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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언론학자 박명진 유감

1990년 6월 프랑스 언론은 29일로 막을 내리는 한 TV프로그램을 소개하느라 난리였다. 르몽드와 르피가로 같은 일간지가 3-4면씩 전면을 털어 모두 724회로 끝나는 이 프로그램이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 문화에 끼친 영향을 대서특필했다.

 

이 프로그램은 프랑스 국영 제2텔레비전(Antenne2)의 독서토론 프로그램인 <아포스트로프(Apostrophe)>다. 종영 이유는 프로그램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가 지쳤기 때문이었다. 피보는 1975년 40세의 다소 젊은 나이에 시작해 15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리의 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주례사 같은 찬사만 늘어놓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피보는 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15년 동안 매일 두꺼운 전문서적 1권씩을 독파했다. 피보는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일에도 이젠 지쳤다”고 말했다. 출판업자들의 로비와 압력도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피보는 금요일 밤 9시 반부터 90분 동안 6백만 명 넘는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피보는 1년을 쉬고 1991년부터 다시 10년 넘게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 ‘문화의 온상’(Bouillon De Culture)까지 모두 28년을 진행한 독보적 존재가 됐다.

 

2001년 3월16일 ‘문화의 온상’의 마지막 녹화날. 책의 전당 살롱 드 리브르 앞엔 2천여 명의 문인이 모였다. 문학가 쟝 도르메송은 피보에게 “당신이 떠나지 않도록, 거리 시위라도 했어야 하는데... 정말 고마웠습니다”라고 찬사를 표했다.

 

KBS도 는 이름의 독서 프로그램이 있다. 초기에 박명진 서울대 교수가 2001년 5월부터 꽤 오랫동안 이 프로를 진행했다. 박 교수는 프랑스의 피보를 직접 만나 프로그램의 인기와 장수 비결을 듣기도 했다. 박 교수는 프랑스 유학에서 익힌 특유의 토론감각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심는데 성공했다.

 

나는 박 교수가 프랑스에서 갓 돌아와 시간강사로 일하던 70년대 말에 발표한 논문 몇 편을 갖고 있다. 박 교수의 초기 논문은 탄탄한 구조와 만만찮은 내공이 묻어 있다. 잡지 뿌리깊은나무 79년 9월호에 실은 ‘텔레비전은 내용이 아무리 순해도 우리 아이의 성질을 사납게 만든다’는 논문은 TV에 대한 기존의 가치를 뒤집는 다소 공격적 문제제기였다. 아무리 좋은 교양 프로라도 TV는 아이들의 커뮤니케이션 발달에 악영향을 준다는 당시로선 다소 생소한 주장을 여러 자료와 실험결과를 근거로 촘촘히 서술했다.

 

박 교수는 지난 97년 1월 <분단국 통합과 방송>이란 이름의 MBC 창사기념 통일방송 국제포럼에 패널로 나와서도 우리 방송의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대북한 방송이 아직은 대부 심리전 성격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통일 지향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단계”라고 유연하게 말했다.

 

그러던 박 교수가 언론개혁입법이 활발하던 2003년 가을부터 한국언론학회장을 맡아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박 교수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박 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아 PD수첩과 KBS의 뉴스 등을 제재해 현업 언론인의 비난을 한몸에 샀다. 박 교수가 지난주 심의위원장 자리를 내놨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유는 한나라당쪽 부위원장과의 갈등 때문이었다고 한다. 17일 아침엔 사의 표명이 사실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고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막장 드라마'를 심의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암튼, 박 교수가 에서 외도를 그만 끝내고 계속 학자의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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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박명진 교수에 대한 의견도 좋았지만 나는 그보다 '피보'라고 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대단해. 운동화끈 더 꽉 묶고 내 기대와 현실이 어느순간 만나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채찍질하는 소개였다. 응, 알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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