양국 모두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주도하는 민주 노조 운동이, 군사독재 시기 국가와 자본의 비호 아래 어용 노조 조직체가 패권을 행사하던 상황에서, 투쟁을 통해 대안적 노동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가 형성되었고 조직 노동의 분열 속에서 민주 노조 운동이 주도하여 계급정당을 조직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를 추진했다. 군사독재 시기가 끝나고 민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 발발한 경제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위기 타개책으로 집행되었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정권 창출 과정의 정당성을 지닌 민주 정부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사회적 폐해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저항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별성 또한 작지 않다. 신자유주의 시기 이후 브라질에서는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했지만 한국에서는 보수 우파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했다. 브라질은 노동자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계급 정당 후보는 대선에서 2.3%를 득표하는 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 정당이 분당 과정을 거치며 더욱 왜소해졌다. 국가권력 장악을 둘러싼 각축전은 브라질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력과 반신자유주의 노동계급 정당이 경쟁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정치적 보수주의 경향을 지닌 강경 신자유주의 세력과 정치적 자유주의 경향을 지닌 온건 신자유주의 세력이 각축하고 있으며 노동계급 정당들은 주변화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과 브라질의 노동계급이 유사한 구조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의 성과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브라질 노동계급의 경험은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노동계급 정치 세력화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해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자동적으로 계급 투표로 구현되어 노동계급 정당 집권의 길을 터주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지만,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은 브라질의 경험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그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진전되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 증대되는 한편, 노동조합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내적 결속력이 약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추진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상대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쉬워졌고, 시민들이 시장 지배 질서를 내면화하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시민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은 진전될 수 없었고, 계급 형성의 구심점이 약화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시민들의 불만을 계급 투표로 전환시키기 어려웠다.
 
브라질에서도 계급 투표 현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좌파 정부 집권의 성과로써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 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이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 형성을 진전시킬 것이 요구된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친시장 세력인 정치적 보수주의 기득권 세력에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세력이 결합하면서 거대한 신자유주의 대동맹이 형성되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며 반신자유주의 세력을 주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저항하는 민주 노조 운동 세력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과 정치 세력화를 더욱 어렵게 했다. 민주노총과 노동계급 정당들은 시민들의 불만과 반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조직화하면서 반신자유주의와 진보적 대안을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설득의 논리를 통한 영향의 정치가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 예산제와 같은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통치 모델을 만들어 통치 능력을 시민들에게 각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으로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룰라 정부의 경험은 잘 보여 준다.
 
시민들이 노동계급 정당 혹은 좌파 정당을 선택할 때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 대안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 조건이 악화된 뒤다. 즉, 악화된 구조적 조건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만큼 집권 후 수립ㆍ집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의 범위도 상당 정도 제한되는 것이다. 대중적 요구와 재정 건전성 과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복지국가의 문제점들이 좌파 정권 출범 시에는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제약을 만나게 된다. 사유재산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치경제적 질서와 안정성의 기초를 이루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대적 원칙들이다.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동원의 정치를 통해 은행 및 기간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는 변혁 시나리오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룰라 정부의 경험이 확인해 준 것은 좌파 정권이 변혁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계급 형성이 진전되어야 하며, 계급 존재 양식을 개혁적ㆍ사민주의적 양식에서 변혁적ㆍ사회주의적 양식으로 전환하여 변혁적‧사회주의적 계급 형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단순한 집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ㆍ통치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집권 전략을 규정하고, 집권 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정책들을 집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변혁적 정부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개혁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비개혁주의적 개혁을 실천함으로써 제도 변화의 축적을 통해 체제 이행의 기초를 마련하는 한편 이행 주체의 형성도 진전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 정부가 국유화를 포함한 변혁적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좌파 정부의 변혁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법 제도 및 재정 자원의 제약과 국민 여론의 설득 문제는 국유화를 어렵게 하지만 사유화는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까르도주 정부와 룰라 정부가 잘 보여 주었다. 사유재산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고 의회정치는 의석의 게임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제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유화된 기업들을 재사유화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연대 세력들의 동원만으로 재사유화를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 여론을 향한 설득과 영향의 정치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브라질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관되게 저항했으나 일반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조건의 전반적 악화라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전략과 결과에 기초한 반면, 시민들의 지지는 앞선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체의 경험과 평가 때문은 아니었다. 따라서 시민들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부여한 정당성은 경제 안정화 정책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전이된 것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구체적 효과를 경험하고, 그것이 경제 위기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은 지지를 철회했다. (18쪽)
○ 브라질 노동운동은 군사독재 시기부터 전투성 게임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성장했으나, 민주화와 더불어 참여 공간이 확장되면서 부문 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전투성 게임 일변도의 전략에서 후퇴하여 제도성 게임을 병행하는 전략적 행위자로 변모했다. 까르도주 정권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반노동자성을 더욱 강화하고 노동조합을 배제함에 따라, 제도성 게임의 여지가 사라지게 되었으나, 전투성 게임 또한 강력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19쪽)
* 제도성 게임(institution game)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제도화된 장치들을 이용하는 전략을 의미하며, 전투성 게임(militancy game)은 제도화된 장치들이 없는 상황에서, 혹은 있더라도 제도화된 장치들을 이용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자본가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는 전략이다. 노동조합이 쟁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국가와 자본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온건한 것들인 경우에는 제도성 게임을 택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전투성 게임을 선택한다. 이런 전략의 차이는 노동조합의 내적 역학에도 영향을 준다.
 
1. 노동운동의 역사적 변천과 이중 구조의 형성
○ 브라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총파업으로 기록되는 1989년 3월의 총파업은 당시 시 정부들을 장악하고 있던 노동자당 출신의 시장들이 버스 운행의 정지를 명령하거나 파업 노동자들에 합류하는 등 노동자당의 성장에 의존한 바도 컸다. (59쪽)
○ 전투성 게임의 지속과 적극적 정치 참여에 대한 CUT의 의지가 확고해진 것은 1978~80년 파업을 통해서다. 룰라의 설명에 따르면 “압력이 없으면 자본가들은 우리와 협상하지 않을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기계가 멎자 그들은 항복했다.” “나는 1977년까지는 비정치적인 지도자였다. 파업을 통해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두 현상의 관련은 ……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새로운 임금정책을 펼쳐 노동계급의 전취물을 빼앗아 갈 수단이 있는 한, 10%의 임금 인상을 얻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60쪽)
 
2.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삶의 조건
○ 브라질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높은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제외하면 까르도주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은 거시 경제지표들에서 전반적인 실패로 나타났다.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율은 향상되었으나 투자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헤아우 고평가 환율 정책에 따른 수출의 어려움, 시장 개방에 따른 수입 증대, 고이자율에 따른 자금 압박으로 인해 국내 업체들은 투자에 소극적이었으며, 외국자본 유입은 크게 증가했으나 초국적 기업들은 국내 중소업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대신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기업의 부가가치는 증대되기 어려웠다. 이처럼 낮은 경제성장률과 무역 적자의 증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경제적 실패를 보여주고 있으며,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억제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달러에 긴박된 헤아우라는 새로운 통합 체제의 도입이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외의 주요 요인들로 꼽을 수 있는 통화 억제 정책, 높은 이자율, 헤어우 고평가 환율 정책 등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패키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95쪽)
 
3. 신자유주의 시기 노동운동의 대응 전략
○ 전투성 게임의 승패는 노동조합의 동원 역량에 의해 좌우되며, 이를 위해서는 일반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높은 호응성, 노동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노동조합의 체계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CUT는 노동조합의 지도부 중심 관료주의적 지배를 배격하고 내부 민주주의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공장위원회와 산업 안전 요원(CIPA)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생산 현장에서 노동법규 및 단체협약 조항들이 준수되는지를 감시하며, 생산과정의 변화와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인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동시에 미래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특히 공장위원회의 경우 노동조합과 역할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CUT 노동조합이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러한 여지를 사전에 방지했으며, ABC 지역에서 특히 CUT 노동조합이 강한 곳에서 공장위원회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는 점은 이러한 CUT 전략이 유효했음을 반영한다. (104-05쪽)
○ 당면 계급 이익과 근본 계급 이익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당면 계급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되도록 방치하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근본 계급 이익에 관한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11쪽)
○ SMABC와 아치꿀라상오가 주도한 CUT 주류 세력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새로운 전략으로 작업장에 국한된 쟁점을 넘어서서 사회문제들을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진보 없이 임금ㆍ고용 등 작업장에서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노동조합은 빈곤ㆍ보건ㆍ주택ㆍ교통ㆍ교육ㆍ소득분배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91년 CUT 4차 총회 결의문에서 좀 더 체계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포괄적인 시각은 현 CUT 위원장인 주아우 펠리시오(João Felício)가 조직노동자들에만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자유무역협정, 외채 문제, 토지개혁, 기타 고용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개입하는 노조 운동을 지지하며, 매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할 필요”를 강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CUT의 기본 입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관련된 새로운 전략의 입장은 파업뿐만 아니라 노사정 위원회 등 다양한 개입 수단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노동조합이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것을 요청받고 있으며, 이는 노동운동의 환경적 여건이 변했고, 그에 따라 전투성 일변도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요인은 경제적 여건과 경제 발전 모델의 변화다. 둘째,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 강화와 노동자당의 성장이다. 셋째 요인은 민주화다. 민주화 시기에는 국가ㆍ자본ㆍ노동 모두에게 일방적 지배와 무조건적 저항과 같은 과거의 행위 양식이 아닌 참여와 협의라는 새로운 행위 양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민주화 시기에 노동조합의 무조건적 저항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지지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113-115쪽)
O CUT는 총파업 투쟁이 어려워지자 총파업 대신 동원이 가능한 부분에 제한된 파업 투쟁과 여타 사회운동 단체들의 대중 시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후퇴했다. 1996년과 2001년에는 노동법 개악과 노동 유연화 기도에 맞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전국 수준의 대중 연대 투쟁을 전개했으며, 총파업이라는 표현 대신 ‘전국적 대투쟁의 날’로 표현했다. 이러한 연대 투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사회운동 세력을 총망라해 조직한 투쟁 전선 때문이었다. (129쪽)
○ 까르도주 정권하에서 노동조합의 강력한 전투성 게임을 제약한 주요 요인들로는 민주화와 노조의 사회적 책임성 증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결과 노동계급 내 이질성 증대로 인한 주체 역량 약화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정권의 정당성은 강화되었고,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노사정 각각에 기대되는 역할 자체도 변했다. … 노동조합과 노동자당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이제 이들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통치 역량을 보여 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단순한 반대 투쟁은 이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성에 반하는 것으로 상당한 타격을 가져올 수 있었다.
둘째, 까르도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 정부의 부패와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까르도주가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사유화 계획으로 선거 유세를 펼쳤다는 점에서 까르도주의 당선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야기되는 고용 문제는 전투성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 세계화로 인한 경쟁의 심화와 경제 위기 속에서 실업률이 상승함으로써 1990년대 들어 고용 문제는 노동자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고용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임금 상승과 같은 잉여가치의 배분 문제와는 달리 고용 문제는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율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파업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를 막을 수는 있어도 기업의 재정 위기에 따른 파산과 정리 해고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고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산업 정책과 경영권에 개입해야 하는데, 이는 1991~93년의 부문 협의회 활동이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넷째, 노동계급의 내적 이질성과 노동조합의 내적 분열은 노동조합의 동원 역량을 약화시켰다. 정규직 비중이 높은 공공 부문의 사유화와 제조업의 위축, 정규직 비중이 낮은 서비스 부문의 팽창, 전 부문에 걸친 비정규직화 현상은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낮추어 1989년 32.8%에 달했던 비농업 부문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년 뒤에는 21.0%로 크게 낮아졌다. … 노동계급 내 이질성으로 인해 노동조합들의 연대 투쟁이나 산업 단위의 투쟁을 조직하기가 어려워졌으며, 해고의 위험이 높아지고 대안적 취업 기회가 없는 여건에서 파업 투쟁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 의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135-139쪽)
 
