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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경향 09.07.07


[손홍규의 로그 인]이삭줍기


요즘 같은 시절에 관에서 하는 말을 믿고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분들은 없으실 게다. 수돗물만 그런 게 아니다. 몇 해 전부터는 고향에서도 지하수를 그냥 마시지 않는다. 마을 뒷산 중턱에 아스팔트 도로가 생기면서 수질이 심각하게 나빠진 탓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수십 년 동안 스며든 농약 때문에 이쯤이면 그리 되었으리라. 서울생활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는 걸 보고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물을 사먹다니! 지금은 나도 사먹는다. 그보다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때마다 차림표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어딜 가나 공기밥 추가에 1000원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 테면 4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면, 그 가운데 밥 한공기가 3000원, 나머지 찌개며 반찬 따위가 1000원쯤 될 거라고 셈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억울했다. 4000원 가운데 겨우 1000원이라니. 어린 시절 추수가 끝나도 나는 들판을 떠나지 못했다. 밀레의 그 유명한 그림처럼 허리가 똑 끊어질 때까지 이삭을 주웠다. 더는 낱알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사위가 어두워져서야 들판을 떠날 수 있었고 그때 내가 손에 쥔 이삭은 한 줌에 불과했다. 밥 한 톨이라도 흘렸다가 주워 먹지 않으면 밥상머리에서 한참이나 보릿고개 운운하는 훈계를 들었다. 반발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삭 좀 줍지 않는다고, 밥 한 톨 흘린다고 굶어죽는 건 아니잖은가. 그러나 막상 내가 벌어 내 돈으로 밥을 사먹어야 할 때가 되자, 앞선 세대의 두려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듯싶었다. 밥 한 공기 추가에 1000원일 뿐인데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살다보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느 도의 교육위원이란 분들이 급식비를 삭감하셨던 모양인데, 그렇게 폭력적으로 세상살이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게 된다. 이삭을 줍고 살아도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걸. 당신들이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배워왔듯이. 모질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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