제2부 자동차 산업과 노사 관계
4. 자동차 산업 구조의 재편과 이중 구조의 재생산
5. ABC 지역 자동차 산업의 위축과 산업 활성화 시도

 

○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 분석
첫째, 막대한 정부 부채와 그에 따른 긴축재정 정책은 사회정책을 통한 불평등 해소에 상당한 제약을 주었으나,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예산을 크게 증대함으로써 사회정책을 통한 불평등 개선 의지를 실천했다.
둘째, 불평등 해소 전략은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었고, 시민들로부터 빈곤 문제 해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으로부터 수혜를 받은 주요 집단은 비공식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무토지 농민과 빈민층이었다. 이처럼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노동계급 정체성을 유지하되 좀 더 구체적으로 노동계급 내 비특전적 부분을 사회정책의 전략적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이런 전통적 지지 기반과 사회정책 수혜집단의 불일치 현상은 노동자당 안팎의 다양한 갈등과 저항을 유발할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셋째, 룰라 정부는 공적 부문 퇴직자의 연금 수령액을 사적 부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연금 수령액 상한액 상한선을 낮추는 연금제도 개혁을 실시하여 노동자당 의원들과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서 거센 저항을 받았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막대한 규모의 정부 부채와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절대다수는 연금제도 개혁에 동의했으며 CUT도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을 수용했다. (238-39쪽)
 
6. 노동자당의 집권과 계급적 기초
○ 노동계급 정당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보호ㆍ신장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실천하며,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계급 정당의 주요 구성원인 동시에 지지 기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동계급 정당과 노동계급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우며, 이것이 바로 노동계급 정당의 딜레마라는 것이다(Przeworski, 1980; 1985; Esping-Andersen, 1990; 1991; Piven, 1991).
노동계급 정당 딜레마론에 따르면, 노동계급 정당이 창설되면 세 단계의 딜레마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 딜레마는 제도 정치에 참여할 것인가 여부, 둘째는 순수 계급정당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계급 연합을 통한 대중정당으로 전환할 것인지 여부, 셋째는 개혁 혹은 혁명 사이의 선택이다. 각 단계에서 노동계급 정당은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단계마다 직면하는 두 선택지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반면, 두 선택지들을 동시에 선택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딜레마인 것이다. (244쪽)
노동계급 정당이 결성되어 제일 처음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는 선거제도를 포함한 제도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제도에 참여하게 되면 자본계급 지배를 재생산하는 국가기구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법적으로 허용된 제도적 경로를 통해서만 활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 구성원들은 변혁 운동에 대한 적극적 참여 대신 대의 기구 구성을 위한 투표 행위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사회혁명의 목표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의 기구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없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없게 되는 반면, 선거에 참여하면 선거를 통해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선동하는 한편 노동자 대중의 의식과 조직력을 평가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 시대를 위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 정당은 선거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계급 정당이 선거제도에 참여하기로 선택하고 나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선거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당면 목표가 되면서 두 번째 딜레마를 맞게 된다. 노동계급이 전체 계급 구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므로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지지만으로는 선거전에서 승리할 수 없고,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 계급 구성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타 계급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노동계급 정당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할 수는 없으며, 타 계급의 이해관계도 대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다소 희생될 수 있다. 노동계급 정당이 선거제도에 참여하기로 선택한 이상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순수한 노동계급의 계급정당으로 남을 수 없고, 노동계급과 타 계급들을 포함한 계급 연합 형태의 대중정당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 연합 정당을 선택하고 나면, 노동계급 정당은 개혁과 혁명 사이에서 세 번째 딜레마를 맞는다. 노동계급은 사회혁명을 위해 계급정당을 구성했지만,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계급 연합에 참여한 여타 계급들의 이해관계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계급만을 위한 사회혁명을 선택할 수 없다. 설혹, 노동계급 정당이 사회혁명의 경로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계급 정당은 개혁의 경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 번째 단계의 딜레마에서 노동계급 정당이 순수 계급 정당은 노동계급과 계급 연합한 파트너 계급의 이해관계도 수렴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대중정당으로의 전환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계급 정당에 대해 지녀 왔던 충성심뿐만 아니라 계급 정체성과 계급의식까지도 약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노동계급 정당이 계급 간 이해관계의 대립을 강조하기보다 대중정당으로서 상이한 계급들 간의 공존 가능성과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사회적 통합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244-246쪽)
○ 노동자당의 성장은 집권 지자체들을 통해 참여예산제, 취학 지원금, 인민은행 등 소외 세력들의 참여와 빈곤ㆍ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한 독자적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행정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Samuels, 2004; Meneguello, 2002; Guidry, 2003; 오삼교, 2004).
노동자당은 1989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46%를 득표하면서 미래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노동계급을 넘어 지지 기반의 확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동자당의 전략적 선택으로 노동계급의 조직화에 비해 전문적 정책 생산 역량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당원 및 당 지도부 구성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노동자당 출신 주지사, 상하원 의원, 전국 지도부 자리들은 대학교수ㆍ의사ㆍ은행원 등 창당 시기 주역이었던 노동계급과는 다른 중간계급 구성원들로 채워졌고, 당내 중간 간부층에서도 중간계급이 과다 대표되었다. 노동자당의 기초를 이루는 노동조합 총연맹 CUT의 내부 구성도 금속 산업 생산직 노동자의 중심성이 약화되고, 은행원, 교사, 사회복지 및 기타 공공 부문 노동자 등 화이트칼라 출신들의 비중이 높아짐으로써 중간계급의 비중이 강화되는 데 한 몫을 했다.
1998년 대선 패배 직후 룰라와 노동자당 핵심은 집권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작업들을 수행하게 되었다. 비당원 지식인들도 포용하여 조직한 시민연구소를 중심으로 대선 전략 기획과 함께 정책 개발 기능을 수행하게 한 것도 이런 계기에서였다. 이때부터 노동자당 자체도 선거 승리를 위한 캠페인 기구로서 미국식 기업형 정당의 성격을 강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자당은 점차 사회주의적 변혁보다 정치적ㆍ경제적 안정을 강조하게 되었고, 노동계급 정당의 성격보다는 중간계급 친화적인 대중정당의 성격을 강화했다. (253-54쪽)
○ 등록 임금노동자가 비등록 임금노동자보다 룰라 지지율이 높은 것은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기업주와의 동일시 정도가 낮고,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으며, CUT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계급 투표가 여전히 유의미한 투표 행태로 남아 있는 것은 노동자당이 계급 연합 대중정당으로 전환되어 노동계급적 성격이 약화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타 정당들, 특히 세하의 사민당에 비해 노동계급적 성격이 더 강하며 저소득ㆍ소외 계층을 더 잘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275쪽)
 
7. 룰라 정부 집권 2년의 경제정책과 ‘성공(?)의 덫’
○ 룰라는 브라질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구조 개혁들을 논의하고자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 등 다양한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구성했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 위원들은 룰라가 직접 선임했고, 전체 위원의 50%는 재계, 15%는 노조, 그리고 나머지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저명인사들로 구성되었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7개 주제별 위원회로 출범한 다음 2개를 추가하여 사회보장, 세제 개혁, 노동 개혁, 중기 개혁, 청년 취업, 비공식 부문 등 전체 9개 주제별 위원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사회보장제도 개혁, 재정ㆍ세제 개혁, 공공 민간 파트너십 등의 주제들을 논의하여 다양한 제안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으며, 연금제도 개혁의 경우 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제안에 입각해 만들어진 정주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어 수정 통과되었다. 그러나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뿐 주요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제사회개발위원회는 재계가 과다 대표되고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와 사회 세력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별 위원들이 특정 단체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295쪽)
성프란시스꼬강 문제처럼 시민 단체 참여자들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길 돌리기 프로젝트를 강행하여,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경제사회개발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활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296쪽)
○ 브라질의 낙후된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산업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민영 공동 프로젝트(PPP)를 추진해 2004년 12월 22일 마침내 합작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기업은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최단 5년에서 최장 3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최소 2천만 헤아우를 투자해야 하며, 정부는 조세수입과 정부 소유 자산에서 60억 헤아우를 조성해,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사기업의 투자에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였다. 정부는 개발은행을 통한 재정 지원, 이자율 인하, 조세 혜택 등을 통해 PPP 프로젝트의 정부-민간 협력사업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인프라를 개선해 산업ㆍ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었다. (299쪽)
○ 이런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중심으로 한 개입주의 경제정책은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규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과 가장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기구들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거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 기구들의 역할이 기대 수준에 크게 못미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통화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정책이 사회적 합의 기구들의 영향력 밖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동계와 재계 등 시민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반대했음에도 고금리정책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300-301쪽)
○ 경제사회개발위원회가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은 대표성을 지닌 교섭 기구가 아니라는 구조적 한계와 경기회복 국면에서 자본 측의 양보를 얻어 내기 어렵다는 국면적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에 비해 경쟁력 포럼이 1990년대 초의 부문 협의회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경쟁력 포럼의 구조적 한계보다는 전적으로 경기회복이라는 국면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무엇보다도 국면적 제약을 극복하며 사회적 합의 기구들을 활성화시키지 못한 것은 룰라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며, 그 배경에는 통화주의와 2004년의 성과 및 그에 대한 해석의 오류가 있었다. 이와 같이 개입주의 경제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없었고, 그 결과 룰라 정부의 차별성은 부각되기 어려웠다. (305-06쪽)
 
8.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과 계급 정체성
○ 법정 최저임금은 퇴직연금, 실업수당 및 다양한 공적 부조금들의 지급자격과 수령액 산정의 기준들에 연계되어 있어, 최저임금 인상은 공공 지출을 증가시키고 재정 적자를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재정 적자 증대라는 연관 효과로 인해 최저임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함으로써 불평등을 완화하려던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룰라 정부 또한 이런 연관 효과로 인해 최저임금 두 배 인상 공약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퇴직연금과 각종 공적 부조금 제도로부터 최저임금 연계 산법을 해소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법제화하지는 못했다. (328-29쪽)
○ 룰라 정부가 추진한 연금제도 개혁의 핵심 내용은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퇴직자들의 연금제도를 통합해 공적 부문 퇴직자의 연금 혜택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간의 퇴직자 연금 혜택의 형평성을 높이는 한편 연금제도의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CUT는 전반적으로 기존의 연금제도를 선호하고 있어 연금제도 개정 내용에서 정부와 의견 대립을 보여주었다. 공적ㆍ사적 부문 연금 수령액의 통일된 상한을 CUT는 20배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당시 최저임금의 10배에 해당하는 2천4백 헤아우로 조정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조정 연금 수령액 상한은 공적 부문의 경우 상한의 하향 조정이지만 사적 부문의 경우 월 1,869헤아우에서 소폭이나마 상향 조정된 셈이다. 정부는 상한액 이상의 연금을 수령하려면 사적 부문의 보충 연금 기금을 이용하도록 하는데, CUT는 보충 연금 기금도 공적 연금 기금으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연금 소득도 과세 대상으로 포함하려는 데 비해 CUT는 연금 소득과세에 반대했고, 연금 수령 최저 연령도 정부가 기존의 근속연수 남 35년, 여 30년에 남 60세, 여 55세로 연령 기준을 추가하려는 데 비해, CUT는 연령 기준을 추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을 선호했으며 타협안으로서 과도기를 둘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연금납입금 부담률은 수혜자와 고용주가 1대 2의 비율을 유지했고, CUT의 양보와 수정 제안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분에서 정부는 CUT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당초 계획대로 법안을 제출했지만 CUT는 정부안을 수용했다.
연금제도 개혁안에 대해 노동자당의 하원 의원 71%, 상원 의원의 거의 100%가 반대 의견을 지니고 있었는데, 반대의 주된 이유는 공공 부문 연금 수령액 상한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한편, 2003년 5월 9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의 85%는 연금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78%는 의회에 제출된 연금제도 개혁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UT는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을 결국 수용했으나 개혁안의 최대 피해자인 공공 부문 노조들은 극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공공 부문 노동조합들은 2003년 7월 초 연금제도 개혁 백지화를 요구하며 한 달 이상 파업 투쟁을 전개했는데, 주로 연금 수령액 상한을 초과하는 공공 부문 고액 소득자들이 중심이었다. (330-32쪽)
○ 룰라 정부의 불평등 해소 전략은 사회 예산의 항목별 배분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공식 부문 종사자들을 주요 수혜 집단으로 하는 실업보험과 임금 보전 정책, 공공 부문 종사자 지원 정책, 직업훈련 중심의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예산 지출 증가 정도는 사회 예산 평균 증가율에 크게 못 미친다. 반면, 가족 지원금 제도 중심의 사회부조 정책과 농지개혁 중심의 농업정책 부문에 대한 예산 지출은 사회 예산 평균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팽창했다. 룰라 정부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식 부문보다는 비공식 부문,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계급 특전적 부분보다는 최저 소득층 비특전적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전개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은 노동계급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특전적인 공식 부문 조직노동자들보다는, 주로 비공식 부문 미조직노동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이 갖는 노동계급 정체성은 부정할 수 없으나, 룰라와 노동자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과 사회정책의 수혜 집단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전통적 지지 기반의 불만과 반발의 여지는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반발이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334-35쪽)
 
9. 룰라의 2006년 재선과 계급 투표
○ 계급 투표란 노동계급은 생산 현장에서의 착취 관계와 시장에서의 열등한 구매력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자원 재분배를 원하기 때문에 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반면, 자본계급과 중간계급은 생산 현장과 시장에서의 특전적 위치를 보호하고 시장 개입과 자원 재분배를 차단하기 위해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우파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계급 투표론은 투표 행위의 핵심적 동기를 경제적 동기로 간주한다.
좌파 정당이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구성원들의 계급 투표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동계급의 경제적 동기에 기초한 계급 투표가 지배적 투표 행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계급 위치에 따른 객관적 계급 이해관계를 인지하고, 계급 이익의 실현을 위해서는 계급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계급 관계의 모순적 성격을 파악하는 계급의식이 발달해야 한다. 이러한 “계급 위치 → 계급 이익 → 계급의식 → 계급 투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정도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높은지, 사회경제적 조건 등 외적 요건들이 얼마나 유리하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최근에는 미국 노동자들이 민주당 대신 공화당의 레이건과 부시에 투표하는 현상을 둘러싸고 ‘공화당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 공화당’ 논의로 전개되는 등 계급 투표 소멸론은 경험적 근거와 함께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계급 투표 소멸론이 제시하는 인과적 메커니즘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약화로 계급 투표 소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전후 경제성장에 기초한 포드주의적 계급 타협과 복지국가의 발달로 인해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된 노동자들이 중간계급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 광산, 선박 제조, 철강업 등 전통적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단일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동자 주거 공동체가 와해되고 그 결과 노동자 문화가 약화되어 노동자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쉽게 포섭되었다는 것,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과 도시의 팽창으로 노동자 주거지역이 확대되며 노동자들 간의 대면적 접촉 기회가 줄어들고 노동자들 사이에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이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이 집합적 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 주요한 요인들로 지적된다.
둘째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산업화 단계를 넘어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계급 간 문화적 차별성이 소멸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물질적 삶의 조건이 크게 향상되면서 소비 행위는 생존을 위한 소비에서 정체성 표현을 위한 소비로 바뀌고, 시민들이 다양한 집단들에 소속됨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과 생활양식이 더욱 복잡 다양하고 가변적이 되어, 소비 유형과 생활양식에서 개인 간 차별성이 존재해도 계급 간 차별성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주관성과 가치관에서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이 약화되고 계급 간의 차별성이 소멸되면서 계급 투표 행위 양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앞의 두 이론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 문화 속에서 새로운 투표 행위 유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론적 주장이다. 정치의 핵심은 더 이상 계급적 이해관계와 물질적 문제들이 아니라 환경, 평화, 여성 인권, 성 취향, 자율성 등 탈계급적ㆍ탈물질적 삶의 질 문제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계급 정치에서 삶의 질 중심의 문화정치로 이행하면서, 투표 동기도 물질적ㆍ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탈물질적, 정체성 동기로 바뀌게 되어 계급 투표 행위 대신 탈물질주의 투표 행위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에 따르면 노동계급이 좌파 정당 대신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예컨대, 노동자들은 환경문제에서 환경보호 대신 성장주의에 친화적이고, 자유주의-순응주의 문제에서는 성 소수자, 사회질서, 성 분업, 낙태 등과 관련하여 순응주의적이기 때문에 좌파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중간계급이 환경문제와 자유주의-순응주의 문제에서 진보성을 보이면서 좌파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후속 연구들은 계급 투표 성향이 약화되었으나 소멸되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다. 이런 경험적 연구들은 또한 계급 투표 성향이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문화정치의 발달과 더불어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이 강화되는 추세와 병존하고 있음도 보여 준다. 그러나 제3세계에 대한 연구는 별로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계급 투표와 탈물질주의 투표 성향 관련 연구 결과들이 제3세계에서도 경험적으로 타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연구들이 필요하다. (343-45쪽)
○ 노동자당의 대중정당 전략과 함께 노동자당의 노동계급 중심성이 약화되고, 지도부의 계급 구성에서도 노동계급의 비중이 감소해 중간계급의 비중이 증대하면서 노동자들의 당원 비율도 하락하고 노동자들의 헌신성도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노동자당이 노동계급 정당에서 대중정당의 모습을 강화해 가면서 지지 기반의 계급적 성격도 변화되어 2002년 대선과 2006년 대선에서 가장 높은 룰라 지지율을 보인 계급 범주는 등록 임금노동자 집단이 아니라 각각 전문직 프티부르주아와 비공식 부문 프티부르주아였다. (366쪽)
○ 사회적 약자들이 신자유주의 공세하에서 시장 지배 이데올로기가 풍미하는 가운데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으나, 룰라 정부하에서 계급 이해관계에 대해 자각하며 계급적 의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계급적 자각과 의식의 발달 현상은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과 박탈로부터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박탈 속에서 형성된 불만은 잠재 역량으로 존재하다가 노동계급과 사회적 배제 세력들에게 우호적인 정권하에서 잠재 역량이 현실화되며 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특전적 계급 범주들은 물질적으로 박탈되던 과정하에서보다 물질적 수혜 속에서 계급투표 성향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특전적 계급 범주들의 경우 룰라 정부 정책들이 비특전적 계급들을 지향하며 전개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룰라 정부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고, 룰라의 집권을 지지했던 구성원들도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룰라 정부에게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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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8 20:22 2010/08/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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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대응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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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에 대해 논란이 많이 있는데도 이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대응 또한 미흡하고...
나 또한 잘 아는 편은 아닌 만큼 관련 글(기사와 성명서 등)을 모았다.
G20 정상회의가 막판에 닥친 다음에야 허둥지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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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동원하는 G20 경호법, 테러방지법 축소판? (참세상, 홍석만 기자 2010.04.27 15:39)
경호안전법 국회 운영위 통과...‘반세계화 시위 차단 위해’ 제정
 
G20 경호를 위한 경호안전특별법안이 인권침해 우려 때문에 제정되지 못한 테러방지법의 축소판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 대표발의 한 ‘G20 정상회의 성공개최를 위한 경호안전과 테러방지 특별법안(경호안전특별법안)’이 27일 국회 운영위를 통과했다. 경호안전특별법은 G20을 맞아 세계 주요 정상들에 대한 효율적인 경호안전과 테러방지 및 폭력시위 차단을 위해 △대통령 경호처장이 단장이 되는 경호안전통제단 설치 △정상회의 관련 지역에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경호안전구역 지정 △ 국가주요시설에 대한 시설보안과 안전관리 대책 수립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특별법의 제정 목적이 G20 정상회의의 요인 보호를 넘어서서 반대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법의 제정 배경에 “반세계화 원정 시위대의 입국 등 조직적인 대규모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대규모 폭력시위 발생 시 국제사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음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했다. 반세계화 시위를 염두에 둔 강력대응책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있다.
 
더불어 집회 시위가 전면 금지되는 경호안전구역의 개념도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법안 5조 2항에는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장소와 정상들의 숙소, 관련된 도로 등 정상회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장소 및 그 장소의 주변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소의 주변’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임의로 경호안전구역 지정이 가능케 해 놓았다.
 
또한, 이 법안에서 국가정보원장이 사실상 테러방지와 관련해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안 9조 1항에 “국가정보원장은 통제단장과 협의를 거쳐 테러의 위험이 있는 국가중요시설과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보안 및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 국가정보원장이 주요시설에 대한 보안계획의 수립, 시행과 지도, 감독을 할 수 있게 했다. 특히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경찰청에서도 별도로 의견을 내고 이 조항을 문제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 조항이 다른 행정기관의 업무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한편, 이 법안은 필요시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어 더욱 논란이 예상된다. 법안 9조 4항에 “테러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국방부장관, 경찰청장 등은 통제단장과의 협의를 거쳐 테러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에 필요한 인력의 배치 및 장비를 운용할 수 있다”고 해 군대의 동원과 배치 장비 운용까지도 가능하게 했다. 현재, 통합방위법 상에서도 유사시 군대의 동원이 가능하지만, 평상시인 조건에서 시설보호를 위해 군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법안은 인권침해 문제로 처리되지 못한 테러방지법안과 매우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테러방지법의 주요내용이 △국정원장 소속 아래 대테러센터 설치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 수집·조사 △시설 보호 및 경비를 위한 군병력 지원 등이다. 이처럼 경호안전특별법안의 주요내용이 테러방지법안과 이와 거의 유사해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못하자 G20을 빌어 예행연습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경호안전특별법은 사실상 국가정보원에 테러방지 대책의 전권의 위임하고 있는 셈이고 군대 동원이 가능하게 만들어 테러방지법과 유사하다”며 “G20 회의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는데 이 목소리들을 ‘경호’라는 목적으로 억압하려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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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를 위한 ‘계엄령 발동’ 시도를 중단하라 (2010년 4월 28일 사회진보연대)
: 집회·시위 자유를 박탈하는 을 폐기하라!
 
4월 27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한나라당 의원 16명이 발의한 (특별법)을 한나라당 단독 처리했다. 특별법은 제안이유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G20 정상회의 반대 시위 차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별법은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통제단을 설치하고, 대통령 경호처장이 통제단장 임무를 맡게 한다. 그리고 통제단장이 경호안전을 빌미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특별법을 다른 법률보다 우선 적용한다, △통제단장은 행정기관의 장에게 경호안전업무의 지원 및 인력 동원을 요청할 수 있다, △통제단장이 G20 정상회의 개최장소, 정상들의 숙소, 관련된 도로와 그 주변을 경호안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통제단장이 경호안전구역에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 △경호안전구역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범죄예방,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을 할 수 있다.
 
즉 특별법에 따르면 경호처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서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는 물론이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마저 박탈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성공적인 G20 정상회의’와 ‘경호안전 업무 수행’이라는 두 마디로 이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 더군다나 청와대 경호처는 ‘경찰이 안전 활동을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군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사실상 계엄령 발동과 다를 바 없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도 집회·시위의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의 입맛에 따라 집회·시위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 운영하여 서울 도심 집회와 행진은 무조건 불허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집회·시위 자체를 불법화하려고 한다. 특별법은 한시적용법이지만 G20 정상회의가 선례가 된다면, 앞으로는 정부 주요 행사마다 특별법이 남발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집회·시위의 권리가 일상적으로도 더욱 더 제한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진행에 목을 매는 이유는 분명하다. 올 하반기 정국을 G20 정상회의로 끌고 가 자신의 공적을 치장하고 국정 후반기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6월 지방선거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G20 정상회의를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용인할 수 없다.
 
G20 정상회의는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지속하며, 각국의 노동자 민중에게 경제위기의 비용과 고통을 떠넘기는 기구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회의를 특별법까지 만들어서 온몸 바쳐 보호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규탄하는 투쟁에 나서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G20 정상회의의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빈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폭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가 G20 정상회의의, 가진 자들의 ‘경호처장’이 되려고 한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집회·시위 자유를 박탈하는 을 폐기하라!
G20 정상회의를 규탄하는 대중적 투쟁을 조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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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막는데 군대를 동원하겠다? G20경호안전특별법을 반대한다! (2010년 5월 19일 G20특별법을 반대하는 인권시민사회단체 일동)
 
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부와 시위대간의 유혈사태가 더 이상 남의 나라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 27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들끼리 단독 통과시킨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이 오늘(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이하 ‘G20특별법’)은 한정기간이지만 경호처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해하는 위헌적인 법안입니다. 경호안전구역으로 지정된 해당 구역에서 관할 경찰서장은 집회와 시위를 제한해야 하고 심지어 “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군은 계엄 상황이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도 경찰 업무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에서는 통합방위법에 따라 필요한 인력의 배치 및 장비를 운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통합방위법은 적이 침투하는 등 위기 상황 시에 군 병력을 배치하도록 할 수 있는 법안으로 G20회의 기간에 “군대를 동원해” 집회나 시위를 막겠다는 정부의 명확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2000년 아셈회의와 2005년 아펙회의를 개최한 바 있고 참가국 규모도 지금보다 컸습니다. 현행 집회시위법과 형사법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며 집회시위 상시전담 경찰병력만 2만 명이 넘습니다. 현행법을 무시한 특별법을 두고 네티즌들은 ‘호미로 막을 걸 대포로 막겠다?’ 라며 벌써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국격을 높이겠다고 G20회의를 개최하면서 국가가 준전시상황이 되어 국민을 계엄 상태로 관리하겠다고 하니 이처럼 국격이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매년 열렸던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노동자들의 행사는 테러에 준하는 대응과 군대의 동원에 의해 강제 진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문제투성이 법안을 만들고 본회의 통과가 된 지금까지 공청회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부입안이지만 정부입안일 경우 거쳐야하는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의 명으로 ‘청부입법’을 했습니다. 우리는 듣도보도못한 법안이 초고속으로 통과된 이 아찔한 순간에 당혹감과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 또한 이 법안이 문제가 많다고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군대를 동원해 집회시위,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G20특별법을 반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고합니다. 이 법이 발효되어 시행될 경우 일어나는 모든 불상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져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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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의 자유 제한하는 “G20특별법”은 헌법위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2010/05/20 12:18)
경호안전통제단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기본권 제한할 수 있어
현행 집시법으로도 충분히 폭력?테러 위협 집회 금지가능

 
어제(5/19) 국회 본회의에서 “G20정상회의경호안전특별법(이하 G20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G20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경호안전통제단장을 맡아 정상회의 회의장과 숙소, 이동로 등을 경호안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집회와 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G20특별법은 현행 집시법상으로도 충분히 폭력 집회와 시위를 규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경호안전통제단의 자의적인 판단과 권한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본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구체적이며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침해의 정도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이번 G20특별법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통제단장 및 관할 경찰서장의 판단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장소에서의 집회를 어떠한 예외도 없이 전면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헌법 위반이다.
 
현행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제5조), 모든 옥외집회를 48시간 전에 신고하게 하며(제6조), 옥외집회가 신고된 경우에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질서 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제13조), 집회의 주최자나 참가자가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관할경찰서장이 확성기 사용 중지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제14조)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집회나 시위가 폭력화되어 G20정상회의에 참가한 정상들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이 집시법 관련 조항만으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해석하여 집행하는 경찰은 집시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집회금지통고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5일간 특정지역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현행법상 경찰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명확한 기준도 없이 경호처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포괄적으로 모든 집회와 시위를 전면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명백히 과잉입법이다.
  
정상회의를 핑계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례도 드문 일이지만 이번 G20특별법의 제정 과정 또한 졸속이었다. 국회법은 제정법률안의 경우 공청회 또는 청문회 개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전문가와 이해관계인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반영할 뿐 아니라 졸속입법을 막으려는 취지다. 더구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높은 심각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법안을 상정하여 단 몇 일만에 상임위를 통과시키고 심도 있은 논의 절차도 없이 전체회의에서 곧바로 표결처리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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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캐나다!, G20에 맞선 저항 (참세상, 정은희(객원기자) 2010.06.26 07:50)
[참세상 국제통신] G8/G20에 맞선 다양한 저항운동 벌어져
 
캐나다 토론토 도심은 완전히 텅비었다. G8/G20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소위 '붉은 지대'는 3m 높이 6Km 길이의 강철장벽으로 차단됐다. 은행과 기업들은 안전을 위해 외부로 빠져나갔으며 문닫은 상점진열장은 나무판넬로 가려졌다. 붉은 지대에는 이미 2만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이들 경찰은 온타리오정부 내각이 지난 6월 2일 입법기관의 토론없이 규정한 새 법률에 의해 임의로 통행을 제지하고 신분을 통제, 폭력을 쓸 수 있다. 새로운 권한은 방어벽 안과 둘레에 놓인 도로와 인도에 적용된다. 이 법에 따라 방어지역 5미터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경찰에게 그의 이름과 방문 목적을 제시해야 한다. 경찰은 임의로 지역 통과를 거부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물리력를 사용할 수 있다. 신분확인이나 방문목적 확인을 거부하는 자는 5백 달러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새로운 법은 경찰에게 방어벽에 접근하는 자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또한 주었다. 이외에도 경찰은 시위자들을 향하여 음파 대포도 사용할 수 있다.
 
역사상 최대규모의 예산 지출과 반인권 논란을 빚고 있는 안전대책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전역에서 온 2천여명의 시위자들은 25일 G8/G20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군중은 헬멧, 복면 그리고 방패로 완전 무장한 경찰에 맞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전쟁, 부자들이 지불하게 하라”라고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빈곤에 반대하는 온타리오 연합(OCAP)'은 캐나다정부가 3일간 진행되는 두 정상회담 안전경비에 지출한 120억 달러는 집없는 이들 8만명이 1년동안 집을 임대할 수 있는 금액에 해당한다며 우리에게 빈곤과 비참을 강요하는 부와 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위자 중에는 노동조합원, 반G20 활동가들이 함께 했고 경찰에 의해 촘촘히 감시됐던 아나키스트 슬로건 뒤로 검은 옷고 마스크를 쓴 시위자들 또한 가세했다. 경찰은 시위자 들 중 일부를 연행하기도 했다. 이들 시위자들은 보안지역 근처에 수백명이 참여하는 텐트 도시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텐트 도시 프로젝트는 이전 피츠버그와 런던에서 열린 G20 시위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이미 토론토에서는 G8/G20에 반대하는 다양한 시위가 벌어져 왔다. 6월 23일부터 “토론토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는 ‘주제 저항의 날’ 행사를 갖고 경제, 환경, 이주, 젠더 정의 그리고 선주민 주권을 위한 다양한 행동을 벌였다.
 
한편, 24일 캐나다 선주민 권리를 위한 온타리오의 ‘붉은 힘 동맹’은 트랜스 캐나다 도로를 점거했다. 이들은 40억의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세계 자산의 85%를 부유한 10%가 소유하는 사회적 모순에 항의하기 위해 G20을 앞두고 이 같은 행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G20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25일 “G20에 반대하는 소풍 그리고 정치”라는 제목 아래 G20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을 플래카드와 연극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여성, 어린이 그리고 동성애자가 전쟁, 인종주의, 식민주의, 나이주의,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변화에 의해 고통받고 있고 G8/G20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만들며 이로부터 이익을 얻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자와 인권 그리고 공정한 세계를 위한 국제 연대 조직들도 캐나다에 모여 G8/G20에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수백명의 노동자, 활동가, 청소년, 대학생들은 지난 주말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에서 진행된 “공정한 세계를 위한 운동 건설, 2010 민중 회의”에 모여 6월 26일 퀸즈 공원에서 벌어질 대규모 시위를 포함하여 G20에 대항한 일련의 행사와 시위를 계획했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21일부터 5일간 개최된 세계노동조합회의는 노동자 권리에 기초한 세계 경제의 재구성과 개혁을 요구했다. 155개국 1억7천6백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천여명의 전세계 노동조합 대표들은 G20에 대해 예산삭감과 긴축재정이 또 다른 깊은 경기후퇴로 세계 경제를 밀어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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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G20 해체” 3만명 반대시위 (경향, 설원태 선임기자, 2010-06-27 18:45:26)
ㆍ토론토 회담장 밖 잇단 집회
ㆍ“대형은행 살리지 말고 보통사람들 일자리 보장”

 
“공허한 논의만 하는 G20 정상회의를 해체하라. 보통사람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라.” 2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장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시위자들이 G20 정상회의 반대시위를 펼쳤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동자연맹대표 시드 라이언은 이날 시위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자들은 근로자들이 아니라 돈 많은 경영자들이다. 우리는 정부자금이 공공 영역에서 빠져나가 사기업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G20 정상회의장 주변에 몰려든 3만명의 시위대들은 G20지도자들에게 “대형 금융기관의 생존에 신경쓰는 것을 그만두고 일반사람들의 문제에 신경을 써라”고 주장했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쿠미 나이두 국장은 “G20 국가들이 위기에 빠진 은행을 구하기 위해 수십억~수백억달러씩 지출하면서도 왜 실직노동자 지원, 환경개선, 또는 사회적 정의를 위한 자금을 지출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학생운동가 리아나 살바도르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5만달러의 빚을 졌다. 교육비가 이렇게 비싸다면 부자들만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캐나다 정부는 시위 억압을 위해 10억달러를 쓰지 말고 이 돈을 교육부문으로 돌려라”고 촉구했다.
 
시위자들은 “G20 정상회의가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던졌고, 나아가 일반인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를 요구했다. 캐나다 노동자대회의 제프 앳킨슨 대변인은 “G20국가들은 일자리 수준이 회복될 때까지 정부지출을 삭감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참가단체들은 온타리오 시민들을 비롯해 옥스팸, 그린피스, 캐나다학생연합, 캐나다평의회, 캐나다철강노동자, 동성애단체, 무정부주의자 단체 등 30여개에 달했다.
 
한편 평화스럽게 시작됐던 시위가 간헐적으로 과격해지자 빌 블레어 토론토 경찰국장은 엄격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순찰차를 파괴하거나 상점에 불을 질렀다. 26일 현재 체포된 시위자는 150여명에 달했다. 캐나다는 21~28일을 ‘치안유지 특별기간’으로 선포하고 수천명의 경찰을 동원하는 등 총액 10억달러를 치안유지 비용으로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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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캐나다의 일주일; 무자비한 경찰폭력의 기록 (참세상, Maya Rolbin-Ghanie 2010.06.28 10:14
[참세상 국제통신] “G20은 활동가들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했다”
 
[편집자 주] 2013년까지 국가재정 적자는 절반으로 줄어야 한다. 국가 채무는 2016년부터 삭감되어야 한다. 이것이 캐나다 정부가 120조 달러 이상을 들어 유치했던 G8/G20 정상회담의 경제부문 유일한 결론이다. 은행세도 금융거래세도 논의되지 못했으며 모든 경제조치는 차기 11월 한국회의로 미뤄졌다. 유럽 경제위기를 경유하며 정부들이 내놓았던 경제위기와 국가채무를 이유로 밀어부쳤던 공공예산 삭감, 노동유연화, 연금축소 등 긴축조치 등의 강도를 떠올리면 벌써 해결된 문제앞에서 뒷짐진 자세다.
 
그러나 캐나다에 모인 시위대들은 정부들이 아직 할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소리쳤다. 경제위기 조치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전쟁이며 따라서 경제위기의 책임자인 부자들이 지불하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는 활동가 가택 침입, 시위대 5백여명 체포 등 폭력으로 이들에게 답했다. 플라스틱 총탄이 사용됐고 공권력이 아닌 알 수없느 병력과 차량이 시위대 통제에 투입됐다는 언론의 보도도 전해졌다. 당시 상황을 '토론토 미디어 공동행동(Toronto Media Co-op)'에 실은 마야 롤빈-가니(Maya Rolbin-Ghanie)의 기고문을 통해 살펴본다.
 
월요일에서 수요일 사이, 행진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무리지어 잠복한 경찰들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몇몇은 검은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고, 마리화나 나뭇잎 디자인의 스카프와 체게바라 패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들에게 경찰인지 물었을 때 경찰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양일간 몇 사람이 체포됐고 ‘시위의 날’ 후 사람들은 흩어져서 현장을 떠났다.
 
목요일, 시민들은 6월 2일 비밀스럽게 처리된 새로운 공무집행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누구든 G20 방어벽 5미터 내로 들어가는 사람에 대해 경찰이 임의로 조사하고 신분을 확인하며 심지어는 체포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공무집행법이었다.
 
금요일 오전 4시 45분, 경찰은 활동가들이 있었던 두 채의 집을 급습했다. 체포영장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침대에 있던 사람들을 걷어차 이들을 체포했다. 그 중 한 채의 집주인은 경찰이 얼굴에 겨눈 총에 의해 잠에서 깼으며 경찰은 그에게 수갑을 채워 체포했다. 경찰은 이후 그를 석방하고 잘못 체포했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아침, 경찰은 롱타임 공동체 조직가 사리타 아후자(Sarita Ahooja), 시에드 후산(Syed Hussan)을 포함하여 몬트리올에서 온 15명에서 20명 사이의 활동가를 체포했다.
 
토론토 공동체 활성화 네트워크 대변인은 활동가에 대한 경찰의 일제 검거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언론간담회로 가는 길에 체포됐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선제공격(예비검속)이다. 체포된 많은 이들은 시위 조직가였으며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때였다. 그리고 체포는 완전히 적법한 절차 없이 진행됐다. 몇몇에 대한 보석금은 1천달러에서 5천달러 사이로 책정됐다. 그러나 일부는 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들 사이의 ‘사악한 음모’다.
 
토요일, 많은 미디어언론이 전한 것과는 반대로 거리에 있던 25000명의 시위대 사이에서 폭력에 관한 어떠한 신호도 없었다. 단지 몇몇 은행과 기업의 유리창만이 재산상 손실의 상징적 표시로 부셔졌다. 반대로 경찰의 폭력은 극단적이었고 잔인했다. 경찰은 평화적인 시위대와 기자를 공격했고 체포했다.
 
몇 대의 경찰차가 불에 탔다. 그것은 교차로의 한가운데에 사전에 버려져 있었고 경찰에 의해 모든 장비가 제거돼 있었다. 경찰차는 그 이전에 이미 손상된 것으로 발견되었다. 이는 경찰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위대들이 차에 불지르도록 유도하는 미끼로 그 차를 그곳에 방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한 언론인이 경찰에 의해 구타당했다. 다른 지역의 활동가는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내쳐졌고 이후 몇 개의 ‘가혹한’ 이유로 체포됐다. 가디언의 언론인 로젠펠트(Jesse Rosenfeld)는 눈을 가격 당했으며, 폭력적으로 체포됐다. 이날 적어도 4명 이상의 독립언론인들이 체포됐다. CTV 피디와 2명의 국영포스트 기자도 체포됐다. 이날, 경찰들은 제지선 밖으로 나온 평화로운 시위자들을 한명 한명씩 경찰 제지선 뒤로 끌고 땅으로 밀며 수갑을 채워 폭력적으로 체포했다.
 
체포의 ‘파도’가 지나간 후, 많은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체포됐다. 위와 같은 폭력적인 체포 후, 한 여대생이 소위 ‘자유발언 지대(Free Speech Zone)’라고 불렸던 퀸즈 공원에서 말에 탄 경찰에 의해 짓밟혔다. 그녀는 당시 공원에서 다른 평화로운 시위대 사이에 있었지만 빨리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에 따르면 그녀는 심하게 부상당했다. 경찰은 그녀를 체포했다.
 
퀸즈 공원 지대는 전국에서 온 말과 차와 오토바이를 탄 그리고 잠복했거나 위의 헬리콥터에 탄 2만명의 경찰이 있었다. 이 지역은 많은 이들에 의해 군사 지역 또는 전쟁터라고 묘사됐다. 그 외에 경찰의 폭력과 위협에 관한 수많은 보고가 있다. 비평가들은 ‘공포 문화’야말로 경찰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밤 구금 센터로 끌려갔던 약 130명의 사람들 중 일부는 여전히 그곳에 있던 수백의 친구와 동료 활동가들을 위한 연대를 보이고자 했지만 경찰폭력에 의해 해산됐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이 즉시 떠나지 않는다면 체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 100명은 즉시 떠났으나 30여명은 주위에 서서 약 2분간 토론을 했다. 그들은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떠나지 못했다. 경찰이 그들을 둘러싸 체포했기 때문이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2~3명의 법적 조사자도 포함됐다.
 
일요일 오전 10시경, 사람들이 연대를 위해 임시 구금센터로 갔다. 경찰들은 음악을 연주하는 등 평화롭게 시위하던 사람들을 체포했고, 체류가스와 고무총탄으로 해산시켰으며, 적어도 20명을 체포했다. 또한 많은 시위자들은 경찰폭력에 의해 다치고 병원에 실려 갔다.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법적인 이유나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체포된 것이 아니다. 미디어 기업은 주로 경찰 폭력 또는 시위대 스스로 저항하는 이유 대신 ‘시위자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G20에 대항한 시위 시작 이후 현재까지 체포된 인원은 520명을 넘어섰다. 나는 이 같은 일을 본 적이 없으며, 지난 며칠 간 지역사회 활동가들에 대한 캐나다에서 보여진 정치적 위협과 수사 방식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활동가들은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부가 행사와 시위 조직에 관계된 모든 이들과 언론소통을 위해 활동했던 이들을 타겟으로 삼아 어떤 형태로든 그들을 가두고, 그들의 집을 일제 검거하는 것에 대한 이유로 G20 정상회담에 대한 항의 외엔 다른 이유는 상상할 수 없다.
 
[출처]토론토 미디어 공동행동(Toronto Media Co-op) (2010.6.27)
[원문]http://toronto.mediacoop.ca/story/erosion-rights-quick-descent/3886
[번역]정은희(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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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 목매는 나라 (한겨레, 홍석재 기자, 2010-07-06 오후 06:05:35)
노점 단속, 알몸 투시기… 정부 ‘G20 올인’에 멍드는 인권·민생
‘국격 상승’이라는 구실로 연말에나 봄직한 전시행정 남발
 
 
최근 서울에선 그간 방치돼다시피 해온 수백개의 공중전화 부스가 교체되고 있다. 연말에나 볼 수 있었던 보도블럭 교체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광화문 복원과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개통 사업은 예정보다 몇달씩 일정이 당겨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일들을 추진하며 “성공적인 주요 20개국(G20·11월11~12일) 정상회의를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행정조처들은 G20을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G20 준비에 ‘올인’하면서 인권·민생이 신음하고 전시행정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선 노점상들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가 G20을 위해 88개반 400여명으로 ‘도로특별정비반’을 구성해 ‘길거리 상점 청소’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강제 추방 걱정에 몸을 떨고 있다. ‘G20 정상회의 치안 확립’을 명목으로 최근 경찰청은 외국인 범죄 일제 단속에 나섰고, 법무부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외국 정상들이 다녀가는 ‘1박2일’ 행사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조처들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인천·김포 등 4개 공항에는 항공 보안 검색을 위해 ‘전신 스캐너’(알몸 투시기)가 설치됐다. 국가인권위원회마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이를 강행했다. ‘G20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한 경호안전과 테러방지 특별법안’은 “군대까지 동원해 집회와 시위를 통제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발 속에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했다. 법무부는 다음달 15일부터 국내 입국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지문과 얼굴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일부 국책 사업들이 G20에 맞춰 진행되면서 ‘무리한 일정 앞당기기’라는 눈총을 사고 있다. 한국도시철도공사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대구~부산)을 예정보다 한 달 앞당겨 오는 11월 개통하기로 했다. 국토해양부는 이를 두고 “G20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 지원과 한국 고속철도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2월 완공 예정이던 서울 광화문 복원 사업도 G20에 맞춰 공기를 5개월이나 앞당겼다. 문화재계 안팎에선 “무리한 일정 변경으로 부실공사와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일부터 담배꽁초 무단투기 등 기초질서 사범을 즉결처분하겠다며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은 지도장 등으로 단속해 오던 것인데, 경찰은 “G20 성공 개최로 국격을 높이겠다”며 공격적인 법집행을 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과도한 ‘전시행정’이 시민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경찰과 별도로 시민들의 ‘껌뱉기’를 단속해 3만~5만원가량의 범칙금을 물리겠다고 나섰다. 지난달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경기도교육청에 지시해 관내 초·중·고에 G20 정상회의 관련 표어, 포스터, 백일장 등 홍보 실적을 보고하도록 한 일도 있었다.
 
이밖에도 회담장 주변 전봇대 2165개 뽑기, 서울시의 2만개소 차량 진출입로 일제정비, 찜질방 일제 위생 단속, 경찰서장 평가에 교통사고 사망률 반영 등의 행정조처들도 모두 ‘G20 성공 개최’를 이유로 진행되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알몸 투시기, 기초질서 단속 등은 실효성에 의문이 들고, 인권침해 요소까지 있는 ‘체면치레’식 행정”이라며 “‘1박2일’의 G20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다투듯 앞장서는 모습이 촌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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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공공서비스 축소" (레디앙, 2010년 07월 09일 (금) 17:19:37 이은영 기자)
[G20 대응 워크숍] 경제논리에 밟힌 민주주의…"환경의제 강조해야"
 
오는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노동·시민사회단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금융·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조” 속에 탄생한 G20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지하고, 개도국 빈국에 대한 비용 전가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이번 G20 서울 개최를 “세계 경제 발전사의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기조 아래, ‘G20경호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주노동자와 노점상을 단속하는 가하면, 민주주의와 인권·노동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테러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며 공항에 알몸 투시기를 배치하는 가하면, 테러 신고 보장금 지급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그간 한국정부는 노동기본권을 탄압하고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는 등 금융규제완화를 시행하며 G20에서 합의된 ‘국제노동기존 준수’와 ‘금융규제 강화’라는 기본 방향마저 무시했다. 때문에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은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구조적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G20을 빌미로 자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노동권 탄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7~8일 양일간 사무금융연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공동주최로 ‘금융규제강화 및 투기자본과세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9일에는 민주노총,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등 33개 노동·시민사회로 구성된 ‘(가칭) G20 공동대응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가 민주노총에서 ‘G20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공동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단위들은 G20 정상회의가 세계 금융·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조 속에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기구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저개발국가와 아프리카 국가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대표성과 정당성을 잃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김어진 다함께 G20 대응팀장은 “G20 참가국들을 보면 공정하게 선발된 것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G8에 포함돼 있는 러시아를 포함한 BRICS 즉 브라질, 인도, 중국이 포함되는 것은 참가국 숫자를 늘린다는 면에서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 외 국가들은 지정학적 이해들이 깊숙이 관여돼 있다”는 지적했다. 중동의 경우 미국의 우방국인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만이 포함돼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만 포함돼 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한 나라이고, 동유럽의 경우 EU에 속한 나라 외에는 모두 제외돼 있다. 그는 “미국이 말레이시아의 G20 참여를 거부한 주된 이유는 말레이시아가 중국의 선례를 따라 자본통제 정책을 단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G20이 금융위기 상에서의 국제적 공동대응을 강조하지만 결론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상업화도 운영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식의 결과를 도출하며 재정긴축과 사유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논의한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G20 재무차관회의에서 ‘IMF는 정부부채 비율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재정 수지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고령화로 인해 지출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연금 및 의료분야 등 의무 지출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결국 ‘정부 빚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공공지출을 줄이라는 듯”이라고 말했다. 그는 “G20이 내놓는 빈곤 해결책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자유화”라며 “G20의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시장을 육성해서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역시 “G20은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기후변화, 빈곤 감축, 양질의 고용과 같은 의제를 제시하면서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질서를 개편하고 새로운 세계 거버넌스(governance)로 자리 잡으려 하지만 본질은 미국과 자본의 패권을 관철시키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지, 보완하지 위한 것”이라며 “노동자, 민중, 개도국/빈국에 대한 착취와 비용 전가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불평등을 확대시킬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정부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노점상, 이주노동자, 노숙자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노동자민중에 대한 폭력적 탄압과 생존권 박탈이 G20의 성공적 개최를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G20 경호안전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대통령 경호처장에게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는 물론, 신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마저 박탈할 수 있는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군의 동원까지도 가능하게 했다”며 “G20 정상회의의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본질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에 정 팀장은 “G20이 논의하는 금융규제는 금융자본의 권력을 조정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안적 요구로서 금융통제를 요구하는 한편, 노동자 서민의 탄압을 폭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G20 서울 정상회의 주요 의제가 금융 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가 거의 누락되다시피 한 건 용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정부를 비롯해 G20 국가는 경기회복을 위해 민간(기업)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며 “따라서 공공부문에서 정부주도의 해결책이 절실한 시점에 기업의 역할이 강조됨으로 인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공공 의제들은 크게 위축될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이슈’에서 ‘개발 이슈’라는 명목으로 ‘개도국 지원 의제가 제시되어 있지만, 개도국의 빈곤해소 및 경제발전을 통해 각국 간 개별격차를 완화’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 개발 중심의 지원을 전제하고 있어, 여전히 선진국들은 빈곤 격차 해소나 원조 신흥시장의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현재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국내외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환경의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국내 시민?민중단체들은 이를 역으로 활용하여 의제에 있어 환경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열린 'G20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공동워크숍에는 민주노총,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등에서 노동기본권, 금융통제 등 G20 의제에 대해 발제했으며, 김어진 '다함께' G20 대응 팀장,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부위원장 등이 토론자로 나서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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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레디앙, 2010년 07월 14일 (수) 17:47:41 한재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에너지정치 칼럼] 신자유주의 돌격대 자임하는 한국의 '탈추격 체제'
 
올해 11월 11일, G20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명박 정부는 1조 원의 경제적 가치가 유발되고 지구 50억 인구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세종시 패배와 천안함 외교의 혼란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G20 회의 개최를 통해서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돌파하고 후반기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는 분석에는 많은 이들이 동감을 하는 듯 하다.
 
그 때문인지 여러 무리수가 빚어지고 있다. 외국 손님을 위한 꽃단장을 위해서 공기를 앞당겨 부실 논란을 낳고 있는 광화문 복원 사업에서부터, 한시법이라고 하더라도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한 G20 경호특별법까지 다양하다. 경찰까지 나서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서울은 물론이고 무슨 관련인지 모를 경기도에서까지 노점 단속과 철거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G20가 뭐길래. 일각에서는 부자 나라들의 모임에 낄 만큼 우리나라가 성장했다는 징표로서 감격해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개 시청 앞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참여연대 앞으로 가스통 달고 돌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한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국력이 커진 만큼 국제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닥 나쁘지는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소박한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G20가 왜 구성되었고, 또 무엇을 논의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1970년대 초 직면한 경제위기를 다루기 위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몇몇 부자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이 모여서 세계경제의 운영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과두제적 장치였던 G7이 G20의 시작이었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확대된 것이다. 또한 2008년 미국발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각국의 정상이 모이는 G20 정상회의로 격상된 것이다.
 
경제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 구성되고 소집된 만큼,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이고 누가 경제개혁을 위한 방향타를 잡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피’ 튀기는 회의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부자나라들의 공조를 이끌어낸다는 선전이나 약속과 다르게,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에 대해서는 말잔치만 풍성하며 그것도 차츰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끌어 현재의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는 IMF가 금융개혁의 선도자로 복권되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의 모순된 상황 속에서, 긴축 재정과 경기 부양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G20 회의는 신자유의적 금융세계화를 보완하기 위한 회의일 뿐 근본적인 위기 극복과는 무관하다며, 무용론 뿐만 아니라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삶과 환경을 피폐화시키고 있는 금융과 무역의 세계화를 끝내려 하기 보다는 보완하여 지속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두 눈 크게 두고 지켜 볼 일이다. 아니, 소리 높여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외칠 일이다.
 
한편 2009년 후반, 일시적인 세계 경제위기가 지정 국면에 들어선 탓으로, 미국 피치버그에서 열린 3차 G20 회의에서는 기존의 의제 이외에 일자리, 기후변화 등의 의제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경제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 상태에서 ‘위기-이후’의 체제에 대한 논의가 성급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위기-이후’ 체제에서 핵심적으로 가치가 되거나 다루어야 할 사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G20 서울회의에서는 이런 의제는 거의 배제되어 있는 듯 하다. 유일하게 눈여겨 볼만한 것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논의일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연료가격의 상승을 불러와서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 조치 없이는 무조건 반길 일만은 아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온실가스 감축 문제라든지, 좋은 일자리의 보장, 녹색경제의 전환 등의 의제 등은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20 정상회의 자체가 이런 의제들에 대해서 생색만 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었다는 점뿐 만 아니라, 의장을 맡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천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노동기본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때문에 노동조합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다.
 
뿐인가 기후변화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의제를 부각시켰다가는 4대강 사업으로 전국의 강과 민심을 파헤쳐 놓은 실상과 저항이 함께 부각될 우려가 있으니, 이것도 ‘지뢰밭’이다. 아예 이런 이슈를 테이블 위에 올리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렇다고 ‘녹색성장’을 국내용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명박이 지금 처한 묘한 상황 때문이지, 그가 천명하고 있는 ‘녹색성장’은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6월 OECD 각료급 이사회에서 한국이 제기한 ‘녹색성장 선언문’이 채택한 된 것이나, 유엔환경계획(UNEP)가 한국을 녹색경제의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하는 것이 단순히 국내적 효과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녹색경제, 녹색일자리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에게서 GDP의 2%를 녹색성장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서 고무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으며, 이들은 다른 국가의 정부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서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를 친환경 자동차,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로 돌파하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녹색경제 구상과 공명할 뿐 아니라, 유럽의 국가와 국제적인 환경단체들의 오래된 주장과 실천과도 적어도 표면상으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의 이 움직임을 국제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연구 문헌에 ‘탈추격 체제’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다. 선진국의 앞선 기술을 쫓아가기 바빴던 시절이 지나, 반도체, IT, BT의 몇몇 분야에서는 한국이 ‘프론티어’에 서 있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국가적 자부심에 어깨를 으쓱할 일만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따라야 할 모범이 없기 때문에, 그 기술의 개발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위험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서 탐색하여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것이 국내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이에 합당하는 규제 틀을 요구하지만, 민주주의, 인권, 환경 등의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는 허술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앞선 IT 기술을 가진 우리 사회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보보안과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 등의 규범과 정책을 가지고 있고,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일부 앞선 줄기세포연구에서는 전세계적 차원의 윤리적 금기가 쉽게 무력화되었다. 한국의 탈추격 체제는 자칫 전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의적 성장주의 담론과 규범의 돌격대의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녹색성장도 그렇다. 짐짓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는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신선해보일 수 있지만, 학문적,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는 명백히 퇴행이다. 적어도 1987년의 브룬틀란트 보고서가 천명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 사회, 환경의 세 가지 축의 조화였다. 그러나 2005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유엔 아태지역 경제사회위원회에서 한국이 처음 제시했다는 ‘녹색성장’은 사회적 형평성 혹은 사회적 정의라는 한 가지 축을 사실상 제거해버린 개념이다. 아시아 지역은 빈곤하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는 것이다.
 
안에서 세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센다지만, 우리나라만 창피당하고 끝나는 일이라면 모를까. 국제적인 환경논의의 담론까지도 퇴행시키는 일이 한국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논의 속에서, G20 정상회의가 가진 국내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효과까지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동감은 이제 비교적 넓게 수용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덧붙여 토건주의와 사회적 형평성을 외면하는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이 가진 지구적 차원의 효과에도 관심을 둘 일이다. 그렇다면 4대강은 더 이상 국내 이슈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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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서울회의, 한판 투쟁이 기대된다 (참세상, 배성인(한신대) 2010.07.15 10:55)
[진보논평] G20정상회의는 ‘자본가들만의 돈잔치’에 불과하다
 
미국 주도의 기준없는 구성, G20
G20정상회의는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이후 지난 1999년 독일과 캐나다 재무장관들의 주도로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후 매년 연례적으로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만 개최해오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 이후 미 워싱턴에서 각국 정상들까지 소집하면서 ‘정상회의’로 격상되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전에는 세계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는 IMF와 World Bank가 주도하거나 G7 혹은 G8 등 주요 선진국으로만 구성된 협의체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주요 선진국만이 중심이 되어 세계경제 현안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몇몇 주요 선진국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게 되자 BRICs, 남한, 아르헨티나, 남아공 등 신흥시장국가들을 대거 포함시켜 경제위기의 책임 소재와 무관하게 공동으로 해법을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최근 G20이 급부상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디 절실했기 때문이다. GDP 기준으로 G20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8%에 달하며, 인구기준으로는 거의 2/3(65%)에 이른다. G20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세계전체 외환보유액의 81%에 달한다.
 
하지만 G20 회원국 자격은 엄격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고 자의적으로 선발하고 급조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은 G20 틀을 주도했던 미국의 입김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G20국가와 비 G20국가를 구분하는데 미국이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발생 과정에서 중국, 일본, 남한 등 동아시아 흑자국가들이 미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특히 중국, 인도 등의 견고한 성장세가 전 세계 동시 불황 우려를 차단했으며, 또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O2 배출량 감소논의에 있어서도 거대신흥국가들이 핵심 주역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위기 등 전 지구적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G20은 국제협약에 근거한 공식적 국제기구가 아닌 비공식적 포럼에 불과하다. 이것은 G20에서 합의된 내용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
지금까지 G20정상회의는 2008년 11월 14-15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1차 정상회의, 2009년 4월 2일 런던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의, 2009년 9월 24-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개최된 제3차 정상회의, 그리고 제4차 정상회의가 2010년 6월 26-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되었다.
 
워싱턴에서부터 런던, 피츠버그 그리고 토론토에 이르는 G20정상회의에서 금융규제강화에 대한 국제적 협조 내지 공조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논의를 보면 당초 목표로 했던 규제의 국제적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국제적 합의와 국내금융 제도개혁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토 G20정상회의는 지난해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G20이 세계경제협력의 최상위 포럼(premier forum)으로 지정된 이후 처음 개최된 정상회의이다. 그간 G20을 통한 국제공조의 결과로 세계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나 높은 실업률, 취약한 금융시장, 재정악화 등 위험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에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경제회복과 지속가능하고 균형잡힌 발전을 위한 정책 공조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은행세 부과, 재정 건전성 확보, 중국위안화 절상,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국제금융기구 지배구조 개혁 등이 주요 의제였으며, 최대 이슈는 재정 건전성, 은행세 부과, 균형 성장 등이었다.
 
정상회의 결과는 재정적자 수준을 2013년까지 절반 감축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채무비율을 2016년까지 감소 또는 안정화하기로 합의한 것 외에는 커다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합의된 긴축 기조도 ‘성장 친화적인 적자 감축’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포장되어 향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것은 세계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경기부양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여나가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슈였던 ‘은행세’에 대해서도 ‘국가별로 알아서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토론토 G20정상회의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된 회의였는데, 그것은 이번 회의가 선진 8개국(G8) 회의와 맞물려 열린 중간 점검 성격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재정 건전성은 그리스에서 불붙은 남유럽 재정위기가 세계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되면서 최근 급부상한 의제로서 의미가 있다. 더욱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 공조의 결과로, 대부분 국가의 재정 형편이 나빠진 것도 지속 가능한 재정에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G20 서울회의, 위기 봉합과 파국의 갈림길 될 것
결국 실제 G20의 핵심의제들은 11월 서울회의를 겨냥해 합의도출 시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어느 하나만 합의에 이르러도 성과로 불릴만한 의제들이 서울 정상회의 테이블에 오르는 만큼 ‘서울정상회의’는 향후 진전에 따라서 21세기 새로운 경제·금융 질서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금융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방식이 일대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획기적인 전환으로 불릴만한 국제적인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그들의 처해 있는 상황과 이해가 서로 다르다 보니 위기극복 방안을 합의하는 수준이 낮은 단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진행되는 위기 극복 방안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 중단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아니라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토론토 회의에서도 재정정책과 관련해 국가 별, 지역 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 스페인 등 남부유럽의 재정문제가 유럽 전체의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몸소 느꼈기 때문에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지속적 경기부양을 강력히 주장했다. 다만 서울회의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위기가 더욱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는 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문제는 실제 G20에서 논의되고 있는 균형성장과 재정 건전성의 허구성에 놓여 있다.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속에서 각 국 정부는 초기에 재정을 확충하여 은행 빚을 갚고 금융회전과 속도를 높이는데 사용하면서 대응하였다. 그런데 이제 지출이 너무 늘어나니 각 자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G20은 누구의 허리띠를 졸라맬 것인가?
 
바로 노동자 민중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더 내게 하고 사회복지부문의 지출은 줄인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비 지출 요구와 유럽의 긴축 재정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이번 토론토 회의에서 그러한 내용이 확인되었으며, 서울회의에서는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명료한 의지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G20 정상회의, ‘그들만의 돈 잔치’
G20이 반민중적이라는 것은 IMF, World Bank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 집행기구들을 근본적인 개혁과 평가없이 복권 시키고 있고, 금융규제 방안도 핵심적인 내용이 누락되어 있으며,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립서비스에 불과하며, 기후변화나 환경문제 대해서도 관심 밖의 의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G20정상회의를 ‘그들만의 돈잔치’로 만든 것이다. 지금 자본가계급은 나날이 가중되고 있는 체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착취와 수탈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 도처에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거나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21세기 현재의 세계정세가 전쟁과 혁명의 시대로 다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권은 다가오는 11월의 서울정상회의가 1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유발하고 지구 50억 인구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것이 진실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다.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동안 수없이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가 토론토 회의를 위해 1조원을 썼다고 하니 이명박 정권도 최소한 그 정도는 소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회의를 치르는데 소요되는 1조원의 비용을 1조원의 경제적 가치로 둔갑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서울정상회의가 흥미롭고 흥분되는 것은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한 G20 경호특별법을 기초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탄압의 강도를 높일 이명박 정권과 서울로 집결하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들의 한판 투쟁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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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G20 성공은 겉치레식 준비에 달려 있지 않다 (경향, 2010-07-21 22:53:05)
 
서울 강남구가 그제 코엑스에서 ‘G20 성공개최를 위한 시민실천 결의대회’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국회의원, 시·구의원, 공무원,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해 우리동네 청결운동과 선진교통문화 실천, 질서있는 가로환경 조성 등의 실천을 다짐했다는 것이다. 구청장 대회사, 국회의원과 구의회 의장의 축사, 주민대표 결의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고 하니 행사 성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강남구로서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방식에 있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공무원·시민 동원과 결의대회 등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때를 맞춘 듯 교육과학기술부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2학기부터 초·중·고교생들에게 글로벌 에티켓 교육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에티켓을 주제로 하는 교과서 보완지도 자료를 만들어 정규수업 등에 활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선진국처럼 성장했지만 예절이나 의식은 후진국 수준이란 지적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다문화시대에 글로벌 에티켓 교육은 필요하지만 G20 정상회의를 이유로 아이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겨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앞서 교과부는 지난달 일선 학교에 G20 정상회의 인식 제고를 위한 행사·홍보 실적을 제출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내 시대착오적인 ‘학교 동원령’이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 밖에 공중전화부스와 보도블록 교체, 회담장 주변 전봇대 뽑기 등 G20 정상회의를 위한 전시행정이 남발되면서 인권과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의 가로 정비로 노점상들이 생활터전을 잃는가 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 등의 집중단속에 몸을 떨고 있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껌뱉기 금지나 교차로 꼬리물기 근절 등이 생활질서의 선진화란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와 같은 국제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외형적인 치장에 매달려 공무원과 학생, 시민들을 억지로 동원하며 호들갑 떤다고 국격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전시행정에 많은 인력과 돈을 쏟아붓고, 노점상을 길거리 청소하듯 쫓아내는 것은 G20 정상회의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은커녕 반발만 초래할 수 있다. G20정상회의의 성공 여부는 겉치레식 손님맞이가 아니라, 회의에서 도출될 합의내용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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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회의’가 도대체 뭐기에…‘국민 통제’ 해도 너무 한다 (경향, 송진식 기자, 2010-08-03 03:00:15)
ㆍ정부 무차별 단속
ㆍ곳곳 인권침해 논란

 
오는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100일 앞두고 정부의 민간 생활에 대한 통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국의 총기류를 일제 압류하는가 하면 경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기초·교통질서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주노동자·노점상 등을 대상으로 한 ‘거리청소’식 단속도 곳곳에서 부활해 인권 침해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사냥 하지마” 총기류 압류
경찰청은 2일 G20 정상회의 기간을 전후한 총기 이용 사고를 막기 위해 전국의 개인 소유주들이 보관 중인 공기총과 마취총 9만8516정을 회의 종료시까지 한꺼번에 압류해 영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소유주들이 영치 명령에 불응할 경우 총기류 단속법에 따라 형사처벌하거나 행정처분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기총도 살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개인 총기가 테러 등에 악용될 소지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정상회의를 이유로 전국의 총기류를 일제 압류하는 것은 처음이다. G20보다 많은 21명의 세계 정상이 참석한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지난해 제주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에는 해당 지역 내 총기류만 일시 압류됐다. 이에 대해 총기 소유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총포협회 오수진 회장은 “정부가 전국 25만 총포 소유주들을 잠재적인 테러범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아무리 국가행사라지만 소유주들의 총기 소유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거리청소식’ 노점상 단속
또 G20을 앞두고 정부가 유달리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질서 확립’이다. 경찰은 “세계 정상들이 방한했을 때 선진국 수준의 질서문화를 보여줘야 한다”며 지난달부터 대대적인 기초질서 단속을 벌이고 있다. 3일부터는 교통질서 집중단속에 들어갈 예정이고 10월부터는 회의장소인 서울 강남 코엑스 주변에 ‘전담팀’을 구성해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도 처벌할 방침이다. “행사 기간 중에는 아예 코엑스 주변에 가지 말자”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논란을 빚었던 ‘거리청소’식 단속도 재연되고 있다. 법무부는 6월부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집중단속에 들어갔고, 서울시는 지난 5월 25개 자치구의 ‘도로특별정비반’을 대폭 강화해 노점상 단속에 나섰다. 정부가 노숙인 복지를 명목으로 주관한 ‘G20 대비 노숙인 대책회의’도 사실상 노숙인 단속 차원에서 고안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노점상·노숙인 등의 연합단체는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G20을 빌미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G20에 대비해 통과된 각종 경호·경비관련 법안도 “국민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5월 국회에서 단독 통과시킨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은 경호 안전을 위해 군대 동원까지 가능하게 하는 등 기본권 침해 요소가 많아 같은 보수 진영 내에서도 비판받았다. 지난 6월 통과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은 경찰의 불심검문 권한만 크게 강화시켜 놓은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최은아 활동가는 “G20은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면서도 정작 시민과 소외받는 서민들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는 전시행사”라며 “정부가 G20 성공 개최를 이유로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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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22:28 2010/08/0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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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고집하는 KDI 등 구조개편 추진론자들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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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KDI보고서가 나오기 전에는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더니, 애초에 예상되었던 결과를 정부부처 쪽에서 비틀어 엉뚱하게 제시되자 이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최경환 지경부 장관이 이를 수습하는 것으로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더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적자기업 한전의 성과급 문제가 이슈가 되더니 이와 연결시켜 전기요금 인상으로 논의는 옮겨갔다. 이제 당분간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경부도 1차 토론회 때 한전과 한수원의 통합에 반대하는 경주시민들이 대거 상경하여 깽판을 놓은 이후 앞으로는 이와 관련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럼 도대체 향후 전략산업 구조개편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KDI보고서는 이전에 무르익던 한전 재통합 기운을 확실하게 꺾고 분할과 경쟁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향을 다시 이슈화한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고...
 
지경부는 전력산업구조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이며 9월 정기국회 개원전까지 중장기적인 전력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 로드맵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그런 내용이 들어갈 것이다. 레임덕 때문에 이를 강행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언제든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전력업계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내용을 알기도 어렵고, 더욱이 이를 비판적으로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이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글이 사회공공연구소의 이슈페이퍼이다. 물론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대응방침까지 제시하진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경과와 KDI보고서가 가진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링크를 따라가면 관련 기사 발췌한 내용과 한전노조 및 발전노조의 관련성명서, 그리고 토론회 자료집이 올려져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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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전력산업100726).hwp 
'실패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고집하는 KDI 등 구조개편 추진론자들의 오류 (송유나, 2010. 7. 26. 사회공공연구소 이슈페이퍼 2010-07)
 
2008년 촛불 국면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전기·가스·물·의료는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한 바 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관련해서는 발전 분할 체제의 문제점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기존의 분할-매각 및 경쟁 강화 식 구조개편 방안이 실패했다는 판단이 압도적이었다. 이에 따라 2009년 이후 전력산업의 수직-통합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정부는 발전 분할 체제의 문제점 등이 국회에서 공론화되자 KDI 연구용역 결과와 공론화 절차를 통해 Zero-Base에서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지난 5월 말 발표하기로 하였다 몇 차례 연기한 끝에 발표된 KDI 보고서의 내용은 기존의 분할-매각 방식의 구조개편 방안을 그대로 승계한 내용이었다. 민영화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 발전+판매 경쟁 강화, 송전의 분리 등 전력산업의 시장화 강화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었다. 또한 기존 구조개편론자들의, 구조개편이 가격인상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주장을 포기하고 요금현실화론, 요금인상 불가피론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어 에너지기본권, 전력의 공공성 훼손을 우려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KDI 보고서는 기존의 수직-분할 체제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구조개편을 합리화하는 환경 및 생태운동에 대한 사기극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이슈페이퍼는 KDI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세 가지 논쟁점을 분석하고 있다. 1) 기존 구조개편 입장의 답습임을 확인, 2) 온실가스 감축, 지속가능한 전환에 관심 없는 녹색정치 표명의 문제점, 3) 스마트그리드, 판매경쟁, 수요관리 등이 결국 전력요금 체제 개편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요 약]
□ KDI 보고서의 배경과 결과
▪ 1999년~2000년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여, 한전으로부터 발전부문 5개사와 원자력 1개사 즉 6개사로 분할, 2004년 이후 남동발전매각 중단 및 배전분할로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 중단
▪ 2008년 촛불 이후 전력산업 등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선언, 발전 분할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국회에서의 공방 등이 이어지며, 2009년부터 재통합의 필요성이 주장됨
▪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KDI 연구용역을 통해 Zero-base에서 검토하겠다고 함
▪ 그러나 KDI 보고서는 애초 발표 예정이었던 5월 말 발표를 미루고 이해당사자들, 특히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론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누더기 보고서’를 지난 7월 9일 제출함
▪ KDI 보고서의 내용은 기존(1999~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내용과 다르지 않은 분할-민영화의 내용임
 
□ KDI 보고서의 결론=기존 수직-분할, 민영화 답습․변형
▪ KDI 보고서의 내용은 기존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론자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발전+판매’라는 구조개편 방안을 제시하고 있음. 또한 송전망 분리와 계통 통합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
▪ 이는 기존의 구조개편 방안의 내용을 계승하여 결국 본격적인 소매경쟁 도입, 시장자유화 완성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줌
▪ 현재 KDI 보고서의 내용은 기존 구조개편 방안의 내용을 계승하여 일정하게 변형한 것인데, 변형의 내용은 도매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기존 구조개편 방안 -발전분할 체제의 문제점-의 오류를 인정하여 소매경쟁, 소매+판매 경쟁으로 곧바로 나아가겠다는 것 정도의 차별성을 가짐
▪ 이는 결국 구조개편 방안의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변형하여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임
 
□ 온실가스 감축, 지속가능한 전환에 관심없는 녹색 정치의 주장
▪ 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시장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함
▪ 이러한 주장은 발전+판매 우선 경쟁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음
▪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의 실질적 확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 등은 보이지 않고 실질적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하지 않는 배출권 거래제도의 확대, 이를 위한 시장경쟁의 필요성만 언급하고 있음
▪ 발전경쟁의 강화+판매경쟁 도입 등은 전력산업의 수익성 경쟁만을 강화시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움
▪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이산화탄소의 실질적 감축은 시장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강한 규제, 에너지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할 때만이 가능함, 경쟁을 위한 근거 혹은 조건이 될 수 없음.
 
□ 스마트 그리드, 판매경쟁, 수요관리 그리고 전력요금 체계개편
▪ KDI 보고서와 이의 근간이 되는 주장들에서 스마트그리드는 중단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돌파구로서, 상당히 중요한 근거로 드러남
▪ 즉 스마트그리드는 궁극적으로 소매시장 자유화를 위한 제도라고 명시되고 있으며, 현재의 전력산업의 부분적 시장제도의 왜곡을 해소하는 기제이자 민영화를 위해 추진해야 할 제도라고 하고 있음
▪ 그러나 스마트그리드는 현재 전력산업 정책 중 원자력 기저 발전의 확대에 따른 제도라 이해할 수 있음. 원전을 통한 기저발전의 확대는 전력소비를 오히려 증가시켜야 하며, 또한 기존의 첨두발전이 해결해왔던 피크부하 조절 기능을 전력의 요금체계개편(RTP) 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임
▪ 즉 원전확대를 위해 실시간 요금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또한 스마트그리드는 결과적으로 소매경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논리임
▪ 스마트그리드는 수요관리 기능에 적합할 것인지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제도이며, 오히려 원전 확대 등 기저발전 확대를 통한 전력소비 확대로 기능할 가능성임 큼
▪ 또한 수요관리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저소비가 아니라 다소비를 부추길 가능성이 큼
 
□ 결론
▪ 첫 번째로 KDI 보고서는 1999년~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실내용인 수직-분할 체제의 연속선상에 있음
▪ 두 번째로, KDI 보고서와 함께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론자들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시장구조’, ‘스마트그리드를 위한 새로운 전력공급시스템 창출’, ‘전기요금 현실화’ 등을 공통된 구조개편 추진 근거로 제시하면서 전력산업의 시장화, 민영화의 주장을 우회하고 있음
▪ 끝으로 보고서는 환경 및 생태운동에 대한 ‘사기극’이며, 수요관리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진정어린 의견과 주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녹색을 덧칠해 에너지 소비의 정당화, 에너지 산업 시장화를 통한 이윤창출 방향에 부합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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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21:44 2010/08/0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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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 기능 등의 지방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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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사무를 비롯한 고용노동부의 주요 사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이 쟁점을 보고 있노라면 지방분권이나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래 글은 사회공공연구소의 이슈페이퍼 2010-08 "고용도, 노동도 만족스럽지 않은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출범의 문제와 과제"의 일 부분이다. 고용노동부가 제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차원에서 쓴 것이다.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2010년 4월 초에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7개 기능, 25개 사무를 포함하여 500인 이상 사업장의 여성고용 확대를 유인하기 위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기능, 기간제ㆍ단시간근로자 보호 기능, 고용상 연령 차별행위 시정명령, 남녀고용 평등 지원 등의 사무 등 고용노동부의 11개 기능, 37개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기로 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허술한 산업재해 관리가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과 맞물려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전문 인력도 없고, 경험도 전무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게 되면 지금도 허술한 산업안전관리가 더욱 허술해질 것이며, 개발과 기업투자유치에 관심을 가진 지자체의 속성을 감안하면 산업안전과 관련된 규제가 완화되거나 관리 감독이 소홀해져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게다가 연초부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일․가정의 양립’과 ‘여성의 일자리 기회 확대’를 강조해왔고,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 이후 차별시정기능 강화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왔던 정부가 이와 관련된 노동부의 기능을 지자체로 이양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여성) 고용 확대, 비정규직 차별 개선에 대한 국가 책임을 외면하겠노라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안전보건 기능 등의 지방이양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하는데, 지방분권촉진위는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가 1992년에 비준한 ILO 제81호 협약은 산업안전보건 기능과 같이 근로감독업무는 국가 중앙부처에서 담당하도록 하고 있어 그 근거가 분명하며, 이번 지방이양 조치가 “국가가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정책을 수립․시행할 경우 노․사 단체와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ILO 제155호와 제 187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사안은 고용노동부가 부처 명칭 변경과 관련, 산업재해 예방 및 근로자 건강보호 등 중요성을 고려하여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추가하였다고 밝혔으면서도, 이러한 기능을 할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계와 산업안전보건단체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과 고용, 근로조건과 직결된 사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무책임한 지방이양 계획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자신의 주요한 기능으로 유지하려는 책임감 있는 조치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고용노동부는 더 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들은 주류 신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관련기사를 모아 정리했다. 앞으로도 관련기사가 있으면 여기에다 추가할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건 단지 노동계와 산업안전보건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http://gspa.springnote.com/pages/6119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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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12:12 2010/08/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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